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이 불온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 정신은 이미 현세를 벗어나 저 신의 나라로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육신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양팔이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기에 꿈결과 같던 시간들이 뇌리를 스쳐간다. 거 봐, 내 말대로 됐잖아. 모든 것이 당신이 말 한대로 되었어. 그래, 그렇지만……. 그만두자. 말로 내뱉는 것은 의미를 가진다. 아직도 선명하기 나의 기억이 읊조리는 이름을 따라서 조금씩 숨이 멎는다.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그 뒤를 따르고-
웃지않는 내가 그곳에 있었다. 높은 하늘에서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입학식이 가까워 졌던 봄의 오후였다. 세상을 얼렸던 한겨울의 냉기가 가시고 조금씩 꽃망울이 틔워지는 시기 아직은 완만하게 땅에 내리쬐는 빛은 늘어지듯 그림자를 늘렸다. 그림자는 바람을 타고 달려 태양이 지쳐 쓰러지는 것과 함께 풀밭을 파도치게 만들었고, 그 속을 한 명의 여인이 함께 거닐고 있었다. 노부를 대동하고 길을 가는 여인은 한 손에는 새하얀 프릴이 달린 양산을 든 채로 아직 채 냉기가 가시지 않은 개울가에 발을 담근 채로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저 멀리 땅 위에 펼쳐진 마을을 내려다 보았다. 여인은 맨 다리를 휘둘러 물을 살짝 차고는 가벼운 움직임으로 몸을 돌려 노부에게 다가갔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여인은 노부와 눈을 맞추고는 슬며시 웃어 보였다.
“거기도 그렇지만- 여기도 상당히 많이 변했네요. 아카땅.” “으음, 와본 적도 없으면서 그러는 건 변하지도 않았구먼. 하나땅.”
두 사람은 그리 말하고는 가장 커다란 바위에 앉은 채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에노발의 야행열차 내린 순간부터- 아오모리 역은 눈이 날리고” “북쪽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도 말없이 거센 바람 소리를 듣고 있다네”
노래를 한 뒤 여인은 자랑스러운 듯 흥에 겨워 콧노래를 이어갔고, 노부는 저 멀리 마을을 바라보았다. 산, 그녀와 노부 역시 그러했지만 많은 신들이 이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제 몸을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은 동물의 신부터 그녀나 자신과 같은 식물의 신들까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햇빛을 받으며 인간의 모습을 취한채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본 여인은 문득 이렇게 중얼거렸다.
“인간에게 있어서 신은 독이 될 뿐인데도 이리 모여버리는 거네요.” 여인은 계속 말했다.
“그러고보니 아카땅, 집은 정했나요? 한번 들어보세요. 저, 이 나이에 엄마가 생겼거든요! 인세에서 제법 부를 쌓은 대단히 노력가인 아이랍니다. 덕분에 이번에는 제법 커다란 집에서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인의 말을 끊고서 바람이 움직였다. 그렇지, 그런 신도 있을 테지만 어째서인지 지금 보이는 이는 걸음을 멈춘채로 개울가에서 여인과 노부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인은 소년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냈지만 이내 소년은 다시 사라질 뿐이었다.
“…이곳은 저런 이들이 오는 거라네. 원래라면 내 자네에게 무어라 할만한 처지는 아니기는 하다만 그것도 백년 전까지의 일이지. 이미 아내도 있지. 하나땅, 자네도 상당히 나이 값을 못하게 되었구먼.”
그나저나 자네는- 노부는 그렇게 말하며 여성이 찾아온 산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여러 산을 넘어선 곳. 아직도 강렬하게 느껴지는 여러 신들의 소음.
