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가져갈 거면 안 망가지게 조심해야겠다. 단체로 움직이는 일이 많으니까 이리저리 부딪힐 수도 있잖아.”
아람이 말을 끝내고 돈까스를 입 안에 쏙 넣었다. 아람도 수학여행을 생각하니 벌써 들뜨는 느낌이었다. 물론 아직 여름방학이 한참 남아있지만 말이다. 금새 음식을 다 먹었다. 배가 고팠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당연하지. 간식 배는 따로 있단 말이야. 그럼 뜨뜻한 물에 있다가 나오면 사 먹자. 나는 소프트콘 먹어야지~”
에이드를 판매하는 곳에서 소프트콘도 판매하는 것을 보았기에 아람이 싱글벙글하면서 말했다. 그리곤 이내 혜성과 함께 그릇을 정리해서 본래의 자리에 가져다 두고는 얼른 가자며 걸음을 옮겼다.
따끈따끈한 김이 나는 노천탕이 금새 모습을 드러냈고 아람은 발끝부터 조심히 담그면서 종아리 까지만 담근 채 가장자리에 앉았다. 으, 따뜻해 라는 소리를 내다가 아람이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 전에 상 받은 거, 부모님한테 이야기했어? 좋아하셨겠다.”
아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자신이 찍은 영화도 부모님과 같이 봤다고 하니 아무래도 사이가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백신은 좀 어땠어? 괜찮아? 나도 유효기간이 끝나버려서 3차 맞아야 하는데...(흐릿) 다다음 주에는 꼭 맞으려고 예약해놨어. 으으, 너무 싫어.
하긴 더블데이트 같은 느낌도 너무 좋을 것 같아~!! 조난은 나중에 시켜도 되고! 여름방학 지나기 전에 불꽃축제 가야겠다! 불꽃이 잘 찍히는 곳이 따로 있는데, 나도 막 카메라 쫘아아악 세워둔 사람들 봤던 기억이 나 ㅋㅋㅋㅋㅋ 주로 물이 비치는 곳이 인기가 있는 것 같더라고! 주로 안전상의 이유로 불꽃축제를 강가에서 하긴 하지만 말이야!
그녀가 정리하는 것에 맞춰 혜성 역시 자신의 그릇을 정리해서 반납했다. 시간이 지나서인지 조금 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는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역시 아는 이를 만나면 조금 민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그럼에도 일단은 눈에 띄는 이는 없었기에 당장은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하며 혜성은 그녀의 옆에 나란히 걸으며 온천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조금 빠르게 옮겼다.
이미 온천에는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들어가 있었고 각자 조용히 자신의 몸을 데우고 있었다. 한 곳에 자리를 잡으며 혜성은 처음엔 발목, 그리고 허벅지, 종아리, 마침내 자신의 배까지 물 속에 가라앉힌 후 벽에 조용히 등을 기댔다. 차가운 냉기를 다 녹여버릴 정도로 따끈따끈한 그 느낌에 이래서 어르신들이 온천을 좋아하는구나라는 사실을 또 다시 깨달으며 혜성은 후우- 소리를 절로 냈다.
"부모님? ...뭐, 당연히 알렸지. 수고했다고 하더라. 칭찬도 받고 맛있는 것도 먹고. 상금은 내 용돈으로 쓰라고도 했고."
덕분에 당분간은 용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괜히 웃으면서 이야기한 후, 혜성은 두 손으로 물을 뜬 후에 자신의 몸에 살짝 뿌렸다. 물에 잠기지 않은 부위마저 따끈따끈하게 온도가 오르는 것을 느끼며 혜성은 눈을 조용히 감았다.
"사진 보고서 찍은 여자애가 누구냐고 물어서 어찌나 캐묻던지. 친구라고 하면 적당히 그렇게 알면 되는건데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몰라. ...나 참. 내가 새로운 친구 하나 못 사귀는 애인 것도 아니고 말이야. 네가 새로운 여자애를 친구로 사귈리가 없다는 말을 어찌나 하던지."
자신이 들은 말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혜성은 정말로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어 오른쪽 눈만 살짝 뜨며 혜성은 넌지시 아람에게 물었다.
"네가 봐도 내가 여자애 하나 친구로 못 사귀는 그런 애 같아보여?"
/안녕! 아람주! 백신은...아무래도 조금 팔이 빨리 당기는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아! 열도 없고 몸도 아프지 않아! 어지러운 것도 없고! 그냥 무난하게 3차도 끝날 것 같아! 음. 백신..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맞을 수밖에 없긴 하니까. 8ㅁ8 팔의 근육통이 정말 신경 쓰여.
ㅋㅋㅋㅋ 어차리 조난을 동시에 해야하는 것은 아닌걸! 따로따로 해도 된다고 생각해! 아무튼 불꽃축제 가면 꼭 그렇게 따로 명당을 알아두는 사람이 있더라고. 나도 본 기억이 있어. 아무래도 물이 비치는 곳은 더 화려한 느낌이 드니까. 물에 비치는 잔상도 되게 예쁘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불꽃축제도 못 본지 꽤 된 것 같네. 코로나 퍼지기 전에 한 번 갔다가 사람들이 엄청 많아서 당황하고 엄청 뒤에서 봤던 기억이 나!
뜨겁지도 않은지 한 번에 물속으로 들어가는 혜성을 아람은 뜨겁지도 않은가? 생각하며 쳐다봤다가 찰박찰박 뜨거운 물을 손으로 허벅지를 뎁혔다. 조금 적응이 됐을 쯤에야 다리를 펴서 허벅지까지 뜨거운 물 속에 담갔다.
“칭찬도 받고 돈도 많으니 부러운데?”
아람이 키득키득 웃었다. 용돈은 자신이야 남부럽지 않게 받고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칭찬을 들었다는 부분은 부러웠다. 그리곤 혜성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그리곤 중간중간 키득키득 웃기도 했다. 그러던 중 혜성이 묻자 아람은 눈을 깜빡이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성공 확률 한 5% 정도?”
아람이 이전의 혜성의 말을 인용하며 웃었다. 정말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었는지 무슨 말만 하면 우려먹는 식이다. 아람이 그러다가 혜성이 성을 내기 전에 이어 말했다.
“그래도 몇 퍼센트이건 간에 성공하면 100%잖아? 안 그래?”
확률이 몇 퍼센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실은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면 그것은 확정지어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나오는 것은 50%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100%인 것이고, 아주 작은 확률의 일이더라도 그것이 일어나게 된다면 이미 당사자에게는 100% 닥친 일인 것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불행일지라도.
아람은 이내 뜨거운 물속에 몸을 담궜다. 뜨뜻한 물이 몸을 휘감는 느낌에 으으, 소리를 내었다가 이내 적응이 되어 흐물흐물 늘어졌다.
“따뜻하다아.”
/몸이 괜찮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주변 사람들도 팔 근육통 심하다고 하더라 88 그럼 수학여행은 좀더 찬찬히 생각해보자! 우리에겐 아직 인어공주 꿈이랑 여름 시골집과 불꽃축제가 남아있다고! 불꽃 축제 사람 엄청나지~ 멀찍하게 떨어진 잘 보이는 곳에서 느긋하게 보는 게 최고야!
5%를 거론하는 아람의 목소리에 혜성의 두 눈이 도끼눈으로 바뀌었다. 이전에 자신이 말한 확률을 여기서 써먹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성공하면 100%라는 말이 나오긴 했으나 그래도 5%를 인용한 사실이 조금 얄미운지 혜성은 한 번 더 찌릿 바라보긴 했으나 굳이 더 말을 하진 않았다. 자신이 한 말이기도 하니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애인이 아니라 친구인데 조금 더 확률이 높진 않을까 생각을 하기도 하며 혜성은 괜히 고개를 좀 더 아래로 내려 입까지 물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 상태에서 보글보글 거품을 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올리며 두 손으로 물을 뜬 후에 자신의 얼굴에 정말로 약하게 뿌렸다. 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우르르 아래로 떨어졌고 표면에 파장을 만들었따.
"아무튼 이렇게 따뜻하면 나가기 싫어질지도 모르겠는데. ...아니. 뭐, 일반론이니까. 일반론."
혹시나 나이 들어보인다는 말이 나올까 싶어 혜성은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물론 자신의 대화 페턴은 이미 그녀라면 다 알고 있을 것 같긴 했으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도 애매하지 않은가. 괜히 온천에 조금 더 깊게 몸을 담그며 혜성은 다시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아람 쪽을 바라보니 흐물흐물 늘어진 모습이 보였고 그는 그 모습에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뭐야. 완전 풀어져서는. 몸을 녹인다고 그렇게까지 되는 것까진 않은데. 요 근래 무슨 피곤한 일이라도 있었어? 너 지금 완전 풀어진 표정인거 알지? 뭐, 딱히 피곤한 일이 없으면 상관없지만 말이야."
말을 마치며 혜성은 다시 제대로 몸을 일으킨 후에 벽에 등을 기댔다. 벽마저도 따뜻한 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정말로 편안한 표정을 짓던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만히 바라봤다.
"...뭔가 이러니까 정말로 전문적인 야외 온천도 한번은 가보고 싶어지네. ...겨울에 생각해볼까. 한 번."
/팔 근육은 아무래도 주사 위치가 위치니 어쩔 수 없다고 하니 말이야. 그래도 지금은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아! 아무튼 여름도 아직 안 끝났으니 말이야. 인어공주 꿈과 여름 시골집과 불꽃축제. 사실상 여름 시골집도 한 번만에 끝날 일상은 아니고 그 안에서 2~3개는 나올테니! 시골하니까 떠오르는 건데 뭔가 반딧불 날아다니는 곳이 있으면 같이 구경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반딧불 되게 예뻐서 이 둘도 보는 것은 어떨까 싶었거든!
으음 소리만 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아람의 모습에 혜성은 별 말 없이 그저 속으로 수긍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저 뭔가가 있긴 있구나라고 판단할 뿐이었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적어도 자신이 아는 그녀라면 필시 없다면 없다고 바로 이야기를 할 아이였으니까. 그저 남에게 이야기하긴 애매하다거나 혹은 말하고 싶지 않다거나 그런 것이 아닐까. 그저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자신이 그 영역에 발을 디딜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따스한 물에 몸을 녹이는 것에 집중했다.
허나 그것도 아주 잠시. 장난스러운 그녀의 목소리에 혜성은 무슨 소릴 하냐는 듯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홱 돌렸다. 열기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혜성은 다급하게 두 손을 물 밖으로 빼낸 후에 휘저으며 강력하게 부정했다.
