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꼼짝없이 머리에 벚꽃을 꽂고 집에 가게 생겼다. 안그래도 눈에 띄는 외모인데 벚꽃까지 꽂고 있으니 이달의 SNS 스타의 자리는 필시 내가 거머쥘 것이 분명해보인다. 하지만 동생의 태도가 완강하니 결국 묵묵히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애초부터 주변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으니 이제 와서 신경 쓰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 아니, 집에 갈때까지만 벚나무야. "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혹여 머리에 꽂아둔 벚꽃이 떨어질까 조심조심하긴 했지만 머리를 흔드는 반동에 끄트머리에 있던 벚꽃 하나가 떨어진다. 땅에 떨어지기 전에 솜씨 좋게 잡아챈 나는 원래 있던 자리에 꽃송이를 다시 꽂아두었다. 그 사이 리리가 핸드폰을 꺼내 나에게 가까이 가져오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자 나도 같이 브이자를 그리지만, 곧 내 손가락은 리리의 얼굴쪽으로 향한다. 분명 셀카일께 분명했으니 내 나름대로의 장난이다.
" 잘나왔네. 프로필 사진으로 하면 괜찮겠다. "
공주님처럼 잘 나왔다면서 뿌듯해하는 리리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며 말하고선 이어진 그녀의 말에 작은 웃음을 터뜨린다. 분명 레고 밟는 꿈은 청룡신님도 싫어하시겠지. 하지만 아직까지 즐거워하는 내 동생을 강제로 데리고 갈 생각은 없었다. 여기나 저기나 나한테는 따분하기 그지 없는 곳이지만 리리는 이곳을 더 좋아하니까.
" 양귀비 중에서도 고급 양귀비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동생님의 도움이 필요해. "
오른쪽 눈으로 장난스런 윙크를 날리며 대답한 나는 고민하는 동생의 모습에 그녀가 혹여 넘어질까 팔을 살짝 잡아준다. 부적 같은 형태로 만들어줄 생각인것 같지만 역시 디자인이 중요하겠지.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에 편의점이 눈에 들어온다. 우유도 사야하니까 겸사겸사 들어가서 뭐라도 사와야겠다는 생각에 리리를 향해 물었다.
그저 따분한 신계의 생활에 잠깐의 리프레쉬라도 될까 인간들의 눈앞에 나타났던 것뿐이다. 별이란 쉬이 볼 수 있으므로 가장 먼저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몇번 도와주고나니 몇몇의 기록에는 불명의 나그네 같은 것으로 기록이 되어있는듯 했다. 하지만 신사도, 신도도 없는 이름없는 신이라 기록들을 고칠 생각은 없다. 어차피 모든 인간들은 별 아래에 살아가니까.
" 아니, 이 시대의 JK는 케이크를 즐기고 파르페를 떠먹으니까요. 드셔보셨나요? "
실제로 우리 카페의 매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품목들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여학생들이 찾아오는 우리 카페는 커피보단 이런 디저트류의 매출이 높은 편이었다. 그 중에서도 케이크와 파르페의 인기는 압도적. 언제적 JK의 얘기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볼을 부풀리며 과자 상자를 건네주는 그녀의 눈을 말없이 마주보다 손가락을 들어 볼을 찔러보려하며 말했다.
" 나는 키노코노야마만 먹어요. "
당연히 초코과자니까 초코맛이 진한게 더 좋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둘 다 그렇게까지 땡기지는 않는데 ... 하지만 받은 것을 다시 돌려주는 것은 상대방이 무안할테니 이 죽순 친구만 다시 돌려준다.
" 알다시피 신명은 없는, 이자요이 코세이라고 합니다. "
다시 시선을 돌려서 도시락통 한구석에 잘 놓여있는 방울토마토를 하나 집어먹는다. 도시락통이 작아서 조금밖에 가져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하나 집어서 에니시가 들고 있는 도시락 뚜껑에 하나 올려준다. 어차피 다 먹지도 않고 다시 집으로 가져갈 것이 뻔하니까.
