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사진이 아니라 단시간에 찍을 수 있는 별 사진을 찍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아마 오래 기다리고 그러진 않을거야! 물론 마음에 드는 샷 한 장을 위해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거야 혜성이에게 있어서는 일상이지만 말이야! 옆에 앉아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지. 아. 이건 뭔가 겨울에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앗. 나도 고마운걸! 응! 서로 무통잠 없이 재밌게 놀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생각해! 아무튼 그렇구나. 때로는 빨리빨리 돌아갈 수도 있고 늦게 돌아갈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생각해. 일댈의 장점이 그거잖아? 서로 여유롭게 돌릴 수 있다는 거 말이야! 그리고 좀 더 캐릭터 대 캐릭터로서 깊게 이야기도 가능하고. 단체스레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좀 깊게 캐릭터 대 캐릭터로 이야기를 나누고 돌릴 수 있는 것은 일댈이 좀 더 편한 것 같아. 단체스레에선 편파 위험도 있으니 말이야. 아무튼 내가 아람주에게 있어서 좋은 파트너였으면 하고 바라게 되긴 하네. 나도 무통잠을 많이 당하기도 하고 그래서! 앞으로도 이렇게 편하게 놀면 좋을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슬슬 11시네. 아람주는 슬슬 자러 가야하지?
이번 자 체육 합동 수업의 주제는 배구 리시브였다. 2인 1조로 나뉘어서 한 사람이 공을 던지면 다른 사람이 리시브를 해서 그 공을 띄우는 방식으로 서로서로 연습을 하라고 체육 교사는 지시했다. 나중에 수행평가 시험이 있으니 절대 대충 하지 말고 제대로 하라고 엄포를 놓은 체육 교사는 이내 두 반을 한 줄로 세웠다. 남녀 구분 없이 무작위로 두 줄이 완성되었고 체육 교사는 옆 반과 친해질 겸, 옆에 있는 이들끼리 2인 1조로 조를 맺으라고 이야기했고 혜성은 자신의 옆에 누가 있는지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낯익은 이의 모습이었다.
"...왜 너야."
이전에 자신에게 찾아와서 사진을 찍는 법을 알려달라고 한 그녀의 모습에 혜성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작위로 줄을 섰으니 당연히 자신의 파트너도 사실상 랜덤으로 뽑힐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녀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참 이런 우연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일단 수행평가 연습을 해야하는만큼 교사에게 가서 배구공을 받아왔다.
꽤 단단한 느낌의 배구공을 가볍게 땅에 쳐보니 그 반동으로 다시 위로 솟아 그의 손바닥 속으로 돌아왔다. 농구공도 아닌데 생각보다 단단하다고 생각을 한 혜성은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람에게 주의를 주듯 이야기했다.
"야. 문아람. 이거 공 생각보다 은근히 단단해. 연습할 때 조금 조심하면서 하는게 좋을 것 같아. 장난으로 얼굴에 던진다거나 그런 거 하기 없기. 오케이?"
물론 그녀가 그렇게 한다는 법은 없지만 이렇게 2인 1조로 연습을 하면 꼭 그렇게 장난을 치는 이가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며 혜성은 일단 그 부분은 없게 하자는 듯이 선을 그었다. 뒤이어 괜히 공을 다시 바닥에 퉁겼다가 손으로 잡은 후에 그는 그녀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일단 비어있는 저기에 가서 하자. 누가 먼저 던질래? 난 어느쪽이라도 상관없어."
번갈아가면서 연습을 하는만큼 사실상 순서에는 별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르나 그래도 먼저 던지고 싶다면 던져도 좋다고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아람의 대답을 기다렸다.
/으아! 아침이네! 오늘 일요일 하루 잘 보내길 바랄게! 선레는 남겨놓을테니 편할 때 얼마든지 편하게 이어줘!
오후 체육 시간임에도 날씨는 쌀쌀했다. 아람은 체육복을 두껍게 껴입었는데도 몸이 추워 얼른 날이 풀렸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하긴 이제 곧 3월에 들어서니까 조만간 날씨는 더 풀리리라.
아람은 친구들과 우르르 운동장을 나와 재잘거리며 떠들다가 체육선생님의 말에 줄을 섰다. 앞뒤로 친구들을 세우며 친구들하고 놀 생각에 가득했는데 선생님이 옆에 있는 다른 반 아이와 짝을 하라고 했다. 아람은 옆반에도 친구가 많았기에 누구일까 고개를 돌렸더니, 최혜성이었다!
그가 나직하게 왜 너냐는 말을 하는 것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다가 아람이 방긋 웃었다.
"와! 최썽~ 오랜만이다!"
한 2주 정도 못 봤으니 오랜만이 맞다. 그리고 아람은 혼자 고민했던 별명을 자신있게 불렀다. 최혜성이라고 부르기엔 넘 딱딱하고 혜성아, 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낯간지러우니까. 보통 아람은 친한 남자애들은 별명으로 불렀다. 최혜성이 친한 남자애인가 하면 자기 마음 속에는 친한 남자애다. 응. 사진을 잘찍는 존잘님이니까!
혜성은 배구공을 통통 튀겼다. 아람이 배구공이 움직이는 것을 눈으로 쫓다가 혜성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케이~ 그런 장난은 안치는데. 음, 보통 배구공으로 피구 하니까 상관은 없지만. 아, 피구하듯이 던진다는 뜻은 아니구~"
아람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가 마지막에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혜성이 저 쪽으로 가자고 하기에 따라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럼 내가 먼저 던질래. 아, 너 나 맞팔해줬더라! 고마워! 내가 올린 사진 봤어? 연습하면서 찍은 건데!"
