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카는 이미 꽃이 거의 다 떨어진 벚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었다. 벌써 끝났다는 것에 대해 시원섭섭한 느낌도 있었지만 아직 사계절의 시작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엄청 아쉽진 않았다. 이제 그러면 무엇을 해야할까, 그렇게 다시 머리를 굴리던 아미카는 한숨 자면 머리가 정리되지 않을까 했지만 이전처럼 또 그냥 자기도 뭐했는데, 곰곰히 생각하더니 갑자기 뇌리를 스친게 있었다.
"아, 마니또.."
아미카는 벤치에서 일어나더니 몇십미터나 되는 입장로에 등장 타이밍을 맞추러 달려나가는 선수처럼 달려갔다.
밤이 되면 피는 꽃은 달맞이꽃이 아니라 양귀비꽃이라구ー. 잠이 부족한 사람에게서만 맡아지는, 오로지 코로리만 맡을 수 있는 꽃단내가 나지 않은 적이 없다. 하루라도 모든 인간들이 제때 잠을 청한 적이 없다! 웃는 얼굴로 말하는 목소리도 생글생글, 말갛게 대답했다. 하지만 링고아메를 와삭 깨무는 소리가 어쩐지 양귀비ー꽃단내가 나면 양귀비라고 부른다ー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코로리가 잠의 신을 그만두고 다트의 신을 하게 되는 날이 오려면, 모두를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푹 잠들게 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잠들면, 풍선 다트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하쨩 말고 츠쨩! 나 산타클로스야ー"
서점의 두 남매가 살아온 시간을 합해도 쌍둥이 하나가 살아온 시간의 반의 반의 반에도 턱없이 모자르다. 그래서 꼬맹이라는 단어에는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다가, 다른 이름이 나오니 고개를 저었다. 하루나의 몫은 오빠가 선물해줬으니까, 그 오빠에게는 코로리가 선물을! 다트하기 전부터 남매에게 인형을 안겨줄 작정이었으니, 성공적인 계획 맞다, 세이 선물! 일 뻔 했다.
"응, 이럴때만 오빠! 세이오빠, ¹달마씨가 넘어졌어!" ¹일본에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를 달마씨가 넘어졌다고 한다.
달마씨가 넘어졌다고 외우자마자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활짝 핀 벚나무 아래로 경로를 이탈했다! 풀썩 쭈그려 앉아서 제일 상하지 않은 벚꽃송이를 몇 개 줍는다. 한 송에는 링고아메, 한 손에는 벚꽃송이들을 쥐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코세이가 먼저 집에 가지 말라고 또 오빠라고 부른 것이다. 달마씨가 넘어졌으니까, 세이 움직이면 술래야! 다섯송이 정도를 주으면 다시 코세이의 옆으로 발을 놀려 돌아온다.
"우유!"
대답은 짧고 굵게, 지금은 주워온 벚꽃송이를 코세이의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심고 싶다! 보통은 귓가에 꽂아주겠지만, 코로리는 꼭 머리띠를 쓴 것처럼 나란히 총총총 꽂으려고 한다. 벚꽃을 못 꽂게 하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볼게 뻔하다.
"...유급할래!"
일부러 눈썹을 휘었다! 동그랗고 처연하게 뜬 눈이 평소보다 자주 깜빡이면서 코세이를 바라본다. 졸업하면 신계로 돌아가자는 말처럼 들렸는지, 일단 졸업부터 미뤄보려고 한다.
리리가 말하는 양귀비들은 잠이 부족한 인간들을 뜻하는 것이고, 양귀비 꽃밭이 없어진다는건 모든 인간들이 푹 잠을 잔다는 것. 그렇게 된다면 나도 리리도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실현 가능성이 없는 수준이라 그냥 상상 속의 행복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선물은 꼬맹이가 아니라 다른 쪽이 받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 그 곰인형도 언젠가 하루나가 가지지 않을까 싶지만. "
아무래도 고등학생 남자애보단 어린 꼬마 아가씨가 더 좋아할법한 선물이니까. 오빠가 받은 선물이라는건 알고 있긴 하겠지만 결국 탐을 내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착한 아이니까 때를 쓰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 응? "
갑자기 달마씨가 넘어졌다니,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멀쩡히 가던 길을 두고 이탈하는 리리를 보고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근처에 벚꽃이 한껏 피어있는 벚나무 아래로 향한 동생은 쪼그려앉아서 꽃송이들을 줍는가 싶더니 내 앞으로 쪼르르 다가와 머리에 하나씩 꽂기 시작한다.
" 뭐하는거ㅇ.. "
우유와 함께 먹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표출하고 머리띠 마냥 꽃송이를 꽂기 시작하는 리리의 손을 막으려고 했지만 내가 손을 들어올리자 가늘어지는 눈을 보고선 저항의 의지를 내려놓는다. 분명 집에 갈때까지 이러고 가기를 원하겠지. 중간에 내가 털어내기라도 할려면 또 가늘어진 눈으로 노려볼것 같다.
" 유급은 청룡신님이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데. "
유급이 쉬운 문제도 아니고 말이야. 물론 지금도 어찌저찌하면 유급 타이틀을 딸 수는 있겠지만 조금 번거롭기도 하고 ... 무엇보다 교장선생님의 눈총이 따가울게 분명하다. 그렇게 눈치 받으면서 학교를 다닐 수는 없다!
" 나는 딱히 널 데리고 가거나 그럴 생각은 없어. 너가 있는만큼 나도 같이 있어줄꺼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
서로 오래 떨어져본 경험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없다. 나는 인간계가 좋지도, 싫지도 않으니까 그냥 동생의 의지에 따라 있을 생각일뿐이었다. 다만, 졸업 후엔 또 다른 인간의 삶을 살아야할테니까 그게 조금 걱정일뿐.
" 아 맞다. 리리, 아까 만난 소녀가 하나 있는데, 잠을 잘 못자는 눈치더라. 혹시 나중에 도와줄 수 있어? "
이제 요리는 거의 끝이 난다. 끓는 물에 면을 삶고 그 면을 커다란 그릇 두 개에 나눠담았다. 그 양은 왠만한 점보 라멘 급일까. 그곳에 마지막에 숙주 나물을 넣어 익힌 육수를 붓고 그 위에 숙주 건더기를 올린 뒤, 썰어놓은 차슈를 가득 올리고 녹색이 만연한 쪽파를 올려 색을 내었다.
“또 놀리시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라멘을 끓여 대접하는 후배가 많지 않다는 점 기억해주세요.”
렌은 큰 그릇에 가득 담긴 라멘을 식탁 위에 올리고, 간단한 장아찌류의 찬거리와 수저를 놓아 금새 한 상을 내었다. 라멘의 양은 꽤 많았는데 지금까지 히키와 함께 점보라멘을 부수고 다녔던 것을 생각하면 딱 알맞은 양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렌은 히키의 맞은 편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보통의 라멘과는 꽤 많은 양의 라멘 위에는 차슈가 두 번은 더 추가한 것처럼 잔뜩 올려져 있다. 사실 집에서 해먹는 라멘의 묘미는 먹고 싶은 만큼 올릴 수 있는 차슈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렌은 잠시 히키가 먹는 것을 기다렸다가 히키가 라멘을 먹기 시작하면 이내 젓가락을 들었을 것이었다. 먹은 라면은 꽤 괜찮은 맛이 나왔을 터였다.
학교 안에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이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허나 그 고양이들이 너무 학교 안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 중 하나였기에 아키라는 일단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학생회실 밖으로 나섰다. 일단 가장 많이 목격되는 장소인 뒷뜰로 가니 자연히 고양이 세 마리가 모여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검은색, 하얀색, 주황색. 아마 저 세 마리만이 아니라 좀 더 있겠거니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봤으나 당장 더 보이는 고양이는 없었다.
아무튼 문제는 이 고양이들이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들에겐 꽤 위험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개 알레르기도 그렇지만 고양이 알레르기도 사람에 따라서는 상당히 위험하지 않던가. 그렇기에 아키라는 이 고양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가장 무난한 곳은 역시 체육창고 옆이었다. 거기라면 평소에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설사 학교 내부에 고양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알레르기 환자들이 피해가기엔 딱 좋은 위치였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아키라는 일단 고양이를 옮기기 위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그 중 하얀색 고양이를 잡으려고 했다.
순순히 잡힐지, 아니면 피해갈지는 알 수 없었으나 시도를 하지 않으면 그 결과도 알 수 없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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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ce 1 2. = 2 1.고양이는 순순히 잡혔다 2.야옹야옹 펀치! 아키라는 .dice 1 100. = 13 의 데미지를 입었다.
아키라는 방금 고양이에게 펀치를 맞은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뭔가, 뭔가 일어났는데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어 멍한 상태인 탓이었다. 그러나 이내 고양이에게 맞았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방금 전에 잡으려고 한 하얀색 고양이를 아키라는 안경알 너머로 가만히 바라봤다. 꽤 성깔 있네. 이 녀석.
하지만 비극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같은 반인 엔이 자신을 부른 후, 고양이를 잡으려고 하다가 냥냥펀치를 당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키라는 절로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는 탓이었다. 아니. 저거 괜찮은건가? 저거? 그런 생각을 하며 아키라는 조용히 안경을 올린 후에 그의 말에 대답했다.
"네. 아직 하교하지 않으셨나요? 토와 씨. 아무튼 고양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체육창고 옆으로 서식지를 옮기려고 해서 일단 옮기려고 하는데... 손 괜찮으세요?"
자신도 자신이지만 엔도 냥냥펀치를 맞고 말지 않았던가. 저거 꽤 아프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살며시 다시 한 번 하얀색 고양이를 잡으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잡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또 옮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은 옮겨야죠. 거기에 밥도 주고 물도 주고 하면 자연히 거기로 옮길지도 모르고."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두기에는 역시 위험하다는 것이 바로 학생회장으로서의 판단이었다. 학생들도 은근히 다니고 있고, 교사들도 많이 다니는 길로였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이들에게는 여러모로 곤란한 장소였으며 그렇다고 고양이를 무작정 쫓아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애초에 이사장이 그것을 허락할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미리 준비한 박스에 고양이를 한 마리 집어넣은 후에 다른 고양이 두 마리를 바라봤다.
"그럼 이제 이 남은 두 마리도 옮겨야겠어요. 자. 이리 온."
이어 아키라가 손을 뻗은 것은 다름 아닌 검은색 고양이 쪽이었다. 그 검은색 고양이도 잡는데 성공하면 바로 상자에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고양이 세 마리를 다 옮기면 이후엔 학생회 멤버에게 연락을 해서 먹을 것과 물그릇을 가지로 오라고 시키면 될 일이었다.
"자. 얌전히 있어줄래? 착하지? 잡아먹는 거 아니야. 우쭈주."
나름대로 그렇게 고양이를 달래주려고 하면서 아키라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
.dice 1 3. = 2 1.그리고 고양이는 잡혀줬다. 2.아니. 냥냥펀치의 위력은 대단했다. 아키라는 .dice 1 100. = 13의 데미지를 입었다. 3.상자 안에 있던 냥냥이의 박스 브레이크다냥!
자신은 물론이고 엔까지 또 다시 냥냥펀치에 맞자 아키라의 눈의 빛이 아주 약하게 사그러들었다. 대체 이 고양이는 뭔데 이렇게까지 저항을 하는거야?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어 아키라는 살며시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고양이가 여기서 집착을 할 만한 그런 것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냥 단순히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일단 엔부터 걱정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잘 지내는 것도 잘 지내는 거지만 토와 씨. 정말로 괜찮은 거 맞는거죠?"
자신만이 아니라 그 역시 펀치 공격을 맞아버렸으니, 그것도 두 번 연속으로 맞아버렸으니 역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아키라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한편, 도저히 지금 이 상황을 그냥 간과할 순 없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확김에 기습을 하듯, 고양이를 잡아서 상자에 넣으려고 했다. 타깃은 당연히 방금 전에 자신에게 냥냥펀치를 날린 검은색 고양이였다.
"자꾸 말 안 들으면 못 써요~ 자꾸 그러면 못 된 고양이 신이 잡아먹어요~"
그래도 표정을 애써 관리하며 달래듯이, 혹은 위협을 하듯이 그렇게 흥얼거리면서 아키라는 검은색 고양이에게 살며시 닿았다. 그리고 단번에 집어올려 상자로 옮길 생각이었다.
"자~ 자~ 착하지? 아주 좋은 곳으로 모셔다 드릴테니까 얌전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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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ce 1 3. = 2 1.그리고 고양이는 정말로 잡혀줬다. 2.이상하고 거대한 인간이 나를 협박한다. 냥냥펀치 X2배!! 아키라는 .dice 1 100. = 83 x2의 데미지를 입었다. 3.히익?! 난 여길 빠져나가야겠어! 상자에서 탈출한 잊혀진 고양이
그야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지금 두 발 연속으로 맞았으나 엔은 또 한 발을 맞으면서 지금 연속으로 계속 얻어맞고만 있지 않은가. 대체 이 고양이들. 왜 이리 저항을 하는 것인지. 그렇게 인간의 손이 싫은 것일까. 하지만 숨거나 도망치는게 아닌 것을 보면 인간을 마냥 경계하는 것은 또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싫은 것일까. 아키라의 생각이 절로 복잡해졌다. 일단 한 마리를 잡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엔의 물음에 이어 대답했다.
"아. 네. 이번 학기에서 친하지 않은 이들이 조금 더 알아가면서 친해지길 바라면서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토와 씨도 신청을 했었죠. 활동 안 들키게 잘하길 바랄게요. 그래도 조금 아쉽긴 하네요. 저는 못하니까."
아무래도 준비한 사람으로서, 정확히는 학생회 멤버 전원이 이번 마니또에서는 불참하게 되었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학생회의 숙명이라면 숙명이었다. 나중에 학생회 멤버들끼리 선물이라도 교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일단 엔을 바라보며 한 가지를 제안했다.
"그렇다면 토와 씨. 여기서는 둘이 동시에 공격해보도록 하죠. 각각 한마리씩 말이에요. 그러면 고양이도 당황할지도 몰라요."
이어 아키라는 하나, 둘, 셋! 을 외치며 단번에 예고없이 방금 자신이 잡으려고 한 검은색 고양이를 향해 팔을 내밀었다. 물론 고양이의 시선은 쭉 아키라를 향해있었으니 도망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애초에 그냥 가볍게 즐기자는 느낌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아키라는 들킨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것은 분명하게 했다. 물론 원래는 들키면 안된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짖 철저하게 할 이유는 없었기에 더더욱. 아무튼 이후에 또 하게 된다면 그때는 가능할까? 라는 물음에 대해서 아키라는 잠시 생각하다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학생회에서 하는 거라면 역시 저는 그때도 못하지 않을까요? 누군가가 대신 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괜찮아요. 학생회장으로서 모두가 즐거워한다면 그 정도야."
정말로 괜찮다는 듯, 그렇게 태연하게 웃어보이며 아키라는 막 잡혀있는 검은색 고양이를 바라봤다. 겨우 또 한 마리를 잡았다는 것에 만족하며 그는 이제 남은 주황색 고양이를 바라봤다. 이제 저것만 잡으면 이 고생도 끝이었으나 과연 잡혀줄지는 또 알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일단 검은색 고양이는 상자에 넣어주세요. 저건 제가 잡을테니까요."
이어 기회를 엿보듯 아키라는 가만히 주황색 고양이를 바라봤고, 도망치지 않는 주황색 고양이 역시 아키라를 바라봤다. 이어 아키라는 정말로 빠르게 주황색 고양이를 향해 몸을 던졌고 주황색 고양이는 그에 대응하듯, 아키라를 향해서 달려들듯 질주했다. 숨막히는 순간 속에서 누가 이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설사 신이라고 하더라도.
"좀 잡혀라!!"
그 와중에 아키라의 목소리가 제법 크게 그 장소에 울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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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ce 1 2. = 1 1.드디어 아키라 승! 2.아직 날 잡으려면 100년은 이르다냥. 아키라의 뺨을 살짝 할퀴기 성공
"그렇다고 해도 학생회의 검토는 받아야 해요. 학교 안에서 실행하는 거니까요. 제대로 검토하고 승인을 받지 않으면 안되거든요."
바로 그것 때문에 아키라는 자신이 하는 것은 조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니또 매칭을 하면서 느낀 것이었지만 이것도 생각보다 꽤 귀찮은 작업이었다. 당장 가벼운 프로필을 제공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같은 반 아이들이나 기타 협조를 받으면서 이것저것 기술했던 나날들. 정말로 피곤함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바쁜 일은 없지 않을까. 그저 그렇게 희망을 가져보며 아키라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것대로... 열심히 감당하실 수밖에 없겠네요. 토와 씨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작게 화이팅을 외치며 이내 그는 자신이 잡은 주황색 고양이를 상자에 집어넣었다. 상자 안의 고양이들은 정말로 옹기종기 모여 야옹~ 야옹~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아키라는 귀엽다는 듯 그 고양이 3마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름이 어떻게 될 진 모르겠으나 이제 새롭게 모여야 하는 곳으로 옮긴 후에 밥과 물을 제공해서 여기에서만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물론 그게 마냥 쉬운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학생회 멤버들이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네. 이제 바로 옮겨야죠. 체육 창고로 옮긴 후에 거기에 두고, 학생회에 연락해서 일단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간식과 물을 가지고 오라고 할 생각이에요. 협조 감사해요. 토와 씨."
싱긋 웃으면서 그는 엔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다 그의 손을 바라보면서 그는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이야기했다.
"역시 손은 보건실로 가보는게 좋지 않겠어요? 아프지 않아요? 냥냥펀치. 상당히 많이 맞았는데."
-아미카! 네가 레슬러였다면 무슨 기믹에 무슨 경기 스타일이었을까? "글쎄에.. 생각해본 적 없는데에..일단 기믹은 나랑 잘 맞는 선역 잠꾸러기에 키가 크진 않으니까 슈터 스타일이랑 브롤러를 적당히 섞는게 좋을 것 같고오, 필살기는 케니 오메가의 오마주로 namu.wiki/w/파일:브이트리거.gif V트리거 같은게 좋을 것 같네에..!"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는건 처음이기에 일단은 여성분이 쓸 법한 물건을 보냅니다.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쉽지만 다음기회를. 결국은 선물이란 주는사람의 주관이 담긴 물건인걸요. =>전국방콕협회장
2.토와에게. [안녕, 벚나무 수줍은 분홍 벗어 녹음 물들고 산들바람 가득한 날이야!
내가 누구냐면 야마다, 토톳치의 비밀스러운 친구! 잘 부탁해! 아앗- 요비스테라서 기분 나빴을까? (•∆•) 그렇지만 토톳치라고 안 하고 엔이라고 부르면, 어쩐지 저의 이번 달 보고서입니다. 하고 서류를 보내야 할 것 같단 말이지. 물론 우린 학생이지만!
와아아, 서론이 길었네에..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오늘부터 잘 부탁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서야. 잘 대해주고 싶은데 야마다찌, 사실 마니또가 처음이거든(T.T) 그러니까 서툴더라도 이해, 꼭 해주는 거야?
그리고 이대로면 섭섭하니까, 야마다찌가 많이 얘기해 줄래!
으음.. 공부, 많이 한다고 들었어! 도쿄대 노리는 걸까, 대단해-
야마다찌.. 요즘 책에 나오는 말은 전혀 모르거든.. 국어는 교과서를 펼쳐서 문학을 읽는 것만 좋아해! 영어는 헷갈려, 역사는 지겨워.. 수학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사실 나만 그런 게 아니겠지? 토톳치도 똑같을까? 언젠가 직접 들을 수 있을까? 알려주지 않더라도 대화할 수 있다면 기쁠 거야!
그러니까, 토톳치. 대단하더라도- 무리하지 않기야? 야마다찌는 가까운 곳에서 토톳찌를 응원하고 있으니까, 걱정이 많이 되거든.
이거 먹고 힘내자, 우리 다 열심히 해보기야!
- 너의! 비밀 친구 야마다찌!!]
토와를 위해 포도당 캔디를 준비했어! 복숭아 맛이야!! =>야마다
3.후미카에게 마롱글라세가 반쪽 올라간 몽블랑을 선물. 원래는 밤 한알이 전부 올라간 것 같지만, 일부러 칼로 잘라 반만 올린 것 같습니다. 적당히 달며 밤의 고소한 풍미가 돋보입니다. 가을에 주면 더욱 맛있었을텐데, 왜 봄인지. =>주사기
4.에니시에게 작은 다육이 화분을 하나 줍니다. 하월시아 옵튜사 종류네요 =>금록
5.스즈에게 여분의 필름과 하늘색 폴라노이드 카메라를 선물합니다. 옆에 작은 메시지가 붙어있습니다. "사진 찍는 거 좋아해?" =>푸딩
6.히키에게 '시바이누 스트레스 볼'을 보냅니다.
[스트레스가 날 때 주물주물해주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스트레스 볼이랍니다. 내구성이 좋은 인형이니까 마구 주물러도 좋아요.] =>오리박사
7.츠무기에게 도토리 한 알. 메세지는 'ま' =>도토리씨
8.아미카에게 비닐로 포장된 쿨베개 ( https://contents.lotteon.com/itemimage/LO/10/44/58/02/49/_1/04/45/80/25/0/LO1044580249_1044580250_1.jpg/dims/resizef/554X554 ) 하나 선물 =>12시 30분
9. 오토하 쇼에게
늦봄, 문안 인사 드립니다.
겨울의 추위가 떠나고 아름다웠던 것들이 땅으로 떨어지는 계절, 가내는 평안 하십니까. 아직 얼굴을 만나지 못한 이에게서 편지를 받는 것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을 기회로 삼아 인연을 늘려가는 것 역시 청춘 시절에 두 번 없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일방적인 서문을 쓰는 것이 아닌 이런 개인적인 이유로 글을 쓰는 것은 처음이기에 대단히 두서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최근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드리는 것은 어떨까 하였습니다. 저희 친가 근처에는 자그마한 매화나무가 있었습니다. 일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었으나 최근 다시 보니 훌륭하게 자라 아름다운 꽃을 피워넀습니다. 일전 어느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모양입니다. 나무나 풀이 자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을 통감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기에 이제서야 무정한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때로는 두렵기도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그 변화를 보는 것이 즐겁기도 합니다.
귀하에게 평온한 하루가 되기를 빌며.
전신주
[고급 양갱이 함께 담겨있습니다.] =>전신주
10.To. 테츠야
정말 조그만 상자가 교실 책상에 놓여있다. 상자 안에는 고급스런 재질의 100면체 주사위가 들어있고, 상자 아래에는 쪽지가 작게 접혀있다.
[TRPG부 부장님에게 가장 걸맞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100면체 주사위를 쓸 일은 자주 없겠지만 필요할때 써주면 정말 고맙겠어.] =>몰?루
11.시이에게.
