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인형에게 묻는다. 머리가 작고, 얼굴도 그만큼 작아서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왜 나한테 이런 걸 주는 거야?"
물론 학생끼리의 선물인걸, 은으로 만들어 잔뜩 치장한 비녀나 빗을 바란 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걸 받으면 가슴이 거북하다. 시이는 죽이는 데엔 재능이 있었지만, 살리는 것은 영 젬병이니까. 키우기 쉽대도, 마리모님의 밥을 챙겨주느라 쩔쩔매는 취미는 없다. 그보다 기껏 세팅한 '여자아이 방'을 이상하게 만들어버리는걸. 시이는 곤란하다고 생각하며, 책상 구석에 놓인 마리모를 바라보았다. 금붕어님처럼 창가에 놓으면 되려나 싶었더니 또 그건 안 된댄다. 강렬한 빛에 말라버린다나. 정말, 숙제를 잔뜩 받아든 기분이 되었다.
"고맙지 않아요―다, 흥."
이층침대에 푹 누운 시이는 소두곰인형을 껴안곤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외로워보이는 것도 문제야. 요즘 애들이 약해빠져가지구 말야, 나도 그렇게 되어버리잖아."
어휴, 나쁜 녀석 같으니. - 원래는 낮에 올리려구 했는데... 늦었지 언제나 고마워 이번 선물도 정말 귀엽고 각별해 토쨩 사랑해
"헤에, 혈액형 A형인가- 조금 어울릴지두. 근데 A형은 상냥하고 소심한데 테니스군은 전혀 그렇지 않단 인상. AB형인데 잘못 기억하구 있는 거 아니야?"
나왔다 혈액형론.
"잠깐, 근데 여자아이가 체중까지 공개했는데 본인은 모른다고 하는 건 뭐야! 체력검사 때 기록이라도 공개하는 게 맞잖아. 그게 아니라면 근처 카페에서 포인트카드 얼마나 적립했는지라도 알려줘야지. 새로운 대화거리가 전혀 없잖아- 맞선이었으면 시이는 여기서 돌아가버렸을 거야. 주선해준 녀석 가만 안두겠다고 하면서."
휴우,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면서 내쉬는 한숨. 들으라는 듯 하다. 심지어 고개를 저을 때마다 투사이드 업-언젯적 유행이냐고-이 흔들려 묘하게 열받는다.
"텟쨩, 내가 간단하게 테스트해본 결과, 텟쨩의 커뮤력은 10점이야. 참고로 만점은 1000점이구. 아아, 텟쨩, TRPG는 테이블 위에서 롤플레잉하는 게임이잖아? 롤-플레잉. 조금 더 풍부하게 이야기해야지! MBTI도 알것같아. INTJ 아니면 ISTJ일걸. 정말, 시이같은 ENTJ랑은 잘 안 맞는 거예요. 커뮤력 증진프로젝트를 시행하지 않으면 곤란할걸."
정말 풍부하게 이야기한다. 가독성문제로 끊어주는 서술 텍스트가 없었다면 한 단락 내내 말하고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익명의 사람에게서의 편지와 선물이 도착했다. 주사위와 적당히 먹을 간식들. 그리고 이번에는 선풍기. 사실, 처음 받았던 주사위는 너무나도 큰 부담이었지만 이번에 받은 선풍기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여전히 부담스러운건 마찬가지였다.
"적당히 힘내라고 에너지드링크나 보내면 좋을텐데."
하루마다 증가하는 부담과 감사함은 오늘로 세번째였다. 이 선물을 보내는 사람은 도대체 나한테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바라는걸까. 그걸 알고싶었지만 그 상대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으니 눈 앞이 깜깜하기만 했다. 설령 그 상대를 안다고 한들 그 이유를 물을 용기도 없건만.
"주사위를 굴려주세요."
몇번이고, 몇번이고 다른사람에게 해온 말을 자신에게 말하고, 선물받은 그 주사위를 굴렸다.
.dice 1 100. = 88
의미를 정하지 않은 주사위는 그저 숫자를 제시했고 제시된 숫자로 그가 무언가를 얻을건 없었다. 정체모를 상냥함은 초조함을 불러온다. 아니, 불러오는게 아니라 초조감을 구태여 얻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을. 하나의 수치로 보여준다면 그것만큼 편하고 안심되는 일은 없을텐데. 주사위를 집어넣고 추리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는 자신이라면 분명, 상대방을 유추해낼 수 있을거라 자신을 안심시키며 감사함과 미안함을 곱씹으며, 보내진 간식을 쓴 녹차와 같이 먹었다.
오오쿠에서는 많은 생명이 피고 지었으나, 그것이 시이의 손을 거치는 방향은 한 방향 뿐이었다. 죽음. 그러나 거기에 책임은 없었다. 책임이 있더라면 시이가 쾌락신일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시이는 후미카의 사려깊은 말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다. 그녀에게 책임이랄 게 있다면 오오쿠 뿐이었다. 그러나 오스즈로카의 방울 하나 남지 않고 불탄 지금, 시이가 책임질 것은 없다.
