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햇던 것보다도 훨씬 뛰어난 근무 환경에 조금 들뜬 채로 우선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인원이 이렇게나 많은 것도 놀라운데, 척 보기에 한국인이 아닌 사람도 여럿 끼어 있는 걸 보면 확실히 공을 많이 들인 태가 났다. 뭐, 한마디로 돈이 많이 들어갔단 소리겠지. 물론 이쪽에서도 마다할 이유는 없다.
기다리길 잠시, 귀여운 앵무새의 난입에 순식간에 근무 만족도가 수직상승했다. 아, 이렇게 귀여운 앵무새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쿠키도 사 오는 건데! 지금이라도 내려가서 사 올까?
서에는 퍼렇게 질린 안색으로 숨을 고르고 있는 이가 있다. 드물게 바쁘게 움직였기에 망정이지 버스를 타는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어도 분명 지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빠르게 움직이려는 마음과 몸의 나약함의 밸런스가 좋았다. 이 이상으로 무리해서 움직였다면 분명 또 죽어버렸겠다고, 유우카는 직감했다. 죽어도 다시 살아 버젓이 움직일 수 있다지만 역시 길거리에서 객사하는 것은 민폐다. 그것과 그것은 별개다. 하물며 근무지에 와서 숨이 넘어간다면 서의 사람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청해시에서의 첫 죽음은 그런 식으로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안 돼... 더 이상 지체 하지말자...'
마지막으로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서 안으로 들어선다. 아마도 내가 가장 마지막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이미 좌석은 대부분이 채워진 뒤였다. 다행인 것은 아직은 무엇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놀람이 반이었다. 자신이 전에 근무하던 곳과는 확연히 달라서... 그리고, 생각보다 다양한 군상들이 모여있어서. 그리고 이 앵무새. 설마 이 앵무새가 경위...님일까? 분명 일전에 신체를 변형시키거나 둔갑하는 익스퍼도 있다고 들었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급하게 오느라... 사오지 못했어요... 미안해요..."
유우카 특유의 느릿한 어조가 마치 사람을 대하는듯 했고, 그 본인도 이제야 애써서 찾은 자신의 자리에 착석했다.
아직은 손 타지 않은 컴퓨터에, 깨끗하게 정돈된 책상과 낯선 자리를 보자니 싱숭생숭해지는 기분이다. 기억 한켠에 첫 출근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솟는 것이…(중략) 그는 저도 모르는 사이 제 두 손을 맞잡고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간식이 있고 서랍 안에는 이런 게 있고……. 그러다 갑자기 들려오는 날갯짓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잠시 헛숨을 삼킨다.
헉, 저런 앵무새는 TV에서나 봤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너무도 뜬금없는 존재의 등장에 멀뚱히 그것을 쳐다보다 앵무새가 곧 꺼낸 말에 2차로 경악했다.
마음만은 주고 싶지만 안 사왔다!
혹시나 하여 주머니를 뒤져봐도 간식거리를 챙겨 다니는 성격이 아니다보니 나오는 게 없다. 잔뜩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서는, 그는 앵무새 쪽으로 슬쩍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여기 사는 앵무새예요? 지금은 가진 게 없어서 못 주는데, 대신 다음에 간식 가져오면 받아줄래요?"
들어서니 이전 직장이 그립다거나,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던 고민이 싹 사라졌다. 책상은 물론이고 의자까지 눈물겹도록 좋아보인다. 고작 시설일 뿐인데 벌써 돈맛을 봤으니 앞으로는 어떨까? 이직하기는 글렀다. 퇴사도 글렀다. 정년 퇴임까지 굴러먹을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찬다.
시간이 좀 지나고 사람들이 들어온다. 익숙한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동환을 보고 어머, 하고 놀란다. 손을 가볍게 흔들어보이며 "또 보네, 학생." 하고 말하고는 눈이 마주친 분홍색 머리의 청년이 생각한 단어에 미소만 짓는다. 그가 커피를 다시 한모금 마실 적에 앵무새 한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녹색 앵무새를 본 그는 수중에 비스킷이 없단 점이 꽤 아쉬웠다. 그렇지만 과분할 정도로 비스킷을 받는 앵무새를 보니 본인이 주지 않아도 괜찮았을 법 싶다. 다시 빨대로 얼음과 헤이즐넛 시럽이 녹아든 아메리카노를 쭉 빨아마신다.
2층까지 올라온 후타바 신의 양손은 만석이었다. 한 손엔 휘핑 시럽 올라간 초코 프라푸치노가, 다른 손엔 초콜릿 세트가 있다. 빛 하나 비치지 않는 새카만 눈이 서 내부를 보자 들뜬 양을 했다. (초점 없는 눈이 어떻게 들뜬 양을 할 수 있는진 둘째 치고.) 멋들어지게 잘 마련된 새 근무처를 보고 싫어하는 경우는 잘 없다. 신은 명패 올라간 자리를 하나하나 살폈고...... 책상을 손끝으로 톡톡 쳐 나가며 끝내는 제 자리 곁에 다다랐다. 음, 깔끔하구먼. 만족스럽게 웃으며 초콜릿 세트를 내려두고 서를 다시 거시적으로 눈에 담았다. 먼저 도착한 사람, 제 뒤에 도착한 사람, 좀 기다리자 나타나는 사람... 신은 눈을 마주친 사람이 있으면 생글 웃으며 손을 살래살래 흔들었다. 초면 구면 가리지 않으니 허물없는 태도였다.
"한국어가 참 능란하십니다..."
앵무새에게 실없는 소리를 장난스레 던진 신은 큭큭 웃음기를 갈무리하며 그 주변을 보았다. 차예성 경위. 오야おや. 앵무새가 단순히 앉았던 것이라면 모를까 횃대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돌보는 것이 분명하다. 신은 두 손을 뒤로 감추고 산책 나가듯 가뿐히 앵무새 근처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