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 정답! 으음, 그건 아직은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이네요. 그래도 누군가 받을 사람이 있는 사진을 찍으려 하는 거죠? 그렇다면 그거 좋은 선물이에요. 사쿠라마츠리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한 장면을 골라 담는다면 언제이든 받는 사람이 누구라도 무척 좋아할 것 같아요."
받는 사람이 좋아할 거란 말을 입에 담으면서 그걸 상상하는 자신이 더 즐거운 양 소년은 미소짓는다. 보내고 태운다는 건 남겨두지 않는다는 말일까, 사진에 마음이 담긴다면 그것은 보내버린 마음을 지워버리는 일이 아닐까, 말장난 같은 걸 조금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큰일로 여기지 않는다.
"너무 빠르지 않아요? 이 사쿠라마츠리의 벚꽃잎들은 눈 내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공중에 머물러 느긋하게 떨어지는 편이니까 상승기류는 크게 받고 있는 것 같고, 초속 1미터보다는 조금 느리지 않을까요... 앗, 안경에 묻은 것도 떨어져요!"
초속 5cm보단 빠를 듯한 느릿한 속도로 다른 꽃잎더미 위에 내려앉는 안경에 붙었던 꽃잎을 가리키며 소년은 키득거린다. 그래도 떨어지는 건 같아서 금방 눈으로 쫓기도 힘들어지고 다른 꽃잎 사이에 묻히고 만다.
"사줘... 아니, 사드리고 싶은 건 제 쪽인걸요. 그렇지만 곤란하다면 어쩔 수 없죠. 링고아메는 제가 대신 먹을게요~."
일단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만남이지만 기왕이면 베풀고 싶은 것이 소년의 마음이다. 그러나 상대가 바라지 않는 일에 베품이라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고, 나눠 먹는다 쳐도 좋을 것 같진 않다. 옛 이야기에도 신에게 바칠 공물에 손을 댔다 저주받은 이야기가 있는데, 자신은 그런 걸 바라지 않지만 '받는다'와 '종족차'의 개념 같은 것으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 않은가? 소년은 싫어, 하고 생각했다. 대신 약속한 건 혼자서라도 링고아메를 먹겠다는 것. 소년은 아직 모른다. 링고아메는 그저 단단한 설탕 안에 사과가 들어 있을 뿐이란 걸... 계란후라이는 계란을 깨트려서 구운 것이라는 수준의 설명이지만 정말 말 그대로라는 것을...
"정말로요? 해냈다─아!"
아까 전까지 주절주절 길게 말한 것과 대조되게도 끄덕임에 대한 이번 리액션은 그리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감정의 양은 줄어들지 않았고, 벚꽃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던 얼굴의 홍조가 앞으로의 즐거움을 기대하기에 그런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소년은 한 손에 머리카락 뭉치의 끝부분을 꾹 쥐고 다른 손을 파이팅! 하듯 들어올리는 어정쩡한 해냈다 포즈를 해보았다.
"좋겠다아~ 다 다니기엔 오늘 해가 지고도 남겠어요. 과분한 행복이 넘쳐흐르네요... 으응, 안 가본 척 해야 하는 건가요? 일일이 그런 걸 신경쓰려면 신경을 많이 써야 할 텐데요. 그치만 이 마츠리엔 너랑만 제일 먼저 놀러온 거야─라는 건 뭔가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을 것 같긴 해요. 그러고보니 저는 이번에 토와 선배님과 올해의 마츠리를 제일 먼저 즐기는 거네요─."
또 들떠서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려다 벚꽃잎이 툭툭 떨어내지는 것에 소년은 말을 끊는다.
"앗, 감사합니다. 저도..." / 그러며 토와의 머리카락에 묻은 꽃잎을 이쪽도 떼주려고 하다가, 멈칫하고 손을 돌려놓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는다. 머리카락에 묻은 건 타인이 아니면 안 보이니까, 이대로 떼지 않은 채로 남겨두는 게 더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한 것일까. 금방 자신이 받은 쪽에 의식이 간다. 생각보다 섬세한 손으로 벚꽃잎을 털어내는 것은 왠지 덤불에서 꽃을 따는 손길 같다. 마음 속으로 한 비유가 마음에 들어 소년은 겉으로 또 웃음을 드러냈다.
