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카는 촬영된 사진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창백한 청색광의 빛으로 보이는 사진은 우스운 포즈로 찍었다 해도 햇살 좋은 봄날의 정경이 여실하게 그려져 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이 순간의 풍경보다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이름의 보정이 씌워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들은 고금을 막론하고 수단을 통하여 어떤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했다. 과거에는 그 풍경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정성스레 골라낸 미문(美文)과 그림을 남겼다면 현대에는 다채로운 사진이 그 수단이 된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기로는 신조차도 사람과 같기에, 후나가츠히메 역시 다른 것의 이름을 빌려 어떤 기억을 오래도록 추념한 바 있더란다. 문장에는 재주 없고 낭만을 모르는 신이었기에 변치 않는 계절의 한 자락에 기억을 담아, 그리하여 冬이라고. 이 마음은 풍어신이 이해하는 데 성공한 몇 안 되는 심정이다. 그것을 모르지 않기에 시이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은 것이다.
후미카는 참 당연하게도 평온한 얼굴로, 그러는 한편 또다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치로 가만히 시이의 품에서 부비적을 당했다. 반항하지도 않고 싫은 티도 없으니 이러고 있기엔 딱 좋은 상대다.
"다른 사진은 더 필요 없니?"
소원이라 할 정도면 한 장만으로 되겠나 싶다. 다른 사람들 하는 걸 봐선 십몇 장이나 몇십 장 쯤은 찍어야 본전이라 하던데.
그리고 조금 뜸을 들였다. 안기는 동안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탓에 조금 지쳐 보이는 듯도 했다(물론 그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지만 망설인 탓은 그것이다. 후미카는 라인의 정서를 몰랐다. 물론 풍어신도 라인을 할 줄은 안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상식에 관해 구태여 묻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불문율로 전해지는 라인의 기본 예의란 인터넷에 검색을 해도 아무도 안 알려주는 것이었다……. 읽씹이나 늦은 수신이 무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최근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문제다. 후나가츠히메는 편지가 전해지려면 주나 달 단위를 기다려야 했던 구시대를 살았고, 마지막으로 접한 통신기기가 삐삐였던 세대였다. 일이 바빴다 해도 3일쯤 확인 안 한다고 한 소리 들을 줄은 정말 몰랐다 이 말이다……. 결국 친구들 쪽이 후미카를 배려해 라인 연락은 안 하는 쪽으로 노선을 틀게 되어 지금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시이는 신이니 문제가 있어도 어련히 이해해 주겠거니 싶다. 유유히 제 스마트폰을 꺼낸 후미카는 잠시 헤매다가도 큐알코드를 띄우는 데 성공했다. 의문감에 느릿하게 눈꺼풀이 닫히고 오른다. 제대로 한 게 맞나?
정보의 신뢰도는 제껴두고, 왜 믿어야 할까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말해봤자 뻔뻔한 대답만 돌아올 거란 예감이 요조라를 스쳤다. 익히 알고 있는 감각이다. 오빠가 뭔가 믿음직하지 못 한 일에 요조라를 끌어들일 때의 감각. 약 50%의 확률로 좋지 않은 경험을 하게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었지만 남은 50%를 무시하기는 좀 그랬으니까, 라는 생각이었다. 요조라가 코세이를 따라가기로 한 건.
조금 더 빨리 걸어보자는 말에 요조라는 역시나 대꾸 대신 시선을 힐끔 보내기만 했다. 어깨와 발목에 추라도 달린 듯 무거워서 서두르고 싶어도 그러지 못 하는 기분을 저 사람은 모르겠지, 재촉할 거면 혼자 갈 것을 왜 굳이 말을 꺼냈냐고,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우르르 지나간다. 겉으론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결국 끝까지 요조라의 페이스대로 걸어서 그 장소에 도착했다. 한켠에 가로등이 망가져 꺼진 공원. 공원이니만큼 앉을 곳은 많았고 요조라는 코세이가 가리킨 벤치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폰을 꺼내 동영상 모드를 켰고, 하늘을 향해 든 순간, 첫 유성이 길게 떨어지며 영상에 담겼다.
"흐응..."
벤치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고개를 한껏 젖힌 덕에 하늘을 감상하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요조라는 카메라를 킨 폰을 기울여 가능한 많은 면적이 담기게 하면서, 자신도 귀한 장면을 감상했다. 유성우, 별의 비라는 이름답게 수많은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는 밤하늘은 장관이란 말 외엔 표현할 말이 없었고, 이 날은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요조라가 절로 하게 만들었다.
