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급식이 꽤 맛있었거든요. 매일 오늘처럼 나오면 좋겠지만 그건 힘들테고... 조금 아쉽네요. 아. 저, 학생회장 일을 맡고 있거든요. 아무튼 학생회장이 되면 뭔가 이것저것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급식에 대한 불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학생회장이 된 이후 관련으로 알아봤지만 그건 일개 학생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 부분은 좀 더 위, 그러니까 성인들이 담당할 문제였기에 그 부분으로서는 역시 조금 아쉬움을 느끼며 그는 고개를 괜히 도리도리 저었다. 허나 그럼 뭐하겠는가. 올해도 급식 바꿔달라는 말은 분명히 들어오겠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년 학생회장에게 그 고생을 맡기기로 하며 그는 곧 생각을 정리하고 마쳤다.
아무튼 학교에 적응을 하고 있다는 그 말에 아키라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단 적어도 적응을 못해서 끙끙대는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니까. 허나 기숙사 생활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침묵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인지. 어느 쪽이건 자신은 기숙사생이 아니고 사감도 아니니 별로 신경 쓸 것은 없지 않나 싶어 그는 굳이 그 부분을 캐묻진 않았다.
"다행이네요. 토와 씨는 3학년이고 지금 막 전학 왔잖아요? 입시로 바쁠텐데 새로운 곳에 오면 아무래도 적응이 안되고 민감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하거든요. 학생회장으로서도, 그리고 같은 반 멤버로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형식적일지도 모르는 말이었으나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역시 형식적인 말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하는 와중, 아직 그가 도시락을 먹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식사 중이었나요? 죄송해요. 다 먹고 쉬는 중인 줄 알았거든요. 마저 드세요. 어서."
"...그런 곳보다는 여기가 훨씬 나을 거라고요. 확실히 훨씬 더 큰 곳이고 백화점도 더 크고 놀이동산도 있고, 번화가도 엄청 넓고, 가게도 엄청 많고... 어라?"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세다보니 뭔가 어느 한 부분도 이기는 것이 없지 않나 싶어 아키라는 순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두 눈을 깜빡이며 두 손을 파르르 떨면서 아키라는 뭐가 없나 생각을 하며 정말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분명히 하나쯤은... 이라고 생각을 하나 정작 도쿄에 뭐가 있고 뭐가 없는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이 큰 원인이었다. 그야 여기서 도쿄는 거리가 있었고, 그곳으로 가본 적은 그다지 없었으니까. 살면서 두 번 간 것이 고작이었기에 자세히 아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가, 가미즈미 온천과 가미즈미 스파는 여기밖에 없어요."
결국 자신의 집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설 두 가지를 대면서 그는 괜히 오른손을 자신의 허리춤에 올리면서 그는 애써 태연한 척 표정을 관리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가미즈미 마을의 주요 산업인 온천과 스파는 바로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일단 전승으로는 성스러운 샘에서 흘러나온 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도 있었고. 도쿄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명소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아키라는 헛기침 소리를 냈다.
"적어도 도쿄와도 지지 않을 거예요. 크기도 크고, 있을 건 다 있으니까. 워터파크도 유명하고. 여기."
무상영령無狀影靈은 달이 뜨지 않는 날이 되면 모습을 드러내는 신으로, 신神이라고는 하나 보통의 신처럼 인간에게 우호적이라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 그 모습 보는 즉시 눈이 멀어버리거나 미쳐버린다 하는 등 부정적인 재앙신에 가깝다. 과거, 사람들은 공허함 속에서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기 때문에 어둠 속에도 존재한다 믿었고, 이 때문에 그 하루는 일찍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무상영령의 모습에 대해서 전해지는 민담은 많은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어두운 공간 자체가 되어 수백 개의 눈을 뜬 모습, 테노메, 혹은 단안單眼의 인간 형상, 그리고 얼굴이 소리코蘇利古에 쓰이는 가면을 본땄으나 입이 존재하지 않으며, 뿔에 수십 개의 눈이 달린 거대한 사슴의 형상이나 후자는 역사학자 사이에서도 실존하는지 의문인 '사쿠라 히메'의 주장이기에 의견이 분분하다. ……(중략) 전승상 사쿠라 히메는 귀족 집안의 독녀로, 아름답기로는 으뜸이라 많은 사람에게 구애받았으니, 얌전한 성품과 더불어 예술에도 많은 재능을 보여 뭇사람들의 환심을 샀다.
