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빌미로 말도 안되는 이상한 것을 요구할 것 같진 않거든요. 그러니까 괜히 질질 끌지 마요. 이런 것은 질질 끄는 것보다 확 말하는게 좋다는 거 알지 않아요?"
대체 뭘 말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가 싶어 소라는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한 척 가장하며 그렇게 대꾸했다. 물론 긴장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소원권이라는 것이 경우에 따라선 정말로 무시무시하게 돌아오는 법이었으니까. 막말로 첫 출근날에 바니걸을 입고 와주세요 같은 것이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허나 경찰로서 괜히 긴장한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녀는 일부러 태연함을 더욱 가장했다.
이어 그의 입에서 소원. 친구가 되어달라는 말이 나오자 소라는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알데바란을 바라봤다. 이어 맥빠진 표정을 지으면서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물론 진지하게 말하는 것은 알았으나 그녀에게 있어선 그 진지함이 괜히 더 맥빠지게 만들고 있었다.
"소원권도 얻었으니 차라리 밥을 한 끼 사주세요. 같은 것도 괜찮았는데. 소원권을 써서 친구가 되어달라는 것은 처음 봤어요. 영화 같은 것에서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튼 제가 친구가 되어준다면 기쁘다 이거죠? 어쩔까나. 친구라는 것이 소원을 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으음."
바로 대답을 하지 않으며 괜히 답을 질질 끌면서 그녀는 오른발로 땅을 잠시 긁었다. 으음. 으음. 소리를 잠시 내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작게 소리를 내어 웃어보이며 그의 손을 탁 잡으면서 오른쪽 눈을 살며시 감아 윙크를 보내면서 미소를 지었다.
"물로 농담이에요! 친구가 되고 싶다면 얼마든지요. 저도 같이 일을 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싶고 그러니까요. 물론 지휘하는 입장이긴 한데, 그거야 공적인거니까 넘어가고 사적으로는 친구처럼 지내도 좋아요. 아무튼 그걸 빌었으니까 딴거로 안 바꿔줄거예요! 후회할 거예요! 소원 안 써도 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이미 기회는 넘어갔다는 듯, 괜히 얄밉게 웃으면서 그녀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그와 악수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우여곡절의 시간이 지났다. 배경이 좋고 피사체가 훌륭해서 그런지 별다른 보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꽤나 괜찮은 사진이 나왔다. 정면으로 마주본 사진 속의 시선을 향해 그도 마주 웃는다. 그는 싱글거리는 낯으로 고개를 들었다. "찍히는 사람이 멋져서 그런 거죠!"라며 맞받는 말은 가식도 아닌 듯하다. 여명이 제 연락처를 저장하려는 듯하자 소리 나지 않게 손뼉을 마주치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아, 제 이름은 히네노 나기토예요. 히네노가 성이고 이름이 나기토. 부르기 어렵다면 마음대로 부르셔도 괜찮아요."
그렇게 상대가 하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다 한 발 늦게 정신을 차린다. 하마터면 멀뚱하게 있을 뻔했네! 저도 따라서 연락처를 저장하려다 "이름이 뭐예요?" 한 마디 묻고는 남은 빈 칸을 열심히 채우는 데 열중이다.
"무리해서 답할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뭘! 늦게 답 주셔도 되고,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연락 안 하셔도 괜찮아요. …그리고 먼저 물어봤으면서 이렇게 말하긴 뭐한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저도 일이 없을 거라고 장담을 못하겠네요……. 그럼 서로 가능한만큼만 노력해보는 걸로, 그러면 되겠죠?"
그 역시도 처음 대답에서는 손사래를 치면서 기운차게 말했지만 중간에 가서는 시무룩해졌다…가, 마지막이 되어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쌩쌩해져는 마무리가 긍정적이다. 관광객과 현지인 느낌으로 시작된 누군가와의 연이 직장까지 이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친구가 되면 그런 건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소원권을 쓴다 해서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해주면 안 될까요?"
답을 주지 않는 모습에 괜히 불안감이 느껴졌는지, 소라를 흘긋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하는 그였다. 사실, 소라가 자신을 놀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그런 것에 가까웠다. 그녀의 발에 고정되어있던 알데바란의 시선은 소라가 미소를 지으며 윙크하자 긴장이 탁 풀린듯 감기고 말았다. 방금 그거 농담이었구나... 하여튼 방심 할 수가 없는 사람이야. 사격에서도, 대화에서도.
"소원 안 써도 그럴 생각이었다면, 소원을 썼으니 더 친한 친구가 되어주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제 무슨 일 있어도 평생 절교 못 해요."
괜히 얄미운 느낌이 들어, 평생 절교 못 한다는 등의 무리한 요구를 해버렸다. 물론 반쯤은 농담이었겠지만. 가볍게 악수를 끝마치고 난 뒤 뭔가 피곤한 기분이 들어 작은 한숨을 내쉰다. 방금 건 조금 긴장했네...
"그럼 이번엔 소원권이 아니라 친구로서 부탁해볼까요. 같이 놀지 않으실래요? 기껏 오락실에 왔는데 사격만 하다 가기도 조금 그렇고, 아니면 시내니까 다른 곳으로 가도 좋겠다 싶고. 어느 쪽이든 좋으니까요."
미약하게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말한다. 그냥 이대로 가도 목적은 달성한 거나 다름없지만 이대로 헤어지기에는 아쉬웠다. 기껏 생긴 두번째 친구니까 조금 더 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가. 그런 점을 보면, 평소에는 무표정함 때문에 조금 냉랭해보여도 어딘가 애 같은 구석이 있었다.
//단순히 어딘가 가서 놀았다- 해주셔도 되고 정말 그런 상황으로 받아주셔도 됩니다! 캡틴 편하신대로!
