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306068> 자유 상황극 스레 3 :: 1001

이름 없음

2021-09-13 08:11:25 - 2022-12-20 23:06:42

0 이름 없음 (wSjOpuFcMU)

2021-09-13 (모두 수고..) 08:11:25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798 이름 없음 (.F6uz835MM)

2022-08-29 (모두 수고..) 19:36:33

>>797

"나와 왕국이라."

아예 생각을 하지 않은 사안은 아니었다. 허나 자신은 부도 명예도 필요없었다. 그저 다시 이전처럼 평화롭게, 정말로 평화롭게 자신의 고향에서 사냥을 하면서 지내고 싶을 뿐이었다. 한낱 사냥꾼으로 살아가는 자신이 왕의 사위가 되면 무엇할 것이며 많은 부와 명예를 얻어봐야 무엇하겠는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왕실의 공주라면 당연히 타국의 왕자와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아니겠는가. 자신은 평민 출신의 사냥꾼일 뿐이었다.

허나 왕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부적으로 숙청을 하겠다고 한다면 아마 마지막으로 자신을 회유하려고 할테고, 그것이 실패한다면 자신을 죽이려고 하겠지. 여행을 떠나고 동료들과 이것저것 많은 것을 체험하면서 사내 역시 그 정도는 계산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전부 사실이라고 했을 때지만.

상당히 벌벌 떨기도 하고 목을 답답해하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일단 이 마족이 상당히 겁을 먹거나 통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사내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까지 여기에 와서 자신에게 그 사실을 알린단 말인가. 적어도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원수였다. 자신이 마왕을 무찔렀고 마족을 사실상 파멸시켰기에 지금 그녀는 저런 꼴이 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왜 그녀는...

"너는 내가 밉지 않아? 왜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거지?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너를 그 꼴로 만든거나 마찬가지인 내가 죽는 것을 알 수 있었을텐데. 설사 날 구해도 너에겐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

물론 모든 마족이 나쁘고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때로는 인간이 더욱 사악하고 나쁜 면이 있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그런 좋은 마족인지는 그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것을 제일 알고 싶었다. 어째서 그녀가 자신에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는지.

"아무튼 네 말이 사실이라면 동료들을 다시 만날 수밖에 없겠어. 내가 위험하다는 것은 다른 동료들도 위험하다는 이야기니까. 부와 명예를 받아들인 이도 있지만 나처럼 모든 것을 거절하고 갈 길을 간 이도 있었으니까."

799 이름 없음 (dBO9Z7fz72)

2022-08-29 (모두 수고..) 22:21:05

초능력이라는 단어는 이능력이 되었다. 초현실적인 능력이라는 단어는 평범한 일반인과 그렇지 않는 자들의 격차를 벌린다는 사회적 시선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저 다를 뿐인 능력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능력자들은 조금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좋다면 좋고, 나쁘다면 나쁜 세상. 이능력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어린 나이에는 평범한 사회 속에서 의도치 않은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이능력으로 발생한 사고는 평범한 사고와는 견줄 수 없다는 이유로 다녀야할 학교마저 정해져 있다.

‘그리고 나는………’

이능력이라지만 거창하고 좋은 것만 있지는 않다. 하늘을 난다던지, 배도 번쩍 들어올릴 만큼 힘이 세진다던지 그런 것만 있지는 않다.

‘네잎클로버에서 떨어진 한 잎.’

능력을 다루는게 서툴러서 시도때도 없이 능력을 써버리는 실수는, 이능력자들이라면야 당연히 겪는다. 소녀도 그랬다. 그러니 이능력자들만이 다니는 학교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불행한 사고에 휘말릴 타인을 위한 것인데, 소녀가 의도치 않게 능력을 써버린다면 그건…

“아야야….”

주변의 타인이 겪을 불행을 자신에게 가져오는 이능력. 몸조심을 하며 혼자 다니고 다니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능력을 다루기 위해서는 능력을 사용하며 연습하고 훈련해야 하는데 그러기 쉽지도 않다. 조절치 못하고 새어나오는 능력은 오늘도 어림없이 찾아왔다. 이미 반창고투성이인데 또 상처가 늘었다. 황급히 자리를 피해 사람을 피해 학교 뒷뜰로 향한다. 점심 시간이 너무 길다.

“아무도… 없죠…?”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고, 학교 건물 벽에 조심히 손을 디뎌 빼꼼 고개를 내밀며 확인한다. 왠지 뒷뜰에 누가 있는 것 같았다. 뒤에 누가 있는 것도 같았고, 옆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소녀는 걱정이 많았다.

# 초능력학원물~! 맥커터만 아니라면 누구로 받아도 OK~!!!

800 이름 없음 (HA773CwE5k)

2022-08-30 (FIRE!) 15:26:47

>>798
"용사... 압도적인 무력이 있으니 무엇이든 칼로 내리치면 그만이요, 자잘한 것은 신경쓰지 않는건가? 동요조차 하지 않아. 당신답군 그래."

"하지만 내가 당신을 돕는다고 해서, 인간의 덕을 받아들여 개심했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만 알아둬."

그녀는 확신에 차 있었다. 무엇이든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 숲의 현자, 지혜의 상징인 부엉이는 어디까지를 생각하고 있을까.

"왕실이 계속 지배하면 우리는 노예, 당신이 왕실을 엎는 걸 도우면 우리는 공신이 되는 거야. 단순명료하지?"

