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라는 어떤 대화를 할 때, 정해진 흐름이라는게 있다고 믿는 편이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어지는 흐름. 요조라에게는 그게 지금이었다. 그림 그릴 거라고 하면 잘 그리나봐요- 하는 대꾸가 돌아오는 것. 솔직히 실례이지 않나 싶지만, 말로 꺼내진 않는다. 요조라는 늘 하는 적당한 말로 대답을 흘렸다.
"취미, 수준이에요..."
그저 취미라기엔 수상 기록이 적잖았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요조라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니 그런가보다 하자.
다시 걷기 시작한 요조라의 뒤로 따라오는 발소리를 듣지 못 했을 리가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또 따라오나, 정도였는데 대뜸 갑자기 다가오니 요조라의 안에서 황색 신호등이 켜졌다. 겉으로는 곁눈질로 힐끔거릴 뿐이다. 꽃잎을 털어내는 손길도 시선으로만 따라가다가 손이 멀어지자 슬그머니 옆으로 한걸음 떨어진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며 걷고 있었지만, 아직 황색불은 꺼지지 않은 채 깜빡대는 중이었다.
"그거라면... 최근에, 그렸네요..."
밤하늘이라면 최근에, 그것도 아주 최근에 그렸기 때문에 별로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못 본 걸까 싶어서 짤막히 덧붙이는 말도 있었다.
"아까, 노점의, 천막... 그거에요..."
그렇다. 요조라가 최근 그린 밤하늘은 호시즈키당 노점에 둘러진 장식용 천막의 그림이었다. 보통은 가게 이름을 걸어놓는 위쪽에 세뼘 정도 되는 폭의 긴 천막을 노점에 빙 둘러 걸어놓았는데, 그 천막의 그림이 밤하늘과 벛꽃이었다. 별이 한가득 뜬 밤하늘 하래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풍경을 가로로 길게 그려 긴 풍경화 한점을 만들었더란다. 천막을 고정시키기 위해 세운 기둥엔 나무껍질 무늬를 그려넣고 가판도 나름의 무늬와 꽃잎들을 그려서 나름 사쿠라마츠리 느낌이 물씬 나게 해놓았지. 워낙 주변이 시끌벅적 화려해서 눈에 잘 띄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잘... 안 보이긴, 하지..."
하긴, 이런 북새통에 누가 위를 올려다볼까, 그런 생각에 작게 중얼거린 요조라. 곧 걸음을 멈추고 다시 나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기침을 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무던하게 야키소바를 합 물어버리는 에니시의 모습, 그리고 무관심 속에서 겨우 기침을 그치는 테츠야의 모습의 조화는 B급의 성긴 코미디라도 보는 듯했다.........
이것 봐, 어차피 멈추잖아. 보아하니 생명에 지장이 가거나 건강의 탈인 일조차 아니니 걱정하는 데 에너지 쏟을 이유는 하등 없는 것이다- 하고 당당하게 생각하며 에니시는 반눈 뜬 얼굴로 면을 우물우물.
꿀꺽 삼키고, 소스 묻은 젓가락 끝을 들어 척 하고 테츠야를 가리켰다. 갑자기?
"조금 더..."
무언가 가늠하듯 짝눈을 뜨며 젓가락을 기울였다.
"...상냥하고, 사근사근 상대의 비위를 맞출 필요가 있어. 본성이 다들 섬겨지며 모심 받는 데 몹시 젖은 자들이라 말이지. 그 상태로는 누구와도 혼약할 수 없어."
제딴에는 신을 말하는 것이지만, 대뜸 그렇게 말해봤자 맥락 하나도 알 수 없다. 차라리 연애의 앞길을 저주하는 말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우직하게도, 중매 스위치 켜진 에니시는 우직하게도, 밑도 끝도 없는 설교를 계속해 나간다. 정말이지 우직하게도. 무엇이든 밑바닥부터. 절차는 어느 것에든 있으며, 중매라고 다를 것은 없으리라는 신념이었다...!
"아니면 츤- 데레...? 그래, 네 성향을 보니 츤데레니 차라리 츤데레 취향을 건드는 거야. 그렇게 하면 혼약 분명 할 수 있어. 분명! 아까 말, 기깔나는 츤데레 대사로 바꿀 수 있지?"
코로리에게는 도장이 없다! 내일까지 마련할 수 있는 도장이라고는 지우개를 칼로 조금씩 파내서 모양을 새기는 방법 정도가 떠올랐다. 간단히 문방구에서 이런 저런 모양과 잉크까지 있는 스탬프를 사는 방법이 있겠지만, 재미있는 것만 하는 모순적인 게으름뱅이여서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돈을 주고 스탬프를 산다면 게으름뱅이에게는 최적이지만 재미는 없어 보인다. 지우개 도장을 직접 판다면 재미는 있겠지만, 게으름뱅이에게 단 하루를 줘놓고서 뚝딱 만들어내라 하기에는 너무 귀찮았다. 칭찬은 꽃이니까ー 츠쨩이 좋아하는 불꽃놀이 꽃이랑, 츠쨩 눈에 있는 벚꽃 둘 중 하나가 좋겠지ー. 도장이라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츠무기의 손등에 도장 모양 낙서룰 해주려고 벌써부터 모양 고민을 한다!
"아냐아, 콩 츠쨩이었어."
지금은 콩나무 츠쨩이지만! 진실은 중요치 않았다. 요만했던게 벌써 다 컸다고 말하는 심보와 비슷하다.
"책방에 장맛비가 내렸을거야."
창문 밖으로는 만개한 벚꽃잎이 떨어지면서 꽃비가 내리고, 코로리는 그 풍경을 보면서 훌쩍훌쩍 눈물흘려 책방의 책들이 눅눅히 젖어버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말할 정도로 서운해했을 거란 뜻이니까! 하지만 코로리는 지금 늘어진 벚나무들 앞으로 자리잡은 여러 노점들과 그를 즐기는 여러 사람들 속에 있다. 서운이란 단어는 떠오를 새도 없이 풍선 다트 노점에서 신중하게 다트를 던지는 것이 목표다!
"벚나무 신님이 들었나 봐!"
츠무기가 올해는 괜찮은 보상을 받고 싶다고, 하루나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작은 봉제인형을 정말로 얻어냈다! 츠무기의 활약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놀라다가도, 봄의 산타클로스니 뭐니 했는데 질 수는 없었다. 벚나무 신님, 같은 신 바람도 들어주라아! 메고 있던 가방도 바닥에 툭 내려놓고, 벚나무들을 흔드는 바람에 신중을 기한다.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잎을 맞출 기세로 집중, 또 집중! 왼쪽 눈을 꼭 감은 채로 겨냥하는 것만 보면 프로 선수의 1위 결정전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dice 1 100. = 84
0~30 작은 사탕 한 줌 31~60 커다란 막대사탕 3개 61~80 작은 봉제인형 81~100 커다란 봉제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