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먼 거리에서 번개가 치는듯한 굉음과 동시에 날아온 무언가에 맞아 왼팔을 관통당했습니다. 엄청난 통증과 같이 마치 몸이 지진에 의해 흔들리는듯한 파괴력이 당신에게 가해집니다.
신체 -6.
이후 양손을 사용한 무기공격 및 왼팔을 사용한 모든 행동에 제약이 걸립니다.
투척. 물품, 뭉쳐놓은 진흙. 주사위를 굴려주세요. 대성공.
당신은 이전에 휴게소에서 공짜로 받은 뭉쳐놓은 진흙을 멀리에서 당신을 공격 한 상대방의 얼굴을 향해 던졌고, 그 진흙덩어리는 상대방의 얼굴에 맞아 상대방의 시야를 방해합니다. 당신이 던진 진흙은 평범한 진흙과 다른 것 인지 혹은 운이 좋은건지 모르지만 상대방이 진흙을 털어내는데 조금의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동. 주사위를 굴려주세요. 성공.
상대방의 시야가 차단된 것을 확인한 당신은 빠르게 당신의 부패한 검집에 깃든 카타나를 오른손으로 집어들고 상대방에게 이동합니다. 그 사이에 진흙을 털어낸 상대방은 마치 지팡이처럼 긴 막대기를 당신을 향해 겨누었고, 그 지팡이에서 다시 번개가 치는듯한 굉음이 터져나옵니다.
회피. 주사위를 굴려주세요. 실패.
그 지팡이에서 나온 작은 물체는 당신의 오른쪽 허벅지를 관통했습니다. 그 파괴력으로 당신의 빠른 이동이 제지됩니다. 이후 이동에 관련된 행동에 제약이 걸립니다.
신체 -8.
공격. 아직까지 카타나가 상대방의 몸을 절단할 수 있을 위치에 있지 못한 당신은 최대한의 힘으로 발을 디뎌 허공으로 뛰었습니다. 그 후, 뽑아든 당신은 상대방의 왼쪽 어깨를 향해 카타나를 휘두릅니다.
공격. 주사위를 굴려주세요. 성공.
당신의 카타나는 천옷밖에 입지 않은 상대방의 어깨에서 베어 상대방의 가슴부위까지 깊게 파고드는데에 성공했으며, 칼에 깃든 부패한 기운이 상대방의 심장에 스며들어 상대방은 절명합니다.
상대방이 절명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에서 귀족같이 정돈된 긴 머리카락을 한 어린 여성처럼 보이는 푸른색의 환영이 당신에게 말합니다.
"훌륭한 일격이었다, 무사여. 본인의 대리인을 일격에 죽이는 순간은 구경하면서도 볼 거리가 되더구나. 게다가 미리 뭉쳐놓은 진흙을 던지다니, 그야말로 로닌의 행색이나 순간 번뜩인 재치로 하기에는 너무나 재미있었다. 무사여, 혹여 그대가 저 시체의 대신이 될 생각은 없느냐? 저 시체는 영 보기에 재미가 없었느니라. 하지만 그대는 많은걸 나에게 보일 수 있을 것 같구나. 어쩌면 그대가 나의 진명을 들을 수 있지 않겠느냐?"
평온한 어조로 후미카가 물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우는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영 괘씸하다. 친구가 없어서 울고 있다니. 원체 친구가 없다시피 한 자발적 아싸에 가까운 성향의 풍어신으로서는 그 외롭고 쓸쓸한 심경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언제는 자신이 남의 마음 헤아릴 줄 알아서 이렇게 말 걸었겠나, 후미카는 물끄러미 아이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무언가를 해주기에는 이미 스스로 눈물을 닦고 있으니 가만히 있을 뿐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눈물을 훔쳐 주기엔 그는 그토록 섬세하게 다정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가라는 말까지 하니 순순하게 떠날 생각이 먼저 들 수밖에. 후미카는 에둘러 표한 호소를 이해하기엔 복잡한 십대 소녀의 심정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그렇게 서글퍼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지 말라는 솔직한 말이 곧장 따라붙지 않았더라면 '그래, 그럼 난 가보도록 할게.'라며 망설임 없이 휙 몸을 돌렸으리라. 저보다도 큰 키의 아이가 달려들자 후미카의 몸이 약하게 흔들렸다. 손에 모은 꽃잎이 떨어져 팔랑팔랑, 주변으로 흩어져 내린다.