동기는 단순하되 수단은 파격적이다. 마족이 용사를 돕는다. 누가 들으면 웃겨서든 화나서든 팔짝 뛰면서 공중제비를 돌 일이다. 강한 자를 따른다. 그것이 바로 마족의 도덕이다. 왕실이 제 발을 저리는 것과 같이, 용사 이전까지 무력함의 끝을 보이던 왕실은 강하지 않았다. 적어도 마족보다는 말이다.

"질 수 없는 싸움이야. 우리가 힘을 합한다면!"

801 이름 없음 (VyeeENrafc)

2022-08-30 (FIRE!) 19:05:34

>>799

"쩝쩝."

단발 머리에 듬성듬성난 수염, 검은색 셔츠에 사막색 조끼를 걸친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추야자를 입안에 집어넣었다. 글레이즈드가 아주 완벽할 정도로 반짝이는 그 대추야자를 한 입 집어 넣는 순간 강렬한 단 맛이 그의 뇌중추를 강타한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평온하게, 또 별 대수롭지 않게 대추야자를 입안에 집어넣고 재차 그것을 목구멍 너머로 넘길 뿐이었다.
사내는 '결함품'이었었다. 그의 능력은 처음 나왔을때 큰 주목을 받았다. 수많은 철들을 조종하여 액화 시키고 새로운 형상으로 담금질시킨다, 하지만 남자는 그 능력을 어릴때 이후로는—정확히 7살 이후로— 크게 내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 이상도 가능했겠지만, 애시당초 결함품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 무감각한 남자에게 있어선, 그것은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능력보다는 더 중요한 것,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하는 것
그런 남자에게 있어 이 교사라는 것은 천직이나 마찬가지였다. 본래부터 머리가 좋았다, 기 보다는 교사하는 직업에 끌려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는데에는 그만큼의 지식이 요구되고, 또 그만큼의 대응도 요구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첫 부임한 교탁에 서서 보낸 첫날은 '그저 그랬다.'였다

"음?"

그렇게 부임한지 3년차, 배울거 다 배우고, 정식 교편을 잡게 되었다. 달라진건 없었지만, 그의 일과 중 추가 된 것이 있었다. 바로 '숙직', 이 귀찮은 숙직이라는 것을 행하다 보면, 의외로 재밌는 상황을 많이 보게 된다. 기껏해봐야 퇴근하고 나면 맥주 한캔에 치킨 한마리 뜯는 재미가 고작이겠으나, 숙직을 서며 만나는 학생들은 전부 어딘가 재밌는 구석이 많았기에, 그는 이 숙직이라는 당번제를 즐기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애시당초 숙직실에 자신의 이불을 가져다 놓았으니 말 다하지 않았을까.
오늘도 그랬다. 이른 시각이지만 꽤나 재밌는 상황이 아니던가. 대추야자를 다시 지퍼백에서 꺼내 한입 뇸, 하고 집어 넣은 남자는 머리를 살짝 긁적이며 천천히 움직였다. 왠지 재밌는 장난감을 만났다는 듯이 그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여자애의 뒤로 다가가 어깨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른 뒤, 자신의 지퍼백에거 글레이즈드가 잘 형성된 대추야자를 하나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입을 열었다.

"누군가는 없고, 대추야자는 있다.'

...... 그거 웃으라고 한 말이지?

"먹을래?"

//글러먹은 교사 등장이올씨다!!

802 이름 없음 (dmATk9PhJo)

2022-08-30 (FIRE!) 19:59:02

>>800

"예측을 안한 것은 아니거든."

자신도 여행을 떠나고 여러가지를 배우고 익힌 몸이었다. 어쩌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을 하긴 했지만 설마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날줄이야. 그녀의 눈에는 비치지 않을지도 모르나 사내는 애써 태연함을 연기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들은 나를 죽이려고 할테지만 내가 그들을 처단해도 되는 것일까. 그것은 곧 인간 사이의 내전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간들 중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게 될 테고, 결국엔 어느 한 쪽이 완전히 멸하게 되지 않겠는가.

"마족과 손을 잡고 왕국을 치자고? 그리고 내가 새로운 왕이 되고 너희를 공신으로 삼으라고?"

그건 마왕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아니. 그것을 노리는 것일까. 자신을 새로운 마왕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은 해방되기 위해서?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었다. 제 목숨이 위협받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왕가와 싸울지는 아직 정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니. 사실 왕가에 대해서는 크게 상관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최소한의 충성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널 어떻게 믿지? 방금 이야기했지? 인간의 덕을 받아들이고 개심한 것은 아니라고. 설사 너와 손을 잡고 왕국을 치고 엎는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너희들이 또 다시 이 마을을, 그리고 이 세상을 다시 불바다로 만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지? 개심한 것이 아니라면 너희는 또 다시 이 마을을, 더 나아가 이 세계를 지배하고 많은 피를 흘리게 하려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을텐데?"

그렇다. 사내는 그녀를 믿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의 위기는 어떻게 모면한다고 치더라도 그 이후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자신은 인간이고, 인간 그 자체를 멸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나는 인간이야. 인간들이 또 다시 혼란과 혼돈에 빠지게 하는 짓은 할 수 없어."

