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이는 나름 필사적으로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쓰는 거지만 말이야. 어쨌든 첫 여자친구고 연애도 처음이다보니 아직은 서툰게 많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런 모습이 더 클 것 같지만 말이지! 아람이가 혜성이 놀려주고 싶어하는 것은 이미 처음부터 파악중이라구!! 아람이도 그만큼 귀여우니 귀여운 이 두 명이 모여서 최강 귀여움이라고 칭하면 될 것 같다! 이건!
그런 풋풋함 속에서 시행착오가 나고 또 오해도 나고 그러다가 한번 정도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가 더 사이가 굳건해지고 그런 거 아니겠어? 첫연애의 풋풋함이란 바로 그런 것이지! 능숙한 연애는 능숙한 연애대로! 첫 연애는 첫 연애대로 관전 포인트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해! 역시! 맞아. 맞아. 둘이서 예쁜 사랑해야지!!
AU. 진짜 쌓이기만 하고 할 것은 많아지니 소재가 떨어질 일은 없다! 거기다가 계절도 아직 여름인걸!! 진짜 할 것이 많아서 좋다! 단순히 꽁냥꽁냥거리는 것만 하는게 아니라 뭔가 이런저런 소재가 있으니 완전 행복해!! 진짜 아람주와 만나고 이 일댈을 만들어가면서 진짜 즐거운 거 알아줬으면 하고 다시 한번 써보기도 하고! 물론 유사연애적인 의미가 아니라 오너 대 오너로서!
맞아 아직 계절은 여름이지~ 가을이랑 겨울이랑 할 것 많단 말이야~ 이런저런 소재는 혜성주 아이디어도 많으니까~~ 나도 혜성주랑 일댈하면서 많이 배우고 또 일댈의 즐거움을 많이 느끼고 있으니까! 나도 다시한번 함께 파트너 해서 좋다는 말을 다시 하겠다!ㅋㅋㅋ 조심히 다녀와 혜성주~
"비슷하다면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완전 그런 느낌은 아니야. 아무튼 그렇다면 멀리서 보는 것이 낫겠네. 괜히 가깝게 봐서 실망할 필요는 없잖아."
바퀴벌레를 닮았다고 해야할지. 하지만 벌레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벌레를 싫어한다면 역시 가까운 곳에서 보는 것은 피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녀를 반딧불이 근처엔 다가가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을 아름다운 상상을 굳이 깨뜨리고 싶진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자신도 가까운 곳에서 보는 것은 개인적으로 피하고 싶었으니까.
아무튼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그녀의 말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환한 표정을 짓다가 헛기침 소리를 내며 다시 표정을 어떻게든 가라앉히려고 했다. 물론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누가 봐도 정말 좋아하는구나. 완전 신이 났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티가 강하게 팍팍 나고 있었다. 물론 혜성은 절대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튜브를 밀어달라고 하는 그녀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튜브를 잡은 후에 천천히 앞에서 끌어주며 조금 더 깊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신의 몸을 기준으로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정도의 깊이쯤에서 멈춘 그는 조심스럽게 튜브에서 손을 놓고 그녀를 바라봤다.
"이 정도면 될까? 너무 깊으면 조금 얕은 곳으로 옮겨줄테니까 무리하진 말고. 튜브에 타고 있다고 해도 마냥 안전한 것은 아니니까."
말을 마친 혜성은 아람에게서 그다지 멀어지지 않으며 그녀의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나 실수로 떨어지면 큰일이었으니까. 그런 걱정어린 표정을 짓던 그는 결국 그녀의 뒤로 향한 후에 튜브를 조심스럽게 잡았다.
워터파크를 간 시기를 생각해보면 적어도 지금보다 이전인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던 것은 대체 언제부터인가? 생각도 못한 말에 그는 두 눈을 깜빡였다. 아니.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좋아한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 갑자기 확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신이 그녀에게 반할만한 행동을 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그는 고개를 가만히 갸웃했다. 그 와중에도 튜브만큼은 절대로 놓지 않았지만.
반대편 손으로 머리를 가볍게 긁적이던 혜성은 손을 다시 물 속으로 집어넣었다. 첨벙. 물 표면에 잔잔한 파장이 일어났다. 이어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녀에게 슬며시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언제부터 날 좋아한거야? ...아니. 그보다 왜 좋아하게 된거야?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딱히 너에게 반할만한 행동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아, 아니. 꼭 알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그냥..말이지."
