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반바지에 스쿨룩이라니 너무나도 끔찍하다. 167cm 정도면 키가 작은건 아니잖아. 어째서 쇼타라고 하는건데. 저 녀석의 말에 긍정하고싶지는 않지만 확실히 쇼타는 싫다. 그리고 뭘 그렇게 훑어보는거야. 이미 저 머리속에는 반바지를 입고있는 내 모습이 비치고있는걸까. 정말 끔찍한 상상이었다.
거절의 말이 나온 것 같지만 나는 포기 하지 않는다. 원래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때, 내가 붙잡은 탓에 남자 인간이 내게 훅 다가왔다. 힘조절을 해야한다는 것이 인간으로 살아온 경험이 짧으니 쉽지 않다. 물론 지금은 그게 내게 도움이 된 경우다. [오~ 어쩐지 위험한 분위기. 좀 더 분발합시다.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매일 내가 사준 메론빵을 먹고 싶다고 할지도?] 정도가 지금 상황의 평가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진도가 꽤 빠른 편에 속한다. 이러다 학교에 있는 신들중 내가 제일 먼저 결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요-! 약속한 거예요?"
나는 남자를 순순히 놓아주고 빙글 돌아 오리배를 향했다. 저렇게 투덜거리면서 배도 당겨주고 타라고 해주고 때리지도 않고 칼부림하지도 않고 침 찍찍 뱉지 않고... (중략) ...하지도 않는 걸 보아서는 겉모습과 달리 제법 친절한 종류의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나는 남자의 경고에 "하이-하이-"거리며 대충 대답해주었다. 오리배에 올라타는 순간까지도 별로 걱정은 들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땅 위보다 물 위에서가 더 편했... 잠깐만, 생각해보니 나는 인간 상태로 수영을 시도해본 적이 없었다. 이 꼬인 다리로 어떻게 수영을 치지? 나는 잠시 물에 손을 뻗어 깊이를 가늠해본다. 아주 얕지는 않다. 만약 풍덩 빠져서 인간의 모습으로 내가 죽는다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인간쪽은 이야기가 다르다. 나는 수면 밑으로 눈을 굴리며 넌지시 물었다.
"그러면 그쪽은요-? 혹시 수영할 줄 아세요?"
나는 강물을 향해 뻗었던 손을 갈무리하고 배꼽 위에 올려놓았다. 오리배는 그다지 넓지 못했다. 다리 관절 부분이 툭 튀어나와서 자꾸 오리 배의 뼈대 부분에 깔짝깔짝 닿는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아무렴 어떠냐.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물끄러미 고개를 돌려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가 올라타자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기우뚱거리며 끼익끼익 소리를 냈는데, 새소리 같고 제법 운치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무엇보다 벚꽃잎이 물결따라 따라 붙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것도 지켜보기 재미있었다. 그런데 오리배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틀어 남자를 재촉한다.
"자, 자. 저희 열심히 해봐요. 쭈욱 건너서 저기 강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하는 거예요. 아자아자 화이팅! 만반잘부!"
만반잘부는 최근 스즈, 애칭으로는 스-쨩이라는 친구에게서 배운 단어인데 입에 착착 붙고 어감도 독특해서 내가 좋아하는 말이었다. 다만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자꾸 때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쓰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나는 슬슬 다리를 놀려 우리배를 움직였다. 굳이 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치만, 세상이 아이돌게임이라면 나는 SSR급 프로듀서라구. 너무 무서워하지마. 무서운 건 한 순간이구, 그 이후부터는 이게... 나?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게...나라구? 할 수 있거든― 라고 하고 싶은데... 텟쨩 너무 무서워하는 거 아니야? 난 그래봤자 한 살 어린 후배인데 내가 잡아먹기라두 하는 것 같아."
매드사이언티스트같은, 이성이 끊어진 눈으로 홀린 듯 말하다가 금세 이성을 되찾는 기술이 신기하기도 하다. 어쩌면 고도의 연기일지도.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고작 나같은 여자애 하나한테 겁을 먹는 거야? 쪼끔 실망했어. 차라리 '아아, 그것이 나의 길이라면... 와라.' 라고 했다면 좀 더 재밌었을지두 모르겠어."
책상에 푹 엎드려서는 입술을 툭 내밀고 투정부린다.
"여자아이와의 커뮤는 기본적으로 말야, 대답은 늘 세 마디 이상으로 할 것, 평소와 다른 머리 모양에 주목할 것, 제대로 구두까지 볼 것, 걔네가 하는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구. 아직 멀었구나, 텟쨩."
월드이즈마인의 인용 뒤로 본론이다. 시이는 테츠야를 조금 후배 정도로 보게 된 것 같다. 이렇게 알려주는 모습은 마치 시이가 선배고 테츠야가 후배라도 된 것 같으니 말이다.
