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은 너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자신이 그동안 네게 말도 없이 마음을 기대어왔으니, 네가 기대고 싶다면 마음껏 기대어도 좋다고 말하는 대신이었다. 그는 손을 뻗어서 네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있다 떨어지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엄지손가락이 뻗어나오기 시작하는 그 부분으로, 그의 손에서 가장 굳은살이 덜한 부분으로 문질러 닦아주었다. 그리고 네가 내미는 왼손을 꼭 잡는다.
"...나도, 날 받아줘서 고마워."
그것은 사실이었다.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눈짓, 손짓, 말 한 마디, 까르륵 웃는 웃음 한 조각, 살랑살랑 흔들리듯 멀어졌다 다가오는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전부 현민에게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떤 의미였다.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너였으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어."
인간불신의 눈안개 속에서 헤매이고 있던 그에게, 오직 너만이 현민에게 선명한 의미를 남겼다. 아마 그 깊이는 다를지언정 현민과 네가 품고 있던 외로움의 색깔이 너무도 비슷해서가 아니었을까. 한 번 손으로 닦아주는 걸로는 모자랄 정도로 네가 소리내어 울어버리자, 현민은 널 다시 꼭 끌어안고는 네 어깨를 부드럽게 톡톡 두드려주었다. 눈물자국이 남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너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 가슴팍에 남은 네 눈물자국은 단순한 얼룩 같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비어있던 부분들 중 하나가 채워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는 계속 네 옆에서, 네가 그것을 자신에게 덜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먹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 네 안에 남는 거지."
네 눈물이 조금 진정될 때까지 널 끌어안고 어깨를 토닥토닥해 주면서, 현민은 나직하게- 그러나 네게 충분히 들릴 만한 톤으로, 이젠 꽤 익숙해진 음량으로 네게 말을 건네어왔다.
"받아줄래. 내 화이트데이 선물. 나, 너랑 이거 나눠먹고 싶어서 만들어왔거든. 그... 내가 제과제빵이라던가 손재주라던가 하는 게 없어서, 맛은 레시피 따라하니까 그럴싸하게 되던데 모양은 영 별로지만 그래도."
랑은 울고 있어서, 때문에 조금 더 말랑하고 조금 더 따뜻했다. 소리없이 딸꾹거리느라 몸이 움찔거렸다. 그래도 네 손길에 꼭 뺨을 묻었다. 눈물을 닦아주느라 문질러주는 손길이 아쉬웠다. 눈을 깜빡이면 한가득 맺혔다 툭 떨어지는 눈물이 떨어지지 못하고 네 손길에 묻어 사라진다. 랑은 네가 마주잡아주는 손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랑은 키도, 몸집도, 손도, 전부 너보다 이만큼 작았지만 그래도 하나 견줄 수 있는 크기가 있다면, 네가 날 좋아하고 아껴주는 만큼 나도 그만큼 커다랗게 너를 좋아하고 아낀다고- 랑은 그렇게 생각했다. 바람일지도 모른다. 감히 너에게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랑은 정말로, 온 마음 온 몸 다 바쳐 너를 좋아하고 있다.
"으응."
고마워할 일 아니라고 답하고 싶었는데, 울먹이는 목소리가 조금 부끄러워 고갯짓을 한다. 전부 네가 주었다. 사랑받는 것도 서툴러하던 아이를 이렇게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도 너인데- 랑이 어떻게 너한테 감사인사를 받을 수 있을지, 랑은 너무 염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였으니까 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다는 건 랑이 해야하는 말 같았다. 랑이 네 품에 처음 굴러떨어졌던 날, 랑은 너를 보고서 친절하고 상냥하고 배려심 깊고 마음씀씀이 넓은 생명의 은인이라고 칭했다. 그건 지금도 같았다. 늘어났다면 늘어났지, 줄어들지 않았다. 언제나 랑은 그늘 속에 숨어있으려고 했는데- 네가 햇살의 따스함을 알려주고 말았다. 내가 너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너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랑은 더 그렇게 느끼고 만다. 나에게는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은, 여전히 저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명 나아질 것이다. 지금도 너를 따라 열심히 걷고 있는 중이니까.
랑은 네가 꼭 끌어안아주면 응당 그렇게 해야된다는 듯이 너에게 바로 기댔다가- 퍼뜩 눈물자국 생각에 꾸욱 너를 조금 밀어내려고 했다. 조금만, 네 품에 완전히 얼굴을 묻지 못할 정도 만큼의 거리를 벌리려는 노력이었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도 되고, 그냥 조금만 떨어져서 눈물을 툭툭 떨구어도 되니까-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만으로도 랑은 고마워서- 그렇지만 네가 우뚝 버티고 선다면 밀릴 리가 없다. 이 선택은 네 몫이었다. 이제 더이상 눈물은 안 날 때까지 네 품에서 울었다. 진정되어도 여전히 눈가는 발갛고(남은 점심시간은 너와 보낼 거라 아픈 줄도 모르다가, 5교시가 시작하거든 머리랑 눈이 아프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말랑하고 따뜻했다. 여태 떨군 눈물방울과 닮은 눈동자에 물기가 어려 있다. 랑은 네 품에서 나오기 전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쪽 입 맞추는 소리는 네 입술 위에서부터 들려온다.
"정말로 많이 사랑해."
목소리도 물기 어렸다. 그래도 이제 눈물은 더 안 흘린다는 듯이 늘 네게 지어보이던 눈웃음과 함께- 평소보다 더 헤실헤실 풀려있는 말랑말랑한 웃음을 지었다.
"근데 나 진짜 아까워서- 사진도 못 찍고."
보석함이라도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랑에게는 보석보다 더 귀했다. 푸딩이 들어있는 유리병을 손 끝으로 건들여보았다. 울퉁불퉁한 마카롱도 귀여웠고, 삐뚤빼뚤한 네 아이싱도 귀여웠고, 모양이 별로라고 하는 네 말은 듣지도 않은 것처럼 그런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이래서야는 네가 먹여주지 않는 이상은 절대 손에 들지도 않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