소두곰인형. 부드러운 핑크색 곰이에요. 핑크색 리본이 선물이라 하듯 매여 있습니다.. 품에 가득차는 어깨깡패.. 외로울 때 안아보면 어떨까요? [ 이 아이도 제법 머리 이상하(あたまおかしい)니까요. 토쨩으로부터. ] =>토쨩
12.안녕, 호시즈키! 사실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 동네에서 가끔씩 봐온 너의 마니또가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네. 사실 뭐 줄지 고민 은근 많이 해봤는데... 음식은 너의 호불호를 잘 몰라서 선뜻 주기가 좀 어렵겠더라고. 이거, 저번 마츠리 때 딴 검은 고양이 키링이야. 축제 상품으로 여러 개 받았는데... 굳이 검은 고양이인 키링은, 글쎄 너를 좀 닮아서인 것 같아. 이번 선물은 마음에 들려나. 좀 더 분발해야겠다. 남은 시간 동안 너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가볼께! (검은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키링이 동봉되었다.) =>견우
13.마사히로에게 유자 머핀을 선물합니다. 딱딱한 폰트로 인쇄된 메시지가 동봉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뜻한 과일향이 어울릴 것 같아 준비했습니다. 제 이름이 유자라는 뜻이기도 하고요.] =>유즈
14.에니시에게 원석(장미수정)팔찌 하나를 동봉합니다. =>금록
15.후유키에게 물양갱 한상자 선물합니다. =>카시아리
16.토와에게. [오늘도 안녕, 토톳치! 점점 더워지지만 기분 좋은 바람 부는 날이야! 그렇지만 공부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살랑살랑 불고 있어...
토톳치의 공부는 잘되고 있을까? 공부하느라 쉬는 걸 깜빡한 건 아니지? 그러면 안 돼! 지금 편지를 보고 있다면, 팔도 쭉쭉 늘리고 목도 좌우로 천천히 움직여야 해! 허리도 펴는 거야?
오늘은 벚꽃이 다 져가기 시작해서 그런지, 온통 녹색 세상이었어. 벌써 봄의 찬란한 때가 가고 여름의 생명을 움터주기 위해 도와주고 있는 걸 보니, 시간이 너무 빠른 거 있지?
토톳치에게 봄은 어떤 계절일까? 생명이 움트는 동안 숨을 돌릴 수 있는 계절? 봄에만 먹을 수 있는 한정판 사쿠라 말차 츄파춥스를 먹을 수 있는 계절? 어느 쪽이든 기분 좋은 계절이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기숙사 산다고 들었어! 으-음! 기숙사 외롭지. 룸메이트 있어도 외로울 거야! 독실이면 더 외로울까 봐, 야마다찌, 친구 준비했어!
토톳치가 이거 받고, 겨울에도 봄날을 느꼈으면 좋겠다!
너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야마다!] 🌸야마다는 토와를 위한 벚꽃 모양 인형을 편지와 함께 사물함에 넣었다. 가로 세로 40x60cm의 인형은 폭신폭신하며, 은은한 분홍색이다. 향수를 뿌린 걸까? 아니면 다른 것일까? 향긋한 봄날 벚꽃 향기가 만연하다.🌸 =>야마다
17.히키에게 유리병에 담긴 프리저브드 플라워를 보냅니다.
[꽃이 예쁘게 피었답니다. 제가 직접 꺾어서 하고 싶었는데 그랬다간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아 프리저브드 플라워로 골랐어요. 하늘색 꽃이 예쁘지 않나요?] =>오리박사
18.시이에게 무지 작은 마리모. 둥근 유리병에 담겨 코르크로 닫혀 있어요. 액체 비료가 동봉되어 있어요. [ 오래 살고, 키우기 쉽고. 잘 보살펴주기 바라요. 토쨩으로부터. ] =>토쨩
19.토오루의 책상 위에 딸기맛 쿠키가 제과점에서 포장된 상태 그대로 올려져 있습니다. 그 위에 있는 메모에는 '좋아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 먹길 바래.'라고 쓰여있군요. =>더 클리너
20.미즈미에게 베이지색의 얇은 니트 가디건을.
[이 가디건을 받았을 때의 네 표정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슬프지만. 그렇지만 네가 이 가디건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으면 난 기쁠 거야.] =>헤세
네 바라면 다 망가지니 알아봤자 무에 씁니까. 참 잔인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무상영령의 기나긴 생애와 다 헤아리지 못하는 비극에 비하면 이 한낱 사람에 불과한 소녀가 가진 것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녀의 삶도 손대고 바라는 것마다 망가지는 삶을 살아왔으니. 이제 와서는 삶의 주도권을 다시 거머쥘 엄두 같은 것은 내지 못하고, 가장 소극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죽여가고 있을 뿐이다. 평범하기 그지없이, 뭐라도 먹으러 가자는 말이 나온 것만도 용하다 할 만큼.
그래, 그녀는 텅 비어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열대과일 향이 묻은 숨을 내쉬며 최신식 곰방대-히키의 시점에선 이렇게 표현하는 게 가장 알아듣기 쉬울 터이다-를 주머니에 푹 찔러넣은 시니카는 잔에 남아있던 상그리아를 마저 마셔버린다. 얼마나 들고 있었다고 얼음이 많이 녹아 싱겁다. 쓰레기통이 2개 마련되어 있었으니 하나는 음식물 쓰레기, 하나는 컵을 버리는 용으로 구분되어 놓여있었기에 시니카는 컵 뚜껑을 벗기고 남은 얼음이며 과일찌끼 등을 후두둑 부어버리고는 남은 컵을 옆의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
그렇게 텅 비어있기에, 맛집이나 소개해 달라는 말도 아무 생각 없이 툭 뱉은 것이겠다. 그러니 아마 히키가 자신을 바라보며 물두부를 연상한 것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남에게 어떻게 여겨지건, 그런 것에 신경쓰는 건 그만두기로 했고. -그렇지만 아직 생각을 말할 여력은 남아 있다.
"할아버지 같네요."
감정 없는 어조. 취향이 늙었다거나 하는 비판 같은 것을 할 생각은 아니고, 왜인지 노인들이 먹을 법한(실제로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유도후를 퍽 좋아하기도 했고) 감상을 생각없이 뇌까릴 뿐이었다. 언뜻 들으면 부정이나 거절로 들릴 수 있겠으나, 시니카는 거기에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들키고 들키지 않고는 결국 개개인의 몫이었다. 이번에는 자신은 철저하게 관망자, 혹은 관찰자로만 남아있을 예정이었기에 자신이 개입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학생회실에 들어가면 누가 누구의 마니또인지 알 수 있었기에 더더욱. 당연히 엔이 누구의 마니또인지, 그리고 엔의 마니또는 누구인지도 그는 알고 있었다. 흥미롭다는 듯, 두 어깨를 괜히 으쓱하며 아키라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리하다 고양이 세 마리가 들어있는 박스를 들어올렸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으나 그가 못 들 정도는 절대로 아니었다.
"아프지 않다면 굳이 갈 필요는 없겠지만요. 그래도 연속으로 맞으셨으니까."
자신만 해도 어느 정도 선이 얼얼했다. 물론 자신은 이 고양이들을 다 옮기고 뒷정리를 하기 전엔 아무래도 보건실로 갈 순 없었다. 일단 1층인지를 묻듯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아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1층 복도 맨 오른쪽에 있어요. 지금 교사가 있을진 모르겠는데 없다고 한다면 교무실에 가면 있을지도 몰라요. 워낙 다른 선생님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분이라서."
나름대로 조언을 하듯 이야기를 하며 아키라는 슬슬 상자를 옮기려는 듯 발걸음을 옮기려다 엔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럼 토와 씨는 바로 보건실로 가실 생각인가요? 저는 일단 이 박스를 슬슬 옮겨야 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 자연스럽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로 가는 길이 다른 쪽이었으니까. 자신은 체육창고 옆, 그리고 엔은 보건실. 역시 조금 맞은 곳이 신경이 쓰이는지 그의 시선은 엔의 손으로 향했다. 딱히 크게 다친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일단 자신도 학생회 임원들이 오면 바로 보건실에 가서 치료라도 받아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이 냥냥펀치를 맞은 손을 바라봤다. 신경쓰니까 괜히 더 욱신거린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작게 혀를 찼다.
"그래요. 그러면 여기서 헤어져야겠네요. 고양이 잡아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답례할게요."
뭐가 될진 모르겠으나 간단한 답례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리라. 먹을 것도 가능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미즈미 스파 티켓도 가능할 것이다. 어느 쪽이건 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뭐가 있을지를 나름대로 생각해보려고 하며 아키라는 뒤로 돌아 체육창고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다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그는 엔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어 이야기했다.
"혹시나 고양이 보고 싶으면 체육창고 옆으로 와주세요. 얼마든지요. 괴롭히지만 않으면 학생회는 터치 안하니까요."
괴롭히지만 않으면 된다. 그냥 보는 것은 괜찮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아키라는 다시 체육창고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이제 거기에 어떻게 고양이들을 정착시킬지를 생각하며.
몇 번인가 사진을 넘겨보면 스즈는 인형을 주겠다는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긍정했다. 가장 아끼는 인형이라고 했다. 그렇게 가장 아끼는 인형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해주겠다는 것이고 그만큼 오래 기억해주겠다는 것이겠지. 적어도 잊혀질 일은 없다는 것이다. 스즈는 뛸뜻이 기뻐했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표정과 몸짓에서 나타났다.
" 옷-쓰! 확실히 각인시킬게! "
스즈는 한 손에 소라게 인형을 꼭 쥐고 있었다. 보통은 선물받았더라도 당장 필요하지 않다면 어디 잘 보이는 곳에 놔두겠지만 스즈는 그게 무슨 소중한 보물이라도 된다는 것 마냥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씩 고개를 돌려 인형이 손에 잘 쥐어져 있는지 확인했다. 무려 먼저 말해주었다. 항상 기억해주기라고. 더할 나위 없는 대답이다. 스즈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소라게 인형을 꼭 안았다.
" 앗. 우왓. 에- "
마음의 준비할 시간도 없이 카메라가 켜지자 스즈는 순간 당황한듯 했다. 그야 시청자수를 알리는 숫자도 제법 높았고 채팅도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옆에서 익숙한듯 프로인 것 처럼 진행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인사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마치 저 뒤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면 된다는 거겠지?
" 에- 그러니까-.. 요~! 현직 JK 미나미 스즈임당~ 오늘은 이렇게 같이 인사하게됐어. 그런 의미에서 다들 만반잘부~ "
한 손에는 소라게 인형을 꼭 쥔 채로 다른 손을 파닥파닥 하고 흔들면서 인사했다. 이렇게 하는게 맞는거겠지. 스즈는 카메라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며 뭔가 생각난듯 아! 하고 한 마디를 더했다.
" 지금 말야, 조금 보코보코하지만 그래도 귀엽게 봐줘야한다? "
에헤헤~ 하고 웃으며 스즈는 고개를 돌려 시이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의 방송이고 이 아이의 집이다. 이 아이가 모든 것의 주인인 곳에 들어와있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 너라면, 그런 곳에 내가 들어왔다면 말야. 스즈는 손에 쥔 소라게 인형을 조금 더 꼭 쥐었다. 이렇게 소중한 곳에 내가 들어왔다는 것이니까 그만큼 네 기억속에 내가 잘 박혀있을 수 있겠지.
" 그리고.. 음.. 어.. 이,이제 무슨 말 해..? "
스즈는 방송을 해본 적이 없다. 보는 것이야 몇 번 해봤지만 보는 것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스즈는 조금 불안한 시선과 몸짓으로 시이와 카메라 그리고 스키야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점심시간 바로 전의 수업시간은 선생님이 누구냐에 따라 끝나는 시간도 다르다. 오늘은 운이 좋게도 점심시간이 되기 5분전쯤 끝내주시는 선생님을 만났기에 학생들의 점심시간은 5분 정도 늘어날 수 있었다. 물론 학생들이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선생님의 좋지 않은 시선은 누군가를 향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선생님이 나가고 급식을 먹는 학생들은 급식실로 향하고 도시락을 가져온 학생들은 가방에서 자신들의 도시락을 꺼낸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엎드려서 미동도 하지 않은채 자고 있는 한 명의 학생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 ... 수업 끝났어? "
나다. 자기 좋은 높이로 쌓여있는 책들을 한번 응시한 나는 창가에 놓아둔 안경을 찾아서 쓰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애들은 대부분 밥을 먹고 있었고 내가 자다가 일어난건 안중에도 없는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바빴다. 나도 그들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 그들도 나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겠지. 그렇다고 내가 왕따를 당하는건 아니고 그냥저냥 클래스메이트의 관계로 지내고는 있다.
" 오늘도 선생님이 너 노려보고 나가더라. 그렇게 잘 수 있는 네가 부러워~ " " 3년동안 이렇게 지내면 너도 할 수 있어. "
옆을 지나가던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고 아직 잠이 덜깨서 피곤했기에 살짝 인상을 쓴채 답했다. 짜증낸건 아니고 목소리는 평소랑 비슷했으니까 오해하지는 않겠지. 한번 기지개를 켜고 가방에서 도시락 가방을 꺼내든다. 오늘은 가볍게 오니기리를 싸왔기에 도시락통도 평소보다 작았다. 오는 길에 구입한 물 한 병과 도시락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교실을 나와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는 나 말고도 점심을 먹는 학생들이 있기에 점심시간에도 사람이 꽤나 있는 편이지만 오늘 옥상 문을 열고 나갔을땐 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단 한명 빼고.
" 잘 먹겠습니다. "
막 자고 일어난터라 당연히 입맛은 없었지만 이따 일하려면 배는 고프면 안되기 때문에 도시락통을 열어서 오니기리를 한 입 베어물었다. 오늘은 그냥저냥 맛있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살짝 둘러보자 아까 눈에 띄었던 학생이 그 자리에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복잡한 머리장식과 인형 같이 예쁜 외모는 둘째치고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기에 잠시 그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는 했지만,
' 놀러왔나보네. '
같은 생각으로 대충 옆으로 치워버린다. 학교에서는 다시 잠들기 위해서 깨어있을때 뇌의 활동을 최소로 하고싶기 때문이다.
라멘의 부재료를 만드는 과정은 길었지만, 본 요리로 들어가는 과정은 간단합니다. 커다란 그릇에 담겼지만 생긴 것만큼은 여타 라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네 좋은 냄새가 가득 나고 있음을 다시금 깨달으니 회가 동합니다. 대체 언제부터 라멘을 좋아했더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완벽한 음식입니다.
"아, 요즘 렌 군의 눈치가 너무 빨라서 걱정이에요. 장난을 곧이곧대로 받아줄 때 참 재밌었는데."
네 농지거리를 하며 덧붙입니다. "알지요, 물론." 그리 말하며 본 것은 커다란 그릇에 담긴만치 제법 많은 양입니다. 다만 두 사람이 먹는 양이 양이기에 이 정도면 딱 적당한 정도임을 네 알고 있습니다. 지금껏 너와 어린 인간에 의해 깨진 점보라멘 챌린지가 몇 개인데요. 아무렴 네 웃으며 먼저 수저를 듭니다.
"잘 먹겠습니다."
요리의 신에게 감사를 올려야 하나? 친분도 없는데 딱히 올릴 필요는 없겠죠. 욕망스럽게 차슈를 올린 라멘의 국물을 먼저 맛본 네 표정은 여전히 은은하나, 점점 미소가 길어지는 걸 보니 네 마음에 제법 든 모양입니다. 따스하고 적당히 기름지며, 짭짤한 국물.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도 절대 나쁘지 않습니다. 되레 더 마음이 편해집니다. 거기다 고기에, 야채에, 탄수화물까지.
"정말 맛있네요. 라멘집에 가지 못한 것이 한이 될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습니다. 렌 군도 어서 드셔야지요."
면도 적당히 익었으니, 씹는 맛이 있습니다. 네 만일 조금만 더 과장적인 사람이었다면 벌써 뺨 위에 손을 얹고 달뜬 한숨부터 쉬었겠지만, 너는 정적이고 고요한 사람이었기에 계속 먹는 것으로 답할 뿐입니다. 숙주 한 번, 면발 한 번, 차슈에 숙주를 감싸 한 번.. 기어이 부처 미소가 올라오고야 맙니다.
앞에 놓인 것은 그저 달콤한 양갱이 아니라, 네게서 처음으로 받은, 온기로 가득한 것. 저를 향한 네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마치 신물(神物)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일까. 누구일까. 너와 나는 조금이나마 아는 사이일까. 아니면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인, 모르는 사이인 것일까. 뒷모습조차 보지 못했으니, 너에 대해 추측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할 수 있는 건, 어떤 것이 더 좋은 선물 일지 진심으로 고민하며, 고르고 골랐을 너를 상상하는 것뿐. 그리고 그런 너를 상상할수록 자꾸만 웃음이 나는 걸까. 이 선물을 보낸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에니시는 도시락파도, 급식파도 아니었다. 직접 싸온 도시락이랍시고 정체불명의 검은 것... 이 담긴 도시락을 꺼내기도 하고, 바람 불듯 유유히 나가 급식을 받기도 하는 굉장한 회색분자에 가까웠다. 그리고 오늘은 매점파가 되어보기로 했습니다. 에니시는 양팔에 과자 안은 채 옥상 문을 뻥! 양아치가 그렇게 하듯 찼다. 다행은 문짝이 떨어지거나 흠집이 나지는 않았다는 것, 오히려 얌전한 자태로 알아서 닫혀주기까지 했다는 것과, 이렇다 할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신도 없었다.
보드란 바람. 내리쬐는 봄볕. 과자 씹으며 광합성하기 딱 좋은 옥상이다. 에니시는 폴싹 앉고 감자칩부터 양손으로 잡아 팍 하고 뜯었다. 옥상 문이 두 번째로 열리고, 에니시는 신경조차 쓰지 않다가 오니기리 무는 모습에 흘금 시선을 주었다. 하얗고 검은 오니기리... 먹은 지 좀 되었나.
하늘은 파랗고, 코세이의 시야에 여러 겹의 감자칩이 불쑥 내밀어졌다.
"JK의 제안이야. 점심 교환하지 않을래."
어느새 곁에 앉은 에니시는 짐짓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권태스런 낯에 진지가 얹히다니, 참 요상한 광경이다.
나는 가디건 어깨 부분을 쭉 들어 위로 올렸다. 잘 짜인 천이 하늘하늘 바람에 나부꼈다. 음! 여름에 입기 딱이겠는 걸. 나는 빙그레 웃었다. 보는 사람 없는데도 그래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안목이 좋다. 나는 잠시 가방을 어깨에서 떼어내고 가디건을 몸에 둘렀다. 원래 내 옷처럼 딱 맞으니 어색하지 않고 입은 것 같지 않으니 참으로 가벼워서, 경장輕裝이라 칭할 수 있겠다.
"고마운데..."
장한 것을 본다는 듯 작게 감탄한다. 세상천지 값진 것을 품에 안아도 고마워할 줄 몰랐는데 정작 이 작은 선물을 받고는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는 소매로 부터 툭 튀어나온 손가닥으로 가디건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결혼식은 언제로 잡지.'
........... 누구인지 감히 추리할 생각도 없이 결혼할 생각이나 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빈 것을 바라보는 것은 즐겁습니다. 기실로 즐겁냐 묻는다면 즐겁다 해야 할지. 아직도 가끔, 무너지는 것들을 보면 의심을 품곤 하지만 그마저도 잊고 무너진 이후의 순간까지 바라보게 되니 아무렴 네 즐거운 것 아니겠습니까. 물가에 둥둥 떠다니는 텅 비어버린 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 지켜보는 것이 네 하는 일입니다. 네 그 작은 무언가를 건드리지 않지만, 이 신기하고도 기이한 것들은 바람결에도 쉬이 흔들려 차있던 물마저 다 비워내고는 손바닥 밑에 굴러떨어지고 다시금 물가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가라앉아, 평생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순간을 보던 것이 너임에도, 어째 눈앞의 빈 것은 네가 지금껏 봐온 것들 중 최근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에는 쉽게 굴러떨어지고, 지금도 그런 것이 가장 많이 보였으나, 요즈음 이런 것이 늘어납니다. 속에 추라도 있는지 속의 물을 죄다 비워내도 굴러떨어지진 않고 손바닥 위에 있는 것. 그러면서도 물기는 남아있어 점점 부식되고, 기어이 손 위에서 썩어버리는 것. 너는 이제 그 부스러기를 털어내지 않습니다. 털어도 손에 잔재 남기 때문이요, 그리하면 손이 더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손 한 번 더럽혔을 때를 떠올립니다. 끔찍합니다. 이제 또 손이 더러워지면 같이 나이 먹은 동문 중 유독 이 썩은 것도 사랑하는 것들이 떽떽대며 또 인간에게 손을 대었냐 시끄럽게 굴기 때문에, 직접 물 밑에 담가 흩어지게 두는 편이었지요.
하여 바로 거두지 아니하고 인두겁을 쓴 이유는 네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이 어린 인간이 시간이 지날수록 부식되는 철일지, 쓸어내면 먼지 몇만 묻을 뿐 끄떡없을 광물일지. 너는 지금 허무에서 깨달음 얻을 충분할 시간을 주었으나 이 인간은 모르겠지요. 차라리 모르면 좋겠습니다. 나는 일부를 봐놓고 전체를 본 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네가 나를 마주하면 나도 너를 마주 봄은 너희가 안다고 자부하는 것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단다. 나도 나를 채 다 마주하지 못하는데 네가 어찌 감히 나를 마주 보겠더냐.
"…할아버지? 혹 내 나이가 많아 보이나요?"
자, 속내는 그만 들여다봅시다. 네 깊은 곳 보여주어 무엇합니까? 네 다시 원래 생각으로 돌아옵니다. 방금 전까지 속으로 이 어린 인간을 흥미롭게 지켜본 것과는 달리 겉으로 뱉는 말은 차분합니다. 그러면서도 잠깐 네 인두겁에 대해 심오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이 인두겁이 늙어 보이나? 최대한 젊어 보이게 꾸몄는데, 심오하게 고민하다가도 요즘 아이들은 유도후를 안 좋아하나? 로 생각이 이어지는 겁니다.
…요즘 애들은 유도후보다 스키야키인가? 아니면 나베? 애들은 사케를 못 마시니 나베에 의미가 있긴 한가? 고민은 길지 않습니다. 네 잔을 매만지며 은은한 미소 길게 유지합니다.
"좋아요, 나를 따라오면 돼요."
음, 요즘 말로 츤데레인지 뭔지 하는 건가 봅니다. 빈 것은 역시 재밌습니다. 아직도 살기 위해 츤이라는 걸 담아둔 것 아닙니까! 네 한 걸음 앞으로 나섭니다. 한 걸음, 여덟 팔자 그리던 걸음 우뚝 멈추더니, 잠깐의 정적 이후로 보통의 아이처럼 걷기 시작합니다. 조신하고, 얌전히.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차분한 걸음으로.
오늘의 옥상을 점거한 것은 나와 또 다른 학생(혹은 신)뿐이었기에 어떤 말소리도 없이 그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느긋한 점심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니기리를 한 입 베어물었을때 그 상상은 무참하게도 깨져버렸다. 자신을 JK라고 소개하며 점심을 교환하자는 말소리의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진지한 얼굴이 눈에 띈다.
" 교환은 딱히 생각 없지만. "
이거 하나 먹는 것도 억지로 입에 쑤셔넣는 것이나 다름 없는데 하나 더 있는건 그냥 줘도 무방했다. 도시락통 뚜껑에 오니기리를 하나 담아서 그녀에게 건네주고서는 말없이 손에 들린 것을 한입 더 먹어버린다. 리리한테 싸준건 명란젓이 들어간 것이지만 내것은 우메보시가 들어간 것이다. 사고보니 명란이 부족해서 그냥 대충 만들어버렸다.
" 요즘 JK들은 감자칩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그런가보네요. "
근데 자기 자신을 뜬금없이 JK라 소개하니 나도 딱히 부를 호칭이 없다. 피곤해서 뻑뻑한 눈을 반쯤 뜬채로 앞머리를 쓸어올린 나는 옆에 두었던 물을 한모금 마시고서 말했다.