말을 살짝 얼버무리지만 그럼에도 확실히 궁금한 분위기는 내면서 그는 가만히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가 괜히 물 속에 집어넣은 손을 다시 슬며시 밖으로 끄집어낸 후에 가볍게 그녀에게 살짝 뿌리면서 그는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했다. 역시 이런 곳에 왔으니 물을 가볍게 뿌리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이런 말 하면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나 꿈에서 너에게 고백 받은 적 있어. ...꿈이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자신이 먼저 답을 해야 답을 하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답에 혜성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도끼눈을 뜨고 아람을 빤히 바라봤다. 물론 그녀의 입장에선 꼭 듣고 싶다기보다는 물음의 대답을 회피하려는 것 같았으니 혜성은 어째야할지를 잠시 고민했다. 이걸 말을 해줘야하나. 말아야하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혜성은 끄응- 소리를 내면서 고민하는 시간을 조금 더 길게 잡았다.
한편 그녀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짓자 혜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이어 그녀가 뿌린 물기를 살며시 손으로 닦아내며 그는 이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지. 아니지. 애초에 그건 꿈이잖아. 노카운트야. 노카운트. 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거야."
다른 건 몰라도 저런 표정을 짓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헤성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 있어선 정말로 중요한 요소인걸까? 역시 잘 모르겠다는 듯 그는 끄응- 소리를 내다 다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다 그는 슬며시 주변 눈치를 살피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듣고 싶은거야? 그러니까 꼭 듣고 싶다면... 뭐, 말 못해줄 것도 없지만. 아까 그 물음."
“원래 상대방의 이름을 알고 싶을 때는 먼저 자기 이름부터 이야기를 하는 게 예의잖아. 그러니까, 그런 거야.”
아람이 괜히 눙쳤다. 언제부터 좋아했냐니 그런 커다란 질믄을 하려면 본인부터 스스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아람의 입장에서도 언제부터 좋아했냐, 라고 물으면 딱 언제부터다, 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고. 그냥 스미듯이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기도 했다.
“꿈이라서 노카운트라니~! 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느냐니, 그야 네가 계속 자신이 먼저 고백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니까 그렇지.”
앞전 대화에서 ‘내가 먼저 고백했으니까’라는 말을 혜성이 계속 썼던 것을 은근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혜성이 정말로 대답을 해줄 것처럼 이야기하자 아람도 눈을 조금 반짝였다. 들을까? 말까? 들으면 나도 말해야 하는데? 그치만….
물론 먼저 고백했다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걸로 자랑하고 그러진 않지 않았던가. 혜성은 괜히 억울하다는 듯이 두 눈을 깜빡였다. 그보다 그 말이 상당히 가슴에 박혀있기라도 한 것일까. 괜히 입술만 삐쭉이며 혜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허나 그 침묵이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았다. 듣고 싶다는 그 말. 그것은 진심어린 그녀의 대답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답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정말로 고민했다. 딱히 말을 못할 것은 아니지만 과연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끄응- 소리를 조금 더 내던 혜성은 시선을 아람에게서 치운 후에 중얼거리듯 이야기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은근히 귀찮은 애라고 생각했어. ...나 참. 중학생 때 같은 반이었다고는 해도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와서는 사진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마냥 귀찮은 애는 아니고, 정말로 성실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화 촬영 때 진짜 진지하게 하는 모습이 너무나 예쁘게 보였어. ...그리고, 그리고... 너와 시간을 보내면서 언제부턴가 네가 옆에 없으면 그...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보고 싶어지고, 만나고 싶어지고... 그런 것을 모르는 척 눈감다가 어느 순간, 정말로 어느 순간 자각을 하니 답이 안 보이더라. ...남자애들에게 고백 많이 받는다는 것도 은근 질투 나고..."
중얼중얼. 중얼중얼. 그다지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진 않았으나 그래도 그녀에게는 분명하게 전달되게 이야기를 하며 이내 혜성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그런거야. ...자각을 한 계기는 묻지 마. 답 안해줄거야. 그건."
아무리 그래도 꿈 속에서 그녀가 고백을 하는 것을 듣고 자신도 비슷한 마음이라고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아람이 괜히 투정을 부릴 것 같아 그것만큼은 비밀로 하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혜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 안 봤다고는 말 안할게. ...그런데 내 취향이긴 해. 너. 근데 진짜 그것만은 아니다! 진짜로 아니야! 오해는 말고! 알았지? 알았다고 해! 알았지. 그런거지?!"