"뭐, 뭐, 뭐라는거야!! 애초에 너랑 같이 간다고 한 적 없거든?! 설사 같이 간다고 하더라도 혼탕 같은 곳에 들어갈리 없잖아! 뭐, 뭐야! 그 동작은! 그럼 내가 이상한 제안이라도 한 것 같잖아! 나 혼자! 혹은 가족끼리! 겨울에 온천! 그게 뭐가 문제인데?!"
이번만큼은 정말 크게 당황했는지 혜성은 다급하게 말을 마친 후 으으 소리를 내며 괜히 입가까지 물 속에 가라앉히며 보글보글 거품소리만 냈다. 물론 그녀도 정색하고 이야기한 것이 아닌만큼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는 것은 짐작 가능했기에 혜성도 별 말은 하진 않았다. 그저 조금 더 깊게 자신의 얼굴을 가라앉힐 뿐이었다.
"나 참. 방심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다니까. 역시 너 엄청 짓궂어."
괜히 불평 아닌 불평을 하며 혜성은 다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은 후, 온천물을 따뜻하게 즐겼다. 일어나긴 일어나야할텐데 따스한 물이 제 몸에 달라붙은 것마냥 몸을 도저히 일으킬 수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계속 이 자리 이대로 있을 순 없었기에 혜성은 가만히 주변을 바라봤다. 그러던 와중 순간 움찔하는 느낌으로 굳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반 아이. 정확히는 아람의 반 아이와 사귀고 있는 그 남학생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정확히는 연인인 여학생과 함께인 것 같았지만. 아무튼 자연히 눈이 마주치게 되자 혜성은 딱딱하게 굳은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시선을 살며시 회피했다. 말 그대로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라는 느낌 그 자체에 가까웠다.
/어제 조금 일찍 잤는데 자러 간지 얼마 안 되서 아람주가 왔었구나. 아무튼 오늘은 완전 괜찮아졌어. 이제 근육통도 없는걸!! 아무튼 어제 정말로 많이 피곤했었구나. 오늘은 조금이나마 개운한 하루가 되길 바라겠어!! 아무튼 이쯤에서 슬슬 시골집으로 가기 위한 수단인 저 두 사람을 투입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내보내봤다!
아람은 혜성의 반응에 아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이런 반응을 생각하고 한 말이었지만 그래도 우스운 것은 우스운 것이었다. 그렇게 따끈하게 몸을 담그고 있는데, 갑자기 혜성이 움찔하고는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아람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혜성이 바라봤던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아람의 친구 지나와 그의 남자친구가 있었다. 아람은 지나와 눈이 마주치자 오,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들었다.
“지니~ 여기서 보네!”
“라미라미! 와! 되게 우연이다! 누구랑...”
같이 왔어? 라고 물으려고 다가오자 옆에 보이는 혜성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람에게 물었다.
“둘이 사겨?”
워터파크에 단 둘이 놀러오다니 그렇게 묻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몰랐다. 아람은 고개를 모로 기울이다가 으음, 말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아니~ 어쩌다보니?”
“어쩌다보니?”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빨리 설명하라며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지나의 모습에 아람이 히히 웃었다.
“축제 때 같이 귀신의 집 들어갔는데 뽑기로 여기 무료이용권 2인을 받아서. 반반 나눌 수도 없고 해서 와버렸네.”
“흐응... 귀신의 집은 왜 둘이 간 건데?”
“그야 너한테도 물어봤는데 남자친구랑 가야 한다면서 거절했잖아.”
아람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지나는 끙, 소리를 내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의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퇴근 후 갱신! 친구 이름은 이지나! 같은 반이고 아람이와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될 것 같아서 가능하면 아는 사람 눈에는 띄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잡담을 들으면서 혜성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만 해도 바로 사귀냐는 물음이 나오지 않았던가. 당연하게도 자신은 그녀와 사귄 기억은 없었다. 물론 지금 이 상황이 참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야 무료이용권 2인을 받았다고 해서 둘이서 같이 가자라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을테니까.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오해받는 상황이 되는 것도 내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 그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혜성의 반 친구기도 한 세윤은 괜히 키득거리면서 혜성의 옆구리를 톡톡 쳤다.
"그래도 너 제법이다? 네 성격상 절대로 이런 곳에 단 둘만 오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번을 찔러도 답은 똑같거든? 사귀는 거 아니고 그냥 자유이용권 두 장을 얻게 되어서 같이 온 것 뿐이야. 어찌되었건 같이 클리어했으니 말이야."
"오. 그럼 너네 둘이 같이 그 우물 들어갔다는거네?"
"...맘대로 상상해."
괜히 퉁명스럽게 툴툴거리며 혜성은 그에 대한 답변을 회피했다. 물론 그 행동이 하나의 답이 되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순순히 그 안에 같이 들어갔고 그 안에서 달라붙어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으려는 듯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문뜩 자신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드는 것을 느끼며 혜성은 빠르게 고개를 내려 온천 물에 자신의 얼굴을 푹 담궈 아주 짧게 잠수를 한 후에 다시 고개를 올렸다. 마치 온천물의 열기 때문에 얼굴이 달아오른 것처럼 보이려는 나름의 수작질이었다.
"뭐, 뭐야? 갑자기 그렇게 온천에 얼굴 담그고?!"
"...담그던지 말던지 내 맘이잖아. 난 원래 이렇게 얼굴 담그고 그래."
괜히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혜성을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바라보던 세윤은 자신의 여자친구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아람을 바라보면서 넌지시 물어봤다.
"당사자는 저렇게 이야기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솔직히 헤성이 아닌 남자애였어도 왔다? 안 왔다?"
"답하지 마. 저런 바보같은 물음에 답할 이유 없잖아."
물음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혜성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허나 세윤은 이미 그런 반응은 예상했다는 듯이 살며시 미끼를 하나 더 던졌다.
"답해주면 혜성이에게도 똑같이 물어볼게. 답해줬는데 아무리 쟤라도 빼진 않겠지. 안 그래?"
/24시간 근무한다고 정말로 수고많았어!! 어서 푹 쉬길 바랄게!! 8ㅁ8 아무튼 이쪽 남자애 이름은 강세윤이야! 혜성이와는 그냥 그럭저럭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 중 하나이고 축구부 주장이라는 설정이 붙어있어.
아람은 세윤이 자신에게 말을 걸자 고개를 갸웃했다가 이내 짖궂은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 지금은 그만큼 친한 남자애는 없는 것 같은데.”
아람은 그렇게 짖궂은 장난에는 넘어가지 않는다는 웃는 얼굴로 물속에서 흐트러진 몸을 바로 앉았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하는데 굳이 그런 조건 안 붙여도 되고 말이야. 아, 그럼 둘은 방학이라 같이 놀러온거야? 아님 두 사람도 뽑기 운이 좋아서?”
굳이 궁금하지도 않았고, 아니 사실은 혜성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애에게 그렇게 제안을 할 것 같지도 않았고,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아 말을 돌렸다. 지나가 세윤에게 뭘 그렇게 짖궂게 묻냐는 눈빛을 보내며 대신 대답했다.
“우리는 그런 뽑기 운 같은 거 없어서~ 여름방학인데 큰 맘 먹구 놀러 왔지!”
그리고 지나는 아람에게 수영복이 예쁘다느니,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냐느니 같은 자잘한 질문을 하면서 아람과 짧게 수다를 떨었다. 아람도 그 말에 호응하며 이야기하다보니 마주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비슷한 시간대에 들어왔던 모양이었다. 어느새 지나는 따뜻한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고 아, 하는 표정과 함께 무언가 제안을 하기 위해 입을 떼었다.
“이번 여름방학 때 우리 할머니집에 있는 계곡에 놀러가려고 했었는데, 둘이도 같이 갈래? 사실 둘만 가기에는 민망할 것 같아서 고민 중이었는데, 네 명이서 가면 사람도 딱 맞고 재미있겠다! 서로 아는 사이이기도 하고~”
지나가 정말 좋은 생각이라는 듯 손뼉을 마주치며 이야기했다.
/축구부 주장이라니! 그렇다면 완전 인싸가 아닌가~! 방학 끝나기전에 소문 다 나는 거 아냐? ㅋㅋㅋㅋ 푹 쉬고 돌아왔어~!
"와. 역시 강하네. 조금은 당황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혜성이라면 지금 질문에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어디까지나 등등의 수식어만 몇 번을 붙일텐데 말이야."
정말 능숙하게 대답하는 아람을 바라보며 세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자신에게 눈빛을 보내는 것도 있었기에 더 이상 했다가 나중에 무슨 말을 들을지도 알 수 없었고 방금 전부터 혜성이 정말로 찌릿한 눈빛으로 자신의 뒷통수를 노려보고 있는 것도 느껴졌기에 적당히 발을 빼려는 듯 그는 고개를 그저 끄덕일 나름이었다. 이내 자신의 여자친구인 지나의 말에 이어 세윤은 바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물론 뽑기 운은 없지만 그래도 용돈은 엄청 모았거든. 그래서 이렇게 놀러왔어. 여름인데 이런 곳에서 데이트하지. 어디서 하겠어? 그치?"
"...하필 오늘일건 또 뭐람."
하루만 더 미룰 걸 그랬나.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바로 뒤에서 조용히 투덜투덜거렸다. 나중에 개학 한 후에 반에 들어가면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괜히 서로간에 피곤하고 어색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게 우려스러웠기에 혜성은 괜히 입을 물 속으로 집어넣은 후에 거품만 보글보글 생성해서 올렸다.
한편 지나 쪽에서 들려오는 제안에 혜성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할머니집에 둘이서 간다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자신과 아람을 왜 초대한단 말인가. 물론 둘이서 가면 할머니가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할테니 민망하고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아람을? 도저히 연결되지 않는 연결선의 끝을 바라보려는 듯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혜성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단 할머니에게 얘기는 된거야? 너하고 남자친구인 얘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와 아람이는 완전 타인이잖아. 뜬금없이 사람을 두 명 더 받아야하는 사람의 입장이 제일 중요한 거 아닐까 싶은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4명이나 오게 되면 여러모로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을테고 시골 할머니 특성상 또 맨손으로 있을린 없을테니 이것저것 마련할 것이 분명했다. 역시 그건 조금 미안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혜성은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이어 세윤은 협조해달라는 듯이 두 손을 모은 후에 혜성에게 애원하듯 이야기했다.
"아. 그러지 말고. 들으니까 계곡 진짜 시원하고 좋대. 거기서 수박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반딧불 같은 것도 보면 좋잖아. 응? 모처럼 여름방학인데 추억 하나 만든다는 식으로? 응? 응?"
