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빨간 빛이야 눈을 좀 가릴게, 자기야. 놀랄 것 없어 요즘에는 도무지 저것으로부터 숨을 곳이 없어 이것은 그저 우리가 굴러떨어진 또다른 막장의 날일 뿐이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1. 본 스레는 놀기위해 오는 거다 공부는 필요 없다. 2. 일상 중 불편하게 느낄 것 같은 사항이 있다면 사전 조율한다. 3. 본인이 뭐가 아니라고 느껴지면 웹박으로 쏘거나 넌지시 그리고 확실하게 상대에게 전달한다.
기억하라면 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아무리 천재라 불린다 한들 누구나 잊는 것이 있는 법이다. 가령 이제 기억나지도 않는 얼굴이 있다. 호의를 베풀었는데도 고양이 가면만 기억나지 얼굴은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흐리다. 에만은 그 사실을 멀리 치워내기로 했다. 그리고 여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머니가 여러 개 있다 한들 저런 것도 들어가는구나. 자신의 후드 주머니가 남이 보기엔 저렇지 않을까?
"아..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빼곡한 글씨를 보진 못했지만 곤란한 것임은 알 것 같다. 에만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새 종이를 받아들며 여성의 얼굴이 달아오른 걸 보곤 작은 웃음을 참았다. 사람이 실수 정도야 할 수 있는 법이다.
"..잘 쓸게요."
서류철을 한 손으로 들고 종이를 그 위에 올린 뒤 재주 좋게 필사를 시작한다. 요즘 보기 드문 글씨체였다. 정갈하며 정확한 규칙을 지키는 필기체기 때문이다.
"하셔도.. 괜찮아요."
사각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한 페이지에 빼곡하게 적힌 대화문을 필사하던 손이 멈추던 것은 고민거리와 질문에 대한 것이다. 에만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비밀은 지키려 노력한다. 성별도, 나이도, 이름도 없어 가장 많은 비밀을 가진 미네르바의 부엉이에게 당돌히 묻는 모습 때문인지 미동 일절 없이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음, 글쎄요.."
다시금 펜을 움직이려다 빙글 돌린다. 그리고 에만은 어색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셰바 사람은 늘 살아남는 방법이 고민인 법이죠.. 총 맞아 죽기는 싫으니까.. 그렇지만 익숙하니 고민이라기엔 좀 그렇고.. 선생님께 묻고 싶은 건 있네요.."
에만은 다시금 필사를 시작했다. 가벼운 농담이었다.
"아무리 상담이라 해도 이 나사 빠진 도시 사람들을 상대하는 건데.. 힘들지 않으세요..?"
situplay>1596447081>997 읏... 믿어줄게요... 그렇게 귀여우면 반칙인데. (쓰담쓰담)(이마에 쪽)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득시킬 수 있을까..? 과연..? 그래도 제롬이라면 아스랑 함께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하지만 아스주가 좋아하는 거라면 꼭 해드리고 싶은 걸요~(짓궂)(싱글싱글) 저도 요새 너무 행복해요... 제가 에유 썰 적극적으로 푸는 건 아스가 처음인듯... 아스로 힐링중...
자신은 생각하지도 않고, 남들만을 생각하는 것은 대체 왜인지. 그렇게 자신을 내던지는 삶을 시안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필연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칠 수밖에 없는 미련한 삶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는 걸까. 시안 역시 피로에 눈을 꾹 감았다, 느리게 뜬다. 그리고 제 입술을 피가 날듯 깨문다. 시안은 돌아서고도 당신의 답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 말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당신에게 고백할 수가 없다. 행동이 아닌 말로써 시안을 밀어내려고 한 당신의 행동은 정답이었을지 모른다. 시안은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돌이 되는 다리를 움직이며, 최대한 무심한듯한 걸음걸이로, 더 망설임 없다는 듯 걸음을 내딛는다. 그렇게 응접실을 빠져나가기 전, 잔뜩 힘이 빠져 쉰 목소리로 당신의 축객령에 답한다.
"그래요. 사라져줄게요. 쉬어요."
올 때보다 더 작아진 뒷모습이 당신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 막레 하면 될 거 같네. ◐◐...
여인이 지나가며 한 말에 제롬은 반쯤 눈을 감았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내가 뭘 놓친 건지. 선택해야 한다. 결국 이 이야기를 매듭짓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그건 알아.”
최악의 선택지를 골랐다는 말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여인의 반응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 제롬은 조용히 페로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여인이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무대 위에서조차 여인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지금처럼 바래버린 빛을 띠는, 자신과는 달리.
페로사의 말처럼 자신이 선택해야 할 때였다. 그녀의 말은 옳았다. 수동적인 선택은 지금 상황에서 하등 도움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그렇게 말한 것은, 포레라는 남성의 말처럼, 자신이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었기에.
“하지만 나는 그럴 자격이..” 페로사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말을 중얼거리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페로사가 못 들었길 바라면서. 결국 저번에 했던 말들의 반복이다. 자신은 여인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것. 여인의 곁에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그 이유를 대자면 끝도 없이 있고, 여인을 붙잡는 것도 보내는 것도 할 수 없고, 선택할 권리조차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차라리 답만이 아닌 풀이 역시 알려줬으면 좋았을텐데. 속으로 한탄했다. 페로사의 바램과는 달리 그는 속으로 결론은커녕 제대로 된 선택도 내리지 못 한 상태였다. 붙잡을지, 보내줄지. 그 선택을 과연 자신이 내려도 되는 건지. 역시 여인이 내려야 하는게 아닌지. 결국 반복될 뿐이었다.
제롬은 문득 여인의 노래를 듣는다. 여인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목소리도, 음색도, 몸짓 하나하나까지. 여인은 공간을 휘어잡는 매력이 있었다. 다시금 자기혐오로 회귀하려는 찰나 노래의 가사가 그를 멈춰세웠다. 마치 여인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아서, 그는 조금씩, 노래에 집중한다.
여인의 노래는 길지 않았다. 그가 정신을 차리자 노래는 끝나있었다. 여인은 인사를 하고 다시 자신의 옆자리에 앉는다. 이제 시간은 다 되었다. 해야 할 말을 할 차례였다.
“한번만, 더 기회를 줘.”
어쩌면 이 일로, 관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끝내는게 자신의 손이 될지도 모르고, 여인의 손이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대로 끝내는게 여인에게는 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끝날 인연은 아닐 거야. 넌 언제나 내 마음 속에 특별한 사람 일테니까.
“난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벨라.”
술잔에서 손을 뗀 제롬은 몸을 돌렸다. 여인의 뒤로 가서, 여인을 뒤에서 끌어안으려고 했다. 감정이 앞서려는 것을 억누르는지 그의 목소리가 살짝 잠겼다.
“네가 필요해. 항상 네가 날 떠날까봐 불안해했어. 네가 떠나지 않았으면 해서, 네게 내 모습을 숨겨왔어. 하지만, 그 비밀 때문에 네가 날 떠나게 되는 것도 싫어.”
여인의 목덜미에 고개를 살짝 묻으려 하며, 그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벨라. 너도 내가 필요하다는 걸 알아. 그래서 계속 내게 기회를 주려고 한 거지? 몇 번이고 내게 말을 걸면서. 기회를 줘. 내가 네 곁에 남아있을 수 있게. 네게 더 잘할 수 있게. 그렇게, 네게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내가 곁에 있기를 원한다고 한 것은, 너였다. 그렇다면 그 말에 부응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족하더라도, 결국 그런 날 선택해준 건 너니까. 네 기대를 져버리지 않도록. 제롬은 쉬지 않고 말한 나머지 가빠진 숨을 고르며, 여인을 뒤에서 끌어안은 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젠 답을 들을 차례였나.
이곳이 원래 맛이 간 동네긴 하다. 에만은 동의했다. 그렇지만 어쩐지 눈앞의 여성은 긴장감 하나 없는 것 같은 모습이 조금 이질적이었다. 어쩌면 여유로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온갖 기인과 악인이 넘치는 곳에서 은둔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그렇지만 그런 은둔하는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건 마찬가지다. 에만은 장난기 있는 표정에 얕게 웃었다. 기운 없는 웃음소리였다.
"이런.. 함부로 대했다간.. 큰일 나겠는데요..?"
상담을 위해 오는 사람들은 셰바의 가장 큰 가시에 찔려 온 사람이거나 적응하지 못한 바깥사람이겠지. 그렇지만 험하고 누군가 죽어가는 곳에서, 목숨을 위협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같은 광인이거나 더 큰 광기를 숨긴 사람이겠다. 제법 당찬 포부가 들어있는 말과 자조적이고 쓴 진심에 에만은 가면 속 얼음같이 차가운 색의 눈동자를 천천히 휘었다.
"대단하네요.."
그렇지만 정상인을 찾기 힘든 건 아니랍니다. 어쩌면 이 비탄의 도시에서 제일 정상인 사람은 미쳐서 돌아오는 사람일지도 모르니. 에만은 그 말을 혀 밖으로 뱉지 않고 꾹 집어삼켰다. 비밀유지서약 때문에 말하지 못한다는 언급에 에만은 펜을 잠깐 빙글 돌렸다. 그리고 다시금 필사를 시작한다. 빠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느린 속도도 아니었기에 어느덧 반절을 채울 수 있었다.
"좋은 칭찬 감사해요.. 얼마 없는 재주거든요."
내용을 보지 않는다는 점은 괜찮은 사람이라 평할 수 있다. 어느덧 끝마무리를 지을 때, 비스듬하게 펜을 기울여 흘려 쓴다. 흘림체라도 읽는 것에 지장 하나 없을 정도로 바른 글씨였다. 에만이 가진 얼마 없는 재주 중 하나였다. 아무리 어머니의 손에서 오래 자랐으며 어머니는 본인도 가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날려 썼다지만, 글을 떼는 건 한참 이전이고 아버지 덕분이었으니 그 탓이 크겠다. 에만은 마침표를 찍고 펜 끝을 엄지로 누른다. 딸깍 소리가 나며 펜촉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종이를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고는, 서류철을 덮었다.
"...아야야야, 큰일은 무슨 큰일인가요. 애초에 함부로 대해지기 쉬운 일 하고 있고-" 가면 뒤의 옅은, 기운없는 웃음을 알아차린 아야는 에만을 바라보다 이내 사탕을 깨물었다. "그리고- 대단할 거는 하나도 없는 일입니다. 애초에 진짜로 뭘 해주는 건 아니고, 말이라도 들어주려고 노력하는게 다인데-" 방금의 말은, 약간은 자조스럽게 들렸을 지 모르겠다. 왜인지는 몰라도 -이 안을 드러다볼수 없는 가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따라 아야는 자신의 평소 생각을 조금씩 털어놓고 있었다.결국 아야 본인은 자신이 실제 이룬 거 하나 없는 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기도 잠시. 예상치 못한 감사인사에 겸연쩍어하기도 잠시, 필기를 끝낸 것을 보고는 이내 다시 몸을 일으킨다. "아야야야, 그러면 이만 나가볼까요- 수고하셨고, 시시한 농담 따먹기라거나 받아줘서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지하실 밖으로 나가서,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아야였다.
이 미친 도시에서 함부로 대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이 어디 있을까. 에만은 천천히 가면 속의 표정을 굳히며 필사를 마친다. 과연 대단할 것 하나 없을까. 그마저도 듣기 위해 바라고 비는 사람이 없잖아 있을 것이다. 에만은 서류철을 돌려주었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큰 의지가 될 테니까요.."
그리고 몸을 일으키며 나서자 그 뒤를 따라나선다. 에만은 인사치레의 감사 인사에 괜찮다는 듯 손을 가볍게 흔들고는, 지하실을 나서 카운터로 다시 돌아오며 돌려받은 카람빗을 다시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상담 받을 일이 있다면.. 연락할게요."
나서기 전 다시금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명함을 카운터 위에 올려둔다. 남색 명함에 금색으로 부엉이가 그려져있고, Owl of Minerva라 적혀있다. 뒷면엔 연락할 수 있는 이메일이 있었다. 전화번호는 없다. 문을 나서고 몇 걸음 걷기가 무섭게 구부정하던 자세를 천천히 펴며 주머니 속의 필사한 대화록을 다시금 읽는다.
— 요양 병원에는 여러 사람이 있어요. 셰바가 늙어 가는 곳이니까요. 도살자의 서커스에 관여했다는 사람도 있고.. 프릭쇼도 있었죠. 가장 인기가 많았던 상품은..(중략) 사실 알고 있어요. 위랑 저도 그곳 출신이니까..(후략)
[미래를 바꿀 팀의 일원으로 여러분을 모시게 된 걸 환영합니다. 이곳까지 오신 여러분은 아마 각지에서 이름난 과학자였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혹은, 그런 학위까진 없지만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지요.
우리 모두 인조인간이나 강화인간 같은건 한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애당초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을 여러분이기도 하죠. 전자는 오로지 살육을 위해 만들어진 결전병기이며 후자의 경우도 그런 혹독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새로 태어난 인간입니다. 이들은 주어진 목적에 알맞게 행동하며, 명령을 하달한대로 행동하죠. 물론 안정적인 경우도 많았으나 일부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했고, 다른 일부는 탈선을 일으키며 저항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 계획인 겁니다.
우리는 일찌기 보다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으며, 빠르게 사고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안정적이며, 세상 모두와 소통하고,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인공두뇌를 개발해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마음, 어떤 의미로는 감정, 생각 또한 담기로 했습니다. 계산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음과 동시에 누구에게나 호의적이며, 때로는 그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힘 또한 있다면 그 어떤 일에도 우리에게 충분한 전력이 되어줄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녀를 만들 때 인간을 이용했습니다. 가장 완벽한 샘플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최대 의료수준의 외과적 상담 및 정신감정을 끝마쳤고, 본인의 확고한 의사와 부모측의 명확한 동의 하에 진행된 것입니다. 다만... 그 근본이 인륜을 저버렸다는 죄를 피할 수 없다면 그것 또한 달게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시죠. 우리의 연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어쩌면 인류에게 있어 더할나위 없는 새로운 길을 개척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녀는 우리처럼 숨을 쉴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으며, 음식을 소화해 영양분을 얻을 수 있고, 때로는 질병에도 걸리기도 하며 후대를 남길 생식활동 등 인간으로서 작용할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은 배고픔, 목마름, 체력, 외상 등... 그 어떤 것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단지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정밀한 감각이 부여되어있지요. 본사의 정수 자체인 그녀가 보다 혹독한 환경에서도 빠르게 적응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눈 앞의 불한당들을 처단하기 위해 존재하나, 언젠간 우리 인간을 대체하며 살아갈 가능성도 전혀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이것은 그 초석에 지나지 않을 것이나, 후에는 주춧돌로서 작용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금 이 자리에 모여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함께 인류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탁해진 웅덩이를 맑게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봅시다.]
