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그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타입은 아니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미즈 아키라였다. 물론 학생회장으로서 너무 대놓고 공표할 순 없겠으나 이 정도는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손으로 살며시 안경을 올렸다. 아무튼 슬슬 모두들 연습으로 들어가려는지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키라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모두의 모습을 바라보려고 했다.
"아니요. 편하게 해주세요. 언제나 했던대로요. 괜히 힘을 꽉 주면 평소보다 실력이 더 안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오히려 너무 긴장을 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그는 그럴 필요는 없다는 듯이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진 모르나 이내 신호가 내려지고 음악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 곡은 무슨 곡인지 모르겠으나 확실한건 상당히 정열적이고 분위기가 있는 곡이라고 아키라는 생각했다.
'이건...'
고등학교 수준보다는 조금 더 높지 않나? 이전 사쿠라마츠리 때 들은 공연을 떠올리며, 그는 아무런 말 없이 공연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보컬의 실력이 상당히 좋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가만히 강한 눈빛을 보였다. 아무런 말 없이, 그저 활동하는 모습 그 자체에. 그렇게 집중하던 아키라는 음악이 끝날 무렵 두 손을 올려 크게 박수를 쳤다.
"훌륭하네요. 이 정도라면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겠는걸요. 다른 학생회 멤버들에게 들려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에요."
격하게 반응을 보이진 않았으나 그럼에도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찬사는 아키라가 보낼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만큼 지금 이 공연을 감명깊게 바라봤기에.
"특히 보컬 쪽이 목소리도 좋고, 실력도 괜찮네요. 다른 악기들도 그에 조화를 맞춰서 흐트러지는 것 없이 정말로 부드럽게 음이 이어지는 것 같고요."
부장의 말에 아키라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은 그의 보컬 실력을 두 번이나 보았으니까. 사쿠라마츠리 때, 그리고 바로 지금. 전문 프로의 실력이냐고 하면 그것에 대해서 답은 할 수 없었으나 적어도 자신 또래의 고등학생 레벨로 보자면 충분히 좋은 실력이 아니겠는가. 그에 대해서 아키라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확실하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일하러 가야하지 않냐는 그 말에 아키라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여기서 계속 시간을 보낼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아키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조금 더 보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동아리도 둘러봐야하니, 오늘은 이쯤에서 돌아가봐야겠네요. 일단 부정한 활동이 없는 것은 확인했고, 문화제때 나오는 것도 확인했어요. 그때까지 연습 힘내주세요."
이어 아키라는 슬슬 돌아가려는 찰나 쇼를 잠시 말 없이 바라보다 미소를 다시 한 번 작게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 한 마디를 살며시 남기면서 문 밖으로 나갔다.
"학생회장으로서는 표현하지 않겠지만, 시미즈 아키라로서는 개인적으로 팬이에요. 힘내세요. 오토하 씨."
/그렇다면 이렇게 막레를 드릴게요! 일상 수고하셨어요! 와! 쇼의 보컬을 직관으로 두 번이나 봤어!! 나랑 자리 바꾸자. 아키라. (멱살 짤짤)
이 마을에서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일도 즐거운 추억들을 쌓아가면서 당신의 머릿속에 내가 잘 박혀서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잊혀지지 않으면 언젠가 또 즐거운 일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전화를 끊은 스즈는 오랜만에 혼자 귀가하고 있었다. 보통 때라면 친구들과 같이 재잘거리며 돌아갔겠지만 오늘은 시간이 맞지 않아 이렇게 혼자. 혼자지만 이런저런 사람들과 전화도 하고 하면서 가다보니 혼자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오히려 가끔은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도 제법 운치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어라라~? "
뭔가 소란스러운 것 같았는데. 스즈는 고개를 갸웃하며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돌아간 고개에 여러 명이 웅성거리며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재밌는 일이라도 있는걸까 싶었지만 일단 자신의 일이 아니니 신경쓰지 않고 가던 길을 마저 갈 참이었다. 조금더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그대로 자신이 가던 길을 갔었겠지.
" 어라라라~? "
작은 여자아이가 보였고 그 곳을 둘러싸고 있는 꽤나 험악한 인상의 학생(?)들도 보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친다. 자신에게 불똥이 튀는게 싫고 괜히 이런 일에 휘말리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 스즈의 경우라면 그 반대였다. 천성이 그런 것인지 이런 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 흠, 흠흠, "
스즈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손에 쥐고 있던 이제 한 모금 남은 콜라를 쭉 들이키곤 집어던졌다.
" 야!!! "
스즈 자신도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는 잘 알고 있다. 조금은 불량해보이고, 놀기 좋아해 보이고, 몰려다니길 좋아하며 꺅꺅대기를 좋아하는 그런 여자아이. 머리가 밝고 색조화장이 짙은 눈가까지. 뭐라던 상관없다. 이게 귀엽고 또 이렇게 다니는 것이 즐거우니까. 캔을 집어던진 스즈는 성큼성큼 다가가 여자아이와 그 사이를 막아서곤 당당하게 올려다보았다.
" 뭔데 너희? 왜 여러 명이서 한 명을 괴롭혀? 진짜 구제불능 쓰레기야?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나랑 붙어볼래? "
봄을 알리는 꽃들이 세상을 화사하게 물들이던게 어제만 해도 생생했는데, 이른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인해 그 풍경도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다. 꽃잎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극성을 이기지 못 하고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탓에 길이 꽃잎색으로 물들었다. 그마저도 길을 걷는 사람들에 의해 색을 잃고 한때의 화려함은 점점 지난 날이 되어간다.
날이 흐린 탓인지, 요조라는 언제나 스스로 일어나던 것과 달리 양호 선생님이 깨우는 것에 의해 잠에서 깼다. 깨고서도 얼마간은 비틀거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 했다. 흐린 날은 꼭 이렇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 하듯, 온종일 흐리멍텅하고 어지럽다. 그래도 집에는 가야하니 어찌어찌 정신을 차린 요조라는 벽에 거의 기대다시피 하고 걸어서 교실로 돌아왔다. 드르륵, 열린 문 안에는 아무도 없다.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비틀대며 요조라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 그 자리, 책상 위에 놓인 편지와 선물을 깨달은 건 주저앉다시피 의자에 앉은 후였다.
"뭐야..."
잔뜩 말라 갈라진 목소리가 꼭 타인의 것처럼 낯설다. 콜록콜록,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오늘도 있는 편지를 집어든다. 처음 펼쳤을 때는 글자를 알아보지 못 해 눈을 가늘게 좁히다가, 하품 한번 하고 눈물로 눈을 씻고 다시 보니 제대로 보인다. 처음에 비하면 꽤 간단해진 편지는 눈을 잠깐 굴린 걸로 금방 다 읽는다. 다 읽은 편지는 잠시 내려놓고, 함께 있던 손부채를 집어든다.
눈이 녹으면 봄이 오고, 꽃이 지면 여름이 온다... 인가.
"여름이, 올 뿐... 이지... 가을도... 겨울도..."
풍경은 남아도 시간마저 남아주진 않으니, 요조라에겐 계절 역시 그저 흘러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봄이라 하여 큰 감흥 없고, 곧 올 여름 역시 늘 맞는 계절일 뿐이다. 올해도, 분명 그럴 것이다.
"...그래도..."
요조라는 작게 중얼거리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한 손에 손부채를 쥔 채 엎드려 작게 숨을 내쉰다. 유달리 퀭한 눈을 두어번 깜빡이다가, 조금만 더 쉬었다 가자고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엎드린 요조라의 옆 창문 너머에선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토독토독 유리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조용한 교실을 살그머니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