"토와 선배님은 따는 거 잘 할 것 같고, 사격을 해봐도 좋을지도..."
그러나 마음 속에서 한 생각에 연상까지 거듭해 설명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내놓는 건 어지간히 들뜬 탓이 아닐까 싶고. / "링고아메는 어디일까요─." / 하고, 소년은 당신을 자연스럽게 음식 노점 같은 것들이 있었던 곳으로 이끌어가려 한다. 당신이 어디든 먼저 가려 하거나 더 사진을 찍으려 한다면 그에 따르려 할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보통 저렇게 취미 수준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림을 잘 그리던데. 무언가를 엄청 잘하는 사람치고 으스대는 사람을 못보았기에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그렇구나, 하는 짧은 대답만 내놓았다. 꽃잎을 털어내자 무언가 역장이라도 있는듯이 한걸음 멀어지는 그녀를 보고선 작게 웃음을 터뜨린 나는 이어진 그녀의 말에 놀라고 말았다.
" 아, 그걸 직접 그린거에요? "
노점에 들어가기 전에 천막에 그려진 그림을 살짝 엿보았다. 밤하늘을 그려놓은 것이 참 수려하게 아름다워서 어디서 구한 것일지 궁금했는데 그걸 직접 그린거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취미 수준이라고 했으면서 정작 그렇게 잘 그리다니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 개인적으로 밤하늘을 참 좋아하는데, 그림이 예뻐서 좋았네요. "
솔직히, 조금 감동적이었어요. 눈웃음을 지으며 소녀쪽을 바라보았다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나무를 바라보았다. 벚나무의 꽃잎들은 작은 봉오리에 매달려 자태를 뽐내다 하나씩 바람에 흩날려가고 있었다. 한 그루의 나무뿐이 아닌 이곳의 모든 벚나무들은 그렇게 수백, 수천장의 꽃잎들을 다함께 흩날리고 있다.
" 아 맞다. 이제 봤죠? 나는 귀신이 아니라는거. "
저번의 만남에서 귀신으로 오해 받았던게 이제야 생각났다. 분명 이마에 손까지 대줬는데도 귀신이라고 오해했단 말이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일부러 그런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러다 그녀의 이마에 날아든 꽃잎을 보고선 나는 다시 한번 손을 가져가 이마의 꽃잎을 쓸어주며 말했다.
" 까먹은 것 같아서 다시 소개할께요. 내 이름은 이자요이 코세이, 혹시 ... 별 보는거 좋아해요? "
아침이나 낮이었으면 절대 나오지 않을 텐션인데. 괜시리 신나서는 상대방 눈치도 안보고 이것저것 얘기하고 있다.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이런건 어쩔 수 없나보다.
씁쓸한 들큰함 때문에 골이 아팠다. 나베를 담아준 그릇을 내팽개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사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최악은 아니었다. 건더기는 두부가 좀 많은 것을 빼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국물 맛도 좋았다... 아니 좋았을 터였다, 원래라면. 감미료 듬뿍 들어간 감칠맛에, 맛술과 향신료로 균형을 잡은 국물맛이 나와야 했는데, 그 씁쓸하고 들큰한 맛이 좀 많이 거슬렸다. 아니 국물뿐이라면 야미나베치고는 이 정도면 괜찮다고 감수하고 참아넘기고 먹을 만했다. 그러나 그 풍부한 건더기들의 마지막 숟가락에, 두부와 버섯 사이에 숨어있던 복병이, 채 다 녹지 못하고 열에 엉겨붙은 홍삼정 덩어리가 이빨 사이에 제대로 씹혀버린 것이다. 국물 맛을 감수하고 앞서 먹었던 식재료들의 향이며 촉감이 입안을 가득 메우는 씁쓸한 들큰함 때문에 죄다 지워졌다.