" 뭐, 여기서 본 것도 우연이라면 우연이겠지. 만나서 반가워요. "
이 익숙한 기운은 역시나 상대방이 나와 비슷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밤이라면 좀 더 살갑게 맞이해줬을테지만 낮은 도저히 그럴 기분이 들지를 않는다.
>>283 다른 것은 제치더라도 열반- 과 그 반대. 라는 개념이 포함되고 이름에 무상 들어가는 시점에서, 으응. 물론 내 지식도 오타쿠적 야매지마안, 신불습합적 관점에서 생각하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해서. 으응 자려고 생각해서 이 이상은 다음에 함께 이야기하는 것으로 할까. 히키 또한 눈目의 신이라면 신이라 내적 친밀감도 사실 있어. 이야기하고픈 것 많아아
흔하지 않은 점심시간을 지나 오후 수업이 시작할 무렵, 요조라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찹쌀떡도 초콜릿도 깨끗이 정리해서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져 있었다.
다시 나타난 건 종례가 끝나고 반 아이들 대부분이 귀가하거나 부활동을 하러 간 후였다.
느릿느릿 교실로 들어온 요조라는 가방만 챙겨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분명, 점심 때까지만 해도 없던 뭔가가 자리에 있었다. 편지와 포장된 키링. 포장 속 검은 고양이가 요조라의 새까만 눈에 비친다. 손에 들고서 주변을 두리번 거려봤자 교실에 있는 건 요조라 뿐이다. 다시 두고 갈까, 챙길까, 고민하다가 가방에 쑥 찔러넣고 느릿느릿 교실을 빠져나갔다.
평소라면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해 느긋하게 귀가했겠지만 오늘은 가는 길 중에서도 가장 빠른 길을 택한다. 그래봤자 요조라의 걸음이 빨라지진 않으니 귀가하는 시간에 큰 차이는 없다. 결과적으로 평소보다 약간 일찍 도착한 요조라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점원복을 입은 오빠 마히루와 엄마 유우히가 맞이해온다.
"어서 오렴. 요루. 오늘은 일찍 왔네?" "그러게. 천하의 게으름뱅이가 왠일이래."
포근한 인사를 해주는 엄마에겐 다가가서 포옹을, 얄밉게 깐족대는 오빠에겐 손톱 세운 꼬집기를 시전하려다 만다. 안 했는데 호들갑 떠는 마히루를 희게 째려본 요조라는 흥, 하며 카운터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곧 저녁 차릴테니 쉬고 있으란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가족들만 드나드는 통로를 지나 가정집으로 들어가면 다시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간다. 2층에서도 가장 볕이 잘 들며 하늘이 잘 보이는 방. 그 방이 요조라의 방이다.
"으엥..."
오롯히 혼자만 있을 수 있는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하는 건 가방을 팽개치고 침대에 다이빙이다. 낮에 엄마가 말려놓았을 이불에서 희미한 볕냄새가 나며 푹신하게 눌리는 감각이란. 엎어진 채로 꾸물꾸물 돌아다니다가 발라당 몸을 뒤집으면 열린 문가에 선 마히루의 모습이 보인ㄷ...
"뭐야..." "저 저 다 큰 꼬맹이가 하는 짓 봐. 옷도 안 갈아입고 대뜸 드러눕긴." "...히루, 변태야...?" "아니 왜 그렇게 되는데?!"
벌컥 화를 내는 마히루를 보고 요조라는 한방 먹였다는 생각에 키득키득 웃는다. 그 모습을 보고 마히루는 어이 없어하며 혀를 찬다. 쯧쯧, 소리를 내며 마히루가 손을 내밀었다. 이번엔 요조라가 그 손을 보고 뭐냐는 시선을 보낸다.
흐아아암. 대답하다 말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요조라를 보고 마히루는 이제 없어질 어이도 없었다. 으이구 이것아, 라는 어머니나 할 법한 소리를 하며 편지와 키링을 요조라의 배에 던져줄 뿐.
"보낸 사람 성의가 있는데 좀 재깍재깍 읽어라. 어? 저래가지고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고 인간관계는" "아... 히루, 시어머니 같아... 잔소리 싫어..." "저걸 확 그냥. 어후. 내 속만 터지지. 저녁 먹기 전에 읽기나 해. 또 깜빡하지 말고." "내 마음이야... 히루, 바보..."
한바탕 소란을 떨고 나가려던 마히루는 뒤늦게 물으려던 것을 물었다.
"야, 이거 맛있든?" "어어... 맛있대..." "뭐?" "맛있다고..." "대답을 영 이상하게 해. 하여튼. 알았다. 부르면 저녁 먹게 곧장 내려와."
그 말을 남기고 내려가는 마히루의 뒤로 요조라는 혀를 빼꼼 내민다. 들킬새라 얼른 다시 넣고, 마히루가 꺼내 준 편지를 조심조심 펼쳤다.
"흠..."
천천히 편지의 내용을 읽고, 키링을 보고, 다시 편지를 본다. 그리고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이상한... 사람이네..."
자신이 어딜 봐서 검은 고양이를 닮았다는 걸까. 검은 고양이는 불길함의 상징인데, 혹시 그런 의미? 빙돌아 비꼬는 의미?
"어렵네... 그래도..."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책장에 장식해두기로 한다. 키링이니 가방에 달고 다녀야겠지만, 그랬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 가능성이 더 높았으니까. 요조라는 다시 꾸물대며 일어나 키링을 장식할 책장으로 다가가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어 키링을 들고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너무 얕지도, 높지도 않은 천장은 최근에 새로 건 그림과 잘라낸 사진집들이 붙어있었다. 너른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
마히루와 티격대면서 저녁을 먹고, 이후엔 가족들과 시간을 좀더 보내다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부모님이 잠자리에 드시고 마히루는 마히루의 방에 들어가고나면 이제 정말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 그 시간에 요조라는 이젤을 펴고 빈 캔버스를 건다. 희고 깨끗한 화폭 위를 손으로 한번 쓸어내며 무엇을 그릴지 천천히 연상시키고 나면, 그 다음은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다.
해가 저물어 어둑한 하늘에 떠오른 달이 기울어 사라질 때까지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달과 자리를 바꾸어 나타난 해가 동쪽 하늘에서부터 세상을 희게 밝아올 무렵, 빈 캔버스는 더이상 빈 것이 아니게 된다. 밤하늘 가득 떨어지는 유성우를 언덕 위에 홀로 앉아 바라보는 검은 고양이가 있는 그림으로 가득 채워졌을 테니까.
코로리는 링고아메를 와삭 와사삭 깨문다. 이번에는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며 깨물고 있었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과자가 들으면 안 된다느니 손가락을 입술 위에 갖다대며 쉬잇 조용히 시키던게 모순적이다. 하지만 양귀비 꽃밭이 사라질 날이 언제 오겠느냐구! 매일매일 벚꽃만큼 못난 양귀비가 피었다구, 오늘은 마츠리니까 봐준다아! 입안 가득 링고아메를 와삭거린다. 꿈은 사랑스럽지만 꿈 때문에 안 자는 건 안 사랑스럽다구. 내가 물레를 만들 수도 없는데!
"그럼 산타클로스 물려줘야지ー"
꽃꽂이에 집중한 눈과 손, 이를 막으려고 코세이의 손이 들리면 귀신같이 알아채서 흘겨본다. 집 갈 때까지는 절대 터치 금지! 봄의 산타클로스씨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야! 선물이라기에는 장난치고 즐거워하는 어린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뿌듯하게 만족스러워하는 입꼬리가 생글생글인다.
"세이는 이제 벚나무야. 여름 올 때까지 지면 안 돼!"
휴대폰을 꺼내들어 카메라를 키고 코세이에게 가까이 들더니, 브이! 코로리도 브이 모양으로 손을 들면서, 코세이가 따라 브이를 그리는 걸 유도한다. 예쁘게 벚꽃 머리띠를 만들어준 쌍둥이를 사진으로 남기려는 것 같은데 아뿔싸! 코로리의 카메라는 셀카모드였다. 코세이가 브이를 해줘도 안 해줘도 찰칵 셔터음과 함께 사진은 찍힐테지만, 완전 공주님처럼 잘 나왔다! 하면서 보여주는 사진 속에는 코로리의 셀카만 있을 예정이다.
"그럼 악몽 선물할ー 청룡신님도 레고 밟는 꿈은 싫어하겠지?"
레고 밟는 꿈, 새끼발가락 찧는 꿈, 지퍼 고장나는 꿈, 유선 이어폰 엉키는 꿈, 화장실 갔다 나올려고 보니 휴지 없는 꿈, 냉장고에 넣어뒀던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으려고 봤더니 딸기만 사라진 꿈, 새 신발 신고 나왔는데 비 오는 꿈, 기타 등등이 코로리의 악몽 리스트에 있었다. 다행히 청룡신님이 악몽 꿀 일은 없겠다! 졸업하면 당장 신계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코세이가 데려갈 생각은 없다고 같이 있자고 해주었기 때문이다. 무슨 악몽을 꾸게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더니 금새 방글방글 웃는다. 링고아메가 더 달아진 거 같아ー.
"양귀비 만났어?"
양귀비를 재우는게 원래 코로리의 업! 거기에 코세이의 부탁이라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다만 멋드러진 오마모리는 만들 줄을 몰라서 고민이 깊어진다. 갖고 다니든 침대 맡에 두든 해야 효과가 있을테니!
안녕, 협회장님! 협회장님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이 편지는 전해질 일 없겠지만 미리 쓸 거야. 전해주겠다는 다짐이야! 언젠가 망망대해를 건너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예쁜 유리병에 담아서 바다에 보내면 받을 수 있을까?
아무튼! 나는 협회장님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편지 쓰는 이유는! 선물을 받았으니까 답례를 하고 싶은데, 누군지 몰라서 답례 못 하잖아. 그래서 감사 편지 적어야지ー 해서 예쁜 편지지 샀어. 협회장님 딸기 좋아해? 립밤에서 딸기향이 나서 딸기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편지지도 딸기 무늬야. 귀엽게 생긴 딸기한테 상처낼까봐 엄청 집중해서 편지 적고 있어. 한 장 밖에 안 샀단 말야! 아니면 내가 딸기를 좋아할 거 같았을까. 무슨 과일을 제일 좋아하는지는 협회장님이랑 만나게 되면 알려줄래!
근데 협회장님,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쉽지만 다음기회를' 이라고 했지. 선물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협회장님한테 계속 선물 받을 수 있어? 나 그러면 선물 마음에 안 든다고 백번도 말할 수 있어. 백번 정도 선물 받으면 협회장님의 정체, 탄로낼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하지만 백번이나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협회장님 마음이 산산조각나겠지! 깨진 유리에 다치면 아프니까 안 그럴게.
그러니까 나는 요즘 협회장님 덕분에 매일매일 딸기 먹는 기분이야! 고맙다고 말하고 싶으니까 열심히 협회장님 정체 알아내볼게, 협회장님도 정체 들킬 수 있게 힘내!
🍓코로리로부터!
/ 독백이라고 해도 되나?! 싶은 마니또가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하면 전할 수 없는 편지 (´∀`) 코로리의 가방 구성분에 딸기향 립밤이 추가 됐대~!
"네에, 만나서 반갑습니다... 밤의 머나먼 길잡이. 중개의 일 맡은 타에마누시라 하지만요, 인명으로 말하면 우스아카리 에니시. 부를 호칭 이제 생겼지?"
살갑지 않은 모습을 보면 역시나 길잡이는 밤에 잠드는 일조차 마음껏 못하는 모양이었다. 주행성의 학생과 어울려 지내려면 그것도 참으로 고생이다. 그나저나 신사도 그렇다 할 신도도 지니지 않은 신이라, 이것 참 신직의 신으로서 난감하다면 난감하다. 그나마 기록으로 조금이나마 흔적 남은 데에, 세상에 별 우러르지 않는 인간 없음으로 어깨 펴볼 수 있는 것이다. 타에마누시를 슬며시 미간 좁히게 하는 신, 이것 귀하다. 아, 지금은 조금 다른 이유로 좁힌 것 같지마는.
"그리고 JK는 감자칩까지도 사실 사치에 불과해. 먹지 않아도 좋다고. 오곡조차 없이 바람을 들이쉬고 이슬을 마시는 자야말로 이 시대의 리얼 JK. 알겠어? 알겠으면 대답."
장자의 소요유逍遥遊를 인용한 시점에서 이미 구시대의 JK마저 되기 틀렸지만 열렬한 자칭 JK는 자각도 없는 것 같았다... 하얀 손이 받은 도시락 뚜껑의 위에는 우메보시 쏙 들어간 솜씨 좋은 오니기리. 소용이 없게 된 감자칩은 한입에 넣고 우적거린 에니시는 뚱한 얼굴은 지운 채, 권태만이 남은 얼굴로 쌓은 과자 더미를 뒤적거리다가- 종이 상자를 집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거니 이것이라도 받도록 해."
볼 부풀렸다. 억지 부리는 JK답게! 무엇이라 하거나 밀어붙여 코세이 다리에 올리려 한 키노코노야마きのこの山. 노란 포장의 위에는 금세 또 다른 것이 얹혔다. 이번엔 타케노코노사토たけのこの里다...!
날이 좋다. 햇볕도 과하지 않은데다가 바람도 선선한 것이 일광욕 하기 딱 좋은 날씨라 할 수 있겠다. 마츠리는 끝이 났고 이제 벚꽃도 끝물에 가깝다. 그래도 벚꽃잎이 눈처럼 나부끼는 것은 나름 보기 좋은 광경이었으므로 나는 불만이 없다. 떨어져내린 꽃잎 대부분은 땅바닥에 도착해 이리저리 나뒹구는 한편 강가에 떨어진 꽃잎들은 융단처럼 수면을 덮엇다. 나는 온통 분홍색인 강가에 괜히 서서 얼쩡거린다. 몸을 쭈그리고 손을 뻗어 첨벙첨벙 물장난도 해본다. 사랑받는 물이란 게 여실하다. 그러니 이 땅에 뿌리 잡은 식물들도 죄다 탐스럽게 폈겠지.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다. 버려진 오리배 하나. 나는 다시 몸을 들어올려 저 다리 밑에 걸려 방치된 오리배를 바라본다. 마츠리때 한창 오리배를 운영하더니 무리에서 떨어져 이곳에 덩그라니 남아버린 모양이다. ...잘하면 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슬쩍 물결을 틀어 오리배를 내개 오게 하였다. 이 모든 일은 교묘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내 손을 닻삼아 배를 단단히 붙잡았다. 이제 같이 탈 사람만 고르면 되는데... 오, 저기 마침 다리 지나가는 고교생이 보인다. 교복으로 보아 내 또래인 것처럼 보이는데다가 인간이기 까지 하다. 오리배를 탈겸 겸사겸사 연애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괜찮아보인다.
"저기요-! 여기, 여기!"
나는 펄쩍펄쩍 뛰며 손을 흔들었다. 소리의 근원을 찾은 인간의 모습을 가만 본다. 사납게 생긴 것이 그 인간들의 말로는 '양아치'인가 싶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내가 각종 인간들의 서적-로맨스 소설, 만화 등등-으로 공부해본 바, 나쁜 남자가 또 사랑을 잘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양아치 속성이 붙은 남자들은 여자한테 관심이 없다면서 평범하다는 여주인공이랑 일주일 같이 지나면 사랑에 빠지더라.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되지만 세상사 요지경이라고 요즘 인간들은 다 이런가 싶다.
"잠시 내려와주실래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덧붙인다. 함께 오리배를 타자 했을 때 좋아할 것 같은 인상은 아닌지라 일단 내려오게 한 다음에 붙는 게 좋을 듯 하다.
"진짜 별 일 아닌데!"
#토오루주가 처음 왔으니까 괜히 부연설명을 줄줄할게... 원래 인간한정으로 청혼드립 치고 다니는 애라... 너무 진지하게 생각 안해도 괜찮다~~~ 그냥 결혼에 집착하는데 다 헛짚고 망하는 게 개그 설정이라 응응
이대로 꼼짝없이 머리에 벚꽃을 꽂고 집에 가게 생겼다. 안그래도 눈에 띄는 외모인데 벚꽃까지 꽂고 있으니 이달의 SNS 스타의 자리는 필시 내가 거머쥘 것이 분명해보인다. 하지만 동생의 태도가 완강하니 결국 묵묵히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애초부터 주변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으니 이제 와서 신경 쓰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 아니, 집에 갈때까지만 벚나무야. "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혹여 머리에 꽂아둔 벚꽃이 떨어질까 조심조심하긴 했지만 머리를 흔드는 반동에 끄트머리에 있던 벚꽃 하나가 떨어진다. 땅에 떨어지기 전에 솜씨 좋게 잡아챈 나는 원래 있던 자리에 꽃송이를 다시 꽂아두었다. 그 사이 리리가 핸드폰을 꺼내 나에게 가까이 가져오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자 나도 같이 브이자를 그리지만, 곧 내 손가락은 리리의 얼굴쪽으로 향한다. 분명 셀카일께 분명했으니 내 나름대로의 장난이다.
" 잘나왔네. 프로필 사진으로 하면 괜찮겠다. "
공주님처럼 잘 나왔다면서 뿌듯해하는 리리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며 말하고선 이어진 그녀의 말에 작은 웃음을 터뜨린다. 분명 레고 밟는 꿈은 청룡신님도 싫어하시겠지. 하지만 아직까지 즐거워하는 내 동생을 강제로 데리고 갈 생각은 없었다. 여기나 저기나 나한테는 따분하기 그지 없는 곳이지만 리리는 이곳을 더 좋아하니까.
" 양귀비 중에서도 고급 양귀비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동생님의 도움이 필요해. "
오른쪽 눈으로 장난스런 윙크를 날리며 대답한 나는 고민하는 동생의 모습에 그녀가 혹여 넘어질까 팔을 살짝 잡아준다. 부적 같은 형태로 만들어줄 생각인것 같지만 역시 디자인이 중요하겠지.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에 편의점이 눈에 들어온다. 우유도 사야하니까 겸사겸사 들어가서 뭐라도 사와야겠다는 생각에 리리를 향해 물었다.
그저 따분한 신계의 생활에 잠깐의 리프레쉬라도 될까 인간들의 눈앞에 나타났던 것뿐이다. 별이란 쉬이 볼 수 있으므로 가장 먼저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몇번 도와주고나니 몇몇의 기록에는 불명의 나그네 같은 것으로 기록이 되어있는듯 했다. 하지만 신사도, 신도도 없는 이름없는 신이라 기록들을 고칠 생각은 없다. 어차피 모든 인간들은 별 아래에 살아가니까.
" 아니, 이 시대의 JK는 케이크를 즐기고 파르페를 떠먹으니까요. 드셔보셨나요? "
실제로 우리 카페의 매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품목들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여학생들이 찾아오는 우리 카페는 커피보단 이런 디저트류의 매출이 높은 편이었다. 그 중에서도 케이크와 파르페의 인기는 압도적. 언제적 JK의 얘기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볼을 부풀리며 과자 상자를 건네주는 그녀의 눈을 말없이 마주보다 손가락을 들어 볼을 찔러보려하며 말했다.
" 나는 키노코노야마만 먹어요. "
당연히 초코과자니까 초코맛이 진한게 더 좋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둘 다 그렇게까지 땡기지는 않는데 ... 하지만 받은 것을 다시 돌려주는 것은 상대방이 무안할테니 이 죽순 친구만 다시 돌려준다.
" 알다시피 신명은 없는, 이자요이 코세이라고 합니다. "
다시 시선을 돌려서 도시락통 한구석에 잘 놓여있는 방울토마토를 하나 집어먹는다. 도시락통이 작아서 조금밖에 가져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하나 집어서 에니시가 들고 있는 도시락 뚜껑에 하나 올려준다. 어차피 다 먹지도 않고 다시 집으로 가져갈 것이 뻔하니까.
" 낮은 본디 저의 시간이 아니기에 행태에 대해서 조금의 양해를 부탁합니다. "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돌려 작게 하품을 한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점장님이 그랬었지. 간만에 저녁에 여유 시간이 생겼으니 좀 더 잘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꼬리 잡혔다! 코세이를 찍는 척한 코로리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놀리려고 했는데, 간파당했다. 사진 속에 브이가 둘이나 있다. 장난 실패! 안 그래도 벚나무는 집 갈 때까지만이라고 해서 별로 탐탁치 않았는데, 장난까지 실패해버리니 이죽삐죽거린다. 투덜거리고 싶은데 하필이면 코세이가 머리를 쓰다듬는 걸 막지 못했다!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초조하거나 불안할 때 머리카락을 빗는 버릇이 있는 코로리는 코세이에게 곧잘 머리 빗질을 부탁하고는 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기분 나빠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한 마디로 줄어들었다.
"여름이 너무 빨라ー"
공주님처럼 나왔다고 해서 세이가 기대하면, 사실 내 얘기였다고 하고 싶었는데! 쓰다듬의 위력은 강력했다!
"나는 착한 동생이니까!"
라인 프로필 사진을 토독 바꿔버린다. 보란듯이 뿌듯하게 보여주는 휴대폰 화면에는 방금 찍은 사진으로 새롭게 바꾼 코로리의 프로필이 띄워져 있다. 내가 간만에 세이 말 들어줬다!
"세이, 이제 세이도 공범이야."
범행 계획을 같이 공유했으니, 듣고 웃기만 한 코세이도 청룡신님한테 혼나면 같이 혼나야 한다는 것이다. 연좌제라고 하던가! 웃음을 코세이에게 방긋 웃어보이는게 매우 얄밉다. 방금 스스로 착한 동생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더욱이 더 얄밉다.
"고급이면,"
향이 짙다는 거잖아! 순식간에 폭삭 얼굴을 찡그린다. 링고아메를 또 요란스레 와삭와삭 깨물어버리고, 결국은 막대만 남았다. 우우, 못난 양귀비ー. 잠을 못 자는 아이에게 잠을 주는 건 익숙한 일이지만, 직접 하는게 아닌 이상 조심스럽다. 너무 많이, 긴 잠은 죽음과 다를게 없다고 믿기 때문에 힘을 담아 물건으로 선물하는 건 좋았지만 까다롭다는 것이다. 코로리는 편의점으로 먼저 뛰어가버린다. 세이가 사ー! 라고 외치며 달아난 코로리를 쫓아 편의점 안으로 들어와보면 과자를 한가득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우유는 없다!
/ 답레 올리고 가볼게 。゚(゚´ω`゚)゚。 벌써 늦은 오후잖아! 참치들 오늘 하루도 화이팅이라구
어깨를 툭툭치며 부르는 소리에 성의 없이 분홍빛 마카롱을 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단 것을 엄청 선호하지는 않는 그지만 운동이 끝난 뒤에 한입 베어 무니 그 맛이 나쁘지 않아 가끔 기분 전환 삼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한창 격하게 움직였으니 저쪽에서 뭔가 부르는 소리 같은 말을 듣기는 하였지만 크게 급한 일이 아니겠거니 싶어 묵묵부답으로 과자를 와그작 씹는데 집중한다.
“저기 왠 여자애가 너 부른다. 연애사업? 무시하는 거야?” “시끄러우니까 입 좀 다물어 봐.”
