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은 잡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손이 있으니 손을 잡고 어깨가 있으니 그것을 끌어안고 너는 나의 뺨을 만지다 나의 뺨에 흐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겠지 이 거리는 추워 추워서 자꾸 입에서 흰 김이 나와 우리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느끼게 될 것이고, 그 느낌을 한없이 소중한 것으로 간직할 것이고, 그럼에도 여전히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런 것이 우리의 소박한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는 추위와 빈곤에 맞서는 숭고한 순례자가 되어 사랑을 할 거야
네 감은 속눈썹이 예쁘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그랬었다. 나는 감히 거기에 넋을 놓아도 좋은 사람이 되었지만 그렇게 할 때마다 경이로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네 손의 무게가 손 위에 얹혔다. 그것은 가볍고도 미지근하게 존재감을 느끼기에 좋아서, 나는 무심코 너의 존재감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 또한 경이에 가까운 일이다.
느릿하게 들어올려지는 얼굴, 더이상 말을 않고 네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상처를 어루만지듯 온화하고 완완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달뜬 숨이 떨어지며 너와 내 입술 사이에 잠깐의 공간이 생겼을 때에 너에게 사랑을 말했다. 너를 떨어지지 않도록 감싸고 몸을 일으켜 반대로 너를 눕히려 하였다. 그것은 네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이다.
"사랑해. 세아야."
그것을 반복하면서 네 입술, 뺨, 목에 차례로 입을 맞춘다. 내가 지금 널 얼마나 가여워하면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지 네게 전하고 싶어. 그러나 무엇이든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세계에서는 추상적인 관념들은 전해지지 않고, 그저 행동을 매개할 뿐이다.
너의 권유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발화가 있지 않더라도 나의 긍정이 너에게 닿고 있기를 바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입술에 너의 입술이 닿는다. 지금까지 몇번이고 반복해왔던 감각이지만 매번 새롭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것은 너무 당연한 걸까. 여기서 나는 어떤 생각을 따로 했어야 옳은 걸까. 연쇄가 끊긴 생각들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은 거대한 파도가 부숴지고 거품이 일듯이 머리속에서 수없이 일고 졌다. 느리고 부드러운 접촉이 끝날 무렵에는, 분명 내려봐야 했을 네가 내 위에 있었다. 그 탓인지 몰라도 심장소리가 크게 몸 안을 때리고 있었기에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익사할 것 같다는 감정, 감각, 혹은 생각의 과잉은 너 혼자에게만 있지 않았다. 같은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비슷한 심상을 공유하는 중이라 이건가.
한참. 혹은 일순. 시간이 지나고 눈을 떴다.
" ....? "
침대 위에서 천천히 정신을 차린 강세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찾는 대상이야 하나 뿐이겠다.
너는 먼 곳에서 그것을 찾을 필요 없었다. 그것은 바로 네 옆에서 지금처럼 손을 뻗어 너를 껴안아 다시 침대에 넘어뜨릴 만큼 가까이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 탓에 매트리스가 네 무게에 맞추어 연주된다. 네 몸을 껴안는 손길은 네가 불편해하지 않을 곳을 찾던 예전보다 거침없어서, 조금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싫어하지 않는다면 너를 품에 안고 양껏 껴안고 쓰다듬었을 것이고 이후에는 천천히 물어보았을 것이었다.
말없는 너를 쓰다듬는 것은 사뭇 즐거운 일이었다. 네 살결은 부드러웠고 머리카락은 손가락으로 가르는 족족 폭포수처럼 갈라져 쏟아져내리며 네가 숨을 마시고 내뱉는 것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으므로 나는 온 몸으로 네 존재감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네 기분에 족하게 했을 때에 상으로 이런 시간을 받아도 좋겠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쩌면 위로로 받아도 좋을 일이겠다. 어쩌면 네가 내게서 구했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서 위로를 받고 제공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행복해. 너한테 도움이 되는 것만큼 내게 있어서 자랑스러운 일은 없을 거야."
네 머릿속의 뒤엉켰던 실오라기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거나 언젠가 다시 생겨날 고질병 같은 것이라고 해도 언제든, 해결사처럼 나타나줄게.
"음. 세아는 먹고싶은 것 있어?"
다정한 눈으로 널 마주하며 그렇게 되묻는 것은 당연히 내가 요리할 생각을 하고 있어서였다. 요리가 무리인 것이라면 주문하면 되는 것이고, 어느 쪽이든 너와 아침을 함께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될 것이다. 네가 뭔가 해준다는 것은 적어도 내 상정 안에는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