유성우가 끝난 뒤, 요조라는 동영상을 잘 저장하고 폰을 덮어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앉은 채로 코세이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덕분에,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짤막하지만 건성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그 말을 하느라 반듯이 세웠던 몸을 다시 등받이에 슬금 늘어뜨린 요조라는 폰을 켜 메세지를 보내듯 액정을 토독토독 두드렸다. 걸음걸이만큼 느릿하게 말이다.
주변 친구들에게서도 애칭으로 몇 번인가 들었었다. 스-쨩이라던가, 스즛치 라던가 하는 것들. 처음 들었을 때에도 별로 부끄럽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또 금세 '응?' 하고 고개를 돌리며 답했었다. 그런데 이제 처음 이야기해본 상대에게서 듣는 것은 조금 신선한 느낌이었다. 애칭을 불렀다는 것은 친구라는 이야기다. 또 자신을 기억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 늘었다. 좋게 말하면 좋은 친구가 생겼고, 나쁘게 말하면 보험이 생겼다는 것이다. 스즈는 자신의 실패에 웃는 모습을 보며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 웃었지? 지금 웃었지? 익.. 미-쨩도 실패했으면서! 같이 실패했으면서! "
조금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지만 전혀 화가났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야 스즈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눈을 금붕어에 고정시켰고 자기도 모르게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가 착 달라붙어 앉았으니까. 진 사람이 밥 한 번 사는 걸로~ 라는 말에 스즈는 거기에 디저트하고 버블티까지 얹자고 말했다. 보통 이런 내기들은 그간 스즈의 경험에 의하면 누가 이기던 한 명이 60%를 부담하고 나머지가 40% 정도를 부담하며 그냥 즐거운 하루가 되기 마련이었다.
" 에, 야베- 엄청 신경쓴 것 같은데 실패했잖아~ "
스즈는 또 꺄르륵 하고 웃었다. 축제의 재미라면 이런 것들이다. 미즈미의 옆에 딱 달라붙어 앉은 스즈는 화장이 예쁘게 먹은 눈가로 금붕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금붕어 한 마리가 물 속에서 이리저리 도망치는 모습이 뭐가 재밌다는 것인지 '아, 도망쳤다.' 하고 말하며 꺄르륵 하고 웃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곤 작은 그물을 받아 다시 물에 집어넣기전 울리는 벨소리에 스마트폰을 꺼내 짧은 통화를 시작했다.
" 여~보세요~? 아, 니오쨩! 응. 아~ 같이 있어? 만난거야? 그렇구나~ 응. 하룻치도 만났었어. 하루키랑 코코하고 같이왔거든. 먼저 다들 갔고 나는 금붕어 잡기 하고있어! "
스즈는 한 손엔 스마트폰, 한 손엔 그물을 들고 허공을 바라보며 통화를 이어가다가 '음~' 하고 운을 띄우며 미즈미를 한 번 바라보곤 다시 금붕어를 바라보았다.
" 미-쨩이랑 만났어. 응. C반의 사이카와 미즈미. 지금 같이 금붕어 잡기하고있어. 데이트 중이니까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
짧은 통화를 끝낸 스즈는 그물을 잡고 금붕어들을 노려보았다. 속으로 뭐라고 말을 거는듯 잠시간 노려보더니 천천히 그물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내기가 붙은 이상 집중할 수 밖에 없어서 스즈는 후리소데의 소매가 살짝 젖는 것 정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듯 천천히 금붕어를 한 길로 몰아 낚아채려고 하고 있었다.
" 잘 봐 미쨩. 이건.. 이렇게 해서.. 이익..! 익....! 한 번에..! "
지금이다! 스즈는 그렇게 외치며 그물을 들어올렸다.
.dice 1 100. = 34
1~40 : 완전히 실패~! 40~80: : 아슬아슬하게 실패... 80~90 : 와! 성공! 90~100 : 성공하기는 했는데 물고기가 너무 높이 뛴 나머지 얼굴에 맞아버렸다!
사쿠라마츠리도 서서히 끝날 기미가 보였다. 거리는 예전보다 한산하고 조용했지만. 축제의 활기는 여전했다. 무르익어가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축제의 끝을 즐기고 있었다.
때는 이른 초저녁.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니 제일 먼저 축제 현장이 생각났다. 슬슬 마무리되는 축제이기에, 조금이라도 더 둘러보고 싶었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건 벚꽃나무였다. 마을에서 제일 큰 벚나무에 소원을 빌러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했는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쇼가 방을 나선다. 그 벚나무에 한 번 가볼 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신을 믿는 건 아니다. 신에게 소원을 비는 것만큼 의미없는 행동은 없을 거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한 심심풀이다. 쇼는 그렇게 정의내렸다.
