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찾아오는 것은 일순이었다. 수업을 들어야하는 주간이 다 지나고 학생들에게 있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주말이 찾아왔으나 혜성은 평소처럼 조금 더 오래 자거나 하진 못했다. 오늘은 아람과 만나기로 한 날인만큼 아침 일찍 일어나 좀 길게 멍한 표정을 지으며 정신을 못 차리던 그는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씻었다.
물론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후였으나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주기로 한 만큼 나름 이것저것 준비를 해야 할 것이 있던만큼 그는 아침 일찍부터 꽤 분주하게 준비했다. 사실 자신도 왜 이렇게까지 하는진 알 수 없었다. 그냥 적당히 거리나 초점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다가 가도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었건만, 자신이 사진을 찍을 때 사용하는 검은색 카메라는 물론이며 교본까지 챙기지 않았던가. 거기다가 사진집까지. 이것저것 조심스럽게 크로스백에 넣지만 카메라만큼은 따로 챙기며 그는 이런저런 외출 준비를 이어나갔다.
뭘 입고 가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옷장의 옷을 이것저것 바라보던 그는 하얀색부터 시작해서 진한 파란색으로 끝나는 그라데이션이 들어있는 셔츠와 진한 남색 바지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날씨가 아직 추운만큼 차분한 느낌이 드는 연한 회색 패딩을 입으며 외출 준비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현 상태를 확인한 후, 붉은색 빵 모자를 머리에 가볍게 눌러 쓴 후 점심을 가볍게 해결하며 집 밖으로 나섰다.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약 15분 정도를 남겨두며 그는 공원에 들어섰다. 어디에 있으려나. 그렇게 두리번거리면서 찾는 도중 낯익은 목소리로 최썽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아람을 살짝 흘겨보면서 이야기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부를 참이야. 대체 왜 하필 그 많고 많은 호칭 중에서 최썽인데? 그냥 평범하게 부를 마음은 없는거야?"
괜히 톡 쏘듯 이야기를 하며 그는 괜히 자신의 목에 메고 있는 카메라집을 두 손으로 살며시 잡았다. 이어 그녀의 모습을 힐끗 바라보면서 그는 작게 흠. 소리를 내다가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며 풍경을 바라봤다.
"왜 혜성이라고 부르는데 사귀냐는 말이 나오는건데? 내 친구들은 다 그렇게 부르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나는 문어발이기라도 한거야?"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이 혜성은 아람을 조금 더 흘겨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그냥 좋을대로 부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말을 마무리지었다. 순간적으로 정말로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가 된 탓이었다. 물론 자신이야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상대는 어떨까. 자신과 그런 쪽으로 엮여서 좋을 것이 뭐가 있으랴. 결론을 내는 와중 자신의 모자를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두 눈을 깜빡이며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뭐, 써보고 싶다면야. 사이즈 안 맞아도 탓하진 말고."
이어 그는 자신이 쓰고 있는 붉은색 빵모자를 벗은 후에 그녀의 머리 위에 조심스럽게 살포시 씌워줬다. 사이즈가 클지, 아니면 딱 맞을지는 그녀만이 알 일이었다. 어느 쪽이건 바로 벗기진 않으며 잠시 써도 상관없다는 듯, 그는 손을 완전히 치웠다.
공원 안에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가족, 연인, 친구. 정말로 다양하게 뛰어놀거나 휴식하는 모습을 말 없이 바라보던 그는 미소를 짓고 근처 풍경을 가만히 바라봤다. 피사체가 많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 풍경을 피사체 삼아 사진을 찍으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가만히 생각을 하다 자신이 목에 메고 있는 카메라집을 연 후에 검은색 카메라를 꺼냈다.
"...그렇다면 잠깐 빌려줄게. 이게 핸드폰보다는 좀 더 잘 나오는 편이니까. 일단 하나하나 제대로 가르쳐줘야 할 것 같으니.. 그러니까..."
이어 그는 잠시 말을 망설였다. 이거 괜찮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을 하던 와중 그는 홱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괜히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 손이라던가 살짝 잡는 거 괜찮아? 아니. 착각은 하지 마. 절대로 이상한 목적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자세를 잡아주기 위한 거야. 절대 그 외의 의도는 없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없어. 내일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있다고 해도 다른 의도나 목적은 절대로 없어. 그, 그냥 네가 사진을 이상하게 찍으니까 자세부터 가르쳐주려는거야. 알겠어? 언더스탠드? 좋으면 예. 싫으면 싫어. 오케이?"
점점 말의 템포가 빨라지던 그는 작게 혀를 차면서 그녀를 완전히 시야에서 치웠다. 그리고 답이 나오는 것을 기다릴 뿐이었다.
/죽어가면 안돼! 아람주! 8ㅁ8 피곤하거나 힘들면 오늘 안 이어도 괜찮아! 원래 천천히 있는거 좋아한다고 했잖아!
다른 한 사람만 다르게 부르는 것이 된다는 그 말에 혜성은 떨떠름한 느낌을 받았으나 그래도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라면 확실히 눈에 띄고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썽이라니.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 생각을 하나 결국 그는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결국 뭐라고 해도 결론은 최썽으로 돌아올 것 같았으니까.
붉은 빵 모자를 쓴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무슨 말을 꺼내진 않고 그냥 입술만 꾹 닫고 침묵만 지켰다. 뭔가 빵모자까지 쓰니 괜히 더 귀엽게 보이는 탓이었다. 안 그래도 그녀는 예쁜 편에 속했으니 이 사실을 인정하자니 뭔가 지는 기분이 들었기에 그는 괜히 그럴지도. 라는 말을 하면서 애써 답은 회피하려고 시도했다.
"애초에 내 평가가 뭐가 중요하다고. 네가 마음에 들면 그걸로 된 거잖아. 묻지 마. 답 안할거니까."
괜히 툴툴거리면서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로 잘 어울려. 라는 말을 조용히 날렸다. 그 말을 들었을지, 듣지 않았을지는 자신으로서도 알 길이 없었다.
아무튼 카메라를 집어든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카메라 줄을 그녀의 목에 둘러서 카메라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의 카메라는 필름이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였기에 바로 아래에 파인더 너머의 화면이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허나 그는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잡아서 그녀의 눈에 조심스럽게 붙였다. 이어 그녀의 손을 정말로 조심스럽게 잡아 셔터 버튼에 살며시 올렸다.
"일단 가장 기본이야. 어느정도 내가 세팅을 해뒀기 때문에 아마 거리나 초점은 어느 정도 맞춰져있을거야. 우선 이 상태에서 사진을 찍는 것부터 해보자. 셔터를 누르는 힘조절도 필요하니까. 셔터를 너무 세게 누르면 카메라가 흔들릴테고 너무 약하게 누르면 아예 안 찍힐거야. ...그러니까 중간 힘으로. 버튼을 살짝 누르는 느낌으로 누르기만 하면 돼.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정 힘들면 어느 정도 힘 조절을 도와줄테니 말을 하면서 혜성은 그녀의 뒤에서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일단 그녀가 어디가 약한지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ㅋㅋㅋㅋㅋㅋ 아람주가 이 일댈을 완전 좋아해줘서 영광이야. 사심? 사심 있을 수도 있지! 과거형이라니. ㅋㅋㅋㅋㅋ 아니. 그래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말기야! 무리 안한다고 했지만! 사실 이렇게 많이 앓아줄거라곤 생각도 못했어. 그럼 일댈이기에 가능한 질문을 살짝 던져보겠어. 아람주는 혜성이가 호관비슷한 느낌인거야?
아람은 또 괜히 툴툴거리는 혜성을 쳐다보며 이어지는 진심을 기다렸다. 귀를 쫑긋 세우다보니 어울린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아람은 남몰래 웃었다. 어느정도 혜성의 말하는 스타일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카메라를 드니 생각보다는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힘들 정도는 아니라 가볍게 감싸 들고 있으니 카메라 끈이 목 위에 얹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혜성이 손을 대는 것에 따라 카메라를 제대로 잡고 눈 가까이에 대었다.
네모난 칸 안으로 보이는 세상이 신기했다. 뭔가 휴대폰 카메라로 알 수 없는 낯선 느낌일까.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은 다른 세상 같았다.
아람은 제 손에 닿았다 떼어지는 온기에 기분이 좋았다. 정말 조심스럽다, 라는 말이 느껴질 정도라서 아람은 제 자신이 깨지기 쉬운 유리세공품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은 쪽에 가까웠다.
아람은 그러면서도 혜성의 말에 귀기울이며 주의깊게 듣다가 셔터를 눌렀다. 찰칵, 하는 기분좋은 소리가 들렸다. 물론 자세나 셔터를 누르는 것에 집중하느라 피사체도 잡지 않은 채였지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아람이 잠시 카메라를 눈에서 뗀 채 카메라를 내려다봤다. 기기를 작동시키는 데는 아무런 무리가 없는 것 같았다.
/사실 커뮤 용어나 그런거 잘 몰라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넹 호관캐이라면 내가 캐릭터를 향한 마음을 말하는 건가? 나는 혜성이 캐릭터가 좋은데? 아닌가 이런 뜻이 아닌ㄴ가? 아람이랑 엮고 싶은지를 묻는건가?(혼란) 아람이가 좋다면 나도 좋아! 내 딸을 주겠다(아람:???) 이게 아닌가? ㅋㅋㅋㅋㅋㅋ 미안 더 자세히 설명해주라
찰칵. 그 소리가 혜성의 귀에는 꽤나 기분 좋게 들렸다. 사진을 찍을 때 수도 없이 들었던 소리였으나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정말 시원한 소리라고 생각하며 혜성은 잠시 확인을 해볼겸, 카메라를 들고 찍힌 사진을 확인했다. 정말 말 그대로 있는 장면 그대로가 찍혀있는 그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혜성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기기를 못 다루는 것은 아닌 모양이네. 그렇다면 됐어. 요령과 기술, 그리고 방식만 익히면 되는 거야. ...물론 핸드폰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 원리는 비슷하니 말이야."
