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팔랑 떨어지는 분홍색 벚꽃잎이 참으로 예쁘게 그의 눈에 비쳤다. 물이 맑고 깨끗해서 그런지, 그 물을 먹고 자란 벚꽃나무들은 일제히 올해도 어김없이 예쁜 벚꽃잎을 떨어뜨렸다. 하늘에서 분홍색 눈이 떨어진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그 예쁜 분위기를 즐기며 아키라는 일단 가볍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순간적으로 어제의 나베를 떠올리며 아키라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야미나베라는 것이 다 그런 것이긴 하지만 대체 어제의 조합은 무엇인지.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우선 가볍게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맛있는 것이 있으면 사먹는 것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우선 가볍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보이는 것은 호시즈키당 노점. 그러고 보니 호시즈키당도 노점을 만든다고 했었지. 저기서 일단 가볍게 간식을 먹고 주변을 둘러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그곳으로 향했다. 누가 가게를 보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추천상품부터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가만히 한가해보이는 노점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지금 영업하고 계시나요?"
당연히 노점에서 영업을 안 할리는 없겠으나 브레이크타임도 있을 수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아키라는 우선 영업을 하고 있는지의 여부부터 확인하려고 했다.
스즈는 불편하다는 말에 또 고개를 돌려 화답했다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와 연신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렸다. 빠른 속도로 손가락이 움직이는 동안에 스즈는 여기 말고 또 다른 어떤 세계에 들어가 있는듯 그 것에 몰두했다. 잠깐 만난 친구를 보내고 조금은 차가운 무표정이던 스즈는 고개를 돌려 '응?' 하고 자기가 제대로 못 들었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 그을쎄~ 그건 놀아봐야 아는거지! 나도 내 친구들이랑 놀아보기 전에는 재밌는 친구들이라고 알지 못했었으니까. "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먼저 다가가지 않고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남들이 자신에게 대해줬으면 하는 방식대로 남을 대한다. 무언가가 벌어지길 바란다면 먼저 행동을 취해 빌미를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원래 변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도전할 가치가 있다. 변하고 난다면 그 이후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것이니까.
" 그럼 뭐 결정된거네. 잠깐만~ "
스즈는 걸음을 옮겨 쇼의 앞에 서선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요- 응. 응. 방금 하룻치랑 만났어. 그 쪽으로 간다던데? 응. 아하하! 그게 뭐야! 진짜 구려~ 난 진심 싫으니까 됐어~ 응. 아 맞아맞아. 이 말 하려고 했던게 아닌데. 나 지금부터 잠깐 어디좀 다녀올게. 같은 반 친구 만나서 같이 좀 놀다 가려고. 응. 응. 우웅~ 그랬구나~ 그럼 나중에 잔-뜩 사랑해주렴? 아하하! 뭐야! 진짜 징그러워! 아하하하! "
앳되어 보이는 발랄한 목소리로 짧은 시간동안 이어진 통화에서 스즈는 눈 앞에 상대가 있기라도 하다는 듯 손사새를 치거나 미소를 띄며 웃었다. 그렇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곤 웃어서 생긴 눈물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훔치곤 스마트폰을 거울삼아 자신의 화장 상태라던가, 얼굴 상태등을 점검했다.
아키라의 염려가 무색하게도 호시즈키당의 노점엔 사람이 있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여자 한분이 다소곳히 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아키라가 다가오자 유한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어머, 어서오세요. 물론이죠. 도련님. 노점을 열어놓고 자리를 비우면 되겠나요? 호호."
그녀는 아키라도 익히 알고 있을 사람이다. 호시즈키당의 안주인이었으니까. 어릴 적부터 호시즈키당에 오갔던 아키라에게는 매우 익숙한 사람이었을테지. 연분홍 벚꽃잎 무늬의 남색 유카타를 입고 그 위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그녀는 잔잔히 웃으며 아키라에게 말을 걸어온다.
"올해도 덕분에 즐거운 축제를 보낼 수 있을 듯 하네요. 애쓰셨어요. 도련님."
작게 고개를 숙였다가 들며 표하는 감사는 필시 시미즈 가를 향해서였겠지만, 그 속에서 같이 고생했을 아키라를 향한 것도 있었다. 그녀도 대를 이을 자식을 가진 어미였으니.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그녀는 한 손으로 노점의 가판 위를 가리켰다.
"별건 없지만 골라보시겠어요? 모처럼이니 스태프분들 것까지 대접해드릴게요."