그걸 씹자마자 얼굴이 사색이 돼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시니카는 식기를 황급히 반납하고 천막 밖으로 나와 수풀 사이에 자신이 씹은 것을 퉤 하고 뱉었다. 그리고 주변의 가장 가까운 노점을 찾아 달려들다시피 해서 동전닢을 제대로 세지도 못하고 500엔짜리 두 닢을 건네어주고서는 얼음을 탄 버진 상그리아 한 잔을 받아들 수 있었다. 노점상 아저씨는 갑자기 흉살맞은 노기가 등등한 얼굴을 하고 달려든 눈빛 매서운 여고생에게 놀란 가슴을 누르며 거스름돈을 내밀었으나, 일단 거스름돈을 받기보다 이게 먼저였다. 빨대를 통해 시큼털터름하고 새콤한 포도향과 시트러스향을 균형있게 머금은 차갑고 달콤한 액체를 입 안에 한가득 쏟아넣고서야, 시니카는 그 액체의 힘을 빌어 입안에 남은 끔찍한 맛을 간신히 씻어낼 수 있었다.
"야미나베가 좀 이상했나 봐요?" 노점상 아저씨의 조심스러운 질문이 들려온다. "지뢰를 밟았어요." 아직 채 다 펴지지 않은 표정으로 시니카는 대답했다. "놀래켜드려서 죄송합니다."
후우...
시니카는 심호흡을 했다.
토할 뻔했다.
역시, 사쿠라마츠리는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야. 하고 시니카는 속으로 툴툴거렸다. 아마 그 씁쓸한 걸 넣은 사람이 누군지 알면 진심으로 화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쁜 생각은 빨리 머릿속에서 지우자. 하고 시니카는 시선을 들었다.
입안을 씻어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문득 우연히 들어올린 시선 가운데에 걸린 것이 있었다. 누군가, 자신보다 눈높이가 조금 더 낮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게 보였다. 시니카는 아마 자신과 같은 것을 씹었겠거니 짐작했다. 신기에 일절 관련 없던 삶이었기에 관련된 내막이라곤 전혀 알 리 없으니, 그 이름모를 이가 겪는 고초가 인간이 겪을 것보다 더 독한 것도 모를 테다.
'모처럼 예쁘게 차려입고 나왔는데... 가엾게 됐네.' 시니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리고 히키의 등을 툭툭, 아프지 않게 그러나 힘있게 두들겨주는 것이 있었다. 히키가 안에 남은 것들을 게워내기 쉽게 도와주는 것이다. 움직임은 호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나 닿아오는 손길은 옷 위로도 냉랭하다. 몇 차례, 토기가 잦아들 때까지 그 손은 히키의 속에서 메슥거리며 올라오는 것이 있을 때마다 등을 두드리며 히키의 속에서 거슬리는 것들을 게워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히키가 정신을 차리고 등을 두들겨준 이가 누군지를 돌아보면, 히키보다 조금 키가 더 큰 소녀가 거기 있었다. 머리는 짧고 눈빛은 차가웠지만 이목구비가 곱고 치마를 입고 있으니 소녀겠지. 가미아리 학원의 2학년 교복을 입고, 그 위에 육각 패턴이 군데군데 수놓인 자색의 스카잔을 걸치고 있는 소녀가 히키에게 빨간 액체가 반쯤 채워진 잔을 내밀고 있었다. 비린 기색 없고 상큼한 포도와 과일 기색만 있으며 무엇보다 잔 안에 채워진 얼음들과 과일들이 투명히 비쳐보이니 피는 분명히 아니겠다.
"좀 가라앉으셨으면..." 초점만 맞춰진 채로, 텅 비어있는 듯한 보라색 눈동자가 히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음이라도 하나 드세요."
땡땡이를 쳐 사라진 아이들을 잡아오라는 체육 선생의 지시에 따라 흩어진 아이들 중 한두 명이 체육 창고의 불을 밝혔다. 매트리스 위에 덩그러니 있는 검붉은 소녀와, 그 옆의..... 쭈굴쭈굴한....? 순간 우당탕 소리와 함께 탁구공들이 와르르 쏟아졌고 시선은 무지비하게 흩어진다. 무지한 아이들은 어, 어? 쥐? 소리를 내며 구르는 탁구공들을 피하기 바쁘다. 히로는 많고 작은 탁구공들이 순식간에 몸 위로 테구르르 떨어지는 것에 저 바보, 하려다 오히려 칭찬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거다. 히로는 튀어오르 듯 빠르게 몸을 굴려 열린 체육창고 문 뒤로 기어가듯 사각지대에 숨어든다. 아무래도 이성끼리 어두운 체육 창고에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 소문은 삽시간에 퍼질 테다. 그래서 히로는 가만 숨을 죽여보지만 탁구공을 줍느라 우왕좌왕하는 아이들을 보니 일이 쉽게 흘러가진 않을 것 같다.
