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축제는 실로 처음이었다. 시선을 돌릴 때마다 화려하게 꾸민 인간들이 소란이다. 나는 솜사탕 하나를 들고 가만히 거리를 지켜보았다. 장신구를 이리저리 대며 거울을 바라보는 여자들도 그렇고 모빌처럼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장난감을 보고 탄성을 내지르는 아이도 그렇고 보기에 흡족한 관경이었다. 나는 솜사탕을 한 입 베어물려다 만다. 몽실몽실 구름 같은 것이 예뻐서 샀는데 속이 느글정도로 단 터라 풍선 든 것처럼 들고 있었을 뿐이다.
그때, 첨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 그래도 물을 다루는 신인지라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나는 물뱀처럼 목을 쭉 빼고 소리의 근원지를 살핀다. 그곳에서는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가 몸을 굽히고서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내가 보기엔 저기 작은 물그릇에서 팔리기 위해 전시된 금붕어보다 더 예뻤다. 아무튼 시달리고 있는 금붕어도 불쌍하고 난색 표하는 여자도 보기 뭣해 나는 쑥 몸을 들이밀고 보았다. 얇은 그물이 펑 터져나가면서 금붕어가 맥 없이 떨어졌다. 펄떡거리는 모습이 영 시원찮은게 시름시름 앓고 있는 녀석이 틀림없다.
"와- 뭐하는 거예요? 금붕어 잡기?"
나는 혼수를 둘 생각 없지만 약간의 도움을 주고자 했다. 원래 상대가 짜증나면 혼수고 고마워하면 조언이니 잘 조절하면 문제 없을터였다. 나는 그동안 많은 인간이 만든 매체로 틈틈히 인간 공부도 했고 옛 성현들의 말씀도 마음속에 세겨놓았으니 잘 할 자신이 있었다.
당연히 처음 듣는 얘기겠지. 지금 여기에서 하늘에 유성우가 내린다면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좋아하겠지만 천문학자 양반들은 패닉에 빠져서 우주에 떠있는 수많은 인공위성들의 데이터를 확인해본다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우연의 연속이니까, 우연스럽게 인공위성들 사이에 사각이 생겼고, 우연히도 그 자리로 유성우의 원인이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괜찮을 것이다.
" 믿을만한 정보니까, 나 한번만 믿어봐요. "
아까처럼 왼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한 나는 벤치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키는 소녀를 보고선 축제의 외곽으로 길을 안내했다. 지금 사쿠라마츠리가 열리고 있는 이곳에서 조금만 나가면 공원이 있고, 그 어귀에는 가로등이 고장나서 주변이 아주 어두운 장소가 있다. 물론 이런 밤에 움직이기엔 위험한 곳이지만 지금만큼은 위험하지 않을테니까.
" 너무 빨리 움직이면 다칠수도 있으니까 ... 지금보다 조금 더 빨리 걸어볼까요? "
다시 한번 손목시계를 바라보면서 요조라에게 말했다. 평소엔 느릿한 발걸음이니까 괜시리 급하게 움직이면 다칠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는 아니었다. 그녀의 옆에서 발걸음에 맞추어 걷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고 그곳에도 있는 벤치에 앉으라고 손짓한 뒤에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 잘 보고 있어요, 곧 떨어질테니까. " " 28,29,30,31 ... 지금! "
지금이라는 말과 함께 손가락을 튀기자 자리를 지키며 빛나는 것들 사이로 길게 빛의 자락이 그려진다. 큰곰자리의 중앙을 관통한 유성은 그대로 사라졌고 한동안 조용하던 하늘은 이내 하나 둘씩 뒤를 따르며 나타나는 유성우로 인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축제에 있던 사람들도 유성우를 발견했는지 흥분한 기색이 여기까지 전해졌고 나 또한 아름다운 빛무리들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 오늘만큼은 불행한 사람이 없기를. "
비록 잠깐의 순간이지만 모두가 행복하기를 빌어보았다. 뭐, 소원 이루어주는건 내 권한 밖이지만.
스즈는 조금 단호히 말하며 손가락을 꼭 끼웠다. 이것이 꼭 엄청 중요한 약속이라도 되듯이 절대 자신을 잊지 말라며 손가락을 끼웠다. 그리고 손가락이 풀리고 나서도 스즈는 잠시간 깍지꼈던 새끼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잊혀지는 것은 싫다. 도태되는 것도 싫다. 남들이 잘 하는 것을 찾아갈 때 그러지 못하면 도태되고, 그렇게 멈춰서 썩어있는 동안 잊혀진다. 마치 세상에 스즈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 처럼. 그런 것은 싫다.