"맙소사... 이거 완전 미친놈들 한바구니에 감자튀김을 추가한 기분이군..."
"어라... 클라비스 박사님, 감튀 싫어하지 않으셨나요?"
"자네 말이 맞네. 웨일런, ...그만큼 엿같다는 거지."
"에이~ 섭하게 그러시면 안되죠~ 저희 모두 박사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 아닙니까? 다들 이정돈 이해하고 있을겁니다. 그렇기에 지금도 변함없이 박사님을 따르고 있구요."
"...알고는 있다네. 그런데 그 믿음이란게 말야... 가끔은 광신도 처럼 느껴진단 말이지.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복음을 받았다 지껄이는 덜떨어진 교주를 따르는 사교도들, 그리고 과학저서를 저들 성서인 것마냥 떠받드는 배라먹을 추종자들 말일세."
"이런... 오늘 베라 아이스크림 시켰는데요?"
"자네는 내가 농담따먹기나 하는줄 아는가, 웨일런?
...무슨 맛인가?"
"제가 그럴줄 알고 박사님건 체리맛으로 사왔죠~"
"...이게 바로 자네가 플라스크의 찌꺼기가 되지 않은 이유일세."
"하하하하~ 농담 한 번 살벌하셔라~ 그럼, 전 잠깐 이것 좀 돌리고 오겠습니다~?
...아, 미네트씨랑 샤를로트양의 몫은 어떻게 할까요?"
"으음, 그것도 냉동실에 좀 넣어주지 않겠나? 그 친구들은 오늘 좀 바쁠 예정이니 말일세."
"거 참, 박사님도 그렇지만 그 두분은 항상 열심이시네요~ 연구소에서도 다들 두분만큼은 좀처럼 마주친적이 없다 하니까 말이죠."
"그래, 참 열심이지. 의지할 곳이 없는 이들일 수록, 제 발치에 떨어진 불씨를 끄는 것조차 잊을만큼 시간을 다투는 법이야.
아마 그 몸이 전부 타들어간걸 깨닫는건,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겠지."
"...결국 우린 세상의 암세포와 다르지 않다네. 그건 저기 밑바닥 또한 마찬가지고, 비록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지라도, 넖게 보면 생태의 순리대로 움직이는 셈이지. 다만 무언가에 심취하고, 깊이 빠져들수록 각종 모순과 자기기만, 감정상실 같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폐단 속에 휘말릴 뿐이야.
이 세상은 질서나 혼돈 따위로 특정할수 없다네. 웨일런, 밝고 어두움의 개념조차 무의미한 거야. 클리포트의 나무가 사실은 세피로트의 뿌리일줄 누가 알았겠는가?"
"...벌써 갔나보군.
그게 바로 자네가 플라스크 속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일세... 저 아이와는 다르게 말이지."
무대로 향하며. 그리고 무대에 서서 짧은 토크를 푸는 동안. 여인은 페로사와 제롬이 있는 쪽을 구태여 보지 않았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시선을 조금만 돌렸으면 두 사람이 대화, 라기보다 페로사가 제롬에게 귀뜸해주는 장면을 볼 수도 있었겠지만. 여인이 자리를 비우면 그러리란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까 굳이 볼 필요가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페로사의 참견은 제롬에게 뿐만 아니라 여인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여인은 기만자이면서 잔인한 사람이었다. 제 약점은 교묘히 숨겨 놓은 채로 상대의 약점을 찾아 내어 쥐고 흔드는 건 기본이었고. 단지 후일이 궁금하다는 이유 만으로 타인의 속을 들쑤시는 짓도 서슴치 않았다. 벌이라는 이름으로 괴로운 선택을 제롬에게 쥐어 준 것도 그 일부였다.
아마 이곳이 앤빌이 아니었다면. 페로사가 없었다면 여인은 그 이상의 것을 제롬에게 들이 밀었을 터였다. 더 아프고 괴로운 선택을 강요했겠지. 조언자도 중재자도 없는 자리에서 둘의 관계는 어쩌면 파탄 났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비틀어질 뻔 한 사이에 기꺼이 끼어들어 준 페로사에게 어찌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노래를 마치고 돌아 온 자리에서 여인은 다시금 그 기분을 느꼈다.
"음. 마시고 싶은게 생각나면 말할게."
얼음이 녹아 밍밍해진 술로 목을 축인 여인이 페로사를 보며 대답했다. 새 잔을 받기 전에 얘기를 들어야 했다. 이제부터 제롬이 하는 말을. 여인에게는 그럴 의무가 있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줘. 라는 말로 시작된 제롬의 목소리에 여인은 귀를 기울였다. 여인의 뒤로 돌아와 안아오는 팔을 거부하지 않고. 가까이에서 먹먹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렇게 급하게 말하지 않아도 다 듣고 있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숨도 쉬지 않고 말한 탓에 가빠진 숨소리를 들으며 쿡, 하는 짧은 웃음이 새었다.
"정말, 기회는 한 번이면 되겠어? 그 한 번을 어기지 않으려다 망가지는 건 내가 곤란한데 말야."
짧은 웃음에 한기가 모두 가신 듯. 여인의 나긋한 목소리가 제롬에게 말을 걸어왔다. 따뜻하진 않지만 차갑지도 않은 여인의 손이 올라와 여인에게 기댄 제롬의 얼굴을 감쌌다. 돌아보면 희미하게 미소를 띈 여인의 얼굴이 제롬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말했지.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여기 있을 테니.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그게 네가 하고 싶은 거라면 그렇게 하면 돼. 그것이 네 선택이라면. 나는 기꺼이 받아 들여 줄게. 네가 나를 필요로 하면 그만큼 나를 내어 줄 거고. 기회도 줄게. 몇 번이든."
나 역시 네가 필요하니까. 그게 나를 위해서든. 너를 위해서든.
어느새 평상시와 같은 웃음을 만면에 띄운 여인이 고개를 돌려 제롬의 뺨에 가볍게 입술을 스쳤다. 정말 스친 정도로만 그래 놓고 제롬의 손을 잡아 다시 옆의 자리로 이끌어 앉혔다. 키득키득. 장난기 어린 웃음 소리가 짧게 지나갔다. 여인은 다시금 고개를 돌려 바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페로사를 향해 말했다.
"아, 아. 롯시 앞에서 이런 추태 아닌 추태를 보였으니 당분간은 또 못 오겠는 걸. 그러니까, 꼭 다시 오고 싶어질 만큼 맛있는 걸로 한 잔 부탁할게. 롯시이."
일부러 늘이는 말투나 하는 말이 참 얄미웠겠다. 이제야 완전히 돌아 온 여인만의 분위기가 반가웠을 지도 모르고.
검붉게 타오르는 비명. 하늘을 반으로 쪼개는 섬광. 세상을 기울어뜨리는 진동. 영영 무너짐 없이 자신을 가둬놓으리라 생각했던 시설동의 천장이 무너지는 그 순간. 가축들이 인간을 상대로 반기를 든 그 날. 많은 피가 흘렀던 날.
검붉은 하늘을 기억한다. 온 사방에서 자신을 둘러싸는 굉음도, 그 모든 섬광도. 시간이 희미해지는 것처럼 자신에게 운명처럼 당도한 그 순간도.
그 모든 난리통 사이에서, 판옵티콘과 함께 마지막 층계가 무너지면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열렸을 때. 그녀는 누군가를 가장 먼저 찾았다. 자신이 찾아서 데려가야 할 사람이 있었다. 아니 찾아서 데려가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광란에 빠진 채로 지하에 난 구멍에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 사이로 그녀는 미친 듯이 손을 뻗었다. 쳐내고, 밀치고, 헤치며, 악다구니를 써서 인파에 떠밀려가지 않으려 애쓰며 자신이 찾는 누군가가 제발 자신의 눈에 띄이길 바랐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애타게 찾아헤매던 아스라한 겨울색의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빛을 잃고, 초점을 잃어버린.
경기장에 놓인 숱한 패자들과 다르지 않게 되어버린.
겨울색의 눈동자를 머금은 고운 머리는 힘을 잃고 축 늘어져 있었다. 고운 눈매 위로 그 빛깔을 잃은 금발들이 처덕처덕 늘어져 있었다. 그 가녀린 목은 누군가의 손에 그러쥐어져 검붉게 물들어서는 더 이상 그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목을 잡고 있는 누군가는 싸늘한 조소가 어린 회색의 눈동자로 그녀를 주시해오고 있었다. 마음껏 울부짖어라. 바뀌는 건 없을 테니.
'이 개자─'
있는 힘껏 내질렀다고 생각했는데 개미 짖는 소리만큼도 목소리가 안 나왔다. 페로사는 자신이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장소에 자신이 놓여있다는 걸 눈치챘다. 편안한 안정감과 푹신한 감촉. 코끝에 부드럽게 와닿는 푹신한 향기. 자신의 방에 깔아둔 매트리스 커버와는 전혀 다른 순백색의 커버와, 새하얀 이불자락. 무엇보다, 품 안에 안겨 있는 자신의 것이 아닌 온기와 심박음.
페로사는 자신의 등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따로 닦거나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페로사는 지금 품 안에 기대어있는 이 소년/소녀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잠깐 어느 쪽이 현실인지 가늠하기 위해 한번 조심스레 직전까지의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지금 되짚어보면 꿈과 별로 차이가 없는 기억이긴 했다. 두려운 조마조마함을 안고 극단적인 초조함에 시달리면서 붉은 하늘 아래서 미친 듯이 자신이 원하는 그 사람을 찾아헤메는 기억이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비극적인 종말과 극적인 재회 중 어느 쪽이 진짜 현실인가를 따져보는 것이었다. 페로사는 손을 내밀어 품 안에 기대누워 있는 이의 머리를 쓸어보았다. 붉은 빛이 섞여있는 투명한 백금발을 조심스럽게. 그 아이는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비록 목둘레에 멍이 조금 들었지만.
확실히 아까의 그것은 악몽일 뿐이다. 악몽과 현실은 엄격하고도 간단하게 구분되었다. 페로사는 악몽과는 다른 현실에 도달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역시 지금 이 아이가 자신의 품 안에서 평안히 잠들어있는 지금 이 순간이 명백한 현실이었다.
페로사는 잠들어 있는 아이의 안색을 살폈다. 혹시 자기처럼 나쁜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가, 숨은 잘 쉬고 있나 하는 조바심이 들었던 것이다. 오, 그 조바심이 어찌나 소소하게 느껴지던지... 페로사는 헛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참았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너와 나라면, 어떤 하늘 아래에서라도 같이 살아갈 수 있을 거야. 하고 중얼거리면서.
그러나 문득 페로사를 엄습하는 불길한 예감이 있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닐 것이다.
아마 또 다시 그런 악몽을 꾸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또다시 그를 찾아 갈팡질팡할 때도 있을 테고, 어느 날에는 두려움에 빠지고 어느 날에는 슬픔이나 분노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다. 그날 무너지는 전당에 모두 가지런히 버려두고 왔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감정들이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 그녀를 옥죄어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지금 이 아이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페로사는 본인이 또다시 헤어날 길 없는 저주에 걸려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저주를 그 어떤 축복보다도 달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 것이 두려워서 포기하기에는, 자신의 마음이 너무 컸다. 자신의 하늘이 되어주마고 맹세한, 자신이 본 적 없는 색깔의 말간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녀는 이것에, 비탄의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미친 짓에, 뉴 베르셰바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사치에 기꺼이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그녀는 잠든 아이의 이마에 살며시 입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잠이 들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그녀가 눈을 뜨기 전까지는 딱히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서 그녀는 오늘의 일정을 한 번 다시 머릿속으로 점검해보았다. 오늘은 꼭 몇 군데 들러야 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회색 눈동자를 마냥 두려워하기엔 그녀는 이미 나이를 충분히 먹었고 다 컸으며 철도 들었다. 이제 나가서 자신이 누구인지 충분히 알려줄 수 있을 만큼.
그건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상황이었다. 신체의 어느 부위건 내 몸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육성해나갔다. 그것도 누군가의 아주 주도면밀한 계획 속에서, 내가 만일 그것을 알아차리지 않고 계속 흘러가기만 했다면 지금도 여전히 그 남자의 꼭두각시로서 살아가고 있었겠지.
『사람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가장 강해지거든. 너는 그 결과에 가장 부흥하는 성공작이지. 동시에 가장 최고의 실패작이기도 하지만.』
그 인간의 조건에 맞게 성장한 소녀병 중 생존자는 나였기에 가장 부흥하는 성공작이었다. 그 인간에게 종언을 선고하고 끝냈던 것도 나였기에 가장 최고의 실패작이었다. 나는 이름조차도 없으며 마녀라고 불리우고 종언의 종소리를 선고하는 인간의 탈을 쓴 병기. 그것은 지금에 와서도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저 사람으로서의 마음을 어디선가 부터 되찾았을 뿐.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 나는 그런 존재니까.
"전자 제품은 물리적으로 좀 때려주면 멀쩡해진다던데."
아무렴 어떠랴.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것도 자유고 살아있다면 굳이 폄하할 이유는 없다. 단지 긍정적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하늘이 사람을 돕는다는 구원적인 이야기를 논한다면 나는 신이 없다고 장담할 인간이다. 이 세상에는 구원같은 것은 없으니까.
"샛길은 험할수록 빠른 법이다."
나는 좀더 속력을 내서 이곳저곳의 샛길을 통해 카페로 향했다. 일반적인 루트에 비해 약 3-4분정도의 절약일까.
A-13 구역 카지노, 도원향은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에만은 적당히 즐길 만큼 즐기며 웃고 떠들다 가는 사람을 지나치고, 파산 직전에 몰려 불안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사람을 지나, 경호인력의 안내를 받으며 계단에 한 발 내디뎠다. 그런 에만과 달리 용왕은 알현실 안에서 캐노피 달린 침대에 모로 누워있었다. 거만하고 고압적인 고대 귀족 같은 태도를 고수하는 실루엣만 이따금씩 비칠 뿐, 얼굴과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 기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 침대 앞으로 한 남성이 연 씨에게 제압당해 강제로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용왕이 듣기 좋고 기교있는 어조의 바리톤으로 말했다.
