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또 행사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슬슬 학생회장으로서 가볍게 동아리의 상태를 전체적으로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가볍게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직속 임원 한 명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1학년 남학생인 그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아키라의 뒤를 따라왔고 아키라는 긴장할 거 없다는 듯 가볍게 미소를 보였다.
일단 어디로 가볼까? 고민을 하던 그는 문뜩 사쿠라마츠리 때 공연을 했던 경음악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평소엔 어떻게 연습을 하고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아키라는 경음악부, 즉 셀레스티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단 안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보아 안에 부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목소리를 정리한 후에 부실의 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안에 계신가요? 학생회장인 시미즈 아키라입니다."
부정한 뭔가를 하지 않는 한, 저 문이 닫히는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아키라는 가만히 상황을 바라봤다. 만약 열지 않고 버틴다면 마스터키를 이용해서 문을 열면 될 일이었다. 물론 그럴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방과 후 시간. 경음악부실의 부활동은 오늘도 요란하다. 방음이 되긴 하지만, 틈새로 새어나오는 연주와 노래에는 그야말로 열정이 가득 차있었다. 그건 아키라가 부실의 문을 두드렸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연습이 끝남과 동시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두꺼운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말은 그 손님이 학생회장임을 알려주었다. 부원들은 전부 지친 몸을 달래느라 서로의 눈치만 볼 뿐이었다. 결국 가만히 서서 숨을 고르던 쇼가 설렁설렁 걸어가 부실 문을 밀어젖혀야만 했다. 문이 열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문 밖에는 아키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시 학생회 소속일까, 1학년 남학생이 같이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인사를 마친 쇼는 일단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학생회장이 여기까지 올 이유라면… 동아리의 상태를 살피러 불시에 찾아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키라를 따라온 1학년 남학생은 아주 살짝 눈치를 보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눈에 담는 아키라는 괜찮다는 듯,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아직 학생회 일에 익숙하지 않고 이렇게 같이 나오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은 1학년을 조금 더 그렇게 달래주던 아키라는 다시 앞을 바라보며 쇼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한 후에 미소를 지었다.
"별 건 아니고 동아리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혹시 부정한 일은 없는지 체크를 하려고요. 가끔 있거든요. 어느 순간,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안을 조금 이상하게 쓰는 이들."
담배, 술, 그외 기타 등등. 여러가지 사례를 이야기하는 아키라는 가만히 부실 안을 바라보려고 했다. 일단 다른 부원들도 있는 것 같았으나 쇼가 나왔다는 것은 쇼가 나름대로 동아리에서 위치가 있는 이는 아닐까. 그렇게 추측시키기 충분했다. 일단 물어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쇼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오토하 씨가 지금 총 책임자인가요? 아니면 부장님이 따로 계신가요? 아. 혹시 한창 연습중이라서 외부인이 들어오기 힘들다면 다음에 찾아올까요?"
물론 마지막은 어디까지나 그냥 선택지에 넣은 의미없는 물음일 뿐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아키라의 눈은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듯이 그 빛을 날카롭게 반짝였다.
1. 보내드린 그것은 마음에 드셨습니까. 봄이 끝물인 듯, 낮해가 부쩍 뜨거워졌습니다. 나가실 적 조심하시길. 모쪼록. 본인 글 적는 재주가 없어 그저 안부만 묻는 것에 양해 바랍니다. 곱게 반 접은 편지 한장과 말차잎&홍차잎(얼 그레이) 틴케이스 세트를 후유키에게. =>카시아리
2.에니시에게 벚꽃잎을 넣은 레진 키링을 줍니다.
메시지-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은 것들로만 만들어주셨습니다. =>금록
3.To.테츠야 선풍기는 유용하게 썼으려나? 아무래도 날이 엄청 덥지는 않다보니까 선풍기는 여름이 되어서야 조금 힘을 발휘하겠네. 슬슬 봄이 끝나가고 있지만 이대로 봄을 끝내기엔 아쉽지? 그래서 벚꽃을 말려서 코팅해봤어. 이번엔 실용적인 선물이 아니라서 아쉬우려나. 하지만 이런 것들도 분명 가치가 있을꺼라고 생각해. 이번 해의 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말이야.
[테츠야의 책상 위에 봉투가 하나 놓여있다. 봉투 안에는 짧은 편지와 함께 벚꽃이 코팅 되어있는 채로 들어가있다.] =>몰?루
4.토와, 내 소중한 친구에게. [오늘도 안녕, 오늘은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날이야.