" 응~ 배고프네. 아, 나도 도와줄게! 요리는 여자력의 기본이지. 자신있다구! "
언젠가 잡지에서 몇 번인가 본 적 있다. 유튜브에서도 봤었지. 이래저래 문어발처럼 취미를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요리도 있었다. 엄청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칼은 다룰 줄 안다. 앞치마는 없는지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가 적당히 팔을 걷어부치고 손을 씻었다. 주방 안에 '실례~' 하는 한 마디와 함께 끼어들었다.
" 버섯은 여기있고.. 두부도 있고.. 대파는, 아! 여기있네. "
스즈는 버섯을 씻었고, 두부를 구웠다. 대파를 썰었고 어차피 스키야키에 들어가게 되겠지만 예쁘게 정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곤 뭔가 생각난듯 다시 거실로 달려가 스마트폰을 꺼내곤 요리중인 시이의 어깨를 톡톡 쳤다.
" 시-쨩, 여기여기! "
그리곤 스마트폰 액정을 셀프 카메라로 돌려 미소를 지으며 그 안에 둘을 담았다. 화면 안의 스즈는 눈가가 붓고 상처가 있었고 입술이 터져 피가 조금 말라붙어있었지만 치-즈 하고 웃었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남기겠다는 의미였는지 아니면 단순 흥미 본위의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스즈는 이제 방금 막 만난 이에게도 별다른 어색한 기색 없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친구들과는 잠시 떨어졌다. 금붕어 잡기가 꼭 해보고 싶은데, 다른 친구들은 그다지 흥미가 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스즈는 그럼 자기 혼자 할테니 나중에 만나자고 말하며 금붕어 잡기 천막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후리소데가 조금 젖은 것은 신경쓰지 않는 다는듯 대야 앞에 앉은 스즈는 인상을 몇 번인가 찌푸리면서 열심히 그 얇은 그물로 금붕어를 건지고 있었다. 그리고, 번번히 실패했다.
" 오..! 됐다! 됐어! 됐... "
팡- 하고 얇은 그물이 터지고 금붕어는 다시 물 속으로 떨어졌다. 스즈는 악!!! 하고 조금은 크게 비명을 질렀다. 벌써 얼마를 썼는지 모르겠다. 스즈는 금붕어를 노려보다가 '한 번 더 할래요!!' 하고 지갑 안의 돈을 꺼냈다. 벌써 몇 번째 재시도인지 모른다. 하지만 스즈는 꼭 성공하고 말겠다며 다시 그물을 집었다.
" 에? "
그리고 불쑥 튀어나오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스즈는 고개를 돌렸다. 축제의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라면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문어발처럼 여기저기 아는 사람이 많은 스즈다. 과장이 아니고 세 다리 안에 가미즈미고의 모든 사람과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스즈는 얼굴을 보자마자 '사이카와 미즈미' 라는 이름을 기억해냈다.
" 뭐어라고~? "
그거 그렇게 하는거 아닌데, 라는 말에 색조 화장과 화려한 후리소데 그리고 밝은 머리의 소녀는 눈을 돌려 미즈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시비 거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들려오는 소문이 그렇게 안 좋은 사람도 아닌데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안 좋은 버릇이다. 문제라면 이미 스즈가 여기에 꽤 많은 돈을 투자했고 소득은 없어서 슬슬 악에 받치던 차였다는 것이었다.
" 흠흠.. C반의 사이카와 미즈미지? B반의 미나미 스즈야! 만반잘부~ "
일단은 그렇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스즈는 방금 그 말에 책임을 지라는 듯 얇은 그물을 건네주었다.
나는 돈을 더 꺼내드는 상대에 탄식한다. 내가 요즘들어 부쩍 느끼는 것인데 요즘 인간들은 참으로 영악해서 돈벌이에 그토록 진심이더라. 그래도 옛날에는 물욕을 천박하게 여기는 풍토가 있었다. 애들이 명예를 위해 죽고 죽이고 강에 핏물 좀 흘려서 문제지 그때 애들은 참 순진하고 좋았는데... 그래도 제 앞에 있는 이 인간은 사람이 참 밝고 좋아보인다. 무엇보다 내 이름을 기억한다는 점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 평소보다 밝게 웃음이 나왔던 것 같다.