물론 아람이 거의 매일 사진을 찍어 올리긴 하지만 보통 사진 아래에 글을 기이이일게 적는 편이라 팔로워들은 보통 사진보다는 글을 더 읽는 편이었다. 글을 읽어야 사진이 이해가 되는 수준이라나. 팔로워 중 일정 사람들은 실친들이라 댓글에는 친구들이 많이 달아주는 편이었다. 서로 댓글로 소통도 하고 말이다.
/최썽~~ 왠지 혜성이는 싫어할 것 같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람이의 폭탄던지기! 그리고 아람이의 사진은 연습을 해도 처참할 것 같은 기분이야....! 미술 재능과 손재주 재능을 모두 타 재능에 몰빵했다! 라는 느낌 오늘 영화 보러 간다면서! 영화는 뭐보는거야? 궁금하다! 답레는 편하게 달아줘~~!~ ...최썽이라고 불렀다고 팔로우 끊지는 않겠지...? 힝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는 고개를 강하게 도리도리 저었다. 하지만 특별히 그 이상 무슨 말이 나오진 않았다. 직전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부를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 그녀에 대해서 화가 났다거나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별명을 허용해주는지는 또 별개의 문제였지만.
뒤이어 혜성은 아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좀 적은 빈 공간으로 이동했다. 리시브 연습이니 공간은 넓으면 넓을수록 좋았다. 사실상 운동장도 좁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2인 1조로 움직인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고, 헤성 역시 다른 이들이 적은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우선 그녀가 먼저 던지겠다고 말을 한만큼, 혜성은 아람에게 배구공을 가볍게 던져주었다. 충분히 잡을 수 있을만큼의 힘으로 던졌기에 운동신경이 정말로 없는게 아니라면 잡기에는 충분한 느낌이었다.
"안하면 해달라고 귀찮게 굴 거잖아. 단지 그 뿐이야. ....뭐, 일단 팔로해줬다는데 무시하기도 좀 애매하고 말이야. 진짜 그 뿐이야. 사진? 아. 보긴 했어. ...그래도 처음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리고 사진이 메인이라기보다는 글이 메인 같던데. ...한번씩 보기는 해. 딱히 뭘 달진 않았지만."
팔로가 되어있으니 자연히 그녀가 올린 글은 그 역시 볼 수 있었다. 허나 인스타에 그렇게 자주 들어가는 편이 아닌만큼 아주 가끔 볼 정도였고 그녀의 사진 역시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 상처를 받을까 싶어 직설적으로 말을 하는 것은 피하며 그는 대충 그렇게 넘어가는 어조로 대답했다. 스스로가 만족하면 그것이 최고 좋은 것 아니겠는가. 단순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자세를 잡았다.
"이쪽은 준비됐어. 얼마든지 던져. 어디로 날리더라도 잡을 자신은 있는데 홈런급으로 날리지만 마. 다른 애들 다치니까. ...뭐 그 정도는 알아서 조절할 거라고 믿겠어."
얼마든지 던지라는 그 말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그만큼 그에게는 저 공을 제대로 리시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분했다.
/돌아오면서 갱신할게!! 라미나라 공주님. ㅋㅋㅋㅋㅋㅋ 이런 TMI는 정말 귀여워서 좋아! 아무튼 영화는 그럭저럭 보고 온 것 같아. 그리고 아람이가 사진을 못 찍어도 다른 재능이 넘친다면 그걸로 좋은 거 아니겠어?
"좋은 사진이라고 하기는 애매하지. 내가 볼 땐 일단 초점 맞추기나 거리 조절부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안되면 뭘 해도 안되니까. 일단 아무 것도 건드리지 말고 보이는 그대로 찍는 것부터 하는게 어때? ...뭐, 다음에 내키면 봐줄게. 일단은 가르쳐준 적도 있으니 어중간하게 끝나면 찝찝하니까. 그 뿐이야."
정말로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듯, 짝 잘라내면서 이야기를 하는 그의 속내는 밖으로 잘 비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허나 적어도 사진에 대해서는 귀찮다라는 말은 그녀에게 한 적이 없으니 적어도 부정적인 것은 아닌 것일까. 아무튼 그 이상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며 그는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녀가 날리는 공을 기다렸다.
"잘 던지네? 너 운동신경 좀 되나봐?"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혜성은 빠르게 발을 움직여 배구공이 낙하할만한 장소로 향했다. 그 상태에서 두 손과 팔을 모아 배구공을 리비스해서 다시 완벽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그녀 쪽으로 전달했다. 그렇게 세게 힘을 주진 않았기에 발을 조금만 움직여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속도와 거리를 유지하며 그는 그녀의 자세를 바라봤다.
"...뭐, 너와 연습하는 거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못하는 애들과 하면 흐름이 끊기니까.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쭉 릴레이가 되는게 좋잖아."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그녀와 하는 것은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녀의 움직임을 주시하려고 했다. 그녀가 리시브를 제대로 해내면 그 역시 리시브를 하면서 그녀에게 공을 주고받으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힘은 어느정도 조절하면서. 아무래도 자신 쪽이 힘이 조금 더 강할지도 모르기에 잘못하면 공이 먼 곳으로 날아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반대로 그녀 쪽에서 공을 멀리 날릴지도 모르지만 그건 일단 두고봐야 할 일이었다.
/답레야 천천히 해줘도 괜찮아! 나야 지금부터 집이니까 쭉 자유거든! 새벽 1시경에는 자러가야하지만 말이야. 내일 출근 시르다. 아무튼 아람주도 무리하지 말기!! 보건실..역시 다른 쪽에서 날아오는 공에 맞춰서 넘어지는 쪽이 괜찮지 않을까 싶네!
