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명진 쪽으로 머리를 더 내민다. 물론 양쪽 인원수가 비슷하다보니 채소 세척 조 쪽이 특별히 많이 뒤쳐지는 것은 아니었다. 비각성자들만 있었다면 한 10분에서 15분 가량은 더 작업해야 할 분량이겠지만. 각성자가 껴서 의념을 사용하며 작업한다면 정말로 금방 마무리될지도 모른다.
"오 지금 이거 해보자는 건가??"
장난기 섞인 승부심으로 빛나는 두 눈이 명진에 이어 지한 쪽도 향한다.
"그러면 질 수 없지!!"
그렇게 갑자기 이상한 데서 승부욕을 불태우며 강산은 다시 채소를 씻으러 간다. 그리고 의념을 더 끌어올려 신속과 건강을 강화한 모양인지. 좀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던 굉장한 기세로 채소를 씻어나간다.
문화센터 직원들의 놀란 시선을 뒤로 하고, 그렇게 채소 손질이 마무리된다. 이후 김치와 겉절이 양념을 준비하는 동안...강산은 잠시 한 쪽 구석에 주저앉아 있었다.
"...벌써부터 진을 너무 뺐나."
//19. 의도한 것과 상황을 약간 다르게 이해하신 듯 해서 어떻게 이어야 자연스러우려나 고민한 건 비미ㄹ... 근데 너무 루즈해지는 것보단 이렇게 적당적당히 스킵하는 것도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열심히 한 탓일지도요." "잎 벗겨내고 잔뿌리손질하는 게 은근히 단순노동스러우면서도..." 다르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는 것은 굉장한 기세로 채소를 씻는 것을 보고는 눈을 깜박깜박거리는 것이 원인일 겁니다. 아마... 좀 놀란 느낌? 저렇게 막 할 거라고 생각 못한 걸까요?
"그렇게 진을 빼시니 당연한 게 아닐까요?" 주저앉아있는 강산에게 다가가서는 빤히 내려다보는 지한입니다. 양념류를 준비하는 동안 돌아가면서 양념의 재료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조심조심 대야에 붓는 등의 일을 했으려나요.
살면서 무모한 짓을 한 횟수가 몇 번이나 되었던지 되새겨도 몇 회 되지 않았다. 그 몇 번의 기간이 타인의 수십배였을 뿐. 그때와 비교한다면 이정도 무모함은 아무렇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젊을 적에 치기와 열정에 비한다면 지금의 육체는 그런 마음을 떠올리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무모함을 알면서도 분노로 움직이고 있었다. 늙은 몸에 분노에 의한 힘을 불어넣고 억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강원 태백. 다윈주의자들의 본진이라 보기는 어려운 구역이었지만 분명 수많은 다윈주의자가 지키고 있을 곳으로 그는 몸을 끌었다. 그 아이는 분명 선한 아이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더라도, 자신의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팔을 내어주진 않을테니. 그 아이가 뒤틀린 것에는 분명 자신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많은 색을 가진 빛들이 빠르게 점등되며 아름다운 흐름들을 엮어갔다. 마도의 빛. 누군가는 평생동안 보지 못할 그 빛을 당연하다는 듯 보면서 그는 웃었다.
" 환영인사가 과하구나. "
툭. 그가 지팡이로 바닥을 짚었다.
" 내가 두렵기라도 한 모양이지? "
수많은 빛들이 회색에 뒤덮혀 세계의 틈으로 흘러들었다. 그 틈새에서 작은 시곗추 소리가 흘려나왔다. 틱, 톡, 틱, 톡, 반복되는 소리가 지날수록 만들어졌던 마도의 색이 탁하게 흐려지더니 결국 무색의 의념이 되어 흩어졌다.
" 아니면 나를 어지간히도 무시했던지. "
마왕의 제자에게 마도로 승부를 건다. 몰랐다면 무모했고, 알았다면 오만한 짓이었다. 모든 마도의 주인이라는 서유하에게 직접 가르침받은 그에게 이런 마도들을 풀어내는 것은 어린아이 손에서 사탕 뺏는 것만큼 어렵지 않았으니.
" 대체. 당신이 왜 나선 거지? 마탑주. " " 오호. 드디어 대화할 맘이 든 모양이지? "
태백시를 지키고 있던, 다윈주의자의 간부. 만나고자 하는 상대를 만났기 때문인지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물론 그렇다 한들 간부에겐 꺼림칙할 뿐이었다.
" 거창한 이유는 없다네. 나를 말리지 않는다면 난 조용히 지나갈 생각일세. " " 적진 한복판에서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겁이라도 먹을 거라고 생각하나? " " 그럼 나와 싸우기라도 할 생각인가? "
회색 마탑의 지배자, 시계추의 주인. 그게 그에게 붙은 이명이었다.
" 아무리 네놈들이 설친다 해도 주 전력이 영월, 그리고 동해로 향했을 것은 분명한데 그런 협박이 우리에게 통할줄 알았나 보군. " " 어울리지 않게 정보에 밝군. "
수염을 매만지며 끌끌 웃는 그를 바라보며, 간부는 천천히 무길 꺼내들었다.
" 적어도 당신이 혼자라는 증거는 되겠지. 안 그래? "
곧 흐릿했던 공간들이 흩어지며 수 명의 의념 각성자들이 걸어나왔다. 하나하나가 하이 네임, 개중 몇몇은 더 성장했다면 준영웅의 벽에 걸칠지도 모를 힘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밉보인건가. 하고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그렇다 해서 두렵진 않았지만 말이다.
" 우습군. "
그는 천천히 자신의 의념을 움직였다. 충분한 준비만 주어진다면 한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을 강맹한 힘이 전신에 힘을 불어넣었다. 살짝 굽히던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 그의 등 뒤에는 거대한 헤일로가 피어올랐다. 그 헤일로는 천천히, 거대한 시계의 형태로 변해들었다. 몇몇 다윈주의자가 움찔하며 몸을 기울이려 했다.
" 가만히 있거라. "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 찢겨 죽고싶지 않다면. "
전장을 짓누르는 울림에 마른 입을 침으로 젹시면서 간부는 눈 앞의 상대를 바라봤다.
" 애초에. 마탑은 세계의 일에서 중립을 취하는 것이 원칙이 아닌가? 왜 우리들을 방해하는 거지? " " 드디어 얘길 할 맘이 든 모양이로구만. "
그는 지팡이를 고정시키곤 그 곳에 몸을 기댔다.
" 마탑의 규칙에는 예외가 있다네. 가족의 문제, 자식의 문제, 위기의 문제, 은혜의 문제. 아주 먼 과거. 마왕께서 만드신 네 개의 문제이지. "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단 목소리였다.
" 가족의 문제라네. 내 가족이 그대들과 연관이 있거든. " " 어느 간 큰 녀석이 당신 가족을 건들었는진 모르겠지만...... " " 그 반대라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