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는 조금 단호히 말하며 손가락을 꼭 끼웠다. 이것이 꼭 엄청 중요한 약속이라도 되듯이 절대 자신을 잊지 말라며 손가락을 끼웠다. 그리고 손가락이 풀리고 나서도 스즈는 잠시간 깍지꼈던 새끼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잊혀지는 것은 싫다. 도태되는 것도 싫다. 남들이 잘 하는 것을 찾아갈 때 그러지 못하면 도태되고, 그렇게 멈춰서 썩어있는 동안 잊혀진다. 마치 세상에 스즈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 처럼. 그런 것은 싫다.
" 응~ 배고프네. 아, 나도 도와줄게! 요리는 여자력의 기본이지. 자신있다구! "
언젠가 잡지에서 몇 번인가 본 적 있다. 유튜브에서도 봤었지. 이래저래 문어발처럼 취미를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요리도 있었다. 엄청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칼은 다룰 줄 안다. 앞치마는 없는지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가 적당히 팔을 걷어부치고 손을 씻었다. 주방 안에 '실례~' 하는 한 마디와 함께 끼어들었다.
" 버섯은 여기있고.. 두부도 있고.. 대파는, 아! 여기있네. "
스즈는 버섯을 씻었고, 두부를 구웠다. 대파를 썰었고 어차피 스키야키에 들어가게 되겠지만 예쁘게 정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곤 뭔가 생각난듯 다시 거실로 달려가 스마트폰을 꺼내곤 요리중인 시이의 어깨를 톡톡 쳤다.
" 시-쨩, 여기여기! "
그리곤 스마트폰 액정을 셀프 카메라로 돌려 미소를 지으며 그 안에 둘을 담았다. 화면 안의 스즈는 눈가가 붓고 상처가 있었고 입술이 터져 피가 조금 말라붙어있었지만 치-즈 하고 웃었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남기겠다는 의미였는지 아니면 단순 흥미 본위의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스즈는 이제 방금 막 만난 이에게도 별다른 어색한 기색 없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친구들과는 잠시 떨어졌다. 금붕어 잡기가 꼭 해보고 싶은데, 다른 친구들은 그다지 흥미가 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스즈는 그럼 자기 혼자 할테니 나중에 만나자고 말하며 금붕어 잡기 천막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후리소데가 조금 젖은 것은 신경쓰지 않는 다는듯 대야 앞에 앉은 스즈는 인상을 몇 번인가 찌푸리면서 열심히 그 얇은 그물로 금붕어를 건지고 있었다. 그리고, 번번히 실패했다.
" 오..! 됐다! 됐어! 됐... "
팡- 하고 얇은 그물이 터지고 금붕어는 다시 물 속으로 떨어졌다. 스즈는 악!!! 하고 조금은 크게 비명을 질렀다. 벌써 얼마를 썼는지 모르겠다. 스즈는 금붕어를 노려보다가 '한 번 더 할래요!!' 하고 지갑 안의 돈을 꺼냈다. 벌써 몇 번째 재시도인지 모른다. 하지만 스즈는 꼭 성공하고 말겠다며 다시 그물을 집었다.
" 에? "
그리고 불쑥 튀어나오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스즈는 고개를 돌렸다. 축제의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라면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문어발처럼 여기저기 아는 사람이 많은 스즈다. 과장이 아니고 세 다리 안에 가미즈미고의 모든 사람과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스즈는 얼굴을 보자마자 '사이카와 미즈미' 라는 이름을 기억해냈다.
" 뭐어라고~? "
그거 그렇게 하는거 아닌데, 라는 말에 색조 화장과 화려한 후리소데 그리고 밝은 머리의 소녀는 눈을 돌려 미즈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시비 거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들려오는 소문이 그렇게 안 좋은 사람도 아닌데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안 좋은 버릇이다. 문제라면 이미 스즈가 여기에 꽤 많은 돈을 투자했고 소득은 없어서 슬슬 악에 받치던 차였다는 것이었다.
" 흠흠.. C반의 사이카와 미즈미지? B반의 미나미 스즈야! 만반잘부~ "
일단은 그렇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스즈는 방금 그 말에 책임을 지라는 듯 얇은 그물을 건네주었다.
나는 돈을 더 꺼내드는 상대에 탄식한다. 내가 요즘들어 부쩍 느끼는 것인데 요즘 인간들은 참으로 영악해서 돈벌이에 그토록 진심이더라. 그래도 옛날에는 물욕을 천박하게 여기는 풍토가 있었다. 애들이 명예를 위해 죽고 죽이고 강에 핏물 좀 흘려서 문제지 그때 애들은 참 순진하고 좋았는데... 그래도 제 앞에 있는 이 인간은 사람이 참 밝고 좋아보인다. 무엇보다 내 이름을 기억한다는 점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 평소보다 밝게 웃음이 나왔던 것 같다.
"와아- 내 이름 기억해주고 있었네요? 멋지다-! 그..."