"형제의 죄가 제법 깊어. 감히 내 영역에서 내 비호를 받는 사람을 해친 점, 타 구획의 사람까지 휘말리게 해 분쟁을 일으킨 점, 반성하지 않고 타 조직과 손잡아 나를 치려는 계획을 세운 점. 이 모든 것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손실을 봤는지 아는가?"
대답이 없었다. 허튼 단어라도 뱉었다간 혀가 잘릴지도 모를뿐더러, 연 씨가 말을 하지 못하게끔 머리를 짓밟은 탓도 있다. 용왕은 그런 남성을 바라보다 불현듯 상반신만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주변을 죽 둘러보더니 허공에 코를 세웠다. 꼭 짐승이나 늑대가 보이는 행동 같기도 했다. 다시금 몸을 뉘자 반투명한 베일 너머의 인영이 일렁였다. 그 잠시간의 침묵 뒤로 손 하나를 들어 올렸다. 자비로운 처사를 주겠다는 뜻이었다.
"다만 형제여, 감히 반역을 도모한 것은 그 자체로 죄가 깊으나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살려주도록 하지." "밖으로..?" "그래. 내 진심이야. 대신.. 마오, 이리 온."
대리석 짙은 어둠 속에서 한 여인이 무언가를 질질 끌며 걸어왔다. 검은 머리를 양 갈래로 쪽지고, 모란 장식을 한 여성의 인영이 드러나자 연 씨는 제압을 풀고 용왕의 침소 근처로 걸어가 뒷짐을 지고 섰다. 기껏 시체 처리 조직을 불렀는데 오늘 또 부르게 생겼다는 표정이었다.
"양껏 도망 쳐봐. 날 즐겁게 하면 더 좋고."
란 자매의 손에 들린 기다란 봉 끝에 매달린 철로 된 추는 날카로운 가시가 돋쳐있었다. 마오라 불린 여성이 묵직한 철퇴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린 뒤 겨우내 양손으로 봉을 잡아내는 모양새에, 남성은 천천히 뒤로 기듯 움직이다 이내 엉거주춤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문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살려줄 것이다. 저 무기를 끌고 오는 것도 무거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어떻게 쫓아오겠는가? 이대로 밖으로 나서면 바로 조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가 본 용왕의 모습을 낱낱이 고하고, 안토니에게… 문고리를 턱 붙잡은 남성이 문고리를 미친 듯이 위아래로 흔들었다. 문이 잠겼다. 용왕을 원망스럽게 쳐다보기 위해 뒤로 돌았던 남성은 어느새 란 자매가 쫓아오자 욕과 고성을 내뱉으며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보던 용왕이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된 양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다 고개를 돌렸다.
"연 형제. 근래 날 적대하는 세력이 늘었어. 왜라고 생각하나?" "……자업자득이라 생각하셔야지요. 따거의 싹수가 바가지인 걸 셰바 사람들이 모를 것 같나요?"
한쪽 공막을 검게 물들인 연 씨가 쫓고 쫓기는 모습을 구경하며 넌지시 말하기가 무섭게 딱 소리가 나며 연 씨의 고개가 좌측으로 툭 꺾였다. 미술용 지우개가 대리석 바닥에 퉁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용왕이 그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 씨는 아프지 않지만 손을 들어 오른쪽 관자놀이를 문지르더니, 이내 엄살을 피웠다.
"아야." "내가 이래서 연 형제랑 대화하기가 싫은 거야." "쓴 소리를 듣기 싫은 거겠죠." "나가." "설마 저도 란 사매와 같이 1층이나 경비하라 그 소리인지?" "무슨 소리야. 피갈이 준비나 하라는 뜻이지." "미쳤어요? 이번 상품 배팅 금액이 8천만 벅이 넘었는데 무슨 피갈이를 하신단 말입니까. 차라리 계단 경비를 시켜주시면 안 되나요?"
마침 란 자매가 소파 밑으로 기어 숨어들려는 남성을 붙잡으려 하던 참이었다. 언제 철퇴가 스쳤는지 한쪽 팔의 살점이 뜯겨나간 남성을 보며 연 씨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 소파도 청소하려면 돈 깨나 들겠다. 8천만 벅, 2천만 벅.. 상품 말고 청소는 얼마가 들더라. 우리 청소도 값이 만만찮을 거고.. 용왕은 그러든 말든 여유롭게 받아쳤다.
"자업자득이지. 형제의 싹수가 바가지인 걸 원망하게." "하아.. 절대 한 번을 안 넘어가지요." "아무렴, 하극상은 처음부터 짓밟아야 하는 법이지." "그럼 첫 숙청 때 저도 보냈어야지요." "흠.. 글쎄.. 자네는.. 아, 마침 문이 열리겠군." "말 돌리지 마시지요." "형제, 내가 왜 고양이를 기르는 지 아는가?"
용왕의 촉은 귀신 저리 가라 할 수준이었다. 밖에서 잠긴 문이 잠깐 달각거리며 열렸고, 남성이 마지막 젖 먹던 힘을 쥐어짜 뛰어가던 순간 운이 좋게도 문이 활짝 열렸다. 나쁜 점이라면 그 앞에 서있는 것이 미네르바의 부엉이었다는 점이다. 에만은 눈앞으로 달려드는 남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그대로 굳었고, 용왕은 연필을 쥔 주먹을 까딱였다. 베일 너머의 인영이 얄밉게 손을 까딱이는 광경이 훤했다.
"쥐를 잘 잡기 때문이지. 야옹!"
란 자매는 언제 굼뜬 모습을 보였냐는 양 한 손으로 철퇴를 쥐고 호랑이처럼 성큼 뛰어가더니 그대로 있는 힘껏 남성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부엉이의 바로 앞에서 남성의 목과 몸이 분리되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아니, 피벼락을 맞은 에만은 가면에 튄 피와 함께 쌍욕을 내갈겼다. "씨발, 뭐야!" 남성이 털썩 쓰러지고 란 자매는 에만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철퇴를 내려놓았다. 묵직한 쿵 소리를 뒤로 란 자매는 팔을 벌리더니, 그대로 에만을 품에 양껏 안으며 볼을 부벼댔다.
"악마 같은 부엉이 안녀엉! 오랜만이야! 초콜릿 엄-청 맛있었어! 사실 마오, 화 내려다가 초콜릿 더 먹고 풀었다? 잘했지! 브라우니도 엄-청 맛있었어! 꾸덕꾸덕하고.. 부드럽고.. 또.." "..그래, 안녕.. 답답하니까 놔주지 않을래.." "꼴이 말이 아니구나, 내 사랑스러운 조카." "조카는 무슨, 좆까는 소리 하고 있네.. 나 이거 오늘 새로 산 옷인데, 세탁비 청구하면 되는 거지..?" "저번 간식값이라 생각하지 그러니." "뒤끝 하고는!" "마오, 손님께서 불편해하지 않더니. 죽은 손님을 배웅해주고 오거라."
란 자매는 잔뜩 고양된 표정으로 에만에게서 떨어지고 죽은 남성의 머리를 한 팔에 안고, 다른 손으로는 발목을 덥석 쥐며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뒤로 작은 콧노래 소리가 울렸다. 아마 계단 밑으로 시체를 떨구고, 그다음에 머리를 발로 걷어차 구르도록 둘 것이다. 에만은 안으로 들어서며 앓는 소리를 냈다. 내가 괜히 왔지. 용왕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래서, 무슨 일로 왔니?"
손에 쥔 연필을 내려놓으며 제 조카가 있을 방향을 바라본다. 용왕이 그린 그림은 그림자 때문에 보이지 않았으나, 우리에 갇힌 동물을 그린 것은 확실했다. 미카엘이 가면을 벗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연락 넣어서 다 알고 있으면서 뭘 바라." "일상을 영위할 줄 알았지." "이미 목까지 졸린 이상 어쩔 수 없잖아. 엿이라도 한 번 먹여줘야지." "그래, 그렇다면.. 내 하나 묻자꾸나. 이 도시에서 누가 상처받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지?"
용왕이 느릿느릿 베일 너머로 몸을 드러낸다. 긴 한푸 자락과 더불어 곱게 땋아내린 머리카락이 움직일 때마다 살랑였다. 발걸음의 보폭은 규칙적이고, 발소리는 나지 않았다. 훤칠하고 영준한 모습이 우아했다. 용왕은 에만의 앞에 서 뒷짐을 졌다. 키 차이가 확실했다. 그렇지만 용왕은 에만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오로지 앞의 웅장한 문을 쳐다볼 뿐이었고, 그 사실이 에만을 불편하게 했다. 앞만 보는 사람 같았다. 아니면.. 용왕이 알현실 문을 한 손으로 짚어 밀기 전 잠시 손잡이를 매만지며 멈춰 섰다. 미카엘은 그런 용왕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상처를 가릴 수 있는 사람과 상처를 내보이고도 당당한 사람으로 나뉠 뿐이지. 가해자와 피해자도 없어, 가해자만 존재하는 도시에서 뭐가 잘났다고 피해자를 운운하겠나.. 사랑하는 조카야, 우리는 태생부터 다르단다."
용왕이 그제야 고개를 내렸다. 내리감긴 눈은 미소 짓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용왕이 문고리에 손을 떼더니 문 자체에 손을 짚고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땋아내린 긴 머리가 뱀처럼 불쑥 쏟아지고는, 그렇게 에만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눈을 가늘게 떠 시선을 마주했다.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상 선택권 따위 없지. 죽거나, 죽이거나.. 타협할 수 있는 바깥과는 다르다 그 말이란다. 우리가 무얼 선택한들 바깥의 사람처럼 나은 결정지가 있을 거라 보더니?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들 타인이 그 희생 고결하다 하지 않고 이 도시에 어울리지 않았다며 짓밟고 올라설 것이며 타인을 희생시키면 주변이 분개해 칼과 총을 들고 쫓아오는 것이 셰바인데, 붉은 핏자국을 암만 가려본다 한들 지워질 것 같더냐."
미카엘은 침묵했다. 미카엘이 윈터본의 피를 물려받았다 한들 세월의 격차는 달랐고, 한때 '흰 이리'라 불리던 늙은 노괴는 아이를 몇 문장으로 순식간에 제압하며 분위기를 압도하기 충분했다. 노괴가, 용왕이 낮게 속삭였다. 울림 좋던 바리톤의 음색이 삽시간에 짐승이 그르렁대듯 낮게 울렸다.
"그렇기에 바깥에서 아무리 우리를 짐승이라 취급한들 우리는 바깥을 천하다 생각하는 게야.. 규칙에 굴종하며 바닥을 기는 것이 행복인 줄 아는 바깥의 멍청한 것들과 우리는 피부터 다르기에. 아예 사는 세계가 다르단 말이다. 이곳에서 어지간한 바깥의 도덕은 통하지 않지. 하나 남은 양심? 남아있는 이성? 모두 무슨 소용이더니. 건드리면 이곳의 질서가 바뀌며 정부가 세워지며 악이 처단되며 면죄부가 생길 것 같아? 어림도 없는 소리.. 악이 처단되면 우린 다 죽는다. 때문에 선심 쓴다며 천한 것들이 짐승 새끼들에게 면죄부 주어봤자 그 목 물어뜯고 살점 뜯을 생각 만연할 뿐이란 말이다. 난 그깟 면죄부도 필요가 없다. 더 짓밟고 더 먹어치우고 더 올라갈 생각이지. 내 비록 언젠가 이 몸 산 채로 포 뜨이며 죽더라도, 그 이전에 죽일 만큼 죽이고, 가질 만큼 가지고, 누릴 만큼 누리며 화려한 삶을 살고 죽어야 하지 않겠니." "그래서, 내가, 이 제안을 한 걸.. 후회하는 거야?"
용왕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용왕이 문을 짚지 않은 손을 들어 손등으로 뺨을 쓸었다. 피 묻은 손이 아님에도 붉은 궤적을 남기듯 스산했다. 용왕은 더듬거리며 입을 떼는 미카엘을 내려다보며 가늘고 긴 미소를 지었다. 지레 겁먹은 표정임에도 할 말은 다 뱉는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듯.
"아가, 아무리 후회한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상 광인인 법. 그런 광인을 어설프게 다루려면 내가 아주 잠시나마.. 정상인의 감상을 느낄 시간을 주었겠지. 그랬다면 내가 네 제안을 거절하고 요 1년간 은거하며 재판만 하던 용궁의 왕이 직접 나설 일이 없었을 텐데.. 요 기특한 것. 너도 결국 셰바다. 네 결단력은 누이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잔악하기 짝이 없구나. 지금 넌 내가 날뛸 기회를 주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용왕의 미소를 마주한 미카엘의 표정이 일순 공포에 젖었다. 잘못 건드린 것 아닐까, 날뛰고 팽하겠단 뜻인가, 설마 어머니와의 맹약을 그리 깨는 것인가? 지금까지의 언사로 미루어보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마른침을 꿀꺽, 하고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린 것 같았다.
"적이 많을수록 이 오라비는, 이 외숙부는 기쁘기 한량없으며 널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는 뜻이다. 내게 즐거움과 부를, 그리고 악명을 떨칠 기회를 주는구나. 참으로 대단한 아이야.. 네 아만이라 부르지 아니하려 했거늘 그 담대한 태도가 아만과도 같다. 그래, 조만간 사람을 부르거라. 내 친히 당도할 터이니. ..오, 아가, 더 얘기하고 싶으나 이만 난 가야겠구나." "ㅇ, 어디.. 가는데..?" "연옥. 오래간만에 피갈이를 할 생각인데, 구경 올 테니? VIP석에 앉혀주마." "..잠깐 대화만 하고." "아무렴, 원껏 하다 오거라. 셰바에 온 걸 환영한단다, 미카엘."
용왕은 망설임 없이 문을 밀어 젖혔다. 그리고 옥좌에 앉아 가만히 카지노를 내려다봤다. 곧 주변의 풍경이 눈에 익으면 일어나 시체의 피로 얼룩진 계단을 내려가고, 피 묻은 발로 건물 지하까지 갈 것이다.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다. 알현실 문틈에서 미카엘은 가면을 만지작대며 그대로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용왕을 기어이 포섭하는 것에 성공했다. 다만 지지하는 것은 부엉이 하나뿐이니 남은 사람들은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미카엘은 낭자한 피를 보며 청소 업체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던 연 씨를 쳐다봤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선을 느낀 연 씨가 고개를 들었다.
"따거께서 오늘 좀 험악하셨죠. 다만 드린 정보가 민감했던 사실은 변함이 없네요. 그래서, 제겐 무슨 볼일이신가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어떤 말씀이신지.."
