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은 손등을 간지럽히는 것에 살짝 웃다가 별 이유는 없다는 그 말에 픽 웃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싫지 않으면 안 떨어져도 되는 걸까? 하는 시덥잖은 생각을 했다. 사실 사람이 행동하는 것에 이유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람은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것도 과거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데 혜성이 번거롭냐고 묻는다.
"..."
그래놓고는 다시 고개를 저으며 혜성은 싫지 않다고 말을 한다. 아람은 자신도 같은 마음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응, 나도 그래."
그 때, 갑자기 문이 쾅쾅쾅 두드려졌다. 아람이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했다가 이어지는 목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에 누구 있니?"
체육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아람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네! 저희 여기 갇혀있어요!"
"조금만 기다려. 문 부수고 들어갈 거니까."
아람은 아직 잡고 있는 손을 내려다봤다. 아무래도 계속 잡고 있으면 오해를 받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럴테니까.
"고마워."
아람이 그렇게 속삭이듯 말하고는 손을 슬며시 놓았다. 곧 문이 열렸고, 자신을 찾아 걱정했던 친구들을 보니 현실감각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그래서, 마치 방금까지의 일이 비현실적인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게 역시 어두운 느낌의 창고 안은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 만드니까. 게다가 손도 잡았잖아(중요) 마무리 느낌으로 이정도가 깔끔하지 않을까 해서! 우리 며칠 안 되었는데 엄청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고! '벌써' 4번째 일상이라고 생각해 ㅋㅋㅋㅋ 으으 혜성이 너무 귀엽고 귀엽다. 아람이도 혜성이도 귀여워....
갑자기 문이 쾅쾅쾅 두들겨지는 소리에 혜성은 깜짝 놀라 앞을 바라봤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는 얼떨결에 자신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끌려가는 것보다는 자신이 앉아있으면 그녀의 손이 아플지도 모르기에 나오는 무의식적 반사행동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체육 교사였고 곧 열릴거라는 말에 그는 안도하면서 그녀를 바라보면서 웃어보였다.
"정말 다행인데? 그렇게 오래 갇혀있지 않았으니 말이야. 이제 괜찮아. 괜찮..."
순간적으로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인지하고 있는지 그는 고개를 홱 돌린 후에 헛기침소리를 냈다. 물론 딱히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도 모르게 그런 표정을 보여버렸다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는지 그는 입을 꾹 다물어보리면서 시선을 홱 피해버렸다. 아주 잠깐,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것처럼 보였다면 기분 탓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내 손을 놓는 감각에 그 역시 덩달아 손을 놓았다. 교사 앞에서 손을 잡을 수도 없는거고 더 이상 손을 잡아야 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문이 열리고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를 걱정하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조용히, 정말로 조용히 그곳에서 자리를 비키려는 듯, 아무런 말 없이 앞으로 나아가 창고 밖으로 나섰다. 지금 모두의 신경은 그녀를 향해 있었으니 지금은 자신이 슬쩍 빠지는 것이 맞을테니까.
"......"
설사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 누구의 말에도 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앞만 바라보며, 그저 그렇게 앞만 바라보며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지금은 자신이 아니라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를 위로해주고 안심시켜줄테니까. 자신보다는 다른 이들이 안심시켜주는 쪽이 그녀에게도 좋을테니까. 그저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손을 잡은 것이 중요한거야? 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손은 두 번째 일상에서도 잡긴 했었다구! 물론 지금과는 완전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말이야!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서 막레를 썼어! 아무튼 정말 일상 빠르게 많이 돌리긴 했네. 벌써 4번째 일상이니까 말이야. 하기사 매일매일 돌리고 아무리 못해도 이틀만에 일상을 끝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다! 아랆이도 그만큼 귀엽고 예쁘고 귀여워!!
수고했어! 매번 막레는 혜성주가 하는 것 같네? 굳이 막레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상관은 없지만! 엄청 다른 느낌이잖아 그거 ㅋㅋㅋㅋㅋㅋㅋㅋ 엄청 많이 빠르게 돌렸다고. 이게 다 혜성이가 귀엽고 멋있고 혼자 다 해서 그런 것이다.... 물론 혜성주도 너무 답레도 그렇고 잘 적어줘서 너무 돌리는 거 행복하고 재밌고 즐거워!! 일상 빠르게 빠르게 가는 것도 딱 적당한 속도인 것 같아서 좋아. 역시 한 일상을 너무 길게 하는 것보다 자주 보는 게 더 좋지! 다음은 화이트데이인가! 그걸로 가기 전에 잡담 타임?
사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는 것 같네! 그래도 처음엔 내가 막레 안했는걸! 확실히 엄청 다른 느낌이지! 그때는 치료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잡은 거라면 이건 그럴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잡아줬다라는 거니까! 어. 아닌데! 아람이도 귀엽고 예쁘고 멋지고 밝고 햇살이라서 그런건데!! 아무튼 나랑 돌리는 것을 재밌어해줘서 고마워! 나도 일상 돌리면서 즐겁고 그래! 물론 경우에 따라선 일상이 조금 길어질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짧게 끝낼 수 있는 것은 짧게 끝내서 이것저것 하는 것도 좋은 거니까! 음. 일단 지금은 잡담타임으로 가보는건 어떨까? 너무 빠르게 팍팍 돌리는 것보다는 때로는 조금 쉬는 타임도 중요할테니 말이야.
맞아 너무 열심히 돌리긴 했어. 나는 혜성이랑 아람이랑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너무 보기 좋고 그래 ㅋㅋ큐ㅠㅠ 귀여운 아이들. 같이 있으니까 더 귀여운 것 같다. 다음 일상은 화이트데이인가. 언제쯤 보는 게 좋으려나. 아, 잡담을 해야 하는데 벌써 다음 일상을 생각해버리네 ㅋㅋㅋㅋㅋㅋ 잡담. 어떤 티미를 꺼내는 게 좋으려나. 고민고민
ㅋㅋㅋㅋ 다음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잡담의 일부인걸! 화이트데이라. 사실 아침부터 혜성이는 아람이에게 사탕 주려고 계속 반을 왔다갔다 할테니까 그 모습을 아람이가 목격하고 다가왔다는 것도 좋을 듯 한데. 물론 아람이가 바쁘다면 저건 힘들수도 잇겠지만 말이야! 나도 두 캐릭터가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상당히 보기 좋아!
그럼 점심 먹고 수업 다음 쉬는 시간에야 겨우 마주치는 것도 괜찮겠다 ㅋㅋㅋㅋ 오전 쉬는 시간을 아람이 때문에 다 날려버리는 것지만 그게 더 극적이고 재밌을 것 같네! 아람이는 오잉 하는 느낌일지도! 아람이도 혜성이 사탕 줘야해서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계속 반에 없다 했더니 엇갈리는 거였고 ㅋㅋㅋ 전에 여름 시골 가는 거 생각하다보니까 수영장도 생각나네~ 수영복 입고 그렇겠지! 하지만 둘이 수영장을 갈 일이 없어! 내년 여름에는 또 공부하느라 바쁠거 아냐!