"나도 혼자 나온 참이니 친구는 해줄 수 있겠구나. 알겠으니 울지 말렴."
이 갑작스러운 동행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에게 처음 보는 신과 꽃놀이를 함께 즐겨주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마찬가지로 거절해야 할 까닭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후자에 기울었다. 어느 시간의 경험 이후로,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어린아이에게는 되도록 상냥하게 대해 주고 싶었다.
후미카는 어떻게 할 줄 모르고 가만히 서 있다, 이내 제 허리께에 매달린 매달린 아이의 머리를 살살 쓸어주었다. 정수리에 소복하게 앉은 꽃잎들을 털어주기 위함이다. 닥지닥지 내려앉은 꽃잎을 털어내자 말끔한 색의 머리칼이 제대로 드러났다. 그러고보면 이 애 머리색도 꽃잎과 비슷한 색을 하고 있다. 이맘때 활짝 핀 꽃잎과는 조금 다른 색감을 가졌지만, 화사한 빛깔이 이 시기의 정경을 연상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후미카는 파묻은 얼굴에 틀림없이 달라붙어 있을 머리카락을 조금씩 정리해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네 툴툴대며 답한대도 금세 풀어지는 것 보았기에, 인자한 미소를 얼굴에 그려낼 뿐입니다. 어린 인간에게 장난을 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기에 그럴지도 모르지요.
걷는 길목마다 봄이 가득합니다. 나무 사이로 연두색 생명이 움트고, 개중엔 참지 못하고 꽃망울 품은 것도 여럿 보입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거리는 수백 년 전에도 같은 양상이었으나, 이젠 걷는 사람도, 이 바닥을 이루는 재료도, 풍광도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한치 후회는 없습니다. 본디 삶이란 피고, 지며, 얻고, 잃고, 그러한 법이니. 과거보다는 미래, 미래보다는 현재를 살면 되는 일입니다.
"어느 계절이냐 물으신다면, 글쎄요.. 가을이지 않을까 싶군요."
네 가을을 기다리는 이유는 봄과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삶의 시작이 봄이라면 삶의 황혼은 가을입니다. 느릿하게 져가며 낙엽이 떨어지고, 곧 다가올 겨울을 기다리듯 변화하는 모습이 순리대로의 삶을 빼닮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시작은 봄이요, 전성기는 여름이며, 황혼은 가을이요, 안식은 겨울. 한때 봄을 좋아했던 만큼이나 마음에 닿는 연유는 이젠 피는 것보다 지는 것을 더 좋아하는 존재가 되었기도 함도 있으나, 안식을 기다리기 때문도 있으렵니다.
"천고마비, 라고들 하지요. 맛있는 것이 그만큼 많은 계절이니."
다만 어린 인간에게는 그 이치를 알리지 아니하며 둘러댈 뿐.
"뻔할 리가요. 개인 기록 향상은 그만큼의 기록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걸요. 나는 렌 군의 소원이 특별하다 생각해요. …음, 나의 소원이라."
어린 인간이 신을 믿기는 하여 네 속으로 뿌듯함을 느낍니다. 적어도 신은 죽었다는 주장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아직 신이 살만한 세상인 것 같습니다. 네 잠시 고민합니다.
"나 또한,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해달라 소원을 비니 말입니다."
기실 신에게 안부를 묻곤 하였습니다만, 그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어느새 목조 주택이 보입니다. 울타리도 없고, 고요한 곳. 네 문을 열자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뒤따라 들어갑니다.
역시 아이는 없구나. 동굴에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오래되었다 한들 깨끗하며, 온기 없이 비어있었기에. 네 아무도 없냐 묻지 않는 것은 예의가 있기 때문이요, 알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생글생글하고 미소를 띈 스즈는 그렇게 말했다.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스즈는 이상하리만치 사람에게서 거리감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병적으로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하려했고 병적으로 자신은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하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야, 왜냐하면, 그도 그럴 것이, 스즈는.