벚나무로 향하는 길은 마냥 고요하지 않았다. 이런 밤중에도 여러 행인이 오가고 있었으니까. 사이좋은 일행이나, 혼자 찾아온 사람이나. 가로수의 벚꽃은 여전히 한때임을 뽐내듯 수없이 흩날리고 있었다.
과연 듣던 대로 벚나무는 상당히 거대했다. 쇼는 나무 앞으로 다가가서,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꿈이 이뤄지기를'.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떠올린 소원이었다. 장래희망, 통제로부터의 해방, 가족의 이해. 그 '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닿지 않을 소원이지만. 그 소망을 마음 속에 새기고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스스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기도를 마친 쇼가 뒤돌아 자리를 벗어나려는데. 그만 그 뒤에 서 있던 사람과 어깨를 툭, 부딪히고 말았다. 잠시 몸을 휘청댄 쇼는 재빨리 사과의 말을 건넸다.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상대에게 흘긋 시선을 주었다. 화려하면서도 수수한 무녀복을 입은 여자였다. 이 벚나무 근처에 신사가 있던데, 그쪽 사람일까.
아하, 소년이 잘 모르는 여러 일이 얽혀 있는 것 같지만 아마 이건 소년이 생각하는 밝은 무언가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보고, 혹은 친분을 유지하기 위한 예의, 선배가 그럴 것처럼 느껴지진 않지만 어쩌면 도발이나 선공일지도. 아무튼 사람이라면 무언가 쉽게 의도를 담곤 하는 사진에 특별한 점이 있어 보이진 않았던 것도 그런 특성 때문이었던 걸지 모른다.
"에, 신의 권능이라면 그런 것도 되는 걸까요..." / 어째서 의문형. 하지만 해본 적 없고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마츠리에 신이 돌아다녀... 음, 그치만 오늘 축제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신은 한 번도 못 봤는걸요?"
소년은 상대의 말을 듣고 조금 어긋난 방향으로 고민하며 산만한 움직임을 멈추고 나풀거리는 꽃잎 사이에 가만히 섰다. 빛나는 듯한 에메랄드의 눈동자는 피하지도 않는 소년의 눈동자와 쉽게 맞고, 접혀 떨어진다. 빛을 빨아들이는 까만색 속에 맑은 청옥색을 담기도 전. 지금 눈이 마주칠 뻔한 것 같은데? 소년은 그리 생각하며 방금 보았던 녹색 계열의 색을 떠올렸다. 축제 현장을 돌아다니는 신 중 자연스럽게 자기를 빼고 생각했던 건 넘어갈 수 있을까.
"장신구, 즐거웠겠다. 쿠미히모라던가 사셨나요? 가장 부담없는 부위가 손목이기도 하니까요." "아아, 한 번도 안 해본 걸 바로 잘 못 하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거잖아요. 저도 그런 적이 있어요! 얼마 전엔 처음 보는 식재료를 충동적으로 샀다가 비슷하게 생긴 재료와 똑같이 요리하면 되는 건가 싶더니 충격적일 만큼 흐물흐물하게 변해버려서 먹기 괴로웠거든요."
그건 역시 조리법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적당적당히 해버리는 소년의 센스 부족 기질이 원인이 아닐까 싶지만. / "그래도 조리법 잘 알아보고 만들어보니 맛있었고, 역시 한 번쯤은 해봐도 괜찮을 거에요."
"그거 게임적 사고라기보다는 효율적 사고인 거 아닌가요? 그 게임이 타임어택이라면 잘 어울리지만요."
말하고 보면 또 그게 그거인 거 같다. 애초에 게임은 인간이 일하면서 얻는 성취감과 달성감을 더 효과적으로 재현하기 위한 모델이니까 현실과 닮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아무튼 음식 노점은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녹인 설탕에 사과를 넣고 골고루 발라주고 식히면 묻은 설탕이 아래쪽으로 흘러내려서 평평하게 된다... 집에서도 만드려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죠. 설거지하기가 까다롭겠지만요."
소년은 막 만든 링고아메를 보고 그렇게 말하고 이미 식혀서 가판 옆에 포장되어 있는 링고아메를 하나 집어든다. 설탕 막에 감싸인 사과가 생각보다 크고 자세히 보니 상처도 많은 못난 것. 그러나 눈치를 못 채는 건지 상관없단 건지 계산을 마치고 포장을 벗겨내고, 어떻게 먹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설탕이 흘러내려 생긴 받침 부분을 오독 하고 조금 이로 베어 먹었다.