뒤이어 혜성은 잠시 조작을 하면서 일부러 초점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방금 전까지 화면에 비친 풍경이 정말로 깨끗했다면 지금은 안개 속을 보는 것처럼 상당히 흐릿한 느낌이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막 피어오른 새싹조차도 그저 녹색의 흐릿한 형태로 보일 정도로 초점이 엉망이 된 그 화면은 자칫 잘못하면 눈이 아플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초점이 안 맞으면 사진이 잘 찍히지 않아. 그럴때는 네 눈을 기준으로 이렇게 초점을 맞추면 돼. ...잘 찍으려고 할 필요 없어. 물론 잘 찍으면 좋지만, 가장 좋은 사진은 찍은 사람이 스스로 만족스러운 그런 사진이야. 다른 이와 비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의 평도 너무 신경쓰지 마. 프로가 될 거 아니면. 그러면 그냥 너에게 있어서 만족스러운 사진을 맞춰가면 되는거야."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아 초점을 맞추는 곳에 갖다대며 버튼을 하나씩 누르면서 변화점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그는 이내 그녀에게 해보라는 듯이 자신의 손을 떨어뜨렸다.
"잡아봐. 네 눈에 잘 맞는 초점으로. ...핸드폰도 원리는 같아. 일단 네 눈에 가장 잘 보이는 초점을 잡으면 돼. 급하게 할 것 없어.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뭐, 오늘 정도는 특별서비스로 한 시간보다 좀 더 못 있어줄것도 없으니 말이야."
/앗. 그렇구나! 음. 호관캐라는 것은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앤캐로 삼고 싶을 정도로 호감이 가거나 관캐가 되는 그런 것에 비슷할지도 모르겠어! 일단 혜성이를 많이 좋아해주는 마음이 전해졌으니 그걸로 됐어!! 그런데 아람이도 보통 귀여운 것이 아닌걸! 지금만 해도 상당히 진지하게 잘 따라와주는 것도 되게 귀여워!
"그렇다면 예쁘게 찍을 수 있게 노력하면 되는거야.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런 거 있잖아.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걸로. 사람마다 못하는게 있고 잘하는게 있는 것이 있는거고, 노력하면 그래도 어떻게든 되는 것도 많을테니까."
꽤 진지하게 들어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 역시 나름대로 진지하게 대답했다. 물론 정말로 노력이 모든 것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렇게나 열심히 하려고 한다면 언젠가 그 노력이 보답해주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그는 저도 모르게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그는 카메라 화면을 바라봤다. 뒤이어 그는 그녀의 손을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해서 카메라의 다른 버튼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살며시 눌러 버튼을 누르게 하면서 또 다른 기능을 그녀에게 설명했다.
"이게 거리 조절이야. 지금처럼 너무 가까운 것을 찍을 땐 렌즈의 거리를 조절해서 상을 맺히게 할 수 있어. 사실 사진을 찍을땐 너무 가깝게 갈 필요는 없어. 이렇게 거리를 조절하면서 가깝게 잡을 수도 있고 멀리 잡을 수도 있거든. 이 두 개를 잘 조합해서 사진을 찍으면 되는거야."
천천히 해도 괜찮다면서 이번엔 이 렌즈 거리를 조절하면서 눈에 가장 아름다운 상을 만들어보라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그녀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려고 했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그녀의 말이었다. 생명력이 있는 연두빛이 좋다는 그 말에 그는 고개를 살짝 내려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확실히 새싹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그는 괜히 새싹이 있는 곳을 바라보다가 눈을 두어번 깜빡이다 괜히 눈동자만 돌려 이야기했다.
"너는 네 눈동자 색을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되게 예쁘게 비칠지도 몰라. ...뭐, 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알아서 생각해."
명확한 답을 하지 않으며 적당히 넘겨버리려고 하면서 그는 곧 들려오는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싫어하진 않아. ...사진 피사체로 정말 좋기도 하지만 때로는 말썽을 부리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건 왜? 고양이라도 발견했어?"
뒤이어 그는 고양이가 있나 싶어 주변을 잠시 두리번두리번 둘러봤다. 물론 적어도 그의 눈에는 고양이처럼 생긴 무언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슬슬 잘 시간이긴 하지! 아직 깨어있어서 답레를 올려보지만 말이야! 아무튼 아람이 픽크루는 아주 잘 봤어! 역시 아람이는 너무 예쁘다!! 진짜 너무 귀엽다. 픽크루마저도 말이야!
노력한다면 되는 걸까? 아람은 조금 생각해보았다. 그래. 사진을 잘 찍는 것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았다. 프로 사진 작가가 아니라면 일반인들 중에서 평타라도 치는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혜성에게 사진을 가르쳐달라고 했던 것이었고.
아람은 거리조절을 알려주면서 버튼을 하나하나 짚어 알려주는 손길을 느끼며 혜성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이런 버튼 쯤이아 굳이 이렇게 가까이서 알려줄 필요도 없었을텐데, 하고 생각했지만 굳이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싫지도 않았고. 사실 이런 모습이 자신 답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방금처럼 말실수를 했던 것도.
그래서 뒤이어 들리는 말에도 웃어버리고 말았고. 왠지 자신이 그 말을 듣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말을 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왠지 이 애라면 그런 말을 해줄 것 같아서.
"고양이 보러 갈래? 나 고양이 자주 있는 곳 알거든."
아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섰다. 공원 속의 샛길로 들어서자 아직은 겨울처럼 앙상한 나무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바닥에는 지난 가을 떨어진지 오래되어 이미 썩어가고 있는 나뭇잎들이 밟혔다. 아람은 어느정도 들어가다가 걸음을 멈췄다. 나무들 사이에 고양이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는 플라스틱 상자집과 밥그릇 물그릇들이 보였다. 아람은 멀찍한 곳에서 멈춰서서 혜성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자주 오지만 너는 처음이니까 애들이 경계할 수도 있어. 여기 내 가방 안에 츄르 있는데 꺼내봐봐."
아람은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카메라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듯, 크로스로 매고 있는 가방을 혜성의 쪽으로 돌려 편하게 꺼낼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카메라를 목에 건 채로 제가 꺼내도 되었겠지만 왠지 두 손에서 카메라를 놓으면 망가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츄르 주고 있으면 내가 찍어 볼게!"
아람이 참치를 잡으로 바다에 나가는 사람처럼 결연하게 말했다. 늘 고양이를 찍으려 했지만 잘 찍히지는 않았다. 지난번에는 SNS에서 하는 망한 고양이 사진 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저 멀리에는 삼색 고양이 한 마리와 턱시도를 입은 듯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턱시도 고양이가 둘의 쪽을 보았는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침에 퇴근했다! 어제는 넘 피곤한 하루였어. 으으... 픽크루 귀엽다고 해줘서 고마워! 어제 밤에 누워 있는데 드는 생각이 그 학원물에 나오는 클리셰가 하나 떠오르더라고. 그 창고 같은 데에 갑자기 문이 고장나서 갇힌다, 라는 상황 말이야. ㅋㅋㅋㅋ 아람이는 매우 싫어하겠지만 굴리는 입장에서는 둘을 창고 안에 잠시 가둬놓고 싶은 마음이.... ㅎㅎㅎㅎ!!! 예를들면 혜성이나 아람이가 선생님한테 창고에 물건을 가져다 두라는 부탁을 받아서 물건을 들고 가는데 우연히 마주친거지. 그래서 도와주려고 같이 물건을 나눠들고 창고에 들어가 창고에 물건을 정리하고 나가려는데 창고 문이 하필 고장이 나서 열리지 않았다...! 라는 전개?
그보다 사진을 배우는 도중에 갑자기 고양이라니. 이건 괜찮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을 하나 너무 딱딱하게 구는 것도 아니다 싶어 혜성은 굳이 그 사실을 입에 담진 않았다. 그 대신 그녀의 가방 속에 있는 츄르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걸 챙겨온 것을 보면 사실상 고양이를 보러 온게 목적이 아니었을까 그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내, 내가?!"
자신에게 츄르를 주라고 하는 그 말에 혜성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물론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이 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겠다는 그 말이 상당히 당황스러웠던 모양이었다. 물론 고양이를 찍겠다고 이야기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필시 자신의 모습도 찍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그는 빠르게 거절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아니. 네가 주면 되잖아. 왜 나야. 고양이들도 나보다는 네가 주는게 더 좋을 거 아니야. 아, 아니. 그게 싫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 뭐, 뭐야. 벌써 오잖아!"
말을 이어가는 와중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에 혜성은 얼떨결에 다리를 굽혀 앉았고 츄르를 살며시 까서 자신의 손가락에 가볍게 쭉 짠 후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내 고양이는 바로 앞까지 다가오더니 킁킁 냄새를 맡는 모습을 보였다. 개가 냄새를 맡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와중, 고양이는 앞발을 들어 혜성의 손가락을 조금 더 아래로 내린 후에 츄르를 낼름낼름 햝기 시작했다. 고양이 혀 특유의 까끌까끌함과 더불어 간질간질함이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고 혜성은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풀려 귀엽다는 듯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귀엽긴 귀엽네."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남기며 그는 반대편 손으로 조심스럽게 고양이의 몸을 쓸어내리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 자신의 표정이 풀린 것을 느끼며 혜성은 이내 헛기침 소리를 내며 표정을 원래대로 돌리려고 했다.