803 이름 없음 (waoHc5qHOg)

2022-08-30 (FIRE!) 20:05:06

>>801

“히이이익?!”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란 소녀는 몸을 잔뜩 움츠리며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느냐고 물어본 안부 인사는 뒷뜰에 먼저 자리잡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지, 뒤에서 눈치채지 못한 채 다가온 누군가를 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르르 떨고 한 발자국 물러난 것을 보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고양이를 마주친 쥐새끼마냥 경계심이 높았고 방어적이었다. 다행히 어깨를 콕콕 찔러대던 손가락의 주인이 교칙과 사회에 반항하는 학생으로 보이진 않았기에 긴장은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완전히 풀지 못하는 이유는 소녀의 이능력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질 못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면 좋았을텐데,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런 와중에도 모르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까봐 남들은 이능력을 쓰고 싶어서, 뽐내고 싶어서 안달인데 실수로 써버릴까 아등바등하자니 긴장을 풀 때가 없었다.

“…아니요.”

고민하지도 않은 거절은 말하는 목소리나 맞추지 못하는 시선과는 다르게 단호했다. 유유자적하게 대추를 씹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누구인지 알고서 음식을 건네받아 먹는단 말인가. 학교 생활을 좀 더 사람들 사이에서 섞여 지냈다면 선생님이라는 것쯤은 알았을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받는게 아니랬어요. 죄송합니다.”

예의는 발라서 남자에게 공수 인사를 건네며 허리를 숙인다. 불행을 자석처럼 답싹답싹 붙이고 다녀 남들에게 불행을 미칠지 언정, 그건 이능력 탓이지 남을 불행 구렁텅이에 굴러 넣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 불행 구렁텅이에서 제일 허덕이는 건 소녀 본인이다. 성격은 모나기는 커녕 둥글었고 되려 소심하기까지 한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라고 의심하면서도 사과를 건네는 것이다.

“놀란 것도 죄송합니다…. 그런데 여기 볼 일 있으세요…?”

뒷뜰에 숨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소녀에게는 꼭 중요한 질문이었다.

804 이름 없음 (2T5yXpKu8w)

2022-08-30 (FIRE!) 20:24:08

>>803

"워우, 반응 죽이네."

교사가 천천히 턱을 쓰다듬으면서 잠시간 빙글빙글 웃는다.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이번 학생도 만만치 않게 재밌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교복을 보면 자신 학교의 학생인거 같은데, 그렇다고 이 학교 최대의 글러먹은 교사(?)인 자신을 못 알아보다니, 이건 또 의외의 반응이다. 보통 자신을 보면 미친 숙직맨, 아니면 단거 학살자라는 별명으로 불러대는데 말이다. 게다가 맞지 않게 교수법은 또 유명해서 중타 이상은 친다는게 자신의 평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학교에 있다면 분명히 이능력자인것 같긴 한데 도무지 무슨 유형인지 알수가 없다는 듯이 그는 잠시간 소녀를 응시 하며 말했다.

"나? 이 학교에 도둑질 하러 왔는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구라를 치는 남자였다. 숙직을 서는 남자가 왜 여기를 도둑질 한단 말인가, 오히려 이곳을 지키는 번견이 자신이었으니까. 다시 재차 글레이즈드 된 대추야자를 먹으면서 그는 재밌다는 듯 소녀를 바라보았다. 연신 자신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도, 또 움츠러든 모습도, 왠지 모르게 조그마한 소동물을 보는 느낌이었던 것일까, 남자는 천천히 다리를 구부려 소녀와 시선을 맞추려 한 뒤 입을 열었다.

"도둑질 하기 전에, 도둑한테 사과를 하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니?"

아주 입만 열면 구라가 튀어나온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목에 걸린 교원증이 보이지 않게 살짝 손으로 조끼 안쪽으로 집어 넣으며, 소녀의 반응을 지켜본다. 이런 학생의 경우는 본래 소심한 성격에 더불어, 주변 영향이 커서 다른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을까봐 무서워 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무리하게 손을 뻗는다기 보다는 천천히 저 돋아있는 가시를 스스로 걷어내고 몸을 일으킬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 이라고 남자는 생각하며 턱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미 이렇게 보고 있는 것도 알게 된거 아닐까. 독 안들었어. 좀 많이 달 뿐이야. 단 거 먹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혹시 아니, 단거 먹으면 머리 회전이 빨라진다니까, 너도 갑자기 퍼뜩!! 떠오르지 않을지 말이야."

남자가 빙글빙글 웃는다. 어차피 믿지 않을 것, 이대로 구라로 밀고 나가자고 결심한 남자였다.

/대추야자.... 겁나 달지..... 자연산 칼로리 폭탄.....

805 이름 없음 (n/rthPRFhg)

2022-08-30 (FIRE!) 22:15:39

>>804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 가라앉으면, 놀라서 요런스럽게 뛰던 심장은 부끄러워서 요란스레 뛰었다. 사실 남자가 한 마디 얹지만 않았어도 태연하게 굴어보기라도 했을텐데, 반응 죽인다며 빙글빙글 웃는 낯에 어떻게 민망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녀의 낯짝은 그렇게 두껍지 않았다. 오히려 얇디 얇아 투명하기 저 안쪽 속내까지 다 비추어보이는 편이었다. 얼굴에 어린 붉은 열기도 민망하기 때문임이 확실했다.

“학, 학교에 도둑질이요…?”

훔칠게 무엇이 있다고 학교에 도둑질을 하러온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아 끔뻑거리는 두 눈이 남자를 담는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들면 안 된다지만, 듬성듬성 자란 수염과 대추야자를 보니 궁핍한 생활에 대추야자로 끼니를 연명하는 생계형 범죄자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들었다. 그렇다면 학교에 훔치러 온 것은 필시 매점에 있는 간식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에 도둑질하러 온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둑질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 자를 막아야할텐데, 소녀의 이능력은 이런 상황에 썩 유리하질 못했다. 이 남자도 이능력을 갖고 있을지, 말로 설득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상황을 재보는 표정이 너무나 고민스러웠다.