오늘로 벚꽃은 안녕이구나.. 비가 꽃잎을 때려서 호득호득 떨어뜨리고 있어! 이제 비가 그치면 벚꽃 대신 연두색 잎사귀가 파릇파릇 보이겠지? 아쉬운 날이지만, 그래도 특제 스트레칭으로 토톳치가 벚꽃을 봤으니 야마다찌는 만족하고 있어! 그리고 땅에도 물이 닿았으니 분명 예쁜 꽃이 피어날 거고! 벚꽃은 내년에 또 보도록 하자! 그때는, 토톳치가 대학생일 테니 편지가 가지 못하겠지만..
그런데, 오늘은 누가 우는 날일까? 비가 하루종일 그치지 않아. 천둥은 꽝꽝 내리치고 있어. 음.. 아주아주 슬퍼서 우는 날일지도 몰라. 테루테루보즈를 달아도, 공양을 드려도, 비 님, 그치지 않거든.
혹시 토톳치가 슬픈 건 아닐까? 우리는 모두, 날 적부터 울면서 태어나는 슬픈 사람이니까.
아니면 토톳치 설마!
공부가 어려워서 우는 거야?! 수학은 역시 어렵지..! 응응, 농담이야. 수학은 야마다찌만 어려운 걸로 할게..
혹시라도 토톳치, 슬퍼도 무조건 참기만 하면 안 돼. 무작정 참아버리면 다음엔 홍수가 펑펑 들이닥칠 거야. 슬픔 님은 불필요한 게 아니라, 가끔은 필요한 거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비가 오는 걸 핑계 삼아 마음껏 울어도 좋아! 비 님이 가려줄 테니까!
응? 어떻게 아냐고?
그건-
야마다찌의 영업 비밀이야!
야마다찌랑 약속하자, 슬플 때는 맘껏 슬퍼하기로.
오늘의 날씨는 펑펑 눈물비 오는 날, 내일의 날씨는 맑음. 오늘 하루도 우리, 행복하게 지내자! 행복으로 하루를 가득가득 채워버리는 거야.
너를 어딘가에서 아주 집요하게 지켜보고 있는, 비밀친구 야마다!] 🌧야마다는 책상 위에 선물을 두고 도망쳤다. 오늘은 천의 자수도, 장식으로 매단 홍백 새끼줄도. 모두 직접 꿰매고 땋은 테루테루보즈 옆으로 한 손에 쥐고 털어먹을 수 있는, 초코 베이비가 있다.🍫 =>아마다
5.아미카에게 벚꽃 마카롱(3개입) 선물 =>12시 30분
6.코세이에게 보내지는 두 번째 CD. 역시나 공CD를 사서 구운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sG--g1gMrGo 가장 먼저 나온 트랙은 이것이지만, 이것 말고도 비슷한 노래가 몇 곡쯤 더 들어있다. 이번에는 짧은 쪽지가 같이 동봉되어 있다. 귀에 맞으시면 다행이겠네요. 혼자 들으세요. 누군가 이것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들으셔도 괜찮아요. =>제우스
7.츠무기에게 도토리 한 알. 그리고 옅은 청록색 포장지로 감싸져있는 납작한 상자. 포장지 겉에는 푸른 나뭇잎 모양 포스트잇이 붙어있습니다. 적혀있는 내용은 'の'. 포장을 벗기면 검도 면수건(호면을 쓰기 전 머리에 쓰는 수건)이 들어있습니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검은색의 깔끔한 디자인입니다. =>도토리씨
9.오늘은 어땠어? 나는 오늘 문득 창 밖을 봤는데 꽃이 지는게 생각보다 슬프더라. 그래도 여름이 온다는 거겠지? -견우 (작은 손부채가 동봉되어 있다.) =>견우
10.회장님은 마니또를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워 하실 것 같아 익명으로 초콜릿을 한 통 첨부할게요. (페로로로쉐가 한 통 녹색 박스 안에 들어있다.) =>누군진 모르지만 일단 감사드리며 아키라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포로로로쉐를 혼자서 맛있게 까먹었답니다!! 감사해요.
11.코로리에게 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를 선물.
나츠메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어리석은 인간들의 군상을 묘사하는 내용의 책입니다. 과연 자신은 다른이에게 어떻게 비치는걸까 생각하면 여러 생각이 들곤 합니다만 저는 당신에게 어떻게 보일까요? 과연 얼굴도 이름도 밝히지 않은 저는 보인다라고 자신할 수 있는걸까요?
오늘만큼은 무표정한 얼굴로 인간을 멍하니 바라보는 고양이가 되어 당신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보냅니다. 냥. =>전국방콕협회장
12.스즈에게
하얗고 탱글탱글한 행인두부. 동그란 컵에 담겨 있다. 맨 위에는 딸기나 망고 같은 단 과일이 잘게 잘라져 올라가 있다.