오오 역시 나쁜 남자가 대세인가. 놀리는 게 분명한 표정으로 빈정거리는 토모야마 놈의 뒷통수를 무덤덤하게 한 대 까주고 바로 짧은 킥을 날려 자신의 다리를 차려는 동작을 옆으로 움직여 피한다. 입안에 남은 과자를 우물거리면서 소리가 들린 강변을 쳐다본다.
알바도 잡상인도 아니고 진짜 여자애랑...왠 오리배? 밝은 금빛의 햇빛이 잔잔한 물결을 타고 수면에 흰빛 무늬를 그리고 연한 분홍빛 벚꽃이 하늘하늘 바람에 흩날리다 춤추듯 사뿐히 물 위에 자리를 잡는다. 푸른 하늘 아래 꽃잎이 내린 수면과 강가에서 작게 흔들리는 오리배. 한 폭의 청춘 영화 같은 풍경에 할 말을 잃은 토오루는 앞머리를 넘기면서 짧게 한숨을 쉬다 성큼성큼 걸어 강변으로 내려간다.
“내려왔다. 뭐.”
알바나 잡상인이면 그냥 갈 거다. 한쪽 바지에 손을 넣고서 자연스레 불량스러운 자세로 툭 말을 내뱉는다. 힐끗 곁눈질로 그리 거세지 않은 물살에 동동 제자리에서 움직이는 귀여운 오리배를 바라보고 설마하는 생각에 한 마디를 더한다.
“친구랑 약속이 취소되기라도 했냐? 저건 못 보던 배인데.”
어이 먼저 간다. 연애사업 잘 하라고. 토오루가 무슨 말을 더 해야할까 망설이는 사이 뒷통수를 감싸며 끙끙거리던 토모야마가 건수를 잡았다는 듯 기세등등하게 낄낄거리며 그가 대꾸할 사이도 없이 잽싸게 도망간다. 야, 이, 망할. 한 마디 욕설을 내뱉으려다 한쪽 손을 찡그린 이마에 짚으며 입술을 씹다가. 마지못해 “하, 원래 저런 놈이야. 신경 쓰지 마.” 라 공연히 말을 더한다.
날이 좋다. 봄날은 화창하고, 아침 볕이 유달리 따스하다. 그가 학교에 도착한 것은 제법 이른 시간이었다. 잠이 없으니 일찍 학교에 오게 되기 때문이다. 조용한 학교는 감회가 새롭다. 조용한 이유만 있을까? 마니또를 위한 선물을 넣고 오는 길이라면 더욱 감회가 새로운 법이다. 오늘도 누군가를 위해 네 베풀었고, 그 베풂이 어떻게 돌아올지 그가 달리 기대하지는 않지만, 지켜보는 과정이 즐겁기 마련이었다. 다만 그가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면, 그가 누군가의 마니또이듯 누군가도 그의 마니또라는 사실이다.
그는 자리에 앉았다. 창가 자리는 아침부터 화창한 날씨 때문에 의자가 익어 따스하다. 조금 더운 감이 있는 것 같아 블라인드를 내리고, 고개를 내렸을 적 평소와 다른 것이 눈에 밟혔다. 깨끗한 책상 위에 못 보던 것이 있어, 그는 가장 먼저 편지로 추정되는 것을 집어 올렸다.
오리박사.
처음 보는 이름이다. 그는 고개를 내렸다. 편지에 적혀있는 선물의 포장을 뜯어 손에 쥐어 보니, 부드러운 털 촉감과 함께 겉면부터 쫀쫀한 느낌이 손에 잘 맞는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주무르는 용도라 적혀있으나 중독성이 있어 계속 주무르게 된다. 편지를 내려놓고 다른 편지를 읽을 때도 손은 멈추지 않는다. 블라인드 틈새 햇빛이 유리병에 흰 빛을 그리고, 그림자는 하늘색 꽃잎의 빛을 투과한다. 투명한 그림자를 바라보며 편지를 읽을 적, 그는 작게 웃으며 말랑말랑한 스트레스볼을 꾹꾹 쥐었다. 공물이라기엔 선물에 가까운 친의. 볼 수 있는 것을 주니 감지덕지요, 봄 오래 간직할 수 있으니 기쁠 따름이다.
"예,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닿지는 않으나 대답이 빈 교실에 내려앉는다. 자리에 앉아 한참이고 꽃을 바라보니, 오늘 하루는 필히 근사할 것이다.
오호라. 가만 보니 인간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나는 실로 상관이 없어서, 이곳에 세명 낑겨 타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그림이 조금 이상하긴 하겠다만야 원래 그렇게 서로 붙어서 출렁거리고 있으면 없던 사랑의 감정도 생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들어는 보았나. 흔들... 오리 효과.
"와-! 내려와 주셨네요!"
나는 그게 기뻐서 마구 박수를 쳐주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한 명이 불연듯 이상한 말을 하며 떠나는 것이 아닌가. 그 인간이 남긴 말이 기묘한지라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기억 속에 세겨두기로 했다. 연애 사업 잘하라니. 정황상 나에게 한 말은 아닌데 참으로 오묘하다. 나에게는 덕담과도 같은 말이였다. 좋아. 느낌이 좋다. 이렇게 친구도 소개받고 나중에는 부모님에게도...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건 아니고요. 마침 발견했는데 같이 탈 사람 없나 살펴보고 있었어요."
나는 입으로 짜잔 소리를 내며 오리배를 가리켰다. "아무래도 마츠리 기간에 운영하다 두고 갔나봐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수하기 귀찮았나보죠." 나는 나의 추측을 그에게 늘여놓았다. 일단 겉으로 보기엔 문제가 없고 버려진지 얼마 되지 않아 더럽지도 않았다. 나는 내 앞 인간의 교복 자락을 꽉 쥐고 붙들었다.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실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래서 그런데 같이 타주실래요? 저 혼자 발길질하기에는 너무 버거워서요."
나는 내 힘 없는 다리를 강조하기 위해 다리를 올렸다. 과하게 마른 편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길다란 대신 얇은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나는 다리를 사용하는 것에 미숙한 편이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미 희미할대로 희미한 양심이었지만, 아무튼 거짓으로 죄책감 생길 일은 없단 소리였다. 나는 햇볕이 내리쬐는 것은 신경쓰지 않고 한껏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싫으시면 뭐, 괜찮아요. 저 혼자 오리배타고 저 혼자 밥을 먹고 저 혼자 영화를 보고 저 혼자 노래하다가 루저 외톨이되는 것 말고 큰 일 있나요."
그리 말하며 나는 교복을 잡은 손을 꽉 쥐었다. 지금 보니 맹금류의 발가락처럼 억세보이기도 한다.
실컷 장난이나 치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되니 이죽거리는 표정이 된다. 살아온 기간이 손가락 하나에 100년으로 잡아도 못 샐 정도인데 쉽사리 당해줄 내가 아니다. 물론 당해줄때도 있고 나도 예상못한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 그저 귀여운 여동생이 하는 일이니까 대수롭지 않게 넘길뿐이다. 어차피 이 표정도 내가 머리 몇번 쓰다듬어주자 풀어지는 것을 보면 결국이 장난이 치고 싶었던거다.
" 확실히 낮엔 덥다고 느낄만큼 여름이 다가오긴 했네. 이번 여름엔 거실에서 에어컨 틀고 자야겠다. "
주로 자는 시간이 낮인 우리 쌍둥이는 덕분에 태양의 은총을 한껏 받으며 잘때가 많다. 그래서 은총에 못이겨 잠에서 깨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그런 불상사는 방지하기 위해서 에어컨이 설치 되어있는 거실에서 주로 지낼 생각이었다. 에어컨 틀어두고 거실 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잠들면 ... 배탈나겠지?
" 착한 동생인데 오빠를 자연스럽게 범죄에 끌어들이는거야? "
라인 프로필을 바꿨다고 자랑하면서도 나도 공범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웃는게 참 내 동생답다. 하지만 어째선지 밉지는 않아서 웃고 있던 표정 그대로 고개를 끄덕인다.
"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까. 흘려들어도 괜찮아. "
잠의 신이니만큼 자칫하면 영원히 잠에 빠지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조심스럽게 부탁한 것이고, 리리가 무리라고 한다면 그걸로 수긍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이쪽에 대해서는 나보다 내 동생이 더 잘 알고 있으니까. 편의점 얘기가 나오자마자 와다다 달려간 리리는 내가 사라는 말과 함께 쪼르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 그거의 반만 사자. 너무 많아. "
먹고싶은걸 사라고 하면 꼭 저렇게 한아름 안아들고 있더라. 신선식품이 있는 쪽으로 가서 우유 한병을 집어들며 말했다. 나름 저렇게 들고 있는게 귀여워서 다 사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한달 생활비에는 제한이 있으니까 ... 먹는 것에 아끼지 않는다고 해도 쓸 수 있는 생활비 안쪽에서 낭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465 파라! 맛있는 채소긴 하죠! >>466 그렇군요, 아미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467 카레를 좋아한다길래 당근 같은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 아삭아삭한 양상추 종류가 채소로썬 더 매력 넘치긴 하죠! 만약 오이 샐러드를 아키라에게 먹인다면..? >>468 편식까진 아니지만 좋아하진 않는군요! >>469 가지라! 약간 특이한 것 같기도 한데요? 꽃의 신이라면 꽃을 먹..기도 하나요?
같이 탈 사람을 찾고 있었다고? 지금이 무슨 90년대도 아니고 즉석으로 저런 걸 같이 탈 사람을 찾는다고? 예상을 벗어나다 못해 토오루의 보통의 요즘 여자아이들에 대한 관념에서 180도 떨어진 답변에 한쪽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며 자연스럽게 실소가 나온다.
“아, 이봐. 난 지금 한창 운동하고 온 참이라서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게...”
다급하게 부르길래 뭔가 했더니만 친구를 구하는 거였나. 성가시고 귀찮은 마음에 쓰읍 숨을 들이키며 비뚤어진 입매를 바로 하고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이만 가보겠다는 의사를 말하기가 무섭게 옷자락을 붙잡혔다.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무방비한 상태로 붙들려 엉겁결에 상체를 휘청거리다가 중심을 잡으려고 움직이는 바람에 두 걸음 더 내려왔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다 훅 거리가 줄어들고 얼굴이 맞대어졌다 해도 아주 틀리다고 할 수 없는 자세를 하게 된 그는 당황했는지 눈매를 조금 일그러뜨린다.
침착하자. 옛날 버릇 그대로 손이 먼저 나가 떨쳐내려는 것을 참으며 되새긴다. 얘는 그때 그 개자식들이 아니고 그냥 친구가 없어서 조금 이상해진 여자애일 뿐이다. 또 문제를 일으켰다간 다시 코트 밖으로 나가게 될지도 몰라. 게다가 왠 여자애가 손힘이 이렇게 강하지. 무슨 매 발톱이냐? 하, 나 참. 귀찮게. 잠시 일그러진 얼굴에 황당함 이어서 어이없음의 감상이 차례로 떠오르고 이내 체념의 눈빛이 푸른 동공에 스친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긴말들에 질린 표정으로 말한다.
“그래 그래. 같이 타 줄테니까 이거 좀 놓아주고 장광설은 그만해. 한번 탄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하체도 허약하면서 무슨 낡은 오리배냐. 실없기는. 소녀의 말에 제 뒷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고 약간의 짜증을 담은 투덜거림을 내뱉는다. 그나마 누그러진 기색이 보이자 소녀의 손을 잡아 떼어내 편하게 자세를 잡고 다시 그러쥐며 강하지 않은 힘으로 배 쪽으로 당긴다.
“야 타. 다리가 그렇다고 하니 수영은 못하겠고. 일단 무슨 일이 생기면 다 네 책임이야.”
"그래, 그래. 스즈쨩 재능있는걸. 아까 방송을 본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도 있을테니 다시 소개할게. 오늘 만나서 스키야키 같이 먹어주기로 한 스즈쨩이라구. 쪼~끔 얼굴이 엉방이지만 귀여우니까 못 본 척 해줘☆ 만나서 반갑고 잘 부탁한다예요-"
고기 위로 따로 담아둔 청주와 다시간장을 흩뿌린다. 달콤한 고기 냄새가 퍼지며, 주린 배를 꼬드겨온다.
"으음, 여기서부터는 아무 말이나 하면서 먹어주면 된다구. 기왕이면 그냥 맛있어~ 하는 것보단 우와, 이 소고기 뭐야, 마블링 슷게~! 역시 북해도산 ㅇㅇ브랜드의 고기는 다르네! 하는 식으로 해주면- 운이 좋다면 시이한테 광고가 들어올지도. 하여튼 풍부하게 말해주면 줄수록 좋다는 말씀. 아- 그거보다 엄청 배고파졌어. 카메라도 신경쓰지 못하고 먹어버릴지두."
하지만 꾹 참고, 고기를 한쪽으로 올려둔 다음 골고루 버섯과 파, 두부, 곤약을 올리고 가운데에 보기좋게 쑥갓을 올려둔다. 아아, 전체적으로 갈색이 도는 냄비 위에 붉은색이 미미하게 도는 고기, 그리고 아직 초록기가 죽지 않은 야채들이 올라가니 이성이 혼미해지는 것 같아. 그렇지만 참는다. 참고 참다보면 더 기분좋아지는 것이 미식이란 녀석이니까. 뚜껑을 덮으면 뇌를 주물러대는 냄새도 냄비 안에 갇혀버린다.
그러면 이제 날계란을 휘저어 고기를 찍어먹을 계란물을 만들 차례다. 시이는 미리 내어놓은 계란을 스즈에게 건네고는 자신의 것을 정확히 15바퀴 휘젓는다. 나름의 규칙인지.
"그러고보니 스즈쨩은 스키야키 다 먹고 나면 죽으로 해먹는 타입? 아니면 우동으로 해먹는 타입? 나는 보통 우동이지만- 스즈쨩이 죽이 좋다면 죽도 좋아."
그리고 잠시 귓가에 가까이 가서 속삭였다.
"그치만 우동으로 하는 게 좋을 거야. 스즈쨩은 불량해보이는 인상인데, 죽집까지 드나든다는 느낌이 되면 곤란하잖아."
스즈도 조금은 알 만한 이야기일지도. 호스트들은 영업이 끝나고 죽집에 곧잘 들러 끼니를 때운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에게 따로 연락하여 같이 가는 경우도 많다고들 하지. 시이는 스즈를 걱정해서 말해주는 듯 했다. 아마도.
1.코세이에게 CDP를 선물합니다. 꽤 오래된 모델처럼 보이지만, 새 것처럼 작동하며 흠집 하나 없이 말끔합니다. =>제우스
2.아미카에게 소형 탁상용 선풍기와 [곧 여름이니까] 메세지를 전달 =>12시 30분
3.To. 테츠야
저번에 준 주사위는 쓸모가 있었을까? 다른 주사위들은 많이 가지고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100면체 주사위를 선물했는데 맘에 들었을까 모르겠네. 이번엔 TRPG를 즐기면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간식들을 준비해봤어.
[잘 만들어진 수제 쿠키들과 작은 병에 담긴 음료수 몇병이 바구니 안에 넣어져 놓여있다.]
- 몰?루 가 =>몰?루
4.후미카에게 수상한 종이뭉치를 선물. 둥글게 구겨진 하늘색 편지지에는 연필로 쓴 하이쿠가 적혀 있습니다.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로군요. 붉은 구슬을 감싸려 편지를 구긴 모양입니다. 구슬은 불투명하지만 분명 영롱합니다. 가넷처럼 생겼군요. 「吹く風の 中を魚飛ぶ 御祓かな」 부는 바람 속 물고기 날아가는 액막이 행사 *(바쇼 하이쿠 선집, 류시화 번역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음, 어쩌면 액막이 부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깨트리지 않게 주의만 한다면 새똥을 맞거나 은행을 밟을 정도의 액운은 없겠군요. 후미카에게 소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깨트리게 된다면, 글쎄요. 주변에 있는 인간들이 독감에 걸리는 정도가 아닐까요? =>주사기
5.오늘도, 마음을 담아 토와에게!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안녕! 오늘은 바람이 조금 불안한 하루야!
토톳치는 오늘 하루 어땠어?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혹시라도, 저 너머 바람처럼 불안했을까? 우리는 쓸데없는 고민이 많은 나이잖아.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어쩌지? 시험 망쳐버리면 어쩌지? 어디로 가야 할까? 이 길이 맞는 걸까? 내게 맞는 길일까?
그렇지만, 토톳치에게는 바깥의 불안한 바람처럼, 마음이 불안하지는 않은 하루일 거야! 그야 지금 창밖을 보면 마법이 일어날 거니까! 앗- 혹시 창밖, 봤어? 그렇다면 야마다찌의 특제 '예쁜 광경을 보면서 스트레칭 시키기'는 성공이야!
혹시 속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자세히 봐봐! 바람이 아무리 불안하다 해도 남은 벚꽃잎이 예쁘게 비처럼 내려주고 있잖아! 야마다찌, 고작 고등학생이지만 인생에 불안한 바람이 불어도 내가 만족하면 된다 생각해! 조금 어른스러우려나? 아니면 중2병? 앗, 중2병은 조금 싫은걸..!(;´д`)ゞ 그럴 나이 지나버렸으니까!
그러니까- 토톳치가 불안한 건, 이 시기에 아주 당연한 거라 생각하면 좋겠어. 우린 아직 어리잖아? 그러니까 부담은 잠깐 내려두는 거야, 알겠지?
오늘도 힘내자!
널 늘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비밀친구 야마다!] 🍀야마다는 오늘도 토와를 위한 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을 사물함에 넣었다. 봄 테마 스노우볼 키링이다. 흔들면 분홍색 눈꽃이 하늘하늘, 엄지만한 작은 세계에 가득 내린다.🍀 =>야마다
6.스즈에게.
공들였지만 엉망인 스즈의 그림.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그렸다. 여러번 지우고 다시 그린 티가 난다.
"열심히 널 그려봤는데 쉽지 않네... 내일은 더 나은 걸 준비할게. 꼭이야." =>푸딩
7.봄비 나려 꽃잎 모두 빗방울 되기 전에, 가장 탐스러이 핀 한 가지 내어 곁에 보냅니다. 부디 매일이 봄날 같으시길.
길쭉한 원통형 유리병에 벚꽃이 활짝 핀 가지가 담긴 하바리움을 후유키에게. ( https://i.postimg.cc/Pr2vZt3P/A001728445-01-1.jpg ) =>카시아리
8.[이거 먹고 인상 좀 피고 당당하게 다녀. - Gamer ] 거칠게 휘갈겨 쓴 쪽지가 시니카의 책상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그 옆에 쪽지와는 대비되는, 리본으로 단정하고 예쁘게 포장된 작은 초콜릿 상자가 놓여있네요. =>Gamer
9.에니시에게 한 병의 사탕을 줍니다. 아주 새콤하고 새콤한 매실맛 사탕
메세지 -번쩍 정신이 드는 사탕. 나른할 때 특효약 =>금록
10.츠무기에게 도토리 한 알. 그리고 연한 분홍색의 아주 작은 상자 하나. 상자 위에는 푸른 나뭇잎 모양 포스트잇이 붙어있습니다. 적혀있는 내용은 'め'. 뚜껑을 열면 상자 안에는 검은 색의 작은 링 피어싱 하나가 들어있습니다. =>도토리씨
11.시이에게 히요코 만쥬. 만쥬가 잔뜩 담긴 박스는 노란색과 흰색 디자인인데.. 3개가 3층으로 쌓여있어요.. 비쌌겠다. [ 맛있어요. 그리고 귀엽다고 해요. 토쨩으로부터. ] =>토쨩
12.To. 테츠야
사쿠라마츠리가 끝나니 낮의 기온도 슬슬 올라가는 모양이야. 아침과 밤은 선선하지만 낮이 유난히 더워서 다들 옷 선택에 난색을 표하고 있더라고. 그렇다고 반팔을 입을 수는 없으니 낮에 좀 더 시원하게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선물을 보낼께. 한여름에도 도움이 되는 선물일꺼야.
[테츠야의 책상 위에 휴대용 선풍기가 놓여있고 그 위에 쪽지가 곱게 접혀져서 놓여있다.] =>몰?루
13.오토하 쇼님께
늦봄, 문안 인사 드립니다.
언제였는지 모를 추위는 떠나고 완연한 봄을 넘어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작금, 오토하님의 삶에 조금이라도 평온이 깃들기를 빌고 있습니다.
오토하님은 건강 하십니까. 겨우 하루를 보내고 이런 이야기를 보내는 것은 다소 무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생의 반은 우연으로 또 나머지 반은 신의 장난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러한 시기 몸 건강에는 부디 조심하시길 깊이 바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언젠가는 이런 시기에도 익숙해져 오래 살고 나면 삶을 지루하게 느끼게 되는 가를 일순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좋은 쪽으로든 좋지 않은 쪽으로든 앞으로도 백여년 정도는 질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을 담아 키운 것에는 혼이 깃든다 합니다. 어림잡아 수십년, 고향에 심어두고 온 수목이 성장하여 언젠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면 그때에 아직 세상을 모르는 어린 아이들에게 인생이라는 것은 의외로 질리지 않는 일의 연속이라, 그리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도 따듯한 바람이 불기를 빌며
-전신주 추신. 비파 열매의 설탕 절임을 동봉하였습니다. 시기가 좋지 않아 생과를 보내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전신주
14.코세이에게 CD 1장. 기성 앨범으로 나온 게 아니라 공CD를 사서 직접 구운 것 같다. CD를 굽는다는 표현도 새삼스레 오랜만이다. 먼젓번에 CDP를 줬던 건 이것 때문이었을까. 플레이해 보면 여름을 생각나게 하는 노래가 나온다. 그러고 보면, 이제 어느덧 여름이 코앞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JUrkOD3icmc =>제우스
15.전국방콕협회장이 코로리씨에게, 블루베리 잼 1kg 분량 3개.
비밀스레 누군가에게 선물을 보내는 이 '마니또' 는 마치 짝사랑과 같아서 일방적이면서도 독선적이라 선물을 보내며 들뜨기도 하지만 침울한 마음이 가슴을 두드리곤 합니다. 이 호의가 쓸데없는게 아닐지, 더 나아가 악의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지 걱정하게되는 이것이야말로 일방적인 사랑.. 짝사랑이 아닐지요.
쓸데없이 많이 적었습니다만 오늘도 일방적인 선물을 당신에게 보냅니다. 아침의 한끼를 위해 상을 차리는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고마운 물건이지요. 아침을 먹는지 안 먹는지 모르겠지만 안 먹는다면 어쩔 수 없지요. 밤에라도 드시도록 하십시오. =>전국방콕협회장
16.오리박사가 히키에게 작은 부적 목걸이를 보냅니다.
