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은 잡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손이 있으니 손을 잡고 어깨가 있으니 그것을 끌어안고 너는 나의 뺨을 만지다 나의 뺨에 흐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겠지 이 거리는 추워 추워서 자꾸 입에서 흰 김이 나와 우리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느끼게 될 것이고, 그 느낌을 한없이 소중한 것으로 간직할 것이고, 그럼에도 여전히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런 것이 우리의 소박한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는 추위와 빈곤에 맞서는 숭고한 순례자가 되어 사랑을 할 거야
안심할 수 있는 상대의 앞에서 유아퇴행이 일어나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언젠가 읽었던 책에 그리 써져있었다. 그러면 너는 분명히 나에게 있어 안심할 수 있는 상대라는 의미야. 너의 옷자락을 쥔 손에서 힘을 조금 풀고, 이마를 네 가슴팍에 묻었다. 익히 잘 알고 있는 냄새는 여러가지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에 나는 지긋이 눈을 듣고 응. 응. 하고 너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기분을 풀어줄 것을 확실히 가져왔으니 봐달라는 말에 나는 반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손에 쥔 봉투를 바라보며 그 내용물을 궁금해하다가, 엄지로 스스로가 가장 큰 선물인 것 처럼 어필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후로는 아하하하 하고 웃음이 터져나와서 손으로 입가를 살짝 가리다가 숨이 모자란 탓인지 심호흡을 하고는 눈가에 살짝 삐져나온 눈물을 닦았다.
" 역시 부르기를 잘 한 것 같아. 자, 안으로 들어와. "
불이 완전히 꺼져 어두운 집 안으로 너를 초대했다. 들어가는 길에 구태어 불을 켜지는 않았으며 네가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느린 걸음으로 거실로 들어가, 기다란 소파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거실의 공기는 대부분 이 집에서 그렇듯이 차갑고 묵직한 느낌이다.
안녕~ 기쁘다니 열심히 써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수험생은 아니구나. 금요일까지 밀린 일들 힘내 힘 !
대학생활이나 동거같은 건 세아주와 서로 괜찮다 싶을 때 시간이 흘렀다는 걸로 이어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때? 사실 수능이나 수능 이후의 세아 같은 것도 보고 싶었고... 반 친구들과 게임하는 세아같은 거. 정주행은... 고마워... 정주행은 하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몇 구절 보고 나면 과거의 나에게 견디지 못하는 내가 있어...
미니 대롱이 아직 갖고 있구나ㅋㅋㅋㅋ 잘 간직해주는 것 같아서 희인이 만든 보람이 있겠다. 답레에 안 적은 것 중에 희인이가 고민한 이유가 저런 얘기를 자랑스레 할 만한 성격은 아닌데 세아가 조금이라도 웃어줄까 싶어서 얘기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웃어줘서 엄청 기뻐할 거라고 생각해 ㅇ<-<
그렇지 강아지 덕분에 힐링하고 왔다 /u\ 어디 좀 다녀와서 피곤하지 않으면 답레 가져올게~
수험생이라는 신분은 무거운 중압감을 벗어버리고자 노력하는 이들이고, 어떠한 사소한 계기이던간에 감각을 희석할 일탈은 환영하는 이들이다. 보편적인 수험생이라는 개념에서 강세아는 꽤 멀리 떨어져있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분 자체에게 내려지는 기대와 압박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11월 11일이 달갑게 다가왔다. 오기 며칠 전부터 너에게 무슨 선물을 할지 고민하며, 스스로의 모습이 그렇게나 동떨어져 보이는 평범한 연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자각에 깜짝 놀라기도 했더랬다.
" 어머, 지금까지는 내가 있는데도 그럴 생각이 안 들었던거야? "
지긋이 뜬 눈으로 너를 바라보았지만 네가 그런 의미로 말을 꺼낸 것이 아니기에 금세 눈빛을 거둬주었다.