"...애교는 나에게 부리지 말고 쟤에게 부려. ...뭐, 확실히 추억거리라면 못 갈 것도 없긴 하지만... 어쩔거야? 넌?"
이어 혜성은 아람을 바라보며 어쩔건지를 물어봤다. 일단 자신의 답은 애매하게 낸 상태에서 그녀의 답을 먼저 들어보겠다는 듯, 혜성의 시선은 완전히 아람을 향해있었다.
/응! 아무래도 인싸인 편이긴 해! 그래도 지나가 소문이 풀리는 것을 막아주지 않을까하는 예감이 드는걸? 뭔가 세윤에게 그런건 함부로 소문내면 안된다고 주의를 줄 것 같기도 하고? ㅋㅋㅋㅋㅋ 아무튼 푹 쉬었다니 다행이야!!
"...왜 당연하다는 듯이 친하니까..라고 말하는거야? ...아니. 뭐, 안 친한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그런 느낌인 것은 사실이니까."
새학기가 들어 아람과 함께 한 시간이 많았던 만큼 역시 객관적으로 보면 자신과 그녀는 친한 사이가 맞지 않을까라고 혜성은 생각했다. 물론 주관적으로도 그렇긴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주관을 일단 배재하려는 듯이 혜성은 그렇게 말을 마쳤다. 이어 아람의 눈치를 아주 살짝 보다가 혜성은 고개를 내려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한편 자신의 물음에 자신은 좋다고 이야기를 하는 아람의 말에 혜성은 살며시 눈동자를 돌려 그녀의 모습을 바라봤다. 서로 끌어안으며 시골에 가고 싶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는 아람을 바라보며 혜성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두 손으로 물을 뜬 후에 자신의 얼굴에 가볍게 뿌리면서 혜성은 살며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며 이야기했다.
"뭐, 지금 이 분위기에서 나만 안 간다고 하면 뭔가 이상하잖아. ...일정 나중에 알려줘. 그때 약속이나 일정 없으면 갈테니까."
"결국 가고 싶은 거면서 뒤로 빼기는."
"아, 아니거든?! 어, 어디까지나 가는 분위기기도 하고 내가 안 가면 아람이 쟤도 못 가는 거잖아. 그러니까 가는 거야. 그러니까. 그 뿐이야!"
순간 움찔했는지 혜성은 언제나처럼 강하게 부정하듯 툴툴거리면서 시선을 완전히 저 편으로 치웠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하나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은 사실이었다. 추억을 쌓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고 반딧불을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웠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딧불만큼은 꼭 찍고 싶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괜히 목에 카메라가 있는 것마냥 목 부위로 살며시 손을 올리다가 아래로 내렸다. 그러다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일단은 묻는건데... 밤에 별 많이 보여?"
"응! 엄청 많이 보이지! 아주 끝내준다니까! 타이밍만 좋으면 별똥별도 떨어지고 그래!"
"흐, 흐음? 그래? 그렇다면... 뭐, 추억거리 하나 만들 용도로 못 갈 것도 없긴 한데..."
"문아람. 너 진짜 대단하긴 하다. 저러는 거 대하면 안 피곤해?"
이 와중에 툴툴거리며 아닌 척 하는 혜성을 바라보며 세윤은 그저 난감하게 웃음소리를 내며 아람에게 물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람에게도 저런 태도를 계속 보였을 거라는 생각 하에 나온 말이었다.
/그러면 확실히 소문은 안 퍼질 것 같아! 세윤이도 자기 여자친구가 그렇게 말하는데 굳이 소문을 내고 그러진 않을테니 말이야! 물론 개인적으로는 장난스럽게 쿡쿡 건드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ㅋㅋㅋㅋㅋ 사실 소문 함부로 내면 완전 비매너인 것도 사실이긴 하니까!
오히려 귀엽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가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이제는 나름 의미가 번역되어 느껴지기도 하고. 꼬리로 툭툭 바닥을 치는 고양이가 생각나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보다는 빙 둘러서 도착하는 말이 아람에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그것에 비해 본인은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긴 하지만.
“시골에서는 별이 더 잘 보이니까. 뭔가 기대된다.”
아람이 웃으면서 말하자 지나가 나중에 단톡으로 시간 조율하자는 이야기 등 짧은 수다를 잠시 이어나갔다가 이제는 가야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우리 데이트 중이니까~ 두 사람도 데이트 잘 하구! 우리는 이만 빠져주자.”
마지막 말은 지나가 세윤에개 말하며 세윤의 손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꿀 떨어지는 표정을 짓는 지나의 모습에 아람은 뭔가 흐뭇한 표정으로 “재밌게 놀아~”하며 손을 흔들었다. 하긴 큰 맘 먹고 온 만큼 두 사람이서 재미있는 추억 많이 남기는 게 중요할 터였다.
“나는 시골에서 살아본 적 없는데, 너는 어떄?”
아람이 조금 기대감어린 표정으로 혜성에게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물었다. 아람은 어렸을 때부터 도시에서 살았고 친척이라고 해도 왕래가 많지도 않았고 시골에 사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조금 로망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지나의 제안에 바로 수긍한 것도 있었고, 같이 가는 것이 혜성이라면 그것도 좋았기에 바로 긍정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맞아맞아. 이제 두 사람은 이만 퇴장시키자구~ 혜성이가 피곤하다니! 귀엽기만 하구만! 혜성이 귀여워 >< 이제 이야기 좀 하다가.... 뭐하지? 할 것 다 했나? 으으음....
피곤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그 말에 오히려 놀란건 다름 아닌 혜성이었다. 자신이 피곤하지 않다고? 적어도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성격은 꽤 피곤하고 번거로운 편이었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괜히 말을 뱅뱅 돌리기도 하고 부끄러워서 강하게 부정하기도 하고, 괜히 틱틱거리거나 툴툴거리기도 하고. 허나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혜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옆으로 돌릴 뿐이었다.
지나의 말에 세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덩달아 손을 잡으며 물 밖으로 나갔다.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온천물이 가볍게 출렁거렸다. 저 편으로 가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슬라이드를 타러 가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혜성은 순간 당황하며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저편으로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괜히 크게 말했다.
"누, 누, 누가 데이트를 한다는거야?! 데이트 아니거든?! 절대로 아니거든?! 그냥 놀러온 것 뿐이야!"
자연히 주변에 있는 이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 시선을 하나하나 느끼며 혜성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다시 물 속으로 들어왔고 괜히 얼굴을 반쯤 물에 담그고 보글보글 거품을 냈다. 이번엔 아까전보다 훨씬 길게 낸 것으로 보아 상당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보글보글. 거품소리가 약하게 들려오다 끊어졌고 혜성은 다시 물 밖으로 얼굴을 꺼냈다. 일부 웃는 이들도 있긴 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는 괜히 작게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이내 들려오는 그녀의 물음에 혜성은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당연히 그 역시 시골에서 살아본 적은 없었다. 물론 시골에 간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을 살았다고 표현할 순 없는 법이었다.
"그냥 명절 때 한번씩 가는 정도려나. 혹은 그냥 가족끼리 시골집에 갈 때 정도? ...산 적은 없어. 참고로 말하는건데 그렇게 막 대단하고 그런 것이 있지 않을거야. ...시골은 애초에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에 가는 거니까. 그러니까 힐링이라고 하잖아. 대충 그런 거야."
물론 그것도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그러지 않을까 생각하며 혜성은 다시 벽에 등을 기대며 몸을 다시 녹이기 시작했다.
"...카메라 가져가야겠네. 사진 찍어야할테니까."
/이제 슬슬 퇴장할 때도 되었지! 어차피 엑스트라일 뿐이니까 말이야!! 앗. 귀엽게 봐주는 것은 언제나 고마워! 아람이가 훨씬 더 귀여운 것 같지만 말이야!! 음. 그래도 이제 워터파크에서 할법한 것은 다 하지 않았을까? 이야기 좀 더 나누다가 워터파크에서 조금 더 재밌게 놀았습니다로 처리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
아람은 괜히 두 사람의 뒤에 대고 소리치는 혜성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나서 부끄럼을 타는 모습까지. 그러다가 또 중얼거리는 것에 쿡쿡 웃기도 했고. 그나저나 혜성은 아무래도 자신보다는 시골에 대해 잘 아는 느낌이었다. 할머니댁이 시골에 있는 걸까?
“나도 그렇게 대단하거나 그런 것을 생각하는 건 아니거든? 그저 가 볼 일이 없으니까. 막 미디어나 티비에서 나오는 것들 보면 뭔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잖아.”
뭔가 한적하고 한가로운 그런 느낌이나, 계곡에서 물놀이를 한다거나... 그런 것들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뭐, 물론 제대로 가봤다,라고 할 일이 없다보니 아직까지는 그저 상상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일단 가 보면 알 수 있는 것일테다.
“반딧불이나 별사진 같은 거 찍으려고?”
아람이 다시금 따끈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혜성에게 물었다. 그런 것들을 찍으면 꽤 예쁘겠다 생각하면서. 특히 반딧불은 원래도 보기 어려운 것이다보니 더더욱 궁금하기도 했다. 실제로 보면 벌레 같다고는 하지만...
/오케이~ 이야기 좀 하다가 정리하면 되겠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아람이가 벌레를 무서워했는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안 무서워 할 것 같기는 한데 800레스 가까이 쓰다보니 전에 이야기를 했는지 안 했는지 가물가물 한 때가 온 것 같아 ㅋㅋㅋㅋㅋㅋ 자러가야해서 들어가볼게! 혜성주도 잘 자고 내일 보자~!
"TV에서 나오는 것도 사실 그나마 볼거리가 있는 곳 위주인 것 같지만... 뭐, 가볼 일이 없어서 잘 모른다면 처음에는 조금 신선할 순 있겠네."
물론 그 할머니댁이라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서 다르지 않을까하고 혜성은 생각했다. 정말로 산골 깊숙한 곳에 있다면 도시에서 살아온 이들에겐 조금 지루할지도 모르고, 자연경관이 좋은 곳이라면 아마 그녀도 충분히 좋아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자신은 어느 쪽이더라도 크게 상관없는 케이스였다. 분명히 시골인 이상 예쁘게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있을테니까. 별이나 반딧불이나 혹은 기타 자연광경이라던가.
자신에게 묻는 질문에 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찍을 생각이었다. 특히 별이나 반딧불의 경우는 아무래도 정말로 보기 힘든 것에 속했으니 찍을 수 있을 때 찍는게 나을테니까.