꾹꾹 눌러쓴 작은 편지 동봉
「 안녕하세요. 오리박사입니다. 오늘은 부적 목걸이에요. 제 물건을 보고 있었는데 예뻐서 같이 샀답니다. 실제로 신선(두 줄로 그은 자국) 신성한 기운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음이 중요한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안전과 무운을 담았어요. 당신은 저를 모르겠고 당신이 이걸 받는 모습을 제가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예쁘게 받아주셨으면해요. 이 작은 부적에 제 마음을 담았습니다. 」 =>오리박사
17.안녕 어제 선물은 어땠어? 맘에 들었을라나 모르겠네. 오늘 어떻게 지냈어? 나는 오늘 문득 창 밖을 보니 꽃이 너무 예쁘게 펴 있어서 놀러 나가고 싶은거 참느라 혼났어. 꽃은 금방 져버려서 아쉽지만 카메라 안에 순간을 담아보는거 어때? (역에서 산 듯한 일회용 카메라가 동봉되어 있다) =>????????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18.토오루의 책상 위에 이번에는 500ml 체리맛 음료수가 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쪽지가 붙여져 있군요. '내 정체는 무엇일까? 일단 빗자루를 들고 다닌 적 있고..약간 돌려서 생각해 보는게 좋을거야. 촉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더 클리너
19.미즈미에게 동글동글한 토끼 모양 떡 12개입 한 박스를. https://postimg.cc/LqgbBRZq
[상상해봐. 향긋한 차를 끓여 이 동글동글한 떡과 함께 상(床) 위에 올려놓고, 너와 내가 마주 앉아 봄노래를 듣는 것을.] =>헤세
곰인형에게 묻는다. 머리가 작고, 얼굴도 그만큼 작아서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왜 나한테 이런 걸 주는 거야?"
물론 학생끼리의 선물인걸, 은으로 만들어 잔뜩 치장한 비녀나 빗을 바란 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걸 받으면 가슴이 거북하다. 시이는 죽이는 데엔 재능이 있었지만, 살리는 것은 영 젬병이니까. 키우기 쉽대도, 마리모님의 밥을 챙겨주느라 쩔쩔매는 취미는 없다. 그보다 기껏 세팅한 '여자아이 방'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리는걸. 시이는 곤란하다고 생각하며, 책상 구석에 놓인 마리모를 바라보았다. 금붕어님처럼 창가에 놓으면 되려나 싶었더니 또 그건 안 된댄다. 강렬한 빛에 말라버린다나. 정말, 숙제를 잔뜩 받아든 기분이 되었다.
"고맙지 않아요―다, 흥."
이층침대에 푹 누운 시이는 소두곰인형을 껴안곤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외로워보이는 것도 문제야. 요즘 애들이 약해빠져가지구 말야, 나도 그렇게 되어버리잖아."
어휴, 나쁜 녀석 같으니. - 원래는 낮에 올리려구 했는데... 늦었지 언제나 고마워 이번 선물도 정말 귀엽고 각별해 토쨩 사랑해
"헤에, 혈액형 A형인가- 조금 어울릴지두. 근데 A형은 상냥하고 소심한데 테니스군은 전혀 그렇지 않단 인상. AB형인데 잘못 기억하구 있는 거 아니야?"
나왔다 혈액형론.
"잠깐, 근데 여자아이가 체중까지 공개했는데 본인은 모른다고 하는 건 뭐야! 체력검사 때 기록이라도 공개하는 게 맞잖아. 그게 아니라면 근처 카페에서 포인트카드 얼마나 적립했는지라도 알려줘야지. 새로운 대화거리가 전혀 없잖아- 맞선이었으면 시이는 여기서 돌아가버렸을 거야. 주선해준 녀석 가만 안두겠다고 하면서."
휴우,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면서 내쉬는 한숨. 들으라는 듯 하다. 심지어 고개를 저을 때마다 투사이드 업-언젯적 유행이냐고-이 흔들려 묘하게 열받는다.
"텟쨩, 내가 간단하게 테스트해본 결과, 텟쨩의 커뮤력은 10점이야. 참고로 만점은 1000점이구. 아아, 텟쨩, TRPG는 테이블 위에서 롤플레잉하는 게임이잖아? 롤-플레잉. 조금 더 풍부하게 이야기해야지! MBTI도 알것같아. INTJ 아니면 ISTJ일걸. 정말, 시이같은 ENTJ랑은 잘 안 맞는 거예요. 커뮤력 증진프로젝트를 시행하지 않으면 곤란할걸."
정말 풍부하게 이야기한다. 가독성문제로 끊어주는 서술 텍스트가 없었다면 한 단락 내내 말하고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익명의 사람에게서의 편지와 선물이 도착했다. 주사위와 적당히 먹을 간식들. 그리고 이번에는 선풍기. 사실, 처음 받았던 주사위는 너무나도 큰 부담이었지만 이번에 받은 선풍기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여전히 부담스러운건 마찬가지였다.
"적당히 힘내라고 에너지드링크나 보내면 좋을텐데."
하루마다 증가하는 부담과 감사함은 오늘로 세번째였다. 이 선물을 보내는 사람은 도대체 나한테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바라는걸까. 그걸 알고싶었지만 그 상대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으니 눈 앞이 깜깜하기만 했다. 설령 그 상대를 안다고 한들 그 이유를 물을 용기도 없건만.
"주사위를 굴려주세요."
몇번이고, 몇번이고 다른사람에게 해온 말을 자신에게 말하고, 선물받은 그 주사위를 굴렸다.
.dice 1 100. = 88
의미를 정하지 않은 주사위는 그저 숫자를 제시했고 제시된 숫자로 그가 무언가를 얻을건 없었다. 정체모를 상냥함은 초조함을 불러온다. 아니, 불러오는게 아니라 초조감을 구태여 얻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을. 하나의 수치로 보여준다면 그것만큼 편하고 안심되는 일은 없을텐데. 주사위를 집어넣고 추리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는 자신이라면 분명, 상대방을 유추해낼 수 있을거라 자신을 안심시키며 감사함과 미안함을 곱씹으며, 보내진 간식을 쓴 녹차와 같이 먹었다.
오오쿠에서는 많은 생명이 피고 지었으나, 그것이 시이의 손을 거치는 방향은 한 방향 뿐이었다. 죽음. 그러나 거기에 책임은 없었다. 책임이 있더라면 시이가 쾌락신일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시이는 후미카의 사려깊은 말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다. 그녀에게 책임이랄 게 있다면 오오쿠 뿐이었다. 그러나 오스즈로카의 방울 하나 남지 않고 불탄 지금, 시이가 책임질 것은 없다.
시이가 그렇게 만들어진 이상, 이해를 하려거든 더 깊이 이야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긴교스쿠이라는 쾌락을 앞에 두고 집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것도 후미카의 손을 잡고 해보라는 신선한 도전이면 말이다.
"에, 뭐야. 그거 완전 재밌어보여- 좋아, 그럼 미카쨩 손을 빌려서 해볼까나, 나, 긴장해서 손 축축하구 그래도 싫어하면 안 돼..."
무슨 미소녀 지하아이돌 악수회 온 오타쿠냐고. 그렇게 잡아온 시이의 손은 따듯했고, 궂은 일 하나 해보지 않은 것처럼 보드라웠다. 그리고 본인의 말과는 달리 전혀 축축하지 않았다.
"뭔가 앵글이 안 나오는데- 조금만 더 붙어볼까나. 얍!"
하고는, 뒤에서 껴안아온다. 자기보다 작은 아이의 어깨에 턱을 올리곤 어느 놈을 잡을까 고민한다. 무게는 기묘하게도 없었다. 그러나 옆덜미에 닿는 머리카락은 분명 간지러워, 유령처럼 느껴지긴 어려웠다. 바삐 움직이는 붕어를 따라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머리 끝이 스쳐온다. 그리고 시이는, 지느러미가 가장 온전하고 꼬리깃이 예쁜 녀석들로 골라 낚기 시작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쌓이고있는 분홍색의 쓰레기를 아무 불평없이 치우게 되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걸까. 당연히 상대방은 그런걸 신경쓰고 있는 눈치는 아니었다.
"난 포인트카드를 가져 본 적이 없어."
물론 상대방이 내가 포인트를 얼마나 쌓았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는건 알고있었지만 그저 심술로 말을 하고 끊임없이 말하는 그녀를 조금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마치 게임의 프롤로그에서 쓸데없이 게임정보를 열심히 알려주는 npc 캐릭터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하면 거기에서 도와준다는 말을 꺼내는걸까.
"그거, 요즘 밀고있나보구나.."
'자애로운' 이라는 단어를 은근히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걸 보니 많이 자신이 있나봐? 오히려 내가 너보다 커뮤력ㅡ 이 높다는걸 보여줘야겠... 아니다."
잘 생각해보니 저렇게 말이 많은 사람을 이길 자신은 없었다. 저번에는 야생무녀한테서 츤데레를 전수받고 오늘은 자칭 자애로운 쾌락신에게서 커뮤력증진 프로젝트를 강요받고 있었다.
"혹시 저기 하늘 위에서 아이돌육성 게임이라도 하고있는건가?"
육성한 아이돌이 남성캐릭터인데 츤데레로 육성중이며 커뮤력이 1점이라니 분명 지금 플레이하고있는 플레이어는 그냥 화면도 안 보고 오로지 터치만 하고있는게 틀림없다.
"흐으음.." 아미카는 선물을 바라보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 선물은 누가 준걸까아.." 마치 탐정이 된 것처럼 아미카는 생각했다. 일단 필요해보이는 선물을 준다는거라면, 그건 아마 효율적으로 생각하거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 같아보였지만 메세지는 무언가 컴퓨터와 가까워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모르겠네에~!" 머리를 쓰니 왠지 더워져서 아미카는 선물 받은 선풍기를 킨 뒤 선물 받은 배개를 베고 책상 위에 엎드렸다. 시원했다.
"아이돌 육성게임이라면 분명 파란색 테마에다가 '보통감'을 컨셉으로 가지고 미는 캐릭터일텐데- 텟쨩은 남자일 테니까 여성향 게임이겠지. 그러면 신장으로 미루어봐서 반바지를 기본으로 하는 스쿨룩의 유닛복을 입은 컨셉일 거야. 하지만 그런 건 보통 사랑스러움이라던가, 이런 쇼타 컨셉 싫어요 하는 앙칼진 컨셉일텐데 텟쨩은 완전히 후자네. 그런 캐릭터는 완전 기인과 접점이 생겨서 그나마 덜 이상한 아이돌 산업을 받아들이는 것이 캐릭터 스토리의 발단이야."
시이는 테츠야를 위 아래로 훑어보며 검지로 본인의 턱을 톡톡 두드렸다. 프로듀서의 시선이다. 하기야 쾌락신인걸. 서브컬쳐에 빠삭한데다 그 캐릭터 조형을 밀어붙이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그러니 쾌락신이라는 과감한 네임으로 본인의 캐릭터를 밀어붙이는 거겠고.
시이는 얼마없는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다가, 활짝 웃었다.
"나 커터칼이랑 반짇고리 있는데. 반바지로 만들어줄 수도 있어. 제모는 면도기가 당장 없어서 어렵지만 괜찮아. 멀리서 찍으면 잘 티나지도 않거든."
심지어 반바지에 스쿨룩이라니 너무나도 끔찍하다. 167cm 정도면 키가 작은건 아니잖아. 어째서 쇼타라고 하는건데. 저 녀석의 말에 긍정하고싶지는 않지만 확실히 쇼타는 싫다. 그리고 뭘 그렇게 훑어보는거야. 이미 저 머리속에는 반바지를 입고있는 내 모습이 비치고있는걸까. 정말 끔찍한 상상이었다.
거절의 말이 나온 것 같지만 나는 포기 하지 않는다. 원래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때, 내가 붙잡은 탓에 남자 인간이 내게 훅 다가왔다. 힘조절을 해야한다는 것이 인간으로 살아온 경험이 짧으니 쉽지 않다. 물론 지금은 그게 내게 도움이 된 경우다. [오~ 어쩐지 위험한 분위기. 좀 더 분발합시다.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매일 내가 사준 메론빵을 먹고 싶다고 할지도?] 정도가 지금 상황의 평가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진도가 꽤 빠른 편에 속한다. 이러다 학교에 있는 신들중 내가 제일 먼저 결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요-! 약속한 거예요?"
나는 남자를 순순히 놓아주고 빙글 돌아 오리배를 향했다. 저렇게 투덜거리면서 배도 당겨주고 타라고 해주고 때리지도 않고 칼부림하지도 않고 침 찍찍 뱉지 않고... (중략) ...하지도 않는 걸 보아서는 겉모습과 달리 제법 친절한 종류의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나는 남자의 경고에 "하이-하이-"거리며 대충 대답해주었다. 오리배에 올라타는 순간까지도 별로 걱정은 들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땅 위보다 물 위에서가 더 편했... 잠깐만, 생각해보니 나는 인간 상태로 수영을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이 꼬인 다리로 어떻게 수영을 치지? 나는 잠시 물에 손을 뻗어 깊이를 가늠해본다. 아주 얕지는 않다. 만약 풍덩 빠져서 인간의 모습으로 내가 죽는다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간쪽은 이야기가 다르다. 나는 수면 밑으로 눈을 굴리며 넌지시 물었다.
"그러면 그쪽은요-? 혹시 수영할 줄 아세요?"
나는 강물을 향해 뻗었던 손을 갈무리하고 배꼽 위에 올려놓았다. 오리배는 그다지 넓지 못했다. 다리 관절 부분이 툭 튀어나와서 자꾸 오리 배의 뼈대 부분에 깔짝깔짝 닿는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아무렴 어떠냐.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물끄러미 고개를 돌려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가 올라타자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기우뚱거리며 끼익끼익 소리를 냈는데, 새소리 같고 제법 운치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무엇보다 벚꽃잎이 물결따라 따라 붙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것도 지켜보기 재미있었다. 그런데 오리배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틀어 남자를 재촉한다.
"자, 자. 저희 열심히 해봐요. 쭈욱 건너서 저기 강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하는 거예요. 아자아자 화이팅! 만반잘부!"
만반잘부는 최근 스즈, 애칭으로는 스-쨩이라는 친구에게서 배운 단어인데 입에 착착 붙고 어감도 독특해서 내가 좋아하는 말이었다. 다만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자꾸 때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쓰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나는 슬슬 다리를 놀려 우리배를 움직였다. 굳이 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치만, 세상이 아이돌게임이라면 나는 SSR급 프로듀서라구. 너무 무서워하지마. 무서운 건 한 순간이구, 그 이후부터는 이게... 나?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게...나라구? 할 수 있거든― 라고 하고 싶은데... 텟쨩 너무 무서워하는 거 아니야? 난 그래봤자 한 살 어린 후배인데 내가 잡아먹기라두 하는 것 같아."
매드사이언티스트같은, 이성이 끊어진 눈으로 홀린 듯 말하다가 금세 이성을 되찾는 기술이 신기하기도 하다. 어쩌면 고도의 연기일지도.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고작 나같은 여자애 하나한테 겁을 먹는 거야? 쪼끔 실망했어. 차라리 '아아, 그것이 나의 길이라면... 와라.' 라고 했다면 좀 더 재밌었을지두 모르겠어."
책상에 푹 엎드려서는 입술을 툭 내밀고 투정부린다.
"여자아이와의 커뮤는 기본적으로 말야, 대답은 늘 세 마디 이상으로 할 것, 평소와 다른 머리 모양에 주목할 것, 제대로 구두까지 볼 것, 걔네가 하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구. 아직 멀었구나, 텟쨩."
월드이즈마인의 인용 뒤로 본론이다. 시이는 테츠야를 조금 후배 정도로 보게 된 것 같다. 이렇게 알려주는 모습은 마치 시이가 선배고 테츠야가 후배라도 된 것 같으니 말이다.
"자, 여기서 돌발문제. 후배가 '선배,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초코 맛있을지 모르겠어요. 시험삼아 한 번 먹어줄래요?' 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카메라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느낌으로 하는 것이다. 또 새로운 친구니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선 좋을 게 없다. 게다가 스즈는 초대받은 입장이었다. 이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인 사람에게 초대받아, 그 사람의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니 이 사람이 나의 주인이라는 거창한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사람이 이 공간의 주인이라면 그에 맞도록 신경쓰는것이 맞는 것이다. 스즈는 카메라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 앗. 응. 얼굴이 조금 보코보코에요~ 그 점은 죄송하지만 예쁘게 봐주었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그러니까.. 쾌락신님의 친구 자격으로!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쾌락신님을 모시는 음.. 으으으음.. 아! 쾌락신님을 모시는 무녀의 자격으로 앉아있습니다! "
조금 오버한 감이 없잖아 있는듯 하다. 스즈는 건네주는 계란물을 받으면서 '땡큐~' 하고 가볍게 응수했다. 아무 말이나 하면서 먹으면 되지만 가능하면 조금 오버하면서 브랜드를 치켜세울 것. 스즈는 그 말을 듣고 알겠다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스키야키라면 가정식의 대표인 녀석이다. 여러 명이서 먹을수록 맛이 늘어나는 신기한 요리.
" 냄새가 참기 힘드네~ 코 끝에 걸려있어. 이렇~게 타고 들어와서 머릿속에 가득한 느낌이야! 방송을 보고있는 시청자님들은 모르려나? 쾌락신님 말처럼 혼자서 규동먹고 있는거야? 아하하! 야베- 마지 쿳세~ 아하하하! "
여기선 들었던 말을 조금 따라하고는 아하하! 하고 웃으면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스키야키 다 먹고 단 다음이라. 보통은 우동과 죽이지. 스즈는 별 생각없이 입을 열었다.
" 난 당연히 주...ㄱ... "
'죽' 이라고 답하려했다. 너무 빠르게 답한게 화근이라면 화근이다. 그 뒤에 들려온 말에 스즈는 아차 했다. 관련한 이야기라면 잘 알고있다. 알고있는 친구 중에는 '오늘도 죽집에 왔어' 라면서 밤새 놀고 죽집으로 가는 걸 이야기해주는 언니도 있었으니까. 호스트와 놀아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죽을 자주 먹으러 가는 언니와 몇 번인가 같이 죽집을 갔던 적은 있다. 그런 분위기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안가고 있지만.
" 우동이지..! "
식은 땀이 조금 날 뻔 했다. 스즈는 살짝 눈을 돌려 시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스키야키를 바라보고 다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시이를 바라보았다. 말실수 한 건 아니겠지. 조금 더 생각하고 이야기해야겠다. 전국 각지에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어.
" 그러고보면 쾌락신님은 스키야키는 자주 해먹는 편? 혼자 해먹으면 맛 없잖아. 평소에는 어떻게 챙겨먹고있어? "
스즈는 자신을 그렸다는 그림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환하게 웃고있는 얼굴. 공들여서 그린 자국이 역력하지만 조금은 엉망일지도 모르는 그림. 스즈는 거울 앞에 서서 그림과 자신을 나란히 놓고 보았다. 닮았다. 이 색조화장이나 화려한 색의 머리 그리고 미소를 지었을 때의 모습마저도 어딘가 닮아있다.
" 이런건 남겨야지! "
그리곤 똑같이 선물받은 하늘색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냈다. 소중한 물건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받은 선물. 하늘색 카메라는 이미 '미나미 스즈' 라고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붙여두어서 자신의 것이라고 확실히 해두었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한 손에는 그림을 들었다.
" 에- 푸딩님! 선물 고마워~ "
그림과 똑같이 미소를 지었다. 환하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원래라면 찰칵 하고 끝이 났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지이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필름이 나왔다. 사진의 모서리를 잡고 휘적휘적 하고 흔들다보면 천천히 인화가 끝난다. 스즈는 인화된 첫 번째 사진을 보며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또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스즈주께 사과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분명 시로하와 스즈간의 돌리던 일상이 있었는데요 정말 면목없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일과 잠을 반복하는 생활로 돌리던 일상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언가 레스라도 남겼어야 했지만 그래도 계실 때 남기는게 좋다고 생각하여 미뤄졌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와중에 스즈주께서도 시트를 다시 내신 걸로 알고있어요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이어오거나 혹은 일상을 아예 없던 것으로 끊어도 괜찮습니다
>>578 으응 괜찮아~ 신경쓰지 않아도돼! 사실 나도 돌리던 일상이 있는데 대뜸 시트 다시 올려버려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사과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속 시간이 안 맞아서 이야기를 못했지 뭐야.. 미안할 필요 하나도 없어!! 시로하주도 사정이 있던거고 일상도 좋지만 어디까지나 현생에 영향을 미치면 안되는 거니까! 일상은 아무래도 스즈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려서 그 상황부터 다시 가기는 힘들 것 같아. 처음부터 다시 돌려보는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선택은 시로하주한테 맡길게 (:D)! 다시 말하지만 미안할 필요는 하나도 없고 신경쓸 이유도 하나도 없다!!!!!!
"아핫, 무녀! 그거 재밌네, 그래요 이제부터 스즈쨩은 쾌락신님의 무녀인 거야- 그런 관계로 무녀 임명식이라두 해볼까나, 에잇."
시이는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에 들었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신이 있다면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하는 소원이 있잖은가. 신당과 새전함, 그리고 자기만 바라보는 신관이 갖고 싶다고. 그것을 자처하겠다는데 싫어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시이는 장난스럽게 웃고는 스즈의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
적어도 이틀 정도는 얼굴이 아프지 않겠지. 무녀에게 응당 베풀어 줘야 하는 은혜였다.
[ㅇㅇ : 요즘 여자애들은 다 저러고 노는 거냐?] [ㅇㅇ : ㅇㅇ님이 틀딱입니다] [ㅇㅇ : 나 군필여고생인데 육군에서 다 저러고 놀았음]
우수수 올라가는 채팅창과, 그리고는 태연하게 뚜껑을 여는 시이. 뽀뽀 덕분에 죽이라는 말은 사그라들었다. 어쩌면 일부러 목소리를 가로챘을지도 모르겠다. 신관을 보호하는 건 신의 의무니까 말이다. 어디까지나 흥미가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좋아, 그러면 스즈쨩 말대루 끝은 우동으로 할까- 그보다 뭘 물어봤었지, 아, 스키야키? 으응, 아쉽게도 자주는 못 먹지. 원래는 이 소고기로 무순이랑 파프리카랑, 쑥갓이랑 이것저것 돌돌 말아서 먹을 생각이었는데 스즈쨩을 주워온 김에 바꾼 거야. 스키야키는 간단하잖아? 나로서도 오랜만에 먹는 스키야키라구. 각별하지-"
[ㅇㅇ : 쾌락신은 친구가 없으니까...]
"조용히해! 이제 무녀님까지 생겼으니까 친구 있단 말야. 규동먹으면서 혼밥하는 너네들은 모르겠지만- 흥이다."
그러다보면, 직감이 시선을 이끈다. 마침 좋을대로 익은 고기가 보인다. 계란물에 넣어 식히면, 고기의 열로 살짝 익은 계란 덩어리와 날계란이 묻어나온다. 시이는 그걸 제 입에 가져가는 대신, 스즈에게 내민다.
하나도 당황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무녀 임명식이라는 말에 스즈는 '응? 뭔데뭔데?'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가 볼에 닿는 말랑하면서도 따뜻했던 감촉에 볼이 조금 빨개졌고 조금 당황하고 놀랐지만 이내 또 꺄르륵 하고 웃으면서 쾌락신님의 무녀랍니다~ 하고 손으로 브이를 만들어보였다.
" 간단하지만 혼자 먹으면 맛 없지. 맞아맞아~ 그래도 평소에는 잘 챙겨먹는구나! 다행이네, 다행이야~ "
주워왔다는 말에 스즈는 또 꺄르륵하고 웃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나이다. 즐거운게 당연하다. 스즈는 손을 들어 입술이 닿았던 볼을 만지작거렸다. 왜 그랬느냐면 조금 신기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뭐라고 설명은 못하겠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상처났던 눈가와 터진 입술이 덜 아파졌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아프지 않은 느낌이 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 규동 혼밥하고있는 사람들이랑은 다릅니다만~ 설마 매일 혼자서 규동 혼밥하는거야? 마지? 에- 야베- 그건 진짜 구리잖아~ "
시이의 말에 동조하듯 스즈는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곤 몸을 살짝 틀어 시이에게 기대곤 약간의 경멸의 눈길을 카메라를 통해 보냈다. 물론 진짜로 경멸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한 말에 진짜 진심이라면 없겠지만(있더라도 5g정도) 지금은 쾌락신님의 무녀로서 신 님의 말에 동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 아. 땡큐~ "
스즈는 작게 입을 벌렸다. 그냥 먹으면 뜨거울테지만 이렇게 계란물에 넣었다 입에 넣으면 적당히 식어서 딱 따뜻해진다. 조상님의 지혜란 것이지. 스즈는 잠시간 입을 오물거리다가 눈을 번쩍 떴다.