아람은 입술을 삐죽이며 그런 적 없다는 말에 쿡쿡 웃음을 내뱉었다. 물론 자랑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람도 알았기 때문에 거의 장난 어린 말이었지만 말이다.
그보다 아람은 혜성이 중얼거리듯이 솔직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을 귀를 쫑긋 세우며 들었다. 그렇게 듣고 있다보니 괜히 부끄러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다 혜성이 제 얼굴이 취향이라는 말에 눈을 깜빡이면서 혜성의 쪽을 바라봤다. 혜성이 오해하지 말라고 하니 왠지 더 웃겨서 푸스스 웃어버렸다.
“알았어, 알았어. 그러니까 그 말은 내가 예쁘다는 거지?”
아람이 얼굴 아래에 꽃받침을 하며 웃으며 혜성을 바라봤다. 아람은 혜성의 반응을 살피다가 이내 민망한 표정으로 찰박찰박 물장구를 쳤다.
“음, 그럼 이제 내 차례인 건가?”
아람은 으음, 소리를 내며 조금 고민하다가 찬찬히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나도 처음에는 이렇게 될 줄 몰랐었지. 그냥, 그렇게 기대하지 않고 너한테 말 걸었던 것도 있었고. 그런데 그냥 너랑 같이 있으면서 편했다고 해야하나? 그런 기분이 들었어. 사실, 나 스스로 이런 말 하기 민망하기도 하지만, 내가 예쁘잖아? 그리고 주변에 친구들도 많고 소문에도 빠르고. 그러다보면 권력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비슷한 게 생겨. 뭐랄까, 소소하게 더 잘 해주고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것을 이용한 적은 없었지만….”
과연 이용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냐, 라고 묻는다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무언가를 얻어낸 적은 없었었다. 예쁘다는 이유로 질투받고 안 좋은 소문이 돌거나 겉으로만 판단 당한 적도 많았으니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래도 너는 뭐랄까,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서. 그래서 편했어. 나한테 잘보이려고 한다거나 좋은 말만 한다거나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나도 비슷하게 어느덧 스며들듯이 말이야. 계속 자주 만나게 되고, 또 만나고 싶고, 그리고 너도 내가 만나자고, 같이 보자고 했을 때 한 번도 안 된다고 한 적이 없었잖아. 그러니까…. 네 탓도 있는 거구. 음, 어쩌다보니 네가 좋아졌고, 그냥 좋았어. 무슨 커다란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원래 좋아한다는 감정이 그런 거잖아. 음음. 언제 쯤 알았냐고 한다면, 수중 촬영할 때 쯤? 그 떄 쯤 네가 나한테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인 것 같았고, 아마 축제 때 너를 좋아하는 구나 확실히 알았던 것 같구.”
아람이 마지막에는 조금 우물우물 말했다. 말을 하다보니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얼굴이 조금 발갛게 달아오르자 꿈지럭꿈지럭 거리더니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숨을 참을 수 있을 만큼 잠수했다가, 푸하 하고 튜브 가운데로 퐁 튀어나왔지만.
자신의 얼굴에 꽂받침을 하며 자신이 예쁘냐고 묻는 그녀의 말에 혜성은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고 괜히 얼버무렸다. 하지만 얼굴이 취향인 것은 사실이었다. 아니. 물론 완전히 취향에 100% 적중하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긴 했지만 저 정도면 충분히 취향이 아니던가. 그래도 처음부터 얼굴 보고 두근거린 것은 절대 아니라고 혜성은 자부할 자신이 있었다. 그것만큼은 누가 뭐라고 해도 사실이었으니까. 만약 아람이 그것으로 좀 더 물고 늘어지면 절대로 아니라고 크게 외칠 준비를 했으나 다행히 아람이 더 묻거나 하진 않았다.
이어 들려오는 내용에 혜성은 괜히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예쁘기에 소소하게 더 잘해주고 그런 느낌이라. 그게 무슨 느낌인지 혜성은 어느정도 알 수 있었다. 좋건 싫건 아무래도 외모가 좋으면 사람들이 조금 더 호의적으로 나오는 법은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에게 고백하는 이들도 많을테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듣는 것은 그야말로 직격타였지만. 그 와중에 자신의 탓을 이야기하는 말에 그의 눈은 아주 살짝 도끼눈이 되어 그녀에게 빤히 향했다. 물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수중 촬영? ...비슷한 시기잖아. 나하고."
