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도 여느 장난스러운 사람들과 다를게 없는지, 아키라의 요청에도 꿋꿋이 도련님이라 부를 생각인 듯 했다. 유카타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유순한 웃음을 흘린 그녀는 이어진 말에 알았다는 의미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겸손하시기도 해라. 그럼 후에 오실 분들에게 나눠드리는 걸로 해야겠네요."
이번에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아키라가 느긋히 고를 수 있게 기다렸다. 가판에 나온 것들은 모두 사쿠라마츠리를 위한 것들이었으니 따로 추천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잠시간의 기다림 끝에 아키라가 쿠키와 초콜릿을 고르자 그녀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금방 담아드릴게요."
조그마한 종이봉투를 꺼내 쿠키와 초콜릿을 담으며 그녀가 아키라의 말에 대답을 하던 와중이었다.
"그리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저희가 평소에도 이름이 제법 알려져 있다보니 매상은 꽤 좋은 편이랍니다. 지금도 남편과 아들이 가게로 가서 추가할 것을 만들고 있, 어머." "엄마아..."
대화 사이를 끼어들며 그녀에게 안겨드는 사람이 있었다. 같은 유카타를 입었지만 앞치마는 하지 않았고, 오늘도 여전히 낮게 묶은 머리에 다크서클 진한 얼굴을 한 요조라였다. 한손에 작은 스케치북을 쥐고서 그녀에게 치대던 요조라는 뒤늦게 아키라를 발견하고 그녀의 뒤로 숨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그녀의 딸을 달랬다.
"얘가 왜 이럴까. 저번에 봤었잖니. 시미즈 가의 아키라 도련님이란다." "시미즈... 도련님...?" "그래. 인사해야지?"
어머니인 그녀의 말에도 요조라는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어깨 너머로 보이는 요조라의 눈만이 아키라를 빤히 보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면목없다며 웃는 얼굴로 아키라에게 쿠키와 초콜릿이 담긴 봉투를 건네주다가, 혹시, 라며 말을 꺼냈다.
"도련님, 괜찮다면 우리 요루 좀 데리고 여기 한바퀴 돌아주지 않겠어요? 실은 아까부터 꽃 보러 가고 싶다고 했는데, 보다시피 사람이 없어서 애가 계속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도련님도 둘러보겠다고 했으니 그 김에, 라는 느낌으로 구경 좀 부탁할까 싶은데, 어려울까요?"
자신이 뭐라고 한들, 도련님이라고 꿋꿋하게 부를 생각인 것일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쩌겠는가. 나이 많은 어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일단 그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의 몫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렇게까지 내키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이 시미즈 가문에서 태어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아무튼 계산을 하기 위해서 지갑을 꺼내려는 찰나, 갑자기 낯익은 여성의 목소리와 모습이 보였다. 다크서클 진한 얼굴이 여전히 그때 그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두 눈을 조용히 깜빡였다. 딸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확실히 여기에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물론 뒤로 숨어버리는 모습에는 아키라도 난처한 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지만.
"안녕하세요. 호시즈키 씨. 딱히 도련님이라고 부르진 않아도 괜찮고요."
이전에 봤으니 그래도 안면은 있었던만큼, 사실 없어도 별 차이는 없었겠지만 가벼운 인사를 받으며 아키라는 일단 봉투를 받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체크카드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것으로 계산을 해달라는 의미였다. 허나 자신에게 들려오는 물음에 아키라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상관은 없지만, 호시즈키 씨가 같이 가고 싶지 않다면 저도 어쩔 수 없을 것 같네요. 지금만 해도 상당히 낯을 가리고 경계하는 것 같고."
물론 경계가 아닐지도 모르나 확실한건 바로 뒤에 숨어버렸다는 사실 아니겠는가. 저런 상황에서 같이 가자고 해도 조금 힘들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아키라는 자신의 뒷목을 매만지다가 다시 손을 아래로 내렸다.
렌은 질문에 조금 뜸을 들이며 고민했다. 지옥에 대한 생각이야 나름 가지고 있지만 이 질문의 본질이 그냥 이런 주제가 나와서인지 아니면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인지 아미카의 반응을 조금 살폈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사실 지옥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왜냐하면, 잘못한 사람의 영혼이 가게되는 곳이 지옥이라면 제일 처음 인간이 있었을 때부터 지옥이 있다는 것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영혼을 수용할만한 공간이 있느냐가 첫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는…. 이런 얘기 재미없으려나?”
렌이 말을 하려다 끊었다. 구구절절 이야기하기엔 재미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궁금해하면 이어서 이야기하겠지만.
“맞아. 여름은 덥지만 에어컨 아래에 있으면 시원하니까. 겨울에도 코타츠 안에 들어가 있으면 따뜻하지. 눈이 내리면 예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