" 아! 맛있어! 이거 최고네~ 이 소고기 어디거야? 브랜드 있는거야? 거짓말이 아니라 최근 먹었던 소고기 중에 제일 맛있었어! 지금 방송 보는 사람들도 사서 먹... 아, 미안. 규동 혼밥하는 너희라면 무리일지도~ "
꺄르륵하고 웃은 스즈는 이렇게 하는거 맞지? 라는 눈빛으로 시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번엔 자기 차례인가 싶어 젓가락으로 고기 하나를 집어 계란물에 살짝 담가 시이에게 건넸다.
>>580 이해해주셔서 고마워요 일상은 기회를 주시니 처음부터 돌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현재 텀에 대해선 장담 드리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원래도 호흡이 짧은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저는 스스로는 돌리고 싶다고 생각해요 되묻는 것 같아서 실례지만 텀은 좀 길어도 괜찮은지 먼저 여쭤보고 싶어요
>>582 고마워요 코세이주 남은 일상 소재는 있지만 서사적으로는 그래도 조금 빈 느낌이니 사쿠라마츠리 때에는 모종의 이유로 보지 못했다고 해도 좋고 약속이 없던 것으로 해도 좋아요
오늘도 자리에 놓인 편지와 선물을 보고 요조라는 생각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이것도 그 연장선이다 생각하기로 하고, 편지와 선물을 챙겨 교실을 나온다. 어제보단 조금 이른 시간이라 몇몇 남은 반 애들이 힐끔대는 걸 느꼈으나, 요조라는 시선도 주지 않는다. 담담히 걸어 나올 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제와 다른 길을 택했다. 조금 멀리 돌아가는 길, 가는 길에 아직 남은 꽃들을 볼 수 있는 길이다. 다음 그림을 위한 이미지를 위해 택한 길을 걸으며 요조라는 편지를 꺼낸다. 주섬주섬, 대충 넣어 살짝 구겨진 편지를 꺼내 내용을 읽다가, 어제와 비슷한 느낌으로 고개를 갸우뚱 한다.
뭐야. 꽃 보러 갈 건 어떻게 알았대.
때마침 요조라의 귀갓길과 선물의 의도가 딱 겹치는 것에 어제와 같은 미묘한 기분을 느낀다. 뭘까. 사실 알고보니 마니또를 가장한 스토커? 지금도 어디서 보고 있는 거 아냐? 주변을 두리번 거리지만 맹한 눈에 들어오는 건 금방이라도 져버릴 듯 흐드러지게 핀 꽃길 뿐이었다.
아무렴 어때. 이왕 받은 거 적당히 쓰면 되겠지.
그런 걸 깊게 생각하기엔 요조라의 시간은 짧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편지는 곱게 접어 다시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일회용 카메라를 꺼내 필름을 드륵드륵 감고서 들어올린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 거였나?
어설프게 일회용 카메라를 들고 구도를 잡으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겨우 첫 셔터를 누른다. 찰칵 소리와 함께 필름이 돌고, 잠시 멍하니 일회용 카메라를 바라보던 요조라는 방금전보다는 조금 나은 느낌으로 두번째 셔터를 눌렀다.
찰칵.
이 날 요조라가 쓴 일회용 카메라의 필름엔 온통 꽃 밖에 없었다고 한다. 온갖 종류의 봄꽃들은 한가득 담겼으면서, 정작 자신도, 다른 누구도, 담겨있지 않았다고.
요조라주 어솨~~~ 독백 잘 읽었다 스토커 아니야? 하는 부분 귀엽다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마지막에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는 건 또 의미심장하네 그냥 취향의 문제일라나? 갑자기 떠오른건데 검은 고양이 사진 찍는 요조라 떠오른단 말이지 :3 oO(어디가 닮았다는 거야 ㅡㅡ) 하면서 열심히 찍는 거.... 적폐캐해라면 미안
사실 나는 갓 태어났을때, 자아라고 할 것이 없는 원시 생물과도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감각은 필설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머리 정수리를 기점으로 찬 기운이 요동첬다. 맥동하는 샘이 치솟다가 물줄기를 타고 온 몸으로 퍼졌다. 그 중 대부분은 바다로 빠져나갔지만 그렇지 않고 내게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흔했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이 일련의 과정들을 수행했다. 그것에는 내 의지라고는 없었다.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는 일은 당연했고, 나는 그에 충실했을 뿐이다.
"청이 있습니다!"
어느날 인간들이 나를 불렀다. 나는 그들에게서 근원 모를 이끌림을 느낀다. 최초의 욕망이었다. 신身의 모체는 자연물이었고 념念의 모체는 인간이었으므로 본능에 가까운 행위이기도 했다. 어미의 젖을 찾아헤매는 송아지처럼, 나 역시 그랬던 것이다. 그들은 너무 작고 낯설어서, 나는 정신을 집중해야만했다. 그러자 듣고자하는 귀와 보고자하는 눈을 갖추었다. 가만보니 내가 태어났을때에 들었던 소리와 비슷하지 아니한가. 나는 헤매고자하는 머리를 갖추었으며, 알 수 없는 쇳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을 때, 기어코 코를 갖추었다. 그래, 피비린내가 났다. 나는 그것이 내가 태어났을 적의 냄새임을 알아차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인간들을 주시했다.
"강의 신이시여!"
결국 제물이 내 품으로 떨어지고 그들이 나를 강의 신이라고 지칭했을때, 나는 비로소 강의 신이 된다. 아니, 정확히는 깨달았다는 표현이 옳겠다. 서로에게 달갑지 않은 거래였을테지만, 나는 받은 것이 있어 인간의 청을 들어줄까한다. 다만 아직 그들에게 보일 뼈대를 갖추지는 못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들은 나의 이름이 천해대사川海大蛇*라 속닥거리더라. 나는 그것을 내 이름으로 삼고 물줄기 하나를 떼어내 뱀의 형태를 갖추게 하였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정말로 적절할 것 같아서 제대로 공개를 하도록 할게요! 이제 진짜 여름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고!
여름의 마츠리인 '호타루마츠리'는 페어일상 이벤트로 진행될 예정이에요! 호타루마츠리는 정말로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정말로 아름다운 반딧불을 구경할 수 있고, 그 반딧불의 신인 호타루노히카미를 모시는 신전 바로 앞에 있는 해안가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바란다면' 2인 1조로 포크댄스를 출 수도 있는 이벤트에요. 소개때 따로 나오겠지만 이 시기에는 시미즈 가문이 관리하고 있는 그 성스러운 샘이 고여있는 동굴이 열리고 그 안의 샘을 구경할 수도 있으며, 그 상태에서 동굴에서 나와 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반딧불을 구경할 수 있고, 그 길을 쭉 내려가면 해안가로 나오게 되는데 그 해안가 부근에 신사가 있고 그 앞의 해변가에서 가볍게 모닥불을 피우고 춤을 출 수 있는 구조이고 암튼 그런 느낌이에요.
그리고 이 이벤트는 희망하는 이 한정해서 '찌르기'를 이용해서 자신이 놀고 싶은 캐릭터와 단 둘이서 놀 수 있는 이벤트에요.
당연하지만 '찌르기'는 웹박수로 받으며 일단 1단계로서 그 이벤트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을 웹박수로 신청받아요. 단. 이건 어디까지나 참가자만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니 찌르기가 불가능해요. 그리고 그 다음주에 2단계로서 본격적으로 '찌르기'를 해서 자신이 같이 놀고자 하는 캐릭터를 찌를 수 있어요. 웹박수로. 그렇게 찌르기를 보고 제가 매칭을 해주는 구조가 될 거예요. 덧붙여서 축제는 연인 이벤트가 아니고 우정 이벤트이기도 한만큼, 성적 지향에 따라 파트너가 짜이는 것은 절대로 아니에요. 춤을 추던지 말던지 그건 자유이지만 반드시 일상을 이벤트 주 동안에 한 번 돌려야만 해요. 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잠수를 타거나 혹은 일부러 일상을 돌리지 않거나 식의 모습이 보일 경우 예외없이 그 시트는 내려가게 되니 반드시 주의하시고.. 정말로 바쁘고 진짜로 바쁘고 어쩔 수 없는 사태로 바쁘면 파트너에게 양해를 구해서 면제될 순 있지만 가급적이면 신청은 신중하게 하시길 바랄게요.
1단계. 즉 신청만 받을 때, 일상 등으로 해당 캐릭터에게 호타루마츠리를 같이 보지 않겠냐고 직접 신청하는 것은 가능하나 그것이 받아들여질진 별개라는 점. 그건 꼭 명심해주시고.. 아무튼 이런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라는 것만 알아두시면 될 것 같아요! 자세한건 또 그때 공지할 거예요.
"못 먹겠습니다." "..무상영령 님께서 라멘을 드시지 못한다니, 곧 누가 죽습니까?" "아닙니다. 날 뭘로 보고.." "하면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하나비가.." "하나비가? 제 딸이 왜.. 설마.." "아니라니까 진짜." "그럼 뭡니까?" "그게, 호로록 소리를 듣고 호로도 록이라고.." "아..." "그 이후로 라멘을 먹을 때마다 그 말이 떠올라서 그만..."
물론 여러분들이 저에게 자신의 눈호관을 밝히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는 조건이 필요하지만요. 아무래도 찌름을 해버리면 저는 화살표가 어떻게 흐르는지 알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선회피) 아무튼 여름 시즌에 저런 이벤트 하나 준비중입니다! 정도만 생각해주시고.. 눈호관이 있으면 슬슬 움직일 시기라고 저는 얘기를 해보겠어요!
끝 음을 살짝 끌면서, 이젠 꽤 낡아진 운동화를 현관에 벗어 두고 집에 들어왔다. 집 안에서 달달한 냄새가 나는 것이, 어머니께서 하루나가 좋아하는 팬케이크를 굽고 계신 것이 틀림 없었다. 츠무기, 왔니? 하고 앞치마를 멘 어머니께서 나를 반겨주셨다. 손 씻고 식탁에 앉으라는 어머니에 말해 네, 네. 하고 대답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꽤 많은 것들(대부분 집에선 펼쳐 보진 않지만)이 든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문득 다시 지퍼를 열었다. 학교에서 받은 마니또의 선물을 아직 열어보지 않은 것이 기억 났던 것이다. 상자의 크기도 그렇고, 어제의 선물은 도토리였으니까(이 도토리는 하쨩과 함께 서점 마당에 묻었다.) 오늘도 비슷한 것일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의 물건이 나왔다.
' 피어싱..? '
이전에 끼던 피어싱과 다른 링 피어싱이었다. 그리고 피어싱 하나니까, 분명 귀를 한 쪽밖에 뚫지 않은 나를 고려한 선물인 것이었다. 도토리씨, 꽤나 섬세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모처럼 받았으니까, 오랜만에 피어싱을 교체해볼까, 라는 생각에 나는 손을 씻고 물기를 닦은 뒤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팬케이크 다 식는다, 라는 외침이 들렸다.
-
" 오빠, 귀걸이 바꿨어? " " 어머, 진짜네? 언제 바꿨니? "
가족들의 예상외로 뜨거운 관심에 팬케이크를 허겁지겁 먹고 방으로 올라왔다. 올라오자마자, 책상 한 구석에 붙여둔 'ま'라는 포스트잇 옆에 새로 받은 'め'를 붙였다. 마메라. 콩? 혹은 まめですね(부지런하시네요!)? 도통 감이 오지 않아 미간을 좁히다 풀썩, 하고 침대에 누웠다.
종종 있는 것이다. 앞에서는 차마 부딪히지 못해 뒤에서 칼을 숨기고 있는 자들이. 스스로의 말씨에 있어 상냥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알고있다. 태도가 완고해 사사건건 참견 하는 것도 알고있다. 그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있다. 등지에서의 험담이라면 종종 들려온다고 하지만, 증오를 품은 무리를 모아 이렇게 면전에 찾아 오는 것을 탓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용기가 가상하다며 칭찬해야 하는 걸까. 신으로서의 시로하는 후자를 택하고 싶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그러지 못한다. 앙금이 있다고 가는 길을 틀어막고 억지를 부리는 것 또한 용납해주어야 하는가? 옳고 그름은 따짐 없이 듣기 좋은 말보다 듣기 싫은 말을 하고 있다. 아니, 사실은 이런 류의 집단 보복을 하기에 지당한 이유일 것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순한 편이지 않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타메시기리라는 이름으로 스러진 인간의 넋이 얼마나 많았던가. 칼이라는 물건, 본디 뽑지 않을 때에 가장 의미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
'가끔씩은 처지를 깨닫게 해주고 싶은 것도 사실이구나...'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휘두름이 나았던 때가, 종종은 그리워지는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그래도 서당개가 삼 년 정도면 풍월은 읊는 줄 안다고. 인간들의 통념으로는 여기서는 거드름을 피우는 것보다 적당히 듣는 척을 하는게 상황 호전에 좋다는 것은 알고있다. 그러니 여기서는 신의 특유의 '영험함과 자애로움'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다. ...그렇게 생각했을터인, 도검의 신의 심기를 마침 건드리는 말.
썩을 꼬맹이가.
지금, 시로하의 눈썹이 유감없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꿈틀거렸다. 숨을 깊게 들이내쉼에 품 속에 있던 천에 싸인 물건이 달싹거리며 움직인다.
"전부 지껄였느냐."
지리멸렬히 쏟아지는 어거지들을 뚫고 운을 트는 것은 그런 첫 마디였다.
"그럼 적당히 비키거라. 이런 곳에서 쓰잘데기 없는 소란 피우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그것도 아니면..."
품 안에 들고있던 막대를 손으로 옮겨 쥐어 편안하리만치 축 늘어진 그녀의 양 어깨. 누가 보아도 퍽 무해한 자세.
"죽고 싶은게냐?"
거기서 이어진 직설적인 말에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잠시 형성된 그 공간 속에서 그들은 놀랍게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왜소하기 그지없는 맹인 소녀에게 순간이지만 기세로 압도 된 것이다. 죽음을 입 밖으로 드러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더 살갗으로 와닿는 것. 어엿한 검사가 되어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감인 검의 '간격'이라는 것을, 칼이라곤 식칼 정도가 고작일터인 현대 일본의 청소년이 잠시나마 느낀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그들은 자각하지 못 할 것이다. 무엇이 자신들을 덮쳤으며, 당초 무엇에 작아지고 말았는가? 이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상정 외의 사고는 대비할 수 없고 실질적인 위협이란 필시 그런 것이다. 그들은 잠깐이지만 겁을 먹었다는 사실에 발끈하여 외려 목소리를 높히며 다가온다. 한 발짝, 두 발짝, 바로 코 앞까지. 키의 절반쯤 될락말락하는 여학생을 상대로 집단지어 큰 소리를, 손을 높히려 한다. 일촉즉발이란 것은 그런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736 잠깐 생각해봤는데 지금 이상이라면 아마 경멸의 수준이 아닐까... 싶어서 역시 관두는 걸로~ 청춘일상물에 이런 하드한 건 맞지 않지 그럼그럼 :3 난 디폴트값 유지만으로도 벅차서 만약의 상황은 사실 생각하기가 어려워~ 흐름상 요조라가 그렇게 변해간다면 생각도 자연스럽게 바뀌겠지만 아닌 상태에서 상상하려면 에...난닷테(멍청)해진다구~ 그래서 진단도 가능한 지금으로 대답 가능한 것들만 하는 편이구~
>>738 말거는 것만으로도 경멸 가능할거같ㅇ아니아니아니 이건 그만 생각해야해~~ 잘못하면 영향받는다구~~ XD 어렵지만 시작부터 이미지를 확실하게 잡았으니까 괜찮은거 같기도 해~ 일상 때마다 살짝 불안할 때도 있지만 뭐 아직 캐붕은 안 했으니까~ 요조라가 바뀌는 모습? 어~ 진행하다보면 될거 같기도 하고, 엔딩때나 나올거 같기도 하고? 근데 뭐 이제 겨우 봄 다 지나가는 시점이니 뭐라 말하긴 섣부르지~ 확실한건 어떤식으로든 변화를 받게 만들었다는거~
아이구 벌써 세시반이야; 잠은 안오지만 일단 누워는 봐야겠다... 코세이주도 얼른 자~ 자고일어나서 봐~
세이, 벚나무잖아. 벚은 봄꽃이잖아! 봄꽃이 피면 봄이잖아! 여름이 늦었으면 좋겠다면, 계속 벚꽃 머리띠를 하고 있으라는 소리다. 가만 열심히 꽃꽂이 해둔 밪꽃송이들을 바라보건 코로리는 다시 코세이에게 카메라를 들이민다. 이번에는 정말 코세이를 화면에 담고 있었고, 아까 전 실패해버린 장난을 칠 때의 코세이를 따라했다. 브이를 그리긴 그리는데 쭉 내밀어서 카메라에 담기도록 한다. 세이브이! 하고 고개를 기울이니, 방긋 웃는 얼굴이 휴대폰 너머로 나타난다. 코세이가 브이를 그리면 바로 찰칵! 이어서 라인으로 보내줄 것이다.
"나는 세이오빠랑 같이 있고 싶은 거 뿐인데에."
역시 이럴때만 오빠다! 시무룩하니 눈을 내리깔고서 눈꺼풀 깜빡이는 것만 보여준다. 분명 편의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단순하다고 해야할지, 오히려 종잡을 수가 없다고 해야할지 과자를 한아름 안고서 신나있다.
"착한 동생이니까 과자로 신데렐라 만들지."
내 마법은 열두시에도 안 풀리지만! 하늘에 어두움이 찾아오면 잠에 들 시간이 다가온다. 하루의 끝이자 시작 열두시에는 한창 자고 있어야하는 시간! 양귀비를 위한 선물이 무엇이 될지는 몰라도, 세이 부탁인데! 세이니까 별이 좋을지도 몰라ー. 양귀비를 잠의 마법에 걸린 신데렐라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이고, 그 댓가로 과자를 받겠다는 것이다!
"반마아안?"
말끝이 녹아내린 치즈처럼 주욱 늘어난다. 전부 다 사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뜻이 전해진다. 코로리는 과자 코너의 진열대로 돌아간다. 어느 과자를 포기할 것이냐! 품 안의 과자와 진열되어 있는 과자들을 이글이글 번갈아 노려본다. 진열대에 놓이고, 새로운 과자와 품 속의 과자를 바꾸고, 과자를 진열대에 놓으려다 머뭇거리고, 과자 걸러내기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 품안에 한아름 안고 있다기에는 부족한 양의 과자들을 안고 있다. 걸리버가 소인국에 가버렸어! 이정도면 괜찮은지 허락받는 듯 코세이의 옆으로 돌아와 바라본다.
오늘도 안녕, 협회장님! 협회장님은 모르는 편지를 벌써 두번째 적고 있어. 협회장님도 태어나서 두번째로 선물해본 거지?! 나도 협회장님한테 선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맞다, 이번 편지에는 봄이 끝나기 전에 봄을 담았어! 봉투 안에 벚꽃 들어있으니까 거꾸로 뒤집으면 놓쳐버리고 말거야, 조심해야 해! 이 경고문을 읽을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협회장님한테 편지를 전해주고 싶어서 열심히 협회장님이 누구일까 생각하는데, 과일을 좋아하는 걸까?! 딸기향 립밤에 이어서 블루베리 잼이라니! 과수원을 찾아다니면 협회장님을 찾을 수 있을까?! 협회장님이 또 선물을 준다면, 다음에도 과일 친구 선물일까봐 기대되는 거 있지! 과일 선물을 하나 더 받게 되면 달콤상콤협회장님이라고 부를거야. 그 마음을 담아서 오늘도 예쁜 편지지를 샀어. 블루베리 무늬가 있는 편지지는 못 찾아서 파란 꽃 편지지라는게 아쉽지만, 협회장님이 달콤상콤협회장님이 되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다구.
그리고 쓸데없지 않아! 침울하지 마! 걱정하지 마! 잘 먹었습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전할 수 없는 말이 쌓여서, 잊어먹지 않게 편지에 꼭꼭 적고 있어. 마니또가 짝사랑같다고 했지! 협회장님이 준 선물들은 사랑스러움이 구름 너머로 쭉쭉 솟았으니까, 그래서 기뻐하고 있으니까 걱정말라구. 딸기 편지도 이 블루베리 편지도 가방에 넣고 다닐 거니까, 협회장님 만나게 되면 바로 전해줄 거야. 그러고보니까 협회장님, 협회장님은 선물해준 블루베리잼 먹어봤어?
🫐 탄산수 한 잔 + 블루베리잼 반 스푼 🫐 식빵 한 장 + 크림치즈 두꺼운 카펫 + 블루베리잼 얇은 카펫 🫐 플레인 요거트 + 블루베리잼 한 스푼
나는 이렇게 먹어봤어. 완전 잘 먹고 있지?! 블루베리 먹고 나서 딸기 바르니까 베리파티야! 협회장님한테도 베리 선물해줘야겠어. 고맙다는 말은 만나서 할 때까지 뜀틀이야. 그럼 오늘도 우리 둘 다 힘내자!
🫐 코로리로부터!
/ 아직은 전할 수 없는 두번째 편지네 ( ´∀`) 블루베리잼은 코로리가 야금야금 먹고 있다구 맛있겠다 (*´ω`*)
그러니까 몸 간수는 알아서 하라고. 자리 다 잡았냐. 여자애가 먼저 들어가고 이쯤이면 적당히 도와줬다 싶어 따라서 오리배에 올라탔다. 아 넨장맞을 뭐가 이렇게 좁아터졌어! 머리가 천장에 부딪치고 단말마의 욕설을 씹듯이 중얼거리면서 몸을 구겨 넣는다. 십 하고 몇 분 전까지 실컷 코트 위에서 뛰어 혹사한 몸이 평소답지 않게 피로를 주장하고 이마에 땀이 맺힌다. 씨발. 다시 욕을 툭 내뱉으면서 땀을 훔친다.
“뭔 크기도 썅, 뭐가 이렇게 좁아? 넌 진짜 이걸 타고 싶냐?”
천천히 비좁은 공간에서 귀찮은 심정을 팍팍담아 대로 대충 발을 놀리자 작은 오리배가 작게 기우뚱 좌우로 흔들리면서 느긋하게 물살을 가르고 나아간다. 여간 공간이 좁은 게 아니라서 키가 제법 있는 토오루의 입장에서는 무릎을 접는다 하더라도 여기저기 닿았다. 좁고, 느리고, 옆에 있는 여자애는 어디 나사 하나 빠진 것 같고 또 배구부를 인질로 잡혀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도 없고 젠장. 오리배 바깥으로 근사한 봄의 경치가 유유자적하게 흘러가지만 이를 있는 그대로 즐기기에는 그가 조금 히스테릭해져 있었다. 순간 꼬운 생각에 고개를 돌려 바로 옆의 소녀를 보지만 무릎이 뼈대에 걸릴 때 조금 신경을 쓸 뿐 강물이 벚꽃잎 함께 고운 비단같이 흘러가는 걸 구경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이는 모습만이 눈에 들어와 슬슬 속에서 올라오던 짜증에 물을 끼얹은 듯 황당함으로 지워진다.