“도둑인 줄 몰랐으니까요…. 그것도 훔친 거에요?”

도둑이라는 남자가 하는 지적에 입술을 오물 씹었다. 잘근 씹지도 못하고 오물거리듯이. 도둑에게 받은 지적이 분하다는 표현 치고는 작았다. 그나마 대추야자도 훔친 거냐는 의문인지 지적일지 모르는 말 한 마디라도 해서 다행이다.

“범죄자랑 아는 사이 하기 싫은데요…….”

소심한 태도치고는 그래도 할 말은 다 한다. 단 거고 뭐고 도둑이라는 자가 내미는 걸 받아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마도 아까 잘못 사용한 이능력이 가져온 불행은, 무릎에 새로운 상처가 늘어난 것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도둑을 만나는 것까지 포함인 것 같다고 소녀는 생각했다.

“여기 학교, 이능력자만 있는 건 아세요? 그, 돌아가시는 게… 좋을 걸요. 가는 길에 자수도 하시고…….”

지극히 상냥한 발언이다.

# 재밌게 이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글러먹기는 무슨 훌륭한 교사시다~!!! 대추야자를 급식으로(?) ☺️

806 이름 없음 (2T5yXpKu8w)

2022-08-30 (FIRE!) 23:05:14

>>805

"이미 훔쳤지. 응, 이 학교의 이번 중간고사 중국어 시험지랑 답안지."

야는 지금 내 얼굴을 모른다! 내 과목이 뭔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이 퍼뜩 든 그는 순식간에 도둑질에 성공한 물건을 지어내었다. 그도 그럴게 이미 도둑질에 성공했을수 밖에 없는게 지금 현재 본인 담당과목이 중국어였으니까, 어차피 이능력 시험이야 자기 관심 밖이고 자기도 문제 출제에 참여했으나 순수 100퍼센트, 본인이 낸 과목은 중국어뿐이었다.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마치 모 퍼렁고양이 로봇 주머니 뒤지는 것 마냥 그는 조끼 안쪽에서 자기가 출제해낸 답안지와 시험지를 흔들어 보이면서 히죽 웃어보였다. 뭐, 왜, 뭐, 내가 낸 시험지고 내 답안지야, 그거 좀 들고 있는다고 대수냐?!

"대추야자는 중국어 교사 뒤통수 후려 치고 훔쳤는데?"

이젠 자기 뒤통수를 자기가 쳤다고 구라치는 교사였다. 그러면서 이제 다음번에 어떻게 골려먹을까 고민읋 하면서 그는 대추야자를 다시 입안에 집어 넣었다. 능력의 특성상 에너지 소비가 많은 그로서는 당연히 주식에 가까운 주전부리였기에 항상 들고다니면서 고칼로리, 고열량 음식을 입에 집어 넣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상황을 보면서 어떤 여교사는 사기야!! 라고 외쳤지만, 그가 능력을 쓸때마다 빠져나가는 살, 나중에는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보며 결국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 대추야자는 자신의 능력용 대비 식품이었던 거다. 그렇게 다음 구라를 이어나가려는 순간,

[아, 아. 방송반에서 알립니다. 지금 교정 뒷편에 계신 강 소랑 중쌤, 학생주임님이 순진한 얘 그만 골려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상 전달 끝.]
"......"

그러고보니 까먹고 있었다. 학생주임의 능력, 천리안. 백에 백 자신이 농땡이 피우고 있는거 알고 지금 어린애 골려 먹는 장면 보면서 팝콘 뜯다가 시험지 가지고 장난치는거 보고 지금 뭐라 그런거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아닌거 마냥 다시 자신의 학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나도 이능력자니까... 어...."

젠장, 다된 밥에 코풀기라니.....

"이제 도둑 아니라고 해야하나?"

그걸 말이라고 하냐!!

"끄응..... 정식 소개하마, 뭐 오리엔테이션에서 안들었겠지만, 지금 현재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중국어 과정을 총괄하는 강 소랑이다. 뭐.... 도둑은 부업이야."

결국 도둑이라고 말했어!!


//으흐흐 오랫만의 상판이니까 재밌으면 오케이지!!

807 이름 없음 (gUlE..TzfE)

2022-08-31 (水) 16:50:12

>>791

"그렇기에 사자(死者)는 전생의 업을 잊고 새로 태어나는 법이네."

죽어서 현세에 남는 것이 순리에 있어서는 이례적인 일인 이유가 이런 법이다. 정상적인 방식으로 죽게된다면 전세의 기억은 잃게된다.
다만 이렇게 망령으로 남는다는 것은 자신이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기피할 수 밖에 없다. 망령으로서 존재하는 자아는 아직도 죽은 것이 아닌 죽기 전의 전세의 기억을 가진채로 남아있기에, 성불한다는 것은 다시말해 스스로의 소멸과도 다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자신이 하고자하는 존재의 소멸을 막고자하는 것과 틀리지는 않은 것인가.

"죽기 전에 이루지 못한것이 한이고 원념이지 않은가. 죽고도 망령으로 남아있는 것은 그것이 원인이다. 그 외에 현세에 영이 떠도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건가? 삶에 가볍고 무겁고의 차이는 없다. 그저 삶에 있어서 이루지 못한 것이 현세를 떠도는 원인이니까."