"내 이름에 걸맞은 선물 하나쯤은 보내야 할 것 같아서 보내. 맛있게 먹어. 마니또가 끝나면 같이 먹으러 가고 싶어.
내가 누군지 짐작이 가? 최대한 들키지 않게 애쓰고 있어. 그래도 요즘은 뭘 보내야 할지 매일매일이 고민이야. 즐겁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너도 내 선물이 즐겁니?" =>푸딩 =>이거 머릿말 안 붙어있었는데 이번만은 그냥 올려드리겠습니다.
13.「아직은 좀 이를지 모르나 봄볕이 꽤 뜨겁지 않습니까. 그러나 양산에 하늘 풍경 아주 가려지는 일도 역시 아쉬우니, 부족하나마 대신하여 드리운 꽃 그림자 연연(娟娟)히 보아주길 바랍니다.」 ─푸른 잔꽃 무늬가 수놓인 흰 양산이 마사히로의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유즈
14.오리박사가 히키에게 유리병 종이학 100마리를 보냅니다.
「오리박사입니다. 마니또를 시작하게 된 첫 날부터 꾸준히 접어서 100마리를 채웠어요. 원래는 1000마리를 해야하지만 1000마리를 채울 자신이 없어 100마리로 합의봤답니다. 그리고 문병갈때 하는 선물이지만 의미가 중요한거니까 건강과 안전을 기원하면서 한 마리 한 마리를 접었어요. 선물을 받을 당신을 볼 수 없다는게 슬프면서도 재밌네요. 」 =>오리박사
15.오토하 쇼님께
늦봄, 문안 인사 드립니다.
봄은 어디로 간 것인지 추위와 더위가 이어지는 매일 속에서 이리 편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은 저에게는 몇 되지 않는 즐거움입니다. 이리 말하면 마치 노인네처럼 보입니다만, 저 역시도 일단은 학생을 하고 있는지라 어쩌면 오토하님보다는 어릴지도 어쩌면 그 반대로 같은 나이임에도 이러한 조금 어른스러운 척을 하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에 물드는 것이라,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그때 그 장소에 있는 것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고 합니다. 오래전 저의 스승님께서는 교우관계에 있어서 훌륭한 벗을 가진 인물은 그에 맞는 훌륭한 친구로서 있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에 걸맞게 그 벗 역시도 상대에게 맞는 훌륭한 벗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결과, 비슷한 모양새와 성격을 갖게 되어 더더욱 친밀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아직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로 이리 편지를 보내는 것이 어찌 보면 흉흉하다고 느껴지는 것 역시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이렇게 아직 만나지 못한 이들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조금씩은 친밀해져 서로 닮게 되는 것이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도 따뜻한 바람이 불기를 빌며 -전신주 추신, 얼마 전 재미있는 소설을 찾았습니다. 아쉽게도 저의 벗은 책에 흥미가 없는 분들이 많아, 이런 방식으로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어떨까 하여 이 책을 동봉합니다. [타니자키 준이치로作, 고양이 쇼조와 두 여자 동봉] =>전신주
16.[글씨 위로 보이지 않게 검게 칠해진 흔적이 남아있다. 그 아래 정갈한 글씨체로 '친구에게 고운말을 쓰자.' 는 문장이 또박또박 적혀있다. ] [난 꽤 좋다고 생각해서 적었는데 적지 말라네. 살아가면서 (다시 검게 지워져 있지만 자세히 보면 엿같은 일이라고 쓰여있다) 얼마나 많은데. 분명히 다 때려치우고 싶을때 꽤 끝내주는 선물일거라 자부해. -Gamer]
시니카의 책상위에 헤드셋과 록 음반이 상자안에 저번과는 달리 길쭉하지만 유려하다고도 할 법한 필기체로 쓰인 쪽지와 함께 담겨있습니다. 그 옆을 보니 구석진 자리에 작게 뭉쳐진 쪽지가 보이네요.
[저번에 이걸 보내려 했는데 선생이 반대했어. 초콜렛이 더 좋을것 같다나 뭐라나.]
이번에는 눈에 익숙한 거친 필체입니다. =>Gamer =>이것도 머릿말 안 붙어있었는데 다음엔 꼭 붙여주세요!