"혹시 모르는 거잖아. 그리고 어차피 이번 수업에서는 이것만 해야하는 모양이니까. 괜히 딴 짓거리 해서 태도 점수 깎이긴 싫어."
그녀의 말대로 지금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생각을 하지만, 괜히 태도 점수가 깎여서 점수가 깎이는 것은 피하고 싶었기에 혜성은 계속해서 날아오는 공에 집중하며 리시브를 이어나갔다. 조금씩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같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나름대로 여유롭게 받으며 속도를 어느 정도 조절했다. 그건 어쩌면 그너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혜성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는 와중에 들려오는 목소리. 그것은 공! 이라고 다급하게 소리치는 모습이었다. 순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 뭐야? 하는 표정을 짓는 그였으나 이내 벌어진 사태에 그는 순간 당황해서 아람에게 달려갔다. 바닥에 쓰러지는 것은 일순이었고 만화의 상황이 아니었던만큼 그가 미리 달려가서 잡아주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사태는 벌어진 후였기에.
"야! 문아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녀의 바로 곁으로 달려간 후, 그는 공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평범하게 리시브를 했다면 공이 사람을 맞춰서 넘어뜨릴 정도의 파워가 나올리가 없었다. 스파이크, 혹은 발로 찼거나 등의 다른 행동이 있었기에 벌어진 사태가 아닐까 추측하며 혜성은 괜히 공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면서 외쳤다.
무릎 부분은 괜찮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머리가 어지럽다는 그 말에는 혜성도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진짜 세게 맞은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그는 괜히 긴장어린 표정으로 주변을 가만히 살폈다. 그 와중에 부축해서 보건실로 데려갈 사람 있냐는 그 말에 그는 가만히 눈동자를 굴리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손을 들었다.
"제가 파트너니까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선생님."
이내 허락이 떨어지자 그는 다시 한 번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휘청이는 아람을 바라봤다. 저대로 두면 잘못하면 넘어질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혜성은 성큼성큼 걸어간 후에 그녀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게 하려고 했고, 자신은 팔을 그녀를 받쳐주는 느낌으로 몸에 두르려고 했다. 그녀가 저항하지 않았다면 완벽하게 부축하는 느낌의 자세가 잡혔을 것이다.
"야. 문아람. 머리 괜찮아? 완전 세게 맞은 것 같은데. 일단 손부터 씻자. 조금 따가울지도 모르지만 참아."
이어 그녀를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그는 수돗가까지 갔고 조심스럽게 수도꼭지를 열어 차가운 물이 나오게 했다. 이어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려고 하며, 혹은 잡히지 않으려고 하면 그녀가 스스로 손을 씻게 하려고 하면서 그는 그녀를 걱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필 이런 일이 터질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괜히 머리를 긁으면서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힘들면 얘기해. 내가 보건 선생님에게 말해서 수업 쉴 수 있게 해줄테니까. 일단 머리에서 피는 안 나니까 조금 쉬면 괜찮아질거야. ...그리고 미안하다고는...해둘게. ...뭔가...그러니까... 아니. 뭐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말이지. 의미 대충 알아듣지? 적당히 알아들어.'
괜히 마지막엔 툴툴거리면서 그는 그녀가 손을 씻는 것을 기다렸다. 물론 따가워할지도 모르기에 그는 그녀에게서 조금도 시선을 치우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 아니. 이렇게 구실을 만드는거야?! 어쩔 수 없지! 혜성이가 아람이를 잘 부축해서 데리고 가는 수밖에!!
"의미가 이해되었으면 됐어. ...그래도 정신이 든다고 하니... 그... 다행이네. 나, 나랑 연습하는데 뭔가 크게 다치고 그랬으면 그... 꿈자리가 안 좋잖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이야기를 하나 그 와중에도 결국 어떻게든 변명을 만들면서 그는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꿈자리가 안 좋아서 걱정하는 것 뿐이라는 듯이 일부러 꿈자리에 강조를 하며 이야기를 하며 그는 그녀의 손바닥을 확인했다. 왼손이 까진 것으로 보아 그냥 두기에는 힘들다고 생각을 하며 그는 곧 들려오는 그녀의 제안에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도끼눈을 뜨고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될리가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남은 시간 땡땡이는 아니잖아. 무엇보다 손이 까졌으니 기본적인 소독은 해야 해."
자신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혜성은 강한 목소리를 내면서 일부러 고개를 강하게 휘저었다. 물론 그렇게 크게 다친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소독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는 그녀를 다시 부축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보건실로 향하려는 듯 앞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땡땡이는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말이야. 네가 땡땡이를 친다고 해도 나는 못 해. 나는 보건실에 널 데려간 후에 바로 돌아가야하니까. ...뭐, 내 파트너인 네 손이 지금 그래서야 나는 리시브 연습은 못하고 적당히 어딘가에 앉아서 시간을 떼우거나 그래야겠지만 말이야. 하아. ...아. 너에게 한숨 쉬는 거 아니야."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봐 그 부분은 확실하게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듯 하다 고개를 옆쪽으로 돌리면서 이야기했다.
"그, 뭐냐. 다정하게 말해두는 사람이면 너도 듣기는 좋을텐데. ...이, 이런 애니까 알아서 받아들여. 싫으면 지금이라도 딴 애에게 부축해달라고 하던지."
스스로도 조금은 가슴이 찔리기는 한 것일까. 허나 그럼에도 자신은 지금 이 모습을 바꿀 수는 없다는 듯, 괜히 고개를 옆으로 홱 돌리면서 그는 다시 발걸음을 앞으로 향하려고 했다.