자신은 어떠한가 소영의 질문에 한마디로 생각할 이유조차 없다라 단정할 수 있었다.

"새로운 삶조차 부여받지 못한 내가 생각할 이유가 있겠나?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사라진다. 존재해선 안되었으니까."

해한사는 저승차사가 해야할 일의 일부인 망령의 처리를 위해 대행직으로 부여된 임시직에 불과했다. 그만큼의 편의를 제공받았지만.

"남겨진 것들을 하나하나 끝내서 성불시키는게 내 일이니 내가 하는 것이 마땅히 해야할 도리다."

나라는 이레귤러이기에 이레귤러로서 해야할 일은 실패하지 않고 모두 끝냈다. 그게 내 일이다.

808 이름 없음 (kKe5NP6Nkk)

2022-08-31 (水) 17:04:58

>>803
"싸우기 싫으면 영원히 도망치면 돼. 우리가 싫으면 혼자 하면 돼. 그렇게 하고 싶다면."

하지만 정말 그걸 원해? 소피게네이아는 물었다. 부와 명예를 포기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삶을 내버리고 영원히 도망치는 것. 단신의 가공할 무력으로 왕국의 군대를 깨부실지언정, 반역에 필수적인 거점들을 점령하고 유지하지 못하여 결국 파괴만을 반복하는...그래. 정말 마족처럼 될지. 당신이 바라는게 그것인가.

"그냥 당신이 마족들을 붙들고 뜻대로 휘두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상호 계약을 하자구."

그쪽은 머릿수가 필요하다. 이쪽은 더 나은 처우를 원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 남은 것은 악마와의 거래다.

"이 자리에서 바로 정하라곤 하지 않을게. 하지만 서두르는게 좋아. 내가 왕실의 참모라면 당신에게 씌워진 영웅의 이미지부터 벗겨내려고 할 테고, 그건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지."

민중들은 우매한 것이 그 성질이라 진실을 좆지 않고 자신이 좆는 것을 진실로 탈바꿈시킨다. 왕국의 지배계층은 그것을 다루는 것에 이골이 난 존재들이다. 무력에서 밀리니 그들이라도 휘어잡아 용사를 고립시키려 하겠지. 그러면 밀리는 무력을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용사와 같은 편에서 싸우다보니 힘에 대한 감각이 마비가 되었나. 멍청한 종자들. 덕분에 기회가 생겼지만 보면 볼 수록 웃음만 나와.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어."

그녀는 목에 채워진 주문을 과시하듯 내보였다. 여전히 불안정하게 깜박였다. 시간이 촉박한건 양 쪽이 피차일반이었다.

809 이름 없음 (9cBqeaZm36)

2022-08-31 (水) 19:10:09

>>808

꽤나 간교하게 악마의 속삭임을 읊고 있다고 사내는 생각했다. 자신이 마족들을 붙들고 뜻대로 휘두르는 것이 낫지 않냐고 이야기를 하나 정말로 그렇게 하면 자신이 마왕과 다를 것이 뭔가. 마족을 이끌고 인류를 멸하려고 하고 공포에 떨게 한 그 존재와 다를 것이 뭐란 말인가. 그 선택을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선을 넘어버리는 무언가가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그렇기에 사내는 쉽사리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치 말만 들으면 나에게 다음 마왕이라도 되라고 말하는 것 같은 거 알아?"

시간은 상당히 촉박할지도 모르고 그 속에서 선택을 반드시 하나를 해야만 했다. 이대로 죽는가. 아니면 영원히 쫓기는가. 자신이 바라는 것은 그저 이전의 삶일 뿐인데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숨을 약하게 내쉬면서 사내는 결심을 했다는 듯이 고개를 조용히 위아래로 끄덕였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저 마족의 말 그대로를 따를 생각도 없었다.

"움직이겠어. 허나 네 뜻대로 하진 않아. 너에게 걸려있는 주문을 해체하는 대신에 내 옛 동료들이 무사한지부터 확인해줘. 그리고 만약 위험하다고 한다면, 이쪽으로 데리고 와 줘. 그 정도의 시간은 당연히 있겠지? 바로 왕가의 사람들이 움직이진 않을테니까."

마족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옛 동료들과 다시 뭉친다.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고 필요하다면 싸운다. 허나 싸우지 않고 빠져나갈 길이 있다면 그것을 택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사내는 이 마족의 주문을 해체해주고 역으로 그녀를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마족이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과 똑같이. 설사 피를 흘리는 싸움을 하지 않더라도 수고했으니 해방시켜주는 것 정도는 대가로 치룰 수 있지 않겠는가.

"나쁜 이야기는 아닐 거야. 일단 너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자유가 제공되니까.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난 마족들을 부릴 생각이 없어. 마왕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 그렇기에 마지막까지도 난 내 동료들과 함께 행동할거야."

설사 그러다가 죽는다고 한다면 조금 분할지도 모르지만, 그만큼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용사라고 하더라도 죽음이 피해가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으니까.

810 이름 없음 (j7zHct6yDM)

2022-09-01 (거의 끝나감) 00:26:56

>>807
소영은 대답 대신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서희에게 기대 따위 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오히려 무관심에 가까운 가벼운 형태의 태도로 소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을 가볍게 던졌다. 마치 그것이 농담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렇겠지. 이해 못할거라고 생각했어. 어차피 네가 어떤 사람이든, 어쩌다 날 보게 되었든...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걸. 서희는 귀신에 대한 철학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사자인 나는 그런 건 모르겠어서."