/오늘은 조금 빠르게 퇴근해서 지금 갱신!! 어제는 밤에 근무를 했었구나! 그래서 많이 바빴던거고.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어! 알마주! 아무튼 그 클리셰도 상당히 유명하지! 물론 혜성이도 저 상황이 되면 상당히 싫어하고 꺼리고 당황하겠지만 원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거라고 배웠어. 매트 하나 아래에 깔고 등 기대고 앉아있는 그런 모습이 절로 떠오르네!
삼색 냥이는 경계심이 심한 편이었지만 턱시도 냥이는 개냥이었기 때문에 금새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아람은 츄르를 손가락으로 짜서 야옹이에게 주는 혜성을 잠시 보다가, 얼른 다시 카메라를 들어 초점을 맞추고 세팅을 했다. 처음에는 고양이만 찍었다. 아람은 열심히 찍었다. 하지만 혜성이 나중에 이 사진을 본다면 고양이 얼굴만 나오거나 발바닥만 나오거나 초점이 손에 맞았다거나 등등 여러 문제점이 보였겠지만 아무튼 아람은 열심히 찍었다.
그러다가 고양이를 보고 귀엽다며 웃는 혜성을 봤다가 그 모습도 몰래 사진기에 담았다. 분명 혜성이 나중에 보면 왜 이런 것까지 찍었냐고 뭐라고 할 것 같기는 했지만 뭐, 괜찮아! 아람은 해맑게 웃었다.
까만 야옹이는 츄르 때문에 기분이 좋았는지 혜성의 손길을 받아들이고는 또 혜성의 손에 뺨을 부벼 냄새를 묻히기도 했다. 그리고 츄르를 더 달라는 듯 혜성의 무릎에 몸과 꼬리를 비볐다.
아람은 그런 모습들을 찍다가 혜성이 츄르를 다 먹인 것 같자 카메라를 혜성에게 넘기고는 가방에서 츄르를 하나 더 꺼냈다.
"애기~"
아람이 혜성을 두고 삼색 고양이한테 다가갔다. 츄르 끝부분을 뜯어서 자리에 쪼그리고 앉자 삼색 고양이가 혜성을 신경쓰면서 아람의 쪽으로 다가왔다.
"으응. 처음 보는 사람이라 무서워? 괜찮아~ 이리 와, 애기."
아람이 야옹이를 달래자 삼색 고양이가 아람에게 다가와 츄르를 햩기 시작했다. 아람은 익숙하게 한 손으로는 츄르를 주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고양이의 머리나 등 부분을 쓸어내렸다.
/일찍 퇴근했네! 축하해~!! 다음 일상은 뭘로 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고. 여름이 되면 체육대회도 넘 재미있겠지? 신난다~ 여름이 되면 그것도 해보고싶다. 그 아람이의 친구랑 혜성이 친구랑 사귀게 되었다면서 얘기 듣고 둘이 놀러가고 싶은데 단둘이 놀러갈 수 없으니까 아람이랑 혜성이 친하다는 이야기 듣고 둘을 끌어들여서 아람이 친구네 시골 할머니집에 놀러가는 이야기 같은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린만큼 그녀의 사진을 체크하기 위해서 그는 아람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아마 여러모로 지적점이 많지 않을까 생각을 하지만 그건 차후 지켜볼 일이었다. 그 와중에 고양이가 자신의 몸과 꼬리를 비비는 모습에 혜성의 입꼬리가 괜히 살며시 흔들렸다. 미소를 애써 참으려는 듯 꾹 입가에 힘을 주니 그야말로 어색한 표정이 되었으나 그는 그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그녀가 카메라를 넘기자 혜성은 카메라를 받아들였고 데이터 확인을 통해 찍힌 사진을 확인했다. 여러모로 너무 특정 포인트만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그녀의 문제점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뭔가 귀엽다고 생각되는 특정 포인트를 집중적으로 잡다보니 전체적인 모습이 아니라 이런 느낌이 잡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하며 사진을 넘기는 도중 자신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보며 순간 당황하며 아람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야. 다 좋은...이 아니라 앞의 사진은 일단 넘어가더라도 이 사진은 왜 찍은거야? ...초상권 침해거든? 나 참."
괜히 툴툴거리지만 그는 따로 데이터를 지우거나 하진 않았다. 뒤이어 "그래도 찍은건데 지우긴 뭐하네. ...이번만 넘어갈거야." 식으로 중얼거리는 모습을 아마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혜성으로서는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함부로 지우는 것은 내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보다 너 고양이 잘 대하는구나. ...자주 오나봐? 여기."
조금은 궁금하다는 듯이 그렇게 물으면서 그는 자신에게 붙어있는 고양이를 조금 더 쓰다듬어주다가 그녀를 바라봤다. 적어도 자신보다는 훨씬 능숙해보이는 손놀림이 조금 부럽다고 생각을 하며 입술을 삐쭉 내밀지만 곧 집어넣으며 그는 다시 고양이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일자 선을 유지하며 천천히.
"나쁘지 않네. 오늘 나온 거 말이야. ...딱히 고양이 때문이라던가 그런 건 아니야. 착각은 하지 마."
괜히 작은 목소리로 툴툴거리면서 그는 자신이 메고 있는 크로스백을 연 후에 사진 교본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 교본에는 사진을 찍는 방법이나 좀 더 예쁘게 나오는 방법 등등. 여러가지 방식이 기술되어있었다. 뒤이어 사진집을 하나 꺼낸 후에 그것 역시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까 그건 교본이고 이건 사진집이야. ...예쁜 사진도 예쁜 사진을 많이 봐야 잘 찍히는 법이야. 그런거 있잖아. 그러니까... 역시 실체가 있어야 잘 알 수 있잖아. 안 그래? ...아니야. 그냥 내가 직접 보여줄게. 그대로 있어봐. 찍어줄테니까. ...싫음 말고."
/고마워!! 덕분에 오늘은 좀 푹 쉬는 중이야!! 아무튼 세상에! ㅋㅋㅋㅋㅋㅋㅋ 혜성이는 그거 들으면 내가 왜 가야하는건데? 그런 식으로 반문하지 않을까 싶은걸. 하지만 뭔가 3:1이 되어버려서 이길 수 없으니까 졸지에 알지도 못하는 애의 시골 할머니집에 끌려가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런 표정을 짓지 않을까 싶어지네. 그런 시골 배경이면 산책 나왔다가 비가 갑자기 내려서 나무 그늘 아래에서 같이 비 피하는 시츄레이션도 클리셰라면 클리셰지!
아람은 나중에 사진 보여달라면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표정을 애써 감추려는 표정에 알겠다며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삼색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혜성이 제 사진이 어떤지 확인하는 것을 흘긋 쳐다봤다. 역시나 혜성은 자신이 자기를 찍은 것을 보고 뭐라고 하는 모습을 들었다. 그리고 또 역시 별말 없이 이번만 넘어간다며 말하는 모습에 아람은 다음에도 넘어가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자주는 아니어도 몇 번은 더 찍어도 되겠다.
"응. 여기 자주 와. 으음. 여기도 비밀인데 오늘 사진기 빌려준 값으로 알려줄게. 다른 사람들이 많이 알면 애들이 편하게 밥을 못 먹을 수도 있잖아. 그래도 이 아이들은 사람을 좋아해서 다행이야."
아람은 삼색이를 쓰다듬다가 혜성을 보면서 씩 웃었다. "원래 이런 비밀 잘 안 가르쳐주는데, 너한테는 자꾸 비밀 알려주는 기분이야."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나도 오늘 너랑 만나니까 좋다. 사진 때문이 아니더라도."
아람이 혜성의 말의 본심이 이런 말이 아닐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사진 실력이 느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즐거웠다. 그리고 혜성에게서 교본과 사진집을 받았다. 전문적인 사진 관련 교재는 처음 봤다. 왜 이런 것을 읽을 생각을 못했을까? 너무 유튜브만 찾아본건가 싶었다.
"응, 고마워. 사진? 찍어두 돼~"
아람은 무릎 위에 교본과 사진집을 올려두고 다시금 삼색이를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곤 고양이를 보다가 카메라를 향해 씩 웃기도 했다. 얼마정도 사진을 찍었다, 싶었을 때 아람은 삼색이 머리를 몇 번 긁어주고 일어났다.
"벌써 시간이 한 시간 좀 넘었네. 교본하고 사진집은 열심히 읽고 다음주에 돌려줄게!"
그리고 아람은 혜성에게 도도도 다가가가서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다시 혜성에게 씌워주었다.
"모자 잘 썼어! 역시 네 모자랑 네 카메라를 쓰니까 뭔가 더 잘 찍게되는 것 같고? 사진 기운을 받은 건가? 아님 초심자의 행운?"
아람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혜성에게 말했다.
"나도 사진 찍은 거 보여줘!"
/여긴 어디 나는 누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재미있겠다. 여름이니까 계곡에서 놀기도 하고 수박도 먹고! 비 피하는 거 너무 클리셰 아니냐구 너무 좋아 혜성주 맛잘알 ㅋㅋ큐ㅠㅠ
전에 보건 교사에 대한 비밀 하나. 그리고 이번에 고양이와 관련된 비밀 하나. 이렇게 총 두 개의 비밀을 말한 것에 대한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하며 혜성은 괜히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러다가 너무 무심하게 대답했나 싶은 마음에 조금 움찔하더니 고개를 돌리며 네 탓이라는 것도 아니고. 라는 말을 살며시 덧붙였다. 사실 누구 탓이라고 할 게 있을까? 그냥 이야기를 나누니 그렇게 말이 나온 것 뿐이었으니까.
