모습을 보니 꼭 삐진 것 같은데, 하긴 딱 봐도 세상의 모든 관심을 받고싶게 생긴 사람한테 세상사람은 너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을 하면 당연히 이렇게 삐질거다. 그런데 참 자기는 인간이 아니라는 듯 말하네. 아직도 그 쾌락신이라는 설정을 제대로 지키고있는 모습이 참 놀라웠다. 이쯤되면 하나의 신념이 아닐까.
"좋아. 알았어. 그만할게."
사실 이런 말을 하는 본인도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으니. 어차피 대화를 하고있는거라면 상대방이 침울해있는거보단 밝게 있는편이 더 나을테고.
"적어도 나는 너에게 관심이 있어. 핑크머리에 투사이드업을 하는 여고생은 흔하지 않기도 하고. "
침울해하는 그녀에게 살짝 힘내라는 듯 말했다. 오로지 외형만을 칭찬하는것은, 뭔가 내면쪽을 칭찬하는건 마치 고백같지 않나 싶으니까. 내가 뭐가 좋아서 그런 부끄러운 짓을.
조금은 급하게 끝나버린 방송과 방송종료멘트. 스즈는 또 자신이 실수했나 싶어 조금 더 가시방석이 된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다른 사람이 주인인 방에 들어와있는데 그 사람이 하던 것을 멈춰버렸으니 마음이 불편할 수 밖에. 스즈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전부터 불안하거나 긴장되거나 마음이 불편하면 곧잘 입술을 깨물곤 했다. 중학교3 학년때는 그게 심했어서 항상 아랫 입술에 상처가 나있기도 했다.
" 아냐아냐. 시-쨩이 강요한건 하나도 없어. 그게, 내 잘못인거야. 만만하게 봤나봐. 나는 나서는 것도 좋아하고 항상 친구들하고 같이 있으니까.. 그게.. 괜찮을거라고 생각해서.. "
거리감이 없어서 남들을 곤란하게 만든다는 점은 공감이 간다. 스즈도 가끔씩 그런 말을 듣곤 했다. 지금은 많이 친해진 친구들에게서 처음 만났을 때의 스즈는 거리감이 이상해서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인 것 처럼 행동해서 놀랐다고. 꾹 깨물고 있던 아랫입술을 떼어놓았다. 깨물고 있어서 조금 톡 튀어나온 입술이 느껴졌다. 스즈는 다시 한 번 '미안' 하고 말했다. 무언가 시끄럽던 분위기가 금새 가라앉은 기분이다.
" 응.. 아. 그거 알아. 응. 아주 잘 알아. 엄청 공감해. "
말도 안하고 계산을 끝내고 멋대로 거리를 두고 분명 친하다고 했었으면서 말도 없이 관계를 정리해버리고 없던 사람인것 처럼 취급하는 것. 아주 잘 알고 있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 쯤은 알고있다. 하지만 그래도 말도 없이 계산을 끝내고 거리를 두고 관계를 정리하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기억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형벌이다. 그리고 잘못한 게 없는 사람에게 떨어지는 형벌이라면 온 몸이 차게 식을만큼 억울한 일이다.
" 시-쨩은 말야. 음. 오늘 처음 만났지만 그런 생각이 들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
슬쩍 멋쩍은 미소를 지은 스즈는 고개를 돌려 시이를 바라보았다. 닮았으면서 다르다. 어딘가 많이 닮아있는 듯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다르다. 외형적인 것이나 내면적인 것이나, 그런 막연한 감정을 느낀 스즈는 허벅지위에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을 꼼지락대다가 조심스레 입술을 벌렸다.
" 그래서 말인데. 시-쨩은 날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에헤- 조금 이상한 말이었으려나? "
아프다고 하면 보건실에서 잘 수 있어! 학교에 다니는 인간들은 봄잠도 겨울잠도 보건실에서 자나봐! 한마디로 꾀병으로 땡땡이를 친 후에, 보건실에서 봄잠을 자고 있었다. 보건실에서 자면 책상에 엎드려서 잘 필요도 없고, 선생님의 눈초리도 닿지 않았다! 코로리는 인간계에 내려온 이래, 주말을 제외하고서는 정말 편안하고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점심 시간 전까지만, 오전 수업 시간 내내 보건실에서 자버리겠다고 다짐한 코로리는 4교시까지도 보건실에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만족스러울만큼 잤는지 문득 잠이 깨면서 눈이 뜨였다. 때마침 노크 소리가 알람벨 소리처럼 들린다. 얼마나 푹 자고 일어났는지 머리카락이 부스스하게 반짝였다. 반짝였다! 너무 푹 자서, 그만 실수로 잠결에 둔갑을 풀어버린 것이다!
"응, 양치기가."
잠을 잘때 양을 세는 것은, 양치기가 제일 잘 하는 일이 아닐까! 코로리는 양치기가 있다고 답하면서 부스럭 일어났다. 눈을 부비적거리면서 침대에서 내려왔고, 오전 내내 푹 잔 것 같다는 직감에 교실로 올라갈 생각으로 문쪽으로 향했다. 향하면 안 됐다.
"후링이네ー"
이 남자애 꽃단내가 안 나ー. 잠이 부족한 자는 양귀비, 그 반대로 잠을 잘 자는 자는 후링이었다! 후링 코로리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로, 투명한 후링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과 딸랑이는 소리, 또 햇빛에 반짝이며 여러 빛깔 그림자가 생기는 것도 좋아했다. 꼭 코로리가 신의 모습일 때의 머리카락 색처럼 빛이 비추는 때마다, 흔들릴 때마다 하얀 머리카락이 다채로웠다. 지금도 그렇게 하얀 머리카락이 부스스한 모양으로 여러 색이 맴돌았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어째서, 어째서 계속 0점인건데?! 계속되는 꽝의 행렬에 이젠 정신줄을 놓을 지경이다. 핫하! 한번 해보자는거냐! 권태로운 삶에 간만에 찾아오는 격한 감정이다. QR코드의 결과는 보지 못해도, 누군가 QR코드를 찾는 미래는 볼 수 있지! QR코드가 있을법한 곳을 점성술로 찾아서 스캔해본다.
한번에 50점이라. 머릿속으로 50점을 몇 번씩 되뇌이며 멍하니 학교 안을 돌아다니다가,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캐모마일 향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오며 정신이 맑아진다. QR코드에 들어있는 점수까지 알아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QR코드의 위치 정도는 추리할 수 있다. 시시한 심리론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잘 맞는 편이다. 마침 들고있던 휴대폰에선 야구 경기 영상이 틀어져있었다.
[던졌습니다! 이번엔 과연 홈런을 칠 수 있을것인가!?] " 그러게. 이번에도 과연 홈런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