"야, 들키기 전에 빨리 주워"
선생이 알았다간 잔소리를 들을 것이라는 판단을 마친 행동력 빠른 아이가 서둘러 탁구공을 마구잡이로 줍기 시작했고 바닥에서 줄어가는 탁구공들을 보며 히로는 아이들이 눈을 돌렸을 때 빠르게 빠져 나가려 했다, 만. 어느새 히로의 발치까지 굴러 온 탁구공을 쭈그려 앉아 줄줄 따라 줍던 남학생과 눈이 충돌한다. 소스라치게 놀라 자연스레 입이 벌어지고 동시에 비명을 지르려는 제스처에 히로는 빠르게 몸을 굽혀 남학생의 입을 재빨리 틀어막았지만 히로의 힘과 무게를 견디지 못한 학생은 몸이 뒤로 고꾸라져 결국 균형이 무너진 히로와 좁은 구석에서 데굴 엉킨다. 난장판이 따로 없다. 아이가 주웠던 탁구공들은 도로 바닥에 흩뿌려지고. 서로 바닥에 부딪혀 둘은 신음한다.
"너 뭐야 언제부터.."
마주친 적 없는 얼굴에 같은 학년은 아니라 판단한 3학년 남학생이 인상을 구기며 히로를 노려보자 히로는 건조한 눈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손을 건네어 그를 일으켰다. 잘못한 건 맞지 뭐.
"나도 방금 왔어."
탁구공이 어지럽길래. 체육창고 밖까지 흘러나간 탁구공을 가리키며 히로는 손에서 탁구공을 슥 내보이곤 어깨를 으쓱한다. 그들을 잡으러 왔던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히로는 아무렇지 않게 탁구공을 품에 쓸어담아 제자리에 넣었다. 쏟아지는 아이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일을 묵묵히 하곤 있었으나 표정이 흐트러지지 않게 꽤나 애를 쓰고 있었다. 그 근처에 있었을 코로리와 눈이 마주쳤다면 한순간 눈이 녹아내리듯 휘어진 눈썹으로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안절부절한 강아지처럼. '이제 어떡하냐.' 라는 말을 전하는 것 마냥. 그리고 시선이 서로 떨어지면 다시 무심한 얼굴로 구석까지 굴러 들어간 공이나 주우러 휙 가버리는 것이다. 반박할 여지가 그다지 없었으니 상황은 어영부영 넘어가게 되고 아이들의 빠른 행동력 덕에 탁구공은 얼추 모두 주워 담았으나, 이제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문제겠다.
"어쨌든 이자요이. 선생님께 가 봐."
쏟은 탁구공 파티에 대해선 나중에 청구하겠다는 듯 선량한 학생 두 명은 멀리 서 있는 선생 쪽으로 눈짓을 하고, 멀거니 서있는 히로에겐 긴가민가한 의심의 눈총을 보낸다. 이자요이라는 이름을 대충 새기고 있던 히로는 눈총에 못이겨 구석자리로 어떻게 설렁설렁 열에 맞춰 있는 아이들 틈으로 끼어들어 보지만 과연 조용히 넘어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히로의 땡땡이를 눈치 챈 몇몇의 아이들이 조그만 소리로 수근거린다. 그는 무성의하게 반쯤 뜬 눈으로 귀나 후비적 거릴 뿐이다.