" 낮은 본디 저의 시간이 아니기에 행태에 대해서 조금의 양해를 부탁합니다. "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돌려 작게 하품을 한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점장님이 그랬었지. 간만에 저녁에 여유 시간이 생겼으니 좀 더 잘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꼬리 잡혔다! 코세이를 찍는 척한 코로리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놀리려고 했는데, 간파당했다. 사진 속에 브이가 둘이나 있다. 장난 실패! 안 그래도 벚나무는 집 갈 때까지만이라고 해서 별로 탐탁치 않았는데, 장난까지 실패해버리니 이죽삐죽거린다. 투덜거리고 싶은데 하필이면 코세이가 머리를 쓰다듬는 걸 막지 못했다!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초조하거나 불안할 때 머리카락을 빗는 버릇이 있는 코로리는 코세이에게 곧잘 머리 빗질을 부탁하고는 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기분 나빠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한 마디로 줄어들었다.
"여름이 너무 빨라ー"
공주님처럼 나왔다고 해서 세이가 기대하면, 사실 내 얘기였다고 하고 싶었는데! 쓰다듬의 위력은 강력했다!
"나는 착한 동생이니까!"
라인 프로필 사진을 토독 바꿔버린다. 보란듯이 뿌듯하게 보여주는 휴대폰 화면에는 방금 찍은 사진으로 새롭게 바꾼 코로리의 프로필이 띄워져 있다. 내가 간만에 세이 말 들어줬다!
"세이, 이제 세이도 공범이야."
범행 계획을 같이 공유했으니, 듣고 웃기만 한 코세이도 청룡신님한테 혼나면 같이 혼나야 한다는 것이다. 연좌제라고 하던가! 웃음을 코세이에게 방긋 웃어보이는게 매우 얄밉다. 방금 스스로 착한 동생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더욱이 더 얄밉다.
"고급이면,"
향이 짙다는 거잖아! 순식간에 폭삭 얼굴을 찡그린다. 링고아메를 또 요란스레 와삭와삭 깨물어버리고, 결국은 막대만 남았다. 우우, 못난 양귀비ー. 잠을 못 자는 아이에게 잠을 주는 건 익숙한 일이지만, 직접 하는게 아닌 이상 조심스럽다. 너무 많이, 긴 잠은 죽음과 다를게 없다고 믿기 때문에 힘을 담아 물건으로 선물하는 건 좋았지만 까다롭다는 것이다. 코로리는 편의점으로 먼저 뛰어가버린다. 세이가 사ー! 라고 외치며 달아난 코로리를 쫓아 편의점 안으로 들어와보면 과자를 한가득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우유는 없다!
/ 답레 올리고 가볼게 。゚(゚´ω`゚)゚。 벌써 늦은 오후잖아! 참치들 오늘 하루도 화이팅이라구
어깨를 툭툭치며 부르는 소리에 성의 없이 분홍빛 마카롱을 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단 것을 엄청 선호하지는 않는 그지만 운동이 끝난 뒤에 한입 베어 무니 그 맛이 나쁘지 않아 가끔 기분 전환 삼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한창 격하게 움직였으니 저쪽에서 뭔가 부르는 소리 같은 말을 듣기는 하였지만 크게 급한 일이 아니겠거니 싶어 묵묵부답으로 과자를 와그작 씹는데 집중한다.
“저기 왠 여자애가 너 부른다. 연애사업? 무시하는 거야?” “시끄러우니까 입 좀 다물어 봐.”
오오 역시 나쁜 남자가 대세인가. 놀리는 게 분명한 표정으로 빈정거리는 토모야마 놈의 뒷통수를 무덤덤하게 한 대 까주고 바로 짧은 킥을 날려 자신의 다리를 차려는 동작을 옆으로 움직여 피한다. 입안에 남은 과자를 우물거리면서 소리가 들린 강변을 쳐다본다.