자신이었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소영은 떠나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모든 것은 한 가지 해답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세상이 1과 0으로 단순하게 이루어졌다면 서희의 말도 얼추 맞기는 했다. 그 막연한 두려움이 소영의 미련이기도 했고 그것이 일찍 죽은 것에서 비롯되었으니 한 일 수도 있었다. 다만 뭇 삶이 그러하듯 한 가지 이유만으로 사는 사람도 죽는 사람도 없었다. 하물며 일찍 죽게 된 사람이라면 그 삶의 이유와 죽지 않고자 하는 이유가 얼마나 많을까. 그런 의미에서 소영의 한은 사실 삶을 향한 미련에 가까웠고, 그 광범위한 주소를 가늠해 추측하는건 생판 모르는 남으로써는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편으로는 갑작스레 거만한 자세로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감도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한을 달랜다는 것은 사람을 위로한다는 것인데, 시대가 흐르고 대상이 달라진다면 그에 대한 언행도 달라져야만 했던 법이다. 어리다는 것이 나이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면, 서희의 서투름도 어떤 의미로는 어리다 봄 직 했다.

그러다 문득 서희가 늘어놓는 말에 소영의 시선이 조금 누그러진다. 통 속내를 알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게서 이유를 듣는 것이 신기했던가.

"그렇구나. 그럼 지금 나와 같은 기분이겠네. 나는 다음 생이나 천국 같은 건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 된다 하더라도 이 다음에 전소영이라는 사람은 없는 거잖아. 나는 내가 되어서 살아왔던 시간과 감정들, 그리고 기억이 소중한거지 다음 생이니 사후 세계니 하는 곳에서 어떤 식으로 존재하든지 중요하지 않아."

애써 밝은 체 하던 소영의 낯빛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밝고 상냥해 보이던 인상에 그늘이 지니 이질적인 감이 유난히 느껴졌고 어느새 어스름이 낀 창 밖의 어둠에 의해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서희를 보면서 소영은 나즈막히 말을 꺼냈다.

"그러니 서희도 알거야. 사라진다는 게 얼마나 막연하고 두려운 일인지. 내 한이라, 그건 아마 일찍 사라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미련이 아닐까?"

미련, 그 미련함과도 닮은 단어는 어쩌면 사자(死者)가 소원을 가지는 것이 미련한 짓이었기 때문에 기인된 단어였는지도 몰랐다. 산 자에게 말할수도 신에게 한탄하기에도 멀고 사사로운 것들을 그나마도 이루고 싶다며 '미련'을 가지는 것. 그럼에도 그들을 돕겠다고 나선다면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죽음 이후에도 남아버린 자잘한 미련함을 들어주고 위로해 줄 사람.

그렇지만 소영에게 서희는 그런 사람은 못 되었다. 어렸던 그에게 몇 백살이나 먹은 별종은 별달리 의지가 되지도 공감이 가지도 않는 존재였으니까. 첫 단추부터 어긋난 셈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소영이 마음을 열지 못하는 건 서희가 감추는 것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성불이란거, 나는 안 할래."

811 이름 없음 (80jOHYQwd2)

2022-09-01 (거의 끝나감) 01:37:48

>>810

"장광론적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평행을 그리는건 어쩔수없나. 이래서 관례적인 접근은 하면서도 지긋하고 비효율적이라네."

말그대로 관직자로서 거만한 자세로 체감할 수 없는 이야기의 나열이었다. 여기까지가 일로서의 해한사인 내가 늘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서희로서의 내 이야기는 어떨까. 해한사로서 해결하지 못한다면 바톤은 넘겨진다.

"무슨 말하는지는 알았으니 좋다네."

담뱃대의 불꽃이 일순간에 꺼졌다.
그것으로 스위치가 눌리듯 일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를 조정했다.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해결못하는 걸 알았으니 벼슬아치마냥 폼잡을 이유를 버릴게."

좋은 방식의 접근은 아니지만 해한사로서의 나는 이 일에 있어서는 부적격했다. 달리 방법은 없었지만

"정리해보자고."

담뱃대를 소영에게 겨누듯 가져다대곤 말했다.

"기본적으로 소영, 당신이 근본적으로 갈망하는 건 협주곡을 다시쳐 소영으로서 하고싶었던걸 마무리 짓는것. 다만-"

나라는 객체가 접근 해온 것은 도움이 되는 편은 아니였다. 오히려 변수를 만들어 이야기가 꼬이기만 했다.

"네가 너로서 당장 끝나는 것은 막고싶다. 이거겠지. 그럼하지마. 성불. 의뢰는 취소하면 그만. 바로 나는 새일을 수주받던지 소멸하던지 둘 중 하나를 택할 뿐이야."

그건 소영과는 관계없는 일이고 결과적으로 현상유지다.

"이래서 의뢰자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은 사례가 싫다니까."

물론 일에 있어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는 아니였다.
당장에 상황에 화난 것도 아니다. 아까보다도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평가를 내린것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꼭 인격이 바뀐것 마냥 느끼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런 존재였다.

"당신이 결국하고 싶은건 소영으로서의 이야기를 더써나가고 싶은거고 그건 근본적으로 틀리지 않았지. 나한테 감정이입 하지마. 여기서부터 단추를 잘못꿴거지만."

