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아니고 인간이라. 확실히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일반인들이 그렇게 생각해줄지는 미지수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서 익스퍼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고 있는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익스퍼를 이용한 범죄자들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서 정보의 유출을 막기에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정부의 판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경찰의 형태로 익스퍼들의 존재를 공개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려는게 아닐까. 하지만 적어도 나는 우리가 괴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을 경청하고 있으니 큐브 웨폰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무기가 등장했다. 우리가 기존에 지급받는 무기가 아닌 대 익스퍼용 무기라는 것 같다. 지금은 큐브 웨폰이지만 차예성 경위가 시연하는 것을 보니 무기의 형태로 돌아갔다가 다시 원래의 형태로 돌아간다. 무슨 성질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자리로 돌아가 큐브를 손에 쥐었다. 여기에 내 익스파를 넣으면서 모양을 상상하면 된다 .. 뭐 그런건가?
그렇게 익스파의 힘을 집중하면서 원하는 무기의 형태를 상상하자 큐브 웨폰은 내가 원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물건이란 말이야. 정상적으로 작동하는게 맞는건가 싶었지만 이미 성능 테스트는 다 끝냈을테니까 외형만 잠깐 확인하고서 원래의 큐브 형태로 되돌린다. 살면서 이런걸 다 받아보고 경찰하길 잘했나 싶기도 하다.
딱 이 생각을 했다. 경찰의 주 된 무기이자 보호수단이며 어차피 외상을 입힐 수 없는 데미지뿐인 공격이라면 손쉽게 사용 가능한 총으로 상대하는게 낫지 않겠나, 근데 이제 파괴력을 곁들인.
바로 이 레이징 불 매그넘 리볼버.
자신의 큐브를 손에 쥐고 익스파를 쓰던 느낌 그대로 허나 강도는 약하게 슬며시 주사기로 약물을 주입하는듯한 느낌으로 흘려넣기 시작했다. 빨간 번갯불이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렁이다 그것은 본인이 생각한 매그넘 리볼버와 같은 형태로 변했다. 큐브로 변하기도 리볼버로 변하기도 두어번을 반복하다가 큐브를 아까의 유니폼에 집어넣었다.
눈 앞에서 자그마한 큐브가 하나의 무기로 변하는 것을 본 유우카의 동공이 확장된다. 어렴풋이 들은 적은 있지만, 정말 이런 기술까지 나왔을 줄은... 정부가 정말로 익스퍼의 일반화를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처음 죽고 살아나서 익스퍼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익스퍼라고 하는 능력을 마치 만화나 게임같다고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이런 무기까지 손에 넣는 상황에 오게 되니 다시금 그런 생각이 드는 유우카였다. 그러는 사이에 사방에서 자신이 원하는, 최적의 형태의 무기로 형태를 바꾸는 동료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그러다보니 괜스레 가만히 있는 것이 조바심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사실 유우카가 이것이다 하고 정한 형태는 없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악에 대한 근절. 그걸 위한 강함. 무심하고 올곧은 판결. 그리고 왜일까, 도장의 사범을 하고있던 할아버지가 수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에서 무념의 경지로 우직하게 칼을 휘두르던 모습을 줄곧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 마음을 대변하듯, 큐브는 유우카의 손이 닿자 자연스럽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걸친 탁한 눈에 빛이 번지고 나타난 것은, 길고 긴 도신을 가진 일본도. 유우카의 키 정도는 훌쩍 넘길법한 용모의 우람한 태도(太刀)였다.
"으응...! 차..."
힘겨운 기합과 함께 양 손으로 쥔 그것을 천장을 뚫을듯 일자로 들어올려본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상당한 힘이 들었다. 그럼에도 무기가 잘 못 나왔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지, 이걸 휘두르려면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것보다, 벌써 그런 부분까지 인수인계가 되었다니, 정말 이 직업은 언제 생각해도 참 무서울 정도로 철두철미했다. 하긴, 나름 중직업인만큼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렇게 옷을 받아들고서 잠깐 생각을 하던 사이, 또 무언가 지급되는게 있는 모양이었다.