/아주 매혹적인 유혹이긴 하나 혜성이는 혜성이대로 땡땡이는 칠 수 없다는 자세를 지니고 있으니. 윽! 아무튼 그게 뭔지 잘 알아! 나도 본 적 있으니 말이야!!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오히려 귀엽기만 하다!
슬슬 자려고 나도 준비중이었어!! 그러다가 답레가 보여서 잠깐 온 것 뿐인걸! ㅋㅋㅋㅋㅋ 혜성이를 타락시켜서 뭐하려는거야! 하지만 아람이에게 타락되는 거라면 혜성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지네. 아무튼 답레는 내일 퇴근하고 천천히 써올게! 하루 잘 보냈길 바라고 잘 자! 아람주!
부축은 안해줘도 된다는 그 말에 혜성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 부축자세를 풀어줬다. 일단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자신이 더 하겠다고 말해봐야 그건 억지일 뿐이었으니까. 허나 이어지는 말에는 괜히 뚱한 표정을 짓다 '최썽'이라는 말이 나오자 자연히 혜성은 도끼눈을 뜨고 말 없이 뚱한 표정을 이어가며 아람을 바라보았다. 이내 나오는 말은 뚱한 느낌의 목소리였다.
"다 그렇다고 치는데 왜 또 최썽이야. 대체 얼마나 내 이름을 간추려서 부르고 싶은거야? 너. 무람이라고 부른다. 너. 그리고 너야말로 다정한 사람을 잘 못 본 거 아니야? 다정하긴 누가 다정해."
물론 실제로 그렇게 부를 생각은 없었지만 괜히 반격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자신의 얼굴을 보려는 그녀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비슷하게 몸을 틀어가며 그녀의 시선을 계속해서 회피했다. 그 와중 80% 확률을 거론하자 자연히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혜성은 아람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네가 그렇게 어떻게 알아? 너 보건실 자주 와?"
아닌가? 그냥 대충 찍었나?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보건실에 들어오자 정말로 텅 비어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는 작게 혀를 찼다. 이 보건 교사는 대체 어디로 간건지. 이거 직무유기 아닌가? 그런 아무래도 좋은 소리를 하는 와중, 그녀가 이것저것 찾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보건실에 한두 번 온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혜성은 그녀에게 다가간 후에 소독약을 집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또 뭐야? 됐고 손이나 보여봐. 소독해줄테니까.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말해두는데 선생님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대신 하는거야. 그 뿐이야. 진짜."
여기저기를 잠시 둘러보던 헤성은 이내 솜과 핀셋을 발견했고 조심스럽게 소독약을 솜에 묻혔다. 이어 핀셋으로 솜을 잡은 후 그녀에게 손을 대보라는 듯이 자신의 왼손을 돌려 손바닥을 향하게 하면서 제스쳐를 취했다.
"...혼자 있기 외롭기라도 해? 되게 같이 땡땡이치자고 꼬신다. 너. ...뭐, 확실히 나도 선생님 안 계시는데 너만 두고 가기는 찝찝하긴 하니까. 그러니까... 일단 같이 연습한 파트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말해야하니 그래 뭐. 기다리지 못할 것은 없으니까. 그 뿐이야."
또 다시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며 혜성은 아무런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손바닥을 내밀면 정말 조심스럽게, 정말로 정성스럽게 소독을 했을 것이다.
/나도 퇴근하며 갱신이야! 이것이야말로 직장인의 비애임이 분명해! 타락까진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결국 혜성이는 아람이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다! 결국 또 변명이나 늘어놓지만! 아무튼 하루 고생했어! 아람주!
"뭐야. 그거. 나? 없어. 나도 외동이야. 뭐, 외동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가네. ...아니, 뭐 내가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냥 그런 거 있잖아. 그런거. 그냥 일반론이라던가 그런 것들..."
따지고 보면 자신도 비슷하지 않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말 끝을 살며시 흐렸다. 그렇다고 또 무수히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싫어했으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복잡하다고 느끼며 그저 작게 혀를 차는 것으로 그는 완전히 말을 흐렸다. 아무튼 그녀가 손을 빼지 않는만큼 그는 좀 더 조심스럽게 소독을 이어나갔다. 톡톡 치다가 소독을 마쳤을 무렵 솜을 따로 처리했고, 연고를 조심스럽게 까인 부위에 발라준 후, 근처를 두리번거리다 반창고를 발견하고 하나를 조심스럽게 깐 후에 그녀의 상처 부위에 조심스럽게 붙여줬을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놓아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누구 소독해주고 치료해주는 것까지 할 줄은 몰랐어. 보통 이런건 보건 선생님이 해주는거지. 학생이 하는건 아니잖아. ...딱히 상관은 없지만. 그리고 고마울 거 없거든? 그..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 뿐이야. 당연히. 애초에 같은 조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하지도 않았을거야. 아마도지만."
그럼 같은 조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자신은 남일인양, 자신의 일이 아니니 모른척 했을까? 거기까진 혜성도 알지 못했다. 그 상황이 되어봐야 알 수 있었을테니까. 하지만 만약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면 자신이 도와주지 않았을까? 그런 정말로 알 수 없는 가능성 저 너머의 무언가를 생각하며 혜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왜 내가 그걸 궁금해해야하는건데? 너처럼 땡땡이 치는 거 아니야? 애초에 조건은 또 뭐야. 사진을 제대로 가르쳐주면이라니. ...너 말이야. 기본적인 것은 내가 다 가르쳐줬잖아. 초점과 거리. 그것부터 확실하게 손에 익혀. 더하기빼기도 못하는데 사칙연산을 할 수 있을리 없잖아. 그런 거야. ...뭐,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가끔 봐줄 수는 있긴 하지만... ...아니. 그보다 뭔데? 보건 선생님이 여기에 없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거야?"