물론 완전 같은 느낌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전환점이 된 것은 그때라는 소리가 아닌가. 묘하게 부끄럽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그녀가 물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몇 초 후, 자신 역시 물 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보글보글. 거품조차도 올라오지 않게 숨을 참던 그는 다시 고래를 밖으로 빼냈다. 물줄기가 가볍게 뚝뚝 머리카락을 통해서 떨어졌고 열기가 식은 혜성은 아람을 가만히 바라봤다.
"......좋아하는 거 알았다는게 그.. 귀신의 집?"
공간도 공간이지만 분위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자신이 가만히 있어선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우물 안에서 했던 행동들을 떠올리니 절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지만 그래도 그는 굳이 그 물음을 입에 담았다.
/재택근무 전에 잠시 시간 내서 답레 남겨놓을게! 이거 빨리 남기고 일하러 가야겠다! 오늘 하루 화이팅!
아람은 물에 폭, 잠겼다가 이내 다시 튜브 사이로 튀어나왔다. 그리곤 머리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린 채 튜브에 데롱데롱 매달리듯 기대며 혜성의 말에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직 부끄러운지 튜브 안쪽으로 얼굴을 숨겼다. 입가에 닿는 물에 보글보글 숨을 불어넣다가 이내 다시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부끄러워.’
여전히 열기가 계속해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푸우, 소리를 내며 물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지만. 수중호흡을 할 수 없는 지상의 생명체로서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
“…더 물어볼 거 있어?”
이럴 때 몰아서 물어보라는 듯 아람이 튜브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그 얼굴이 여전히 발갛다.
/ 재택근무 수고했어! 슬슬 지나와 세윤이가 돌아와야 할 것 같은데 몇 번 주고받고 부르면 되려나?
"...어, 없어. 그런 거. 뭐, 뭔가 이 이상 들으면 기분 이상해질 것 같아서. 그러니까... 너, 제대로 못 볼 것 같아서."
괜히 중얼중얼거리며 혜성은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부끄러운 탓이었다. 물론 그녀가 부끄러운 것은 아니고 이런 말들이 오가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어쨌든 꽤 이전부터 자신을 좋아했었다는 사실에 그는 괜히 미소를 짓다가 다시 물 속에 얼굴을 감추면서 보글보글 방울만 올렸다. 그러다가 열기를 다시 식히며 제 뺨을 두 손으로 톡톡 쳤다.
"너는 뭐 있기라도 해? 나에게?"
아마 그녀도 없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나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이야기할 수 있는 선에서는 답해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일단 다시 튜브 쪽으로 다가간 후에 그녀의 튜브를 두 손으로 잡아줬다.
그러는 와중 저 편에서 둘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며시 고개를 돌리니 지나와 세윤의 모습이 그의 눈에 보였다. 아주 둘이서 꼬옥 달라붙어서 꽁냥꽁냥 거리면서 다가오는 모습이 그야말로 커플 그 자체가 따로 없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람에게 물었다.
좋냐, 싫냐로 따지자면 좋다라. 그 말에 혜성은 침묵을 잠시 지키면서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녀의 위치에선 잘 보이진 않았겠으나 그는 자신의 입술을 아주 살짝 약하게 깨물었다. 뒤이어 입을 열어 그녀의 말에 확실하게 아니라는 것을 표현했다.
"그, 그런 거 아니야. 이, 익숙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다니고 싶다면 그렇게 다녀도 좋지 않을까 해서. 따, 딱히 부끄럽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절대로. 자, 자랑하고 좋네! 여자친구 있다고!"
목소리 끝이 아주 살짝 떨리는 것을 스스로 아는지, 모르는지. 일단 밖으로 나가자고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튜브를 잡고 천천히 물 밖으로 밀어냈다. 물론 그녀 혼자서도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곳까지 데리고 온 것이 자신이니, 밖으로 내보내는 것도 자신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튜브가 있으면 오히려 움직임이 조금 더 힘들수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물밖까지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오자 멀리서 보이던 두 사람의 모습이 더욱 가깝게 그의 눈에 비쳤다. 이어 혜성은 둘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수박의 여부를 물었다.
"혹시 두 명, 수박 가져왔어?"
"응? 수박? 갑자기 뭔 수박이래? 안 가져왔는데."
"......"
아주 잠시였으나 혜성의 입술이 슬쩍 삐쭉 튀어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윤은 혜성의 옆에 다가와서 그의 옆구리를 손으로 툭툭 치면서 이야기했다.