제법 섬뜩한 말이었지만, 그 말은 곧 이 도시에선 '오떻게든 목숨을 연명하는 방법'이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물론 이곳에 사는 모두가 누군가를 해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힘이 없기에 물건을 팔아 목숨을 부지하고, 누군가는 도굴을 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도시의 밝은 면을 연기하며 제법 평범한 일들을 이어나가곤 했다.
단지 그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악인이었다.
한껏 순화시켜 말해봤자 '죄인'을 벗어나지 못하는...
"별다를게 없답니다. 그저 살아가는 거죠. 아무리 밑바닥 인생이라도, 그것마저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그녀가 비록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채 살아간다 한들 머릿속까지 꽃밭인 것은 아니었다. 상대방을 위하는 이타적인 성격이나 누구보다 시니컬한 태도를 종종 보였고, 오히려 타인보다 더 냉정했으며 추상보단 논리를 따졌고, 신보다는 자신을 만든 과학에 더 치중했다. 게다가 이런 곳에서 성스러운 의미로 신을 찬미하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상스러운 의미로 받아들이지나 않으면 그나마 나을 정도일 것이다.
혹자는 그녀야말로 신의 대리인이자 분신이라 칭하기도 했으나, 다음날 그 소문을 퍼뜨린 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곳은 그런 도시였다. 함부로 입을 놀리는 이는 살아남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딱히 어떠한 비밀이 있어 입을 다무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 침묵을 유지함은 어디까지나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기 위해서니까,
"전 전자 제품 아니니까요~ 전자기 펄스로 정지되지도 않구요~ 너무 사람 취급 안하시고 그러면 저, 속상해할 거랍니다~?"
물론 과학적으로 말하면 사람 역시 전기신호로 반응하기 때문에 영향을 아얘 안받을 수는 없을 테지만, 무엇보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면 인간이라도 제 명에 못살겠지만... 애초에 그런 과학적 군사장비가 베르셰바에 제대로 남아있기나 할런지, 물론 전자 제품은 아닐지언정 맞으면 간혹 정신을 차리기도 하는게 곧 인간이었다. 굳이 그녀라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 않을까?
"그럼 차라리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해주시라구요~ 앗차, 속았구나. 같은 생각이라도 안하도록 말예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뒤쳐지지는 않는, 오히려 당신의 페이스에 점점 맞춰가는 그녀였다. 당신도 그렇고, 길거리의 사람들도 그렇고... 대체 이 도시 사람들은 샛길을 왜 그리 좋아하는 것일까?
그 사람은 네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던 여름에 죽었다고 한다. 벨 아스타로테은/는 그 소식을 듣고 아픈 말을 내뱉었다. 수조가 깨졌으니, 머지않아 나도 죽어버리겠구나. #shindanmaker #네가_죽었다는_연락을_받았다 https://kr.shindanmaker.com/1048183
항상 뉴 베르셰바를 휘감고 있는 끔적하고 무거운 안개와 같이, 불운은 항상 이 비탄의 도시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뒷꿈치를 붙들고 있었다. 비탄의 도시에 굴러떨어진, 혹은 비탄의 도시에 태어난... 때로는 희생당하고,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때로는 하기 싫은 일을 강요당하고, 때로는 생각지도 않았던 은원관계에 얽힌다. 끈적한 독성의 안개처럼 도사리고 있던 불운은, 어느 순간 별안간 끈적한 사냥꾼이 되어 희생양을 덮쳐오는 것이다.
남자의 숨은 이제 더 이상 남자에게 공기를 공급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거칠게 헐떡이는 매 순간 순간의 호흡은 폐로 공기를 들여보내지 못하고, 시시각각으로 기도를 졸라왔다. 숨이 더 가빠지고, 호흡이 더 절박해지고, 새로운 호흡은 숨을 더 가쁘게 만드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폐에서 올라오는 단내는 남자의 기관지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다리는 이미 달린다기보단 제멋대로 덜컥이는 것에 가까웠고, 종아리의 근육은 결을 따라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그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었지만, 그는 달려야만 했다. 아니, 정확히는 도망쳐야만 했다.
운좋은 형제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조직의 관할구역 내에 있는 바에를 종종 가곤 했다. 보통은 A-13구역 내에 있는 번듯한 바에를 갔지만, 최근에는 A-13구역과 인접한 구역의 '핸셀 스트리트'라는 곳에 있는 어느 바에를 방문하는 일이 잦았다. 바의 시설이나 내놓는 술의 수준은 A-13구역 내의 바에 비하면 약간 떨어지긴 했지만, 그 바에는 A-13구역 내에 있는 바와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메리트가 있었다. 그곳은 엄연히 A-13구역 밖에 있었고, 두말할 나위 없는 운좋은 형제들의 관할구역이었기에 술에 취해서 좋을 대로 마음껏 난동을 피워도 도원향의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운좋은 형제들은 자신들의 난폭한 성미대로 그 바를 레이지 룸처럼 사용하고, 직원들을 희롱하거나 말로 못할 모욕을 주곤 했다.
아마, 난봉꾼 허크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이 바의 바텐더에게 홀딱 반했다던가. 물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허크는 보기좋게 차였고. 바텐더가 이미 애인이 있었다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바텐더에게는 참 불운하게도, 허크는 바의 손님이나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청년 이전에, 자신의 바가 속한 구역의 보호와 수금을 담당하는 행동대장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랑은 너무도 쉽게 증오로 변질되었다. 그는 종종 터무니없는 빚이나 이자, 세금 등등을 들먹이며 바에 쳐들어가서 난동을 부리고는 했고, 이제는 그 난동에 자기 형제들까지 동원하곤 했던 것이다. 바텐더는 날마다 수척해지고 말라갔지만, 그 과정을 보는 것이야말로 허크에게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한 행복이었다. 핸셀 스트리트의 바로 놀러가는 것은 이미 운좋은 형제들 사이에서 매니악하게 유행하는 유흥거리가 되어 있었다.
안토니 역시도 가끔 난봉꾼 허크를 따라 핸셀 스트리트의 유흥에 동참하곤 했다. 주로 술이나 담배 따위로는 잊기 힘들 만큼 짜증나는 일이 있을 때였다. 이번 주는 안토니에게 있어 최악의 주였다. 자신의 팀이 맡은 거래가 불발이 나더니, 자신이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도원향의 용왕궁에 끌려갔다는 소식까지 접해야 했다. 어딘가 스트레스를 풀 곳이 필요해서, 안토니는 오늘도 핸셀 스트리트에 가자는 허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때까진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하필 그 날이, 그들이 핸셀 스트리트에 주렁주렁 달아준 불운이 그 칼날을 운좋은 형제들에게 돌리는 날이 될 줄은.
핸셀 스트리트의 바에서 화풀이의 대상이 되는 것은 집기나 직원뿐만이 아니었다. 그 곳에 있는 손님도 조롱이나 모욕의 대상으로 전락하곤 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는 핸셀 스트리트의 바에 손님들의 발길이 거의 뚝 끊겼다. 언제 운좋은 형제들이 쳐들어와서 난장판을 만들어놓을지, 심지어는 자신도 그 난장판 한복판으로 끌려들어가서 인간 목마가 되거나 머리를 술병에 얻어맞거나 땅에 뱉어놓은 침을 핥아야 하는 처지가 될지 모르는데 누가 그런 바에 발을 들이고 싶겠나.
그런데 오늘은 핸셀 스트리트에 본 적 없는 손님이 있었다. 웬 커다랗고 두두룩한 점퍼를 입고 토끼가면을 쓴 덩치큰 놈이 하나 앉아서 김렛 한 잔을 놓고 바텐더와 함께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덩치큰 놈이야 베르셰바에 흔히 있는 것이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놈들도 흔히 있었다. 그렇기에 그 놈이 덩치가 크고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별 이상할 게 없었다. 운좋은 형제들의 눈에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들어온 것은, 그 거한과 이야기하고 있는 바텐더의 얼굴에, 평소와 달리 평안하고 행복한 기색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나마도 그걸 발견한 허크가 악을 쓰며 고함을 지르자 얼굴에서 싹 가셨지만. 이쪽을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는 토끼 가면을 보고, 허크는 성큼성큼 다가가서 김렛 잔을 집어들더니 그 머리에 덜컥 부어버렸다. 그리고 그 커다란 옷깃의 멱살을 잡고 번쩍 들어올렸다.
"이제부터 이 바는 운좋은 형제들이 써야겠으니까, 넌 꺼져. 꺼지라고 해주는 게 운 좋은 줄 알아."
하고 허크는 그 거한을 입구 쪽으로 밀쳤다. 운좋은 형제들 사이로 입구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 거한을 보고 형제들은 한 마디씩 조롱의 말을 내뱉었다. 토끼 가면과 옷차림, 토끼의 특징과 그 거한을 싸잡아서 비웃는 등의 저질스러운 조롱이었다. 그 뒷모습이 우스웠던지, 허크는 그 거인의 뒤를 쫓아가서 한 마디 덧붙였다.
"말라깽이 애인이 갖고 싶거든 다우너 스트리트의 매음굴로 가보던가. 거기서 딱 네 취향의 시체 하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네가 얼마나 빨라도 불평 한 마디 안 할걸?"
운좋은 형제들이 박장대소했다. 그리고 그 거한은 문 앞에 멈춰섰다.
"너희들은."
그러나 그 거한은 문손잡이가 아니라 다른 곳에 손을 뻗었다. 문틀 위쪽의 셔터를 턱 거머쥐더니, 드르르르르륵 하고 가게 출구로 향하는 셔터를 그대로 바닥까지 내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토끼 마스크에서 조잡하게 합성된 잡음 울리는 목소리가 바지직 하고 울려나왔다.
"교육이 좀 필요하겠다." "뭐래, 등신이? 야. 방금 교육이라고 했냐?"
허크는 그 거한의 손에 어깨를 턱 얹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거한이 허크의 손을 맞잡고 들어올리더니 다른 팔로 허크의 어깨를 쥐고는 그대로 팔 전체를 허크의 몸통 안으로 와지끈 구겨넣어 버렸다. 허크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일순간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사고가 정지해버린 것만 같았다. 허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오기 전에, 다른 형제들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거한의 손아귀가 허크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우지직, 하고 무언가 나무로 된 뭔가가 과도한 무게가 실려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허크의 머리가 목 안으로 파묻혀들어갔다.
"─그래, 교육."
한쪽 팔뚝과 머리가 몸통 안으로 구겨져들어간 허크의 시체가, 채 쓰러지지도 않은 시체가 툭 밀쳐져서는 형제들 가운데로 나동그라졌다. 그 뒤를 괴한의 합성된 목소리가 뒤따랐다.
"뭘 그렇게 멍하니 섰어. 차례대로 나와. 한 놈씩 교육해줄 테니까." "야- 총 뽑아!!"
그 뒤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다섯 명이 동시에 권총을 빼어들었던 것 같은데, 그들이 권총을 빼어들고 조준선을 맞출 때에는 이미 커다란 테이블보가 허공에 나부끼며 그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타당 타당 하고 총성이 몇 발쯤 울렸을 때에는 갑자기 옆에서 커다란 테이블이 붕 날아들어서 그들을 모두 거꾸러뜨렸다. 그 뒤로는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분명치가 않다. 허공으로 마구 갈겨지는 총이며,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 후려치는 소리, 꺾이는 소리. 처음에 테이블을 맞고 멀리 나동그라진 안토니는, 사람의 멱살을 잡아들고 휘둘러서 사람을 때리고 있는 거한을 보고 그제서야 자신들이 이 바에 오랫동안 쌓아온 불운이 오늘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안토니는 땅바닥에 나동그라진 권총을 집어들고는 그 괴한을 향해 탕 하고 쐈다.
그러나 괴한은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은 것 같았다. 빗맞추지는 않았다. 분명 정확하게 조준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고통스럽게 쓰러지기는커녕 움찔대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무자비한 폭력을 멈추더니, 이 쪽으로 홱 고개를 돌렸을 뿐이다. 마치 그 거한이 사람이 아니라 뉴 베르셰바의 어둠 속에서 기어올라온 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토니는 그 순간 아무리 총질을 해봤자 전혀 소용없을 거라는 확신에 사로잡혔고, 도망쳐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는 총을 거머쥔 채로 있는 힘껏 셔터가 내려간 바의 입구로 내달렸다. 셔터를 낑낑대며 들어올리는 동안 그 토끼에게 뒷덜미를 잡힐 뻔했으나, 그 순간 토끼의 다리를 붙들고 늘어진 어떤 형제 덕분에 안토니는 셔터를 조금 올리고 그 밑으로 빠져나가서는 핸셀 스트리트의 거리로 달려나올 수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 괴물이 셔터를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안토니는 핸셀 스트리트의 골목을 주춤대는 다리로 전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 도주극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도주극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푸들푸들 떨리는 다리로 안토니는 있는 힘껏 골목을 내달리고 꺾어서는 한 구멍가게로 접어들었다. 늙은 노파가 담배 몇 점 사탕 몇 점을 늘어놓고 팔고 있는 그 구멍가게는 운좋은 형제들이 자신들의 구역 곳곳에 마련해둔 패닉룸 중에 하나였다. 턱이 숨까지 찬 안토니는 노파에게 빨리 셔터를 내리라고 윽박질렀다. 등 뒤로 소리없이 스르르르륵 내려가는 방탄 셔터를 보면서, 안토니는 그제서야 숨을 골랐다. 토할 것 같았다. 우선 연락을 해야 한다. 형제들에게 연락을 넣어야 한다. 지금 운좋은 형제들의 구역을 공격해온 저 미친 괴한은 권총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놈임에 분명했다. 안토니는 핸드폰을 집어들고, 화면의 잠금을 해제했다. 띠링 하고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장갑을 낀 손아귀가 셔터를 비집어 뚫고 들어와서는 안토니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챘다. 핸드폰은 그 장갑을 낀 손아귀 안에서 마치 얄팍한 웨이퍼 과자라도 되는 듯 가볍게 부숴졌다. 그리고는 손아귀가 슥 빠져나갔다. 셔터가 다 닫히지 못하도록 웬 워커화를 신은 발등이 밀고 들어와서는 셔터 밑단을 받치고 있었다. 이내 방금 안토니의 핸드폰을 박살내 버린 손아귀가 셔터 밑단을 턱 그러쥐더니, 와그르르륵 하고 닫히고 있던 셔터를 억지로 올려버렸다. 올라간 셔터 너머에서, 뉴 베르셰바의 그림자 어딘가에서 기어나온 토끼 괴물이 토끼눈으로 안토니를 응시하고 있었다.