자신과 만나니까 좋다. 그 말에 혜성은 고개만 살며시 옆으로 돌렸다. 자신이 말한 페턴 그대로지만 직설적으로 들으니 조금 부끄러웠던 것일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카메라만 살며시 만지던 그는 이내 카메라를 자신의 얼굴로 가져갔다. 그리고 세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난 후, 삼색 고양이를 만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파인더에 담았다. 거리를 조절하고, 초점을 정리하니 고양이와 아람의 모습이 둘 다 정중앙에 그대로 담겼다. 이어 살짝 자세를 낮춘 후, 다시 거리를 조절해서 그녀와 고양이의 모습이 좀 더 크게 비치도록 하면서 그는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찰칵. 경쾌하고 맑은 셔터 소리가 들렸고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를 얼굴에서 떼어냈다. 이어 데이터를 확인하는 와중 자신의 머리에 뭔가가 씌워지는 것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 순간 그녀가 바로 눈앞에 있었고 그는 화들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뒤로 두걸음 물러섰다.
"아, 아니. 이건... 가, 갑자기 앞에 있어서 그래! 뭐, 뭐야! 놀래키려는 것도 아니고! 말해두는데 반사작용이야. 반사작용! 놀란 거 아니야!"
괜히 투덜투덜, 툴툴거리면서 혜성은 카메라를 돌려 방금 찍은 사진 데이터를 띄웠다. 사진을 확인해보면 그녀와 고양이가 정중앙에 정말로 예쁘고 선명하게 담겨있었을 것이다. 이어 그는 살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린 후에 자신의 뺨을 긁적이면서 물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아람주야말로 맛잘알인걸! 원래 시골 배경이 나오면 그렇게 비를 피하면서 우정이 쌓이고 그런다고 배웠어! 그러다가 천둥벼락 한 번 치고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도 클리셰이긴 하지! 물론 아람이는 그다지 안 놀랄 것 같기도 하지만.. 혜성이는 움찔거리면서 아, 안 놀랐거든!! 이러면서 툴툴거리겠지만 말이야.
아람은 혜성이 꽤나 놀라 자신도 놀랐다. 그래도 그 놀란 표정이 웃기고, 또 안 놀랐다며 변명하는 것이 더 웃겨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응, 미안미안."
사진은 정말 잘 나왔다. 아람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진짜 잘 찍는다. 진짜 전문가가 찍은 것 같아. 나, 이거 프사로 써도 돼?"
어느새 약속 된 시간은 거의 끝이 났기 때문에 아람은 이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아무래도 더 시간을 많이 잡아먹기에는 혜성에게 미안하기도 했으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나와서 사진까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교본이랑 사진집도 준비해주고.
분명한 점은 사진을 찍는데 오늘 배운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역시 장비빨이라고 장비가 좋으면 실력이 없어도 훨씬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입문용 카메라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람은 혜성을 바라봤다.
/천둥벼락 ㅋㅋㅋ 아람이는 그런 것 보다는 여름이라 얇은 옷인데 비가 와서 옷도 젖고 달라붙고 비칠까봐 신경도 쓰이고, 거기다 비가 오면 쌀쌀해지니까 추워할 것 같아. 감기 걸릴지도 모르고 ㅋㅋㅋ 그렇다고 소나기처럼 죽지는 않겠지만...! 오늘 만남도 가까워지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 슬슬 마무리 해도 괜찮을지도! 아람이 모아둔 돈으로 카메라 살듯...! ㅋㅋㅋㅋㅋ
"편한대로 해. 네가 쓰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말할 순 없는 거잖아. 대신에 내가 찍어줬다고는 하지 마. 여러모로 나도 찍어줘. 나도 찍어줘. 이런 것은 싫으니까. ...뭐, 너 정도라면 가끔은 상관없을 것 같지만. 아. 어디까지나 배우는 입장이니까 서비스야. 서비스. 알겠어?!"
데이터는 나중에 톡으로 보내주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카메라를 카메라집 속에 쏙 집어넣었다. 떨어뜨리지 않게 괜히 더 목에 확실하게 멘 후, 그는 가만히 시간을 확인했다. 한 시간은 이미 한참전에 지난 상태였으니 최소한의 약속은 지킨 셈이었다. 그럼 이제 돌아가도 좋겠지만...
"지금 바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지?"
그래도 주말이고 이렇게 만났으니 상관없을까. 어디까지나 그녀의 일정이 허락한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뭔가 이대로 헤어지기엔 조금 아쉽다고 느끼면서 그는 근처에 있는 카페를 손으로 가리켰다. 화려하거나 유명한 곳은 아니나 조용히 시간을 보내면서 잡담을 나누기엔 딱 좋은 장소였다.
"첫 수업이고 수고했으니까 괜찮다면 음료라도 하나 못 사줄 것도 없어. 어차피 나도 들어가봐야 딱히 할 건 없으니까. ...뭐, 싫거나 일정 있으면 그냥 가도 상관없고."
그렇기에 그는 그녀에게 카페에 가보지 않겠냐고 간접적으로 권유했다. 어찌되었건 오늘 하루는 나쁜 하루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간다면 아마 카페로 가서 음료를 샀을테고, 가지 않는다면 거기서 헤어졌을 것이다.
만난지 얼마 안 된 이긴 했지만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혜성으로서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녀 특유의 친근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런 생각을 온전히 접어버리며 혜성은 그냥 기분 탓으로 넘기기로 했다. 실제로 나쁜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슬슬 상황을 끝내도 될테니 막레 느낌으로 올려봤어! 갈지 안 갈지는 차후 두 사람이 알아서 하지 않았을까 싶네! 아무튼 아람이 입장에선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축축한 느낌은 진짜 싫으니까. 추워한다면 혜성으로서는 정말 많은 고민을 할 것 같아. 그런 상황이면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겠지만 그래도 추운 것은 어쩔 수 없을테니까. 여름 정도면 뭔가 많이 가까워진 상태일 것 같아서 어쩌면 그때면 정 추우면 품이라도 빌려줄테니 들어오라고 할지도 모르겠고! 물론 그때 상황에 따라서 다를 것 같지만! 아무튼 이번 일상도 수고했어! 아람주!
수고했어! 아마 아람이는 같이 카페에 가지 않았을까 싶다! 가서 자기 찍은 사진 피드백도 받고 사진집 같이 보고 설명도 듣고 하지 않았을까? 입문용으로 카메라 사려고하는데 어떤게 좋아? 라고 물어볼 것 같기도하고. 아람이가 카메라 살까 물어보면 혜성이는 어떤 반응이려나? 얼마까지 생각하는데 라고 물으면 300안쪽? 이라고 대답하는 돈 많은 아람이 보여주기...ㅋㅋㅋ
카페에 갔다면 아마 혜성이가 음료나 그런 것은 사줬을거야. 일단 사준다고 자기가 직접 말했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혜성이는! 아무튼 카메라를 사려고 한다는 그 말에 혜성이라면 왜 굳이? 라는 표정으로 아람이를 바라봤을거야. 핸드폰 사진기가 있는데 굳이 사는 이유는 또 뭐냐고 그렇게 묻고 말이야. 300안쪽이라는 그 말에 혜성이는 살짝 당황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메라를 바라봤을거야. 혜성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용돈을 모아서 산 건데 고등학생인만큼 완전 비싼 것은 또 아니거든. 그래서 괜히 토라진 목소리로 사고 싶은거 사던지. 라고 괜히 말 끝을 흐리면서 입술만 아주 살짝 삐쭉 내밀면서 뭔가 모를 분함을 느끼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그냥 음료만 벌컥벌컥 마시지 않았을까 싶어!
일단 날씨가 춥고 우산은 없으니 따뜻하게 해주려면 품을 빌려주는 것밖엔 없으니 말이야. 물론 정말로 빌려주고 난 뒤에는 아마 한동안은 혜성이가 아람이를 피해다니지 않을까 싶네! 이건 그 상황이 정말로 나오면 생각해보자!
그 다음 주에 만나면... 아마 혜성이가 사진집이나 교본은 잘 봤냐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어.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세를 봐주기도 할 것 같아. 이번에는 실제로 해보자고 하면서 이번 일상처럼 뒤에서 봐주거나 손을 잡진 않고 그냥 정말로 편한대로 해보라고 할 것 같아. 그리고 아람이가 사진을 몇 장 찍으면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이건 뭐가 문제다. 또 이건 뭐가 문제다 식으로 정말 하나하나 다 지적하지 않을까 싶네!
앜ㅋㅋㅋㅋ 하긴 아람이는 집이 잘 살아서 씀씀이가 큰 편이긴 해. 하지만 아람이는 뭐랄까 네 카메라를 써보니까 장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면서 이야기를 했을 테고. 혜성이한테 잔소리를 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카메라가 얼마 정도 하는지 모르니까 비싸게 부르지 않았을까 ㅋㅋㅋ 아람이는 뭔가 아차 싶었을 것 같아. 그래서 고민을 할 것 같군. 살까 말까. 혜성이가 사고 싶으면 사, 라고 말하면 살 것 같고 휴대폰 카메라로 연습을 더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당분간은 매주 한시간마다 빌려주겠다 라고 하면 안 살 것 같고.
피해다니는 혜성이 귀엽겠다... 그 쯤 되면 관계가 어떨지 모르겠어서 말을 하기가 쉽지 않네! 그래도 여름방학 시골 놀러가기는 넘 재밌을 것 같아!