그러나 사쿠라 히메는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무상영령의 전설을 믿고 달 뜨지 않는 날 밤을 새웠으며, 무상영령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방 한편을 일렁이던 호롱 불이 꺼질 듯 바람이 불고 나타났고, 사쿠라 히메는 무상영령에게 손을 뻗었다.
훗날 '무상영령이 달 뜨지 않는 날 나타나는 이유는 보기보다 수줍음이 많기 때문이다'라며 웃곤 하였다 전해지나, 사쿠라 히메의 집안이 몰락했고 홀로 남았기에 드디어 미쳐버린 것이라는 멸시만 남고 쓸쓸히 죽었다는 전승과, 무상영령의 신체神體에 손을 댄 대가로 부정한 기운을 받아들여 요괴가 되었고, 이를 무상영령의 탓이라며 날뛰다 죽임 당했다는 전승이 내려져 온다.
엔의 말에 아키라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첫번째였고 마치 자신이 온 것이 정말로 영광이라는 것인양 말하는 것이 두번째 이유였다. 사실상 이 학교에서 그를 오라고 한 적은 없지 않던가. 아니. 오라고 했었나? 그 부분은 자신도 알 길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 부분은 자신이 아니라 더 윗선들 이야기에서 나올 말들이었으니까. 허나 조금 떨떠름하게 들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약간 장난스러운 것 같긴 하지만.
"왜 가미즈미인가요? 도쿄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열 명 중에 아홉명은 그런 기회가 있으면 도쿄로 갈 것이라고 그 역시 생각했다. 가미즈미 마을을 좋아하는 자신으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아무래도 도쿄가 여기보다 훨씬 좋은 환경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편차치라던가 그런 것은 자신이 관여 할 바가 아니었다. 교사나 이사장들이 신경쓰고 관여할 바였지.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서 그 부분은 아무래도 좋은 문제였다.
"여기에 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아. 아뇨. 꼭 알아야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궁금해서요. 편차치가 높다면, 도쿄에서는 자기 학교로 오라고 난리였을텐데."
아닌가? 그 부분에 대한 것은 아키라도 솔직히 알 방도가 없었다. 허나 굳이 여기로 온 것에 대해서는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혹시 온천이나 스파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감을 반쯤 가지며 아키라는 엔의 눈동자를 똑바로 주시했다.
도쿄에는 가지 못할 이유. 그것이 뭔진 모르겠으나 굳이 대답하지 않는다면 아키라도 굳이 캐물을 이유는 없었다.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나 달리 말하자면 장난스럽게 넘기고 싶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이인만큼 굳이 깊게 캐물거나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 정도로 끊다가 이내 들려오는 말에 벙찐 표정을 지었다.
"...토와 씨. 혹시 주변에서 허당끼..있다고 말 듣지 않아요?"
직구로 던지면서 아키라는 엔의 모습을 가만히 살폈다. 자신이 말해놓고 바로 저렇게 부끄러워하다니. 생각보다 딱딱하진 않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그는 조금 신기하게 그를 바라봤다. 자신이 들은 이야기는 뭔가 되게 어려운 문제집을 푼다 정도였으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그래도 마냥 딱딱한 것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다 살짝 기대감 가득 찬 눈빛을 엔에게 그대로 비쳤다.
"그렇죠? 그렇죠? 여기의 '물'과 관련된 산업은 절대로 도쿄에게 뒤쳐지지 않아요. 누가 뭐라고 해도 여긴 신의 샘이 있는 곳인 가미즈미니까요. 도쿄나 다른 곳에서는 물의 질부터가 다를 거라구요. 여름이 되면 워터파크도 제대로 열리는데 전국에서 사람도 꽤 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