아무리 소원권을 썼다고 한들, 더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더 친한 친구라는 것이 어디 말로만 가능한 것이겠는가. 서로 잘 맞거나 그래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하고 소라는 생각했다. 물론 알데바란과는 사격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으니 그 관련으로는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은 입에 담지 않으며 긴장한 것으로 추측되는 알데바란을 바라보며 소라는 그저 아무런 말 없이 웃어보일 뿐이었다.
이어 같이 놀자라는 그 말에 소라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였다. 자신도 바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저야 환영이에요. 차후에 정말 바빠질텐데, 지금 이럴 때 쉬어야지. 언제 쉬겠어요? 경찰도 쉴 땐 쉬어야 나중에 정말로 위험한 순간 때 시민을 지킬 수 있고 그런 거잖아요?"
무엇보다 오늘은 경찰로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며 그녀는 가만히 생각했다. 어디로 가서 노는게 좋을까. 오락실에서 오락을 즐기는게 좋을까. 아니면 다른 곳에? 정말로 깊은 고민을 하며 소라는 가만히 오른발로 땅을 톡톡 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곧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쪽이라도 괜찮을 것 같으니 일단 돌아다닐래요? 그러다보면 할 수 있는 것도 있을 수 있고 그런 거니까."
가볍게 웃어보이면서 앞으로 세 걸음 정도 나아간 후에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가만히 손짓했다. 따라오라는 신호였다. 오락실 밖으로 나간 후에 거리라도 걷자는 듯, 그녀의 발길은 오락실 밖으로 향해 있었다.
"아, 예쁜 이름이네요! 제 이름은, 여명. 초여명이라고 해요!" 서로 정식으로 이름을 나누고, 이 엄청나게 밝은 나기토 씨에게 대답한다. "그래요오. 서로 가능한 만큼 연락하면 되는 거겠죠오오? 그러면, 이번 만남은 이만, 여기까지?" 특이한 관광객이라는 첫인상에서, 앞으로를 위해 노력하기로 한 친구까지 걸린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적어도 여명의 생에서는 가장 빠른 친구화였다. 그렇게 이름까지 나누고, 슬슬 인적이 끊겨가는 밤거리에서 여명은 새 친구(아마 동갑은 아니고 연상이겠지만?)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봐요!" 조만간 한번 더 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손흔들며 인사하는 여명이었다. 그리고 이 둘은 직장에서(ry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가 보장해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며, 우정과 같은 부분에서도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서로 노력해준다면 분명히 가능하지 않을까. 앞으로 꽤 오랜 시간동안 함께 임무를 하거나 하며 지낼 것 같았으니. 앞으로 시간은 많다. 그 시간동안이라면, 분명 더 친해질 수 있겠지. ....아닐 수도 있겠지만.
"하하... 그래, 오늘은 경찰이 아니라 두 명의 시민이 놀러나왔을 뿐이니까. 푹 쉬어둬야 몸이 정말 필요할 때 제 컨디션을 발휘하겠지."
경찰로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한 모습에, 알데바란 그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는 알겠다는 듯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더 놀릴 생각은 없었는데, 아까 그게 꽤 신경이 쓰였던 걸까.
일단 돌아다니자는 말에 그는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라나선다. 오락실 바깥으로 이어지는 발걸음을 보면, 다른 곳으로 가자는 걸까? 아무래도 좋았지만. 날씨도 좋고, 덥거나 춥지도 않은 선선한 날이고. 그냥 이대로 산책을 할까 싶을 정도의 날씨였기에, 오히려 좀 걷자는 이야기는 그에게는 환영이었다.
"좋아하는 장소... 도서관에 가기는 싫겠지? 모처럼의 휴일일텐데."
그러고보니 소라는 꽤 바쁘지 않을까. 나름 높은 위치에 있었던 것 같으니까. 높은 사람일수록 일도 많다는데. 그럼 괜히 재미없는 곳은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귀한 휴일을 낭비하게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어디가 좋을까... 말없이 잠깐 걷던 그는, 문득 좋은 곳을 발견했는지 눈을 반짝인다.
"도서관에 가고 싶어요? 그것도 좋지만 놀기에는 조금 애매하지 않겠어요? 아. 북카페라면 괜찮으려나."
정말로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해야만 할 것 같은 도서관보다는 커피나 가볍게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북카페 쪽이 조금더 낫지 않을까 생각을 이야기하며 소라는 앞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이 근처에 북카페가 있었나? 그렇게 생각을 하며 찾아보기 위해 소라는 핸드폰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 와중 영화관을 거론하고 해당 장소를 가리키는 그 모습에 그녀는 두 눈을 깜빡이며 영화관과 알데바란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다가 웃음을 작게 터트렸다.
"상영작이 뭐가 있는지 정도는 체크해도 괜찮겠죠? 전 흥미없는 영화는 잘 안 보는 편이라서요. 히어로물 같은 것이 지금 했던가. 아니면..."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소라는 살며시 몸을 꺾어 영화관 쪽을 바라봤다.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는 히어로물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것을 안 보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역시 그런 것보다는 조금 감성 영화 쪽이 많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영화관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좋아하는 영화 있어요? 장르라던가 그런 거. 참고로 전 히어로물. 그리고 때로는 잔잔한 것도 좋아해요. 아. 애니메이션 류도 나름 괜찮고요! 너무 노리는 느낌의 그런 건 싫지만요."
서비스씬인지 뭔지 하는 것으로 범벅이 된 것만 아니면 별 상관없다는 듯 그녀는 태연하게 대답하며 자신이 지금 쓸 수 있는 돈을 떠올렸다. 물론 충분했기에 그녀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