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인가 사진을 넘겨보면 스즈는 인형을 주겠다는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긍정했다. 가장 아끼는 인형이라고 했다. 그렇게 가장 아끼는 인형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게 생각해주겠다는 것이고 그만큼 오래 기억해주겠다는 것이겠지. 적어도 잊혀질 일은 없다는 것이다. 스즈는 뛸뜻이 기뻐했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표정과 몸짓에서 나타났다.
" 옷-쓰! 확실히 각인시킬게! "
스즈는 한 손에 소라게 인형을 꼭 쥐고 있었다. 보통은 선물받았더라도 당장 필요하지 않다면 어디 잘 보이는 곳에 놔두겠지만 스즈는 그게 무슨 소중한 보물이라도 된다는 것 마냥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씩 고개를 돌려 인형이 손에 잘 쥐어져 있는지 확인했다. 무려 먼저 말해주었다. 항상 기억해주기라고. 더할 나위 없는 대답이다. 스즈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소라게 인형을 꼭 안았다.
" 앗. 우왓. 에- "
마음의 준비할 시간도 없이 카메라가 켜지자 스즈는 순간 당황한듯 했다. 그야 시청자수를 알리는 숫자도 제법 높았고 채팅도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옆에서 익숙한듯 프로인 것 처럼 진행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인사하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마치 저 뒤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면 된다는 거겠지?
" 에- 그러니까-.. 요~! 현직 JK 미나미 스즈임당~ 오늘은 이렇게 같이 인사하게됐어. 그런 의미에서 다들 만반잘부~ "
한 손에는 소라게 인형을 꼭 쥔 채로 다른 손을 파닥파닥 하고 흔들면서 인사했다. 이렇게 하는게 맞는거겠지. 스즈는 카메라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며 뭔가 생각난듯 아! 하고 한 마디를 더했다.
" 지금 말야, 조금 보코보코하지만 그래도 귀엽게 봐줘야한다? "
에헤헤~ 하고 웃으며 스즈는 고개를 돌려 시이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의 방송이고 이 아이의 집이다. 이 아이가 모든 것의 주인인 곳에 들어와있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 너라면, 그런 곳에 내가 들어왔다면 말야. 스즈는 손에 쥔 소라게 인형을 조금 더 꼭 쥐었다. 이렇게 소중한 곳에 내가 들어왔다는 것이니까 그만큼 네 기억속에 내가 잘 박혀있을 수 있겠지.
" 그리고.. 음.. 어.. 이,이제 무슨 말 해..? "
스즈는 방송을 해본 적이 없다. 보는 것이야 몇 번 해봤지만 보는 것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스즈는 조금 불안한 시선과 몸짓으로 시이와 카메라 그리고 스키야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점심시간 바로 전의 수업시간은 선생님이 누구냐에 따라 끝나는 시간도 다르다. 오늘은 운이 좋게도 점심시간이 되기 5분전쯤 끝내주시는 선생님을 만났기에 학생들의 점심시간은 5분 정도 늘어날 수 있었다. 물론 학생들이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선생님의 좋지 않은 시선은 누군가를 향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는다. 선생님이 나가고 급식을 먹는 학생들은 급식실로 향하고 도시락을 가져온 학생들은 가방에서 자신들의 도시락을 꺼낸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엎드려서 미동도 하지 않은채 자고 있는 한 명의 학생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 ... 수업 끝났어? "
나다. 자기 좋은 높이로 쌓여있는 책들을 한번 응시한 나는 창가에 놓아둔 안경을 찾아서 쓰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애들은 대부분 밥을 먹고 있었고 내가 자다가 일어난건 안중에도 없는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바빴다. 나도 그들에게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 그들도 나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겠지. 그렇다고 내가 왕따를 당하는건 아니고 그냥저냥 클래스메이트의 관계로 지내고는 있다.
" 오늘도 선생님이 너 노려보고 나가더라. 그렇게 잘 수 있는 네가 부러워~ " " 3년동안 이렇게 지내면 너도 할 수 있어. "
옆을 지나가던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고 아직 잠이 덜깨서 피곤했기에 살짝 인상을 쓴채 답했다. 짜증낸건 아니고 목소리는 평소랑 비슷했으니까 오해하지는 않겠지. 한번 기지개를 켜고 가방에서 도시락 가방을 꺼내든다. 오늘은 가볍게 오니기리를 싸왔기에 도시락통도 평소보다 작았다. 오는 길에 구입한 물 한 병과 도시락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교실을 나와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는 나 말고도 점심을 먹는 학생들이 있기에 점심시간에도 사람이 꽤나 있는 편이지만 오늘 옥상 문을 열고 나갔을땐 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단 한명 빼고.
" 잘 먹겠습니다. "
막 자고 일어난터라 당연히 입맛은 없었지만 이따 일하려면 배는 고프면 안되기 때문에 도시락통을 열어서 오니기리를 한 입 베어물었다. 오늘은 그냥저냥 맛있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살짝 둘러보자 아까 눈에 띄었던 학생이 그 자리에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복잡한 머리장식과 인형 같이 예쁜 외모는 둘째치고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기에 잠시 그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는 했지만,
' 놀러왔나보네. '
같은 생각으로 대충 옆으로 치워버린다. 학교에서는 다시 잠들기 위해서 깨어있을때 뇌의 활동을 최소로 하고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