돈은 받지 않을테니 부담 갖지 말고 고르라고 말한 그녀는 가판 위를 간단히 설명했다. 주문 즉시 구운 뒤 꿀을 뿌리고 그 위에 콩가루나 견과류 가루를 뿌려주는 구운 경단, 한입 크기로 빚어 먹기도 가격도 부담이 덜한 화과자, 기본 사이즈보다 조금 큼지막해서 식사 대용으로 좋을 듯한 도라야끼, 볒꽃이나 가지 모양으로 굽고 색색의 아이싱으로 장식한 쿠키와 벚꽃 모양 초콜릿 등등. 가판은 작았지만 이것저것 많이 있었다.
"도련님은 무슨 도련님이에요. 그런 호칭이라고 불릴 정도의 사람도 아닌데. 그리고 축제 스태프는 저하고는 상관없어요."
뭔가 자신을 상당히 띄워주는 것은 분명했으나 아키라는 그러지 말아달라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시미즈 가문이 마츠리를 여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마츠리에 나름대로 지원금을 지원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감사를 표한다면 자신도 할 말은 없긴 했으나 확실한 건 자신의 몫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튼 낯이 간지러운지 오른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왼손으로 노점 주인을 향해 그는 손을 휘저었다. 그렇게 부르지 말아달라는 일종의 표시였으나 그럼에도 장난스럽게 도련님이니 뭐니 그렇게 부르는 이들도 분명히 있었으니 그도 필사적이진 않았다. 그냥 나름대로의 요청이었으나 그것을 받아들일지는 또 별개였으니까.
"그건 안되죠. 이렇게 열심히 준비를 하셨는데 돈도 안 받겠다는 것은. 돈은 확실하게 지불할게요. 애초에 이 마츠리가 시미즈 가문에서 모든 것을 다 기획하고 추진한 것도 아니니... 마을의 촌장님이나 축제 위원회가 오면 그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좋을 것 같아요. 아무튼..."
말을 마치며 그는 가만히 상품을 바라봤다. 뭔가 참 이것저것 많이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벚꽃 모양의 쿠키와 초콜릿이었다. 사쿠라마츠리니까 역시 저것을 주문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벚꽃 모양의 쿠키와 벚꽃 모양 초콜릿을 손으로 가리켰다.
"각각 두 개씩 주시겠어요? 둘러보면서 먹을까 해서요. ...그건 그렇고 꽤 장사가 잘 되는 모양이네요. 올해도 돈 많이 버실 것 같나요?"
/시미즈 가문은 유력가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츠리를 개최한다거나 막 준비한다거나 그런 가문은 아니랍니다! 물론 지원금은 많이 주긴 하지만요! 다른 분들도 참고해주세요! 촌장님이라던가 다 따로 있어요!
어려운 이야기다. 태어나기부터 그는 인간과 달랐고, 인간의 기질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다른 신들과도 엇갈리는 지점이 많아 한동안 다난한 생을 살았더란다. 태생적으로 타자와 동떨어진 기질을 가진 그로서는 그런 성질을 그저 받아들여야 할 정명에 불과하다 생각했다. 어찌할 수 없는 문제, 따라야 할 규격 따위의. 하지만 그렇다 해서 눈앞의 신을 나약하다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자신이 홀로도 슬프지 않은 것은 처음부터 그런 신이기 때문인 것처럼, 누구에게나 그렇게 될 만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그도 알기 때문이다. 후미카는 잡힌 손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선을 떼었다. 별다른 내색은 없었지만 이렇게 살갑게 다가오는 반응에는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몰라 고민하게 된다. 아주 오랜 옛적, 제 아이를 돌보았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다. 처음 보는 신에게 이유 없이 무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둘이니 괜찮을 거란다. 우선 일어나자꾸나, 몸을 움직여야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단다."
후미카는 손을 당겨 아이를 일으켜주었다. 눈물은 그쳤어도 외로움의 흔적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으니 우선은 걸어보자는 것이다. 후미카가 조금만 더 다정했더라면 우느라 엉망이 된 얼굴을 수습했겠지만, 잡은 손을 놓지 않는 것만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나룻배 같은 것이라면 당장이라도 만들 수 있단다. 허가를 받았는지 사람들이 의심하지만 않는다면야, 운이 좋다면 뱃놀이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게 안 된다면 저편에 오리배가 있다 하더구나. 여기만큼 경치가 좋진 않더라도 둘이 하는 놀이라면 그것도 좋지 않겠니."
선박과 항해, 강과 호수에 뜨는 배에까지 관여하는 신이니 뱃놀이 쯤이야 쉬운 일이다. 걸리는 것이 있다면 이래도 되냐 따지는 정도일까. 이야기를 하며 걷자니 저 멀리에 아이스크림 노점이 보였다. 아이가 직접 먹고 싶다 말하기도 했고, 신 역시도 단 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후미카는 간판을 가리키고는 지갑을 찾았다. 어째서인지, 아주 당연스럽게 제 돈을 꺼낼 생각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