애초에 내 사정은 하등 관계없는 일이었다. 망자가 대답하는건 뭐든 말해주는게 관례니 질문에는 대답했을 뿐이다.

"갑자기 건방져져서 깨기라도 하셨을까? 어쩌겠어. 관례대로 해서 안풀릴 때나 이렇게 입을 놀릴 수 있거든. 오히려 입에 달아놓은 자물쇠를 풀어줘서 고맙네. 반어법 아니고."

무거운 걸 홀가분하게 던진듯 가벼히 말하며 나는 손가락을 1을 가르키듯 치켜올린다.

"이렇게 정하자. 당신은 나를 못믿겠지. 그럼 못믿는 만큼 질문해. 반대로 나 역시 당신은 성가셔. 그러니 질문한 만큼 소영으로 하고싶은 걸 말해. 1대 1 교환. 의뢰자와 관계없이 이건 내 흥미로서의 대화야."

의뢰로서는 포기한다. 그저 원점으로서 한번 더 다시 꿰메볼 뿐. 실패한다면,

"싫다면 그걸로 끝이고."

그게 다다. 서로 갈 길 가는 것이고 현상유지며 서로 숨긴건 숨긴채 끝이다.

812 이름 없음 (80jOHYQwd2)

2022-09-01 (거의 끝나감) 01:40:06

이렇게 틀고싶진 않았는데 쓰고있는 내가 서희에 답답해져서... 편한쪽으로 좀갈게.

813 이름 없음 (KhB0.pLM02)

2022-09-01 (거의 끝나감) 17:13:55

>>809
"마왕이라... 그건 의지와 운명에 달렸지. 우리는 모주 눈먼 운명의 칼을 피해 엎드리는 신세 아니겠어?"

마족들이라고 알았을리 없다. 고지가 코앞인데 용사가 나타나서 밥상을 엎을줄은. 그건 반드시 일어나야 했던 일도, 일어나선 안될 일도 아니다. 일어날 일은 사람이 바라든 바라지 않든 일어난다. 그것이 운명이다.

"나는 왕실의 결정을 본 이후 여기에 왔다 했지? 병사를 보내지 않을 뿐, 적은 이미 움직이고 있으니 우리도 당장 움직여야 해."

"그러니 주문을 풀어줘. '지금'"

괴로워. 풀어줘. 풀어줘. 내 봉인을 풀어주면 꼭 보답할게. 옛날이야기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없으면 나를 죽이는 주문이야. 손을 써서 잠시 꺼놨지만.... 이제 슬슬 돌아갈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지?"

"내일이 되면 다시 시간을 벌 수는 있어. 하지만 겨우 하루에 한 번, 여기까지 왔다갔다하는 시간으로 뭘 하겠니? 네 친구가 멀리 있으면 날아가다가 터져 죽을지도 몰라."

소피게네이아는 한 발자국씩 다가왔다. 깃털이 살랑거리면서 부드러운 바람이 일었다. 부엉이의 깃털은 폭신하다.

"그래도 주문을 안고 하라고 하면 내가 알아서 방법을 찾아볼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적들보다 얼마나 뒤쳐질지 모르지만..."

그녀는 더 이상 겁에 질려있지 않았다.

"생각하다간, 늦어?"

814 이름 없음 (sLaosu/7yU)

2022-09-01 (거의 끝나감) 18:29:22

>>811
어둠을 밝히던 담뱃대의 불꽃이 일순 꺼지자, 소영의 눈은 되려 둥글게 뜨였다. 이윽고 겨눠지는 담뱃대의 끝을 눈끝으로 쫓으며 동그란 눈을 빙글빙글 돌리더니 제법 건방진 말투로 늘어놓는 조금 전 과는 다른 종류의 이야기에 눈을 유하게 누그러뜨렸다. 아무래도 관심이 생겨 호기심을 끌었다고 봐야겠지. 그러나 관심을 빛내는 것과 별개로 소영은 바로 입을 열지는 않았고 소희의 말이 끝나서야 말을 내뱉었다.

"그게 네 진짜 마음이야? 이상한 코스프레 같은 게 아니고 진짜 서희의 마음."

그러다 다시금 말을 셈하는지 입을 가리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특유의 상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상냥하기에 굳이 들여다 볼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웃음. 하지만 그 상냥함 안에는 분명 속내가 있었다.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던 영역이었겠지만, 상냥한 사람에게도 나쁜 마음 정도는 있었으며... 지금 소영은 조금 나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기심.

"네 몸에 들어가도 좋다고 했지? 피아노를 치려면 네 몸에 들어가야 한다고. 그렇다는 건 네 몸에 들어가면 살아있는 사람처럼 지낼 수 있다는 뜻이지?"

이후의 말은 짐작할 법 했다. 여느 귀신처럼 네 몸을 내놔라 할 수도 있었다. 다만 소영의 얼굴을 보면 그런 생각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그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불안해 보이는 얼굴은 온갖 잡생각을 피어올리고 남을 쯤에야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장우현이 왜 그런 의뢰를 했는지도 알고 있어? 그 애는... 내가 죽는 모습을 본 첫 목격자거든. 죽은 뒤의 내가 뭘 하고 있을 지, 궁금해 할 이유도 없고. 장우현과는... 인생에서 유일한 실수였다고 할 관계였어."

고작 고등학교 재학 후 3년이 지난 시기의 사회 초년생이 인생에서 유일한 실수였다고 불릴법한 일이 얼마나 있을까. 확실한 건 협주곡을 연주하고 싶다던 바램과 장우현은 아주 먼 관계가 아니라는 거였다.