"뭐, 반딧불은 찍기 힘들다고 치더라도 별은 찍을 수 있을테니까. 여기서 보는 별과 시골에서 보는 별은 대체로 풍경이 다르거든. ...진짜 하늘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 시골에선."
자신의 시골집에서 본 별하늘을 떠올리며 혜성은 절로 피식 웃어보였다. 그러다가 손을 위로 올린 후에 마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선을 그으면서 그는 다시 손을 온천 물 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덧붙여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거 보면 되게 예쁘기도 하고. ...뭐, 이번에 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갈 것 같으면 그냥 며칠 힐링하고 쉰다는 생각으로 가는게 좋을거야. 아마. 공부라던가 머리 아픈 것이라던가 다 잊고서 말이야."
나름의 생각을 밝힌 후 혜성은 잠시 주변 풍경을 바라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슬슬 물 밖으로 나올 생각인 모양이었다.
/음. 이야기를 하면서 딱히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 확실히 800이 넘었으니 기존의 이야기가 잘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정주행을 가끔 하면서 보기도 하는 거고 말이야! 이미 이야기도 두 달이 넘었는걸! 아무튼 잘 자고 좋은 꿈 꾸길 바랄게!!
좋아. 막레 잘 받았어!! 확실히 거의 매일 이어가고 있긴 하네. 사실 나도 두 달인 것은 시작 날짜를 우연히 보고 인식한거지만 말이야! ㅋㅋㅋㅋㅋ 아무튼 두 달 넘게 놀아줘서 너무나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그리고 오늘 일...퇴근했을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하루 화이팅이야!! 나는 이제 퇴근해서 쉰다!
퇴근하는 중이구나! 일단 하루 정말로 수고 많았어!! 두 달 전의 나는 사실 이렇게 길게 이어질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지! 다 아람주가 좋은 사람이라서 가능한 거지만 말이야!
아무튼 다음 일상은 역시 인어공주겠지? 이야기한 것도 있고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혹은 이미 배가 침몰해있고 혜성이가 바다에 빠져서 꼬로록하면서 잠기고 있는 상황으로 써도 좋을 것 같고. 다만 원작대로 간다면 인어공주와 왕자의 접점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하니 약간 전개가 바뀌어도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해. 이를테면 혜성이를 구한 다음에 돌아가려는데 몽롱한 상태에서 혜성이가 아람이의 팔이나 손을 잡아서 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기서 조금 대화를 나눈다거나. 이 전개라면 아마 정신이 몽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진짜 솔직한 모드인 혜성이가 나올 가능성도 클 것 같기도 하네!
그래도 아직까진 그렇게 바쁘진 않고 아마 당분간은 바쁘진 않을 것 같아. 물론 이러다가 확 바빠질지도 모르지만..(흐릿) 그래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겠지!!
음. 그래도 역시 인어공주 기반이니까 혜성이는 왕자 쪽으로 내보내볼게. 아마 이번에도 대혼란 상태인 혜성이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아니. 그런데..ㅋㅋㅋㅋㅋㅋ 너, 너무 기대하면 실망할지도 몰라! 사실 무슨 말을 할진 나도 모르겠네! 무슨 대화가 오가냐에 따라서 다를 것 같거든. 그래서 적어도 툴툴거리는 느낌은 없지 않을까 싶어.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물, 미디어에서만 보이던 물 속에서 수면을 올려다보는 그 장면. 아마도 햇빛은 아닌 저 모습은 달빛이 아닐까 속으로 짐작하다가 눈을 깜빡였다.
아, 물 속이면 숨을 못 쉬는데.
라는 생각을 멍하니 했다가 아람은 이내 자신이 편하게 숨을 쉬고 있음을 깨달았다. 꿈인가? 그 생각을 하니 비로소 의식이 조금 더 명료해졌다. 그에 물 밖으로 나가야지, 생각을 하고 손을 휘졌고 발장구를 치려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발이 꽁꽁 묶여있는 느낌. 아람은 이상함에 다리 쪽을 내려다보았다.
“으응?”
저절로 놀란 목소리가 나왔다. 잠시 공기방울이 생겨 수면으로 사라졌던가. 아니, 물 속인데 말을 할 수 있나? 아니, 그 생각보다 더 놀란 것은 제 다리가 마치 인어처럼 비늘로 되어있는 어류의 꼬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어공주인가?”
지난 번에는 신데렐라이더니 이번에는 인어공주인 모양이었다. 무슨 이유로 이런 꿈을 꾸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꼬리를 움직여보았다. 꼬리로 한 번 물을 차니 몸이 화악, 밀리며 앞으로 나아가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오리발을 착용하는 것일까 싶을 정도의 편안함에 아람은 물 속에서 몇 번 더 헤엄쳤다.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고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다니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 속에서 보이는 꼬리는 밝은 녹빛이었는데 달빛에 비친 그것은 에메랄드 빛인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눈동자 색 같기도 했다. 꼬리를 칠 때마다 닿는 빛에 따라 묘하게 다른 색깔을 내어 아람은 눈을 떼지 못하고 꼬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몇 번을 쳐다봤다.
그리고 아람이 주변으로 눈을 돌린 것은 한참을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자신의 꼬리 비늘의 색을 이리저리 살펴본 뒤였다. 어느 정도 이 바닷속에 익숙해지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력이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자 왜 지금껏 보지 못했을까 싶은 부분이 보였다. 저 멀리서 보이는 무언가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니까, 자세히 보니 배였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람은 꼬리를 쳐 금방 수면 위로 올라왔다. 수면 위로 올라오니 물 속에서는 자유롭게 나풀거리던 머리카락이 중력의 영향으로 추욱, 달라붙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까만 밤하늘과 커다란 보름달 빛 그리고 불에 타며 침몰하고 있는 배였다.
불타고 있어.
현실감 없는 모습에 잠시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아람은 이 전개가 아마 인어공주의 그 장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 인어공주가 왕자를 구하고 사랑에 빠지는 장면 말이다. 지난 번 신데렐라 꿈을 떠올리며 아람은 다시 물 속으로 풍덩 들어가 바닷속으로 배 쪽으로 다가갔다. 이번에도 혜성일까? 혜성이면 구해주고 아니면 말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배에 탑승하고 있는 혜성은 자신의 볼을 살짝 꼬집다가 손을 아래로 내렸다. 주변에서 왕자님. 혹시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오늘도 매우 멋지십니다. 왕자님. 등등의 소리가 계속 나오는 통에 그는 지금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바로 자각할 수 있었다. 아니. 전에도 이런 비슷한 꿈을 꾼 것 같은데 왜 또 왕자님이래. 괜히 속으로 투덜거리며 혜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자신이 왕자가 되고 싶은 무의식적 욕구라도 가득한 것일까. 그렇게 추측해보기도 하나 스스로에게 걸리는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 대체 왜 이런 꿈을 꾸는 것인지. 정말 영문을 모르겠고 답답하다는 듯이 혜성은 괜히 자신의 가슴 부위를 주먹을 쥐고 툭툭 쳤다.
"그래도 경치는 좋네."
이렇게 된 이상 주변 경치나 구경해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배 위에서 보이는 바다 풍경을 구경했다. 검푸른 바다는 조금 어둡긴 했으나 바다 표면에서 달이 깨지고 있어 너무나 아름답게 그의 눈에 비쳤다. 꿈이니까 또 카메라는 없겠거니 생각하며 괜히 아쉬움은 느끼는 와중, 갑자기 배에 커다란 진동이 느껴졌고 이어 폭발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악!!"
갑자기 진동하는 탓에 혜성은 근처 기둥에 제대로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아파라. 작게 중얼거리는 와중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보였다. 왕자님을 모셔라!! 등등의 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순간적으로 배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고 그 순간 다시 한 번 커다란 폭발소리가 들려왔다. 하필 그것은 혜성이 서 있는 갑판 근처였다. 폭발과 함께 혜성이 서 있는 갑판 부위에 금이 났고 순식간에 그 갑판은 부서졌다. 어? 하는 순간 자신의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와 동시에 왕자님!! 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귓가로 작게 들려왔다. 뒤이어 풍덩. 온 몸이 물에 적셔지는 느낌과 함께 몸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꿈인데도 너무나 리얼한 감각에 혜성은 소름을 느끼며 수영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허나 이게 무슨 일인가?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쇼크를 받아서 몸이 일시적으로 마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이게 원래 꿈의 내용인건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으며 혜성은 허우적거렸으나 무의미한 움직임에 불과했다. 마치 자석에 끌리듯, 몸이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게 느껴졌고 숨이 점점 막혀오는 느낌에 혜성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주 잠깐. 하반신에 물고기 꼬리가 달려있는 듯한 이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으나 시야가 점점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혜성은 순간적으로 공포에 빠졌다. 자다가 죽는건가? 아니. 어째서 이렇게까지. 이쯤 되면 꿈에서 깨야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혜성은 꼬로록 하는 소리와 함께 물거품을 강하게 내뱉으며 점점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출근 전에 선레가 올라온게 보여서 후딱 답레를 올리고 나도 출근하러 가보겠어!! 오늘 하루 화이팅!
아람이 배 근처로 헤엄쳐가니 무언가가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사람과 같아보여서 아람은 그곳으로 급히 다가갔다. 무언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꿈인데도 그랬다.
그리고…. 역시나, 혜성이었다. 왜 일까. 왜 혜성일까. 그런 생각도 잠시 아람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혜성을 끌어안고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정신을 잃었는지 축 늘어진 몸은 쉽게 딸려 올라왔고, 이내 수면 위로 고개를 파앗, 내밀었다. 배는 점점 가라앉고 있어 어수선했다. 아람은 가까운 뭍을 찾아 그곳으로 혜성을 데리고 헤엄쳐갔다.
꿈이라 그런지 바다 한 가운데였던 것 같은데 이내 모래사장에 다다랐다. 뭍에 혜성을 눞히고 옆에 앉아 혜성을 바라보다 자신의 차림새를 먼저 살폈다. 다행히 위에는 흰색 크롭탑을 입고 있었다. 그렇다고 어깨가 훤히 보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아주 비키니 차림보다는 낫지 않은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인공호흡을 해야하나?”