서로가 서로를 찾아다닌다고 엇갈리는 느낌이라니. 이게 또 좋은 거 아니겠어? ㅋㅋㅋㅋ 물론 혜성이는 아람이와 만나는 순간부터 시련의 시작이겠지만 아마 알아서 잘 할거라고 믿겠어! 그 어떤때보다 당황하고 솔직해지지 못하는 혜성이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수영장이라. 확실히 수영장은 수영복을 입어야 들어갈 수 있으니까. 음. 그럼 아예 강제로 보낼만한 상황을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어? 누군가 한 명이 같이 수영장이나 워터파크를 가자고 이야기를 하면서 멤버를 소집하고 거기에 혜성이와 아람이가 참가하겠다고 했다가 약속 당일날 만나게 되었다던가. 만약 둘만 따로 보내고 싶은 거라면... 여름 때 어떤 관계냐에 따라서 정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 사실 개인 사심으로는 둘만 보내고 싶긴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나는 순간부터 시련이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기대된다. 나도 개인 사심으로는 둘이 보내고 싶긴 해! 하지만 여름에 둘이 어떤 관계가 될 지 모르겠는 걸. '어떤 관계'라는 것이 가능할까. 가을까지 불가능한 거 아냐? ㅋㅋㅋㅋㅋㅋㅋㅋ 일상이 어떻게 되느냐가 관건이지만 말이야! 나름 여름 때 쯔음엔 아람이 비설도 더 털고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길 원하기는 해! 지금도 조금씩 떡밥을 털고 있긴 하지만. 학교 축제도 궁금하다. 여름에 학교 축제 하지 않으려나. 아람이네 반은 뭐하고 혜성이네 반은 뭐하고 궁금하다. 둘 중 한 반은 귀신의 집 했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다른 반이 귀신의 집을 해야 둘이 귀신의 집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람이 반마다 다 가면 주는 도장 올클리어 하고 싶은데 친구들이 다 귀신의 집 가기 싫다고 하거나 남자친구랑 가버려서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혜성이 끌고가는 상황 보고싶다...!
글쎄. 사실 나는 특별히 어떤 관계를 노리기보다는 그냥 흐름대로 돌리고 있는 편이라서 어쩌면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지금과 비슷한 느낌일지도 모르지! 내 특성이긴 한데 어떤 관계를 굳이 노리기보다는 그냥 캐릭터의 흐름에 맞추는 편이거든. 그래서 어느 순간 갑자기 화를 내기도 하고, 어느 순간 갑자기 고백을 하거나 어느 순간 갑자기 더 친근해지거나 그럴 때가 있더라. 그래도 나름 제어는 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떡밥은 확실히 보이는 것 같아. 허나 아직까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감은 오질 않네! 뭔가 좀 어둑어둑한 뭔가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보통 학교 축제는 가을에 많이 하는 것 같던데... 하지만 여름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 생각해보면 내가 중학생때는 여름에 학교 축제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 헤깔린다. 아무렴 어때! 혜성이네는 아마 카페 쪽을 하지 않을까 싶어. 혜성이가 직접 디저트 만들고 내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 물론 자기가 직접 지원한건 아니고 친한 친구가 혜성이 이런거 잘해! 라고 말해서 얼떨결에 주방에 서게 되고..괜히 툴툴거리면서도 낼 것은 다 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괜히 카운터로 나와서 애써 미소짓다가 아람이가 오면 순간 뜨끔하지만 그래도 접객을 해야하니 정말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지 않을까 싶어. 아무튼 아람주가 원하는 상황대로라면 다른 반이 귀신의 집을 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 그래야 둘 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입장할수 있을테니까!
나도 흐름대로 하다보니 어찌어찌 이렇게 듸네 ㅋㅋㅋ 아람이도 속내를 그렇게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다보니 정말 상당히 오랫동안 같은 상황일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보면 그게 청춘인 것 같기도 해.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것 말이야. 내 생각에는 학생회의 마지막 여름 행사를 크게 하고 그 다음 다음대 학생회를 삡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여름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면 좋지 않을까?
아람이 카페 가서 혜성이가 부들부들한 웃음 짓는 것 보고 왜 나한테는 그렇겧떨떠름하게 웃냐고 장난쳤으면 좋겠다 ㅋㅋㅋ 방금 여학생한ㄴ테는 웃었으면서 나한테는 떨떠름하다고 막 ㅋㅋㅋ
아람이네 반은 뭘 해야하지? 영화 찍어서 영화 상영하는 것도 괜찮겠다. 중간고사 끝나고 촬영한다고 한창 바쁠지도 모르겠어. 왠지 싫어할 것 같지만 또 하기는 잘 할 것 같아. 다른 남자애랑 로맨스 영화 찍는다고 하면 혜성이는 어떤 반응이려나? 하지만 사실은 공포 영화 찍는다고 하면 어떨까? 궁금하다.
사실 혜성이도 비슷하다면 비슷하니까.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자꾸 돌려서 말하고 혹은 숨겨버리고 그런 것이 일상인 이기도 하고. 물론 이 관련으로는 딱히 비설은 없고 정말로 성장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라는 느낌이야. 물론 아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아람주의 말을 들어보니 그때 상황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되네! 좋아! 그럼 그렇게 잡자!
ㅋㅋㅋㅋㅋㅋ 혜성이는 그 말을 듣고도 애써 웃으면서 고객님. 일하는 도중에 사담은 곤란합니다. 주문해주시겠어요? 라고 애써 표정을 관리하면서 이야기할 것 같아. 되게 얄미운데 그래도 고객으로 왔으니까 뭐라고 말은 못하고 나중에 자유로운 시간때 괜히 투덜투덜거리지 않을까 싶어.
다른 남자애랑 로맨스 영화라. 글쎄. 혜성이는 그 관련에 대해서는 적어도 현 시점에선 크게 반응을 보이진 않을 것 같은데. 그냥 무리하지 마라 정도? 공포 영화를 찍는다고 해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남의 반의 전시물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할 순 없으니 말이야. 물론 어디까지나 현 시점이야! 이후에 좀 더 가까워지거나 혹시나 의식하게 되면 괜히 질투하는 모습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직 모르는 거니까! 아무튼 정말로 잘 자길 바랄게! 아람주!
좋아~ 축제 일정은 그 때로 잡고. ㅋㅋㅋㅋㅋㅋ 혜성이 표정관리하는거 넘 귀엽겠다.... 그걸로 일상 시작하고 기다렸다가 귀신의 집도 가고 영화 상영도 같이 보고 하면 좋겠네! 아람이는 주연배우로 수고했다고 축제날은 일 안돕고 자유의 몸인 상황일 것 같아 ㅋㅋㅋ 영화 촬영은 한 4월 쯤에 하게 되려나? 주말마다 촬영한다고 못만날 수도 있겠넹
때는 화이트데이였다. 슬슬 꽃샘추위가 사라지고 따스한 봄기운이 미세하게 느껴지는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학교 안은 분주한 곳은 분주하고 조용한 곳은 상당히 조용했다. 이런 기념일에는 그래도 챙겨야지라면서 챙기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어린애도 아닌데 이걸 왜 챙기냐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들도 있었다. 혜성은 굳이 말하자면 전자에 가까웠다. 딱히 큰 의미는 두지 않았으나 나름 재미나 예의, 인맥관리 등으로 친구들에게는 가볍게 사탕을 선물하는 일이 많았다.
등교하자마자 자신의 주변 친구들에게 사탕을 선물하고 남은 것은 편의점에서 산 색색의 사팅이 들어있는 자그마한 사탕통 하나였다. 다른 이들에게도 다 같은 것을 선물했기에 특별하게 남은 하나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주는 것을 고민하는 이유는 하필 그 사탕의 주인이 다름 아닌 아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사야 할 것 같아서 사기는 했는데 이것을 줬을 때 과연 주변 반응이 어떨까라는 것이 그에게 있어선 문제였다. 창고 사건때 최대한 빠르게 빠져나가긴 했으나 그래도 모두의 시선을 피할 순 없었고 몇명이 대체 아람이와 무슨 사이냐고 묻는 통에 한숨을 한두번 쉰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요즘 주말에 자주 만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으니. 지금 이 상황에서 이 사탕을 선물하면 과연 무슨 말이 나올지가 그로서는 조금 귀찮게 느껴졌다.