"먹으면서 걸을 수 있는 걸로 맞추자면, 닭꼬치나 고기 꼬치나 초코 바나나? 앗, 바나나 하니까 보이는데 사과뿐만 아니라 딸기나 작게 썬 수박 등 여러 과일을 설탕에 입혀 주는 노점도 보이네요. 초콜릿을 넣은 붕어빵을 파는 곳이나, 회오리 감자나, 꼬치 없이 종이 그릇에 담아 주는 게 디폴트지만 말하면 꼬치를 꽂아 주기도 하는 미타라시 당고. 그 외에도 많이 있고요. 토와 선배님은 어느 쪽이 좋으실 것 같나요? 뭘 먹어도 맛있을 것 같지 않나요?!"
그냥 보이는 걸 나열하고 있었을 뿐인데 말하는 중 뭔가가 신남 스위치를 자극한 듯 소년은 벌써 토와가 뭘 살지 기대되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인다. 나란히 먹을 걸 들고 먹으면서 걷고 싶은 모양인지 소개하는 노점 중 자연스레 야키소바 같은 좀 애매한 것들이 제외되고 있다. 목록에는 축제 분위기에 힘입어 대충 만들어 팔아먹지 않는 평균 이상의 노점들만 소개되고 있지만 본인은 실력에 있어서 식재료부터 실망스러운 노점을 고른 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목단자견이라는 말에 어울린다.
암만 정신이 없던 와중이라도 네 사람을 틀리니,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지 않으냐 스스로 반문하게 됩니다. 기운이 비슷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형이 비슷하냐면 절대 아니기 때문이렵디다. 눈앞의 어린 인간은 창백한 피부요, 짧은 흑발에 보랏빛 눈동자 생기 일절 없잖습니까. 하나비는 어떤 외형이었습니까? 건강한 구릿빛 피부요 긴 머리는 끝단으로 갈수록 탈색인데다, 눈은 두록색 아니덥니까. 착각도 유분수지, 혹 어린 인간이 하나비 알았다간 크나큰 민폐일 테니, 네 사과하던 겁니다. 긴 세월 인간을 틀려본 적 거의 없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요. 그만큼 정신을 해이하게 만드는 것이 상성의 힘이요, 이에 네 교훈 얻되 절대 그 어린 신에게 네 힘닿지 아니하도록 해야겠다는 결론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산 쪽이 조심해야 하는 것이 응당 옳기에.
무심한 대답과 달리 생명수를 내리는 것은 큰 은혜였던 겁니다. 입을 헹구고 일차적인 큰불은 진압하였으니, 남은 것은 몸이 견뎌주는 일뿐입니다. 아직 몸에 혼란이 남아있어 이 어린 인간이 떠나지 않고 가만있는 것과 더불어 답례에도 별다른 말 없는 것이 무슨 의중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도 악의는 느껴지지 않으니, 네 늘 그렇듯 유순하고 조신히 행동하면 될 일이렵디다.
"예. 답례 말입니다."
네 축복을 내리기엔 지금 경황없으며 축복 내린다 해도 저 인간의 인생을 망쳐 아니면 말아? 하는 것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인간 껍질 뒤집어쓰고 은혜 갚는 일이나, 잠시 여기 있어달라는 것은 답례와는 거리가 먼 일입니다. 네 그래도 가만히 기다립니다. 그렇지만 약간의 이동 있으니 구토의 흔적과는 조금 떨어져, 바로 옆 나무로 옮겨간 겁니다. 고작 대여섯 걸음 옆으로 슬금슬금 걷는 걸로도 허벅지요 종아리까지 근육이 팽팽히 당기니, 돌아가서 근육통인지 뭔지로 꽤 고생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고 맙니다. 잠시 자리 비우는 어린 인간 손에 들려오는 것은 아까 들고 있던 것과 같은 잔이나 차이점은 가득 차 있다는 점이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네 얼떨결에 컵 받아들며 가만히 액체 내려다봅니다. 인간에게 베풀어야 하는데 어째 더 받기만 합니다. 이것이 공물인지 알기는 할지, 아니, 네 신인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으니 공물인 것도 모르겠지요. 플라스틱 컵을 매만지다 입가로 가져다 대곤, 결국 한 모금 넘기게 됩니다. 잘게 부서진 얼음은 물론이요, 와인 대신 들어간 포도 과즙 내지 환타, 그 속에 재워진 과일, 소다수가 입을 깔끔하게 정리합니다. 씹히지도 않고 입안의 열기로 녹을 얼음 몇 번 오물거리다 삼키니 확실히 토기가 가라앉기는 합니다. 네 창백하던 표정이 그나마 생명수에 가라앉듯 합니다. 가벼운 한숨은 이 상황에 대한 안도인 듯싶습니다. 그리고 어린 인간을 보듯 고개 슬쩍 올립니다. 눈이 감겨있어도, 마치 그 눈꺼풀 장식이라는 마냥 신묘하게 여인 정확히 응시합니다.