아람이 공부하듯 교본 달달 외워갔으면 좋겠다 ㅋㅋㅋ 그런데 실력은 그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답답해하는 혜성이 보고 싶네. 문제점 꼼꼼히 지적해주고 열심히 듣고 하는데도 뭔가 이상한 사진 찍는 아람이. 뭐가 문제지 하고 쳐다보는 혜성이 ㅋㅋㅋㅋ
확실히 그런 말이 나오면 혜성이는 장비보다 일단 기본기부터 확실하게 갈고 닦으라고 하면서 잔소리를 조금 했을 것 같긴 해. 물론 너무 심하게는 아니고 그냥 가볍게 주의주는 느낌으로 말이야. 아무튼 혜성이의 입장에선 조금 진지하게 지금 당장 사진 말고 내 카메라를 빌려줄테니까 좀 더 익숙해지면 사라고 할 것 같아. 괜히 샀다가 못 쓰고 그러면 돈 낭비니 말이야. 적어도 사진 관련으로는 꽤 진지하게 혜성이는 조언하는 편이야. 여기서만큼은 츤데레 부분이 조금 감소할 것 같네.
ㅋㅋㅋㅋㅋ 교본 달달이라니. 그 사실을 알면 혜성이는 아마 진짜 크게 당황해서 뭐지? 얘? 이런 느낌으로 진귀한 뭔가를 본 것처럼 동공이 크게 흔들릴 것 같아. 그리고 말한대로 대체 왜 못 찍는건지 이해를 할 수 없어서 오히려 답답하게 느낄 것 같아. 아니. 너 다 외울 정도로 공부했는데 왜 실전은 전혀 못하는거야? 그냥 셔터만 누르면 된다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자세를 빤히 바라보지 않을까 싶어. 그러면서 또 자세 하나하나 교정해주고. 하지만 이게 매주 반복되고 결국 그게 또 하나의 일상이 되는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하네!
아람이의 사진 실력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센스의 문제라니까. 그래서 아람이의 사진이 그모양 그꼴인거지... 혜성이가 아람이의 미술 실력을 알게 된다면 이해하게 될지도 몰라 ㅋㅋㅋㅋ 그럼 결국 아람이는 카메라를 사지 않게 되겠군. 소비의 유혹에서 빨리 빠져나왔네 ㅋㅋㅋㅋ 매주 만나서 같이 사진 찍다보면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될테고 많이 친해지겠구만.
화이트데이는 일상으로 풀까, 아니면 이것도 썰로 풀까? 아람이는 전에 말했던 것처럼 사탕을 뿌리고 다니는 사탕의 화신이 되어 돌아다닐 것 같아 ㅋㅋㅋ 친한 애들한테는 유리병에 담긴 과일 모양 사탕들 들어있는 거 주지 않을까 싶네. 아마도 그건 아침에 일찍 와서 혜성이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둘 것 같아. 아니면 하교하기 전에 만나서 주거나?
화이트데이 정도는 일상으로 돌려도 좋지 않을까? 나름 3월의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라면 하나니까 말이야. 사실 아람이에게 사탕을 건네주려고는 하는데 괜히 툴툴거리면서 온갖 핑계란 핑계는 다 대고 혹은 주려고 왔는데 바로 도망치거나 하는 느낌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건 직접 상황극으로 돌려서 보여주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거든! 앗. 유리병에 담긴 과일 모양 사탕! 그것을 혜성이에게 준단 말이야? 이건 꼭 받아야만 해!! 하지만 바로 하기보다는 4번째 일상을 아람주가 말한 그 클리셰. 창고 씬을 하고 5번째에서 화이트데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아람주 생각은 어때?
좋아! 그럼 창고도 하고 화이트데이도 하고~ 아무래도 화이트데이 직전 쯤이 되겠네. 한 이틀 삼일 전 정도? 그럼 시간과 장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으려나? 점심시간에 점심 먹고 남는 시간에 아람이가 지나가다가 선생님한테 체육관 창고에 이 물건 좀 가져다 두라고 하면 그걸 아람이가 가져다 놓으려고 한아름 안고 내려가는데 올라오는 혜성이랑 마주쳐서 혜성이가 들어주는 것으로 할까? 점심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아람이를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없었던 것으로 하고. 어때?
딱 좋은 느낌이 아닐까 싶어! 방과후로 해버리면 좀 더 오래 있을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잘못하면 진짜로 못 나가고 그대로 갇혀서 밤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야. 점심시간이면 연락을 해서 어떻게든 조금 더 빠르게 구출될지도 모르는거고. 아람주가 생각한대로 가도 좋지 않을까 싶어. 일단 혜성이는 그 모습을 보면 절대로 그냥 지나칠 애가 아니니 말이야! 다만 무슨 구실로 창고 문을 닫히게 하냐인데.. 누군가가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을 잘못 차서 문에 충돌한 것 때문에 밖으로 열려있던 문이 쾅 닫히고 그 때문에 고장나는 것은 조금 억지려나?
내가 선레를 적으면 사소한 거 구구절절하게 적혀서 레스가 낭비될 것 같으니 혜성주가 선레 적어줄 수 있을까? 그냥 점심시간에 체육관 쪽으로 짐을 들고 가는 것을 보고 도와주는 정도면 될 것 같아! 운동장에서 축구 하다가 아람이가 물건 들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쫓아가도 될 것 같고 아님 계단에서 내려오는 아람이를 보고 짐을 들어주는 것도 좋고. 짐은 체육용품 같은거면 좋을 것 같아!
오케이! 그럼 그 상황으로 알고 선레를 써보는 쪽으로 갈게! 사실 이번엔 내가 선레를 쓰는 타임도 맞으니까!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만큼 말이야! 그럼 지금 바로 써오면 될까? 아니면 시간이 10시가 넘었으니 내일부터 새롭게 돌리는게 아람주에게 편할까? 나는 어느 쪽이어도 괜찮아!
때는 점심시간 때였다. 매점에서 가볍게 간식을 먹은 혜성은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매점 밖으로 나섰다. 매점 안과는 다르게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대체 언제쯤 봄날씨가 시작되려나 싶어 그는 괜히 작게 혀를 찼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직 봄날씨가 오려면 멀었으니 이겨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조금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와중 그의 눈에 낯익은 이의 모습이 보였다. 다름 아닌 아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뭔가 많이 들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고 그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에게 빠르게 달려갔다. 그냥 지나가면 될텐데 왜 자신은 이러고 있는건지. 것보다 요즘 자주 엮이네.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는 괜히 머리를 북북 긁다가 손을 아래로 내렸다.
"야. 문아람!"
이어 그녀를 부르면서 그는 그녀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짐을 들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체육용품 같은데 얼핏 봐도 꽤 무거워보였기에 그는 작게 혀를 차고 그녀를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이쪽으로 몇 개 넘겨. 딱 봐도 많아보이는데 그걸 혼자 다 드냐? 누가 시켰어? 체육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들기에는 좀 양이 많지 않나 생각을 하며 혜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그녀를 시야에서 치우면서 이야기했다.
"...맘 바뀌기 전에 몇개 옮겨. 들어줄테니까. 어디 가는데? ...소화나 시킬겸 못 도와줄 것도 없으니까. 진짜 그 뿐이야."
/생각해봤는데 이 일상은 경우에 따라선 되게 두근두근 이벤트처럼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 (가만히 혜성이 바라보기) 아닐 수도 있겠다.
아람은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잠시 혼자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교무실에서 나오는 체육 선생님과 마주쳤다. 수학 선생님은 짐을 한가득 들고 있었는데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고 계시다가 아람을 보고는 얼굴이 환해졌다.
"아람아, 이것 좀 체육관 창고에 넣어둘래? 선생님이 지금 바빠서. 미안하다."
수학 선생님이 왜 체육관에 가져다놓을 짐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람은 알겠다고 하고는 짐을 받았다. 아람이 짐을 받았음에도 수학 선생님은 여전히 짐이 많았다. 물어보니 다른 교과실에 가져다 놓아야 하시는 모양이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른 사람이 없어 아람은 알겠다며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짐이 무겁긴 했지만 그렇게 못들 정도는 아니였다. 언제 따뜻한 바람이 불려나 하며 걷고 있는데 멀리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최썽~"
혜성이었다. 요즘 꽤나 자주 보고 있는 얼굴이었다. 매주 사진을 배우고 있고 사진에 대해서도 열심히 코칭을 받고 있는데 이전 보다는 확연히 좋아지긴 했지만 뭔가 역시 아직도 잘 찍는다 까지는 아닌 것 같았다. 친구들도 아람에게 그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다고 했다.
"아니, 수학선생님. 왜 가지고 계섰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물건이 새거인 거 보니까 새로 주문한 물건이 아닐까?"
아람은 나름의 생각으로 쌤이 물건을 한아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택배를 엄청 시켰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아, 체육관 창고. 내가 지금 두 손을 다 들고 있어서. 위에 것 좀 나눠 들어줘. 고마워!"
호의는 잘 받기로 하면서 아람은 혜성이 위쪽에 올려진 물건을 들어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혜성이 물건을 가져가자 체육관 창고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체육관 창고는 체육관 안에 조그마하게 있는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었는데 오늘따라 문이 이상하게 활짝 열려있었다.
문이 왜 열려있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람은 아무런 생각없이 혜성과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아람이 바닥의 문틀을 못 보고 걸려 비틀거리다가 열려있는 문에 살짝 기댔고, 그러다보니 문이 더 열렸다가 자동으로 뒤에서 닫혔다.
아람은 별 생각 없이 창고 안에서 물건을 괜찮은 자리에 내려놓았다.
"여기 놓으면 될 것 같은데?"
문이 닫혀 있다고 해도 높은 곳에 작은 창문이 있어서 그 쪽으로 햇빛이 들어와 그렇게 깜깜하지는 않았다.