이런 수영적 지식이 없는 아람은 쓰러져 있는 혜성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은 목을 감싸고 있는 셔츠가 답답해보여 그 단추를 푸르려고 손을 가져다대려고 했다. 그리고 나서는… 가슴을 누르다가 기도를 확보하고 숨을 불어넣던가…? 아람은 조금 혼란에 빠졌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 같았으나 어느 순간 다시 숨이 쉬어지는 느낌에 혜성은 쿨럭쿨럭 기침소리를 냈다. 비록 꿈속이지만 정말 리얼하게 숨이 쉬어지지 않고 물에 빠져 죽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서인지 그는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며 계속해서 기침소리만 낼 뿐이었다. 단추를 푼 것과 비슷한 타이밍이었다. 정신을 차려야하는데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그는 몽롱한 기분을 느꼈다. 꿈속인데 왜 이러는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자신의 의지가 모두 작동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혜성은 이내 천천히 눈을 뜨며 멍한 표정을 보였다.
자신이 있는 곳은 바다 속이 아니었다. 숨이 쉬어지고 검푸른 하늘이 보이는 어딘가였다. 물에 젖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으며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몽롱한 정신 상태였으나 그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게 아니라 육지로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허나 그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아니. 한 가지 더 있었다. 지금 자신을 아람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 그것을 인지하며 혜성은 몽롱한 표정으로 상반신을 들어올렸다. 자연히 그녀의 하반신이 자신처럼 인간이 아니라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비슷한 형태라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으며, 정확히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혜성은 두 눈을 깜빡였다. 왜 아람이의 하반신이 저런거지?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두 눈을 여러 번 깜빡이던 혜성은 아람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왜 또 너야?"
매우 근본적인 궁금증이었다. 왜 또 아람이 자신의 꿈 속에 나타난 것인가. 그것을 혜성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든 것이 아직 제대로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았으나 아람이 자신의 꿈 속에 나왔다는 사실만큼은 혜성도 인지할 수 있었다.
"......이러면 널 보고 싶어서 이러는 것 같잖아. ...왜 또 너인거야. 물론 그건 아니겠지만... 아니. 맞나. ...어. 으음. 보고 싶은건가. 나."
/원래 하루가 피곤하고 그러면 썼다고 생각하는데 안 쓴 것일수도 있고 그런 것 아니겠어? 어제의 아람주 고생 많았어! 오늘의 아람주도 힘내라!!
아람이 첫 번째 단추를 푸르는데 갑자기 혜성이 기침을 하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손을 떼었다. 뭔가 엄청난 짓을 하려다가 들킨 사람의 심정이 되어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러면서도 혜성이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찾아들었다. 물론 이 곳은 꿈이지만 그럼에도 혜성이 자신의 꿈 안에서 죽는다면 그것도 너무 싫지 않은가.
몇 번 기침을 하더니 혜성이 눈을 떴다.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던 혜성이 상반신을 일으키며 자신의 꼬리를 봤다. 아람도 자신의 꼬리를 보았다가 다시 혜성을 바라봤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생각하며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것 같은 혜성을 바라보는데, 대뜸 혜성이 자신에게 왜 너냐,는 말을 한다.
“응?”
아람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말에 아람은 얼굴이 발그레졌다. 하지만 이건 꿈이니까, 저 말은 제 속마음이거나 혹은 자신이 혜성에게 듣고 싶은 그런 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지금 눈 앞에 있는 혜성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혜성이었다면 좋겠다고, 그런 터무니 없는 생각도 해버린다.
“응, 맞아. 내가 보고싶어서 그런 거야.”
아람은 조금 웃으면서 그렇게 이야기한다. 분명 자신은 혜성이 보고싶어서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물론 지난주에 워터파크에도 가고 방학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서 사진도 찍고 그러니까 아주 못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아무 이유없이 전화도 하고 아무 연락없이 대뜸 만나러 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그래서 보고싶은 것일 터였다.
그녀의 입에서 자신이 그녀를 보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자 혜성은 멍한 표정을 유지하며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정신이 멀쩡하다면 절대로 인정할리 없고 바로 반박하며 툴툴거렸겠으나 물 속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 정신을 가다듬기 힘들었다. 물론 몽롱함과 피곤함이 섞여있는 현 상태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으나 아직 완전히 회복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어쩌면 회복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긴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으니까. 어쩌면 꿈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뜩 혜성의 머리에 떠올랐으나 이내 그것은 풍선이 터지듯 펑- 소리를 내며 머릿속에서 터져버렸다.
"...없어."
아픈데가 없냐는 물음에 혜성은 없다는 말을 하며 힘없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기침이 나올법도 하건만 꿈속인지 기침 또한 나오지 않았다. 하기사 진짜 물을 마신 것도 아니고 그저 느낌일 뿐이었으니까.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혜성은 두 눈을 많이 깜빡였다. 이 꿈은 워터파크에 다녀와서? 아니면 자신이 아람을 보고 싶어서? 그것도 아니면 복합적?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멈추며 혜성은 조심스럽게 조금 더 몸을 일으켰다. 부드러운 해변가의 모래가 손에 만져졌고 절로 그녀의 상태가 눈에 보였다. 인어. 왜 인어인걸까?
"...예쁘네."
에메랄드 색으로 반짝이는 꼬리를 눈에 담으며 혜성은 미소를 작게 지었다. 그래. 어차피 꿈이니까 이런 것도 가능하겠지. 그저 현실을 순순하게 받아들이며 혜성은 고맙다는 말을 조용히 전달했다. 어찌되었건 현 상황으로 보아 자신을 구해준 것은 그녀였으니까. 꿈 속이라고는 하나 자신이 그러고 싶다는 듯 태연하게 그렇게 이야기하며 혜성은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내가 보고 싶다고 한다면... 불편하지 않아? 인어..님은?"
인어 맞겠지. 인어. 하반신이 물고기잖아. 그럼 인어지. 그렇게 정리하며 혜성은 더더욱 그녀의 눈동자를 깊게 바라봤다. 아무런 말 없이 미소를 지으며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금은 낯간지러운, 어쩌면 절대 맨 정신에서는 할리 없는 소리를 그는 조용히 내뱉었다.
"...보고 싶은 거 맞나보네. 너 보고 있으니 편안한 느낌도 들고, 괜히 기쁘기도 하고, 뭔가... 뭔가... 좋아."
/새벽 5시에 선레라니. 물론 써온다고는 했었지만 정말로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아침에 일어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겠네. 그렇기에 좀 더 혜성이의 아직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음+어차피 꿈이잖아. 의 콤비네이션으로 나온 솔직한 모드를 조금 더! 사실 아침에 막 일어나서 몽롱할 때도 대충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긴 한데. 생각해보니 아람이와 시골에 가면 이런 모습이 자연히 나오긴 하겠구나.
다행히 아픈 데도 없는 모양이라 아람은 살며시 웃음지었다. 실제로 물에 빠졌다면 더 심각한 상황이었겠지만 아무래도 꿈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람은 혜성이 몸을 더 일으키며 자신의 꼬리를 보다가 예쁘다고 하는 말에 싱긋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말하면서 아람은 꼬리를 한 번 파닥 움직였다. 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왔다가 모래를 찰팍 내려쳤다. 움직이는 꼬리가 달빛을 받아 여러가지 색을 내었다.
“불편할 게 뭐가 있겠어.”
아람이 쿡쿡 웃었다. 뒤에 붙은 인어 님이라는 말도 우습기도 했다. 왜 자신은 인어가 되어버린 걸까? 물론 물 속에서 헤엄치는 것도 즐거웠고, 달빛에 비치는 이 꼬리도 굉장히 예뻐서 좋기는 했지만. 아, 지난 번에는 신데렐라였으니 이번엔 인어공주인 걸까?
그러다 혜성이 내뱉는 말에 조금 얼굴이 빨개졌다. 아람은 이것이 꿈인 것을 알면서도 기쁜 마음에 웃음이 났다.
“나도 그래.”
아람이 키득키득 웃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서 혜성의 뺨에 손을 대려고 했다. 거절하려고 하면 충분히 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조금은 나긋한 움직임으로.
“너는 왜 네가 그런 기분이 드는 지 알아? 왜 내가 보고싶고, 편안하고, 기쁜 마음이 드는지 말이야.”
꿈이니까, 라고 생각하며 아람은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지난 꿈에서는 같이 춤도 추지 않았던가.
/내가 전에 새벽 기상 할 거라고 했었잖아 ㅋㅋㅋ 지금은 적응 중이라 조금 늦게 일어나기는 하는데, 적응 되면 8시 쯤 잠들어서 3시쯤 일어난단 말이지. 은근 괜찮아. 수면 시간도 지키고 내 시간도 지키고. 그런 느낌…? 일단 유동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 언제 그만둬질지 모르지만.
꿈속의 혜성이 너무 귀엽고 치명적이다…. 시골 갈 때도 너무 기대된다. 지난 일상도 너무 재미있었고. 진짜 혜성주랑 일대일 만난거 너무 행복하고 즐겁고 좋아…. 진짜 곧있으면 판 갈지도 모르겠네~~~
자신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라고 생각해보려고 했으나 역시 생각이 시원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제 성격이나 특성을 스스로 잘 파악하고 있는 탓이었다. 물론 그녀는 아닐지도 모르나 스스로는 자신의 성격이 은근히 귀찮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렇다고 스스로의 성격이 마냥 싫다거나 고치고 싶다거나 바뀌고 싶다거나 그런 것은 또 아니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왔다갔다, 마치 시소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생각은 지금 상태에선 그다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내 그녀의 손이 자신의 뺨에 닿자 혜성의 얼굴이 살짝 붉게 달아올랐다. 아주 가벼운 스킨십이지만 지금은 이런 가벼운 스킨십도 조금 부끄러웠다. 나긋한 그 느낌 때문인지, 물에 빠졌다가 막 빠져나와 정신을 못 차린 탓인지, 아니면 달빛에 비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인지. 어쩌면 3개가 다 복합적으로 섞인 것이 원인일지도 모르지만 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진 못하며 혜성은 물음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모르겠어. 여자인 친구가 너만 있는 것도 아닌데. ...물론 최근에는 너를 자주 보는 것 같지만..."
약속이 있으면 다른 이들을 보기도 하며, 그녀 말고 이성인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중학생, 혹은 초등학생부터 알고 지낸 이도 적지만 존재했으며 친구가 그녀만큼은 아니더라도 없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특별히 더 보고 싶다? 편안하다? 기쁘다? 이전에 푼 수학문제보다 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며 혜성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뺨을 만지려고 한다면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상해.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으니까 더 보고 싶어. 자주. 많이. ...미안해."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자주 보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다. 몽롱한 눈빛을 유지하며 미소를 지은채 혜성은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손을 올리려고 했다. 만약 피하지 않았다면 가볍게 몇 번 쓸어내리다가 아래로 손을 다시 내렸을 것이다.
