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은 점심시간, 때마침 양호실 앞을 지나가던 학생들의 소란에 요조라의 잠이 깬다. 흠칫 놀라듯이 깬 요조라는 해가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걸 보고 점심인가... 하고 생각했다. 최근 점심시간에 깨는 일이 잦아졌는데, 이건 변화일지, 그저 계절을 탈 뿐일지,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요조라는 느릿하게 일어나 양호실 문 앞으로 걸어갔다. 살짝 차가운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는 순간, 손잡이 안쪽으로부터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닿은 김에 집어서 꺼내보니 제법 익숙해진 QR코드 종이다. 요조라는 오전에 점수가 적립되었던 걸 기억해냈다. 이번에도? 라는 생각에 폰을 꺼낸다.
>>430 으으음....(머리 굴리는 중) 일단 토와는 3학년이고 렌은 2학년이고... 렌은 체육계이고.... 어떤 상황이 좋으려나.... 아, 체육관에 토와가 물건을 두고 갔는데 다시 찾으러가니 문이 잠겨있었고 근처에 지나가는 렌이 문을 여는 걸 도와주는 상황은 어때~?
그치! 우와ー 지! 신이 주는 선물이라구, 신이 쓴 편지라구!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은 거라구?! 뿌듯해하는 코로리는 가방 안의 동전모양 초콜릿을 꺼냈다. 카페인을 싫어하지만 조그만 초콜릿에 들어간 정도야 눈 감아줄 수 있는 아량을 베풀기로 했다. 아직 편지내용을 읽지 않았으니 모르겠지만, 코로리는 초콜릿을 나눠먹자고 적어두었다. 초콜릿 다섯개를 쥔 손을 펼쳐서 가져가란듯이 내밀었다. 초콜릿 편지는 지켰고, 그 다음은 고양이 편지!
"협회장님, 체셔는 아니었네!"
체셔는 자주색 줄무늬 고양이이다. 아무리 그래도 머리카락 색이 자주색 줄무늬인 학생은 보기 힘들텐데! 코로리는 이왕이면 새카만 밤색이 좋은데! 를 올려다보며 무슨 고양이일까 생각한다. 턱시도, 고등어, 얼룩이 셋 중 고민한다. 치즈는 아니잖아!
"우는 거야?!"
웃고 있는데 우는 표정을, 선물을 받아서 기쁜 만큼 감동이어서 눈물이 나는 걸 참고 있는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코로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했다. 꿈 속이라면 자유자재로 행복한 풍경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여긴 깨어있는 현실 속이라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코로리는 허둥지둥거리면서 당황하다가 손을 뻗었다. 졸려서 우는 아가는 달래줄 수 있는데ー. 울지 말라며 어깨를 토닥여주려고 했다!
볼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소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독심술의 신, 이런 것이었다면 의중이라도 알 수 있을까 싶지만 가정은 또 다른 가정을 낳을뿐이다. 답답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그저 호기심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을뿐이었다. 결국 나에겐 독으로 돌아올 호기심이라고 해도, 같은 후회를 반복해도.
" 개인적으론 다른 것도 먹어보고싶은데 말이에요. 나중에 추천 부탁해도 되겠죠? "
달달한걸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라서-물론 레몬 사탕은 예외다.- 아직도 두고두고 먹고 있기는 했지만 먹을때마다 맘에 드는 맛이다. 마침 눈앞의 소녀가 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들의 자식이라는걸 알고 있으니 그저 웃으며 부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답변이 뭐던 간에 신경은 쓰지 않고 싱글벙글 웃고 있다가 말했다.
" 흠, 그럼 저도 장을 봐야할게 있으니 겸사겸사 같이 가다가 중간에 찢어져도 되겠는데요. "
굳이 오늘 장을 봐야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있을때 채워두면 나중에 좀 더 여유가 생기니까. 물론 시내로 나간다길래 따라갈 구실을 붙여본 것이기도 하다. 나도 할 일 없이 하루종일 따라다니기엔 시간이 꽤나 부족한 사람이니까 적당히 타협을(물론 나랑만) 본 것이다. 밤길을 헤메던 소녀가 애타게 찾는 소리에 호기심이 돌아 나타났던 것처럼 이번에도 ..
" 그 날 알려준 별이 잘 보이는 장소는 잘 이용하고 있나요?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긴 하니까요. "
주변 가로등이 고장나서 외부의 빛이 거의 보이지 않는 곳이라 별이 잘 보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그 장소에서는 별이 더 잘보이도록 손을 써놓은 것도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밝은 별 몇몇개만 보일지라도 그곳에서는 수많은 별들이 깜빡이고 있으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사이에 날 지나쳐가는 소녀의 뒤쪽에서 천천히 따라간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했는데, 등에 가방이 없는 것을 보면 가방을 찾으러 가는 것일까.
렌은 마침 체육관 주변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수영장을 가는 길목에 체육관이 있었기 때문에 볼일이 있어서 수영장에 갔다가 교실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것이 더 알맞았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체육관 앞에 누군가가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문을 열어보려고 하는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체육관 안에 무언가를 두고온 것 같았다. 보통이면 모른 채 하고 지나갈 수 있지만 렌은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보면 금새 지나가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것이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
렌은 체육관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넥타이 색을 보니 3학년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