"들어줘서 고마워. 매점 갈래? 음료수라도 사줄게."
아람이 웃으며 혜성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아람은 조금 당황했다. 문고리를 잡아 돌렸는데 문고리가 철컥철컥 소리를 내는데 열리지는 않았다. 순간 당황해서 잠금 장치를 열었다 풀었다 했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거 아니지? 왜 수학 선생님이 너에게 체육 창고로 짐을 옮기라고 심부름을 시킨건데? 아니. 뭐 됐어. 애초에 알아봐야 별 의미도 없으니까. 도와줄테니까 후딱 끝내고 가자."
이제는 더 이상 최썽이라는 호칭에는 태클을 걸 생각조차 없었는지 그는 굳이 더 말을 하지 않으며 그녀의 물건 중 일부를 제 손으로 들었다. 꽤 무게감이 느껴졌지만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혼자 여기까지 들고 온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나 그걸 표현하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기에 그는 일부러 표현하지 않으며 체육 창고로 향했다.
활짝 열려있는 창고 문을 바라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물론 그 와중에 닫히는 소리가 들렸지만 전혀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물건을 내려놓으며 가볍게 정리했다. 이건 여기에, 그리고 이건 저기에. 분주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움직임을 보이며 물건을 전부 정리한 그는 그녀의 제안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됐어. 애초에 매점에서 뭐 먹고 나왔는데 또 매점 가긴 뭐하잖아. 그냥 다음에 하나 사줄거면 사주던지. 물론 넌 목마르면 매점에 가고. 그거야 뭐 네 자유니까. 그런데 왜 그래?"
뭔가 당황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 그리고 창백한 표정.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며 혜성은 또 왜 그러냐고 물으면서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려고 했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 하는 소리를 내며 몇 번 더 문고리를 당기고 밀었으나 도저히 문은 열리지 않았고 그 역시 방금 아람처럼 당황했다.
"뭐, 뭐야? 왜 문이 안 열려?! 이거 닫히면 안에서는 못 여는 구도였나? 야. 문아람! 너 핸드폰 있어? 있으면 네 친구들에게 연락 좀 보내봐. 나는 내 자리 가방 속에 폰을 두고 와서."
자신 쪽에선 연락을 취할래야 취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는 괜히 문을 쾅쾅 두들겼다. 혹시나 누군가가 소리를 듣고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허나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문이 열릴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괜히 작게 혀를 차면서 그는 고개를 돌려 아람을 바라봤다.
"괜찮아? ...조금만 있어보자. 안 보이는 거 알면 애들이 찾으러 올거야. 혹은 선생님이라던가."
/하지만 혜성이가 여기서 뭔가 두근두근한 모습을 보여주진 않을 것 같은걸! 다른 의미의 두근두근이라니! 그건 또 무슨 두근두근이야! ㅋㅋㅋㅋㅋㅋ
아람은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혜성이 뒤에서 매점이니 뭐라니 하는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혜성이 이상함을 느꼈는지 아람이 손을 뗀 문고리를 잡고 철컥철컥 열어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문을 열리지 않았다. 아람이 마른 침을 삼키며 희게 질린 얼굴로 혜성이 잡은 문고리만 쳐다봤다.
혜성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해야지, 하고 머리속으로는 생각했다. 원래 닫혀도 안에서 열리는 구조이고 잠금장치는 안에 되어 있어서 안에서 못 나가는 장소는 아니라고. 아마도 문이 고장이 난 것 같다고. 휴대폰은 반에 놔두고 와서 나도 연락을 할 수가 없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런데...
마치 혀가 굳은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쿵쿵 뛰고 어지러웠다. 혜성이 문을 쾅쾅 두드리자 움찔 놀라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떨리기 시작하는 손을 가슴께에 부여잡고 가까스로 숨을 들이마쉬었다 내쉬었다 하면서 진정하려고 애썼다.
아람은 괜찮냐는 물음에 감고 있는 눈을 떴다. 누군가 찾으러 올 것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학교이고 우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를 찾을 것이었다. 내가 심부름을 간 사실을 수학 쌤이 아니까.
"으응..."
아람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휴대폰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더 주머니와 품 속을 뒤졌다. 왜 그랬지. 왜 휴대폰을 두고 온 거지. 마치 휴대폰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것처럼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없어. 휴대폰...."
마치 어린애가 된 것처럼 문장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쓰러지지 않고 가까스로 서 있긴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를 손은 치마자락만 손이 희어질 정도로 꾹 잡았다.
/예? 이런 두근두근 입니다만.... 알면서 가뒀다면 제가 못된 사람인가요... ㅎㅎㅎㅎ!
휴대폰이 없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평소와 다른 느낌의 아람을 바라보며 혜성은 의문을 가졌다. 뭔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고 느꼈지만 강한 확신까진 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녀와 알고 지낸 시기가 그렇게 긴 것이 아니었으니까. 치마자락을 꽉 잡고 있는 그녀의 손부터 시작해서 뭔가 크게 당황한 것 같은 분위기까지.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만들었나 생각을 하며 혜성은 가만히 생각하다 아람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폐소공포증이라도 있어? 너?"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아니면 그냥 이런 상황 자체에 겁을 먹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을 하니 혜성은 순간적으로 뚱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자신도 이런 상황은 질색이었지만, 자신과 같이 이렇게 갇히게 되어서? 물론 그건 바보같은 생각이었기에 역시 폐소공포증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하며 혜성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야. 문아람. 너 괜찮아?"
다정하진 않았으나 걱정하는 분위기는 분명하게 목소리에 남아있었다. 그녀의 상황이 평소와 다른만큼 툴툴거리는 것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막상 다정한 목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니.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대신 무서운거면 고개를 끄덕여. 그게 아니라면 고개를 젓고."
그 정도라면 그녀도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저 그렇게 추측하며 그는 일단 그녀를 살피는 것을 우선했다.
/세상에. (동공지진) 아람이 혹시 폐소고포증인거야? 이렇게 갇혀있으면 막 패닉에 빠지고 그런거야?!
아람은 자신을 걱정하는 소리를 들으니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 괜찮아. 괜찮아. 혼자인 것도 아니잖아. 옆에 최혜성도 있고, 또 누군가 우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될 거고 곧 구하러 올거야. 괜찮아.
아람은 속으로 주문을 외우듯이 속으로 괜찮다는 말을 되뇌었다. 그랬더니 조금은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아람은 무섭냐는 말에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무서운 게 아니라... 폐소공포증도 아니고... 그냥, 어렸을 때 갇혔던 적이 있어서. 아, 폐소공포증은 아니야. 좁은 공간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냥, 원래 문은 안에서 잠기잖아. 밖에서 잠기는 게 아니라... 밖에서 잠기면 못 나가니까..."
아람은 횡설수설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아람이 툭 말했다.
"잠시 손 좀... 잡아 줄래? 어지러워서."
아람은 손을 뻗어 혜성의 옷자락을 잡았다. 손이 조금 떨렸다. 말이 트이니 불안해서인지 계속 횡설수설 말이 나왔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원래 이런 일이 흔한 일이 아니잖아. 그, 친구들하고 방탈출 하러 갔는데.... 밖에서 문이 잠기니까, 너무 무서워서. 무섭다기 보다는 불안하다? 그래서. 긴급하게 전화해서 나오긴 했는데... 응, 그러니까 그 때 알았지. 그래서 이런 상황은 피하는 건데..."
아무 말이든 문장이 맞든 안 맞든 뭔가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니까 조금 긴장감이 가라앉았다. 한참을 바닥만 바라보던 것을 잠시 고개를 들어 혜성 쪽을 올려다봤다.
"좀, 이상한가?"
웃음을 만들어내려고 했지만,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도리어 더 위태로워 보였다.
/폐소공포증은 아니야. 엘리베이터도 잘 타고 좁은 곳에도 잘 들어가고. '갇힌다'라는 것에 예민한 거라고 생각해.
어렸을 때 갇힌 적이 있었다는 그 말에 트라우마와 관련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혜성은 결론을 내렸다. 어린 시절의 아람에게 있어서 그 기억은 상당히 끔찍한 것으로 간직된 것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이 상황이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약한 것은 있었으니까.
손을 잡아달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혜성은 그녀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신의 옷자락으로 그녀의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고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서 불안함이 느껴진다고 혜성은 생각했다. 이어 아무런 말 없이 그는 몸을 튼 후에 그녀에게 조금 더 다가갔고 아무런 말 없이 덥썩 그녀의 한쪽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줬다.
"이번말이야."
괜히 무심한듯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그녀의 손을 괜히 더 꼬옥 잡았다. 자신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괜찮다는 듯 그렇게 의사를 밝히는 와중 그녀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탓에 자연히 눈이 마주하는 것을 느끼며 그는 황급하게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상할 게 뭐 있어. 사람마다 약하고 강한게 다 다른 법인데. ...이상할 거 없어. 그냥 조금 다른 것 뿐이야. 그리고 그게 무슨 잘못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살며시 그녀를 안쪽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 문이 열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인만큼 앉아서 기다리는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매트가 있는 곳으로 간 후에 그 매트를 반대편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에 좀 앉을까? 계속 서 있기도 뭐하잖아. 언제 문 열릴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손은 괜찮을때까지 잡고 있어. ...아. 진짜. 짐 옮기다가 이게 뭔지. ...아니. 말해두는데 네 탓이라고 하는 거 아니야. 착각하지 마. 그것만큼은 절대로 아니니까. 나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말만 꺼내봐. 확 놓아버릴 거니까."
말은 그렇게 하나 혜성의 손에는 힘이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적어도 쉽게 놓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행동을 보이며 혜성은 먼저 매트 위에 걸터앉았다.
