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은 잡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손이 있으니 손을 잡고 어깨가 있으니 그것을 끌어안고 너는 나의 뺨을 만지다 나의 뺨에 흐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겠지 이 거리는 추워 추워서 자꾸 입에서 흰 김이 나와 우리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느끼게 될 것이고, 그 느낌을 한없이 소중한 것으로 간직할 것이고, 그럼에도 여전히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런 것이 우리의 소박한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는 추위와 빈곤에 맞서는 숭고한 순례자가 되어 사랑을 할 거야
이마에 툭 하고 닿은 그 가벼운 접촉.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녀석인지 알 수조차 없었지만 아, 하고 얼빠진 소리를 내며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는 효과는 훌륭히 끌어내었다. 이어지는 말들을 천천히 해체하고 싶었지만 그렇기엔 이번엔 강세아에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했다. 그것을 마음에 드는 정도로 분해하고 형태소와 상징성을 이어서 발화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심상에 닿을 수 있었다고 한들, 이번에는 상대의 발언에 휩쓸려 떠밀려 가는 편이 좋았다. 스스로의 뇌 안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상호작용보다는, 너의 성대와 공기를, 나의 귀와 뇌를 거치는 쪽이 훨씬 더 느릴 텐데. 이상한 일임이 확실했다. 양보다는 질이라는 것인가, 아니면 호르몬과 성립된 관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우선순위의 차이인가. 노이즈처럼 스스로의 생각은 미약하게 일었지만, 이는 접촉의 형태가 바뀜에 따라 불쑥 나타났던 것과 같이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피부의 접촉에 신경을 쓰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간단한 판단 정도만 해보며 강세아는 자신의 뺨을 감싼 희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 ... 글쎄, 나는 내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잘 모르겠어. "
자칫 도발적으로 들릴 법 한 말을 내놓고는 눈을 감았다. 뺨을 감싼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산발적이고 독립적이던 생각들이 이제는 감지되질 않는다. 모르지, 무의식적으로는 이전보다 더 들끓고 있을지. 하지만 확실히 그녀는 상대를 보기 전보다 진정된 마음이었다.
이쪽을 봐 달라는 이야기. 강세아는 들리지 않았던 것 마냥 가만히 숨을 쉬다가 천천히, 상대에게 진절머리가 날 정도의 느린 속도로 고개를 들었다.
네 감은 속눈썹이 예쁘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그랬었다. 나는 감히 거기에 넋을 놓아도 좋은 사람이 되었지만 그렇게 할 때마다 경이로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네 손의 무게가 손 위에 얹혔다. 그것은 가볍고도 미지근하게 존재감을 느끼기에 좋아서, 나는 무심코 너의 존재감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 또한 경이에 가까운 일이다.
느릿하게 들어올려지는 얼굴, 더이상 말을 않고 네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상처를 어루만지듯 온화하고 완완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달뜬 숨이 떨어지며 너와 내 입술 사이에 잠깐의 공간이 생겼을 때에 너에게 사랑을 말했다. 너를 떨어지지 않도록 감싸고 몸을 일으켜 반대로 너를 눕히려 하였다. 그것은 네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이다.
"사랑해. 세아야."
그것을 반복하면서 네 입술, 뺨, 목에 차례로 입을 맞춘다. 내가 지금 널 얼마나 가여워하면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지 네게 전하고 싶어. 그러나 무엇이든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세계에서는 추상적인 관념들은 전해지지 않고, 그저 행동을 매개할 뿐이다.
너의 권유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발화가 있지 않더라도 나의 긍정이 너에게 닿고 있기를 바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입술에 너의 입술이 닿는다. 지금까지 몇번이고 반복해왔던 감각이지만 매번 새롭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것은 너무 당연한 걸까. 여기서 나는 어떤 생각을 따로 했어야 옳은 걸까. 연쇄가 끊긴 생각들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은 거대한 파도가 부숴지고 거품이 일듯이 머리속에서 수없이 일고 졌다. 느리고 부드러운 접촉이 끝날 무렵에는, 분명 내려봐야 했을 네가 내 위에 있었다. 그 탓인지 몰라도 심장소리가 크게 몸 안을 때리고 있었기에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익사할 것 같다는 감정, 감각, 혹은 생각의 과잉은 너 혼자에게만 있지 않았다. 같은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비슷한 심상을 공유하는 중이라 이건가.
한참. 혹은 일순. 시간이 지나고 눈을 떴다.
" ....? "
침대 위에서 천천히 정신을 차린 강세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찾는 대상이야 하나 뿐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