"...인어님에게 홀렸나봐. ...왕자님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쫓아낼지도 모르겠네."
가볍게 웃어보이며 혜성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려는 듯 몸을 움직였다. 비틀거리는 느낌이 있었으나 넘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이어 정신을 좀 차리려는 듯, 혜성은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툭툭 쳤다.
/아! 그거였구나! 전에 이야기 한 적이 있었지! 그래도 새벽 3시 기상이라니. 내가 보통 새벽 1시쯤 자러 가니까 뭔가 바톤 터치하는 그런 느낌이네. 아무튼 스스로 잘 지킬 수 있다면 다행인거지!! 화이팅이야!!
아람이도 충분히 귀여운걸! 뭔가 이번엔 아람이도 조금 더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살짝 헤성이를 떠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행복하고 즐겁고 좋다고 하니 기쁜걸. 나도 마찬가지인거 알지? 1:1 너무 재밌게 즐기고 있어! 850이 넘어섰으니 이렇게 쓰다보면 무난하게 2판으로 가지 않을까 싶은걸? 아무튼 혜성이의 이불킥은 이번에도 예정되어있는 것으로. 꿈에서 깨어나면 필시 또 이불 속에 얼굴을 숨기고 난리가 나겠지만 방학시즌이니까 아마 금방 가라앉을지도 모르겠어!
너무 솔직하지 못한 것은 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혜성의 그런 모습은 아주 귀여운 측면에 속한다고 아람은 생각했다. 괜히 툴툴거려 놓고는 눈치를 보는 모습이라거나, 아주 작게 조금씩 그 사이에 솔직한 모습을 담아둔다거나 하는 모습이 괜히 귀엽다. 하지만 이건 자신만의 생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혜성을 어떻게 생각하든 알게 뭔가. 자신에게만 좋으면 그만인 것이 아닌가?
아람은 혜성이 피하지 않자 안심하고 혜성의 뺨에 손을 얹었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나 무방비한 모습이라거나, 조금 멍한 느낌도 귀엽게만 느껴졌다. 아니다, 이건 조금 더….
아람은 혜성의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듣다가 조금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니면, 세뇌하듯이.
“내가 알려줄게. 그건…, 네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꿈이니까.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어떤 말이든 내뱉어도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무례하고 어설픈 확답을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면 그것은 아람의 바람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도 그런 걸. 그럼 나도 너에게 미안해 해야 하는 걸까?”
아람이 웃으며 말했다. 어느새 혜성에게 닿아있던 손은 떨어져 있었고 이내 혜성이 제 머리카락을 만지는 것을 살며시 눈을 감고 그 손길을 느꼈다가 이내 그 손길이 사라지자 조금 아쉬운 눈빛으로 혜성을 바라봤다. 속마음으로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고양이처럼 그 품에 머리를 부비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차마 꿈이라도 그렇게 할 용기는 없는 모양이었다.
“벌써 가려고? 나는 이런 모습이라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아람은 불퉁한 표정으로 꼬리를 파닥거리며 항의하듯 꼬리로 모래를 탁탁 쳤다. 자신도 혜성을 따라 일어나고 싶었지만 물 속에서 자유롭던 몸은 뭍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왜 인어공주가 마녀에게 목소리를 주고서라도 인간의 다리를 얻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새벽 세시에 기상하지는 못했어 ㅋㅋㅋㅋ 어제 한 10시 쯤에 잠들었거든~ 자신에게 맞는 사이클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아무래도 일찍 일어나면 상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 저녁시간이 피크인데 말이야…(흐릿)
꿈이니까 아무래도 아람이도 더 솔직해지는 거 아닐까? 무난하게 2판이라니 뭔가 굉장히 설렌다~~ 진짜 2판 가면 확실히 와아! 하는 느낌일 것 같아. 아람이도 꿈에서 깨고 나면 굉장히 부끄러워 할 것 같다. 아니 꿈이니까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부끄럽긴 하겟지만!
자신이 아람을? 멍한 기분 속에서도 그 말만큼은 그대로 전해졌다. 그다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안이었다. 자연히 그 가설이 참인지 거짓인지 생각을 해보나 역시 지금 상태로는 명확한 판단이 힘들었다. 물론 그녀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좋아하냐고 물으면... 일단 인간으로서는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저 말이 뭘 의미하는지 모를 정도로 혜성은 순진무구한 이는 아니었다. 얼굴을 살짝 붉히다 혜성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모르겠어. 내가 널 좋아하는 걸까? 하지만... 으음. 아니야. 미안해 할 필요는..."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듯 혜성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말에는 제대로 대답하며 아람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어루만지듯 쓸어내렸다.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자신 쪽에서 이런 스킨십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던가. 꿈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지금 그의 정신이 맑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런 것을 굳이 인지하지 않으며 혜성은 보드라운 머릿결을 손가락 사이사이로 깨뜨리다가 손을 조심스럽게 떨어뜨렸다.
꼬리를 탁탁 치는 소리에 혜성은 고개를 물끄러미 돌렸다. 이어 두 손으로 다시 뺨을 톡톡 치다가 자리에 앉았다. 이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아직 안 갈거야. ...가려고 해도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데리러 오는 사람이 없으면 갈 수 없으니까. 난 왕자인 모양이니까. 아마 다들 날 찾고 있을테고..."
정신이 조금씩 맑아지는 것을 느끼며 혜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문뜩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옆으로 살며시 돌렸다. 방금 전 자신이 한 말들이 떠오르는 탓이었다. 괜히 오른손을 올려서 부채질을 하며 그는 투덜거리듯 이야기했다.
"방금 한 말은...취소. 취소야. ...아, 아니. 완전히 취소...는 애매하긴 하지만 그러니까 방금 전엔 내 정신이 조금 맑지 못했다고 해야할까. 막 물에서 깨어나서..아. 진짜... 모르겠네. 마음대로 생각해. ...모, 못하는 말이 없어."
온전히 정신이 깨어난 탓일까. 다시 평소처럼 투덜거리나 자신의 말이 상처가 되는게 아닐까 싶어 혜성은 살짝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칠 것 같으면 다시 고개를 홱 돌리며 시선을 회피하는게 그야말로 고양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야 다들 새벽에는 자고 있기 마련이니까. 나도 새벽에는 자고 있는걸. 그러다가 아침 7시쯤 일어나서 밥 먹고 하루를 준비하고! 주말인 오늘은 아침에 시간을 내서 운동을 가고 있고! 오늘도 다녀왔지!! 하지만 내일은 하루 쉴까 생각 중이야. 일단 그건 내일 상태를 보고!!
ㅋㅋㅋㅋㅋ 아무래도 이번 것은 둘 다 완전 부끄럽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야. 아람은 어떻게 부끄러워할지도 궁금하지만 뭔가 태연하게 받아들여도 아람이 같지 않을까 싶고. 물론 혜성이는 부끄러워서 이불 속에 쏙 들어가서 잠시 동안은 안 나올 것 같지만... 이렇게 된 이상 역시 시골 일상에서도 아침에 약한 혜성이가 헤롱헤롱 거리는 모습을 꺼낼 수밖에 없겠네! 부작용으로 상황에 따라서는 아람이를 피해다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봐야 시골이니 멀리는 못 도망갈테고!
아람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는 듯이 되묻는 그 모습에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굳이 말을 더 덧붙이지는 않았다. 본인이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것이었으니까.
그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다시금 앞에 앉는 혜성에게 다시금 집중했을 뿐이었다. 아직 안 갈 것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왕자인 모양이라는 말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럼 이건 인어공주 이야기가 맞는 모양이었다. 지난 번에는 신데렐라, 이번에는 인어공주. 자신은 동화 속의 공주님이라도 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다 정신이 들었는지 멍한 기운이 사라진 혜성은 본래의 그 성격대로 또 이리저리 말을 늘이며 말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람은 조금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한 말이 뭔데? 어떤 말?”
아람은 고개를 갸웃하며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다가도 꼬리가 불편한지 이리저리 파닥파닥 움직였다. 아람이 부루퉁한 얼굴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역시 뭍에서는 너무 불편한 것 같아. 그래서 목소리를 주고서라도 다리를 얻는 걸까?”
/운동 열심히 하고 있구나! 대단하다. 내일 상태 보고 피곤하면 하루는 쉬어도 된다고 생각해! 와아아 시골에서 헤롱헤롱한 혜성이 놀려야지! 아침엔 아람이가 혜성이 놀리고 밤에는 혜성이가 아람이 놀리는 건가?
"...몰라. 전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런 거지. ...아무튼 그런 것이 있어."
적어도 자신의 입으로는 말하진 않겠다는 듯 혜성은 일부러 강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무리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정말 어마어마한 말을 해버렸다는 생각에 그는 괜히 혀를 강하게 찼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식히려고 하다 차라리 저 바닷물 속에 얼굴을 담그면 이 꿈에서 깨어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나 그만두기로 했다. 뭔가 그랬다간 또 몽롱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든 탓이었다. 방금 전에도 아무리 꿈 속이라지만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또 그런 행동을 해서 좋을 것은 없었으니까.
"반대로 물 속에서는 자유로운 거 아니야? 원래 인어들은 물 속에서 산다잖아. 내가 물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뭐. 그리고 목소리와 다리라. ...너 말이야. 날 보겠다고 목소리와 다리를 바꾸기라도 할 참이야?"
목소리를 주고서 다리를 얻는다. 말 그대로 인어공주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녀가 인어공주고 자신이 왕자? 전에 신데렐라 때도 이러더니 이번에도 이러는 것에 혜성은 자신의 미간을 꾹 잡았다. 아니. 자신은 알게 모르게 그녀를 공주님이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것인가. 왜 또 이런 꿈이...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이야기했다.
"...바꾸지 마. 차라리 내가 매일 시간을 내서 여기로 올테니까. ...목소리를 주고 다리를 얻는다니. 손해도 그런 손해가 어디 있어. 무엇보다... 그런 식으로 희생해도 왕자는 기분이 좋지 않았을거야. ...아마도지만."
인어공주 내용대로라면 이후 그녀는 목소리를 주고 다리를 얻는 것일까. 그리고 사랑을 위해서 물거품이 되었던가. 자신이 아는 줄거리를 생각하며 혜성은 괜히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무엇보다... 바꾸면 네가 물거품이 되는 거잖아. 아니야?"
/사실 열심히인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고 있으니까 일단 열심히라고 주장해보겠어!! 진짜 전문적으로 운동하는 이들이 보면 헛소리하네! 이럴지도 모르지만 아무렴 어때! 응! 아람주의 말도 있고 그러니 내일은 내일의 상태를 보고 결정하겠어!! 아무튼..ㅋㅋㅋㅋㅋ 혜성이 최고의 위기 상황이 기어이 터지게 되겠구나. 그런데 밤에는 왜 반대가 되는거야?