시이가 그렇게 만들어진 이상, 이해를 하려거든 더 깊이 이야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긴교스쿠이라는 쾌락을 앞에 두고 집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것도 후미카의 손을 잡고 해보라는 신선한 도전이면 말이다.
"에, 뭐야. 그거 완전 재밌어보여- 좋아, 그럼 미카쨩 손을 빌려서 해볼까나, 나, 긴장해서 손 축축하구 그래도 싫어하면 안 돼..."
무슨 미소녀 지하아이돌 악수회 온 오타쿠냐고. 그렇게 잡아온 시이의 손은 따듯했고, 궂은 일 하나 해보지 않은 것처럼 보드라웠다. 그리고 본인의 말과는 달리 전혀 축축하지 않았다.
"뭔가 앵글이 안 나오는데- 조금만 더 붙어볼까나. 얍!"
하고는, 뒤에서 껴안아온다. 자기보다 작은 아이의 어깨에 턱을 올리곤 어느 놈을 잡을까 고민한다. 무게는 기묘하게도 없었다. 그러나 옆덜미에 닿는 머리카락은 분명 간지러워, 유령처럼 느껴지긴 어려웠다. 바삐 움직이는 붕어를 따라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머리 끝이 스쳐온다. 그리고 시이는, 지느러미가 가장 온전하고 꼬리깃이 예쁜 녀석들로 골라 낚기 시작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쌓이고있는 분홍색의 쓰레기를 아무 불평없이 치우게 되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걸까. 당연히 상대방은 그런걸 신경쓰고 있는 눈치는 아니었다.
"난 포인트카드를 가져 본 적이 없어."
물론 상대방이 내가 포인트를 얼마나 쌓았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는건 알고있었지만 그저 심술로 말을 하고 끊임없이 말하는 그녀를 조금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마치 게임의 프롤로그에서 쓸데없이 게임정보를 열심히 알려주는 npc 캐릭터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하면 거기에서 도와준다는 말을 꺼내는걸까.
"그거, 요즘 밀고있나보구나.."
'자애로운' 이라는 단어를 은근히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걸 보니 많이 자신이 있나봐? 오히려 내가 너보다 커뮤력ㅡ 이 높다는걸 보여줘야겠... 아니다."
잘 생각해보니 저렇게 말이 많은 사람을 이길 자신은 없었다. 저번에는 야생무녀한테서 츤데레를 전수받고 오늘은 자칭 자애로운 쾌락신에게서 커뮤력증진 프로젝트를 강요받고 있었다.
"혹시 저기 하늘 위에서 아이돌육성 게임이라도 하고있는건가?"
육성한 아이돌이 남성캐릭터인데 츤데레로 육성중이며 커뮤력이 1점이라니 분명 지금 플레이하고있는 플레이어는 그냥 화면도 안 보고 오로지 터치만 하고있는게 틀림없다.
"흐으음.." 아미카는 선물을 바라보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 선물은 누가 준걸까아.." 마치 탐정이 된 것처럼 아미카는 생각했다. 일단 필요해보이는 선물을 준다는거라면, 그건 아마 효율적으로 생각하거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 같아보였지만 메세지는 무언가 컴퓨터와 가까워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모르겠네에~!" 머리를 쓰니 왠지 더워져서 아미카는 선물 받은 선풍기를 킨 뒤 선물 받은 배개를 베고 책상 위에 엎드렸다. 시원했다.
"아이돌 육성게임이라면 분명 파란색 테마에다가 '보통감'을 컨셉으로 가지고 미는 캐릭터일텐데- 텟쨩은 남자일 테니까 여성향 게임이겠지. 그러면 신장으로 미루어봐서 반바지를 기본으로 하는 스쿨룩의 유닛복을 입은 컨셉일 거야. 하지만 그런 건 보통 사랑스러움이라던가, 이런 쇼타 컨셉 싫어요 하는 앙칼진 컨셉일텐데 텟쨩은 완전히 후자네. 그런 캐릭터는 완전 기인과 접점이 생겨서 그나마 덜 이상한 아이돌 산업을 받아들이는 것이 캐릭터 스토리의 발단이야."
시이는 테츠야를 위 아래로 훑어보며 검지로 본인의 턱을 톡톡 두드렸다. 프로듀서의 시선이다. 하기야 쾌락신인걸. 서브컬쳐에 빠삭한데다 그 캐릭터 조형을 밀어붙이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그러니 쾌락신이라는 과감한 네임으로 본인의 캐릭터를 밀어붙이는 거겠고.
시이는 얼마없는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다가, 활짝 웃었다.
"나 커터칼이랑 반짇고리 있는데. 반바지로 만들어줄 수도 있어. 제모는 면도기가 당장 없어서 어렵지만 괜찮아. 멀리서 찍으면 잘 티나지도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