“멀쩡한 집이 있으면 거기에서 배필을 구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구태여 이 멀리 가미즈미까지 올 필요가 있는겐가?” “그야 있지요. 이유를 나열하면 수 만가지 정도가 있지만- 구태여 한가지를 정하자면, 올해에는 제 취향에 맞는 재미있는 아이가 나올까 해서 일까요? 오사카, 도쿄. 홋카이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더 많은 종류의 인간이 있지만 그쪽에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이 판단 보류라고 오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쩐지 한숨이 섞인 듯한 여인의 목소리에 노부는 그건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신이 누구인가. 이전에는 분명 달랐으나 지금은 어쩐지 많이 모자란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신- 즉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신이든 인간이든 시간은 유한하지. 우리가 살아있다 하여 끝나지 않는 세계가 아니니. 끝나는 순간에 그대처럼 아름다운 신이 혼자였다면, 필히 웃기는 이야기일테지.”
그렇겠네요- 여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그렇다면 아카땅은 역시 저를? 안된다구요 불륜은. 저도 역시 천벌을 내릴거랍니다.” “…하나땅 자네는 참으로 멍청하구먼. 네가 머무는 그 집이 내 것인데. 애초에 네게 생긴 그 [어머니]의 배필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느냐. 그녀도 역시 현인신이거늘.” “그러고보니 없었네요. 어머, 혹시 알고 있는건가요? 신계에서도 본 적이 없었는데.” “나다만.” “응?”
"허당기.. 없습니다." 세제를 한 통을 다 넣어서 세제거품범람을 일으키거나. 청소를 하겠다고 다다미 바닥에 물을 촥촥 뿌려버리거나. 컵라면 물을 넘치게 담아서 스미다강*도쿄의 강 이냐!라고 하거나 전자레인지를 녹여버린 사태는 있었지만요. ....응 이거만 봐도 허당 맞는데? 그런 말을 한 걸 깨닫자. 얼굴이 더 붉어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맙니다...
"물과 관련된 산업이 뒤처지지 않는다면.." 여름에는 좀 살만하겠네요. 라고 고개를 숙인 채 말하는데. 좋은 것을 들었다는 듯한 목소리군요.
"좋다면 좋은 거죠." 체험할 기회가 있다면 바로 알 정도일까.. 라고 생각하며 좀 진정된 얼굴을 듭니다.
>>104 시미즈 가는 딱히 신을 모시는 집안은 아니고 단지 신의 기운을 품었다고 전해지는 물이 흐르는 동굴 근처에 세워진 신사를 관리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이 물 덕분에 우리 가미즈미가 올해도 잘 지냅니다. 이런 느낌으로요! 아버지는 물론이고 어머니도 그렇고 아키라도 신의 존재는 모른답니다. 그리고 그 선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걸요? 그렇게 설정하셔도 괜찮아요!
>>105 뭔가 잘 읽다가 마지막에 응? 하는 표정을 지어버린 제가 있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마사히로는 마사히로대로 베필을 찾는 것에 대해서 꽤 진심으로 나갈 모양이로군요! 과연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튼 뭔가 장난스러움과 당당함이 잘 섞여있는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온 반응은 적대감과 비슷한 느낌. 너무나도 예상외의 반응에 이제는 오른팔로 몸을 막는듯한 동작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에게 '걸려온 싸움은 피하지않는다' 라고 말 할 기개정도는 있었으면 좋았을지도 모르나 그러기에는 그녀의 기세를 이겨낼 수가 없었다. 게대가 '네녀석' 이라니 이번학기에서 들은 적도 없는 엄청난 말이었다. 그러고보니 눈이 좀 빨간색이 아니었나?
"옙."
기분이 별로 안 좋다는듯 중얼거리더니 자신의 성을 부르는 그녀의 말에 누구보다 빠르게 대답했다. 빨간색 눈과 흰색 머리카락이라면 추론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 그녀가 알비노라는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 사실이 중요해보이지는 않았다. 지금의 말에 대해서 소홀히 대하면 뭔가 몸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미래가 보인다고 할까. 혹은 그런 선택지가 보였다고 해야할까.
"잔심...인가요..?"