17.미즈미에게 팔찌를.
https://i.postimg.cc/yNr2kpsG/image.jpg
[어떤 것을 네게 선물할까. 편지에는 무슨 말을 적을까. 어제는 밤새 잠들지 못했어.] =>헤세
(번외편) 후미카에게 연근 조림을 선물. 직접 만든 연근조림 같습니다. 그나저나 맛은 아주 좋네요. 조림 특유의 단맛을 절묘하게 줄여 기분 좋게 혀에 맞고, 연근은 너무 익히지도 너무 날 것도 아니어서 식감이 살아있는 채로 잘 씹힙니다. 반찬으로 쓰면 좋겠군요. =>주사기 =>허나 이것은 동일한 날에 '2번째'로 날아온 선물이기에 올려드리긴 했으나 배달은 되지 않았어요. =>반드시 날짜에 맞춰서 하루에 하나씩만 해주세요. 반드시 하루에 하나에요!
안으로 들어오라고 이야기를 하는 쇼의 말에 아키라를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동아리 안으로 들어섰다. 얼핏 둘러봐도 크게 부정하게 사용된 흔적은 없었으며 문제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같이 따라온 1학년 남학생의 표정은 여전히 긴장된 상태였다. 부장인 이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바라보며 아키라는 다시 한 번 살며시 눈동자를 굴렸다.
"확실히 크게 문제가 될 상황은 보이지 않네요. 역시 실적을 많이 남기는 동아리답네요."
물론 실적이 모든 것을 대변할 순 없었으나 실적이 있는 동아리와 실적이 없는 동아리는 아무래도 같은 선에서 대우받기는 힘든 법이었다. 개인의 생각도 생각이지만, 아키라는 학생회장이었으니까. 철저하게 회장의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부장에게 나중에 장부를 학생회실로 보내달라고 이야기를 하며 가만히 천천히 둘러봤다.
"이건 제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뒤이어 아키라는 근처 악기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리고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부원들을 다시 눈으로 천천히 훝어보다 모두를 바라보면서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학교 축제때 무대에 올라오실 건가요? 아니면 이번엔 쉬실건가요?"
학교 축제. 즉 가을에 있는 문화제에 과연 이들이 올라올지, 아니면 그냥 개인적으로 쉴지를 아키라는 질문하며 미소를 지었다. 만약 무대에 올라온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그 무대를 구경하러 갈 생각이었다. 기왕이면 무대 사회자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애초에 자신이 학생회장이니까 사회자를 해도 좋지 않겠는가. 그런 억지적 합리화를 하면서 아키라는 다시 눈을 약하게 반짝였다.
"네에-? 큰일이네요! 저 수영할 줄 모른단 말이에요. 제가 막 허우적거리다가 죽어도 매정하게 떠나실 생각이시군요. 냉혈한!"
나는 장난삼아 우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도 불쑥 드는 생각이 있는데, 인간들은 보통 죽음으로 잘 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우는 시늉을 멈추고 슬쩍 손을 내려 너의 눈치를 본다. 감은 눈의 좋은 점은 이렇게 상대방을 마구 관찰하여도 곧잘 들키지 않는 점에 있었다. 그런데 너는 내 장난보다는 이 좁은 오리배에 더 정신을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머리를 부딪혀 짜증을 부리고 또 욕을 내뱉다가 몸을 낑겨넣었다. 더운 날씨가 아닌데도 열이 오르는지 땀을 흘리더라. 아! 나한테 손수건이 있었으면 멋진 순정만화 장면을 연출해낼 수 있었을텐데! 나는 그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왜요- 오리배에 서로 앉아서 강 구경이라니 낭만적이지 않나요? 자, 짜증은 봄꽃 바람에 흘려보내고 저희 좋은 것만 봅시다. 꽃놀이라고 하죠? 놀이인데 즐겁지 않으면 슬플 걸요-"
나는 좋다고 생각했는데 너의 반응을 보니 또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다만 나는 마음 상하는 일 없이 너의 짜증과, 너의 황망함과 그리고 그 투덜거림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그렇게 감정이 풍부할 수 있을까? 턱을 괴고 몸을 굽히다가 느릿하게 답을 내놓았다. 질문의 답을 확실히 알고 있었으니 나는 우리를 에워 돌아가는 물줄기보다 거칠 것이 없다.
"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맞죠?"
나는 이렇게 요즘 인간들의 언어도 잘 알아듣고, 또 잘 사용한다. 6개월 전만 해도 사장된 언어와 그 위에서 피어난 새로운 언어 사이에서 길 잃고만 있었는데 요즘은 부쩍 자신감이 늘었다. 나, 제법 인간다울지도? 나는 그래서 안 그래도 올라가 있을 입꼬리를 한층 올리며 다리를 움직였다. 조금 짓궂은 대답이 흘러나왔지만 나는 그런 것에 굴하지 않기로 했다. 단순하고 여유로운 것이 내 성격의 장점 아니었던가.