전화 잘못 걸었다고 끊는 게 진짜 잘못걸은 줄 아는 거였어?! 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귀엽다... 사회성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구나... 같은 상황이라도 반응 달라지는 게 흥미로워. 옛날 일상 중에서 세아의 사회성이 제일 올라갔던 때 기억나? 그 때의 세아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저런... 빨리 쾌유되길 바라 ! 흑역사 얘기는 잘 참고할게. 많이 늦고 있지...ㅠㅠ 이번에 답레 올리고 나면 늦어진 원인을 니름대로 분석해보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리스트는 쌓여가고 내 통장 잔고는 바닥으로 내려가고.... 장염때문에 고생하는 가족이 있어서 그런데 남일같지가 않다 아프지마 희인주 물 많이 마셔야해
커플룩! 스웨터나 맨투맨 같은거 제발 하나 맞췄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아무 말 없이 서로 만났을 때 같은 엇 입고 좋아하는거 보고싶고... 세아는 아마 미소를 짓는 선에서 끝나겠지만 희인이가 엄청 좋아하는 강아지같은 모먼트가 생각났고 귀여워.
세아의 쇼핑! 인터넷 쇼핑이 주가 되지만 엄마랑 같이 백화점을 갈 때도 있고 친구랑 가끔 같이 옷 사러 갈 때도 있어! 눈만 땡글땡글 굴리면서 슉슉슉 지나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다가가서 살펴보고 다시 슉슉슉 보통 코디가 되어있는 체로 파는 옷을 사는 편이야. (그래야 패션-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옷을 사용할 수 있다)
그곳에는 눈이 왔나요, 이근방에는 눈이 왔습니다.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날이 추워지고 해가 짧아지고 희인주 생각이 나는것 같습니다.
마네킹 체로 사는 이유는 그래야만 주위에서 자신을 귀찮게 구는 다종다양한 가십을 사전차단할수 있기 때문이며 패션은 사회적 상호작용 가운데 보편적인 미의식과 변화하는 유행 두가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갖고 있어야 작용 가능한, 세아입장에서는 9서클마법에 비슷하기 때문에... 예 그렇게 큰 관심은 없습니다.
내심 웃어주기를 바라며 했던 행동에, 원하던 결과가 눈으로 보이게 돌아오는 것만큼 반가운 일이 또 있을까. 오늘처럼 네가 걱정될 때에는 더욱이. 조금은 풀린 듯한 네 기분에 공헌을 했다는 기분 좋은 뿌듯함을 느끼며 불이 켜지지 않은 집안에 발을 내딛는다.
"그럼, 실례할게."
네가 불을 켜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까. 분명히 전화 너머로는 네게 아무도 없다고 전해들었는데도. 어쩌면 내가 오기 전까지의 네 기분은 주변의 암흑과 겨우 주파수를 맞추고 싶을 만큼 어두웠는지도 모른다. 굳이 스위치를 찾아 벽면을 더듬지 않은 것은 내가 전등 스위치 위치를 익히 알 만큼 너의 집 구조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네가 잠겨있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 어둠을 택했다면 너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며, 동시에 새벽빛에 비치는 네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얼어있는 검지손가락을 부러 네 다리가 얹혀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소파에 뻗었다. 손끝이 네 다리에 닿았을 때, 다음 손가락인 중지를 내세워 네 다리 위를 횡단한다. 하나, 둘, 셋, 넷... 비어있는 곳이 나올 때까지 손가락 걸음을 걷고는 공간을 가늠해 네 옆에 풀썩 몸을 내려앉혔다.
"잘 안 보였으니까."
변명인지 핑계인지 장난인지 진담인지 모를 목소리에 빙긋 웃는 표정마저 어둠에 먹혀 버렸다면 나도 안심하고 모르는 척을 해도 괜찮겠지.
"불은 일부러 안 켜는 거야? ...크게 상관은 없지만 궁금해서 그래."
장애물이 없는 곳에 봉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작은 박스에 포장되어 있는 달달한 간식을 꺼냈었다. 손끝에 닿는 푹신한 것은 아마 편의점 행사 코너에 진열되어 있던, 안기 좋은 사이즈의 인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