//히로도 같이 걸렸다~라는 전개도 완전 환영이야 >:3 다른 내용이 떠오르면 그렇게 이어도 되고. 시간이 꽤 흘러서 흐름이 좀 흐릿해진 거 같지만 ㅠωㅠ 잘 부탁해!! 고마워
그걸 직접, 이라고 하는 걸 보니 봤나보다. 별일이다. 보통 위쪽은 안 보고 지나칠텐데. 딱히 보라고 걸은게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못 봤어도 요조라는 상관없었다. 요조라에게 그림은 그저 그려내는 것, 단지 그 뿐이었다. 그러니 그걸 보고 예뻐서 좋았다느니 감동적이었다느니 말해도, 와닿지 않는다.
"그러신가요..."
요조라는 이번에도 통상적으로 하는 대꾸를 하며 반응을 흐린다. 시선도 줄곧 떨어지는 꽃잎이나 나무를 보기만 한다. 어차피 자신이 질리면 떠날 사람이다. 요조라는 필요 이상으로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앞서 꽃잎을 털어주는 것까진 갑작스러웠으니까 허용했지만, 이번에 이마로 손이 오는 건 요조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손이 미처 머리카락이나 이마에 닿기 전에 고개를 뒤로 기울여 피하고 그 움직임으로 꽃잎을 떨군다. 그리고 다시 한걸음 떨어져서, 그 무심하고도 퀭한 검은 눈으로 코세이를 힐끔거렸다.
코세이가 새삼 자기소개를 할 것도 없이, 요조라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였다. 알면서 모른 척 굴은 건. 그러면 대부분은 더이상 간섭해오지 않고 떠났고, 요조라에게는 그게 편했다.
"별... 자주, 보긴... 하죠... 밤엔, 늘, 깨어... 있어서..."
별은 요조라의 체질이 시작된 이후로 줄곧 함께 있어준 세상의 일부였다. 검푸른 밤하늘과 우윳빛 달, 온 하늘을 수놓은 별은 한낮의 해보다 더 친숙했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에도 별과 달이 있으니 싫어할 리가 없었지만, 그걸 곧이 곧대로 대답해줄 의리는 없었다. 때문에 요조라는 심드렁한 대답을 하고 그 나무 앞을 떠나 다시 걸음을 옮겼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보내거나 태워야죠. 마음이 멀어진 상대와 몸도 멀어졌지만 인연을 완전히 끊고 싶지는 않다- 정도네요. 아 그러니까 사진을 보내는 게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 정도의 안부인사 정도라는 건가요?
"상승기류 없이도 벚꽃이 느릿하게 떨어지는 방법은..." 신의 권능 정도는 될까요? 라고 말하며 가미즈미 마을이니까.. 마츠리마다 신이 돌아다닐지도 모르는걸요? 라는 말을 하는 토와입니다. 얼굴만 봐선 신 그런 건 없어. 라고 할 법한데도. 밤에도 빛을 낼 것 같은 선명한 에메랄드 색 눈이 야사이를 바라보다 빙긋 웃으며 접힙니다.
"장신구를 파는 노점상은 잠깐 구경한 적 있지만.. 본격적으로 즐기는 건 야사이 군이 처음이네요" "의외로 게임은 많이 해본 적 없어서요" 잘 못할 걸요? 라는 말을 합니다. 제가 아무리 공부는 잘해도 한번도 안해본 걸 바로 잘하진 못해요? 라네요. 어디 국경없는 의사회에라도 들어가면 호신용 사격이라도 배울지도 모른다지만(?)(국경없는 의사회에 무슨 망언이야)
"다만 게임적 사고는 잘 할 수 있지만요?" 그러니까.. 한정된 hp를 유지시키며 빠르게 처치를 끝낸다는 개념의 이해라던가요? 라는 말을 손가락으로 본인의 머리를 톡톡 건드리며 합니다. 금붕어 뜨기에서는 종이가 찢어지기 전에? 라는 생각을 하며 링고아메를 파는 곳.. 그러니까 음식 노점 쪽으로 향합니다.
링고아메.. 토와주는 작은 사과를 탕후루같이 하는걸 생각했으나. 찐 사과라는 걸 알고.. 놀랐었나?