그녀의 말을 풀어서 해석하면 이 잔심이라도 재현하지 못했다면 그녀가 휘두른 죽도에 의해 머리를 가격당했을거라 이건가? 이 학교의 검도부는 의외로 스파르타 방식인가보다. 도망칠 타이밍을 계산해두자.
"이것이 검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진지한척 말하며 땅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건 요즘 유행하는 이세계전생판타지애니메이션에서 나올법한 대사 '아아, 이것은 ㅁㅁ 라고 하는것이다.. 일본에서는 흔하지.' 였다. 그리고 그는 바닥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없다고 말하자마자 바로 얼굴이 붉어지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런 평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아키라는 자기 멋대로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허당끼가 있다고 해서 나쁠 것은 또 뭐겠는가. 오히려 인간미가 있어서 자신은 그런 쪽을 선호했다. 무조건 완벽한 것보다는 부족하더라도 인간미가 있는 것. 그런 이를 대하기 쉬웠고, 그런 이와 대화하는 것이 좋았다. 애초에 자신 역시 그런 타입과 다를바 없는 부족한 타입이었으니까.
"그래요. 그래요. 성스러운 샘은 절대로 마르지 않고 계속해서 이 가미즈미에 물을 제공해주니까요. 온천과 스파의 물도 전부 그 물을 이용하는거고."
말을 꺼내다보니 어째서 물이 마르지 않는건지 그는 순간적으로 의문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부터 단 한 번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게 과학적으로 가능하긴 한건가? 무슨 원리인거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굳이 자신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겠거니 생각하며 그는 곧 의문을 저버렸다.
"말해두는데 물에 이상한 짓을 하면 안되기 때문에 시미즈 가의 이가 아니면 접근 금지에요. 거긴. ...뭐, 근처에 있는 신사까지라면 구경해도 상관은 없지만요. 호타루마츠리 때는 다 개방되기도 하지만..."
올해는 어떻게 되려나. 그에 대해선 아키라도 장담할 수 없었다. 작년에는 폭우가 너무 쏟아지는 바람에 취소가 된만큼 올해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게 가장 큰 이유였다. 날씨가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마츠리이기에 올해는 별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기왕이면 올해 새로 이곳에 온 그에게도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물론 자신이 같이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
뭐지? 공부 중독인가? 문제집을 꺼내는 모습에 그는 순수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편차치가 높다더니 그냥 심심하면 공부만 하는건가? 어떻게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럼 지금부터는 공부에 집중하실 생각인가요? 토와 씨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자신은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공부를 하겠다는데 옆에서 계속 말을 거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자신이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간섭할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주변에 벽을 쌓고 공부만 하는 이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 수 있었으니까. 허당끼가 있다는 것도 아무래도 확실해보이고. 그것을 안 것만으로도 지금 이 대화는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다고 아키라는 생각했다. 무엇보다 어쨌든 적응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다음 교시를 준비. 그러는 게 좋겠네요. 간식을 사기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애매하고, 점심도 먹었으니 다음 시간에나 생각해봐야겠어요."
사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간식을 사러 갈 생각은 없었다. 아직 호시즈키당에서 산 간식이 조금, 자신의 학생회장 전용 책상에 남아있었으니까. 허나 같이 마실 차가 없다는 것을 떠올리며 오늘은 방과후가 되면 카페에 먼저 가서 홍차를 하나 사서 가져와야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역시 홍차를 먹으면서 그런 화과자를 먹는 것이 정말 제일이었으니까.
"그럼 공부 열심히 하시고, 혹시 학교 생활을 하다가 불편하거나 힘든점이 있으면 얼마든지 찾아와요. 학생회장 권한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을 도와줄테니까요."
그 정도 당부를 하며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꽤 귀여운 면이 있는 전학생이라고 생각하며.
/ㅋㅋㅋㅋㅋㅋ 당황한 토와 귀여워요! 내가 허당끼를 보았다!! (이거 아님) 아무튼 이렇게 막레를 드릴게요! 일상 수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