아람은 혜성을 만나기 위해 목소리를 잃고 다리를 얻는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아니, 자신이 인어공주였다면 단지 얼굴만 알 뿐인 남자를 위해 목소리와 바다를 포기한다는 게 말이 안 되게 느껴지기는 했다. 게다가 이어지는 혜성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인어인 채라면 왕자님은 나를 좋아해주지 않을 거잖아. 같이 밥도 못 먹고, 같이 산책도 못하고, 같이 살지도 못하고. 종종 나를 만나러 오겠지만 점점 내가 귀찮아지고 또, 잊어버리겠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은 그런 법이었다. 왜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겠는가. 아무리 친한 친구였어도 이사를 가게되면 더이상 이전의 친밀한 관계로 돌아가기 어려운 법이었다. 같은 뭍에 살아도 그럴진데 사는 곳이 바다와 육지로 다르다면 그저 그 뿐인 관계로 남으리라. 게다가 둘 중 한 명이 아무런 말도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서로 찾아갈 수 없이 기다리기만 해야하는 그런 수동적인 관계이기도 했다.
“그래도, 네가 나를 좋아해 준다면 나는 물거품이 되지 않을거야.”
/왜냐하면 밤에는 도리어 아람이가 비몽사몽이 되기 때문이지~! 인어공주와 왕자도 둘 중 한 사람이 무통잠을 하면 만날 수 없는 관계이구나...(흐릿)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다란 수조를 만든 후에 그 안으로 들어가서 성으로 데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다른 종족과 어울리는 것이 이래서 힘들다는 것을 혜성은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인간과 인어. 사는 곳과 지내는 곳이 다르다는 것은 역시나 아주 큰 장벽이었다. 동화 속 인어공주도 그렇기에 목소리를 포기하고 다리를 얻어 뭍으로 나온 것일까.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다른 정체성. 즉 다른 종족이 되면서까지 얻어내는 사랑이란 얼마나 필사적인가. 그것을 느끼며 혜성은 괜히 입을 꾹 다물었다.
"...싫어하진 않아. 하지만 좋아하냐면.... 애초에 누군가에게 그런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기도 하고... 아니. 잠깐만. 애초에 무슨 말을 하게 하는거야! 아, 아니. 물론 내가 한 말이긴 하지만!! 애초에 뭔데. 너 나 좋아하기라도 해? 왜 내가 널 좋아하면 별 문제 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하는건데? 물 속에 다른 인어 왕자도 있고 그럴거 아니야!"
저 넓은 바닷속에 설마 왕국이 하나밖에 없진 않을테니 인어왕자도 분명히 존재할 거라고 그는 확신했다. 그렇다면 인어공주는 인어왕자를 만나는게 가장 행복한 미래가 아닐까. 허나 막상 그녀가 바닷속의 누군가를 만난다고 한다면 그건 또 묘하게 가슴이 찔끔하는 느낌이 들었기에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괜히 혀를 찼다.
"...애초에 마음에 안 들어.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일방적으로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 그런 거. 그러니까 목소리 포기 하지 마. 좋아하고 말고는 그 이후의 이야기야. ...애초에...."
뭔가 말을 망설이면서 혜성은 괜히 앉은채로 몸을 홱 뒤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고개를 살짝 숙인 후에 괜히 작게 중얼거리며,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너 때문에 얼굴 붉힌 것도.. 몇 번째인지 모르겠고... 그때 끌어안았을 때도 심장 터질뻔 했고... 아. 진짜."
괜히 투덜거리면서 혜성은 더 말을 하지 않겠다는 듯 그 상태에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가 아주 살짝 손을 뒤로 내밀었다.
"...적어도 지금은 이렇게 있어줄게. 그럼 된 거잖아."
/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혜성이가 놀리진 않을 것 같은걸! 오히려 재웠으면 재웠지! 물론 정말로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그러면 지켜보다가 피식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인어공주와 왕자..는 아무래도 종족부터가 다르니 말이야. 사는 곳도 다르기도 하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비극의 씨앗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네. 설사 왕자가 인어공주가 자신을 구했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맺히기에는 힘들테니까. 디즈니의 인어공주 시리즈가 정말 대단한거야. 진짜.
혜성의 말대로 인어공주라면 인어왕자를 만나는 것이 확실히 정답이긴 할터였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이 원래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던가. 인어공주는 인어공주만의 사정이 있을 터였다. 그것에 자신이 뭐라고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게다가 이어지는 말도 일리가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사랑을 위해 자기자신이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희생하고 그 상대방에게 목숨을 담보로 나를 사랑해달라고 하는 것은 폭력에 가까운 것이 아니겠는가. 목소리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든 되지 않든 그것은 서로의 의사가 합치된 그 이후가 되야 할 것이었다.
아람은 이내 등을 홱 돌려버린 혜성의 모습에 눈을 깜빡이다가 이어지는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조금 웃어버렸다. 그리곤 뒤로 손을 내미는 것을 보고 손을 뻗어 그 손을 잡았다.
“그럼 이건 어때? 동화에 보면 개구리 왕자가 공주의 입맞춤으로 왕자로 변했던 것처럼, 나도 입맞춤…을 받으면 공주님으로 변할 수도 있잖아.”
반은 장난스러움을 담아 한 말이었다. 혜성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왠지 입맞춰달라고 조르는 것 같은 말에 중간에 말을 늘어뜨리고 말았긴 했지만. 사실 얼굴도 이미 발그레한 상태이기도 했다. 아마 혜성이 뒤로 돌지 않았다면 이런 장난스러운 말도 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꿈인 걸.
/꿈이라서 제멋대로 말 내뱉는 아람이(이마탁) 재우려고 하는 혜성이와 안 자려고 하는 아람이 사이의 신경전?(아님) 시골집 배경으로 재미있는 장면 많이 나올 것 같다~ 인어공주는 비극을 상정하고 쓴 글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정말 장거리연애나 외국인과의 결혼이나 이런 것들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해. 디즈니 인어공주 안 봐서 해피엔딩이라는 것만 알아서 잘 모르겠다아
손이 잡히는 감각이 느껴지자 혜성은 덩달아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적어도 지금은 자신의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분명히 그리 보기 좋은 얼굴은 아닐테고 이후에 들려오는 말들도 대충은 짐작이 갔으니까. 그리고 이런 와중에도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는 아람의 목소리에 혜성은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이런 말들이 꿈 속에서 나오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내심의 무의식 같은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 관계없이 자신이 아람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어느 쪽이건 절대로 이번 꿈도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꾹 입을 다물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인기척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을지 생각을 하나 아무래도 좋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신은 진짜 왕자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이 모든 것은 꿈일 뿐이었다. 자신이 행방불명 상태가 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결국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 혹은 거짓일 뿐이었으니까.
"...애초에 동화 내용이 다르잖아. 거기다가 입맞춤 진짜로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너?"
개구리 왕자 이야기는 그도 알고 있었다. 허나 이것은 인어공주가 아니던가. 자신이 개구리가 되었다면 이야기의 내용에 따라 그런 장면이 나올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자신이 아는 인어공주 이야기에 그런 전개는 없었다. 아니. 사실상 원래 동화 내용대로라면 여기서 왕자는 우연히 길을 가는 다른 여성에게 발견되고 그 여성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라고 평생을 착각하며 살아가게 되던가. 그렇게 보면 이미 동화 내용과는 많이 어긋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다시 투덜거리듯 이야기했다.
"지금 이 와중에도 그렇게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게 정말 너답긴 하다. 진짜. ...아무튼 안 해."
물론 꿈 속이니 어차피 여기서 하는 모든 것은 노카운트가 되겠으나 그럼에도 꿈 속이라고 함부로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대신 혜성은 살짝 몸을 일으켰다가 그녀 가까운 곳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조심히 손을 떼어낸 후에 그녀의 몸에 팔을 감으려고 하며 거부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품으로 정말로 조심스럽게, 살짝 긴장할 때 나오는 떨림을 보이며 당기려고 했을 것이다.
"...대신 여기까진 뭐 괜찮을지도. ...이, 일단은 도와준 답례..같은 거니까! 인어공주가 가장 원했던 것이.. 그, 왕자의 따뜻함 같은 거잖아. 아닌가? 아무튼 그랬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품에 안겼다면 그대로 조금 더 포근하게 안아줬을 것이고 만약 그것을 피했다면 다시 손을 꾹 잡아주며 그는 시선을 돌렸을 것이다.
/ㅋㅋㅋㅋㅋㅋ 정말로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르나 혜성이로서는 아직은 무리였다. (털썩) 아무튼 신경전이 일어난다면 그건 그것대로 되게 꽁냥거리는 느낌이라서 좋을 것 같은걸? 이거 다음이 시골집이니까 천천히 이것저것 생각해봐도 되지 않겠어? 다른 건 몰라도 비 피하는 장면 같은 것은 꼭 해보고 싶긴 하다! 사실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된 후에 소멸하지 않고 그 후에 정령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하니..완전한 비극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디즈니 사는 아빠가 자신의 힘으로 완전히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결말이니까! 마녀도 소멸해서 불안의 씨앗도 사라졌고!
진짜 입맞춤을 한다면? 음, 사실 잘 모르겠다. 꿈이기도 하고. 사실 혜성이라면 아무리 꿈이더라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도 있었다. 제가 본 혜성은 한 번도 자신을 상처입힌 적이 없었으니까.
아람은 혜성의 거절에 예상했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었으나 이내 몸을 돌려 자신에게 가까이 앉는 혜성에 조금 눈을 깜빡였다가 그대로 자신을 끌어안는 것에 눈을 크게 뜨며 살짝 얼어버렸다. 그러다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느낌에 이내 웃으며 혜성의 품에 더 밀착하며 허리에 손을 감아 그를 안았다.
귓가에 들리는 혜성의 변명 어린 말에 작게 웃음을 흘렸다. 두근두근 심장이 떨려왔다. 검푸른 바다의 파도소리가 철썩철썩 들려오고 그 사이로 밤하늘의 별들이 우리를 보며 소근소근 속삭이는 소리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물에 젖은 옷자락은 축축했지만, 그렇기에 서로의 체온이 더 뜨겁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혜성의 어깨에 뺨을 댄 채로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아람이 작은 목소리로 혜성에게 말했다.
