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괜찮고말고~ 오늘보고 못 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된 건 엄청난 인연이니까! 그렇지? "
스즈는 에헤헤-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을까. 이 나라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을 것이며 이 작은 마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을까. 그 희박하디 희박한 확률을 뚫고 오늘 이 순간에 만나게 된 건 분명 우연이 아니리라. 누군가와 만나던 간에 엄청난 확률을 뚫고 만나게 된 것은 감사할만한 일이고 또 그렇기에 매 순간과 모든 만남과 모든 인연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즈는 '그럼 스즈라고 불러줘~' 하고 말했다.
" 음.. 그렇.,지? 눈으로도 안보이고 물질적으로도 설명되지 않지만 말야, 그 외에도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많이 일어나고 있잖아! 뭐라고 설명하긴 힘들지만 아무튼 그래! 그리고 또 나는 그렇게 배우기도 했고. "
'분명히 신 님은 계셔.' 하고 당찬 목소리로 말한 스즈는 또 미소를 지어보였다. 궁금할 법도 하겠지만 스즈는 그것이 왜 궁금한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3대째 이어지는 세습무로서 또 미나미 신사에서 지내는 무녀로서 신이라는 것은 스즈의 삶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것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마저 끼쳐준다면 굳이 그것을 마다할 이유조차 없지 않은가.
" 어.. "
스즈는 순간 말을 멈추고 가만히 두 눈동자에 소녀를 담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지만 공기가 살짝 가라앉고 어딘가 신비한 느낌이 드는 바람이 볼을 스치는 감각.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지고 안심이 되는 기분. 그러고 보니 새로 만난 후미카라는 소녀가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뭔가 신비롭다는 기분이 들었다. 신이 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제 기도에 응답해준 풍어신이 이 자리에 온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하는 기분. 스즈는 그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또 미소를 지어보였다.
" 뭔가 신기했어. 뭐라고 설명하긴 힘들지만 뭔가 신비한 기분이었어! 되게 신 님처럼 말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아! 기분나빴다면 미안해. 그냥 조금 신비한 기분이 들어서~ "
자신이 느낀 바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전한 스즈는 엇차- 하고 적당히 마루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도시락 통을 열었다. 두 개의 주먹밥이 들어있었고 스즈는 '정말 안 먹어도돼?' 하고 한 차례 더 물어보았다. 조금 부끄럽다고 느낀 것은 다른 것 보다 주먹밥의 사이즈였다.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나서 점심때에나 먹을 법한 사이즈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주먹밥 두 개. 스즈는 에헤헤.. 하고 멋쩍게 웃으면서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한 입 가득 물고 우물거리던 스즈는 '우우웅!' 하고 웅얼거리며 말하며 후미카를 바라보았다. 몇 번이나 더 우물거리다 삼키고, 또 크게 한 입을 물고 우물거리다 삼키고.
" 맛있다! 이거 진짜 맛있어! "
친구들도, 어른들도 그렇게 말했다. 너는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예쁘니 신들도 그 모습을 좋아하실 것이라고. 그 때마다 스즈는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런다고 해서 자신이 먹는 모양 따위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주먹밥 하나에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은 스즈는 또 한 입을 물고 한 참을 우물거리다가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올려 후미카를 바라보았다.
손사래를 치며 이 이야기는 넘어가자는 사인을 보낸다. 이야기를 하고싶은 마음도, 해줄 필요성도 못느꼈기에 그냥 어물쩡 넘어가려는 것이다. 집요하게 물어본다면야 끝내 이야기를 해주긴 할테지만, 별로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었다.
" 마약 안해요. 저도 그게 나쁘다는건 안다구요. "
그런데 마약 이야기는 어쩨서 나온거지? 아해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착실하게 대답해준다. 허무맹랑한 마법 이야기라고는 해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있게 도움을 준다는데 매몰차게 나올 수는 없었다. 별로 신뢰가 가는 이야기가 아니어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것이다. 잠이 잘 오는 향초라도 준다면야 기쁜 일이겠지.
" 우리 이야기는 언제부터 삼천포로 빠진건가요... "
캐모마일이야 파이프 덕에 항상 주변에 퍼져있다지만, 양귀비는 대체 어디서 나온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따져봤자 코로리와의 대화에서 얻을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양귀비의 여부보다는 대화의 방향성을 먼저 물어보았다. 하지만... 아마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기 힘든건 매한가지겠지.
이미 허수아비가 되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에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투덜거리고 있자니, 머리 위로 코로리의 손이 올라온다. 딱히 위협이나 폭력을 목적으로 한 행동은 아닌 것 같아 가만히 있었는데 쓰다듬어지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쓰다듬 이후에 들려오는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지어진다.
" ....에? 세밤이나요? 뭐야 제 파이프 돌려줘요. "
세밤 동안이나 파이프를 못피운다니! 항상 집중력을 중요시해왔건만 오랜만에 집중력이 떨어지게 생겼다. 파이프를 다시 뺏어오려고 해도 이미 코로리의 등 뒤로 넘어가버린 파이프를 뺏어올 자신은 없었다. 괜히 몸싸움을 벌이다가 누군가 다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고, 그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켰다간 다음날 '선배를 폭행한 후배!' 정도로 학교 신문 일면을 장식해버릴테다. 여분의 파이프는 없는데... 하지만 갈아끼우는 필터는 집에 넘쳐나니 그걸로라도 어떻게든 연명해야겠다.
>>891 코로리의 자리에 코로로 젤리! 8가지 맛을 모두 주다니 코로리 품에 젤리 한가득 (´∀`) 거기에 사쿠라모찌랑 운세 잡지까지! 정말로 받은게 아니라니 상상만 해보면, 한입에 젤리 와르륵 채우고서 잡지 조각 읽고 있을거 같다 (*´∀`*) 선물 받아서 기쁘고 정말 감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