'그래도 안 줄 순 없으니까. 그래. 안 주면 왜 안 주냐고 시끄럽게 굴지도 모르잖아. 단지 그 뿐이야. 진짜 그 뿐이야.'
그렇게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하며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아람의 반으로 향했다. 아무런 말 없이 문을 열고 교실을 스윽 둘러봤지만 아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자리가 어딘지도 모르는만큼 몰래 사탕을 넣고 갈 수도 없었기에 그는 작게 혀를 차며 일단 자신의 교실로 돌아갔다. 계속 서성이면 필시 이상하게 보일테니까. 허나 그 다음 시간도, 또 그 다음 시간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간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고 느끼며 그는 이번엔 크게 혀를 찼다.
그렇게 오전 쉬는 시간을 다 보내고 점심시간이 되었고 그는 갈등했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자신이 정말로 이 사탕을 줘야하는걸까? 이쯤 되면 그냥 안 주는게 맞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는 마지막으로 다음 쉬는 시간에 한 번 더 가기로 마음 먹었다. 이번에도 없으면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는 다음 쉬는 시간만을 기다렸다.
수업을 마치고 쉬는 종이 치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후에 바로 그녀가 있을 교실로 향했다. 이번에도 없는 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그로서는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이번엔 교실에 그녀가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포착되었다. 아니. 왜 또 이번엔 있는건데?!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며 그는 당황하며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으나 그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느끼며 그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정말 당황스러운 타이밍이 아닐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 얼마나 즐거운 울림인가. 아람은 이 나름 재미있는 이벤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미 사탕을 한아름 사놓은 참이었다. 그리고 이미 등교하자마자 츄파츕스 한 통을 따서 반 아이들에게 왁자지껄 나누어주었다! 물론 친한 친구들을 위한 사탕이 들어간 유리병도 따로 준비해 두었다. 유리병 안에는 과일 모양의 사탕들이 들어가 있는데 귤조각 모양 사탕에는 귤맛이 나고 레몬 조각 모양 사탕에는 레몬맛이 나는 그런 사탕이었다. 혹시나 몰라 여분을 더 준비할 정도로 넉넉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다른 반에 있는 친구들의 선물과 츄파춥스 한 통(두 통을 준비해왔다)을 들고 쉬는 시간마다 순회를 했다. 물론 아는 1학년 동생들이나 3학년 언니(특히 학생부회장 언니)를 찾아가기 위해 원정(한 층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츄파춥스 하나씩을 돌리고 또 비어있는 츄파츕스 통에는 친구들이 주는 사탕들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돌아오는 길목마다 아람은 혜성이 있는 옆반을 힐긋 보았으나, 이상하게도 혜성은 보이지 않았다. 아람은 혜성의 것도 준비를 했었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하곤 했었다. 화이트데이라고 그렇게 돌아다닐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잠시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점심시간도 왁자지껄하게 보내며 아람은 거진 얼굴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탕을 준 것 같다며 뿌듯하게 오후 첫 쉬는 시간을 맞이했다. 이번엔 좀 쉬어야지, 라고 생각하는데 교실 앞쪽 문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유리병이 담긴 종이가방을 들고 호다닥 앞문 쪽으로 향했다.
왠지 혜성이 뒷걸음질을 치는 것 같았으나, 반가우니 그 정도는 아량 넘치게 넘어가 주었다. 어느정도 가까이 다가가자 아람에 혜성을 불렀다.
"최썽~"
아람은 종이가방을 등 뒤로 숨겼다. 이미 달려오면서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계속 반에 없더라? 찾았었는데."
아람이 히히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텀이 좀 길 수도 있을 것 같아~~ 저녁 맛있게 먹었나 모르겠네. 내일 쉬겠구나. 부럽다 큽....
눈이 마주친 것을 인지한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는지 곧 혜성의 눈에 그녀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와중에 종이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에 그는 괜히 주변 눈치를 가만히 살폈다. 지금 이 상황은 자신에게 있어서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아닌가 생각을 하며 혜성은 자신도 모르게 챙겨뒀던 사탕통을 살며시 뒤로 감추며 두 손을 뒤로 향했다. 누가 봐도 참 어색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녀 역시 등 뒤로 숨겼으니 쌤쌤이었겠지만.
"뭐, 뭐. 나를 왜 찾는데? 말해두는데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거든? 그러는 너야말로 엄청 바빠보이던데?"
자신을 찾았다는 말에 괜히 움찔하며 그는 다시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이곳을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주목받는 것은 질색이라고 생각을 하며 여기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빨리 볼일을 끝내야할지를 고민하며 혜성은 다시 주변 눈치를 가만히 살폈다.
"그, 그래서 뭔데?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길래 찾은건데?"
사실 어느정도 짐작이 가는 것은 있었다. 화이트데이니까. 아마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사탕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방금 전에 종이가방을 뒤로 숨기지 않았던가. 그와 동시에 그는 순간적으로 아차싶어 시선을 회피했다. 그냥 적당히 편의점에서 사온 것과 너무나 크게 비교되는 것을 받는 것은 아닌가하는 자의식과잉에 가까운 무언가를 생각하기도 하며 그는 작게 혀를 찼다.
"일 분 기다려줄게. 다시 말하지만 난 바쁘니까 말이야. ...아니. 뭐, 그냥 그렇다는거야!"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빠르게 정정을 하면서 그는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회피했다. 뒤로 숨긴 사탕병을 잡고 있는 손의 손가락이 가볍게 부들부들 떨렸다.
/괜찮아! 텀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니까! 아무튼 저녁은 맛있게 먹었어!! 아무튼 아람주도 내일 하루 빨리 지나가고 푹 쉬길 바랄게!!
아람은 혜성을 쳐다보다가 혜성의 등 뒤로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실눈으로 혜성의 속내를 가늠해보았다. 등 뒤에 있는 것은 분명 사탕이 틀림없었다. 아람은 흐음, 소리를 내다가 이내 혜성이 원하는대로 대답을 해주었다. 그가 원하는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야, 이거 공고 나왔다는 거 알려주려고~"
아람이 종이가방에서 종이팜플렛을 꺼내서 건네었다. 거기엔 올해 학교 근처 수변공원에서 벚꽃 사진전을 연다는 내용의 홍보 종이었다. 그곳에는 벚꽃 축제 기간동안 이전 수상작들을 전시하고 올해 축제기간 동안 찍은 사진을 응모하면 심사 후 포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내년에 그 작품도 전시가 된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 뒷면에 아람이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 주변에는 내가 이 공모전 제대로 해보려고 너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하고 있다고 해놨으니까. 너 사진 잘 찍는 건 다들 알고 그래서 이상한 오해는 안 하도록 얘기해놨어~
친구들은 아람의 기행(?)이 한 두번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매번 흥미따라 이것저것 해보는 아람이었기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남녀 상관 없이 친하게 지내고 했었으니까.
"흠... 벌써 일분이 지났네. 누구 찾아온 거야? 내가 불러다줄까? 아님 누구한테 전달해줄거라도 있어?"
아람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야 혜성이 아람의 반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으니 당연한 추론이었다. 내심 자신이라고 생각하곤 있는데 저렇게 뻘뻘거리니 더 웃음이 났다. 자신에게 줄 게 아니면 말고~ 내 사탕이나 줘야지, 라는 생각이었다.
"누, 누, 누가 널 찾아와?! 무슨 이유로?! 나, 나도 그냥 이것저것 듣는건 있거든?!"
