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카는 미스가 아니라 미즈미인데? 하고 천연덕스레 되물어오는 미즈미를 잠깐 어리벙벙하게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마른세수를 했다. ...그래도,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돼서, 시니카는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미스. 영어단어야. 엠-아이-에스-에스. 우리도 누군가를 가리킬 때 무슨무슨 씨 무슨무슨 양 이렇게 부르잖아. 영어에도 그런 표현이 있는데 miss는 미혼 여성을 부를 때 쓰는 말이야. 요즘 와서는 격식있는 자리에서 쓰는 교양있는 표현이 됐지만. 눈앞에 있는 상대방을 가리킬 때도,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그 자리에 없는 세 번째의 누군가를 3인칭으로 가리킬 때도 써. 미스 사이카와, 같은 느낌으로."
이런 거 설명하는 거 싫어하는데. 문득 주머니 속의 전자담배를 꺼내고 싶은 욕구가 끓어올랐으나, 아마도 여기는 금연구역일 테고, 금연구역이 아니라도 이 천막 안에서 낯선 냄새를 피우는 것은 당연히도 실례일 테니 시니카는 욕구를 가볍게 눌러참기로 했다. 익숙하지 않아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오늘 하루는 최대한 이 영문모를 녀석에게 맞추어주는 방향으로 보내야 할 듯하다. 예상치 못하게 맞이한 해괴한 저녁에 대해 시니카가 내린 해법은 그러했다.
"딱히 식사를 할 생각은 없는-표정?"
시니카는 턱관절에 들어간 힘을 뺐다. 스스로 턱관절에 힘이 들어간 것을 자각했을 때에는 대부분 일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진 때가 많았다. -시니카는 자신을 떠나보내는 부모님의 표정을 떠올렸다. 마치 썩던 이를 뽑은 것 같은 후련한 표정. 시니카는 턱에서 힘을 빼고, 입꼬리만을 끌어올려 비죽 웃었다. ...나쁜 의도는 없었으나, 이게 시니카가 일반적인 경우 지을 수 있는 미소의 최선이었다. 시니카는 노 가드 전법을 계속 고수하기로 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퍽 개방적이고 솔직한 태도다.
"이런 가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뭐 괜찮아, 같이 가주기로 약속한 건 나고, 이제 와서 약속 바꿀 생각은 없으니까."
인간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미즈미는 모를 수도 있겠다. 이런 곳을 좋아하는 손님들만이 이런 곳을 찾기에 다들 즐거워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 같은 것을. 그러나 시니카 역시도 모르는 것은 있었다. 예컨대 눈앞에 있는 이 동년생의 정체라던가. 미즈미를 그저 자신의 같은 학년의 소녀 정도로만 알고 있기에 그런 사실까지는 헤아리지 못한다.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작은 균열이 점점 그 몸집을 불려간다.
"주문은, 뭔가 마실 것으로 할까. 커피... 카푸치노가 있네. 이것으로 할게. 샷 추가로."
# 시니카주의 제안 (잡담스레에서 시니카에게 해당이 많이 되는 중요한 이야기가 나왔기에, 미즈미주가 시니카를 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 어떤 화제를 꺼내면 좋을지 추가해두어 :3 어디까지나 팁이니까 참고로만 삼고, 아래의 팁과는 무관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어) 1. 유식해 보인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려나? (이후 공부를 도와달라는 요청으로 파생할 수 있습니다) 2. 커피를 좋아하는 걸까? (취향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신화에서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과 비슷하다. 감정을 느끼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실수를 하고, 속아 넘어간다. 신화에서 종종 나오는 이 부분은 절대적인 신도 인간과 다를 바 없으며, 이로 하여금 인간이 절대적인 공포에서 벗어나 친숙함을 느끼는 장치로 존재한다. 간혹 인간의 이해를 벗어나는 범주의 행동을 보일 때가 있어도 최소한의 인간성 때문에 인간은 공포를 떨칠 수 있다.
다만 무상영령 설화는 인간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상영령의 모습은 이유도 없고, 감정도 없어 자연의 섭리와도 같다. 신의 감정과 생각 자체가 서술되지 않고 인간의 시점에서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무상영령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미지의 것이자 초월적인 공포로 인간을 미치게 하는 재앙신으로 알려졌으나, 잊혀진 설화 속에서 서술되지 않은 것이 있다.
무상영령이, 처음부터 재앙신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인간들이 그 사실을 고의적으로 빼놓은 것인지, 차마 본인들이 저지른 추한 행실을 기술할 수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880 아앗 사실 관전만 하고 있었는데 이거는 꼭 전해줄까해서 잠시 들렸어 사실 지금 누웠고 곧 자러 갈까해 인사는 스루해도 괜찮다~!
일단 제안해줘서 고마워 ㅋㅋㅋㅋ 둘 다 좋아보여! 내일 답레쓰면서 차차 고민해볼게 그리고.... 사실..... 잡담스레에서 보고 나도 걱정을 많이 했기 때문에.... 시니카주는 너무 걱정 안해도 될 것 같다...! 일단은 상황 자체도 미즈미가 끌고가는 상황이고 응응 전혀 어렵지 않았으니까!
혹시 시니카주도 이거 무슨 의도냐, 아니면 일상에서 이 부분 스루된 것 같다 싶으면 편하게 말해줘 내가 주로 밤에 답레를 쓰기도 하고 문체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답이 뒤죽박죽할때가 많거든......
>>>내가 주로 밤에 답레를 쓰기도 하고 문체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답이 뒤죽박죽할때가 많<<< 미즈미주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시니카주의 뼈가 산산조각이 났는가 자기 전에 시간내줘가면서까지 따뜻한 말 남겨줘서 고마워 :3 나도 그런 부분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물어볼 테니 미즈미주도 답레 잇기 어렵다 생각되면 주저없이 말해주기야.
그렇지만 역시 시니카가 제일 많이 고민해야 할 이야기기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구.. :3
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아무말 중인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잠에서 막 깬 상태인 것일까, 혹은 이 손님의 나른한 페이스에 지독하게 말려버린 것일까. 아무래도 둘 다라고 생각되었다.
" 아, 영어를 잘 모르시구나. 그러니까, 사랑 편지. 그런 뜻이에요. 우리 말로 번역하니 영어보다 훨씬 더 로맨틱하네요. "
외관만 봐서는 나와 비슷한 나잇대 같은데 러브나 레터 같은 간단한 단어를 모를 수 있나? 하는 의문이 가슴 속에서 잠깐 피어올랐지만, 나도 영어는 잘 못하니까~ 라는 식으로 얼버무려 넘어갔다. 분명히 이상했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이미 손님의 페이스에 휘말려들었으므로.
" 어떤 내용이냐고요? 슬픈 첫사랑, 그런 느낌? 책은 읽지 못하고 그것을 각색한 영화로 봤는데, 눈물 참느라 진땀을 뺐어요. "
진짜로 울진 않았어요! 라고 급히 뒷말을 덧붙였다. 친구들이랑 영화관에서 재개봉한 것을 보러 갔는데, 그 전에 '이런거로 울지 않는다'고 말해버린 탓에,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무진장 깨물었던 기억이 생생히 났다. 괜한 자존심 때문에, 그 때 미처 울지 못해버려 책을 읽으면 엉엉 울어버릴까 읽을 엄두도 내지 못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