"신화에서는 번개도 내리고 천벌같은 것도 내리는데. 벚꽃잎 좀 팔랑팔랑하게 내리는 것도 못하지는 않아보여서요?" 가볍게 말하는 토와가 신은 본 적 없다는 야사이의 말에 고개를 약간 기울입니다.
"신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나요?" 그렇게 진지하지는 않고 장난스럽게 묻는 형식이지만요. 야사이 군이 신이라서 알아보기라도 하나요? 같은 농담도 건넵니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할 것 같지는 않는.. 표정입니다 아마도. 벚꽃잎 사이사이에 서 있는 마주침이 아주 잠깐이었지요. 나풀거리는 벚꽃잎이 머리카락 위에 있는 것도 신경쓰지는 않으며 장신구라는 말은 긍정합니다.
"쿠미히모 팔찌나.. 장신구는 제가 하는 건 아니지만요." 하나 낄까 싶은 생각은 있지만요? 라고 말하다가....
"소원이라고 할 게 별로 없어서 그런 것도 있네요." 연애에 소원팔찌를 쓰기는 애매하고, 입시야 본인이 제대로 하는 게 이어지면 떨어지는 게 더 어렵고요? 라고 말하는 토와입니다.
"효율적인 사고도 있지만.. 게임에서 뜯어보고, 구석구석 살펴보는 것도 중요할 수도 있겠네요." 시뮬레이션 종류라면요. 가볍지만 답을 꾸준히 해주는 토와입니다.
"만들려면 만들 수는 있겠죠?" 기숙사에서 했다간 세제거품범람사태는 아니라도 냄비 하나가 태워먹힐 것 같은 감은 오지만요. 라고 합니다. 지금의 토와라면 가능하겠지. 막 만든 링고아메를 집어드는 걸 보고는 별로 안 좋아보이는데.. 싶은 생각은 있지만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애매합니다. 그야. 그런 걸 대처하는 방법 중 토와가 아는 건... 좀.. 애매합니다. (침묵)
"그렇네요. 뭘 먹어도 맛은 있겠죠?" "딸기나 다른 과일을 설탕으로 코팅하는 건 바삭한 게 있어보이고.. 초코바나나는 초코바나나고요?" 그렇지만 개 중에서는 링고아메를 다 녹이고 아삭아삭하게 먹을 때까지 같이 먹을 수 있는 건 없어보이지만요. 라는 말을 하고는..
"그럼 저기 보이는 미타라시 당고 굽는 것부터 보러 갈래요?" 그 옆쪽의 야끼소바도 굽는 모습은 볼거리더라고요. 라면서 가까이 가면 간장소스와 매콤달콤한 소스를 발라 살짝 더 구우면 그 소스의 풍미가 더 올라가는 듯한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타에마누시노카미는 그 이름대로 틈새면 틈새마다 깃들고, 기이한 눈을 떠 만물을 관망하는 신. 특히 신사神事는 오래도록 보살펴온 신. 등불이 샛붉도록 걸린 마츠리도, 주인 되는 벚나무에 소원 올리는 정경도, 모두 가려지는 면도 없이 꼬박 담겨왔다.
그러니 자유의 색으로 머리 물들인 소년의 기원도, 벚꽃이 눈꺼풀에 내려앉는 것처럼 이다지도 자연스럽게.
휘청이는 몸 보면서도 뒷짐은 여상하게, 에니시는 쇼를 지그시 보기만 하였다. 호들갑도 없고, 작은 친절조차 없다. 머잖아 중심 잡아낼 것 알기 때문이다. 앞에 사람을 두고도 권태 지워지지 않는 얼굴. 그녀는 휘청도 기우뚱도 않으며 꼿꼿하게만 서 있다. 홍백으로 늘어진 화려한 장식만이 이따금 봄바람에 흔들려 낙화와 어우러질 뿐이다.
다만 죄송합니다, 는 지나치지 않았는데, 그녀는 눈을 살포시 감고 "으응." 하고 답했다. 고개도 살래살래 저어냈다. 에니시는 이내 첨예한 눈 뜨고는 시치미 뚝 떼며 말 건넸다.
"있지, 무슨 소원 빌었어?"
//제일 오래된 벚꽃나무에는 커다란 신사가 하나 세워져있었다, 길래 나도 모르게 신사 경내에 벚나무가 있는 줄 알았는데 정확히 읽으니 벚나무 근처였네 우우 선레는 적당히 필터링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