"그보다 다 들었어! 사귄다면서? 아람이랑 사귄다면서? 우와. 문아람. 얘 좀 많이 피곤한 성격이겠지만 그래도 나쁜 애는 아니거든? 버리진 말고 잘 지내줘. 응?"
"아. 너희 둘을 자주 본 이라면 솔직히 언제쯤 사귈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걸? 물론 친구로서 그렇게 지낼 수도 있지만 둘의 분위기는 참 알기 쉽단 말이야."
"...시끄러워."
괜히 투덜투덜거리면서 혜성은 작게 혀를 찼다. 물론 딱히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으나 뭔가 세윤에게 장난스럽게 저렇게 말을 들으니 그 점은 조금 분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것이 화를 낸다거나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냥 뭔가 다 읽힌 것 같아서 조금 기분이 애매하다는 것에 가까웠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세윤은 괜히 크게 키득거리면서 아람에게 이야기했다.
"뭐, 이런 새침떼기지만 바람이나 그런 건 절대 안 필거야. 이 녀석. 되게 착실하거든."
"...나 참."
자신을 또 띄워주는 말에 혜성은 괜히 시선을 회피하며 가만히 땅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아람을 힐끗 바라본 후에 괜히 어깨에 손을 올려 자신 쪽으로 살며시 끌어당기면서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바람 안 피는 건 맞으니까 부정하지 않을게. ...이런 애 두고 어떻게 바람을 펴. ...생각 없어. 그런 거."
"오!! 남자친구로서 훅 들어가기야?"
"...바보도 아니고. 그냥 사실을 말하는 것 뿐이야."
그럼에도 그 말이 거짓은 아니라는 듯, 혜성의 목소리는 그 어떤 순간보다 상당히 확고했다.
지나가 웃으며 그렇게 맞장구 치자 아람은 지나를 바라보며 ‘너마저?’라는 표정으로 지나를 바라봤다가 조금 뚱한 표정을 지어냈다가 지워버렸다.
그러다 키득거리며 바람 같은 것은 안 필 거라는 말에 아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람이 생각하기에도 혜성은 바람을 필 것 같은 스타일은 아니었다. 뭐랄까, 바람둥이라는 것이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니면 아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고.
어쨌든 혜성이 어깨를 끌어당기며 하는 말에 아람은 조금 얼굴이 발게졌다. 뭐랄까, 이런 스킨십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혜성의 말 자체로도 뭐랄까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때문일까. 방금 혜성에게 저런 꽁냥꽁냥하는 것이 좋다는 그 말 때문에 이렇게 대하는 것인지. 어쨌든 아람은 이런 상황이 좋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다.
“나, 나도 착실하고 충실해.”
아람은 혜성의 팔 안쪽에서 조금 뚝딱거리며 몸 앞으로 양팔을 교차하며 뭔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에 지나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그래. 그렇게 인기가 많은데도 첫 연애니까. 게다가 아람이는 공부든 뭐든 착실하게 해내니까 말이지.”
지나의 말에 이어 세윤 역시 아람의 말에 동의하면서 작게 박수를 짝짝 쳤다. 허나 정작 먼저 스킨십을 한 혜성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작게 끄응- 소리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괜히 시도했나. 뭔가 살짝 움찔하는 느낌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행한 것이었으나 막상 행하고 보니 너무 대담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물론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절대로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너무 확김에 한 것이 아닌가 싶어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 와중에 그녀가 나름대로 자세를 바꾸자 그는 다시 한번 아람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놓아주려고 하면서 괜히 중얼거리는 톤으로 이야기했다.
"아, 아무튼 사귀고 있으니까 그렇게 알라는거야. ...티, 티가 났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좋아서 사귄다는 것이 중요한거지. ...따, 딱히 인기가 많아서 사귀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인기가 많건 뭐가 많건 상관없어. 난."
"우린 그런 거 한 마디도 안했다. 너 은근히 신경쓰는구나."
"아, 안 써!"
물론 그것은 약간의 거짓이었다. 그녀가 인기가 많다는 사실은 그에게 있어선 아주 조금은 위축되게 하는 요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저 자신이 조금 더 노력해서 그녀와 대등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세윤은 이내 지나의 말에 동의했고 혜성은 아무런 말 없이 그녀가 공기를 주입하고 있는 비치볼을 바라봤다. 확실히 물의 깊이나 넓이를 생각해보면 공놀이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여기서는 살짝 빠져서 놀게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고 그는 생각했다. 자신의 여자친구이긴 하나 그래도 다른 애들과 아예 못 놀게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물론 끼여야 하는 분위기라면 망설이지 않고 끼일 생각이었으나 그건 차후 지켜볼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반딧불이는 어디에서 볼 수 있어? 나중에 밤에 보자는 말이 나와서 말이야."