알바도 잡상인도 아니고 진짜 여자애랑...왠 오리배? 밝은 금빛의 햇빛이 잔잔한 물결을 타고 수면에 흰빛 무늬를 그리고 연한 분홍빛 벚꽃이 하늘하늘 바람에 흩날리다 춤추듯 사뿐히 물 위에 자리를 잡는다. 푸른 하늘 아래 꽃잎이 내린 수면과 강가에서 작게 흔들리는 오리배. 한 폭의 청춘 영화 같은 풍경에 할 말을 잃은 토오루는 앞머리를 넘기면서 짧게 한숨을 쉬다 성큼성큼 걸어 강변으로 내려간다.
“내려왔다. 뭐.”
알바나 잡상인이면 그냥 갈 거다. 한쪽 바지에 손을 넣고서 자연스레 불량스러운 자세로 툭 말을 내뱉는다. 힐끗 곁눈질로 그리 거세지 않은 물살에 동동 제자리에서 움직이는 귀여운 오리배를 바라보고 설마하는 생각에 한 마디를 더한다.
“친구랑 약속이 취소되기라도 했냐? 저건 못 보던 배인데.”
어이 먼저 간다. 연애사업 잘 하라고. 토오루가 무슨 말을 더 해야할까 망설이는 사이 뒷통수를 감싸며 끙끙거리던 토모야마가 건수를 잡았다는 듯 기세등등하게 낄낄거리며 그가 대꾸할 사이도 없이 잽싸게 도망간다. 야, 이, 망할. 한 마디 욕설을 내뱉으려다 한쪽 손을 찡그린 이마에 짚으며 입술을 씹다가. 마지못해 “하, 원래 저런 놈이야. 신경 쓰지 마.” 라 공연히 말을 더한다.
날이 좋다. 봄날은 화창하고, 아침 볕이 유달리 따스하다. 그가 학교에 도착한 것은 제법 이른 시간이었다. 잠이 없으니 일찍 학교에 오게 되기 때문이다. 조용한 학교는 감회가 새롭다. 조용한 이유만 있을까? 마니또를 위한 선물을 넣고 오는 길이라면 더욱 감회가 새로운 법이다. 오늘도 누군가를 위해 네 베풀었고, 그 베풂이 어떻게 돌아올지 그가 달리 기대하지는 않지만, 지켜보는 과정이 즐겁기 마련이었다. 다만 그가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면, 그가 누군가의 마니또이듯 누군가도 그의 마니또라는 사실이다.
그는 자리에 앉았다. 창가 자리는 아침부터 화창한 날씨 때문에 의자가 익어 따스하다. 조금 더운 감이 있는 것 같아 블라인드를 내리고, 고개를 내렸을 적 평소와 다른 것이 눈에 밟혔다. 깨끗한 책상 위에 못 보던 것이 있어, 그는 가장 먼저 편지로 추정되는 것을 집어 올렸다.
오리박사.
처음 보는 이름이다. 그는 고개를 내렸다. 편지에 적혀있는 선물의 포장을 뜯어 손에 쥐어 보니, 부드러운 털 촉감과 함께 겉면부터 쫀쫀한 느낌이 손에 잘 맞는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주무르는 용도라 적혀있으나 중독성이 있어 계속 주무르게 된다. 편지를 내려놓고 다른 편지를 읽을 때도 손은 멈추지 않는다. 블라인드 틈새 햇빛이 유리병에 흰 빛을 그리고, 그림자는 하늘색 꽃잎의 빛을 투과한다. 투명한 그림자를 바라보며 편지를 읽을 적, 그는 작게 웃으며 말랑말랑한 스트레스볼을 꾹꾹 쥐었다. 공물이라기엔 선물에 가까운 친의. 볼 수 있는 것을 주니 감지덕지요, 봄 오래 간직할 수 있으니 기쁠 따름이다.
"예,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닿지는 않으나 대답이 빈 교실에 내려앉는다. 자리에 앉아 한참이고 꽃을 바라보니, 오늘 하루는 필히 근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