정곡을 콕 찔려버렸기에 혜성은 말을 더듬으며 시선을 빠르게 회피했다. 물론 자신이 하는 말이 앞뒤가 맞지 않고 엉망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순순히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 스스로도 참 답답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렇다고 하면 뭔가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것 같았기에 그걸 피하고자 그는 참으로 안쓰러운 발버둥을 쳤다.
한편 그녀가 공고를 보여주자 그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벚꽃 사진전이라니. 그러고 보니 저런 것이 있었지. 그 역시 사진에 관심이 많은만큼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었기에 알고 있는 것이었다. 허나 그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아마 그 뒷면의 포스트잇이 아니었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으로 포스트잇을 바라보며 그는 물끄러미 아람을 바라봤다. 참 이상한 곳에서 배려를 하는 아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건 나도 알고 있는거야. 나갈까 생각은 해보고 있긴 한데. 아, 아니. 아무튼 따, 딱히 네 도움 필요없거든? 어, 얼니애도 아니고 무슨 도움을 받는대? 아, 아니. 학생이라고 도움 받는게 이상하다는건 아니고 그냥... 그냥..난 필요없다는거야! 이, 이상한 쪽으로 확대해석 하지 마! 알겠어?! ...아. 진짜!"
점점 말이 빨라지면서 이런저런 말을 주절주절하다 혀를 차는 것이 참 혜성이다운 모습이었다. 이어 혜성은 한숨을 작게 내쉬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고민을 하던 그는 작게 혀를 차며 시선을 홱 돌린 후에 뒤로 숨기고 있는 사탕통을 앞으로 내밀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차, 착각하지 마. 그냥, 그냥, 그냥... 안 주면 뭔가 찝찝할 것 같아서 주는거니까. 그냥 우연히 들고 있어서 주는 것 뿐이니까. 딱히 화이트데이라고 주려고 찾아왔다거나 그런 거 절대로 아니야. 그 정도로 한가한 사람 아니거든? 나. 어디까지나 김이야. 김. 그러니까 덤!"
물론 한가하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매 시간마다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근처 아이들 중에선 웃음을 참는 이도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혜성이 눈빛으로 찌릿 공격을 하자 시선을 회피하는 이들도 있었다.
"펴, 편의점에서 대충 산 거야. 큰 거 기대하지 마."
/너무 질질 끄는 것도 애매한 느낌이지. 그래도 고등학생이니까. 그렇기에 혜성은 뒤로 빼거나 하진 않고 츤도만 300% 강화시켰다! 아람이의 페이스는 오늘도 너무 귀엽구나! 아무튼 일하는 중인 것 같은데 화이팅이야! 나도 오늘은 일정이 있어서 저녁시간때가 되어야 제대로 올 수 있을 것 같아! 아람주도 일 화이팅이야!
ㅋㅋㅋㅋㅋ 사탕을 가져가버릴까봐라니. 이미 아람이는 혜성이를 잘 파악하고 있어. 저기서 괜히 크게 웃는 행동만 반복했으면 삐진 표정을 짓고 사탕을 확 가져간 후에 바로 반으로 돌아갔을테니 말이야. 은근히 유치찬란한 면이 있단 말이야. 혜성이는. 아무튼 좋아. 저걸로 막레를 받을게! 사탕 교환했으니 된 거지!! 아무튼 지금쯤이면 퇴근했으려나? 아니면 아직 일을 하고 있을까? 어느쪽이건 하루 수고가 많아!
24시간 당직이라 내일 아침까지 근무야 ㅋㅋㅋㅋ.... 벌써 피곤하다. 혜성이가 너무 귀엽다. 귀여워... 역시 그럴줄 알았어. 근데 김이 뭐지? 나만 이해 못한건가?! 사탕을 무사히 교환해서 다행이다. 그럼 다음 일상은 꽃놀이인가? 같이 벚꽃 사진전 지난 수상작 구경해도 재밌겠다. 꽃사진도 찍고... 중간고사는 언제지?
24시간 당직이라니. 그래서 내일 쉰다고 한 거구나. 아이고. 고생이 많아. 아람주. 아. 그거. ~하는 김이라는 의미의 그 김을 말하는 거였어! 그냥 주러 왔다고는 절대 인정 못하니가 그냥 들린 김에 어쩌고 저쩌고 하는 핑게라고 보면 될 것 같아!! 중간고사는 보통 4월 말에서 5월 초이지 않나? 난 중간고사 그때쯤 본 것 같은데. 반대로 기말고사는 7월 초쯤 봤던 것 같고. 물론 대학생때는 또 다르긴 했지만 고등학생때는 저랬던 것 같아. 졸업한지 오래 되어서 잘 기억이 안 난다. 8ㅁ8 다음 일상은 아무래도 꽃놀이가 되지 않을까? 흐름상으로는 그게 될테니까!
아! 김이 그거구나! 아 진짜 당직 넘 힘들어ㅋㅋㅋ 그럼 중간고사는 아직 멀었구만~ 그러면 꽃놀이 끝나고부터는 잠시 공부하느라 주말에 못 볼거같아 >> 그럼 같이 공부할래? 이렇게 되려나? 가능할까...? 흠... 졸업한지가 오래되어서 나도 잘 몰라ㅋㅋㅋㅋㅋㅋ 알려줘서 고마워! 꽃놀이 가게 된 경위는 어떻게 할까? 전주에 사진 때문에 만났다가 담주에 사진전 같이 구경갈래? 하게 되는건가? 주말이기도 하고. 원래 주말에 만나는 사이이니까. 그럼 중간고사 끝나고는 축제 준비하고 축제 끝나면 기말고사 3주 빡공하다가 기말고사 치고 여름방학 들어가는 걸까? 여름방학 때 친구 시골 놀러가기?
나도 당직 서본적 있는데 진짜 힘들지. 피곤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만큼 오늘은 진짜 고생이 많아. 공부 관련은 아마 혜성이가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네. 물론 아람이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을 안다는 가정하에 말이야. 좀 많이 머뭇머뭇거리다가 확김에 부탁하는 그런 느낌? 그러고서 아, 아니, 아니야! 잊어. 잊어! ...괜히 바쁜 사람 붙잡기도 그렇고... 그, 혼자서 공부 못하는 건 아니니까. 진짜야! 진짜! 이런식으로 말이야. 사실 별 생각없이 말했다가 둘만 공부를 해? 어라? 이런 사고흐름이 있을 것 같네. 꽃놀이는 아마 저런게 있었으니 혜성이가 사진을 찍으려고 생각은 할텐데 아람이에게 모델이 되어주지 않겠냐고 부탁하는 느낌이면 어떨까 싶어. 그냥 꽃만 찍기보단 사람이 있는 쪽이 낫겠다 생각하면서 말이야. 아무튼 일단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사실 봄에 할 수 있는 이벤트가 그렇게 많고 그런 것은 또 아니니 말이야! 사이에 자잘한 것들도 있으면 금방 흘러가는 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럼 꽃놀이 끝나고 아람이가 공부때문에 당분간은 못만나겠다 라고 얘기하면 혜성이가 공부 같이 할래 제안을 해준다는건가?! 잊는다고해도 아람이는 그 말을 덥썩 물 것 같은데?ㅋㅋㅋ 그럼 도서관 같이 가거나 카페에서 공부하거나 하것네~ 혜성이가 아람이한테 모델이 되어달라구 한다구?! 넘 좋다... 그럼 꽃놀이 전에 얘기하려나 아님 꽃놀이 당일날 이야기하려나?
