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툴툴대며 답한대도 금세 풀어지는 것 보았기에, 인자한 미소를 얼굴에 그려낼 뿐입니다. 어린 인간에게 장난을 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기에 그럴지도 모르지요.
걷는 길목마다 봄이 가득합니다. 나무 사이로 연두색 생명이 움트고, 개중엔 참지 못하고 꽃망울 품은 것도 여럿 보입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거리는 수백 년 전에도 같은 양상이었으나, 이젠 걷는 사람도, 이 바닥을 이루는 재료도, 풍광도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한치 후회는 없습니다. 본디 삶이란 피고, 지며, 얻고, 잃고, 그러한 법이니. 과거보다는 미래, 미래보다는 현재를 살면 되는 일입니다.
"어느 계절이냐 물으신다면, 글쎄요.. 가을이지 않을까 싶군요."
네 가을을 기다리는 이유는 봄과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삶의 시작이 봄이라면 삶의 황혼은 가을입니다. 느릿하게 져가며 낙엽이 떨어지고, 곧 다가올 겨울을 기다리듯 변화하는 모습이 순리대로의 삶을 빼닮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시작은 봄이요, 전성기는 여름이며, 황혼은 가을이요, 안식은 겨울. 한때 봄을 좋아했던 만큼이나 마음에 닿는 연유는 이젠 피는 것보다 지는 것을 더 좋아하는 존재가 되었기도 함도 있으나, 안식을 기다리기 때문도 있으렵니다.
"천고마비, 라고들 하지요. 맛있는 것이 그만큼 많은 계절이니."
다만 어린 인간에게는 그 이치를 알리지 아니하며 둘러댈 뿐.
"뻔할 리가요. 개인 기록 향상은 그만큼의 기록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걸요. 나는 렌 군의 소원이 특별하다 생각해요. …음, 나의 소원이라."
어린 인간이 신을 믿기는 하여 네 속으로 뿌듯함을 느낍니다. 적어도 신은 죽었다는 주장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아직 신이 살만한 세상인 것 같습니다. 네 잠시 고민합니다.
"나 또한,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해달라 소원을 비니 말입니다."
기실 신에게 안부를 묻곤 하였습니다만, 그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어느새 목조 주택이 보입니다. 울타리도 없고, 고요한 곳. 네 문을 열자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뒤따라 들어갑니다.
역시 아이는 없구나. 동굴에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래되었다 한들 깨끗하며, 온기 없이 비어있었기에. 네 아무도 없냐 묻지 않는 것은 예의가 있기 때문이요, 알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생글생글하고 미소를 띈 스즈는 그렇게 말했다.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스즈는 이상하리만치 사람에게서 거리감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병적으로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하려했고 병적으로 자신은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하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야, 왜냐하면, 그도 그럴 것이, 스즈는.
" 재미있는 거? 그렇다면.. 아! 요~ 하룻치~ " " 요~ 스즈~ 다른 애들은? " " 잠깐 다리아파서 쉬었다가려고. 먼저 가 있는다 그랬어. " " 스즈는? 같이 안가? " " 쉬었다가려고~ 먼저 가 있어! 금방 따라잡을게 " " 에... 뭐.. 그래 그럼. 이따 보자~ "
스즈는 말하다 말고 후리소데를 곱게 차려입은 친구가 지나가자 금새 그 쪽으로 시선이 팔려 '하룻치-' 하고 애칭을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또 한번, 지나가는 친구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리고 또 한 번 인사를 건넸다. 잠깐 다른 세계에 빠졌다 온 사람처럼 다시 이 쪽의 세계에 돌아왔다는 듯 스즈는 '무슨 말 하고 있었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 아 맞아맞아. 재밌는거 얘기했었지. 그럼 나랑 놀래? 사람이 둘이면 추억도 두 배고 재밌는 일도 두 배잖아! "
스쳐지나간 생각이라면 자기 친구들에게 말해서 무리를 늘려 다 같이 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자기 친구들의 생각도 모르고 이 동급생 친구의 생각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마구잡이로 일을 진행시키는 것은 민폐일지도 모르지. 스즈는 다리를 톡톡 두드렸다. 아픈 다리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듯 싶자 자리에서 슬쩍 일어선 스즈는 잠깐 무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손가락을 열심히 놀리다가 고개를 들고 슬쩍 미소를 지었다.
"친구 없는 건 괜찮아. 하지만 나만 친구 없는 건 싫어. 봐봐, 저 사람들 다 친구 있잖아..."
봐봐, 하며 개울 건너편을 가리킨다. 저 너머에는 화기애애해보이는 젊은 커플이나, 마실을 나온 노부부, 뛰어다니는 형제들이 있다. 그 풍경과 시이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나만'이라는 말이 가진 것처럼, 대다수가 속한 세상 바깥에 떨어져 나온 기분이 싫은 것이다.
말하자면 소외감. 시이 나잇대 무렵의 여자아이가 제일 싫어할 감정이다. 시이는 그래서인지 친구를 해주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미카를 더 꼬옥 끌어안았다.
"친구 없어도 축제는 즐길 수 있어. 하지만 솜사탕 나눠먹지두 못하구, 야키소바가 질려도 전부 다 먹어야 하구, 옷 예쁘게 입고 나와도 보여줄 사람이 없잖아. 그럴 때마다 우울해져... 그런 건 싫어. 그러니까 네가 봐줘. 나도 야키소바 먹어줄 테니깐은."
머리를 살살 정리해주면 기분이 살짝 풀렸는지, 고개를 들어 멋대로 부탁해온다. 울음은 어느 새 잦아들었고, 시이는 포옹을 풀기 아쉽다는 듯이 후미카에게 이마를 몇 번 부비고, 대신이라는 것처럼 손을 잡았다. 후미카를 놓으면 도망이라도 갈 것 같다는 것처럼 다소 다급해보였으나, 체온이 느껴지자 금세 기분이 좋아져 보였다.
"그럼, 이제 뭐할까? 나는 으음, 구슬 아이스크림 먹구 싶어. 그리구 벚꽃 보러 가고 싶어. 저 개울에 꽃잎이 많이 떠있다나봐. 옛날엔 강에 배를 띄워서 놀았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좀 무리겠지-"
아, 국민의 세금을 끌어다가 꽃잎처럼 흩뿌리던 꽃놀이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재잘거리는 목소리들 틈에 끼어서 놀이를 하고, 얼굴에 쏟아지는 꽃잎을 맞으면 정말 행복했었다. 이번 꽃놀이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며 시이는 남몰래 기대를 좀 걸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친구가 없으니 더 서러웠던 거겠지.
>>500 하지만 스즈즈는 나쁜 짓은 하지않아! 억울하거나 약한 사람 보면 그냥 못 지나치는 정의감 넘치는 스즈즈라구 (:D)~ 평소 행실을 보면 영락없는 그 쪽 사람이지만.. 속을 다르다! 속은! 스즈즈 친구들한테 시이를 데려간다 치면.. 시이는 적응할 수 있을까~ 어떤 분위기가 될지 궁금하긴 하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