저것도 참 능력이다. 성격 좀 죽이라는 말을 평생을 듣고 산 그로서는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더해서 소녀는 그에게 아무렇지 않게 더 빨리 달리자는 말을 신나서 건넨다. 진노우치 토우루를 처음 보는 여자애들에게서 흔히 나올법한 반응은 아니었다.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아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만반잘부가 무슨 뜻인지는 알고 사용하는 거냐.” 라 말하고 싶은 속마음을 누르다 투덜거린다.
“그러니까 빨리 가자는 거지? 다리 아파도 후회하지 말라고.”
어차피 느린 건 마찬가지 아닌가. 심호흡을 한번 하고서 빠르게 페달을 밟는다. 기대하던 만큼의 속도는 전혀 아니고 속 터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늘어난 속도에 속이 풀린다. 그만큼 다리도 아파오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니 꼬리를 무는 생각을 육체노동이 지우자 살짝 가라앉은 표정으로 대꾸한다.
“잘 부탁은 하지만 만나서 반가서 반갑지는 않다.”
한쪽 입꼬리를 올린 불량스러운 미소를 짓고서 갑작스러운 가속으로 기우뚱 흔들리는 오리배를 무시하며 페달을 밟는 발에 더 힘을 더한다.
>>772 일단 제 입장에선 쇼->토와->이번 일상 순이기 때문에 거의 바로 보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한들 한번 돌리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요. 돌리고 싶으면 찌르면 되지요. 저야 찔러줘도 좋고 안 찔러줘도 좋기에 자유롭게 하셔도 괜찮아요! 물론 정 돌린지 얼마 안 된 것 같아서 애매하다 싶으면 다음 기회를 노리셔도 괜찮고요.
마니또 행사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슬슬 학생회장으로서 가볍게 동아리의 상태를 전체적으로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가볍게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직속 임원 한 명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1학년 남학생인 그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아키라의 뒤를 따라왔고 아키라는 긴장할 거 없다는 듯 가볍게 미소를 보였다.
일단 어디로 가볼까? 고민을 하던 그는 문뜩 사쿠라마츠리 때 공연을 했던 경음악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평소엔 어떻게 연습을 하고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아키라는 경음악부, 즉 셀레스티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단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보아 안에 부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목소리를 정리한 후에 부실의 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안에 계신가요? 학생회장인 시미즈 아키라입니다."
부정한 뭔가를 하지 않는 한, 저 문이 닫히는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아키라는 가만히 상황을 바라봤다. 만약 열지 않고 버틴다면 마스터키를 이용해서 문을 열면 될 일이었다. 물론 그럴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방과 후 시간. 경음악부실의 부활동은 오늘도 요란하다. 방음이 되긴 하지만, 틈새로 새어나오는 연주와 노래에는 그야말로 열정이 가득 차있었다. 그건 아키라가 부실의 문을 두드렸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연습이 끝남과 동시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두꺼운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말은 그 손님이 학생회장임을 알려주었다. 부원들은 전부 지친 몸을 달래느라 서로의 눈치만 볼 뿐이었다. 결국 가만히 서서 숨을 고르던 쇼가 설렁설렁 걸어가 부실 문을 밀어젖혀야만 했다. 문이 열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 밖에는 아키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시 학생회 소속일까, 1학년 남학생이 같이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인사를 마친 쇼는 일단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학생회장이 여기까지 올 이유라면… 동아리의 상태를 살피러 불시에 찾아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키라를 따라온 1학년 남학생은 아주 살짝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눈에 담는 아키라는 괜찮다는 듯,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아직 학생회 일에 익숙하지 않고 이렇게 같이 나오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은 1학년을 조금 더 그렇게 달래주던 아키라는 다시 앞을 바라보며 쇼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한 후에 미소를 지었다.
"별 건 아니고 동아리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혹시 부정한 일은 없는지 체크를 하려고요. 가끔 있거든요. 어느 순간,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안을 조금 이상하게 쓰는 이들."
담배, 술, 그외 기타 등등. 여러가지 사례를 이야기하는 아키라는 가만히 부실 안을 바라보려고 했다. 일단 다른 부원들도 있는 것 같았으나 쇼가 나왔다는 것은 쇼가 나름대로 동아리에서 위치가 있는 이는 아닐까. 그렇게 추측시키기 충분했다. 일단 물어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쇼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오토하 씨가 지금 총 책임자인가요? 아니면 부장님이 따로 계신가요? 아. 혹시 한창 연습중이라서 외부인이 들어오기 힘들다면 다음에 찾아올까요?"
물론 마지막은 어디까지나 그냥 선택지에 넣은 의미없는 물음일 뿐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아키라의 눈은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듯이 그 빛을 날카롭게 반짝였다.
1. 보내드린 그것은 마음에 드셨습니까. 봄이 끝물인 듯, 낮해가 부쩍 뜨거워졌습니다. 나가실 적 조심하시길. 모쪼록. 본인 글 적는 재주가 없어 그저 안부만 묻는 것에 양해 바랍니다. 곱게 반 접은 편지 한장과 말차잎&홍차잎(얼 그레이) 틴케이스 세트를 후유키에게. =>카시아리
2.에니시에게 벚꽃잎을 넣은 레진 키링을 줍니다.
메시지-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은 것들로만 만들어주셨습니다. =>금록
3.To.테츠야 선풍기는 유용하게 썼으려나? 아무래도 날이 엄청 덥지는 않다보니까 선풍기는 여름이 되어서야 조금 힘을 발휘하겠네. 슬슬 봄이 끝나가고 있지만 이대로 봄을 끝내기엔 아쉽지? 그래서 벚꽃을 말려서 코팅해봤어. 이번엔 실용적인 선물이 아니라서 아쉬우려나. 하지만 이런 것들도 분명 가치가 있을꺼라고 생각해. 이번 해의 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말이야.
[테츠야의 책상 위에 봉투가 하나 놓여있다. 봉투 안에는 짧은 편지와 함께 벚꽃이 코팅 되어있는 채로 들어가있다.] =>몰?루
4.토와, 내 소중한 친구에게. [오늘도 안녕, 오늘은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날이야.
오늘로 벚꽃은 안녕이구나.. 비가 꽃잎을 때려서 호득호득 떨어뜨리고 있어! 이제 비가 그치면 벚꽃 대신 연두색 잎사귀가 파릇파릇 보이겠지? 아쉬운 날이지만, 그래도 특제 스트레칭으로 토톳치가 벚꽃을 봤으니 야마다찌는 만족하고 있어! 그리고 땅에도 물이 닿았으니 분명 예쁜 꽃이 피어날 거고! 벚꽃은 내년에 또 보도록 하자! 그때는, 토톳치가 대학생일 테니 편지가 가지 못하겠지만..
그런데, 오늘은 누가 우는 날일까? 비가 하루종일 그치지 않아. 천둥은 꽝꽝 내리치고 있어. 음.. 아주아주 슬퍼서 우는 날일지도 몰라. 테루테루보즈를 달아도, 공양을 드려도, 비 님, 그치지 않거든.
혹시 토톳치가 슬픈 건 아닐까? 우리는 모두, 날 적부터 울면서 태어나는 슬픈 사람이니까.
아니면 토톳치 설마!
공부가 어려워서 우는 거야?! 수학은 역시 어렵지..! 응응, 농담이야. 수학은 야마다찌만 어려운 걸로 할게..
혹시라도 토톳치, 슬퍼도 무조건 참기만 하면 안 돼. 무작정 참아버리면 다음엔 홍수가 펑펑 들이닥칠 거야. 슬픔 님은 불필요한 게 아니라, 가끔은 필요한 거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비가 오는 걸 핑계 삼아 마음껏 울어도 좋아! 비 님이 가려줄 테니까!
응? 어떻게 아냐고?
그건-
야마다찌의 영업 비밀이야!
야마다찌랑 약속하자, 슬플 때는 맘껏 슬퍼하기로.
오늘의 날씨는 펑펑 눈물비 오는 날, 내일의 날씨는 맑음. 오늘 하루도 우리, 행복하게 지내자! 행복으로 하루를 가득가득 채워버리는 거야.
너를 어딘가에서 아주 집요하게 지켜보고 있는, 비밀친구 야마다!] 🌧야마다는 책상 위에 선물을 두고 도망쳤다. 오늘은 천의 자수도, 장식으로 매단 홍백 새끼줄도. 모두 직접 꿰매고 땋은 테루테루보즈 옆으로 한 손에 쥐고 털어먹을 수 있는, 초코 베이비가 있다.🍫 =>아마다
5.아미카에게 벚꽃 마카롱(3개입) 선물 =>12시 30분
6.코세이에게 보내지는 두 번째 CD. 역시나 공CD를 사서 구운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sG--g1gMrGo 가장 먼저 나온 트랙은 이것이지만, 이것 말고도 비슷한 노래가 몇 곡쯤 더 들어있다. 이번에는 짧은 쪽지가 같이 동봉되어 있다. 귀에 맞으시면 다행이겠네요. 혼자 들으세요. 누군가 이것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들으셔도 괜찮아요. =>제우스
7.츠무기에게 도토리 한 알. 그리고 옅은 청록색 포장지로 감싸져있는 납작한 상자. 포장지 겉에는 푸른 나뭇잎 모양 포스트잇이 붙어있습니다. 적혀있는 내용은 'の'. 포장을 벗기면 검도 면수건(호면을 쓰기 전 머리에 쓰는 수건)이 들어있습니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검은색의 깔끔한 디자인입니다. =>도토리씨
9.오늘은 어땠어? 나는 오늘 문득 창 밖을 봤는데 꽃이 지는게 생각보다 슬프더라. 그래도 여름이 온다는 거겠지? -견우 (작은 손부채가 동봉되어 있다.) =>견우
10.회장님은 마니또를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워 하실 것 같아 익명으로 초콜릿을 한 통 첨부할게요. (페로로로쉐가 한 통 녹색 박스 안에 들어있다.) =>누군진 모르지만 일단 감사드리며 아키라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포로로로쉐를 혼자서 맛있게 까먹었답니다!! 감사해요.
11.코로리에게 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를 선물.
나츠메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어리석은 인간들의 군상을 묘사하는 내용의 책입니다. 과연 자신은 다른이에게 어떻게 비치는걸까 생각하면 여러 생각이 들곤 합니다만 저는 당신에게 어떻게 보일까요? 과연 얼굴도 이름도 밝히지 않은 저는 보인다라고 자신할 수 있는걸까요?
오늘만큼은 무표정한 얼굴로 인간을 멍하니 바라보는 고양이가 되어 당신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보냅니다. 냥. =>전국방콕협회장
12.스즈에게
하얗고 탱글탱글한 행인두부. 동그란 컵에 담겨 있다. 맨 위에는 딸기나 망고 같은 단 과일이 잘게 잘라져 올라가 있다.
"내 이름에 걸맞은 선물 하나쯤은 보내야 할 것 같아서 보내. 맛있게 먹어. 마니또가 끝나면 같이 먹으러 가고 싶어.
내가 누군지 짐작이 가? 최대한 들키지 않게 애쓰고 있어. 그래도 요즘은 뭘 보내야 할지 매일매일이 고민이야. 즐겁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너도 내 선물이 즐겁니?" =>푸딩 =>이거 머릿말 안 붙어있었는데 이번만은 그냥 올려드리겠습니다.
13.「아직은 좀 이를지 모르나 봄볕이 꽤 뜨겁지 않습니까. 그러나 양산에 하늘 풍경 아주 가려지는 일도 역시 아쉬우니, 부족하나마 대신하여 드리운 꽃 그림자 연연(娟娟)히 보아주길 바랍니다.」 ─푸른 잔꽃 무늬가 수놓인 흰 양산이 마사히로의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유즈
14.오리박사가 히키에게 유리병 종이학 100마리를 보냅니다.
「오리박사입니다. 마니또를 시작하게 된 첫 날부터 꾸준히 접어서 100마리를 채웠어요. 원래는 1000마리를 해야하지만 1000마리를 채울 자신이 없어 100마리로 합의봤답니다. 그리고 문병갈때 하는 선물이지만 의미가 중요한거니까 건강과 안전을 기원하면서 한 마리 한 마리를 접었어요. 선물을 받을 당신을 볼 수 없다는게 슬프면서도 재밌네요. 」 =>오리박사
15.오토하 쇼님께
늦봄, 문안 인사 드립니다.
봄은 어디로 간 것인지 추위와 더위가 이어지는 매일 속에서 이리 편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은 저에게는 몇 되지 않는 즐거움입니다. 이리 말하면 마치 노인네처럼 보입니다만, 저 역시도 일단은 학생을 하고 있는지라 어쩌면 오토하님보다는 어릴지도 어쩌면 그 반대로 같은 나이임에도 이러한 조금 어른스러운 척을 하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에 물드는 것이라,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그때 그 장소에 있는 것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고 합니다. 오래전 저의 스승님께서는 교우관계에 있어서 훌륭한 벗을 가진 인물은 그에 맞는 훌륭한 친구로서 있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에 걸맞게 그 벗 역시도 상대에게 맞는 훌륭한 벗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결과, 비슷한 모양새와 성격을 갖게 되어 더더욱 친밀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아직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로 이리 편지를 보내는 것이 어찌 보면 흉흉하다고 느껴지는 것 역시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이렇게 아직 만나지 못한 이들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조금씩은 친밀해져 서로 닮게 되는 것이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도 따뜻한 바람이 불기를 빌며 -전신주 추신, 얼마 전 재미있는 소설을 찾았습니다. 아쉽게도 저의 벗은 책에 흥미가 없는 분들이 많아, 이런 방식으로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어떨까 하여 이 책을 동봉합니다. [타니자키 준이치로作, 고양이 쇼조와 두 여자 동봉] =>전신주
16.[글씨 위로 보이지 않게 검게 칠해진 흔적이 남아있다. 그 아래 정갈한 글씨체로 '친구에게 고운말을 쓰자.' 는 문장이 또박또박 적혀있다. ] [난 꽤 좋다고 생각해서 적었는데 적지 말라네. 살아가면서 (다시 검게 지워져 있지만 자세히 보면 엿같은 일이라고 쓰여있다) 얼마나 많은데. 분명히 다 때려치우고 싶을때 꽤 끝내주는 선물일거라 자부해. -Gamer]
시니카의 책상위에 헤드셋과 록 음반이 상자안에 저번과는 달리 길쭉하지만 유려하다고도 할 법한 필기체로 쓰인 쪽지와 함께 담겨있습니다. 그 옆을 보니 구석진 자리에 작게 뭉쳐진 쪽지가 보이네요.
[저번에 이걸 보내려 했는데 선생이 반대했어. 초콜렛이 더 좋을것 같다나 뭐라나.]
이번에는 눈에 익숙한 거친 필체입니다. =>Gamer =>이것도 머릿말 안 붙어있었는데 다음엔 꼭 붙여주세요!
17.미즈미에게 팔찌를.
https://i.postimg.cc/yNr2kpsG/image.jpg
[어떤 것을 네게 선물할까. 편지에는 무슨 말을 적을까. 어제는 밤새 잠들지 못했어.] =>헤세
(번외편) 후미카에게 연근 조림을 선물. 직접 만든 연근조림 같습니다. 그나저나 맛은 아주 좋네요. 조림 특유의 단맛을 절묘하게 줄여 기분 좋게 혀에 맞고, 연근은 너무 익히지도 너무 날 것도 아니어서 식감이 살아있는 채로 잘 씹힙니다. 반찬으로 쓰면 좋겠군요. =>주사기 =>허나 이것은 동일한 날에 '2번째'로 날아온 선물이기에 올려드리긴 했으나 배달은 되지 않았어요. =>반드시 날짜에 맞춰서 하루에 하나씩만 해주세요. 반드시 하루에 하나에요!
안으로 들어오라고 이야기를 하는 쇼의 말에 아키라를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동아리 안으로 들어섰다. 얼핏 둘러봐도 크게 부정하게 사용된 흔적은 없었으며 문제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같이 따라온 1학년 남학생의 표정은 여전히 긴장된 상태였다. 부장인 이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바라보며 아키라는 다시 한 번 살며시 눈동자를 굴렸다.
"확실히 크게 문제가 될 상황은 보이지 않네요. 역시 실적을 많이 남기는 동아리답네요."
물론 실적이 모든 것을 대변할 순 없었으나 실적이 있는 동아리와 실적이 없는 동아리는 아무래도 같은 선에서 대우받기는 힘든 법이었다. 개인의 생각도 생각이지만, 아키라는 학생회장이었으니까. 철저하게 회장의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부장에게 나중에 장부를 학생회실로 보내달라고 이야기를 하며 가만히 천천히 둘러봤다.
"이건 제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뒤이어 아키라는 근처 악기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리고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부원들을 다시 눈으로 천천히 훝어보다 모두를 바라보면서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학교 축제때 무대에 올라오실 건가요? 아니면 이번엔 쉬실건가요?"
학교 축제. 즉 가을에 있는 문화제에 과연 이들이 올라올지, 아니면 그냥 개인적으로 쉴지를 아키라는 질문하며 미소를 지었다. 만약 무대에 올라온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그 무대를 구경하러 갈 생각이었다. 기왕이면 무대 사회자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애초에 자신이 학생회장이니까 사회자를 해도 좋지 않겠는가. 그런 억지적 합리화를 하면서 아키라는 다시 눈을 약하게 반짝였다.
"네에-? 큰일이네요! 저 수영할 줄 모른단 말이에요. 제가 막 허우적거리다가 죽어도 매정하게 떠나실 생각이시군요. 냉혈한!"
나는 장난삼아 우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도 불쑥 드는 생각이 있는데, 인간들은 보통 죽음으로 잘 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우는 시늉을 멈추고 슬쩍 손을 내려 너의 눈치를 본다. 감은 눈의 좋은 점은 이렇게 상대방을 마구 관찰하여도 곧잘 들키지 않는 점에 있었다. 그런데 너는 내 장난보다는 이 좁은 오리배에 더 정신을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머리를 부딪혀 짜증을 부리고 또 욕을 내뱉다가 몸을 낑겨넣었다. 더운 날씨가 아닌데도 열이 오르는지 땀을 흘리더라. 아! 나한테 손수건이 있었으면 멋진 순정만화 장면을 연출해낼 수 있었을텐데! 나는 그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왜요- 오리배에 서로 앉아서 강 구경이라니 낭만적이지 않나요? 자, 짜증은 봄꽃 바람에 흘려보내고 저희 좋은 것만 봅시다. 꽃놀이라고 하죠? 놀이인데 즐겁지 않으면 슬플 걸요-"
나는 좋다고 생각했는데 너의 반응을 보니 또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다만 나는 마음 상하는 일 없이 너의 짜증과, 너의 황망함과 그리고 그 투덜거림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그렇게 감정이 풍부할 수 있을까? 턱을 괴고 몸을 굽히다가 느릿하게 답을 내놓았다. 질문의 답을 확실히 알고 있었으니 나는 우리를 에워 돌아가는 물줄기보다 거칠 것이 없다.
"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맞죠?"
나는 이렇게 요즘 인간들의 언어도 잘 알아듣고, 또 잘 사용한다. 6개월 전만 해도 사장된 언어와 그 위에서 피어난 새로운 언어 사이에서 길 잃고만 있었는데 요즘은 부쩍 자신감이 늘었다. 나, 제법 인간다울지도? 나는 그래서 안 그래도 올라가 있을 입꼬리를 한층 올리며 다리를 움직였다. 조금 짓궂은 대답이 흘러나왔지만 나는 그런 것에 굴하지 않기로 했다. 단순하고 여유로운 것이 내 성격의 장점 아니었던가.
"에에-? 야박해! 나쁜 사람! 다음에는 반가워해주세요. 그때부터는 구면이잖아요."
어느새 오리배는 강의 정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물결이 빠르지 않은 만큼 도움은 못되었지만, 반대로 방해도 되지 못했기에 가능한 속도였다. 나는 잠시 속도를 줄이고 등을 기댔다. 속도 차이가 있어서 방향이 조금 틀어진 것 정도는 무시해도 되는 사소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근데요. 저희 배 침몰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나는 아까부터 신경쓰이던 부분을 너에게 일러준다. "와- 타이타닉 같고 좋네요-!" 나는 실로 기뻐서 박수를 쳤다. 어쩌면 내 오랜 친구가 그토록 일러주던 '흔들 다리 효과'를 시험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아쉬운 표정을 내비치지만 그래도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는 것이 나름 그의 처세술이었다. 어느 한 동아리를 특별히 더 좋게 볼 수는 없다는 듯, 나름대로 학생회장으로서의 고집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마음은 영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정말로 애써 표정을 관리하는 와중 아키라는 이내 전해지는 제안에 정말로 환한 표정을 지었다.
"괜찬은가요?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한 번 구경해보고 싶네요. 동아리의 활동 모습을 직접 보는 것도 학생회장의 업무 중 하나니까요." "회장님?"
1학년 남학생의 눈빛이 묘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정말 그거 업무 맞냐는 눈빛 공격이었으나 아키라는 애써 그 시선을 회피하며 헛기침 소리를 냈다. 엄밀히 말하면 업무 부분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동아리의 연습까지 모두 체크할 필요는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이전 무대에서, 그리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꽤 실적을 내고 있는 동아리에 대한 관심, 단지 그 뿐이었다.
"나카무라 씨에게는 비밀로."
쉿- 소리를 내면서 아키라는 다시 시선을 부장 쪽으로 돌렸고 쇼를 잠시 바라봤다. 전에 노래를 불렀던 것이 바로 저 학생이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침을 밝히던 광채도 바다 속으로 잠들었다. 노을빛 역시 끝이 났다. 별이 촘촘히 박힌 어두운 장박이 세상을 덮었다. 하늘이 내게 잠들 시간이라며 속삭이는듯 했다. 나는 다만 잠에 들지 않고 받은 선물을 늘여놓았다. 먼지 없는 탁자에 가디건을 잘 잡아 놓고 그 옆에는 떡이 들어있을 박스가 존재했다. 이제는 팔찌도 내게 왔구나.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탁자 앞에 앉았다. 나는 맛있게 생긴 토끼떡 하나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편지를 잡았다.
너는 누굴까.
나는 이제 네가 어떤 형태여도 어떤 존재여도 상관이 없고 궁금하기만 한 것이었다. 그 뿐일까. 나는 네 짧은 글에 너에게 웃어주었고, 또 함께 차도 마셨다. 이제는 무엇을 해줘야할지 모르겠다. 잠들지 못했다는 말에는 내가 너에게 뭘 해줘야할까?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떡을 입안으로 넘기며 결론을 내렸다. 어떤 마음으로 잠에 들지 못했냐고 물어야겠다. 그다음에는 무슨 생각을 하느라, 몇 번이고 수정하고 지워진 원본의 글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물어봐야겠다. 널 걱정하지 않는 내가 매정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태생이 이기적인지라 그것이 먼저 궁금하다.
