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칠이라. 네. 금칠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자신이 받아 마땅한 대우가 있고, 지한 씨가 가진 재능은... 네. 최대한의 치하를 받아 마땅하죠."
흐릿한 인상에 엷은 웃음을 더한 빈센트는, 지한의 승낙을 보고는 마침내 껄껄 웃는다. 참을 수 없군요!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갈망은, 그의 눈을 사로잡는 무언가에 대한 갈망은, 불꽃처럼 뜨겁게 타다 찰나에 꺼지는 삶을 꿈꾸는 빈센트를, 이 세상에 계속 붙어있도록 연결해주는 일종의 고리였다. 빈센트는 손을 튕겨서 불을 여러번 내보았다. 한번에 제대로 된 불을 만들어야 하니, 조금의 실수라도 있으면 안 되니까 능력을 작은 규모로 테스트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는, 어떤 불을 만들지 고민할 시간. 턱을 짚은 빈센트가 어떤 불을 만들면 좋을까 고민하더니, 앞으로 뻗어가는 불의 화신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자세를 잡은 빈센트가, 심호흡을 하고 나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서, 만들고자 하는 불의 형태를 심상으로 빚는다. 그리고 심상으로 빚은 불을, 손을 저 강으로 뻗어서 개방했다.
화악! 입을 벌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화염의 거인이 나타나고, 이제는 상대방이 도울 차례였다.
"대우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동의하는 건지. 동의하지 않는 것인지 알기 어려운 모호함이긴 했지만 치하를 받는다는 말에 흐릿한 미소를 짓습니다.
"돌려줘." "내 옆에 머물러주세요."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싶지 않다. 붙잡아두고 싶다. 멈춰버렸으면. 같은 그런 것이 거인을 붙잡습니다. 분명 일반적인 불이라면 멈춘 순간 타버림이 사라져버렸겠지만. 의념의 불은 타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타오름의 미동조차 없이 멈춰버리게 만든 광경입니다.
익숙하지는 않아서 중간중간 정지가 풀려버렸으나. 다시 붙잡아버리면. 마치 슬로우모션같이 보였다가도 렉이 걸려 영상이 영영 정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풀리면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아보이기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한의 귀에 들리는 불꽃은 어떤 노래를 불렀을지. 알 수는 없지만. 침묵에서 들리는 음악이 있기도 할까.
빈센트는 사진기를 꺼낸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진기를 꺼내는 그 찰나가, 저 멈춰버린 아름다움을, 멈췄기에 더 아름다운 아름다움을 감상할 시간을 뺏어갈 것 같아서. 그래서 저 불을 계속 보았다. 불멍이라는 개념이 있다. 불을 멍하니 보고 있다고 해서 불멍이라고 했지, 하지만, 그들은 불행한 이들이었다. 불은 멍하니 보는 것이 아니었다. 저 멈춰버린 불타는 거인은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하나하나 뜯어보며 감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의념의 능력도 한계가 있을 터, 지한의 의념으로 붙잡아버린 불타는 거인은, 결국 의념으로 만든 손을 뿌리치고 강 위를 날다가,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저 불의 거인은 빈센트가 원하는 방식으로 죽었다. 살아있는 순간은 찰나지만, 이 땅에,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영원히 남을 불꽃이 되었으니.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한에게 감사를 표한다.
"정말로 훌륭한 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본 불 중에,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첫번째는 불장난으로 불타는 집에서 본 불이었지만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빈센트는 그 거인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지한에게 묻는다.
"지한 씨라고 하셨죠?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네요." ///슬슬 막레각 볼 수 있을까요
항상 멈춰 있는 듯하면서, 계속 움직이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의미를 잃어버린 걸까. 그런 생각이 들지만 들려오는 것들은 꽤 크고 웅장했습니다. 의념의 영역이기에 진실된 것이 아닐지라도. 그 감각이 지금만큼은 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말할 수 있습니다. 빈센트를 힐긋 쳐다보자. 하나하나 뜯어보며 감상하는 걸 보면 어쩐지. 방화범과도 미묘하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다행히도 표정으로 나타나지도 않았고. 입 밖으로 내진 않았습니다.