" 재미있는 거? 그렇다면.. 아! 요~ 하룻치~ " " 요~ 스즈~ 다른 애들은? " " 잠깐 다리아파서 쉬었다가려고. 먼저 가 있는다 그랬어. " " 스즈는? 같이 안가? " " 쉬었다가려고~ 먼저 가 있어! 금방 따라잡을게 " " 에... 뭐.. 그래 그럼. 이따 보자~ "
스즈는 말하다 말고 후리소데를 곱게 차려입은 친구가 지나가자 금새 그 쪽으로 시선이 팔려 '하룻치-' 하고 애칭을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또 한번, 지나가는 친구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리고 또 한 번 인사를 건넸다. 잠깐 다른 세계에 빠졌다 온 사람처럼 다시 이 쪽의 세계에 돌아왔다는 듯 스즈는 '무슨 말 하고 있었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 아 맞아맞아. 재밌는거 얘기했었지. 그럼 나랑 놀래? 사람이 둘이면 추억도 두 배고 재밌는 일도 두 배잖아! "
스쳐지나간 생각이라면 자기 친구들에게 말해서 무리를 늘려 다 같이 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자기 친구들의 생각도 모르고 이 동급생 친구의 생각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마구잡이로 일을 진행시키는 것은 민폐일지도 모르지. 스즈는 다리를 톡톡 두드렸다. 아픈 다리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듯 싶자 자리에서 슬쩍 일어선 스즈는 잠깐 무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손가락을 열심히 놀리다가 고개를 들고 슬쩍 미소를 지었다.
"친구 없는 건 괜찮아. 하지만 나만 친구 없는 건 싫어. 봐봐, 저 사람들 다 친구 있잖아..."
봐봐, 하며 개울 건너편을 가리킨다. 저 너머에는 화기애애해보이는 젊은 커플이나, 마실을 나온 노부부, 뛰어다니는 형제들이 있다. 그 풍경과 시이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나만'이라는 말이 가진 것처럼, 대다수가 속한 세상 바깥에 떨어져 나온 기분이 싫은 것이다.
말하자면 소외감. 시이 나잇대 무렵의 여자아이가 제일 싫어할 감정이다. 시이는 그래서인지 친구를 해주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미카를 더 꼬옥 끌어안았다.
"친구 없어도 축제는 즐길 수 있어. 하지만 솜사탕 나눠먹지두 못하구, 야키소바가 질려도 전부 다 먹어야 하구, 옷 예쁘게 입고 나와도 보여줄 사람이 없잖아. 그럴 때마다 우울해져... 그런 건 싫어. 그러니까 네가 봐줘. 나도 야키소바 먹어줄 테니깐은."
머리를 살살 정리해주면 기분이 살짝 풀렸는지, 고개를 들어 멋대로 부탁해온다. 울음은 어느 새 잦아들었고, 시이는 포옹을 풀기 아쉽다는 듯이 후미카에게 이마를 몇 번 부비고, 대신이라는 것처럼 손을 잡았다. 후미카를 놓으면 도망이라도 갈 것 같다는 것처럼 다소 다급해보였으나, 체온이 느껴지자 금세 기분이 좋아져 보였다.
"그럼, 이제 뭐할까? 나는 으음, 구슬 아이스크림 먹구 싶어. 그리구 벚꽃 보러 가고 싶어. 저 개울에 꽃잎이 많이 떠있다나봐. 옛날엔 강에 배를 띄워서 놀았는데, 아무래도 지금은 좀 무리겠지-"
아, 국민의 세금을 끌어다가 꽃잎처럼 흩뿌리던 꽃놀이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재잘거리는 목소리들 틈에 끼어서 놀이를 하고, 얼굴에 쏟아지는 꽃잎을 맞으면 정말 행복했었다. 이번 꽃놀이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며 시이는 남몰래 기대를 좀 걸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친구가 없으니 더 서러웠던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