"자, 여기서 돌발문제. 후배가 '선배,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초코 맛있을지 모르겠어요. 시험삼아 한 번 먹어줄래요?' 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카메라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느낌으로 하는 것이다. 또 새로운 친구니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선 좋을 게 없다. 게다가 스즈는 초대받은 입장이었다. 이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인 사람에게 초대받아, 그 사람의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니 이 사람이 나의 주인이라는 거창한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사람이 이 공간의 주인이라면 그에 맞도록 신경쓰는것이 맞는 것이다. 스즈는 카메라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 앗. 응. 얼굴이 조금 보코보코에요~ 그 점은 죄송하지만 예쁘게 봐주었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그러니까.. 쾌락신님의 친구 자격으로!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쾌락신님을 모시는 음.. 으으으음.. 아! 쾌락신님을 모시는 무녀의 자격으로 앉아있습니다! "
조금 오버한 감이 없잖아 있는듯 하다. 스즈는 건네주는 계란물을 받으면서 '땡큐~' 하고 가볍게 응수했다. 아무 말이나 하면서 먹으면 되지만 가능하면 조금 오버하면서 브랜드를 치켜세울 것. 스즈는 그 말을 듣고 알겠다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스키야키라면 가정식의 대표인 녀석이다. 여러 명이서 먹을수록 맛이 늘어나는 신기한 요리.
" 냄새가 참기 힘드네~ 코 끝에 걸려있어. 이렇~게 타고 들어와서 머릿속에 가득한 느낌이야! 방송을 보고있는 시청자님들은 모르려나? 쾌락신님 말처럼 혼자서 규동먹고 있는거야? 아하하! 야베- 마지 쿳세~ 아하하하! "
여기선 들었던 말을 조금 따라하고는 아하하! 하고 웃으면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스키야키 다 먹고 단 다음이라. 보통은 우동과 죽이지. 스즈는 별 생각없이 입을 열었다.
" 난 당연히 주...ㄱ... "
'죽' 이라고 답하려했다. 너무 빠르게 답한게 화근이라면 화근이다. 그 뒤에 들려온 말에 스즈는 아차 했다. 관련한 이야기라면 잘 알고있다. 알고있는 친구 중에는 '오늘도 죽집에 왔어' 라면서 밤새 놀고 죽집으로 가는 걸 이야기해주는 언니도 있었으니까. 호스트와 놀아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죽을 자주 먹으러 가는 언니와 몇 번인가 같이 죽집을 갔던 적은 있다. 그런 분위기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안가고 있지만.
" 우동이지..! "
식은 땀이 조금 날 뻔 했다. 스즈는 살짝 눈을 돌려 시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스키야키를 바라보고 다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시이를 바라보았다. 말실수 한 건 아니겠지. 조금 더 생각하고 이야기해야겠다. 전국 각지에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어.
" 그러고보면 쾌락신님은 스키야키는 자주 해먹는 편? 혼자 해먹으면 맛 없잖아. 평소에는 어떻게 챙겨먹고있어? "
스즈는 자신을 그렸다는 그림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환하게 웃고있는 얼굴. 공들여서 그린 자국이 역력하지만 조금은 엉망일지도 모르는 그림. 스즈는 거울 앞에 서서 그림과 자신을 나란히 놓고 보았다. 닮았다. 이 색조화장이나 화려한 색의 머리 그리고 미소를 지었을 때의 모습마저도 어딘가 닮아있다.
" 이런건 남겨야지! "
그리곤 똑같이 선물받은 하늘색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냈다. 소중한 물건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받은 선물. 하늘색 카메라는 이미 '미나미 스즈' 라고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붙여두어서 자신의 것이라고 확실히 해두었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한 손에는 그림을 들었다.
" 에- 푸딩님! 선물 고마워~ "
그림과 똑같이 미소를 지었다. 환하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원래라면 찰칵 하고 끝이 났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지이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필름이 나왔다. 사진의 모서리를 잡고 휘적휘적 하고 흔들다보면 천천히 인화가 끝난다. 스즈는 인화된 첫 번째 사진을 보며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또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스즈주께 사과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분명 시로하와 스즈간의 돌리던 일상이 있었는데요 정말 면목없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일과 잠을 반복하는 생활로 돌리던 일상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언가 레스라도 남겼어야 했지만 그래도 계실 때 남기는게 좋다고 생각하여 미뤄졌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와중에 스즈주께서도 시트를 다시 내신 걸로 알고있어요 원하신다면 지금이라도 이어오거나 혹은 일상을 아예 없던 것으로 끊어도 괜찮습니다
>>578 으응 괜찮아~ 신경쓰지 않아도돼! 사실 나도 돌리던 일상이 있는데 대뜸 시트 다시 올려버려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사과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속 시간이 안 맞아서 이야기를 못했지 뭐야.. 미안할 필요 하나도 없어!! 시로하주도 사정이 있던거고 일상도 좋지만 어디까지나 현생에 영향을 미치면 안되는 거니까! 일상은 아무래도 스즈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려서 그 상황부터 다시 가기는 힘들 것 같아. 처음부터 다시 돌려보는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선택은 시로하주한테 맡길게 (:D)! 다시 말하지만 미안할 필요는 하나도 없고 신경쓸 이유도 하나도 없다!!!!!!