안토니는 겁에 질려서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품에서 권총을 빼들어, 탕 탕 하고 그의 가슴팍에 갈겼다. 납으로 된 탄두가 옷가죽도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옷 표면에서 버섯처럼 뭉개져서는 운동에너지를 잃고 표면에서 스르륵 떨어지는 게 보였다. 방탄처리가 된 재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안토니의 머리에 하나의 가정이 스쳤다. 그는 권총의 조준선을 올려서 괴물의 머리를, 가면을, 얼굴을, 미간을 조준했다.
탕.
그러나 그것이 괴물을 맞히는 일은 없었다. 어느새 그 괴물은 손을 내뻗어서 안토니의 손에 들려있던 권총을 거머쥐고는, 말도 안 되는 악력으로 안토니의 손안에 들린 권총을 거머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에 잡아당겨져 엉뚱한 데를 겨누게 된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토끼가면의 높이 솟은 귀를 스쳐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괴물의 손안에 거머쥐어진 자신의 총이, 아까의 핸드폰이나 다름없이 그 손아귀 안에서 우지직 하고 으깨지는 것을 보았다. 안토니는 경악에 가득차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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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엎어져 숨을 고르는 진... 이 한심한 여자의 능지는 정말로 킥복싱 유망주가 맞는 것 같은데, 하는 일이 사업이라니 요상하다. 어디 투기장에서 싸움박질이라도 하면 도발을 기깔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무대를 잘못 고른 게 아닐까? 하여간, 그 킥복싱으로 쌓은 근육과 체력은 사업을 하며 전부 증발했는지 그렇게 하찮게 엎어져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다. 본인보다 조금 더 가벼울(아니면 무거울) 사람을 갑자기 번쩍 들고 돌리는 것은 엄청난 근력을 요구하니까.
진은 숨을 고르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무릎을 덜덜 떨며 시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내려다보며-땀범벅에 헉헉대고 무릎은 후들거리는 상태- 씩 웃는 것이다! 그리곤 쐐기를 박았다.
"게다가, 너, 나보다 순위 낮잖아. 어?"
꼰대짓을 위해 탈진 상태도 버텨내는 정신력... 어그로를 위해 체면도 제정신도 사랑과 우정도 저버리는 철딱서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씨바, 오늘은 누님이 말하는 대로 걍 따라와. 니가 언~제 너보다 순위 높은 조직 내부 탐사를 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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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를 쓰러뜨리면 일정 확률로 얻을 수 있는 고급 품질의 장검. 유저들 사이에서는 「0티어」로 취급된다. 【윤회의 귀걸이】를 함께 가질 경우 비밀 던전의 문을 열 수 있다. #shindanmaker #당쓰전 https://kr.shindanmaker.com/1109259
"그러니까, 이게 다 무슨 소리라고?" 운좋은 형제들의 언더보스는, 대단히 터무니없는 이야기(그것도 자신한테 아주 불리한 쪽으로)를 들은 사람 특유의 표정을 하고, 편두통이 슬그머니 올라오는 머리를 거머쥐었다. 의사 가운을 입은 초로의 늙은이는, 이 괴팍한 언더보스에게 환자들의 상태를 대체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몰려오는 아득함에 한숨을 푹 쉬었다. 언더보스는 자금만 못마땅한 일이 있어도 금세 핏대를 세우며 당장 눈앞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이에게 성질을 부리는, 갑으로 만나면 최악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말해보게." 하는 독촉이 있고서야, 의사는 모니터에 사진을 띄워올렸다.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우선... 안토니 씨 말이죠." 딱 봐도 처참한 몰골이었기에, 언더보스의 얼굴이 한가득 일그러졌다. "자잘한 찰과상이라던가 타박상이라던가 이런 것들은 제쳐놓고 심각한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우측 3번에서 5번까지의 갈빗대가 완전히 분질러졌어요. 다른 갈빗대와 복장뼈에도 금이 갔고요. 이 충격으로 내장에도 복합적인 손상과 내출혈, 울혈 등이 발생했어요. 도주 과정에서 발을 잘못 접질렸는지 오른다리의 발목에도 심한 염좌가 발생했습니다. 제일 심각한 건 오른팔인데... 오른팔 어깨, 팔꿈치, 손목 모두 관절에 악의적인 가해를 당했어요. 어깨관절은 270도가 넘게 돌아갔고, 팔꿈치 관절은 반대방향으로 억지로 꺾어버렸는데, 그러면서 팔뼈에 골절이 발생했고 연골이나 힘줄 등에 복합적인 손상이 일어난 상태입니다. 오른손 뼈는 산산이 부서졌고요. 안토니 씨는 아마 이 과정에서 일어난 쇼크로 기절한 것 같네요."
언더보스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기에, 의사는 잠깐 말을 멈췄다. 언더보스는 주머니에서 힙 플라스크 하나를 꺼내서 몇 모금 꼴깍꼴깍 들이켰다. 약간의 알코올향이 돈 다음에야 그는 다음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안토니 녀석, 살아는 있고?"
"다행인 건,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거에요. 일단 수술을 통해 거의 대부분의 부위를 안정화시켜 두었습니다. 부러진 뼈들과 빠진 관절은 모두 다시 원위치시킬 수 있었고, 인대와 연골도 최대한 원래 모양대로 수술해두었습니다. 손상된 내부 장기도 필요한 처치를 다 해두었기 때문에 한동안 안정을 취하시면 다시 원래대로 복원될 거에요. 그렇지만 일단 장기가 손상에서 회복되는 동안은 식사를 하지 못하시고 링겔로 영양을 공급받으셔야 하고... 오른탈의 경우는 현대의 일반적인 외과의학 수준으로는 후유증을 전부 다 억제할 수 없을 겁니다. 오른쪽 팔에는 십중팔구 유의미한 후유증이 남게 될 거에요. 오른손도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게 될 테고요. 내장이 충분히 회복되고 나면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시는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무언가를 때리거나 물병 이상의 무게를 가진 걸 집어들거나 하는 건 많이 힘드실 겁니다. 바이오틱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면 예전의 신체기능을 충분히 되찾을 수 있을 테지만, 아시다시피 바이오틱 임플란트는 상당한 고가의 물건인데다가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에 저희 병원에서는 바이오틱 임플란트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 녀석이 얼마나 병원 신세를 져야 하나? 다른 녀석들은?" "그러니까... 사실상 커다란 트레일러에 충돌했는데 살아남았다고 보시면 될 정도의 부상이에요. 6주에서 8주 정도는 입원치료를 받으시면서 안정을 취하셔야 할 겁니다. 다른 세 분도 안토니 씨와 비슷한 수준의 중상을 입으셨어요." "다른 세 분? ...그러면 두 명이 더 있을 텐데?" "두 분은...... 사망하셨습니다." "뭐, 사망...? 죽었다고? 상대는 맨손이었다며? 그들이 어떻게 죽었나?" "그, 조금 기괴한 모습인데 괜찮으실까요." "보여주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겠으니."
의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리모콘을 들어 슬라이드 쇼를 다음으로 넘겼다. 그 순간, 방음처리가 된 진찰실의 문을 뚫고 경악에 어린 기함하는 소리가 병원의 적막하던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갑자기 눈 앞에서 터져나온 폭음과 같은 고함소리에 의사는 리모콘을 놓치고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기함을 질러낸 부두목은 경악에 젖은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니터에 걸린 사진에 담겨있는 두 구의 시체는 비현실적인 몰골을 하고 있었다. 허크는 머리와 한쪽 팔이 몸통 안으로 구겨져들어가 있었다. 원래 같으면 목이 시작하는 부분이었어야 할 부분에 밀려들어가 쑤셔박힌 얼굴에 그 순간 희생자가 당한 충격과 고통이 표정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다른 시체는 그들 중에서 계급이 가장 높았던 카포였고, 사지와 몸통이 구깃구깃 접혀져 각진 상자 모양으로 변해 있었다. 아마 그들 중 가장 계급이 높았기에 본보기로 처형당한 모양이었다. 머리가 한쪽으로 접혀들어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허크와 엇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리라. 명백한 경고였다.
"......그러니까... 총으로 무장한 여섯 명이 맨손 미치광이 하나와 싸워서 네 명은 반병신이 되고 두 명은 저 꼴이 났다고...?" 부두목의 목소리에서 신음소리인지 말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는 맥없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의사는 떨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땅바닥에 굴러떨어진 안경을 주워쓰며 조심스레 말했다. "...이 곳은 뉴 베르셰바니까요. 아무리 어떤 준비를 하더라도, 어떤 일이건 당할 수 있는 곳이 이 도시입니다."
"아무리 어떤 준비를 하더라도 어떤 일이건 당할 수 있는 것이 이 도시니까요." 망연자실해서 엉망진창이 된 바 한가운데 멍하니 앉아있는 바텐더를 보고, 토끼 가면을 쓴 거한은 멋적은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지만, 이러면 이제 전 어떻게 살아요." 바텐더의 목소리가 맥없이 파르르 떨렸다.
"-아, 그건, 그건 제가 뭔가 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피가 튄 토끼 가면에서 울려나오는 합성음은 아까와 다르지 않게 상냥했다. 그러나 바텐더는 더이상 이 토끼가면을 쓴 괴물을 아까의 바에 찾아온 낯선 손님 대하듯이 대해줄 수가 없었다. 상자 모양으로 구깃구깃 접혀진 시체를 깔고 앉아서 주머니를 뒤적이는 토끼 가면의 거한을 바라보는 바텐더의 눈은 명백히 공포에 한가득 질린 눈이었다.
"어디 보자-" 거한은 지갑을 뒤적여서는, 명함 하나를 꺼내서 바 위에 툭 올려놓았다. "좋아요, 제가 직접 당신을 도와드릴 순 없지만 당신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도와줄 친구를 알고 있어요. 그 명함에 있는 주소로 가서 그 명함에 쓰인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으세요. 그 사람이 만나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할 거에요. 그러면 그 때 도깨비가 보내서 왔다고 하세요. 그러면 알아들을 거에요." 명함에는 어느 잡화점의 이름과 약도가 쓰여져 있었다. 벨 아스타로테. 라 베르토. "내 친구는 이런저런 훌륭한 바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그 중에서는 일손이 모자란 바들도 몇몇 있다나 봐요."
거한은 아까 허크가 자신의 머리에 무분별하게 쏟아버린 칵테일 글라스를 집어들고 아쉽다는 듯 한번 훑어보고는, 다시 바텐더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멋진 김렛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내 친구가 일손이 모자란 바를 당신에게 소개시켜줄 수 있을 거에요." 거한은 상자 모양이 된 시체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서는 엉덩이를 탁탁 털었다. "여기와는 멀리 떨어진 구역에서 활동하는 친구기도 하고, 무엇보다 잘나가는 애니까, 더이상 이 녀석들한테 시달릴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에요." 거한은 바의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멈칫하고, 거한은 마지막으로 바텐더를 한 번 돌아보았다.
"김렛 한 잔 더 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뻔뻔하게 굴기에는 상황이 많이 안 좋네요. 그 진에 대한 이야기, 나중에 다시 더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무튼 제가 소개해준 친구, 꼭 찾아가 보세요."
>>195 아 큰일났다 여기서 페로사주의 고질병이. 이렇겠거니 하고 적어버리는 나쁜 버릇이 또 도졌어... 페로사가 로테한테 받아둔 적 있던 명함을 저 바텐더에게 넘겨준 건데, 일단 명함에 이런 내용이 있겠거니 어림짐작해서 썼거든.. 로테주한테 아스타로테의 명함이 어떻게 생겼나 물어보고 썼어야 하는데 잘못했네.
>>205 (뽀다담) (꼬옥) 오타도 많고, 성급히 올리느라 퇴고도 제대로 안 되어서 지금 읽어보면 고치고 싶은 부분도 한가득인 독백인데 그렇게나 고평가해주는 게 오히려 고마워. 매력적으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설정이 매력적이니까... 아무튼 페로사가 '자기 것'이라고 규정지은 걸 침해당하면 어떻게까지 반응할 수 있는지는 잘 전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야.
그리고 답레 쓰면서 에만주 위키 보다가 놀란 건데, 난 그로스만의 사생아가 제롬과 연배가 비슷하거나 두세 살 정도 더 많은 정도인 줄 알았는데 용왕님과 동갑이었다는 게 제일 놀랐어. 그런 아저씨놈이 에만을 음흉하게 봤다는 거지...... 이번 독백에서 페로사가 사생아놈 눈 뽑으려 드는 거 전력으로 말렸어......
>>210 아, 이제 보니까 "남의 평범한 일상을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는 교육"이라는 페로사의 대사가 빠졌네 🤦 상판 수정기능 주세요.. 풀리지 않은 게 많다고 하니까 이번에 이렇게 때린 게 (맞을 짓 한 건 둘째치고) 잘한 짓인가가 고민되는데. 일단 본 세계선에서는 용왕님 구역 밖이었고/흠씬 떼려주는 선에서 그쳤으니까 용왕님도 별 리액션은 없겠네. 에만은 어떻게 반응하려나. (본 세계선에서 말야)
>>212 (빠진 대사도 옹뇸뇸 먹어버림) 내가 다 먹었지 >;3!!! 잘한 일이야.😊 덕분에 더 재밌는 몰락 방법이 생각났거든. 용왕님 구역 밖+적어도 죽이지 않았음에 그쳤으나 용왕님은 .oO(영상이나 기록으로 좀 남겨주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거 보는 걸 즐........(잡혀감)
에만은 아마 페로사에게 연락을 보내지 않았을까..?
<(로로) < 본인만의 페로사 애칭이래 <(안 다쳤지?) <(그리고) <(고마워) <((하트를 든 하얀 먼지 이모티콘)) < 이거 보내고 부끄러워서 얼굴 감싸쥐고 5분간 침대에서 발 동동 굴렀음
주사위 굴려볼래?
에만주와 함께하는 내가 니체다 시간.. 1~10에서 본인이 외친 숫자랑 다갓 숫자랑 같으면 풀어드립니다..😊
>>214 어 음 에만주가 먹었으면 됐다...! 페로사: 취향 고상하네 진짜 (얼감) 페로사가 이런 걸 영상으로 안 남기는 게 본인 패턴이 읽히는 걸 싫어해서...
>>로로<< 페로사: (침대에서 딩굴딩굴 구르면서 발 동동) 페로사: .oO(아니 좀 아 진짜.. 또 놀러가고 싶게 만드네)
<(내가 누구 건데 함부로 다치겠니) <(별말씀을) <(사진 볼래?) ((에만이 보낸 먼지 이모티콘))>
(2~3분 침묵) <(오늘도 놀러가도 돼?)