"에에-? 야박해! 나쁜 사람! 다음에는 반가워해주세요. 그때부터는 구면이잖아요."
어느새 오리배는 강의 정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물결이 빠르지 않은 만큼 도움은 못되었지만, 반대로 방해도 되지 못했기에 가능한 속도였다. 나는 잠시 속도를 줄이고 등을 기댔다. 속도 차이가 있어서 방향이 조금 틀어진 것 정도는 무시해도 되는 사소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근데요. 저희 배 침몰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나는 아까부터 신경쓰이던 부분을 너에게 일러준다. "와- 타이타닉 같고 좋네요-!" 나는 실로 기뻐서 박수를 쳤다. 어쩌면 내 오랜 친구가 그토록 일러주던 '흔들 다리 효과'를 시험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아쉬운 표정을 내비치지만 그래도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는 것이 나름 그의 처세술이었다. 어느 한 동아리를 특별히 더 좋게 볼 수는 없다는 듯, 나름대로 학생회장으로서의 고집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마음은 영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정말로 애써 표정을 관리하는 와중 아키라는 이내 전해지는 제안에 정말로 환한 표정을 지었다.
"괜찬은가요?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한 번 구경해보고 싶네요. 동아리의 활동 모습을 직접 보는 것도 학생회장의 업무 중 하나니까요." "회장님?"
1학년 남학생의 눈빛이 묘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정말 그거 업무 맞냐는 눈빛 공격이었으나 아키라는 애써 그 시선을 회피하며 헛기침 소리를 냈다. 엄밀히 말하면 업무 부분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동아리의 연습까지 모두 체크할 필요는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이전 무대에서, 그리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꽤 실적을 내고 있는 동아리에 대한 관심, 단지 그 뿐이었다.
"나카무라 씨에게는 비밀로."
쉿- 소리를 내면서 아키라는 다시 시선을 부장 쪽으로 돌렸고 쇼를 잠시 바라봤다. 전에 노래를 불렀던 것이 바로 저 학생이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침을 밝히던 광채도 바다 속으로 잠들었다. 노을빛 역시 끝이 났다. 별이 촘촘히 박힌 어두운 장박이 세상을 덮었다. 하늘이 내게 잠들 시간이라며 속삭이는듯 했다. 나는 다만 잠에 들지 않고 받은 선물을 늘여놓았다. 먼지 없는 탁자에 가디건을 잘 잡아 놓고 그 옆에는 떡이 들어있을 박스가 존재했다. 이제는 팔찌도 내게 왔구나.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탁자 앞에 앉았다. 나는 맛있게 생긴 토끼떡 하나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편지를 잡았다.
너는 누굴까.
나는 이제 네가 어떤 형태여도 어떤 존재여도 상관이 없고 궁금하기만 한 것이었다. 그 뿐일까. 나는 네 짧은 글에 너에게 웃어주었고, 또 함께 차도 마셨다. 이제는 무엇을 해줘야할지 모르겠다. 잠들지 못했다는 말에는 내가 너에게 뭘 해줘야할까?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떡을 입안으로 넘기며 결론을 내렸다. 어떤 마음으로 잠에 들지 못했냐고 물어야겠다. 그다음에는 무슨 생각을 하느라, 몇 번이고 수정하고 지워진 원본의 글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물어봐야겠다. 널 걱정하지 않는 내가 매정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태생이 이기적인지라 그것이 먼저 궁금하다.
나는 내 입안으로 떨어진 떡을 아주 천천히 씹었다. 인간의 몸으로 살면서 학습한 저작활동을 수행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냥 꿀꺽 넘겨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감각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강에게는 앙금도 없고, 퇴적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나는 받은 것에 미련이 없고, 그것이 자연인지라 전부 쓸어내버리는 것이 나의 일생이자 일상이었다. 당연히 역사라고는 없었다. 늘 새로운 것이었고, 사라질 것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떡을 꿀꺽 삼켰다. 입 점막을 지나고 목구멍 너머로 내려가는 음식은 형태를 잃고 시간이 지나면 그 잔재조차 찾을 수 없겠지. 떡뿐일까, 선물과 문구를 고르면서 고민한 시간, 일말의 상냥함, 뇌리의 스치는 상상과 약간의 온정들. 이곳에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어느 하나 없다. 100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말 필멸의 것들.
역시 아깝다. 너무 아깝다.
그래. 곧 사라질 것들은 전부 구내에 처박고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잘 배워두어서 요긴하게 써야겠다고, 나는 그래서 네가 궁금하다.
#마니또 답레랑 저번에 그렸는데 타이밍 안 맞아서 못 올린 가디건 입은 미즈미도 같이 올려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