“좋아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건 꿈이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거절당한다고 해서 사이가 틀어질 일도 없었다. 아니면 이곳은 내 꿈이니까 거절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아니, 대답을 듣기보다는 그저 이 충동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냥 네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불러서 보고 싶고, 너랑 손잡고 길고 긴 산책로를 원없이 걷고 싶어. 아무런 이유 없이 너를 끌어안고 싶고, 힘든 일 있는 거 다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어. 나는… 나는 내가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알아.”
잠시 숨을 내쉬었다가 아람이 이어 말했다.
“너를 좋아해서 그래. 내가, 너를.”
목소리가 조금 떨렸던가, 아니면 착각일까. 긴장감에 너를 조금 더 깊게 안았다. 그리고, 조금씩 꿈에서 깨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봐봐 역시 꿈이잖아.
들려오는 말에 혜성은 순간 움찔했다. 꿈 속에서라도 이런 말을 듣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 것인지. 그저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이 아닐 수 없어 혜성은 애써 속으로 쓴 웃음소리를 냈다. 더더욱 이 꿈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이 자신만이 간직해야 할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을 느끼며 그는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 자신의 어깨에 뺨을 기대며 달라붙어있는 그녀의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거리며 혜성은 눈을 감았다.
"꿈인데 말이야. 분명히 이건 꿈인데 되게 리얼하네."
대답을 할 수 없다는 듯, 하지 않겠다는 듯 혜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좋다, 싫다. 무슨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지금 상황에서 말하는 것이 반칙이라고 그는 생각이 들었다. 꿈은 꿈을 꾸는 이의 무의식이 발현되는 무언가라면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비겁한 행동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 리얼함을 즐기며 혜성은 자신의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고백. 그것을 괜히 곱씹으며 혜성은 자신을 깊게 안는 그녀를 덩달아 깊게 안아주었다. 품 속에 가둬버리듯. 품에 쏙 들어오는 것 같은 그 리얼함을 품 속에 깊게 가둬버리려는 듯. 아무런 말도 없이 느끼다 점점 배경이 희미하게 바뀌어가는 느낌에 혀를 찼다.
"...고마워."
고맙다는 말을 한 마디 남기고 뭔가를 더 말하려는 찰나에 주변이 하얗게 변해가고 느껴지는 감촉 역시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눈을 떴다. 낯익은 천장. 그리고 낯익은 감촉. 그 모든 것을 느끼며 그는 멍한 표정으로 두 눈을 깜빡였다. 조용히 입을 다물면서 방금 자신이 꾼 희미한 꿈을 떠올리니 모자이크가 벗겨지듯, 안개가 걷혀지듯 하나하나가 떠올랐다.
"......"
멍한 표정을 지으며 두 눈을 깜빡깜빡. 그렇게 괜히 꾸벅꾸벅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며 멍한 표정을 짓던 와중 혜성은 빠르게 이불을 머릿속으로 덮었다.
'......' '......'
붉어진 얼굴을 이불 속으로 감추며 그는 괜히 발버둥을 여러 번 쳤고 그에 따라 이불 속에서 퉁퉁거리는 소리가 약하게 울렸다.
'...왜 이런 꿈을 꿔서는... 이러면 마치...' '아니. 어쩌면 맞나. 하지만...'
아무런 말도 없는 속삭임과 중얼거림이 그의 목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혼란스러움과 당혹스러움. 그리고 눈을 돌리고 있던 무언가에 시선이 향하며.
/뭔가 상황상 막레가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일단 꿈을 깨우고 막레로 써봤어! 사실..음. 답을 해볼까 했지만 아무래도 꿈이기도 하고! 뭔가 지금 상황에서는 답을 해도 애매해질 것 같으니! 고로 혜성이의 감정은 다음 시간에 계속이라는 느낌으로....해버리면 아람주에게 너무 잔혹한 처사가 되겠지! ㅋㅋㅋㅋㅋㅋㅋ 음. 혜성이도 상당히 많이 의식하고 있으니 아마도..음. 그런거야!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이건! 안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더라도 거의 한 학기를 꾸준히 매번 본 것이나 마찬가지고 둘이서 놀러다닌 횟수도 많을테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데이트도 꽤 여러 번 했으니...의식을 안할 순 없다. 이건!
으윽, 소리를 내면서 아람은 말없이 내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다리를 동동 구르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나서야 푸하, 소리를 내며 베개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자고 일어나 머리는 부스스했고, 방금의 행동이 생각나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발개진 얼굴로 가만히 있다가 다시금 침대에 몸을 웅크린채 머리를 박았다.
알람보다 일찍 일어난건지 그제야 알람이 울렸다. 아람은 손을 뻗어 알람을 끄고는 다시 천장을 보며 누웠다. 그러다가 다시금 양 손으로 눈을 가렸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무슨 짓을 한 건지. 앞으로 어떤 얼굴로 혜성을 봐야할 지 모르겠다. 왠지 이전의 혜성이 무슨 꿈을 꿨다며 자신을 피해다녔던 그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미쳤나봐.”
조금 잠긴 목소리가 내뱉은 첫 마디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을 울리는 신음. 이미 이전에 자각된 감정은 이번의 꿈을 만나 괴롭게 다가왔다. 짝사랑이었다. 그렇게 무거운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꿈까지 꿀 정도였던가?
그럼에도 혜성이 자신을 끌어안았던 감촉이 생생해서 끙끙거리며 다시금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부림쳤다.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면서 왜 보고싶다고 하는데, 왜 손 잡아주는데, 왜 안아주는데.
‘최혜성, 바보, 멍청이.’
괜히 속으로 꿈속의 혜성을 욕하며 눈을 꾹 감았다. 실제의 혜성이 그렇게 행동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제 꿈이었으니 제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일터였다. 하지만 꿈이라기엔 혜성의 반응이 너무 현실성 있어서 더 괴로울 뿐이었다.
불행인 점은 그것이 꿈이라는 것이었고, 다행인 점도 그것이 꿈이라는 것이었다.
/상황 상 막레 맞아 ㅋㅋㅋㅋㅋㅋㅋ 사실 나도 이 상황에서 답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이미 앞에서 혜성이의 고뇌가 다 느껴졌는데 어떻게 갑자기 개연성이 바뀌겠어. 하지만 오너의 입장과 다르게 아람이가 충동적으로 막 움직여서 나는 에라 모르겠다 던져버렸다. 아람이는 자각한지 오래인데 지금의 이 상황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야 ㅋㅋㅋㅋ 사실 그 상황에서 혜성이가 끌어안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다고 차마 변명해본다…(흐릿) 마치 돌던졌는데 댐터진 느낌.
꿈이라고 자각해서 그런지 더 충동 조절이 안되는 아람이었다고 한다… 왜 내가 부끄러운거지? 세상… 나는 상관이 없어ㅋㅋㅋㅋ 혜성이의 성격상 천천히 진행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런데 아람이 성격이… 아니, 현실에서는 못 던질거면서 꿈이라고 말 막 던질때부터 알아봤다(흐릿) 아마 답을 했더라고 하더라도 아람이도 꿈이라고 생각하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거야.
자, 시골집 가면 비피하는 장면은 꼭 하고, 또 반딧불이도 보고 그러자고! 아, 왜 내가 대리 설레는 건지 모르겠다ㅏㅏ 진짜 둘은 썸타고 있어…. 맨날 데이트 하면서…!
ㅋㅋㅋㅋㅋㅋ 사실 일상 돌리다보면 캐릭터가 충동적으로 움직이는거야 얼마든지 있는 법이니까. 나도 그럴 때 많기도 했고! 아무튼 자각을 했는데 막상 아무 것도 없으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사실 혜성이 입장에선 입맞춤은 아무리 그래도 아닌 것 같고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한 행동이지만..역시 혜성이가 잘못한 것이 맞는 것 같아. (진지)
아니. 그래도 귀여운걸! 진짜 너무 귀여운걸. 사실 언제부터 자각을 했는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틈틈히 자각하고 있다는 식으로 은연중에 나오기도 했었고 말이야. 사실 혜성이도 마찬가지기도 하고. 하지만 이대로면 확실히.. 아무렴 어때! 둘 다 잘 어울리고 썸 잘 타니까 된거지!! 사실 혜성이 입장에서는 그 고백 때문에 아람이에게 괜히 미안함만 느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아람이가 날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나? 이거 되게 실례 아닌가? 그런 느낌으로 말이야. 하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괜히 눈길을 더 줄지도 모르겠네. 적어도... 좀 더 보고 싶다. 같이 있고 싶다는 확실하게 자각을 한 거기도 하고.. 물론 그 원인에 대해서는 역시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지만!
사실 나도 설레니까 괜찮아. 이래서 썸타는 느낌의 상황극이 진짜 재밌어. 대리설렘도 그렇고.. 뭔가 달달꽁냥거리는 느낌도 그렇고.. 뭔가 그 특유의 느낌이 있어서 이런 장르를 완전 좋아해. ㅋㅋㅋㅋㅋ 아무튼 음악..ㅋㅋㅋㅋㅋㅋ 맞네. 지금 트는게 맞네.
시골.. 비 피하는 것도 하고, 괜히 둘이서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는 것도 나올지도 모르고, 계곡에서 노는게 나올지도 모르고, 반딧불 보는 거 나올지도 모르고... 그리고 아침의 멍한 혜성이라던가. 벌써 5개가 나오네. 와. 소재가 많다!
사실 오너 입장에서도 조금 혜성이를 흔들려는 의도가 없지는 않았다고 자수합니다.... 아람이를 귀엽다고 해줘서 너무 고마워 ㅋㅋㅋ큐ㅠㅠㅠㅠ 나도 혜성이 너무 좋고 귀엽고 그렇다!! 사실 썸을 더 오래 타도 상관 없다고 생각해. 원래 썸이라는 게 즐거우면서도 괴롭고 설레면서도 씁쓸한 거 아니겠어! 그런 것도 너무 조아하는 부분이라 사실 아람이가 더 굴러도 나는 좋...아....ㅅ... 미안하다 아람아.
정말 시골집에서 할 일이 많아. 벌써부터 설레는 기분...! 둘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모먼트가 나올지 너무 기대된다!
그나저나 혹시 이번에 시골집 일상 들어가기 전에 비설 풀기 겸 사건 하나를 넣고 싶은데 가능할까? 시골집 갈 때 넷이 만나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었는데, 항상 약속시간에는 일찍 오는 아람이가 그 날 계속 기다려도 연락도 안 되고 안 와서 혜성이가 전에 촬영 때 집에 데려다 주면서 집 근처 알고 있으니까 그쪽으로 가봤는데, 골목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