흐음. 7로 해볼게. .dice 1 10. = 8
>>218 이시국이었으면 큰일났겠군 진사쵸...... 페로사는 일단 감기에 잘 안 걸리지만, 한번 걸리면 진짜 독하게 걸리는 편. 일단 스스로 약 찾아먹고 따끈한 거 찾아먹고 이마에 물수건 짜다가 올리고 스스로의 몸은 스스로가 보살필 수 있지만, 누가 같이 있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좀 쓸쓸해할지도...?
>>231 음.. 용왕궁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선발할 때 얼굴도 볼 것 같아. 수장이 용왕님이니까 그럴 법하다. 샴페인이랑 보드카랑 리큐르 하나 싸들고 오지 않을까... ㅋㅋㅋ 일단 문 열자마자 폭풍쓰다듬부터 할 것 같지. 아 맞아, 저번 일상에서 헤어질 때에는 페로사가 패닉 콜이라던가, 자신이 피카레스크과에서 일할 때 쓰던 비상연락용 앱 같은 걸 에만한테 추천해줬을 것 같아. 그 외에도 그로스만의 사생아를 언급하면서 '그놈이 날 찾거든 네가 알아서 판단해, 토끼가면까지만 언급하면 대충 둘러대도 되지만, 도살자의 서커스를 언급하면서 날 찾으면 정보를 주는 게 좋을 거야' 같은 말을 했을 것 같네.
>>232 보스면서 자꾸 팔랑팔랑 나돌아다니니까~ 할 일은 다 하고 노는건데 나빳다 그치 ㅋㅋㅋㅋㅋ 역시 제롬주 개귀여워 (이불째로 들어서 안음)(토닥토닥) 그러면 제롬이네 놀러갈 때 빈 손으로 가서 잠옷 없져 옷 빌려줘 해야겠다 ㅎㅎㅎㅎ 아니면 제롬이 몰래 옷 꺼내다 입고 꼬리쳐야지(?)
>>233 위키에서 보면 알겠지만 마오는 용왕님이 직접 데려온 돼지 출신 조직원이니까..후후후😊 폭풍 쓰다듬에 에만이 머리 방실방실 뜨겠어~ '0'!!! 질새라 챱 끌어안고 달라붙어서 안 떨어질 것 같네.. 김에만씨 허그 좋아하는 편이니까 >:3! '0'!!!(옹냠) 에만이 핸드폰에 고이 모셔진 비상연락 어플.. 사생아는 아마 토끼가면~ 까지만 언급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 지금까지는~ 재수없게 걸렸다는 느낌이 크니까. 잘 참고하도록 할게!😘😘(볼쪽)
>>235 챱 달라붙는 건 에만주를 닮았구나(?) 페로사를 허그하는 게 편하지는 않겠지만. 한 품에 다 안기지도 않고 울퉁불퉁하고.. 따뜻한 건 확실히 따뜻하겠네. 에만이 떨어질 생각 없으면 에만을 안아들 것 같지. 어쩌면 에만이랑 페로사랑 같이 있으면 에만이 자기 발로 걸어다니는 시간보다 페로사에게 안겨서 다니는 시간이 더 많을지도(적폐) 지금까지는 운이 그로스만의 편이었구나. 에만주도 페로사주한테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줘 (쓰담담) ( )( )
>>234 포레랑 로노브가 나빴다... 우리 아스가 할 일 안 하는 것도 아니고(쓰담쓰담)(아스편) 힝힝힝 아스주 미워요 하지만 욕하는 건 좋아...(이불 속으로 끌어들임) 어느 쪽도 아스같아서 미치겠다... 전자는 평범한 옷 줄 것 같으니 후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지만요(?)
흐으으음 어쩌면 이번 일상중에 집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네요... 비밀 숨기지 않겠다고 말한게 지금 일상 도중이니까
>>238 >:0c 이 중요한 사실을 들키다니 큰일났네!(챱 달라붙음) 다 안기지는 못해도 일단 꼬옥 안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니까 된 거야 >:3!! 안아든다면 부끄러워서 또 얼굴 손으로 감싸 덮을 걸? 우우 그 적폐.. 맛있다.. 어장 와서 에만주 썰 왕창 먹은 뒤로 썰몸무게 10kg 더 늘었어 ;0;..!! 응응, 페로사주도 묻고 싶은 거나(물리적인 묻기는 에만주가 셰바사람이 아니라 불가능함) 그런 건 언제든 물어보라ㄱ
>>239 말만 그러지 뭐 하는 건 없겠지만 ㅋㅋ 하지만 달에 한번 하는 서류정리날 도망치는 건 절대 못 봐준대 히힠 (이불 속에서 꼬옥)(쪽쪽) 으으음 근데 평범한 옷이어도 아스가 평소 입는거랑은 다를테고 제롬이 옷이니까... 그건 그거대로 좋지 않을까 헐렁한 옷깃 사이로 보이는 쇄골이라던가 허벅지라던가(잡혀감)
앗 그럼 바로 갈래! 는 시전 못 하고... (튀어놓고 외박까지 하면 잔소리로 죽을지도) 그냥 그렇게 말해준 것만으로 좋아할거야.
>>253 서류정리 ㅋㅋㅋㅋㅋㅋㅋ 그건... 제롬이도 오늘은 안 된다고 할지도... (제롬: 그래도 한 조직의 장이니까..) (맞꼬옥)(꿈틀꿈틀)(아스주 품에 파고들기) 으악 으아악 미치겠다 그건 그거대로 좋긴 한데 으아아악(머리깸!) 이런 자극... 제롬이 뿐만 아니라 제롬주에게도 버틸 수 없어요... 하지만 보고싶어...(?)
외박은 불가능한 거군요(끄덕) 그래도 미리 복선을 깔아둬야지 히히
아이고 아스주... 그래도 다음에는 뜰거에요...(토닥토닥) 다음번엔 행운이 아스주에게 오길...!!!!
"알아. 변해야만 사는 것이 사람 아닌가?" "내 밑에서 제발 뭐든 할 테니 도와달라 빌면서 질질 짜던 녀석이라고 볼 수가 없네." "같잖은 애정 얻어보겠답시고 기던 당신이야말로 욕심이 지나치지."
코웃음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아무리 새하얗게 분칠해서 고귀한 도자기인 척 해도 싸구려 유리 장식이었단 점은 죽어도 안 바뀌어." "자기가 아무리 발악해도 진품이 아니라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이 개 같은 년이.." "년으로 봐줘서 고맙네. 난 당신이 년인 줄 알았지. 있느니만도 못한 것 때문에... 어머, 미안.. 자기야. 우리 사이에 할 말은 아니었네. 그렇지?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내가 너무 많은 걸 알았나?"
용왕이 천천히 손가락을 좁히다 손가락을 똑 퉁기며 살살 웃자 누군가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내 말 잘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걸. 당신은 틀렸어. 그 같잖은 허세가 언제까지 갈 지 두고보자고." 용왕은 부스스 눈을 떴다. 상반신만 일으켜 코를 위로 치켜세운다. 잠시 그렇게 있다 고개를 내린다. 머리가 아팠다. 용왕은 손으로 얼굴을 덮어가리고 한참이고 그 자세를 유지했다. 주변은 피냄새가 가득했다. 처참하게 살해된 고깃덩어리가 가득하지만 용케 잠든 것이 분명했다. 관객 하나 없는 투기장 한복판에서 홀로 숨쉬는 용이 입을 벌려 중얼거렸다.
>>281 그래주면 정말 좋아하겠지만 조직의 일이니까 끝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할 걸. 그리고 끝나자마자 달려들어서 넘어뜨리(잡혀감) ㅎㅎ 귀여워...(귀여워어어엇)(쓰담쓰담) 당연히 보여줄 수 있지. 헐렁한 상의 입고 머리도 살짝 묶어서 목덜미 드러내고서 메이드 복 입었을 때처럼 살살 간지럽게 굴어줄 거야. (쪽) 음. 아니면 도발하려나. 일부러 멀찍이서 툭툭 건들면서? ㅎㅎ
머릿속까지 근육이거나, 너무 많이 맞아서 멍청해졌거나. 다가오는 발소리에 시안은 고개를 든다. 이 지랄을 해놓은 건 용서치 못하겠지만. 그래도 지 잘못한 걸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일어날 수 있게 손이라도 내밀어 주나 싶었지만, 진의 무릎까지 덜덜 떨면서 하는 그런 말에 시안은 바닥에 머리를 쿵 소리 나게 박는다. 조금이나마 기대를 했던 내가 바보지.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고서, 냅다 진의 멱살을 두 손으로 잡고 흔드려 한다.
"씨발 연장자면 연장자답게 굴어야지. 탐사고 자시고 오늘 그 순위 낮은 놈한테 죽어 볼래요?"
>>288 기다려달라 하면 얌전히 아스 뒤에서 지켜보면서 기다렸겠죠. 엑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스.. 너무 적극적이야...!(?) 하지만 그런 아스도 좋아... 아스의 모든 면을 좋아해요.. (귀여운가?)(갸웃)(품에 부비부빗) ㅎㅎㅎㅎㅎㅎ 진짜 미치겠네... 제롬이 이성이 그렇게 튼튼하지 않아서 쉽게 끊어지는데... 그 때는 장난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그러면 바로 아스 목덜미에 입질하려고 할지도 몰라요..(맞쪽)(입술 가볍게 깨물) 도발? 아스가 그 복장을 하고 도발??? 제롬이 이성이 날아갈지도???
>>300 나도 아스도 제롬이의 모든 면을 좋아해... 그러니까 밑바닥까지 들여다볼거야 하앟 (참아야 하느니라)(크아아아)(쓰담쓰담) ㅎ... 하지만 순순히 입질하게 두지 않을테니 안심하라구(?) 적어도 울먹거릴 정도는 되어줘야 허락해줄지도 호호 호 제롬이...도발에 약하다...(메모)(???)
아스도 나름 스진이란 걸 해보고 싶은데 영 의욕이 안 나네잉 복수으 재림 같은거 막 머릿속에 있는데 손이 파업해잉
>>307 음음. 제롬이의 밑바닥은 사실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닐 거에요. 하지만 아스도 아스주도 원한다면 제롬이는 기꺼이 보여주겠죠. 무엇보다 아스도 제롬이에게 보여줬으니까요? (쓰담쓰담) ㅎㅎㅎㅎㅎㅎ 아스주 좋아아아아아~(손에 부빗)(손 냠)(오물) 이...얄미운 퐉스.. 제롬이가 애원하게 만들 생각인 거죠!! 그렇게 계속 놀리다간 제롬이가 아스 손 붙잡고 끌어당기면서 못 도망가게 품에 안고 남길지도 몰라요??(?) 도발...약하죠...ㅎㅎㅎ....성격이 참을성이 있는 편은 아니라...
나름대로 열심히 참아 봤지만, 잔뜩 부풀어 오른 불쾌감이 계속되는 자극에 결국 터지고 만 것이다. 멱살을 잡은 채 들어 올리려 하면 저보다 신장이 크기에 그러지 못하니, 앞뒤로 강하게만 흔들어 댄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황당하니 짜증만 날까. 자신은 이렇게 드잡이 짓 하는 편도 아닌데. 지금까지 해온 짓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기분만 나쁘다. 그러니 사과하라며 멱살 잡은 그대로 아래로 끌어당기며 당신의 무릎 꿇게 만들려다, 제 코에 닿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며 물러난다. 멱살을 잡던 한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그런 시안의 귀밑이 붉게 달아오른다. 크게 뜬 두 눈을 깜빡이다 자신에게 한 짓이 무엇인지 뒤늦게 알고서 시안은 주먹을 꽉 쥐고선, 당신의 아래턱을 향해 날린다.
붉어진 이유는 수치심도 있겠지만, 분노가 더 클 것이다. 시안은 입을 꾹 다문 채,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당신을 노려본다. 미친 망할 년. 잔뜩 찌푸린 눈은 그렇게 당신에게 욕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한대 더 때리려는 것인지, 시안은 그 작은 손을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당신에게 다가오다가, 사과를 듣고서 잠시 머뭇거린다. 긴 한숨을 내쉬며 제 이마를 짚는다.
페로사는 피피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툭 던졌다. "피피, 알잖아. 죽음은 절대로 낙원이 될 수 없어. 그곳은 햇살 한 점 들지 않는 곳... 누구도 가리킬 수 없는 방향에 있는 그곳을 누구도 낙원이라고 하지 않아."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언제나처럼, 붉은 구름에 뒤덮인 밤하늘이 어두컴컴했다. 햇살 한 점 들지 않는 곳. 그 어떤 곳도 감히 가리킬 수 없는 곳. 비탄의 도시. 그 한가운데서 두 사람 모두가 낙원을 입에 담고 있었으나, 그 어떤 방향도 가리킬 수 없는 도시에서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존경하는 재판장이시여. 가슴팍에서 어디를 도려야 살 일 파운드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도려낼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힘들겠다 싶으면 좀 버려놓고 다녀도 돼."
페로사는 바에 팔을 괴고 턱을 기대면서 피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만큼이나 죽음의 골짜기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본 사람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녀는 출구를 찾아 빠져나갔고, 그는 아직도 죽음의 골짜기 어귀를 배회하고 있을 뿐이다. 페로사는 피피를 억지로 끌어올리려 하지 않았다. 그저 나직이 말할 뿐이다.
"그게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면 그게 네 옆으로 다시 날아올 거니까."
악덕 대금업자 샤일록도 마침내는 그 죄를 뉘우치지 않았던가. 악역이라는 이름의 불쌍한 희생양도 몇몇 이는 후일담에서나마 구원을 찾지 않던가.
"그러니 죽지 마."
한때 그대와 같은 처지였던 이가 내뱉는 말이다.
"널 죽이려 드는 사람이 아니면, 어지간해선 죽이지도 말고."
그리고 참 셰바 사람다운 조언이다. 아니, 셰바 사람치곤 대단히 선량한 축에 드는 조언이라고 할까.
"이따금 슬프고 이따금 X같아도, 휴업일이거나 영업시간 외가 아니라면 앤빌은 너한테 열려있을 거야." "내가 말만 번지르르하고 많은 것은 못해주지만. 적어도 술 한 잔 정도는 괜찮게 따라줄 수 있어."
아직은 불완전한 박자. 아직은 부정확한 발걸음. 손끝도 발끝도 서로 맞닿지 않는 왈츠. 아직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히 꼭 들어맞지 않기에, 우아한 춤선이 그리는 호선의 공간 사이로 조금의 차이가 만든 틈이 삐걱이며 내는 희미한 잡음.