"아핫, 무녀! 그거 재밌네, 그래요 이제부터 스즈쨩은 쾌락신님의 무녀인 거야- 그런 관계로 무녀 임명식이라두 해볼까나, 에잇."
시이는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에 들었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신이 있다면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하는 소원이 있잖은가. 신당과 새전함, 그리고 자기만 바라보는 신관이 갖고 싶다고. 그것을 자처하겠다는데 싫어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시이는 장난스럽게 웃고는 스즈의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
적어도 이틀 정도는 얼굴이 아프지 않겠지. 무녀에게 응당 베풀어 줘야 하는 은혜였다.
[ㅇㅇ : 요즘 여자애들은 다 저러고 노는 거냐?] [ㅇㅇ : ㅇㅇ님이 틀딱입니다] [ㅇㅇ : 나 군필여고생인데 육군에서 다 저러고 놀았음]
우수수 올라가는 채팅창과, 그리고는 태연하게 뚜껑을 여는 시이. 뽀뽀 덕분에 죽이라는 말은 사그라들었다. 어쩌면 일부러 목소리를 가로챘을지도 모르겠다. 신관을 보호하는 건 신의 의무니까 말이다. 어디까지나 흥미가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좋아, 그러면 스즈쨩 말대루 끝은 우동으로 할까- 그보다 뭘 물어봤었지, 아, 스키야키? 으응, 아쉽게도 자주는 못 먹지. 원래는 이 소고기로 무순이랑 파프리카랑, 쑥갓이랑 이것저것 돌돌 말아서 먹을 생각이었는데 스즈쨩을 주워온 김에 바꾼 거야. 스키야키는 간단하잖아? 나로서도 오랜만에 먹는 스키야키라구. 각별하지-"
[ㅇㅇ : 쾌락신은 친구가 없으니까...]
"조용히해! 이제 무녀님까지 생겼으니까 친구 있단 말야. 규동먹으면서 혼밥하는 너네들은 모르겠지만- 흥이다."
그러다보면, 직감이 시선을 이끈다. 마침 좋을대로 익은 고기가 보인다. 계란물에 넣어 식히면, 고기의 열로 살짝 익은 계란 덩어리와 날계란이 묻어나온다. 시이는 그걸 제 입에 가져가는 대신, 스즈에게 내민다.
하나도 당황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무녀 임명식이라는 말에 스즈는 '응? 뭔데뭔데?'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가 볼에 닿는 말랑하면서도 따뜻했던 감촉에 볼이 조금 빨개졌고 조금 당황하고 놀랐지만 이내 또 꺄르륵 하고 웃으면서 쾌락신님의 무녀랍니다~ 하고 손으로 브이를 만들어보였다.
" 간단하지만 혼자 먹으면 맛 없지. 맞아맞아~ 그래도 평소에는 잘 챙겨먹는구나! 다행이네, 다행이야~ "
주워왔다는 말에 스즈는 또 꺄르륵하고 웃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나이다. 즐거운게 당연하다. 스즈는 손을 들어 입술이 닿았던 볼을 만지작거렸다. 왜 그랬느냐면 조금 신기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뭐라고 설명은 못하겠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상처났던 눈가와 터진 입술이 덜 아파졌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아프지 않은 느낌이 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 규동 혼밥하고있는 사람들이랑은 다릅니다만~ 설마 매일 혼자서 규동 혼밥하는거야? 마지? 에- 야베- 그건 진짜 구리잖아~ "
시이의 말에 동조하듯 스즈는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곤 몸을 살짝 틀어 시이에게 기대곤 약간의 경멸의 눈길을 카메라를 통해 보냈다. 물론 진짜로 경멸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한 말에 진짜 진심이라면 없겠지만(있더라도 5g정도) 지금은 쾌락신님의 무녀로서 신 님의 말에 동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 아. 땡큐~ "
스즈는 작게 입을 벌렸다. 그냥 먹으면 뜨거울테지만 이렇게 계란물에 넣었다 입에 넣으면 적당히 식어서 딱 따뜻해진다. 조상님의 지혜란 것이지. 스즈는 잠시간 입을 오물거리다가 눈을 번쩍 떴다.
" 아! 맛있어! 이거 최고네~ 이 소고기 어디거야? 브랜드 있는거야? 거짓말이 아니라 최근 먹었던 소고기 중에 제일 맛있었어! 지금 방송 보는 사람들도 사서 먹... 아, 미안. 규동 혼밥하는 너희라면 무리일지도~ "
꺄르륵하고 웃은 스즈는 이렇게 하는거 맞지? 라는 눈빛으로 시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번엔 자기 차례인가 싶어 젓가락으로 고기 하나를 집어 계란물에 살짝 담가 시이에게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