그렇게 말하면 확실히 혜성이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공부 잘하냐고 물어보고 잘한다고 하면 아마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어! 일단 이러니저러니 해도 혜성이는 어느 정도 성적에 신경을 쓰긴 하니까 말이야. 물론 다른 친구들이 일정이 자유로울지도 모르지만 이름 모를 NPC는 중요한게 아니니까! 아마 꽃놀이 전에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할 것 같아. 모델이 되어준다고 한다면 봄에 걸맞는 화사하고 예쁜 옷으로 나와달라고 부탁할지도 모르겠네. 모델이 되어준 대신에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하나는 들어줄 수 있다고 소원권을 살짝 제공할지도 모르는거구!
아람은 오늘 다른 날보다는 신경을 써서 옷을 입었다. 오늘 아침 일어나서 일기 예보를 보았을 때 이미 봄이 훌쩍 다가온 정도로 포근한 날씨였기에 옷은 가볍게 입어도 괜찮은 날씨라서 다행이었다.
어쩌다보니 매주 만나는 주말이지만(불행하게도 사진 실력은 첫날 이후 그렇게 많이 는 것 같지는 않다) 오늘은 조금 다른 날이었다. 그야 지난 주에 혜성이 같이 수변공원에 가자고 말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말을 꺼내고 난 뒤 아님 말고 식으로 나왔기 때문에 바로 가자! 라고 덥썩 물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같이 이전 수상작도 보고 하면 사진이 많이 늘지도 모르지 않냐는 그런 말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진 찍는데 모델이 될 수 있냐고도 물었다.
아람은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이동을 하면서도 그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모델, 모델... 아람은 그 말을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혜성을 바라봤었다. 그리고 '그래!'하고 대답을 했었다. 그야 혜성에게는 지금까지 많이 도움을 받기도 했고, 만약 내가 도움을 줘서 혜성이 사진전에 수상한다면 매우 기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델'이라는 말은 계속해서, 그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부터 지금 수변공원으로 가는 이 날까지 머리속에서 계속 둥둥 떠다녔다. 친구들하고 사진을 찍는 것은 익숙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보통 아람에게 사진을 맡기진 않지만) 같이 사진을 찍고 서로 공유하고. 하지만 그런 것이 모델이라는 것이 되지는 않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해보면 이따금씩 친구들과 놀러 다닐 때 몇 명이 자신에게 말을 걸은 적이 있었다. 모델 제의도 있었고, 아이돌 제의도 있었고, 연예인 제의도 있었다. 손재주도 없고 미술도 잼병이지만 그나마 옷 코디는 나쁘지 않게 입고 다니기 때문인지 피팅 모델 알바 제의도 받았었다. 단 한 번도 승낙한 적이 없었지만.
이런 이야기는 자꾸 그 사람이 생각난다. 그 사람처럼 자신도 불행해 질 것만 같았다.
아람은 그 이야기를 머리 속에서 휘휘 털어냈다. 이건 모델 '일'이 아니지 않는가?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저 친구가 사진을 찍어주는 거지. 꽃놀이를 왔는데 꽃이랑 사진 찍는 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이건 그저 혜성이 '모델'이라는 말을 꺼냈기 때문이라며 아람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옷은 흰색 바탕에 연분홍색 잔잔한 꽃무늬가 들어간 원피스를 입었다. 무릎 위로 살짝 올라와 있는 기장이라 발랄한 느낌을 주었고 허리에 끈으로 라인이 잡혀 있어서 그 아래로 A라인으로 퍼졌다. 신발은 구두는 조금 오버일 것 같아 원피스와 같이 입어도 이상하지 않을 흰색에 깔끔한 스니커즈를 신었다. 위에 걸칠 옷으로는 허리 라인에 맞춘 크롭 기장의 연청자켓과 흰색에 가까운 아이보리색 니트가디건 중에 고민이 되었다. 연청자켓은 발랄한 느낌을 더 줄 것 같고 니트가디건은 봄에 맞는 사랑스러운 느낌을 줄 것 같은데....
혜성이 어떤 느낌으로 찍을 지 모르겠다고 생각을 해서 아람은 그냥 둘 다 챙겼다. 혜성한테 골라달라고 하지 뭐.
휴대폰과 지갑만 들어갈 정도의 작은 크로스백만 둘러 매고 한 손에는 옷이 들어간 종이가방을 들고 아람은 버스에서 내렸다. 늘 그렇듯 점심을 먹은 오후 시간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겉옷을 굳이 걸치지 않아도 그렇게 춥진 않은 날씨였다.
벚꽃 사진 응모는 혜성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일 중 하나였다. 물론 정말로 장차 프로 사진사가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러면 지금 이 순간엔 이것저것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사진을 찍고 응모를 할 것을 결심했다.
슬슬 봄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조금 따스하게 입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푸른빛 캐쥬얼 봄 셔츠와 회색 봄 바지를 차려입었다. 외출할 때마다 항상 쓰고 다니는 붉은색 빵모자를 확실하게 챙겨서 머리에 쓴 후 카메라를 챙긴 그는 약속 장소인 공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그녀가 아니라 자신이 빨리 온 모양인지 공원 입구에 도착해도 누군가가 달려오거나 하진 않았다. 괜히 뿌듯함을 느끼면서 그는 목에 메고 있는 카메라를 손으로 만지다가 뒤로 돌아 공원을 바라봤다. 환하게 피어있는 분홍색 벚꽃은 그야말로 분홍색 눈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살랑거리면서 떨어지고 있었다. 역시 사진을 찍는다면 바로 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며 혜성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목소리가 들려오자 혜성은 고개를 돌려 아람을 바라봤다. 오늘도 어김없이 최썽이네. 이제는 완전히 포기했기에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그는 손을 들어올렸으나 흔들진 않고 아래로 내렸다. 크로스백은 둘째치고 종이가방을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좋은 오후. 그런데 뭐야? 그거?"
이어 혜성은 그녀가 들고 있는 종이가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어 자연히 그의 시선이 그녀의 분홍색 꽃무늬가 들어있는 원피스로 향했다. 발랄하면서도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모습이 사진을 찍기엔 딱 좋겠다고 생각하며 헤성은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고 뒤로 돌아 공원을 바라봤다.
"...뭐, 시간 내줘서 고마워. ...혹시나 입상해서 상금 같은 거 나오면 반 줄게. 혼자만 찍는게 아니라 같이 만드는 거니까. 아무튼 옷 되게 신경 썼네. ...그. 뭐냐. ...그러니까... ...봄 분위기 나네."
예쁘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으며 돌려서 표현을 한 그는 먼저 들어가보려는 듯이 앞장서서 공원 쪽으로 천천히 향했다.
/잠깐 외출하고 이제야 돌아왔어! 점심은 맛있게 먹었지!! 오늘 하루 푹 쉬는 아람주는 잘 쉬고 있을까? 남은 시간도 좋은 하루 되길 바랄게!
"아, 이거? 입을 옷을 열심히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뭐가 좋을지 잘 모르겠어서 골라달라고 둘 다 들고 왔어!"
아람이 종이가방에서 연청자켓과 연한 아이보리색 가디건을 꺼내며 말했다. 말 보다도 직접 보여주겠다며 그 자리에서 청자켓도 입어서 한 바퀴 빙글 돌며 보여주고, 가디건도 다시 입어보고 반대로 빙글 돌았다. 둘다 허리 춤에서 퍼져나가는 치마자락이 잘 보이는 옷이었고, 그래서 아람이 빙글 돌 때마다 치마자락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어때? 어느 게 나아보여? 아니면 둘다 들고다니다가 갈아입어도 괜찮고!"
아람은 혜성의 대답을 기다리며 말했다.