"와아- 내 이름 기억해주고 있었네요? 멋지다-! 그..."
만발장부가 뭐지? 장부가 많아서 좋은 세상이라는 뜻인가? 나는 괜히 나이가 든 것 같아서 기분이 조금, 아주 조금 나빠진다. 모처럼 내 이름도 기억해주고 마음에 드는 인간을 만났는데 말이다. 내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묻는다. 그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말자. 알아가려고 하는 태도가 중요한 거다.
"근데요- 만발장부가 무슨 뜻이에요?"
나는 일부로 더 해맑게 웃는다. 원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게 인간이다.
"어엇, 저요?"
여러모로 소란스러운 자기소개 시간이 지나자 내게 돌아온 건 얇은 그물이 달린 작은 막대였다. 뭐랄까... 잘 쳐줘도 큰 숟가락 같은 느낌. 그렇지만 난 자신이 있다. 명색의 신인데 이마저도 못하면 말이 안되지. 나는 호기롭게 소매를 걷어올리고는 몸을 낮춘다. 어떻게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고 왜 이런 놀이가 유행인지도 이해되지 않지만 이렇게 인간이랑 하하호호하고 있으니까 아무튼 좋다. 이제 멋지게 금붕어를 잡아서 내 매력을 어필하면 되는 일이다.
"얍!"
은근슬쩍 내 이두박근을 자랑하며 낚아채듯 그물을 올렸다. 펑- 소리 나기 전까지는 잘 되는 것 같았다. ...이게 왜 이러지? 나는 막대를 들어 눈 앞에 댔다. 뻥 뚫린 구멍이 내 가슴에 난 듯 속이 편치 않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침음을 냈다.
"어, 어라~? 이게 왜 이렇게 휑 뚫려 있을까..."
나는 자리에 일어나 슬쩍 시선을 피했다.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니 낭패다.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원래 인간은 귀여울 때 가장 매력적이라 했다. 실수는 또 인간미를 자아낸다 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스즈를 본다.
스즈는 사진을 찍을 것을 알고 있었어서 이미 포즈를 잡고 있었다. 한 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볼에 가져다대고 미소를 지었다. 찰칵- 하는 소리가 나고 스즈는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빼서 뺏으려는 손을 피하곤 스마트폰을 확인하여 킥킥대고 웃었다. 확실히 위험한 사진이긴 했다. 여고생 둘이었고 술까지 적나라하게 찍혔다. 한 명은 분홍머리를 투사이드업으로 묶었고 피어싱까지 얼핏 보이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색조 화장이 눈가에 있었고 밝은 머리색에 눈가와 입술에는 상처까지 있는채로 웃고있었다.
" 에? 왜? 왜 지워~ 귀여운데? 초-귀여운데! "
스즈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이이쟝~ 하고 말하며 꺄르륵 하고 웃었다. SNS에 올린다면 '불량한 여고생 둘' 이라는 제목이 딱 어울릴 법 했다. 스즈는 화면을 돌려 시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귀여운데? 하고 한 번 더 말했다.
" 지우기 싫어~ 이이쟝~ 벌써 우리 둘이 추억이 생긴거라구~ "
사진은 단편적이다. 요리하기 위한 술이었겠지만 이렇게나 불량해보이는 여고생 둘이 술을 들고 있다면 누가봐도 마시고 취하기 위해 들고있는 꼴이다. 그렇지만 스즈가 그런 것을 신경쓰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스즈는 톡,톡,톡 하고 스마트폰을 터치하면서 한 손으로는 시이가 이 쪽으로 다가와 뺏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 됐다. 시-쨩한테도 보냈어. 첫 추억이야~ "
첫 추억이라고 스즈는 말했다. 이번이 처음이고, 앞으로도 많은 추억을 만들어 갈 것임이 확정나기라도 한 것처럼 '첫 추억' 이라고 말했다. 빨갛고 예쁘게 물들어가던 석양이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스즈는 '얼굴 가리고 SNS에 올려버릴까~' 하고 장난스레 말했다. 물론 스즈도 생각은 있는 아이여서 다른 사람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맨 얼굴을 올려버릴 사람은 아니었고 얼굴을 가리더라도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을 것이었다.
" 응. 확실히 조금 위험하긴 하네. 이거봐 시-쨩. 완전히 불량 갸루 두 명이 술 마시는 사진이야. 조금 위험할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