이내 혜성은 물어보려고 마음 먹었던 것을 지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일단 숲이라고는 했으나 숲도 한 두 곳이 아니었고 밤이 되었을 때 길을 잃으면 보통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미리 위치를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가만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일단 방향 정도는 미리 파악해서 나쁠 것이 없었으니까.
"...저녁 먹고 보면 시간상으로는 괜찮을 것 같긴 하지만..."
뒤이어 그는 아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힘들어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마음이었다. 물론 공기를 주입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고 비치볼은 그리 크지도 않았지만.
지나의 설명에 혜성의 눈동자가 자연히 그녀가 말하는 방향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물론 여기서 모든 풍경이 다 보이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포인트 정도를 기억해두면 나중에 찾아가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테니 그는 머릿속으로 그녀가 말하는 내용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 쪽으로 갈림길로 가면 정자가 나오는데 그 쪽에서...
"그래? 그렇다면 예쁜 사진이 나오면 너에게도 나눠줄게. 기브 엔 테이크잖냐."
반딧불이는 당연히 사진으로 남길 생각이었다. 물론 어두운 밤배경인만큼 사진이 잘 나오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기엔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그렇기에 혜성은 그 순간을 위해서 챙겨온 것이나 마찬가지인 카메라를 오늘 밤에는 꼭 가지러 가야겠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다짐했다.
그 와중에 자신 쪽으로 공이 날아오자 혜성은 살짝 당황하다 두 손을 뻗어서 아람이 던진 비치볼을 받았다. 탱탱하게 바람이 잘 들어간 것이 공놀이를 하기에는 딱 좋겠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작게 미소지었다.
"너무 신난거 아니야? 하기사 지금 같은 순간을 안 즐기면 손해보는거긴 하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혜성은 다시 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아람을 바라보며 어서 들어오라는 듯 손짓했다. 이미 세윤은 물 안으로 들어가며 다른 이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 여기서 좀 더 노는 것을 잇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둘만의 물속에서 꽁냥꽁냥은 즐겼으니 이 상황은 여기서 끝내두는게 좋을까? 아람주는 어떤 쪽이 좋은 것 같아?
나도 아람주와 돌리는 거 즐겁다는 거 다시 강조해야겠는걸? 둘이 워낙 잘 어울리니 말이지!! 보면서 행복하고 귀엽다!!
음. 아쉬운거라. 뭔가 물놀이를 조금 더 하고 싶었던걸까? 사실 물놀이야 어떻게든 잇는다고 한다면 더 이을 수는 있긴 하니 말이야! 일단 다음 상황으로 반딧불이로 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휴식을 넣는다면 그 이후에 바로 잠 안 자고 전에 말했던 등 기대고 별 보면서 사귄지 1일차 밤을 소소하게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저녁밥을 다 먹고 어느덧 어둠이 천천히 땅에 깔리고 있었다. 물론 너무 늦은 시간에 가면 아람이 졸려할 것 같았으나 그렇다고 아직 어둠이 깔리기도 전에 가면 반딧불의 묘미를 즐길 수도 없었다. 챙겨온 디지털카메라를 목에 확실하게 멘 후, 그는 아람과 만나기로 한 시간에 건물 입구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는 등의 준비가 필요해서인걸까? 아직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혜성이 10분 정도 더 빨리 내려와서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것이기도 했지만.
마치 물놀이를 가기 전에 자신이 이렇게 기다렸던 것이 떠올라 그는 피식 웃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서 아람이 귀여워 등의 말을 중얼거리면서 연습을 하려고 했으나 아람에게 들킬뻔한 ㅡ어쩌면 들켰을지도 모르지만ㅡ 일을 떠올리며 혜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대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아람아 예뻐. 아람아 귀여워. 좋아해. 아람아. 등등의 말을 내뱉으며 그는 나름대로 그렇게 칭찬을 하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허나 막상 입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하면 묘하게 간질간질하고 입이 무거워져 절로 입이 꾹 닫히니 그의 입장에선 참으로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첫날이니까 아직은 어쩔 수 없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아람을 가만히 기다렸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려던 목소리가 밖으로 세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