"응? 상금 같은 거 괜찮은데~ 음, 네가 그게 편하다면 그렇게 해도 되고... 나는 그냥 대회보다는 너가 사진 찍어준다고 하니까 온 건데? 너가 내 사진 많이 알려줬으니까. 내가 도와주고 싶기도 하고. 아, 봄 분위기 나지! 뭔가 꽃놀이에는 역시 꽃무늬 원피스 아닐까?"
아람이 히히 웃었다.
"지난 우승작 구경부터 하자!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려면 지난 답을 먼저 봐야하지 않겠어?"
아람이 축제 팜플렛을 나눠주는 사람들에게 팜플렛을 받아 어디서 전시를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공원 입구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하나 그는 아람이 가지고 온 옷을 집중해서 바라봤고 시착한 모습까지 확실하게 주시했다. 한바퀴 빙글 도는 와중 치마자락이 흔들리자 헤성은 살짝 움찔하더니 시선을 살며시 다른 곳으로 회피했다. 뭔데 오늘은 이렇게 귀여운 이미지로 입고 온거야? 괜히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혜성은 일단 답을 하기 위해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 쪽도 상당히 잘 어울리긴 하지만 역시...
"둘 다 보기 좋긴 한데 굳이 내가 골라야 한다면 나는 가디건. ...뭔가 이미지가 좀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라서 말이지. 그러니까 사진."
괜히 목에 메고 있는 카메라집을 꾸욱 잡으면서 답을 마친 헤성은 상금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들으며 가만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명백한 부정의사를 보여주면서 그는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진 벚꽃잎을 살며시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편하고 편하지 않고를 떠나서 그렇게 하면 내가 맨입으로 널 부려먹은게 되잖아. ...뭔가 그런건 찝찝해서 싫어. 물론 마음은 뭐 고맙다고 못할 것은 없긴 한데... 그래도 말이지. 뭐 정 내키지 않으면 그냥 다음에 내가 밥이라도 한끼 살게. 이건 괜찮아? ...그리고 뭐, 네가 그렇다면야 너에겐 그런 거겠지. ...물론 나도 그렇게는 생각해. .......잘 어울려. 예쁘네."
마지막 부분은 괜히 기어들어갈듯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며 괜히 고개를 홱 돌린 그는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무엇을 요구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었다. 의외라는 듯이 혜성은 뒤이어 이야기했다.
"의외네. 출제자의 의도라니. ...너, 공부 되게 잘하나봐? 그런 용어도 쓰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머지 않아 시험이네. 공부 하고 있어?"
별 의미없는 물음에 지나지 않았으나 조금은 궁금하긴 했는지 혜성은 귀를 활짝 열며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전시를 하고 있을 곳을 익숙하게 찾으며 진입하자 벚꽃잎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꽃길 아래에 사진이 액자에 담겨 전시되어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하나하나. 상당히 예쁜 벚꽃 풍경이 찍혀있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네. 말 그대로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야. 밸런스도 잘 맞춰져있고, 사람도 어색하지 않게 찍혀있어."
"이거? 보통은 매번. 가끔은 안 쓰고 올 때도 있지만 마음에 드는 모자거든. 딱 맞기도 하고 디자인도 괜찮고."
그녀가 자신의 모자를 이야기하자 그는 쓰고 있는 붉은색 빵 모자를 벗은 후에 가볍게 탈탈 털며 위에 묻어있는 벚꽃잎을 털어낸 후에 다시 머리에 꾹 눌러썼다. 아마 이후로도 사적인 자리에선 그 모자를 계속 쓰고 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자를 설명하는 그의 표정에 미소가 번졌던만큼, 그에게 있어서 그 모자는 꽤 아끼는 물건인 모양이었기에.
"잘 한단 말이지? ...으음."
공부를 잘한다는 그 말에 혜성은 뭔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허나 특별히 더 말을 하진 않으며 일단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나 뭔가를 힐긋힐긋 바라보다가 입술을 괜히 열듯 말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 뭔가 말하려다가 만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혜성은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야 뭐, 배경만 찍는 것보다는 사람이 있는 쪽이 아무래도 이런 곳의 취지에는 잘 맞을 수 있으니까. 공원인만큼 공원을 즐기는 사람의 모습이 있는 쪽이 더 플러스 되는 거 아니겠어? 만약 정말로 자연 풍경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라면 사람이 담긴 시점에서 다 마이너스 점수일걸?"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혜성은 빠르게 눈을 움직이며 사진들을 바라봤다. 한가지 확실한건 대체로 사진 안에 벚꽃이 너무나 예쁘게 잘 잡혀있었고 사람이건 다른 무엇이건 너무나 조화로운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자신이 저런 느낌의 사진을 찍어서 내년에 여기에 사진을 올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혜성은 아무런 말 없이 사진에 주목했다.
"이렇게 막상 보니까 역시 나보다 잘 찍는 사람이 많다는게 느껴져. 특히 우수상이라던가."
조금 자신이 없어졌는지 혜성은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긁적였다. 그러다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뭐, 뭔데. 주말에 꼭 나 봐야 할 이유라도 있어? 사진 공부가 필요하면 유튜브라도 보면 되잖아. 나 참."
오늘 이후로는 공부를 해야한다면서 주말을 거론하는 것에 혜성은 어쩌면 이 이후로는 이렇게 자주 보는 것이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실상 지금 계속 보고 있는 것도 사진이라는 매개체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만약 사진이 아니라 다른 것에 집중해야한다면 자연히 이 접점도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유 모를 약간의 아쉬움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우승이라니.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애초에 나는 아마추어기도 하고. 보통 이런 곳에서 우승하는 이들은 프로야. 프로. ...뭐, 도전해서 손해보는 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어렵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그는 머리를 살며시 긁적였다. 허나 조금은 욕심이 나긴 했는지 그는 괜히 근처에 있는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러다가 아차 싶은 생각을 하면서 혜성은 아람을 바라보면서 질문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은 잘 알겠어. 그런데 여기서 사진이 통과되면 내년에 네 얼굴이 여기에 남는 거잖아. 그건 괜찮아? ...아니. 뭐. 솔직히 말해서 이제와서 다른 이를 부르기도 애매하고... 원한다면 얼굴은 안 남게 조절해줄 순 있어. 각도나 초점이나 그런 것을 조절하면 말이야."
말을 마치며 그는 카메라가 들어있는 카메라집을 손으로 만지다가 살며시 카메라집을 열어서 검은색 카메라를 꺼냈다. 그러다 솜사탕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의 눈이 도끼눈으로 변했고 표정 역시 뚱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단순히 네가 솜사탕이 먹고 싶은 것 뿐이잖아. 그거. ...하아. 그래도 뭐... 사줄게. 모델 해달라고 불렀으니 말이야. 그럼 솜사탕 파는 곳으로 갈까? 말해두는데 어디까지나 사진을 위해서야. 사진을 위해서! 머, 먹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사주는건 아니야. 절대로. 알겠어?"
마치 강조하듯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근처를 둘러보다 분홍색 솜사탕을 팔고 있는 노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갑을 꺼낸 후에 솜사탕 하나를 계산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회에 출품하는건데 이상한 표정을 찍은 사진을 올리진 않아. 기왕이면 제일 예쁜 것을 내고 싶으니까."
그럴 일은 절대로 없다는 듯 혜성은 단호한 느낌으로 그 말에 대답했다. 물론 그녀가 자신에게 걸어온 장난스러운 행동을 생각해보면 자신도 한번쯤은... 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으나 이런 자리에서 장난을 치거나 어설프게 할 생각은 그에겐 추호도 없었다.