나는 내 입안으로 떨어진 떡을 아주 천천히 씹었다. 인간의 몸으로 살면서 학습한 저작활동을 수행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냥 꿀꺽 넘겨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감각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강에게는 앙금도 없고, 퇴적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나는 받은 것에 미련이 없고, 그것이 자연인지라 전부 쓸어내버리는 것이 나의 일생이자 일상이었다. 당연히 역사라고는 없었다. 늘 새로운 것이었고, 사라질 것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떡을 꿀꺽 삼켰다. 입 점막을 지나고 목구멍 너머로 내려가는 음식은 형태를 잃고 시간이 지나면 그 잔재조차 찾을 수 없겠지. 떡뿐일까, 선물과 문구를 고르면서 고민한 시간, 일말의 상냥함, 뇌리의 스치는 상상과 약간의 온정들. 이곳에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어느 하나 없다. 100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말 필멸의 것들.
역시 아깝다. 너무 아깝다.
그래. 곧 사라질 것들은 전부 구내에 처박고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잘 배워두어서 요긴하게 써야겠다고, 나는 그래서 네가 궁금하다.
#마니또 답레랑 저번에 그렸는데 타이밍 안 맞아서 못 올린 가디건 입은 미즈미도 같이 올려봐~ ^0^
딱히 그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타입은 아니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미즈 아키라였다. 물론 학생회장으로서 너무 대놓고 공표할 순 없겠으나 이 정도는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손으로 살며시 안경을 올렸다. 아무튼 슬슬 모두들 연습으로 들어가려는지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키라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모두의 모습을 바라보려고 했다.
"아니요. 편하게 해주세요. 언제나 했던대로요. 괜히 힘을 꽉 주면 평소보다 실력이 더 안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오히려 너무 긴장을 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그는 그럴 필요는 없다는 듯이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진 모르나 이내 신호가 내려지고 음악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 곡은 무슨 곡인지 모르겠으나 확실한건 상당히 정열적이고 분위기가 있는 곡이라고 아키라는 생각했다.
'이건...'
고등학교 수준보다는 조금 더 높지 않나? 이전 사쿠라마츠리 때 들은 공연을 떠올리며, 그는 아무런 말 없이 공연에 귀를 기울였다. 특히 보컬의 실력이 상당히 좋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가만히 강한 눈빛을 보였다. 아무런 말 없이, 그저 활동하는 모습 그 자체에. 그렇게 집중하던 아키라는 음악이 끝날 무렵 두 손을 올려 크게 박수를 쳤다.
"훌륭하네요. 이 정도라면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겠는걸요. 다른 학생회 멤버들에게 들려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에요."
격하게 반응을 보이진 않았으나 그럼에도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찬사는 아키라가 보낼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만큼 지금 이 공연을 감명깊게 바라봤기에.
"특히 보컬 쪽이 목소리도 좋고, 실력도 괜찮네요. 다른 악기들도 그에 조화를 맞춰서 흐트러지는 것 없이 정말로 부드럽게 음이 이어지는 것 같고요."
부장의 말에 아키라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은 그의 보컬 실력을 두 번이나 보았으니까. 사쿠라마츠리 때, 그리고 바로 지금. 전문 프로의 실력이냐고 하면 그것에 대해서 답은 할 수 없었으나 적어도 자신 또래의 고등학생 레벨로 보자면 충분히 좋은 실력이 아니겠는가. 그에 대해서 아키라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확실하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일하러 가야하지 않냐는 그 말에 아키라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여기서 계속 시간을 보낼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아키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조금 더 보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동아리도 둘러봐야하니, 오늘은 이쯤에서 돌아가봐야겠네요. 일단 부정한 활동이 없는 것은 확인했고, 문화제때 나오는 것도 확인했어요. 그때까지 연습 힘내주세요."
이어 아키라는 슬슬 돌아가려는 찰나 쇼를 잠시 말 없이 바라보다 미소를 다시 한 번 작게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 한 마디를 살며시 남기면서 문 밖으로 나갔다.
"학생회장으로서는 표현하지 않겠지만, 시미즈 아키라로서는 개인적으로 팬이에요. 힘내세요. 오토하 씨."
/그렇다면 이렇게 막레를 드릴게요! 일상 수고하셨어요! 와! 쇼의 보컬을 직관으로 두 번이나 봤어!! 나랑 자리 바꾸자. 아키라. (멱살 짤짤)
이 마을에서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일도 즐거운 추억들을 쌓아가면서 당신의 머릿속에 내가 잘 박혀서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잊혀지지 않으면 언젠가 또 즐거운 일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전화를 끊은 스즈는 오랜만에 혼자 귀가하고 있었다. 보통 때라면 친구들과 같이 재잘거리며 돌아갔겠지만 오늘은 시간이 맞지 않아 이렇게 혼자. 혼자지만 이런저런 사람들과 전화도 하고 하면서 가다보니 혼자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오히려 가끔은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도 제법 운치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어라라~? "
뭔가 소란스러운 것 같았는데. 스즈는 고개를 갸웃하며 뭔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돌아간 고개에 여러 명이 웅성거리며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재밌는 일이라도 있는걸까 싶었지만 일단 자신의 일이 아니니 신경쓰지 않고 가던 길을 마저 갈 참이었다. 조금더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그대로 자신이 가던 길을 갔었겠지.
" 어라라라~? "
작은 여자아이가 보였고 그 곳을 둘러싸고 있는 꽤나 험악한 인상의 학생(?)들도 보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친다. 자신에게 불똥이 튀는게 싫고 괜히 이런 일에 휘말리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 스즈의 경우라면 그 반대였다. 천성이 그런 것인지 이런 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 흠, 흠흠, "
스즈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손에 쥐고 있던 이제 한 모금 남은 콜라를 쭉 들이키곤 집어던졌다.
" 야!!! "
스즈 자신도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는 잘 알고 있다. 조금은 불량해보이고, 놀기 좋아해 보이고, 몰려다니길 좋아하며 꺅꺅대기를 좋아하는 그런 여자아이. 머리가 밝고 색조화장이 짙은 눈가까지. 뭐라던 상관없다. 이게 귀엽고 또 이렇게 다니는 것이 즐거우니까. 캔을 집어던진 스즈는 성큼성큼 다가가 여자아이와 그 사이를 막아서곤 당당하게 올려다보았다.
" 뭔데 너희? 왜 여러 명이서 한 명을 괴롭혀? 진짜 구제불능 쓰레기야?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나랑 붙어볼래? "
봄을 알리는 꽃들이 세상을 화사하게 물들이던게 어제만 해도 생생했는데, 이른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인해 그 풍경도 조금씩 저물어가고 있다. 꽃잎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극성을 이기지 못 하고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탓에 길이 꽃잎색으로 물들었다. 그마저도 길을 걷는 사람들에 의해 색을 잃고 한때의 화려함은 점점 지난 날이 되어간다.
날이 흐린 탓인지, 요조라는 언제나 스스로 일어나던 것과 달리 양호 선생님이 깨우는 것에 의해 잠에서 깼다. 깨고서도 얼마간은 비틀거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 했다. 흐린 날은 꼭 이렇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 하듯, 온종일 흐리멍텅하고 어지럽다. 그래도 집에는 가야하니 어찌어찌 정신을 차린 요조라는 벽에 거의 기대다시피 하고 걸어서 교실로 돌아왔다. 드르륵, 열린 문 안에는 아무도 없다.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비틀대며 요조라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 그 자리, 책상 위에 놓인 편지와 선물을 깨달은 건 주저앉다시피 의자에 앉은 후였다.
"뭐야..."
잔뜩 말라 갈라진 목소리가 꼭 타인의 것처럼 낯설다. 콜록콜록,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오늘도 있는 편지를 집어든다. 처음 펼쳤을 때는 글자를 알아보지 못 해 눈을 가늘게 좁히다가, 하품 한번 하고 눈물로 눈을 씻고 다시 보니 제대로 보인다. 처음에 비하면 꽤 간단해진 편지는 눈을 잠깐 굴린 걸로 금방 다 읽는다. 다 읽은 편지는 잠시 내려놓고, 함께 있던 손부채를 집어든다.
눈이 녹으면 봄이 오고, 꽃이 지면 여름이 온다... 인가.
"여름이, 올 뿐... 이지... 가을도... 겨울도..."
풍경은 남아도 시간마저 남아주진 않으니, 요조라에겐 계절 역시 그저 흘러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봄이라 하여 큰 감흥 없고, 곧 올 여름 역시 늘 맞는 계절일 뿐이다. 올해도, 분명 그럴 것이다.
"...그래도..."
요조라는 작게 중얼거리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한 손에 손부채를 쥔 채 엎드려 작게 숨을 내쉰다. 유달리 퀭한 눈을 두어번 깜빡이다가, 조금만 더 쉬었다 가자고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엎드린 요조라의 옆 창문 너머에선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토독토독 유리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조용한 교실을 살그머니 채우고 있었다.
코우사카 시니카는 예언자가 아니다. 비어 있다- 그 말 그대로다. 불빛을 잃어버린 연등 껍데기들이 취하는 형태 중 매사 비관적이고 삭막한 말수 적은 불량학생의 형태로 남은 이 갈색 왜성은 상대방의 뒤를 내다보는 시력마저 잃어 눈앞에 둔 것만으로 상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눈을 감은 것은 히키이건만, 오히려 시니카의 시력이 더 나쁠지도 모르겠다. 시니카가 보고 있는 것은 그저 자신처럼 야미나베에 입맛에 심히 맞지 않는 것이 섞여들어가는 바람에 토를 해버린, 자기 또래로 보이는 기모노 차림의 아이의 모습일 뿐이었으니까. 아마 그녀는 히키가 자신의 선배인 줄도 모를 것이다. 내 나이가 많아보이나요? 하는 말에 시니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히키가 자신의 선배라고 하면 놀랍게 여기지 않을까? 그 뒤에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세월을 살아오며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겪어온 신이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말이다. 이렇게 짧은 안목으로 그렇게 많은 것을 담고 싶어하니, 이런 모습으로 무너지는 이들이 많은 것도 이상하지 않다.
상술했듯, 불빛을 잃어버린 연등 껍데기들은 저마다의 형태로 무너진다. 원래 취하고 있었던 모양의 탓도 있겠고, 그때르깨 흔들리는 물살이 그 모습에 영향을 끼치는 탓도 있을 것이다. 지금 눈앞에 놓인 이 껍데기는 비관적이고 삭막한 말수 적은 불량학생의 형태로 남았으되... 그러나 히키의 발걸음이 불안정하거나 하지는 않는지 히키의 발치를 흘끗 내려다보는 시선에서, 껍데기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조금 유추할 수 있겠다.
히키가 자신의 몸을 가누는 데 별 이상이 없어보이자, 시니카는 손을 들어 가볍게 머리를 긁적이고 군말없이 히키의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마니또 선물을 학생회에 맡기고 온 시니카는 가만히 책상 위에 놓인 쪽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상 좀 피고 당당하게 다녀, 하는 구절에 그녀의 눈이 멎어 있었다. 자신의 마니또가 들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시니카는 나직이 차가운 숨을 내쉬었다. 파인애플향의 숨이 책상 위에 하얗게 쏟아지고 나서, 시니카는 차갑게 말했다.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들을 사람도 없으니까.
"...이게 인상 핀 건데."
또 인상 이야기다. 사실, 슬슬 부아가 치밀려고 했다.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배배 꼬이기 전에도 그녀의 뱀같이 노려보는 날카로운 눈빛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았고,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고 나서도 그녀에게 걸려오는 시비거리 레퍼토리 중 가장 흔하게 보이는 것이 그녀의 눈빛이며 인상이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바뀐 것은, 가늘게 째진 입꼬리를 숨기기 위해 예쁘게 웃는 법 따위를 유튜브에서 찾아보며 배워서 가식적으로 꾸미고 다니던 미소가 사라진 것뿐이었다. 사실, 그 미소도 그렇게 효과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해도 엔젤전설의 기타노 세이치로 모양을 벗어나지를 못했으니까. (이제 와선 가장 존경스러운 캐릭터였다. 어떻게 그런 대접을 받고 살면서 한결같이 상냥한 사람일 수 있는지.)
그래서 누가 자신의 인상을 지적하면 꽤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시니카였으나, 지금은 신경질 같은 걸 부릴 사람도 없고, 신경질을 부릴 이유도 없고, 신경질을 부릴 기력도 없고, 무엇보다 어찌됐건 이 퉁명스러운 호의도 호의는 호의니까. 그녀는 쪽지를 집어들어 공책 한 켠에 끼워 보관해놓았다.
시니카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마니또가 놓고 간 초콜릿을 집어먹었다. 초콜릿,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다.
>>923 이쯤에서 밝히는 시니카의 모티브의 일부.. :3 다만 세이치로는 어마어마한 강철멘탈 마이페이스지만 시니카는 그렇지 않다는 게 함정이지. 사실은 세이치로와 비슷한 강철멘탈의 장신 운동부 여캐로 내려고 했지만, 요즘 롤의 벡스에 꽂혀서 음침한 아웃사이더 느낌을 반쯤 섞었더니 캐릭터가 좀 다루기 힘들게 됐어 <:3 앗 하나만 털랬는데 두개 털렸다
한때는 음반을 수집했던 적도 있다. 유튜브에서 들어도 되지만, 왠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물질적으로 좋아하는 게 이른바 '힙해보여서' 앨범을 직접 구매하는 것을 선호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그런 것도 피곤해서 하지 못하겠다. 자연스럽게, CD 플레이어에서 유튜브로 옮겨가게 됐다. 힙스터라곤 하지만 CD의 음질과 유튜브의 음질을 따지기까지 하는 황금귀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유튜브에선 시니카의 취향에 맞는 이런저런 곡들을 추천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 시니카에게 있어 이번 선물은 꽤 특이한 것이었다.
우연이겠지만, 그것은 한때 시니카가 가장 좋아했었던 밴드의 음반이었고, 거기다 시니카가 마지막으로 수집했던 그들의 앨범 바로 다음에 발매된 앨범이었다. 물론 그 안에 수록된 곡들은 다 유튜브를 통해서 들어보았고, 유튜브로 듣나 CD로 듣나 거기서 거기일 거라고 시니카는 생각했기에 그 선물 자체로는 그녀에게 별다른 의미 같은 것을 주지 못했다.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라는 문장도 시니카에게 그렇게 감명깊은 문장은 아니었다. 이미, 자신은 다 때려치운 거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고 있었기에 더 뭔가 때려치울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때려치울 것도 없는데 때려치우고 싶은 기분이 들면, 유튜브로 음악을 들으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것을 바라보며, 시니카는 문득 CD 플레이어를 하나 새로 마련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시니카는 지금까지 이어폰을 애용해오고 있었지만, 얼마 전부터는 이따금 헤드셋을 끼는 모습도 보여주게 되었다. 스카잔을 입은 무심한 양키의 목에 걸려있는 헤드폰이라. 제법 그럴싸한 선물이지 않은가.
벚꽃이 지는게 여간 아쉬운게 아닌가보다. 하지만 계절이 가는 것은 순리이니 그것을 거스를 수는 없다. 봄은 적당한 때에 와서 적당한 때에 가는 것이 좋고 여름도 적당한 때에 오는 것이 좋다. 머리에 꽂은 벚꽃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히 걷고 있으니 이번에도 리리가 핸드폰을 가져온다.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서 내쪽으로 가져오는 것을 보니 아까 내가 한것처럼 찍을 모양인가 싶었다. 나도 같이 브이자를 그리자 찰칵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 핸드폰에서 라인 수신음이 들려왔다.
" 뭐, 그렇게라도 같이 있고 싶다면 어쩔 수 없나~ "
장난스런 표정과 함께 머리를 톡톡 두드려준 나는 편의점으로 와다닥 달려들어가는 리리를 따라서 천천히 들어간다. 편의점에 들어갔을땐 이미 과자를 한아름 들고있는 리리의 모습이 보였다. 잠에 잘 들게 해주는 물건을 만들어줄테니 과자를 잔뜩 사달라는 말도 덧붙였지만 리리가 들고 있는 과자는 너무 많았다.
" 다음에 또 사면 되니까. "
그래도 내 말은 웬만해선 잘 듣는 동생이라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며 남길 과자와 사갈 과자를 엄선하기 시작했다. 과자 콘테스트라도 진행하는 것인지 눈빛이 예사롭지 않던 고민의 시간은 이내 그 결정을 끝마쳤는지 아까보다 적은 과자를 안고서 내 옆으로 다가왔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리리가 한참 고민하던 과자 두어개를 집어서 가져와 계산을 하면서 말했다.
" 항상 말하는거지만 무리하지 말고. 알겠지? "
내가 부탁했다고 막 너무 심혈을 기울이거나 그러지 말라는 뜻이다. 계산을 끝마친 과자들이 봉투에 담기고, 그것을 받아는 나는 인사와 함께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이미 한밤중이라 밝은 달이 하늘을 비추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보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 뭐, 별 수 있나.
" 집에 가볼까~. "
그렇게 작은 콧소리를 흥얼거리면서 이것저것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는다.
얼마전부터 학교가 시끌시끌하다 싶더니 그 이유를 이제 알아버렸다. 마니또 이벤트가 열린다나 뭐라나. 맨날 학교에서 잠만 자는 나였기에 딱히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누군가의 꼬드김으로 인해서 결국 참여하고 말았다. 내가 주는 사람도 있고, 나에게 주는 사람도 있을텐데 ... 내가 주는건 그렇다치고 항상 학교에서 잠만 자고 있는 나에게 뭐라도 줄껀가 싶었지만.
" CDP? "
어느날 마니또 선물이라고 온 것은 약간 연식이 있어보이는 CDP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CDP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고, 애초에 이 CDP에서 음악을 나오게해줄 CD가 나에게는 없었기에 마음만 주는 선물인가 싶어서 가방에 잘 넣어두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다음날의 선물을 받고서야 왜 CDP를 선물해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 이걸 들어보라고 준거였구나. "
CD를 앞뒤로 뒤집어가며 확인했지만 어딘가 앨범에 들어있을법한 CD는 아니었다. 그냥 비어있는 CD에 따로 음악을 넣어둔 모양새라 무슨 노래가 들어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자고 나중에 확인해보자는 생각에 가방에 넣어두고 그대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어서 다른 CD가 선물로 온 것을 확인해서야 어제 받은 CD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카페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와서 방에 들어간다. 언제나처럼 천구가 떠있는 방에서 침대에 몸을 던진다. 오늘은 유난히 손님이 많아 힘들었고 너무 말을 많이해서 그런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정리는 해둬야하니까 억지로 몸을 일으켜 구석에 던져둔 가방을 가지런히 두려고 했다.
' 투두둑 '
하지만 가방 지퍼가 열려있던걸 못봐서 그런가 내용물이 쏟아졌고, 그 중엔 선물로 받았던 CDP와 CD 두장도 있었다. 아, 이거 받았었지. 기왕 받은거 들어나보자는 생각에 방에 있던 스피커에 CDP를 연결하고 CD를 넣어본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고 쪼그려 앉아서 음악을 들어보던 나는 살짝 웃으면서 생각했다.
' 나쁘지는 않네. '
오늘은 이대로 잠들까했지만 음악을 들으니 좀 힘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혼자 들으라고 했으니 방에서 작게 틀어두기로 했다. 방을 지나가던 리리가 들어와서 같이 듣는다면 그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잔잔한 음악소리와 함께 나는 의자에 앉아서 천구를 바라본다. 동쪽의 백조자리가 밝게 빛나는 것을 보니 슬슬 여름이 오나보다.
아직 전해지지 않는 세번째 안녕, 협회장님! 나는 요즘 협회장님이 내 주변에 있지 않을까ー 의심하고 있어. 딸기 편지도 블루베리 편지도 누구한테 보여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과일 친구 선물을 피해간 거냐구. 편지를 적고 있을 때 옆에 있었던 거 아닐까?! 협회장님이랑 같은 반인 건 아닐까?! 달콤상콤협회장님으로 만들 기회였는데 고양이가 돼 버렸잖아. 정체가 궁금해지는 고양이가 된 거라구! 그런 고양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기는 한데. 협회장님은 체셔야?
오늘의 편지지는 검은 고양이가 그려져있는 거로 골랐어. 고양이가 그려진 편지지는 종류가 다양해서 어떤 고양이로 할까 고민했는데, 나는 검은색을 좋아하니까 검은 고양이야. 협회장님은 무슨 색 고양이야? 협회장님이 누군지 알게되면 맞출 수 있을텐데!
나는 협회장님을 보지도 듣지도 못 하지만, 그래도 협회장님이 전해주고 있는 물건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구. 아직 봄인데도 겨울나기는 벌써 끝났어! 그러니까 보인다라고는 자신 못해도 닿는다고 자신해도 돼. 나, 책방에서 아르바이트 하니까 책은 엄청 많이 보지만 정작 읽지는 않아. 자고 싶으니까! 하지만 협회장님이 준 책은 읽고 있다구. 물론 몇 장 안 읽었어! 근데 벌써 고양이랑 나랑 같은 점을 찾은 거 있지. 같은 점이 뭔지 만나면 알려줄 수 있을까? 알려주고 싶은데 못 알려주는 이상한 일이 있어. 협회장님이 정말 체셔라서, 약속 하나 해주면 알려줘도 괜찮겠지만!
책이랑 친해져서, 협회장님을 만날 때까지 책을 뒤짚어 덮는게 목표야. 그럼 목표 달성해서 만날 때까지 나 힘내! 협회장님은 체셔가 될 수 있게 노력하면 재밌지 않을까? 무표정한 얼굴 말고 웃는 얼굴 고양이 하는 거야. 협회장님도 힘내서 만나자!
분명히 자신은 이번 마니또에 참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야 참여를 하고 싶었으나 어쩌겠는가. 학생회 멤버들은, 특히 자신은 마니또를 짝지어준 이였는데. 물론 어디까지나 공평하게 사다리타기로 결정했다고는 하나 자신이 참여를 하게 되는 시점에서 자신은 자신의 마니또가 누구인지 알 수밖에 없었으니 마니또의 의미가 없었다. 듣자하니 마니또는 어디까지나 비밀 친구인 모양이었으니까. 학생들이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만큼 좀 더 교류를 하고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개최한 이벤트에 자기 자신이 바로 끼이는 것도 참 이상한 노릇 아니겠는가.
허나 그런데 이건 뭐란 물인가. 페로로로쉐. 씹는 맛이 있는 그 고급 초콜릿이 아니던가. 이걸 자신에게 선물한 것이 누구인진 모르겠으나 아키라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마니또에 참여하지 못해서 아쉬울 것 같아서 보냈다라. 물론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자신에게 이런 것을 올 것을 바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름조차도 쓰여있지 않고 기본적인 데이터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니 찾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 달콤한 것을 버려야 할 이유는 없었다.
천천히 씹으니 아삭아삭한 맛과 더불어 안에 녹아있는 초콜릿이 입 안으로 녹아내리는 것 같아 상당히 달았다. 편의점에서 판 것이 아니라 제법 고급진 곳에서 산 것인지. 아니면 편의점 산인데 우연히 고급산이 들어온건진 모르겠으나 달콤한 것이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필요 이상으로 너무 달콤한 것은 먹기 힘들었으나 이 정도면 초콜릿으로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선물해주는 이도 있으니 좀 더 노력해야겠네. 고마워요. 누군지 모를 분."
아무도 듣지 못할 혼잣말을 작게 중얼거리며 아키라는 페로로로쉐를 하나 더 입에 집어넣었다. 이건 다른 학생회 멤버들과 나눌 생각은 없었다. 자신에게 온 마니또 선물이었으니 오로지 자신의 것이었기에.
/그냥 짧게 독백을 한 편 올리면서 갱신할게요!! 이제 하루만 더!! 금요일! 주말엔 놀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