/그런 쪽은 아니었구나! 갇힌다라는 것에 예민하다라. 확실히 갇히는 것은 은근히 무서우니까. 나도 전에 문 고장난 적이 있어서 갇혀본적이 있는데 압박감 정말로 장난 아니더라. 아이고. 아람아. 혜성이가 옆에 있을거야!
아람은 혜성이 손을 잡자 그나마 마음이 더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무섭다거나 불안하다거나 하는 마음이 조금은 옅어졌다고 해야할까. 정상적으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그러니까 방금까지는 조금 정상적이지는 못했다는 뜻이었다.
혜성의 손은 따뜻했다. 아프지 않게 그렇지만 여기에 있다는 듯 쥐듯이 잡아준 손은 다행히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을 주어 한 결 여유를 주었다. 생각해보면 방탈출 방 안에 들어갔을 땐 친구한테 안겨서 나왔으니,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이렇게 자신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런가..."
이상하지 않다는 그 말에 아람은 위로를 받았다. 사람마다 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니까. 아람은 혜성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기자 보이는 매트 앞에 섰다. 그곳에 앉아서 기다리자고 하는 말에 아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아람이 조금 웃음을 내뱉었다. 한결 편해진 모습이었다.
"알겠어. 내 탓 아니야. 우리가 운이 없었나 봐."
아람은 괜히 손을 꼭 잡으며 같이 매트에 앉았다. 손을 잡으면서 앉아있으려니 어께가 맞닿았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아 찬 기운이 있었기에 혜성의 온기가 좋게 느껴졌다. 한 편으로는 아무래도 남자애다 보니 조금 긴장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손을 빼거나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너라서 다행인 것 같아. 혼자 갇혔으면 정말 울어버렸을지도 몰라. 모르는 사람하고 갇혔으면 더 무섭지 않았을까?"
아람이 웃음을 흘렸다.
"언제 나갈 수 있으려나... 점심시간 한 20분 남았을 것 같고.... 그러면 적어도 20분까지는 아무도 우리를 안 찾을지도 몰라. 적어도 20분은 여기 갇혀 있어야겠네..."
아람이 한숨을 쉬었다. 혜성과 같이 있는 게 싫은 것은 아니었다. 최근 같이 사진도 찍고 얘기도 하고 문자도 주고 받으면서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같이 있으면 즐겁고. 하지만 이렇게 갇혀 있는 것은 너무 불안하고 무섭다.
아람은 괜히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다가 긴장을 풀 겸 혜성에게 말을 걸었다.
"매번 나만 너한테 비밀 얘기 하는 것 같아. 이정도 되면 억울해도 되는 거 아닐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이야기인데...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들으면 옳다쿠나하고 나를 함정에 빠뜨려서 가둬버리고 울게 하는 건 아닐까?"
아람이 작게 웃었다. 진짜 억울하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혜성이 자신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다니지도 않을 거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장난으로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런 것이 두렵기는 했다. 누군가 자신을 가두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니까 너도 비밀 이야기 해줘. 응?"
아람이 불안한 마음을 풀기 위해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애쓰며, 혜성에게 비밀 이야기를 해달라며 맞잡은 손을 살살 흔들며 졸랐다.
"...못하는 말이 없어. 뭐가 나라서 다행이야. 아니 뭐, 확실히 혼자보다는 나을 수도 있지만."
너라서 다행이라는 말에 괜히 툴툴거리는 어투로 대답을 하며 혜성은 저 너머, 뜀틀이 놓여있는 장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나 손은 빼지 않고 그녀가 편하게 잡을 수 있도록 맞춰주며 그는 눈을 잠시 감고 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조용한 공간이라서 그런지 그녀의 목소리가 괜히 더 크게 들려오는 것 같았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 시간동안 갇혀있는것보다 나중에 열리고 난 이후에 둘이서 안에서 뭐했냐는 질문이 들어올게 더 무섭네. 대체 얼마나 귀찮게 할지 예상도 안가고 말이야. ...주변 애들이 귀찮게 굴면 말해줘. 내 쪽에서도 확실하게 말할테니까. 나도 이런저러 말이 나오는 것은 질색이니까."
지금 상황은 자극을 좋아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있어선 최고의 떡밥이나 마찬가지라고 혜성은 생각했다. 최근 친해보이는 두 사람이 창고 안에 꽤 길게 갇혀있었다? 신문부가 인터뷰를 하러 와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혜성은 자유로운 손을 올려 자신의 머리를 북북 긁다가 아래로 내렸다. 그 와중 자신의 손이 살살 흔들리며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억울하고 뭐고 네가 멋대로 이야기하는 거잖아. 그게 내 책임이야?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널 싫어해서 함정을 팔 것 같잖아. 말해두는데 그럴 생각 전혀 없거든?! ...아니. 그렇다고 좋아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대충 알지? 어떤 느낌인지? 적당히 알아들어. 싫어하진 않아."
괜히 말을 얼버무리듯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다시 눈을 감았다. 비밀이야기라니. 그런 것을 해줄 거라고 그녀는 진짜로 믿기라도 하는 것일까. 허나 여기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뭐라도 말할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할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며 혜성은 작게 혀를 찬 후에 그녀를 시야에 두지 않고 다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넌지시 이야기했다.
"비밀 이야기라고 해도 뭘 듣고 싶은거야? 넌? 애초에 내 비밀 같은 것을 알아서 뭐하려고. 그래도 알았어. 뭔가 네 말대로 페어하지 못한 것 같으니까. 하지만 비밀 이야기라고 해도 말이지."
이어 그는 또 다시 깊게 생각하는 듯 하다가 뭔가를 하나 떠올리면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나 요리는 자신 있어. ...화려한 호텔급은 아니어도 가볍게 쿠키를 굽거나 가벼운 디저트 정도는 만들 수 있어. 밑반찬이라던가. 뭐, 이렇게 말해도 도시락을 싸오는 게 아닌 한 증명은 불가능할테니 믿거나 말거나 알아서 해. 자. 됐지? 비밀 이야기."
/갱신이야!! 오늘도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다! 아람주는 퇴근을 했을까? 출근을 했을까? 어느쪽이건 하루 화이팅!
아람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주변을 둘러본다고 해도 뭘 할만한 것들은 없었다. 휴대폰도 없지. 그렇다고 무리해서 탈출 할 수도 없고. 체육관같은 외진 곳에 있어서 일부러 열어주지도 않을 것 같았다. 아, 체육하는 반이 들어오면 우리를 알아 챌 수도 있겠구나! 아님, 체육선생님이 문이 닫힌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열어줄 수도 있을 것 같고.
"응~ 대충 무슨 말인지 알지~"
아람이 작게 웃었다. 그리고 혜성이 비밀이야기랍시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람이 생각하기엔 그건 비밀이라기보다는 자랑이 아닌가? 아람이 조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거 놀리는 건가?
"쿠키를 굽고 디저트를 만들 수 있다니, 그건 비밀이 아니라 자랑이잖아? 비밀이라는 건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비밀이라고 하는거야!"
아람이 다시 고민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음, 남들이 네가 요리를 잘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부끄러운 거야?"
아람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번엔 반대쪽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요즘엔 남자 셰프들도 많고, 유튜브에 보면 요리하는 남자들도 엄청 많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비밀이라기보다는 자랑에 가깝다고 생각해!"
아람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나는 요리나 그런 거 정말 못하는데. 손재주 같은 게 없는 모양이야. 매번 이상한 게 만들어 지더라고. 분명 레시피 대로 했는데도. 그런데 그런 걸 잘한다니 정말 부럽다. 사진 잘 찍는 것도 부럽고. 부러운 게 참 많네."
아람은 혜성의 다른 비밀을 캐볼까 생각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내가 어딘가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에 대한 답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낸 비밀인데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실례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왜 내가 너에게 부끄러워할만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그리고 부끄러운 것만이 비밀은 아니거든? 남들에게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비밀이라면 비밀이잖아. 이것도 나에게 있어선 비밀이야. ...뭔가 알려지면 이거 만들어줘, 저거 만들어줘. 하면서 귀찮을 것 같단 말이야."
그림을 그리는 이가 듣는 리퀘스트 요청과 마찬가지였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알려지면 자연히 자신의 얼굴을 그려달라, 이것을 그려달라, 저것을 그려달라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요리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 나오면 이거 만들어줘, 저거 만들어줘. 등등의 말이 나오지 않아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것이 싫다는 듯 혜성은 자신에게 있어선 비밀이 맞다고 투덜거리듯이 이야기했다.
"...못해도 상관없잖아. 그렇게 따지자면 나도 못하는 것은 많아. ...안 가르쳐줄거지만. 절대로."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을 거라는 듯이 그는 손을 올려 자신의 입에 지퍼를 잠그는 시늉을 했다. 입을 괜히 꾹 다물면서 비밀로 해주겠다는 그녀의 말엔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이런 것을 비밀로 해주겠다는 말을 했으니 확실히 비밀로 해주지 않을까 나름 믿어보기로 하며 혜성은 굳이 그 관련으로 말을 잇거나 하진 않았다.
"뭐, 그래도 네 생일일때 내키면 가벼운 쿠키 정도는 못 만들어줄 것도 없어. 비밀로 정말로 해준다면 말이야. ...아니. 뭐, 그러니까... 비밀을 지켜주니까 그 댓가 같은거야. 다른 의미는 없어."
괜히 그렇게 툴툴거리면서 혜성은 괜히 손에 힘을 줘서 아람의 손을 더욱 꼬옥 잡아줬다. 이어 말을 고민하듯이 입술을 작게 잘근잘근 씹다가 그 행동을 멈췄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힐끗 바라보면서 질문했다.