"편한대로 해. 네가 솜사탕을 들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으니 끝난 후에는 먹던지 말던지 네 맘이지. 하지만 찍기 전엔 먹지 마. 절대로."
물론 먹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건 없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베스트 구도와 베스트 샷을 위해서 조금은 엄격하게 이야기를 하며 헤성은 가만히 주변을 살펴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강가였으나 그는 곧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지금 이 대회의 테마는 '벚꽃'이었으니 좀 더 벚꽃이 포인트가 되는 곳을 찾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는 조금 더 앞으로 걸었다.
그러던 와중, 벚꽃나무가 양옆으로 자리를 잡은 긴 산책로가 보였다. 길가 바로 옆에 뿌리를 내린 벚꽃나무에선 수많은 분홍색 눈꽃이 쏟아졌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가에는 어느덧 분홍색 눈이 잔뜩 떨어져 그 주변을 어여쁜 연한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저기서 찍자. 저기서 3번째 벚꽃나무 보이지? 그 사이에 선 후에 고개를 살짝 들어 벚꽃나무의 가지를 바라봐줘. 그리고 오른손을 앞으로 뻗어서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려는 것처럼 동작을 취해줄 수 있을까? 마치 저 풍경에 매혹된 것처럼 말이야."
머릿속으로 구도를 잡은 후, 혜성은 아람에게 그 구도를 취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 그리고 소품인 솜사탕, 그리고 때마침 어여쁘게 떨어지고 있는 저 분홍색 꽃잎이 모이면 아주 멋진 사진이 나올 거라고 그는 확신했다.
아람은 단호한 혜성의 말에 꼭 열심히 사진을 찍고 솜사탕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아람은 혜성이 시키는 대로 벚꽃나무 쪽으로 도도도 달려갔다. 물론 솜사탕도 흐트러지지 않게 잘 챙기는 것도 노력했고. 그러면서도 주변의 풍경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다.
분홍색 꽃잎들을 밟으며 아람은 제자리에 서서 혜성의 지시에 따랐다. 오른쪽? 왼쪽? 물어보며 적당히 자리를 잡은 뒤에 카메라를 신경쓰지 않으려 애쓰며 벚꽃 가지를 바라봤다. 그리고 오른손을 뻗었다. 꽃잎이 하늘하는 떨어지는 것이 눈 앞으로 보였다. 뭔가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서 자기도 모르게 사르르 웃음이 나왔다.
왼손에는 솜사탕 오른손에는 벚꽃잎이 떨어졌다. 손바닥 위에 정확히 안착한 벚꽃잎을 보며 아람이 웃었다. 사진은 잘 찍고 있는 건가? 보통 사진을 찍을 때는 찍습니다, 하고 찍기보다는 찰칵찰칵 찍는 것 같던데 방송에 보니까.
"방향은 편한대로 해도 괜찮아. 필요한 건 나뭇가지. 정확히는 거기에 맺혀있는 벚꽃을 바라보는 거니까."
방향을 물어보는 아람의 행동에 혜성은 그렇게 대답하며 카메라의 전원을 켰다.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며 전원이 들어왔고 이내 그는 카메라를 자신의 눈으로 가져간 후, 초점과 거리를 맞추려는 듯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한번에 많은 샷을 찍으면 그만큼 그녀에게 있어서 부담이 되고 힘이 들테니 최소한의 사진을 남기려는 듯, 그녀는 바로 셔터를 누르지 않고 가만히 타이밍을 기다렸다.
따스하면서도 시원한 봄바람이 솔솔 불자 벚꽃들이 아람의 주변을 감싸듯 아름답게 하늘하늘 땅을 향해 떨어졌다. 마치 분홍색 눈꽃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아 상당히 아름답게 비쳤지만 그는 셔터를 누르지 않고 숨을 죽이고 조용히 대기했다. 벚꽃이 중요하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모델이 꽃잎에 가려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최대한 아람과 벚꽃잎이 잘 사는 구도를 노리며 그는 손가락을 셔터에 가져가며 계속해서 숨을 죽였다.
그러던 와중 오른손에 벚꽃잎이 톡 떨어지고 그 벚꽃잎을 눈으로 쫓고 있던 그는 벚꽃잎이 그녀의 손에 닿자 셔터를 눌렀다. 찰칵. 한순간의 구도를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그대로 담은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아름답고 예쁜 샷이 나왔다고 생각하며 그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어냈다.
"나중에 보고 놀라지나 마. 잘 나왔어. 포즈라. 좋아. 이번엔 솜사탕을 입에 살짝 물고 벚꽃을 구경하는 그런 느낌의 구도를 부탁해도 될까? 손이나 발은 편한대로 해도 돼. 그렇다고 주저앉거나 하진 말고."
이번에는 이 구도를 찍어볼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는 이후에도 몇 차례 다양한 구도를 요청했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잘 따라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만큼 그의 목소리와 표정은 진지했다.
/답레를 쓰면서 벚꽃잎이 안착했다는 표현에 저건 사진으로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바로 사진을 찍는 묘사를 넣은 혜성주가 있었어. 실제로 보면 진짜 엄청 예뻤을 것 같아..
아람은 혜성의 말을 따라 솜사탕을 먹는 시늉도 하고 솜사탕에 얼굴을 가렸다가 빼꼼 내밀기도 하고 다양한 요청을 열심히 듣기 위해 애를 썼다. 그것이 잘 되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꽤나 재밌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웃기도 하고 멍하니 벚꽃을 쳐다보기도 하다가 혜성을 향해 방긋 웃거나 혜성이 말한 지문을 반대로 행해서 그것 때문에 깔깔 웃기도 했다.
한참을 사진을 찍다가 끝났나 싶을 즈음 아람이 혜성 쪽으로 다가갔다.
"사진은 어때? 나도 살짝 보여줘!"
그리고 혜성을 보면서 말했다.
"이제 솜사탕 먹어두 되나? 아님 사진 더 찍어야 돼?"
아람은 더 찍어야 한다면 찍어도 된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사진을 다 찍었다면 오리배를 타러 가자고 했을 것이었다.
"나 여기 주변에 돌아다니면서 오리배 몇 번 봤었는데 한 번도 못 타봤거든. 궁금해서!"
친구들하고 놀러온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어쩌다보니 매번 못타게 되었었다. 물에 둥둥 뜨는 오리배 타는 것이 뭣이 중하냐고 할 지 몰라도. 가끔은 그런 것들이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맞아 실제로 엄청 예쁠 듯...! 벚꽃 구경하는 씬 적으니까 벌써 봄인 것 같애. 아직 춥지만.... 오늘은 일찍 자야것어~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혜성주~~!!!
여러 사진을 찍긴 했으나 역시 가장 먼저 찍은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드는지 그는 맨 처음 찍은 그 사진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제출한다고 한다면 역시 이 사진이었다. 벚꽃잎이 손과 접촉하는 순간. 그리고 벚꽃을 바라보는 어여쁜 소녀. 정말 예쁜 장면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 이것저것 많이 나오긴 했어. 하지만 역시 첫번째 사진이 가장 괜찮은 것 같네. 볼거면 보던지."
이어 혜성은 자신의 카메라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마 그녀가 맨 처음 찍었을 그 사진이 띄워져있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 그것은 벚꽃의 여신이라고 해도 전혀 오버가 아닐 정도로 너무나 예쁘게 찍힌 사진이었다. 아련하면서도 어둡지 않고, 밝으면서도 차분하고, 조용하면서도 진지한 분위기가 나는 그 사진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혜성은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이제 됐어. 전문 모델도 아니고 이 정도 찍었으면 된거지. 먹어도 돼. ...그것보다 대체 얼마나 솜사탕을 먹고 싶었던거야? 너?"