만발장부가 뭐지? 장부가 많아서 좋은 세상이라는 뜻인가? 나는 괜히 나이가 든 것 같아서 기분이 조금, 아주 조금 나빠진다. 모처럼 내 이름도 기억해주고 마음에 드는 인간을 만났는데 말이다. 내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묻는다. 그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말자. 알아가려고 하는 태도가 중요한 거다.
"근데요- 만발장부가 무슨 뜻이에요?"
나는 일부로 더 해맑게 웃는다. 원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게 인간이다.
"어엇, 저요?"
여러모로 소란스러운 자기소개 시간이 지나자 내게 돌아온 건 얇은 그물이 달린 작은 막대였다. 뭐랄까... 잘 쳐줘도 큰 숟가락 같은 느낌. 그렇지만 난 자신이 있다. 명색의 신인데 이마저도 못하면 말이 안되지. 나는 호기롭게 소매를 걷어올리고는 몸을 낮춘다. 어떻게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고 왜 이런 놀이가 유행인지도 이해되지 않지만 이렇게 인간이랑 하하호호하고 있으니까 아무튼 좋다. 이제 멋지게 금붕어를 잡아서 내 매력을 어필하면 되는 일이다.
"얍!"
은근슬쩍 내 이두박근을 자랑하며 낚아채듯 그물을 올렸다. 펑- 소리 나기 전까지는 잘 되는 것 같았다. ...이게 왜 이러지? 나는 막대를 들어 눈 앞에 댔다. 뻥 뚫린 구멍이 내 가슴에 난 듯 속이 편치 않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침음을 냈다.
"어, 어라~? 이게 왜 이렇게 휑 뚫려 있을까..."
나는 자리에 일어나 슬쩍 시선을 피했다.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니 낭패다.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원래 인간은 귀여울 때 가장 매력적이라 했다. 실수는 또 인간미를 자아낸다 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스즈를 본다.
스즈는 사진을 찍을 것을 알고 있었어서 이미 포즈를 잡고 있었다. 한 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볼에 가져다대고 미소를 지었다. 찰칵- 하는 소리가 나고 스즈는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빼서 뺏으려는 손을 피하곤 스마트폰을 확인하여 킥킥대고 웃었다. 확실히 위험한 사진이긴 했다. 여고생 둘이었고 술까지 적나라하게 찍혔다. 한 명은 분홍머리를 투사이드업으로 묶었고 피어싱까지 얼핏 보이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색조 화장이 눈가에 있었고 밝은 머리색에 눈가와 입술에는 상처까지 있는채로 웃고있었다.
" 에? 왜? 왜 지워~ 귀여운데? 초-귀여운데! "
스즈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이이쟝~ 하고 말하며 꺄르륵 하고 웃었다. SNS에 올린다면 '불량한 여고생 둘' 이라는 제목이 딱 어울릴 법 했다. 스즈는 화면을 돌려 시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귀여운데? 하고 한 번 더 말했다.
" 지우기 싫어~ 이이쟝~ 벌써 우리 둘이 추억이 생긴거라구~ "
사진은 단편적이다. 요리하기 위한 술이었겠지만 이렇게나 불량해보이는 여고생 둘이 술을 들고 있다면 누가봐도 마시고 취하기 위해 들고있는 꼴이다. 그렇지만 스즈가 그런 것을 신경쓰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스즈는 톡,톡,톡 하고 스마트폰을 터치하면서 한 손으로는 시이가 이 쪽으로 다가와 뺏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 됐다. 시-쨩한테도 보냈어. 첫 추억이야~ "
첫 추억이라고 스즈는 말했다. 이번이 처음이고, 앞으로도 많은 추억을 만들어 갈 것임이 확정나기라도 한 것처럼 '첫 추억' 이라고 말했다. 빨갛고 예쁘게 물들어가던 석양이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스즈는 '얼굴 가리고 SNS에 올려버릴까~' 하고 장난스레 말했다. 물론 스즈도 생각은 있는 아이여서 다른 사람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맨 얼굴을 올려버릴 사람은 아니었고 얼굴을 가리더라도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을 것이었다.
" 응. 확실히 조금 위험하긴 하네. 이거봐 시-쨩. 완전히 불량 갸루 두 명이 술 마시는 사진이야. 조금 위험할지도~ "
불꽃놀이? 사람 이름보다 물건 이름을 먼저 떠올린 시니카는 그게 히키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헷갈린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사쿠라마츠리 때 불꽃놀이도 하던가? 하고 희미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인 줄 알고 그만, 하는 말에도 하나비를 사람 이름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것으로 그쳤다. 알아도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비라는 것이 사람 이름이라는 것을 알아도, 신관의 딸이라는 것까지 알아도, 지금 눈앞에 있는 소년이 재앙의 신이라는 것을 알아도, 액이 옮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도, 히키가 거절했더라도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액도 시니카의 인생에는 뜯어먹을 것이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떨어져나갈 텐데 무슨 상관인가.
"별 말씀을."
하고 무심히 대답한 시니카는, 히키가 음료 약간과 얼음 한 알을 입안에 굴려넣고 입을 헹군 뒤 뱉어내는 것을 바라보았다. 떠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답례요?"