역시 조금은 궁금한지 혜성은 그 떡밥을 알게 모르게 덥썩 물었다. 애초에 그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생각을 하며 고민을 하던 그는 작게 혀를 차면서 이야기했다.
"뭐, 시간 나고 내키면 도와줄테니까 말해보던지. ...딱히 궁금한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괜히 안 들으면 찝찝하잖아."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인 사항. 그것은 대체 무엇인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혜성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이러니까 나도 괜히 더 궁금해지는걸!! 아무튼 아람주도 퇴근한거 축하해!! 혜성이가 아무리 그래도 그 정보로 무정한 애는 아니니까! 일단 자신이 같은 조였으니 자신이 도와주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하는 애기도 하고!
아람은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면서 혜성이 자신의 손이 부서지기라도 할 것처럼 조심조심 다루는 것을 보니 손에 닿는 자리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이 돌봄 받는 느낌을 더 받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손이 떨어지고 나서야 조금 남는 아쉬움을 괜히 소란스럽게 돌렸다.
"와! 엄청 처치 잘 된 것 같은데? 고마워!"
아람은 손바닥을 들어보이며 혜성에게도 보였다가 자신도 빤히 보았다가 이내 웃어버렸다.
"세상에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안 하는 사람도 많은 걸?"
아람은 툴툴거리는 혜성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다가 마지막에 도와줄테니까 말해보던지, 라고 하는 말에 눈을 반짝 떴다. 그리고 주위를 휘휘 살피다가 저기 침대에 누가 있지 않는지도 꼼꼼하게 살핀 뒤 다시 혜성에게 다가갔다.
"이리 와 봐."
아람은 혜성의 소매자락을 잡으려 했다. 잡혀주었으면 살며시 잡아당기며 햇빛이 잘 들어오는 보건소 구석 침대 쪽으로 이끌었고, 잡혀주지 않았으면 눈을 새초롬히 뜨며 침대쪽에 앉으며 이리 오라고 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침대에 앉고 옆 자리를 툭툭 치며 앉으라고 했다.
"이건 진짜 비밀인데, 으음... 안 되겠어. 주말마다 한 시간씩 시간 내준다고 약속하면 말해줄게. 시간 나고 내키면 도와준다는 건 네가 시간 없다고 내키지 않는다고 하면 나만 손해인 거잖아."
자신의 소매자락을 잡는 그녀의 손을 미리 예상할 수 없었던만큼 그의 소매는 그녀에게 무방비 상태로 잡혔다. 보건소 구석 침대로 이끌고 옆자리에 앉으라고 하는 그녀의 말에 그는 고개를 살며시 갸웃했다. 왜 굳이 거기까지 들어가는건지는 둘째치더라도 대체 뭔데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궁금증이 더욱 커져왔다.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면 큰일나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애초에 아람이 왜 그런 비밀을 알고 있는지도 혜성으로서는 의문이 가는 일이었다.
일단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앚은 후 그는 이어오는 그녀의 말. 정확히는 시간을 꼭 내라고 약속을 하라고 하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하면서까지 그 비밀이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물론 그에 대한 답을 내라면 혜성은 이성적으로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허나 사람은 이성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고 저렇게까지 말하니 괜히 더 궁금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시간이 나면. 시간이 안 나는데 주말마다 한 시간씩 시간을 어떻게 내. 나도 내 스케쥴이 있으니까. ...시간 날때라면 뭐. 대신에 열심히 안하면 나도 안도와줄거야.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짓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자. 나는 이렇게 말했어. 그래서 뭔데?"
여기까지 왔으니 사실 몰랐습니다라는 말을 하면 자신도 약속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단순한 땡땡이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비밀로 한다면 대체 뭐인 것인지.
어느덧 낚시바늘을 문 것처럼 혜성은 어서 말해보라는 듯이 무언의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가만히 시계를 확인하던 그는 순간 고개를 갸웃하며 이야기했다.
"잠깐만. 그 전에 체육 시간 끝나기 전에 선생님 오긴 오는거지? ...뭔가 지금 나 제대로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기분 탓이야? 이거?"
만약 보건 교사가 오지 않는다면? 그럼 이거 정말로 제대로 땡땡이 아닌가 생각을 하며 혜성은 순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을 바꾸지는 않겠다는 듯, 그는 굳이 자리에서 일어서진 않았다.
"뭐, 됐어. 약속은 약속이니까."
/아람이 밀당 솜씨 장난이 아니로구나! 이게 바로 칼자루를 쥔 자의 위엄인 것일까? 조별과제 무임승차.. 아. 그거 진짜 싫지. 나도 얼마나 당했는지 모르겠어. 자료 달라니까 지식인 긁어서 준 조원 잊지 않을거야..
아람은 자신이 끌어당기자 무방비하게 따라오는 혜성을 침대에까지 앉혔다. 그리고 혜성에게 딜을 걸어 주말 한 시간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는(그렇게 말 안 했다) 말을 얻어냈다.
"나도 꽤 간절하거든. 사진 찍는 거 말이야."
아람은 사진을 잘 찍고 싶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혜성이 말한 이론적인 말들은 너무 애매했다. 아람은 옆에서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해줄 선생님이 필요했다. 그리고 혜성이 이렇게까지 굽히고 나왔으니 아람도 더이상 비밀을 지킬 수 없었다. 아람은 혜성에게 살짝 몸을 기울이며 소곤소곤 말했다.
"사실 보건쌤이랑 너네 담임이랑 사귀거든."