온몸이 비명을 지릅니다.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는 고통에 인간의 껍질을 당장이라도 벗어버리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잠식하더니, 한 번 속이 크게 불타자 그 생각마저 새하얗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이성적인 사고마저 잃어버리니 세상이 빙글 돕니다. 불현듯 신관장의 딸과 함께 보던 영화가 떠오릅니다. 얼굴 없이 가면만 쓰던 검은 요괴가 욕심에 잠식되어 온천의 직원이고 음식이고 전부 먹어치우다, 주인공이 건넨 쓴 경단을 먹고 토해내며 주인공을 쫓던 그 장면. 그 경단이 얼마나 썼는지는 몰라도 요괴의 구토는 물론이요 몸이 녹아내리던 장면을 그 당시에는 감흥 없이 봤건만, 막상 비슷한 처지가 되니 몸이 녹아내리던 장면이 과장이 절대 아니었거니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생리적인 현상으로 발생한 눈물인지, 아니면 몸이 녹아내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뚝뚝 무언가 흐르는 것이 느껴지는 흐린 시야 속에서 누군가 냉랭한 호의로 등을 두들겨줬을 때, 보통이면 재액이 옮는다며 거절했을 텐데도 얌전히 받아들입니다. 네 모시는 신관의 피가 흐르니 힘 닿지 아니하는 하나비겠거니 생각한 겁니다.
등 두드려주니 다행스럽게도 일말의 이성이 유지되어 몸이 녹지 않았음을 체감할 수 있었으며, 게워내는 일은 한결 쉬웠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속 가라앉는 것은 아니요, 인간의 위에 응당 있어야 할 쓴 물까지 토해내고 몇 번을 더 헛구역질을 하고 나서야 그나마 속에 담겨있기에 느껴지는 통증 가라앉더랍니다. 그간 숨 제대로 못 쉬어 힉힉대는 소리 내며 몸 허물어질까 겨우 나무 붙잡고 고개 겨우 돌립니다. "하나비..?" 하며 보니, 감긴 눈이나 상대 확실히 볼 수 있으니, 어라. 하나비는 아닌데..
"아, 그, 그게.. 죄송합니다. 아는 사람인 줄 알고 그만.."
그런 네 바라보기에 시선 맞지 아니하고 조금 더 큰 소녀 있으니,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것은 교복 보고 알 수 있으며 그 위에 육각 무늬 자색의 스카잔 덧입은 것으로 제 나름 꾸미었더랍니다. 손에 들린 것은 붉은 액체 반쯤 채워진 잔이니 인간 육신 덧썼다 한들 본체 짐승 모습이기에 예민한 코는 어느새 소다수와 과즙 느끼었습니다. 저마저도 피였다면 심약하지는 않으나 필히 이 육신은 버티지 못하여 기절하였을 텁니다.
"가, 감사합니다.."
남모를 고통 견디어도 이리도 차분한 것은 이미 몸에 흡수된 것은 어쩔 수 없으나 버티다 보면 괜찮아짐을 알기 때문이요, 버틴다고 이 몸 사라지는 것도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깨달음 얻지 못하고 제 발로 피안 들어가지 않는 한 사라지는 몸도 아니고 말입니다. 손 뻗으며 잔 받았을 적 본 것은 텅 비어버린 듯 공허한 눈동자요, 네 경황이 없어 속 들여다보지는 못하고 고개 돌리어 잔 조금 허공에 떼어 기울이더랍니다. 구순 닿지 않고 약간의 음료와 작은 얼음 데굴 굴러 입안으로 떨어지며, 단맛이요 상큼한 맛이며 온갖 싱그러운 과일 향과 차가움이 가득합니다. 다만 이대로 삼키기 애매하여 잠시 머금고 있다 천천히 고개 돌려 뱉어내니, 입 헹군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그제야 네 할 말을 할 수 있던 게지요.
"어찌 답례를 해야할지.."
나직한 목소리는 아마 소년일 것이요, 이 상황에서도 기력은 없으나 차분하여 제법 몽롱하니, 꿈결 거니듯 합니다. 네 속 비웠다 한들 하오리니 유카타 운 좋게도 흔적 없이 깔끔하며, 그만치나 깔끔한 자세 유지하더랍니다. 조금 창백하지만 토한 사람.. 아니, 신 치고는 멀끔합니다. 고로, 작은 인간에게 받았으니 베푸는 것은 의무 아니겠습니까. 이행할 시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