답례? 답례라는 말에 멍하니 생각한다. 벚꽃의 신에게도 무엇 하나 바라는 것이 없어 누구나 다는 에마며 벚꽃에 칠석처럼 거는 소원 쪽지도 외면하여 고개 돌리고 돌아선 이는 답례로 무엇을 바라는 법도 몰랐다. 시니카는 가만히 있다가 톡 뱉는다.
"잠깐 여기 있어보세요."
곧 그 자색의 스카잔이 휙 뒤로 돌며 뒷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저만치에 있는 매점으로 총총 멀어지더니, 거기서 다시 휙 돌아서 이리로 온다. 손에는 또다른 플라스틱 컵을 든 채다. 시니카의 다른 손에 들려있는 것과 똑같은 컵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시니카의 컵은 얼음이 가득차있을 뿐 붉은 반이 좀 안 되게 비어있다는 것이고, 새로운 컵은 얼음도 빨간 액체도 가득 차 있다.
"얼음 하나 꺼내서 녹여드세요. 토기를 가라앉히는 데에는 괜찮으니까."
시니카는 새 컵을 히키에게 내밀었다. 이상한 소녀다. 뭔가 답례를 해야겠다 하니 뭔가 더 내밀어온다.
가미즈미. 모이고 차분히 고일 것만 같은 그 어감이 나쁘지 않다. 그런 가미즈미의 가장 묵은 벚나무는 봄을 알리는 신이 깃드는 자리로 지금까지도 눈발 같은 벚꽃 흐드러져 있다. 사람은 마음으로부터 감사하여 극진히 모시며, 신령은 그 정성에 대답하듯 작은 자들이 꽃을 우러르며 자아내는 소원에 손을 뻗어 하나하나 엮어둔다. 이야말로 신과 인간의 몹시나 마땅한 관계. 그 틈새에서 관망하며 보살피는 것이 마땅한 무신巫神은 소녀의 인두겁을 뒤집어 쓴 채 봄의 신이 주인인 경내에 발자국을 내딛어본다.
틈새에서는 곧잘 보았지만,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온전한 인간의 육신을 지니고서는 처음인가. 발자국을 찍는 감각은 조금 새롭게 다가오기조차 한다.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바쁜 무녀를 지나치고 바쁜 신직을 지나치나 가장 무수히 지나친 것은 온갖 종류의 사람이다. 참배하는 사람, 기도祈祷를 하는 사람, 이제 막 토리이에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서는 사람, 기쁘다 하며 돌아가는 사람, 가족과 미소하는 사람... 신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듯한 무녀의 히바카마緋袴에 치하야千早까지 갖춰 입었으나 경내 깊숙이 드는 어린 무녀는 어딘지 이질적으로도 느껴지는 모습이니, 참 이상하다. 지나치는 사람 저도 모르게 문득 고개를 기울여버리나, 에니시는 그럼에도 자연히 녹아들 것마냥 얽매이지 않는 자태로 우아한 양 벚나무 앞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움직이면 깨고 마는 미인이라고 앞서 말했지. 흰 벚꽃이 밝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무녀, 말이야 아름다우나, 여기서 무녀는 굳이 뒷짐을 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 소녀보다는 어딘지 노인네 같은 분위기로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본연의 아름다움은 어째선지 해쳐지지 않아- 무녀는 꿈과 같은 맵시로 담담히 벚나무를 올려다 보았다. 사람은 수도 없이 오가고, 소리는 이곳저곳 무성한데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했다. 만남이 있대도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자연스레 건너편에 응할 테지.
>>703 일단 시니카는 꽤 친절해 >:3 스스로는 다른 사람과 마찰 빚는 것도 귀찮아해서 무던무던하게 넘긴다-고 변명하고 있으며, 스스로한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되뇌고 있지만, 그래도 성격 밝을 때의 친절하고 오지랖넓은 기질이 어디 안 간 거지. 진짜 산치체크가 필요한 순간은 행복해하거나 기뻐하는 시니카다......
>>705 ㅋㅋㅋㅋㅋ 아무래도.... 코세이 앞치마도 하고... (알바) 항상 밥 해줄 것 같고... 야사시하게 혼내줄 것 같고....... 춋토 누구누구챤! 할 것 같은 이미지지 응응 으앗 사춘기니까 봐주면 안될까나~~~~~~ 사실 미즈미도 땡깡은 잘 안부릴 것 같지... :D
프흐흐, 네 농담에 후유키는 소리 내어 웃는다. 그 모습은 영락 없는 그 또래 여자아이 같을까. 난처한 표정인 너와 눈이 마주치면 후유키는 입가를 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이어진 네 권유에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어 보인다. 네 배려에는 큰 빚을 진 느낌이었고, 이로써 갚을 수 있던 것인데. 또다시 네게 무언가를 받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원치 않는 것이다.
"권유는 나쁘지 않지만... 사양할게."
잔잔한 미소로 후유키는 널 바라본다.
"이미 충분히 받았는데, 더 받기엔 미안해서말야."
양보 고마웠어. 나중에 봐. 느린 어조로 덧붙여 말하며 후유키는 상긋이 눈인사를 네게 건낸 뒤, 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