그러나, 페로사는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서로가 서로의 박자에 익숙해지면 두 사람의 손끝이 맞닿는 날이 올 거라고, 아마 별 이변이 없으면 얼마 안 가서 아주 아름다운 왈츠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아름다운 왈츠를 보고 싶다면, 공연히 끼어들어서 자세를 잡아주느니 하면서 과하게 간섭하는 것은 안 될 일이었고, 자칫 음악의 박자를 놓치게 할 수도 있는 훈수를 두는 것도 필요한 만큼 뒀다. 관객으로서 페로사는 다시 품위있게 객석에서 침묵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번이 끝이라는 법은 없다. 앞으로 몇 번쯤 또 다시 입을 열어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곧 박수갈채를 보낼 수 있게 될 거라고, 페로사는 마치 자신처럼 셰바에서 가장 미친 짓을 저지르고 있는 두 미치광이에게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그녀는 서버를 시켜 무대장치의 뒷정리를 부탁하고는, 다시 주크박스에 동전을 몇 닢 밀어넣었다.
"강렬한 걸로, 은은하게 향기로운 걸로, 달콤한 걸로?"
으악. 음악에 이상한 고집있는 카페 사장님이 자기 카페에 꿋꿋이 틀어놓을 것 같은 노래가 또 시작됐다. -이 노래가 듣기 싫다면, 단골로서 이제 노래 좀 바꿔 달라는 요청을 할 때도 됐다. 페로사는 제롬을 돌아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494 셰바에서 만난 연고 없는 어린아이라는 가정하에 대답하자면, 일단 나이프나 권총을 쥐고 사용할 수 있는 정도로 성장했다면 친절하게 대할지언정 경계의 끈은 놓지 않아. 그렇지만 그런 것마저 잘 다루지 못할 정도로 어린아이라면 정성껏 보살필지도 몰라. 알고 지내는 사람의 자식이라고 하면 평범하게 잘 대해줄 수 있을 거야.
누군가에게 원한을 가져서, 몇 년간 정신을 무너뜨려놓겠다 하는 인간들. 누구도 자취를 찾지 못할 곳에 본인의 약점을 숨겨두고 싶지만 위험하진 않길 바라는 인간들. 셰바에서 가장 공고한 감옥을 찾는 작자들. 그들은 이미 원한다면 모든 돈을 지불할 준비도 되어있었고, 그걸 위해 길을 찾는 것쯤은 별 수고도 아니었다.
"일단 즈이는 크게 2가지 옵션이 있씁니다. 첫째는 인간 조지고 싶은 사람들이 납치해오면 그걸 쥐도새도 모르게 감금하고 기록을 없애놓는, 구금 옵션. 둘째는 회생불가 병신이 된 인간을 관리해주고 보호해주는 옵션. 여기서 금액에 차이를 두는 거로 소소한 조건을 바꾸는 것입죠. 간단하지? 시안 군은 이 두가지를 봐줘야겠어."
그래야 사업 이야기가 빠르게 진척되겠지? 너에게 괜히 귀찮은 의심을 살 일도 없고. 사업파트너끼리 알아두는 건 있어야지. 그렇게 말하는 진 사장은 꽤 유능한 영업부장처럼 보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시안에게 턱주가리를 맞아서 입술이 터진 사람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
진은 내린 지 한참 되어 컵에 나이테가 진 커피를 쭉 들이키곤, 벽지를 꼼꼼히 발라 보이지 않았던 문을 열고 앞서 갔다.
자캐가_배틀로얄에_강참된다면_살해_자살_생존_중_어느_쪽 : 이건 저번에도 풀었지만.. 최대한 생존하는 쪽으로 가는데, 점점 위협을 받으면 어쩔 수 없이 살해할 거야. 종막에는..으음..🙄🙄🙄 약해빠진 것들이 잘못이라며 천사처럼 웃고 승리하겠지. 자캐가_사람을_크게_둘로_나누면_뭘까라는_질문을_받았을때_답변 : 우..우와..🙄
"─아, 오늘이야말로 죽었으면, 하고 눈을 뜨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지." "그렇지만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이구나, 하면서 눈을 뜨는 사람은 없어. 심지어 이 도시에서마저." "그건 하나의 특권이거든. 자신이 언제 죽게 될지 안다는 것은." "끝이 다가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유로워지니까."
"장비도 열세, 머릿수도 열세... 이건 누가 봐도 죽으러 가는 꼴이라고밖엔 말 못하겠지." "하지만 유감 따위는 없어." "이건, 이 도시의 수많은 악몽들 중에서 내가 선택한 악몽이니까."
페로사는 이미 엔딩을 한 번 맞이한 캐릭터라고 했었지. 이 중에서 페로사가 맞은 엔딩과 가장 가까운 엔딩을 골라보라면 A 엔딩이겠네.
하긴 그런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사무실을 찾아오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겠다 싶다. 시안은 당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서 의아하다는 눈으로 물끄러미 당신을 건너다본다. 방금 전까지 자신에게 깝치던 사람은 어디로 가버버린 건지. 어떻게 사람이 사업 이야기를 할 때는 이렇게 정상일까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정말, 평소에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쯧."
당신의 말에 시안은 살짝 눈가를 구기며 혀를 찬다. 반 정도만 정상이라며 제 생각을 고치고선, 앞서가는 당신의 뒤를 따른다. 호기심을 가지며 주변을 둘러본다. 이대로 걸어가면 바로 감옥으로 이어지는 걸까. 이야기를 들으니 그 모습이 어떻게 되어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문을 열면, 옆으로 좁다란 계단이 보인다. 애초에 건물을 지을 때 겉벽과 내벽 사이의 유격을 넓게 만들어, 보온과 방풍, 배선파이프 외에도 다른 장치를 할 수 있게끔 설계한 것처럼 보인다. 사람 한 명이 넉넉히 지나가는 시멘트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조리작업을 하고 있는 깡패들이 보인다.
삐로리삐로리삐로리- 하는 소리가 들리면, 깡패들이 튀김기에서 군만두를 건져내 가지런히 플레이팅하고 있으며, 진은 그걸 또 집어먹는다. "야, 부추 좀 적당히 넣어라." "네엡."
그 작업장을 지나,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간다.
"형님 오셨습니까." "어, 나 A-24쪽으로 가려고. 거기 애들한테 미리 전달 좀 해줘." "네."
어디에 연결되어있는지도 모르겠는 전기 설비, 천장에 늘어놓인 파이프에선 둑, 두둑, 소리가 난다. 어딘가를 쓸고, 조이고, 닦고 있는 직원들이 진을 마주칠 때마다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다.
얼마나 걸었을까. 또 몇번의 계단을 오르고 내려갔을까. 또 다시 문을 열자, 붉은 햇볕이 들이친다. 진은 뒤돌아본다. 씩 웃으면서 하는 말이 얄밉다.
"운동 됐지?"
이 무슨 개지랄이냐 말하기도 전에 휙 가버리는 진. 그 뒤를 따라가면, 진이 어느 맨션의 엘리베이터로 걸어간다. 7층과 8층을 동시에 누르면, 유독 길게 엘리베이터가 머문다. 열면,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문, 그리고 긴 복도 한가운데에서 만화를 읽고있는 깡패가 또 하나.
"빈 곳 좀 열어봐라." "옙."
정말로, 방문이 열린다. 이상한 비린내가 난다...
"자, 여기는 구금옵션 기본방인데요~ 일단 마음껏 둘러봐~"
무엇부터 볼까?
> TV를 켜본다 > 진을 때린다 > 욕실을 둘러본다 > 벽을 살펴본다 > 바닥을 살펴본다 > 수상한 배기관을 살펴본다
생활에 필요한 설비들이 들어올 것을 예상해 설계부터 이렇게 계획 해둔 것인지. 시멘트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벽면을 쓸어본다. 어느 순간부터 기름진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이내 튀김기들이 가득 놓인 곳에 도착했을까. 군만두를 집어먹는 당신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본다. 왜 그렇게 군만두를 많이 사나 싶더니. 이 와중에 가지런히 플레이팅을 하는 모습이 그냥 웃기기만 하다. 그런 구역을 지나면서 당신이 말하는 구역 번호에, 그 번호가 몇 번까지 있을지 궁금함을 느낀다. 당신의 뒤를 계속 따라 오르고 내리다 보면, 지하 미궁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라. 뒤처지지 않게 계속 다리를 움직인다.
"운동 되네요."
당신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면, 몇 층인지 모를 층에 도착했을까. 방에서 나는 비린내에 살짝 인상을 쓰며 둘러보기 시작한다.
페로사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가진_의외의_특징 "어... 의외로 아침잠에서 잘 못 깬다는 점? 침대에서 30분 정도는 누워 있어야 정신이 든단 말이지." 수면마취중_자캐가_헛소리를_한다면 "...그 헤드셋 치워..." 자캐의_핸드폰번호는 몰?루 이건 캡틴에게 셰바의 통신을 담당하는 조직에 대한 설정을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고, 이런 건 아무래도 좋을 설정이니까 굳이 캡틴을 귀찮게 하고 싶진 않으니 스루해야지. 페로사의 친구들이 페로사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해. #shindanmaker #오늘의_자캐해시 https://kr.shindanmaker.com/977489
>>739 페로사: ...(이마 맞대고 에만의 눈을 빤히 마주보다가) 페로사: 까불지 마, 요 꼬맹아. (뺨 잡고 키갈) 페로사: 됐어. 오늘 빼먹은 만큼 내일 더 운동하지, 뭐. 이렇게 됐으니 오늘 비어버린 시간은 같이 빈둥거리면서 보낼까. 페로사: 프롤로의 독무대를 보다가 잠든 것 같은데. 넌 다 봤어? (전도당하던 중이었음)
문양들이 반복적으로 그려진 벽지를 보고 있자니 눈이 아파진다. 이런 방에 계속 갇힌 채 있어야 한다면, 이 벽지 때문에 미칠지 모르겠다. 문득 패인 부분이 보여 가까이 다가가 본다. 몰래 탈출이라도 하려 파낸 건지 싶으면, 당신의 말에 물음표를 띄운다. 특별 주문으로 일부러 파 놓았다니.
"뭐 감시 카메라라도 넣어두려고 파둔 거에요?"
구멍을 파 놓은 이유가 무엇일지 예상이 안 되는 것일까. 시안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다, TV로 다가간다.
살아있는 것 만으로도 나아갈 길은 존재한다. 단지 이 도시의 사람들은 살아있으면서도 죽은것과 마찬가지인 지옥길을 스스로 걸어나갈 뿐.나는 사후세계는 믿지않는다. 그렇지만 단지 종교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카르마적인 이유로 이 도시의 죄인들은 죽어서도 죽은 뒤가 곱게 끝나지는 않으리라. 구제할 수 없는 삶은 물론 이 도시가 아니더라도 잔뜩이겠지만.
"나로서는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내 행동 원리는 긍정과 부정 그런 것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였으니까. 대부분은 비판적으로 보고있기는 하지만서도. 결과적으로는 명령을 지킬 수 있는가와 명령하는 자를 지킬 수 있는가가 최우선이다. 내 목숨보다도 그것이 우선이었다. 그것이 부정당한다면 오히려 그 부분에서 나는 절망하겠지. 그래서 임무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한다. 웃기게도 말이다.
"사람도 두들겨패면 공포심리에 억압되어 교정되는 경우가 있거든. 물론 부작용도 많고 실패한다."
폭력이라는 것은 공포도 낳지만 반대로 반발과 분노를 낳기도 한다. 그 누가 스스로에게 피해를 보는데 가만히 있기만을 하겠는가. 마음을 완전히 부숴놓을 정도로 철저하게 사람 하나를 망가뜨리는 것은 그에 수반하는 댓가도 크거니와 사람은 생각보다 망가졌음에도 고삐를 쥔 사람을 물어뜯고 죽이는 경우도 있다. 내가 그랬으니까.
"목표지점 도착. 오퍼레이션 한정 디저트 실시."
샛길를 틀어 이곳저곳 험한길을 지나다보니 금새 5분내외로 카페에 도착하는데는 성공했다. 내부로 들어가자니 테이블이 딱 한자리 남은것이 문제였지만.
잔인한 사람. 제롬은 여인의 웃음에 속으로 중얼거린다. 괴로운 선택을 내어주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게 여인의 모습은 잔인했다. 마치 소악마와 같다. 잔인한 면모를 지녔지만, 그런 면모마저 사랑스럽게 보이게 하는. 또한 그 모든 괴로움은 자신의 잘못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었을까. 그는 사랑스러운 제 연인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 반가웠다.
"...고마워 벨라. 내게 기회를 줘서."
아. 이것이 여인이 사랑스러운 까닭이었을 것이다. 잔인하면서도 자애로운 면모가 공존했으니. 제롬은 여인의 손 위에 손을 겹치고는 눈을 마주보았다. 색이 다른 두 눈을 빤히 들여다보니 여인은 이전과 같이 돌아와있었다.
사실, 둘의 관계는 여기에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여인이 실수를 범한 그에게 기회를 줄만큼 자애로운 성격이 아니었다면, 만약 여인이 그를 기다려줄 참을성이 부족했더라면, 만약... 자신의 친우가, 조언을 주지 않았더라면, 무슨 선택을 해야하는지도 모른 채, 자신은 파탄난 관계 속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헤메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 두명에게 감사했다. 자신이 조금 더 성장할 기회를 주었으니. 언젠가 성장한 자신이 여인과 발맞추어 갈 수 있기를, 그는 간절히 바랬을까.
"음, 뭘로 마실까. 방금까지 긴장해서 목이 좀 타는데."
여인이 평소처럼 돌아오자 기운 없던 그도 평소와 같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여인이 가볍게 뺨에 입술을 스치자 당황했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다가도, 키득키득 장난기 넘치는 웃음에 못 당해내겠다는 듯 너털웃음을 뱉었다.
"그럼 나는 벨라랑 같은 거. 화해 기념이라는 의미로?"
손길에 따라 그녀의 곁에 다시 앉은 제롬은 여인의 손을 향해 다시 손을 뻗는다. 지금이라면 맞잡아주지 않을까 싶어, 손깍지를 끼려는 듯 여인과 그의 손바닥을 마주대려 했다.
세상은, 적어도 이 도시는 죽음에 대해 꽤나 가벼운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이곳을 비탄의 도시라던가 마굴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불렀겠지.