큐브웨폰?
"꽤 재밌는 장난감이네요?"
물론 진짜 장난감인건 아니지만 그래도 직접적인 외상을 주는 것이 아닌 타격만 주는 거라면 어느정도 수지가 맞는 대응책이었다. 경찰이라고 무조건 범죄자를 처단하란 법은 아무리 이런 세상이라도 없을테니까, 한손으로 얼추 잡을 수 있을만한 크기의 육면체를 들고서 잠깐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당장 떠오르는 무언가의 형태를 그대로 구현해냈다. 설마 진짜 될거라곤 생각 못했지만, 애초에 특이한 능력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이런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닐테지. 그래도 엄청난 기술력이란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쪼록 이런걸 꺼낼만한 일이 많지는 않길 바래야 하나요~?"
라고 해도, 분명 앞으로 그럴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그녀가 있는 팀의 존재 의의 자체가 자신들과 똑같은 능력자들과의 대치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니까.
괴물이 아니라 인간. 과연 인간이라고 불러도 될 익스퍼 범죄자가 존재할까? 살인을 저질렀다는 가정 하에 범죄자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비관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이 부분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는 살인범을 여럿 만나봤고, 근본적으로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점을 알았다. 그가 잠시 시간을 확인하듯 손목에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는 들리지만 분침과 시침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의미 없는 행동을 했다는 걸 깨닫듯 손을 내린다. 제복이 맞으면 되는 일이다.
"어머. 신기해라."
익스퍼에게는 물리적 타격을 줄 수 있다. 과학의 발전이 비약적이다! 그는 예성의 시범을 보고는 큐브를 집어든다. 이 조막만한 것이 뭔가로 바뀐다니. 신기하다. 그렇지만 어떤 무기가 좋을까? 그가 아는 무기의 종류는 아주 적었다. 그냥 아무거나 적당히 어울리는 걸로 변했으면 좋겠다. 그는 큐브를 쥐고 익스파를 불어넣는다는 감각으로 사용해보기로 한다.
"맙소사, 아저씨는 오리엔탈리즘에 찌든 레이시스트가 아니에요. 믿어줘요."
대침大針이 그의 손을 카드처럼 훑고 넓게 펴졌다. 그는 지금부터 애쉬가 아니라 화타다. 빠르게 큐브로 바꾼 그는 본인은 비록 창파오를 입지만 오리엔탈리즘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듯 손사래를 쳤다.
큐브 웨폰이라. 이런 것도 만들어지다니, 요즘 기술이 참 좋아졌구나 새삼스레 의식하게 되었다. 생각만 하면 그대로 무기가 된다니, 엄청 편리한 거 아냐 이거? 물론 한 번 정하면 그걸로 끝이라는 게 아쉽긴 했다. 나중에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어도 다시 바꾸지는 못 한다는 거겠지, 아마.
하지만 자신의 능력은 어느 모로 보나 공격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문제였다. 상대를 과도하게 치유해서 무력화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차라리 이런 방식은 어떨까?
잠시 후 큐브가 취한 형태는... 놀랍게도 장총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군용 마취총. 방아쇠를 당기면 나가는 것은 총알이 아닌 투창이다. 하지만 투창이 주사하는 건 마취제가 아니었다. 약간의 변형이 들어간, 이른바 나이팅게일 에디션이랄까.
만약 그녀가 생각한 대로 구현이 되었다면, 이 총에 맞았을 때 대상은 '얼마간의' 치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는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단점을 나름대로 커버하기 위한 결론이었다. 비록 실전에서 얼마나 유용할지는 모르는 일이고, 그 이전에 이렇게 부피가 큰 총을 다루기도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사격에는 나름 자신이 있고 언제든지 큐브 형태로 바꿀 수 있다니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