"이젠 좀 괜찮아? 꽤 안정된 것 같은데. ...아니. 손 놓으라고 이러는 것은 아니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네가 울면 곤란하잖아. 문 열릴 때 내가 울렸다 같은 소리 듣기 싫거든. 난."
하긴 잘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귀찮게 한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고충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면 자신도 혜성이 사진을 잘 찍는다는 이유로 혜성을 귀찮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니 또 자신이 나쁜 사람인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그렇다고 그 말을 취소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자신은 비밀을 이야기해주고 그 시간을 얻어낸 것이 아니던가!
"흠... 궁금한데..."
혜성이 못 하는 것이 뭘까. 궁금하지만 아람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혜성이 입을 잠그는 제스춰를 취하면서까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생일날 쿠키를 구워주겠다는 말에 아람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 생일은 9월 3일인데! 너는 생일이 언제야?"
아람이 꼭 잡는 손을 느끼며 혜성의 괜찮냐는 말에 대답했다.
"응, 뭔가 이야기하니까 좀 나은 것 같아. 그냥, 밖에서 문이 잠겼다는 게 조금 흐릿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아무 일 없이 방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람은 그래도 창고 안에서 말이 끊기는 것이 싫은 건지 다시 재잘재잘 말을 걸었다. 손도 놓지는 않았다.
"7월 5일.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굳이 기억할 건 없어. 나도 내키면 기억할거니까. 네 생일."
말은 그렇게 할지도 모르지만 손가락으로 9와 3을 여러 번 표현하면서 기억하려고 하는 듯한 모습을 어쩌면 그녀는 봤을지도 모른다. 물론 못 봤다면 못 본 것이겟지만. 설사 봤다고 하더라도 혜성은 물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기억하려고 한다는 사실은 절대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아무튼 좀 나은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말에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허나 그 미소를 곧 지워버리면서 괜히 흐응-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하늘로 들어 자신의 표정을 감추려고 했다. 직후 나오는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무심하면서도 그다지 다정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다행이네. ...아니. 그러니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네가 괜히 울거나 하면 내가 오해를 받으니 말이야. ...그리고 뭐, 기왕이면 나쁜 것보다는 좋은 쪽이 나으니까. 그 뿐이야. 진짜 그 뿐이야."
걱정했다는 말은 굳이 입에 담지 않으면서 헤성은 괜히 흥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홱 돌려서 완전히 그녀의 모습을 시야에서 지워버렸다. 자연히 손이 닿아있는 감각이 그대로 손을 통해 전해졌다. 손이 자신보다 작구나부터 시작해서 생각보다 꽤 부드럽다 같이. 참으로 여러 복합적인 생각을 하면서 그는 곧 들려오는 물음에 대답했다.
"그냥 요리책 보고 익혔어. ...계란 요리가 전문이고. 뭐, 그렇다고 다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아무튼 계란 들어간 가정요리 같은 것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어. 네 방금 말 대로 요리 잘하는 남자가 많아지기도 하고 그... 은근히 인기 좋잖아. ...아니아니. 그렇다고 내가 그러고 싶다는건 절대로 아니야. 착각하지 마.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아니니까!"
말을 이어가다 아차 싶었는지 헤성은 바로 빠르게 부정에 부정을 이어가며 고개까지 도리도리 저었다. 뒤이어 말을 또 다시 고민하던 그는 그녀에게 넌지시 질문 하나를 조심히 던졌다.
"...너는 왜 이런 나를 보고도 계속 친하게 지내는거야? ...너도 알겠지만 난 다정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계속 툴툴거리잖아. ...안 지쳐? 안 힘들어? 안 짜증나?"
/토요일...에도 일을 한다니. 교대근무..으앙. 안돼요! 사장님!! 아람주를 쉬게 해주세요!! 8ㅁ8 아무튼 그러면 주말에 일 잘하고 푹 쉬기야!
"7월 5일이면, 더하면 12이까 열두달이 생각나고, 빼도 2가 남고, 어린이날로부터 두 달 뒤네? 칠오, 치로, 치료, 그러고보니 네가 나 치료해줬었지. 이제 다 나았어!"
아람이 날짜를 암기하려고 연상하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서로 손을 쥐지 않은 왼손을 들어 보여줬다. 상처는 흉도 없이 싹 나아있었다.
혜성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가 다시 숨기는 것을 보면서 아람은 모르는 척 해주었다. 그래도 가끔 나오는 그 미소가 혜성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툴툴거리는 말에 웃어버렸다.
"또 내가 울면 꿈자리가 사나울 테니까?"
혜성의 레파토리를 굳이 꺼내 놀리며 아람이 말했다. 그리고 혜성이 하는 말을 주의깊게 들었다. 그러다 계란 요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 계란 요리 엄청 좋아하는데. 스크램블, 계란찜, 계란말이... 직접 해먹지는 못하지만 브런치 같은 거 있잖아. 수란이랑 빵이랑 샐러드 같은 거. 토마토도. 계란하고 토마토는 정말 잘 어울리지 않아? 토마토계란볶음이나, 그게 아니더라도 계란하고 토마토 케찹 같은 거."
아람은 혜성의 뒷말을 듣고 푸핫 웃었지만 괜히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그러니까, 요리를 잘하는 인기있는 남자가 되고 싶은 거구나! 응응, 제대로 잘 알아 들었어. 아람은 작게 쿡쿡 웃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에 아람은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너는 내가 지치고 힘들고 짜증나서 너한테서 멀어졌으면 좋겠어?"
아람은 혜성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어떤 대답을 하든, 아니면 아무런 말을 안 하든 상관없이 그냥 접은 채로 두었던 다리를 쭉 펴고는 그 발 끝을 바라봤다. 그리곤 조금 혼잣말 처럼 말했다.
"말이란 너무 간사해. 사람들은 거짓된 말에도 금방 속잖아. 진실된 말을 믿지 않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말이라는 건 잘 안 믿어. 넌 툴툴대면서도 나한테 사진 찍는 것도 가르쳐주고, 나 넘어지니까 부축도 해주고 치료해주고, 짐도 들어주고, 또 지금처럼..."
아람이 혜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살짝 웃음기 있는 얼굴이었다.
"손도 잡아주잖아?"
아람이 다시 웃으면서 열리지 않는 문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네가 하는 말 대충 제대로 알아듣고 있으니까."
아람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조금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네가 그런 방식으로 말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기는 해."
그랬다가 바로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아냐. 우리 그런 말을 서로 할 정도로 가깝지는 않으니까."
아람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사장님은 너무 높은 곳에 계셔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토요일은 풀로 일하고 일요일은 풀로 쉬는 날이야! 월요일은 출근하지만...
"시, 시끄러워! 어느쪽이건 상관없잖아! 너하고는! 아무튼 다 나았다면 다행이네. 하기사 시기상 나을 때도 되었으니까. 아니. 그... 파트너였으니까 에프터케어로서 조금 신경쓰인 것 뿐이야."
리시브 연습은 좀 이전의 일이었으니 지금 이 시기라면 다 나아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아무튼 다 나았다는 말과 더불어 다 나은 왼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조금 안심했다는 듯이 안도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흉지지는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젠 쓰린 것도 없어졌다는 것. 그 두 개가 그를 완전히 안심시켰다. 물론 그것을 티내려고 하지 않으나 어쩌면 조금은 티가 났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서 멀어졌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혜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멀어진다면? 아주 가끔 귀찮은 면도 있는 그녀였으니 적어도 그런 것은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바로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아니.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가능하면 멀어지지 않아줬으면 좋겠다는 것. 그냥 지금처럼 친근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것. 많은 생각이 들었으나 굳이 그 사실을 입에 담진 않던 그는 정말로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딱히 그러라고 한 적은 없잖아."
말이란 너무 간사하다는 말에 혜성은 어느 정도 공감했다. 뒤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침묵을 지키던 그의 눈에 아직도 잡혀있는 그녀의 손에 눈에 보였다. 괜히 잡혀있는 손의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간지럽히듯 행동하다 손가락 움직임을 멈추며 그는 눈을 감고 말을 이었다.
"뭘 묻고 스스로 답을 내놓고 그래? 이유는 없어. ...그냥...그냥... 커가면서 이렇게 되었어. 특별한 이유 같은 거 없어. 딱히 상관없잖아. ...알아. 되게 번거로울지도 모른다는 거. 하지만 이게 나인걸 어쩌겠어. 그러니까... 그냥 이대로 지낼거야. 싫으면 떨어지라지."
괜히 중얼거리듯 툴툴거리면서 그는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르나 그에 대해서 굳이 자세하게 말할 생각은 그에게도 없었다. 아니. 사실 이유따윈 없을지도 모른다. 너는 왜 상냥하게 말해? 너는 왜 그렇게 착하게 행동해? 라는 물음을 누군가가 듣는다면 그 사람은 뭐라고 답할까? 그냥. 원래 그런데.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혜성 역시 거기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역시 너도 번거로워? 이런 거."
그 물음은 조금 길게 침묵을 지키다가 흘러나온 질문이었다. 이내 물음을 끝낸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답하지 않아도 좋다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물어본들 그다지 영양가 있는 답이 나올 것도 아니었다.
"참고로 나는...싫진 않아. 조금 귀찮을지도 모르는 네 성격."
/그래도 일요일은 쉬는구나! 그나마 다행이야! 그럼 일요일엔 늦잠을 푹 자기야! 그건 그렇고 이 일상. 뭔가 생각보다 되게 진지한 느낌으로 바뀌어가네. 지금 이게 4번째 일상이지 않던가? 하기사 일상을 돌리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양한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