하지만 우습게도 그것은 자신이 아닌 타인을 향한 경시가 대부분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죽이지 않을까 우려하며 의심되는 사람은 일단 죽이고 보았다. 이유는 없다. 그저 방해가 되기에 죽였을 뿐,
하지만 그런 이들도 알것이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자신도 죽임당할 수 있다는 것. 생명에게 총구를 겨누는 것은 알고보면 상당히 무거운 일이라는 것.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선, 무덤 두개를 파놓아야 한다는 것...
베르셰바란 자신이 살기 위해선 무엇이든 하는 곳이었다. 모두는 아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인, 절도, 유괴, 밀매를 일삼으며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기듯, 돈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 했다. 이곳에선 돈이 곧 제 명줄과도 연관되어 있으니까,
흐릿한 시선에서 그림자보다 더 어두운 것이 스쳐지나갔다. 계속해서 기울어지는 천칭,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것의 왼편이 기울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채워야 할 무언가가 오른편에 요구되는 법이었다. 그녀에겐 희미하게나마 그 형상들이 비추어졌다. 그것에 어떤 이름이 붙었건, 얼만큼의 무게가 붙었건, 그것까진 알지 못해도 그들의 절박함만큼은 확연히 느껴졌기에...
그 순간 그녀에게서 비릿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과연 이곳에서 남보다 자신이 먼저 죽길 바라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의식하지 않은 채 스스로만의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은?
"당장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건 당연해요~ 저 또한 계속 찾고 있으니 말이죠..."
나 자신을 아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지만 어째서 살아있는가를 아는건 그보다도 더 어려운 일, 혹은 일평생을 살아도 영영 깨닿지 못하는 일이라고 한다. 자아와 정체성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어찌보면 그보다도 더 상위의 단계... 아마 현재의 그녀가 별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다 하더라도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도 꾸준히 갈구하고 있는 지식의 욕구 또한, 이 세상엔 수도 없이 현재진행형으로 펼쳐진다고 하니까.
"길바닥에 채이던 힘없는 들개조차도 최후의 순간에는 상대를 물어뜯을 송곳니를 드러낸다. 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구요~ 하지만, 반드시 무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죠. 충분히 대화로 통제가 가능한 대상을 폭력으로 제압한다 한들,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있대도 결코 오래가지 못하니까요."
물론 그런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단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단지 이런 도시이기에 극단적으로 보이기만 할뿐, 그렇다곤 해도 그녀는 되도록이면 누군가의 피를 보는걸 원치 않았다. 만약 자신의 과거를 더 잘 아는 존재가 나타난다면 지금의 그녀에게 코웃음치겠지만,
어차피 지금의 자신에겐 그러한 기억이 없었다. 마치 영상을 잘라내며 가장자리에 조금 남게된, 그정도의 단편적인 조각으로 유추할 뿐...
"음~ 확실히 빨리 도착하긴 하는데... 딱히 습관처럼 달리고 싶은 구간은 아니네요~"
딱히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으나 무게중심이 곧잘 흐트러지는 체형이었기에, 더욱이 그녀는 자신만 아는 공간에 두는 경우가 있을지언정 어지간하면 제 살림살이를 전부 이고 다니는 성격이었기에 평상시에 사용할만한 경로는 아니라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특히나 저 좁은 샛길에선 짐까지 들고다닌다면 반드시 끼일테니까,
"다행히도 자리는 남았네요~ 이것만으로도 목적달성의 반은 해낸셈이죠~"
물론 남은 테이블은 한자리이긴 하지만, 애초에 서로 따로 왔다면 곤란한 상황이었을지 몰라도 지금만큼은 일행이었기에 그녀 역시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다. 당신이 옆 의자까지 끌어보이며 앉을 것을 권하자 조심스레 앉았던 그녀는 시선을 마주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수행목록은 무엇인가요? 분명 한정 디저트라고 하셨던것 같은데~"
이곳에 온건 당신의 개인적 미션에 그녀가 포함되어 어쩌다보니 공동목적이 된 것뿐, 사실상 '자신의 티타임에 어울려준다.'라는 그녀의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남은 것은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주는 것 뿐이었다.
물론 아무리 마굴인 뉴 베르셰바라 하더라도 '멀티프로세서 CPU JAVA칩 파르페'라던가 '.50 BMG 시저 샐러드'같은건 팔지 않을테니 걱정할 것은 없겠지만 말이다.
"사람이 사는 이유를 찾는 것은 인간의 세대가 밀레니엄을 넘기더라도 찾기만을 반복하겠지."
누군가는 그랬던가 살아가는 이유, 삶이라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죽기전까지 그것의 답을 찾는 여정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단순하게는 당장에 죽고싶지 않기때문에 사람은 살아가는 이유를 붙이게 되고 찾게되는게 아닐까. 그것조차도 없으면 애저녁에 다들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고도 남았을테니까.
"다만 그것을 업으로 삼는 이도 있어. 꼭 이 도시에 한정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자신의 작품이라 생각하고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는 캔버스에 검은색 물감을 덕지덕지 바르는 그런 인간이 말이지."
상대는 화가라고 했기에 거기에 적절한 비유로 나는 대답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일부기도 했다. 나는 철저히 계획적으로 누군가의 작품으로서 지금의 나로 거듭났으니까. 민족을 잃은것도 전쟁에 끌려다닌 것도 누군가의 손바닥 안이었다. 그리고,
"물론 얻으려는 것을 얻었음에도 얻은 작품한테 물려서 죽었지만."
나는 그것을 알았을 때 복수를 했다.
"오퍼레이션 한정 디저트. 주문 실시."
테이블에 있던 벨을 눌러 서빙담당이 오는 것을 기다린다음 주문하시겠냐는 말에 자동적으로 대답한다.
여인은 스스로의 잔인함을 처음부터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번 일로 인해 제롬이 여인의 잔혹한 면모를 살짝 엿보았다 해도 그걸 다른 것으로 무마하거나 희석시킬 생각 또한 없었다. 그러니 보았으면 본 대로. 아직도 눈치 채지 못 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여인은 여인의 태도를 고수할 터였다. 늘 그랬듯이.
옆에 앉아 여인의 장난에 너털웃음을 흘리는 제롬을 보며 여인은 다시금 피식거렸다. 동시에, 제롬이 다시 기회를 달라 말해서 안심하는 마음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는데 라는 마음이 속에 공존했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여인 때문에 다치게 될 지도 모르건만. 하지만 다시 받아들인 것도 여인이었다. 그것만큼은 여인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이자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잔인함이었다.
"음. 제제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화해 기념으로 같은 걸 마시고 싶다는 제롬의 말에 또다시 여인의 키득거림이 흘렀다. 그리고 조금은 고민해야 했다. 여인이야 누구 말마따나 걸어가니는 술독이라 얼마나 독하든 상관없었지만. 제롬은 아니었으니까. 제롬의 주량과 페로사가 내민 선택지를 둘 다 머릿속에 띄워 놓고 고민하는 시간도 잠시. 여인의 손에 닿는 제롬의 손을 보고 소리 없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제롬의 손을 잡아 손깍지를 끼워 주고, 페로사를 보며 말했다.
"은은하게 향 좋으면서 첫 맛은 강렬하고, 끝 맛은 달콤한 걸로. 두 잔 부탁할게."
페로사가 내민 조건을 하나만 고르지 않고 전부 넣은, 어찌 보면 난해한 주문이었으나 그만큼 페로사의 역량을 믿는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대로 주지 않아도 여인이 불평할 일은 없을테니. 무엇을 내어줄 지는 페로사가 정하면 될 것이었다. 이 자리를 마무리 할 수 있는 술이라면 무엇인 들 좋지 않을까.
//이담에 페로사가 술 내줬다는 걸로 하고 이제 마무리 하면 어떨까나. 페로사주가 미리 준비한 술이 있다면 그거까지 이어줘도 좋구.
단적으로 말해 쉽게 이룰 수 있는 것들이나 아얘 이룰 수 없는 것이라면 분명 인간은 이정도로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지금의 자신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라는 종족에게서 발전을 제외한다면 그들이 여태껏 존속할 수는 있었어도 폭발적인 증강은 하지 못한 채 자연의 먹이사슬 카테고리 중 하나로 편입이 되었겠지. 그것에서 떨어져나와 개별적인 개념과 문화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가능성을 쫒는 인간의 천성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에 사리사욕이라는 감정이 강화되었다는건 묻어둘 수 없는 사실이겠지만... 모두가 악하다 할수 없지만 선한 이는 많지 않았다. 다소 편협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전자는 육식동물, 후자는 초식동물로 곧잘 비유되곤 했을까. 재밌는 사실은 육식동물조차 서로를 잡아먹고 산다는 것이지만,
"...부정은 못하겠네요~ 아무리 좋은 면만 바라본다 한들, 세상이란건 내가 아무리 잘한대도 타인이 어깃장을 놓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쪽일까? 타인의 작품에 먹칠을 한 쪽? 아니면 타인에 의해 먹칠을 당한 쪽? 굳이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거니와 그녀가 품은 생각을 당신의 첨언이 덧대어주었다.
이 인물은 아마 먹칠 당한 그림 그 자체였을 거라고,
"주문 실시~ 네요~"
제법 분주하게 돌아가는 카페답게 벨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빙 담당 직원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주문에 대한 물음에 당신이 자동적으로 내뱉은 것은 제법 긴 이름의 음식이었다. 혹자는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라고도 하는 독일식 초콜렛 케이크, 곁들이는 음료는 이름에서부터 딸기향이 물씬 풍겨오는 요거트였을까.
"음~ 저는 뷔슈 드 노엘에 크림은 초코로, 살짝 흐르는 정도가 좋을거 같구... 마실건 마르코 폴로가 좋겠네요~"
마찬가지로 초코케이크에 가향차, 티타임으로 즐기기엔 과하게 단 조합일 수도 있겠지만 방금 전까지 과격하게 앞질러왔던 샛길을 생각하면 약간의 당분은 필요했었다.
>>920>>92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페로사주를 놀릴 단어사전이 추가되고 있어~ ~v~(얄밉) 반창고를 붙인다면 습관적으로 입에 엄지 가져다대다 반창고 씹고 화들짝 놀라서 천천히 고치려 할 거야.🤔 아무래도 일이 안 풀린다 = 불안하다 같은 강박이 있고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엄지를 잘근거렸던 거니까.
이렇게 보니 김에만 좀 재수없네.. 셰바에서 이름 난 해커가 완벽주의자인데 본인은 만족 못한다..? 이거 완전 그거 아니야? 학교 시험 때 전과목에서 하나 틀렸다며 우는 애..
>>976 당신이 그런 말 해주는 거 싫어하지 않아. (후레대사 3) 에만주가 귀여우니 에만주가 자러갈때 자러가야지. (부둥) 나 룰 몰랔ㅋㅋ 하면서 버석버석(?) 웃는 페로사가 눈앞에 선하네. 용왕님한테는 고스돕이랑 마작 배우고 페로사한테는 포커 배우고.. 아니 에만 이미 포커는 잘 하려나?
"야야 이거 봐라. 이쁘지? 잘 어울리지?" "저- 저 꼬라지 봐라. 대체 언제 나잇값을 할 거냐? 니 나이가 몇갠데 교복이야 교복이!" "에이.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잘 어울리면 됐지. 그리고 이거 상품 시착이니까 더 상관 없지요오." "시착? 아, 아. 그건가. 아니 그래도 직접 입을 필요가" "니들 것도 다 준비 했으니까 걱정마 걱정마. 이거 걸고 간만에 게임이나 한 판 하자. 벨로-" "야, 야! 잠깐! ...아씨. X됐다..."
"타는 목에... 은은하게 향 좋고... 첫맛 강렬에 끝맛 달콤." 제롬과 아스타로테의 주문사항을 되새겨보던 페로사는 미간을 빡 구기며 소리내서 웃었다. "너네 나한테 왜 이러냐." 곤란한 주문을 받았다는 듯한 리액션. 그렇지만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나왔다. 시원하게 마시는 칵테일은 아니지만, 균열을 딛고 일어선 한 쌍에게 추천해 줄 만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페로사는 우아하게 길쭉한 플루트 샴페인 글라스 두 잔을 꺼내어 패드 위에 올려두고 조그만 단지같은 걸 꺼냈다. "셰이커를 안 쓰는 걸로 만들어줄게." 투명한 시럽 같은 것에 연둣빛을 띄는 땅콩만한 알갱이들이 담겨 있었다. 그걸 바 스푼으로 하나씩 떠서, 잔 안에 하나씩 톡톡 떨어뜨렸다.
"뭐, 어떤 양반이 그러더라. 신이 버린 도시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만의 신을 찾아간다고. 나는 알코올의 신이 보낸 성직자라나? 아무튼 그게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말재주 없는 내가 너희 두 사람에게 말 대신 보내는 축사라고 생각해." 그녀는 크렘 드 카시스를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게 하여 몇 모금 안 될 양을 잔 밑바닥에 따랐다. 먼저 떨어뜨린 알갱이가 카시스의 짙은 빛에 선홍색으로 잠겼다. 다음에 따라지는 것은 하얀 스파클링 와인이었다. 개선문을 행진하는 고풍스런 기사들을 그린 병의 뚜껑을 따서는, 페로사는 잔을 기울여 샴페인이 잔 벽면을 타고 흘러들어가게끔 샴페인 글라스를 채워올렸다. 이내 잔 안이 빨간색에서부터 시작해 위로 올라올수록 분홍색으로 그라데이션되는, 기포를 머금은 액체로 가득찼다. 페로사는 제롬과 아스타로테 앞에 코스터를 하나씩 놓아주었다.
"바텐더의 추천, 시럽에 절인 백포도를 넣은 키르 로얄입니다."
입에 담아보면 풍성한 과일향과 산미를 머금은 탄산이 강렬히 퍼진다. 그 뒤를 진짜 와인을 방불케 하는 탄닌과, 과일향 가운데서 두각을 드러내는 포도향이 뚜렷한 알코올과 함께 따라오더니, 마지막으로 혀 끝에는 리큐르 안에 녹아든 시럽이 품고 있던 녹진한 과일향이 스며든 단맛이 입안을 부드럽게 휘감으며 입 안에 남은 잔향들과 어우러진다.
"앤빌에서 보내는 시간이 항상 즐거울 수는 없지만 말야, 적어도 나는 여기에 들어온 사람들이 나갈 때는 즐거웠으면 좋겠어."
"너희들이 결국에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듯이 말야."
# 이것이 이번 일상에서 페로사가 주는 마지막 레스(혹은 마지막 이전 레스)일 거라 생각해. 좋을 대로 마무리해줘. 이대로 마무리해도 OK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