아람은 혜성이 놀랄 시간을 주겠다는 느낌으로 잠시 말을 쉬었다. 보건 쌤은 미혼의 여성이고 혜성의 담임 쌤은 국어 쌤으로 미혼의 남성이었다. 혜성이 그게 무슨 상관인데, 라고 말하기 전에 아람은 말을 이었다.
"사실 보건 쌤은 보건 수업을 빼면 수업 시간이 쉬는 시간이잖아. 보통 학생들은 아프면 쉬는 시간에 오니까. 그리고 국어 쌤도 수업 쉬는 구간이 있을 거고. 그래서 국어 쌤이 들어가는 반 시간표를 모두 겹치면 쉬는 타임이..."
아람은 월요일 몇교시 화요일 몇 교시 하면서 손가락을 꼽으며 하나 하나 시간을 세었다.
"이 때는 없을 확률이 30% 오늘 이 시간은 없을 확률이 80%야. 보통 이 시간에 만나시는 것 같더라구."
아람은 남의 연애 얘기에 설레는 듯 웃었다. 학생 때 연애 얘기야 말로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던가. 선생님들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강탈하듯 뜯어내려고 하고 수업시간을 날로 먹으려 한다거나. 아니면 친구의 짝사랑이나 아니면 벌써 이성친구를 사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을 나이였다.
"이건 정말 아는 사람이 극히 없는 비밀이니까, 꼭 지켜줘야 해."
아람은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음, 쉬는 시간되기 10분 전에는 오실 걸?"
얼마 얘기도 안 했는 것 같은데 벌써 선생님이 올 시간이 다 되어갔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시간 돼?"
아람이 기대하는 표정으로 혜성을 반짝반짝 쳐다봤다.
/으 나도 몇 번 당했지 뭐야... 세상엔 이렇게 많습니다.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사람....
생각도 못한 말이 터져나오자 혜성은 순간 당황하며 보건 교사와 자신의 반 담임을 떠올렸다. 두 사람이 그렇게 그런 관계라고?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순간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생각해보면 두 사람이 사이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해서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이내 고개를 빠르게 저으면서 아람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아니아니! 확률은 됐고 애초에 두 사람이 사귀는걸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건데?! 비밀이라면 공개 연애도 아니고 비밀 연애 같은데! 그보다..아니! 다시 확률로 돌아가서 확률은 또 언제 계산한거야?!"
혹시 뒷조사라도 하는 애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주 살짝 그녀와 거리를 띄웠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원래 앉았던 그 위치에 다시 앉으면서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는 그녀의 모습을 잠시 눈여겨보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딱히 두 사람이 사귀던지 말던지 나하고는 상관없잖아. 그걸 굳이 떠벌릴 이유도 없고. 애초에 한 쪽은 우리 담임 선생님이니까 무슨 말을 들을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어디 가서 말하고 그럴 생각은 없어. ...애초에, 프라이버시는 지켜주는게 맞는거고. ...그런 비밀을 왜 나에게는 말해주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신뢰를 살만한 행동을 자신이 했던가? 아니. 애초에 안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되게 친근한 느낌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녀의 성격인걸까? 되게 붙임성 좋은 이라는 평을 하면서 그는 괜히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녀의 반짝반짝 시선을 회피하면서 이야기했다.
"돼. 한 시간 정도는 내줄게. 네가 한 시간 정도를 이야기했으니까. ...딱히 바쁘거나 그런 것도 아니니 말이야. 나 참. 그렇게 사진을 잘 찍고 싶다면 다른 좋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나보다는 잘 가르쳐줄텐데 말이야."
상당히 사진에 대해서 진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다시 시계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야기했다.
"선생님 오면 넌 여기서 쉬고 있어. ...체육 선생님에겐 내가 적당히 둘러댈테니까. 어차피 다시 돌아가봐야 지금 그 상태로는 공 던지기도 힘들 거 아니야. ...괜히 도지지만 마. ....꿈자리가 나빠지니까."
괜히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작게 내면서 그는 문이 열리고 보건 교사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 오면 가볍게 설명을 하고 말한대로 자리를 비울 생각이었으니까.
/맞아. 정말 많지. 진짜 각자 자기 할 일만 잘해줘도 세상 살기 참 편할텐데 말이야. 아무튼 이렇게 주말에 만나는 약속이 잡히게 되었네!
"확률 계산은 딱히 한 건 아니고 그냥 그정도라는 뜻이야.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는... 비밀."
아람이 히히 웃었다. "나름 영업 비밀이라구." 하며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람은 혜성이 비밀을 지키겠다는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사실 혜성이 비밀을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고 말을 한 것이었다. 왠지 입이 무거울 것 같은 느낌이랄까. 뭐, 말이 퍼진다고 해서 아람에게 해가 가는 것도 아니었으니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선생님의 약점은 나만 가지고 싶었단 말이지...
그리고 한 시간 정도는 내줄 수 있다는 말에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랬다가 아, 하고 뭔가 생각 났다는 듯이 말했다.
"방금 그런 이야기를 해서 생각난 건데, 최썽 너 여자친구는 없지? 주말에 데이트 안하고 다른 여자애 만난다고 하면 여자친구가 엄청 싫어할거야."
아람이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비밀 하나가 아깝긴 하지만 여자친구가 있다면 내가 양보할게."
남자 애들에게 조금 인기가 있는 탓에 이런 저런 이유로 욕을 먹은 적이 있던 아람은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도 잘 했다. 혜성이 사귀는 여자애가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혹시 모르지 않는가 비밀 연애를 하고 있을지도.
보건 선생님이 오면 대충 둘러대고 빠진다는 말에 아람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보건 선생님이 올 것 같았다.