"같은 반이라면 자주 볼 수 있겠지요." 의뢰를 가는 것도 있으니까요. 라는 단정한 말을 하고는 추운 밤의 불꽃을 보았으니 이만 들어가봐야겠네요. 라고 말합니다. 하긴. 처음 만난 것부터 밤의 달리기를 하다가 불장난을 하는 건가 한 것이었으니까요.
낡은 철골들이 하늘 높이 오르고 있는 빌딩의 숲에선 많은 목소리들이 녹아들고 있었다. 대다수의 목소리는 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노숙자들의 동선 얘기나, 불량배들의 시시덕거리는 소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유독 오늘의 목소리들은 달랐다.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한 명이 피를 토해냈다. 얼굴에 묻은 타인의 피를 옷소매로 슬쩍 닦으면서, 태식은 주위를 둘러봤다. 숫자는 일곱, 하나하나가 의념 각성자에 사람 몇 번 묻어본 기억도 있는 녀석들이었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두려워하기는커녕 자연스럽게 위치를 잡고 무기를 잡는 폼은 이런 경험이 적지 않단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도 두렵기는커녕 태식의 표정은 매우 즐거워보였다.
“하나만 묻자.”
커다란 대검이 깊숙한 땅에 처박혔다. 말을 거는 척, 태식은 목을 천천히 돌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삼류라고 보긴 애매하지만 일류라고 보긴 어려웠다. 자신의 수준에서 망념을 각오한다면 해치우지 못할 수준도 아닌 녀석들. 꺼림칙한 기분에 태식이 한 걸음을 내딛었을 때 녀석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과도하게 긴장한 티가 나는 모습이 이상했다.
“한이리. 알고 있냐?”
아내의 이름을 뱉었을 때, 녀석들의 눈에 깃든 표정은 의문이었다. 중얼거리던 녀석들 사이에 느껴지는 감정은 선명한 혼란이었다. 그게 누구야? 네가 팔아넘긴 애 이름이냐? 속닥거리는 소리들을 들으며 태식은 검을 땅에서 뽑아냈다. 길게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여기 있는 놈들은 전부.. 뒤져 마땅할 놈들이었다. 사람을 팔아먹고, 살기 위해서 정보를 팔아먹는 놈들. 제 주인을 잃어 혹시라도 연관이 있을까 생각하던 태식의 기대는 그렇게 부서졌다. 무겁던 대검이 한없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에 가졌던, 뜨거운 열정이나 열망 같은 것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아직 꺼져선 안될 불길 속에 재를 뿌려 억지로 불길을 키워냈다.
“됐다.”
어쩌면 포기하고 싶을지도 몰랐다. 그건 단지 사고였다고, 그냥 게이트에서 일어날 법한 사고. 가디언이라면 언젠가 겪어야할 사고였다고.. 믿어도 됐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어딘가 의문스런 부분이 너무 많았다. 아내 정도 되는 가디언이 둘이나 더 투입된 곳에서, 동료의 배신으로 죽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간 크게 가디언을 건들 수 있는 놈들은 적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죽을 것을 각오해야만 하니까. 손에 남은 상처가 찢어져 검 위에 흐르기 시작했다. 피는 멈출 기미 없이 한참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을 놈들이었으니.”
의지에 불을 놓아, 천천히 타오르기 시작하는 검을 들어올렸다. 원래라면 불가능할 것을, 이미 타버려 무엇도 남지 않은 재 위에 불을 질러 억지로 태워낸다. 하얀 뱀이 검을 휘감으면서도 태식의 손에 이빨을 박아넣는다. 절대로,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흐르는 피의 양이 천천히 늘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