괜히 작게 피식 웃어보이며 이내 혜성은 그녀의 요청을 들으며 뭐? 하는 표정을 지으며 오리배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갑자기 왠 뜬금없는 오리배? 그런 생각을 하며 혜성은 머리를 긁적였다. 가야 하나, 여기서 해산을 해야하나. 나름대로 고민하는 모습 그 자체였다. 허나 곧 혀를 차면서 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진 모델 한다고 고생했으니 그 정도는 못 들어줄 것도 없어.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 ...나도, 나도, 나도... 타본 적 없으니까. 마, 말해두는데 나도 타보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어디까지나 이번 일에 대한 보답이야! 보답! 알았어?!"
괜히 툴툴거리면서 혜성은 어서 가자는 듯이 홱 돌아서 앞으로 향했다. 둥둥 떠 있는 오리배를 따로 탈 것도 아니면서 굳이 앞으로 걸어가다 멈춰서서 고개만 돌린 후에 어서 오라는 듯이 혜성은 그녀에게 손짓했다.
"혼자 탈거야? 아니면 둘이서?"
/지금은 겨울이니까 말이지. 벚꽃이 피려면 적어도 다섯달이나 남았다구! 아무튼 하루 수고했어! 푹 자길 바랄게! 아람주!
아람은 혜성의 카메라를 받아 카메라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맨 처음의 사진을 뚫어져라 보다가 그 다음 사진, 다음 사진 하나 하나 천천히 사진들을 보았다. 옆에서 보기에 아람의 모습은 진지해 보이기도 했고 신기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조금은 우울해 보였고 조금은 들떠 보였다. 표정을 감추고 아람은 다시 맨 첫번째 사진으로 돌아와 그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정말 이게 나라고? ... 너무 예쁜데..."
한참 뒤에 나온 말은 그 말이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믿기 어렵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자화자찬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사진사에게는 기분 좋은 말일지도 몰랐다.
아람은 웃음기없는 얼굴로 한참을 사진을 쳐다봤다. 사진을 찍힌다는 건 나름 재미있었다. 신기했고 뭔가 어설프기도 했지만...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보는 것은 더 다른 느낌이었다. 뭔가 자신에게서 다른 무언가를 뽑아내서 그 순간을 박제하는 것 같았다. 왜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온다고 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나쁜 느낌이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뭔가, 홀린다... 라는 느낌에 가까웠다.
아람은 다시 웃음을 지으며 혜성에게 말했다.
"너 정말 잘 찍는다. 화보 같아."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정말 전문 포토그래퍼들이 찍는 화보 같은 느낌이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그리고 혜성이 솜사탕을 먹어도 된다고 하니 솜사탕을 앙하고 물어 뜯었다. 솜들이 쭉 딸려 나오는 것을 우물우물 송아지가 풀을 입 안으로 밀어넣듯이 쑥쑥 입 안으로 들어갔다.
아람이 솜사탕을 한 줌 뜯어 혜성에게 내밀었다.
"맛있어! 먹어 봐."
아람이 히히 웃으며 혜성에게 먹이려고 했다. 아니면 혜성이 손으로 집어가던가. 안 가져가면 아람의 입으로 쏙 들어가겠지만.
아람은 혜성을 따라가면서 혜성에게 말했다.
"당연히 같이 타야지. 혼자 탈 거면 나도 충분히 탈 수 있었을 걸?"
아람은 돈을 계산하고 안전요원에게서 구명조끼를 받아 입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물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흰 오리배 앞에서 와아, 하며 소리를 내었다.
/오늘은 텀이 많이 느리거나 못올지도 모르겠어 으... 큰일이 나서 잔업 해야 해... 끕... 혜성주도 좋은 하루 되었길 바라 ㅠㅠ!
"널 찍었으니까 너지. 그럼 다른 애겠어? ...아무튼 뭐래. 아직 한참 멀었어. 난. ...아무튼 예쁘게 보인다면, 찍힌 것들이 예쁜거겠지. 뭐. ...그러니까 사진은 거짓말을 안하니까. 그, 그런거야."
잘 찍었다는 말과 화보 같다는 말. 그리고 예쁘게 찍혔다는 말에 혜성은 괜히 중얼거리듯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다 문뜩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인지하며 그는 순간 움찔하더니 애써 헛기침만 여러 번 내면서 모르는 척 했다. 얼떨결에 한 예쁘다는 칭찬을 모르는 척하며 그는 그저 헛기침 소리를 괜히 크게 더 한 번 내면서 표정을 정리했다.
그 와중에 솜사탕을 자신에게 먹이려는 듯 손으로 뜯어서 내미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살짝 당황하며 뜯겨진 솜사탕 덩어리를 바라보다 손으로 받으며 입에 쏙 집언허었다. 뒤이어 나오는 말은 투덜거림이었다.
"머, 먹긴 먹겠는데 굳이 먹여주려는 건 뭐야. 나도 손 있어. ...애, 애초에 먹여주고 그러는 거 안 부끄러워?! 아, 아니. 내가 부끄럽다는 것은 아니야. 그냥, 그냥... 그런 게 있어! 아무튼!"
괜히 언성을 높이면서 홱 돌아선 그는 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말을 더 해도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들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그는 애써 페이스에 넘어가지 않으려는지 생각을 정리하며 머리를 비우려고 했다.
아무튼 오리배를 계산해주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구명조끼를 받아서 몸에 착용했다. 이어 조심스럽게 하얀색 오리배를 바라보다 먼저 탑승했다. 흔들거리는 오리배 속에서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다가 안정적으로 앉은 그는 그녀를 바라보다 오른손을 내밀었다. 타다가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겠다는 무언의 표시였으나 잡지 않아도 별 상관은 없는 일이었다.
"...가족과도 안 탄 것을 너랑 맨 처음 타보네. 처음이니까 괜히 어설프다고 하지 마. 그러니까 이걸 밟고 돌리면 되는건가?"
가만히 내부 구조를 확인하며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전거 타듯이 돌리면 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조심스럽게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아이고. 오늘은 많이 바쁘구나. 큰일이 나고 잔업까지 해야 할 정도면 당연히 현생에 집중해야지! 그 큰일 잘 해결 되길 바랄게!!
아람은 빙글빙글 웃다가 혜성이 오리배를 타는 것을 보고 잠시 기다렸다. 오리배가 흔들리지 않게 되고 타려고 했는데 혜성이 손을 내밀었다. 아람은 그 손을 고맙게 잡았다. 그리고 오리배에 올라탔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아람은 배에 탔다. 멀리서 봤을 때와는 달리 오리배는 여기 저기 낡은 모양새가 났다.
"나도 처음 타 보는걸?"
아람도 앉아서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았다. 혜성과 함께 페달을 밟으니 정말 오리배가 앞으로 나아갔다.
"와아. 이게 움직이는구나."
아람이 뭔가 신나하면서 말했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유속이 아주 느린 곳이었기에 보트가 떠내려갈 일은 없어보였다. 맑은 청록색을 띄는 물 위를 오리배가 부드럽게 지나갔다.
"오리 말이야. 멀리서 봤을 때는 새하얬는데 가까이서 보니 꼭 그렇지도 않네. 그치?"
오리배는 조금 낡은 티가 났다. 강물이 오리배에 부딪히며 철렁철렁 찰랑찰랑 하는 물소리가 났다. 뭔가 손이나 발이 오리배에 닿을 때마다 속이 빈 텅텅 거리는 소리가 났다. 페달을 밟다보니 육지에서 점점 멀어졌고 강가에 가득 핀 벚나무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