영업 비밀이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혜성은 또 다시 알게 모르게 뒷조사를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며 정말 뚫어져라 도끼눈을 뜨고 아람을 바라봤다. 사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었거나 혹은 우연히 봤다거나 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굳이 자신의 추론을 입에 담진 않았다. 그냥 알게 모르게 소문을 잘 듣는 이일지도 모르니까. 어느 쪽이건 혹시나 자신에게 비밀이 생기면 절대로 걸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고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또 최썽이래. 또. 아무튼 여자친구?"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혜성은 다시 뚫어져라 아람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긴 침묵은 아니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2분 정도일까. 괜히 입술을 삐쭉 내밀다가 다시 안으로 밀어넣으면서 그는 애써 태연한 척,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없어. 여자친구. ...마, 말해두는데 연애에 관심이 없는 것 뿐이야. 만든다면 만들수도 있어! ........5% 정도로."
스스로 단언하는 것은 조금 많이 찔렸는지 그는 괜히 그렇게 말을 덧붙이면서 자리에서 괜히 벌떡 일어났다. 여자친구가 없다는 게 부끄러운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도 모르게 반발심에 방금처럼 이야기한 것은 조금 부끄러웠는지 그는 조금도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면서 그는 그녀에게 괜히 반문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친한 남자애들이나 혹은 주말에 놀자는 애들 많을 것 같은데 사진 배우자고 그렇게 매주 불러내려고 해도 괜찮겠어? ...다른 애들 되게 섭섭해할걸? ...그리고... 괜히 이상한 말 돌지도 모르고. ...그건 내 쪽도 좀 짜증나니까."
그다지 접점도 없어보이는 옆반 사이의 두 사람이 주말마다 일정 시간마다 만난다? 딱 소문나기 좋은 상황이 아니던가. 서로서로에게 피곤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을 담아 괜히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문을 바라봤다. 이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아람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보건 교사에게 다가갔다.
"어라. 무슨 일이니? 어디 다쳤니?"
"아니요. 제가 아니라..저쪽에 앉아있는 아람이가 체육 수행평가 연습을 하다가 공에 맞아서 넘어져서 손바닥에 상처를 입어서. ...안 계셔서 제가 대충 하긴 했는데 좀 봐주세요."
적당히 상황 설명을 하면서, 혹시 모르니 다시 제대로 봐달라고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기지개를 쭉 켠 후에 다시 고개를 돌려 아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을 남기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나중에 문자 넣어. 어디서 볼건지. 약속은 지킬테니까."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딱히 부르거나 잡히거나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웃음을 빵 터트린 그녀의 모습을 혜성은 살짝 흘겨보더니 작게 혀를 차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역시 그냥 뻔뻔하게 나갈 걸 그랬나.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무엇보다 높게 잡자니 그것도 애매했으니까. 실제로 연애 경험이라던가 그런 것은 없기도 했고, 아마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스스로도 생각했기에 더더욱.
주말에 공부를 한다는 말에는 그도 조금 의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밖에서 놀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게 아니었던걸까? 의아한 표정을 짓지만 그래도 그것을 굳이 입에 담지 않으며 그러려니 생각하기로 하며 그는 작은 목소리로 의외네. 정도의 말을 살며시 남길 뿐이었다.
아무튼 문자를 한다는 그 말에 혜성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완전히 보건실 밖으로 나섰다. 시간으로 보아 조금 빠르게 가면 운동장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우선 체육 교사를 향해 그는 발걸음을 좀 빠르게 옮겼다. 물론 그 와중에도 복도니까 달리지는 않았으나 그 걷는 속도는 확연히 빠른 편이었다.
"그건 그렇고 주말이라. ...뭐, 약속은 약속이니까."
한두번 정도 어울리면 사그라들겠지.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를 시도하며 그는 완전히 건물 밖으로 나가 운동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주 조금이지만, 어쩌면 조금 길게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또한 살며시 올라왔다.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 적어도... 싫거나 하진 않으니까."
아무도 듣지 못할 혼잣말을 조용히 남기며 그는 체육 교사를 부르면서 빠른 속도를 내서 달려나갔다. 아람에 대한 것을 보고 해야만 했으니까.
/상황상 막레에 가까울까? 그렇기에 막레 느낌으로 써봤어! 5퍼센트는... 테스트 기능으로 다이스를 돌렸더니 5가 나와서 어쩌다보니 나온 이스터에그 같은 무언가야!
혜성이를 귀엽게 봐줘서 정말로 고마워!! 재밌고 몰입이 된다면 더욱더 말이야!! 만나는 시간은 확실히 점심을 먹은 후가 좋겠지. 역시!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면 괜찮지 않을까? 사실 시간이 좀 지난 후라면 이 약속을 빌미로 꽃놀이를 해도 좋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시간이 아직 이르니.. 공원이 역시 제일 무난하지 않을까 싶어! 사진을 찍기 위해서도 딱 좋은 곳이니 말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후 혜성이에게 와서 너 친하다는데 정말이야? 라는 물음이 막 오지 않았을까 싶어. 혜성이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그런 거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정하겠지만 말이야! 그럼 안 친해? 라는 물음이 아니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은데. 라는 느낌으로 대답할 것 같고. 자기도 친한지 안 친한건지 알 수 없어서 혼란을 겪지만 곧 아. 몰라. 식으로 넘겨버릴 것 같네.
3주 정도 지나면 꽃놀이라. 확실히 시기가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네! 또 무슨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궁금한걸? 아람주 아이디어 박스니까 말이야. 아무튼 3번째 일상은 전에 이야기한대로 하교 상황인걸까? 아니면 약속을 잡았으니 약속으로?
흠 고민이네. 하교 이벤트는 아무래도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을 것 같아! 흐름상 약속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네! 아이디어 박스라니ㅋㅋㅋㅋㅋㅋ 고마워! 혜성이가 너무 귀엽고 잘생기고 다하고 혜성주가 재미있게 레스를 잘 받아줘서 그렇지~~~ 첫 약속은 일상으로 해도 큰 일 없으면 다음부터는 그냥 썰로 그날 뭐했을 것 같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세번째 일상을 공원 약속으로 하면 다음 이벤트는 3월 모의고사랑 화이트데이랑 꽃놀이인가?
반대로 아람이도 귀엽고 예쁘고 다하니까 쌤쌤인 것으로 치겠어! 무엇보다 의외의 포인트에서 좋아하는구나 라는 것을 느끼기도 해서 특히 더 귀여웠던 것 같아. 아람이가 라는 부분에서 반응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거든. 혜성이가 다르게 부를 거라고 생각했던걸까? 아무튼 3번째 일상은 그럼 약속으로 가자! 그런데 살짝 생각한 거지만 3월 모의고사는 뭘 할 수 있는 그런게 있을까? 시험을 같이 치는 것도 아니고... 답 맞춰보기 정도려나? 그런데 그런 것도 내 기억이 맞다면 그냥 반에서 답지 보고 맞췄던 것으로 기억을 하거든. 굳이 거기서 더 포함하자면 시험 잘 쳤어? 로 이야기가 나올 수는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의외의 포인트~~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것같아 근데 5프로는 좀 웃겼어ㅋㅋㅋ 얘가 라고 하거나 쟤라거나 문아람이라거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는데 아 나도 3월 모의고사로 일상을 하자는 건 아니었어! 아무래도 인문계 고등학생이니까 3월 모의고사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까? 했던 거지! 아람이는 성적에 그렇게 신경쓰는 편은 아닌데 혜성인 어떤지 궁금하다~~~
5프로는 다이스의 장난질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걸!! 그냥 돌려봤다가 그렇게 떠서 이스터에그로 살짝 넣어봤는데 뭔가 귀여운 포인트가 된 것 같아서 나도 웃어버렸지 뭐야! 아무튼 아람이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어서 그게 또 은근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구나! 그거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 혜성이는 아무래도 조금 신경을 쓰는 편이야. 물론 그렇다고 막 공부메 목숨을 걸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성적이 안 좋은 과목이 나오면 괜히 꿍해져서는 며칠간 그것만 계속 보는 그런 느낌이야. 헤깔리는 것을 찍어서 틀리면 괜히 더 억울해하고!
하지만 역시 메인은 사진 쪽이기 때문에 그냥 사진으로 괜찮은 대학을 갈 정도의 성적을 만들자가 최우선 목표인 애야.
화이트데이 해서 떠오른 거지만 혜성이가 아람이에게 사탕은 확실히 줄 것 같아. 물론 그냥 평범하게 주진 않겠지만 아무튼 그때의 행동은 차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겠어!
꿍한 모습 귀엽다...! 아람이는 공부한 만큼 나온다고 생각하고 시험 때도 그렇게 긴장하거나 하는 성격도 아니라서. 수능도 모의고사 볼 듯 볼 것 같아 ㅋㅋㅋ 역시 혜성이는 사진 관련 진로 확고하구나! 아람이는 아직 진로는 고민중인데...! 아니 혜성이가 아람이 사탕 준다고? 진짜? 정말? 일상을 돌려야해... 세상에 아람이는 화이트데이인데도 친구들 줄 사탕 따로 챙기고 반 애들에게 돌릴 츄파춥스 한통에 다른 반 돌면서 뿌릴 츄파춥스 한통 해서 그날은 축제처럼 엄청 돌아다닐 예정인데? 쉬는시간에 자리에 없을 예정...ㅎ.... 이제 잘시간이야ㅏㅏㅏ
아무래도 사진 쪽으로 많이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물론 진행하면서 꿈이 바뀔 수도 있고 그런 거니 아직 확정 단계는 아니야! 아무튼 그보다 아람이는 뭔가 시험을 진짜 여유롭게 보는구나. 뭔가 주변 친구들에게 부러움 많이 살 것 같아. 그러면서도 성적은 잘 나오니 특히 더 말이야! 그야 뭐 혜성이도 나름 사탕은 친구들에겐 어느 정도 돌리긴 하니 말이야. 아람이에게도 아마 돌릴 것 같아. 물론 안지 얼마 안 된 것도 있으니 막 엄청 좋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서도! 아무튼 정말 인맥 잘 챙기는구나! 아람이! 혜성이가 사탕 주려고 왔다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음 쉬는 시간에 와야지. 하고 갔다가 다음 쉬는 시간에 또 없어서 뭐지? 하면서 비어있는 자리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돌아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
아주 화창한 초봄이었다. 아직 냉기가 감돌지만 3월이 조만간이라는 듯 매섭지는 않았다. 곧 봄이 오는 구나 생각하며 아람은 공원 입구에서 서성였다.
휴대폰 외에 다른 카메라는 가지고 있는 게 없었다. 아람은 오늘 기모가 들어간 스키니진에 도톰하고 따뜻한 색감의 하늘색 후드티를 입고 그 위에 밝은 아이보리색 도톰한 패딩조끼를 입었다. 작은 크로스백을 하나 매고 조끼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은 채로 아람은 혜성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버스를 타고 다니다보니 일찍일찍 다니는 게 습관이 되어 오늘도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온 참이었다.
아람은 매일매일 인스타를 업로드하며 사진도 신경써서 찍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직도 친구들에게 이게 신경써서 찍은 거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