815 이름 없음 (vf8txgxi/c)

2022-09-01 (거의 끝나감) 19:09:04

>>813

지금 주문을 풀어달라고 요청하는 눈앞의 마족을 바라보며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저 주문을 가지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없을테니까. 지금 그녀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는 것처럼. 저 정도 주문을 풀어버리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마왕의 성에서 싸울 때도 얼마나 많은 주문을 파괴하고 풀었던가. 물론 정말로 전문적으로 마법을 해체하는 제 동료 중 마법사에 비하면 한참 떨어지는 실력이었으나 그래도 이 정도 주문이라면 자신도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는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웠다.

마법의 핵. 그것을 파괴하는 주문은 상당히 정신을 집중해야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자신에 한해서. 이게 바로 자신이 아직 실력이 떨어진다는 가장 큰 증거였다. 그 마법사는 아주 가볍게 여러 주문을 손쉽게 파괴했었으니까. 이내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정신을 집중하던 사내는 영창을 마쳤고 이내 기합을 주었다. 쨍그랑. 가볍게 뭔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있는 마족에게 걸려있는 주문은 해체되었다.

물론 그녀가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허나 배신한다고 해도 자신에게 크게 타격이 갈 것은 없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었고 자신은 아직 현역 사냥꾼이었다. 힘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자신의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쉽게 목숨을 잃을 이가 아니었기에 별 일이 없을 거라고 사내는 판단했다.

"약속은 지켰어. 그럼 이젠 네가 약속을 지킬 차례야. 알고 있겠지?"

물론 여기서 그녀가 자유로워졌으니 바로 도망치지 말란 법은 없었다. 허나 도망친다고 한다면 도망치는대로 자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이루면 될 일이었다. 어쨌든 동료와 합류해서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였으니까. 그 수단 중 하나가 사라진다고 한들, 딱히 그에게 타격이 오거나 할 일은 없었다.

"병사를 보내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 용사라는 타이틀이 설사 벗겨진다고 해도... 애초에 그런 것을 원해서 여행을 한 것도 아닐 뿐더러 당장 위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제대로만 시행해줘. 알았지?"

이 순간까지도 그는 끝까지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아무런 위해도 없이 평화롭게, 조용히 사냥만 하고 살고 싶었을 뿐.

816 이름 없음 (h1wECs481o)

2022-09-01 (거의 끝나감) 19:17:14

>>806

이미 훔쳤다니, 소녀의 눈동자가 이보다 더 커질 수 있을까 염려스러울 만큼 동그랗게 뜨였다. 심지어 훔친 것이 매점에서 파는 빵도 아니고 이번 중간고사에서 쓰일 중국어 과목 시험지와 답안지라고 한다. 보란듯이 조끼 안쪽에서 꺼내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능력자만 다니는 학교에 선생님들이 이능력자인 것도 당연했고, 이능력자들을 피해 시험지를 훔쳐낸 저 도둑도 분명 이능력자일 것이다. 그런 결론을 내리니 이번에는 표정이 심각해진다. 도둑을 붙잡기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은 동귀어진하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행을 끌어당기고 끌어당겨서, 바로 앞에 있는 이 도둑도 휘말리게 하면 어떤 불행이 올 지는 몰라도 붙잡을 수는 있지 않을까.

“뒤, 뒷통수를요…?”

이제는 놀라지 못하고 겁에 질렸다. 중요한 문서를 훔치는 것도 모잘라 사람을 해하다니 도둑이 아니라 강도 아닌가. 뒷통수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쓰러져있는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을 떠올렸다. 사람의 뒷통수를 후려치고 훔쳤다는 대추야자를 먹고 있는 것도, 그 대추야자를 먹으라고 권했던 것도 무서워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눈을 감았다 뜨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누군가의 불행을 가져와서 악몽을 꿔버린 것이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었지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주… 죽인 건 아니죠……?”

웬만해서야 사람을 죽였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살인자는 없겠지만, 지금 그런 올바른 논리적 사고를 하기에는 영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떄 교내 방송이 울렸다. 방송반에서 알린다며, 교정 뒷편에 있는…

“서, 선생님…?”

중쌤이라면, 중국어 선생님을 뜻할 것이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도난당하고, 대추야자를 빼앗기고 뒷통수를 후려맞았을 선생님이 눈 앞에 있다. 방송에 의문을 가득 품고 강도, 아니, 선생님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꿈뻑꿈뻑 바라보면 선생님이라는 자기소개가 나왔다. 부업이 도둑이라는 부연설명도 있었지만 신뢰는 이미 바닥났다.

“선생님이 거짓말 하면 안 돼요.”

소심한 구석은 여전했지만 시선이 조금 불량해졌다. 그러면 안 된다고 핀잔주고 타박주고 싶은 마음이 시선에 조금 담겼다.

# 어제 못와서 미안해 🥺

817 이름 없음 (h6sdY5J3wU)

2022-09-01 (거의 끝나감) 20:23:19

>>816

"오, 의외의 정답지. 상으로 너네 반에 가산점 +2... 는 그 권한은 없으니 중국어 수행평가 등급업이라도 시켜주마."

참 잘했어요, 교사의 표정으로 장난기 반, 대단함 반이 섞인 감정을 목소리에 담아내며 도장을 찍는 시늉을 한다. 교사 답지 않으면서 교사 다운 모습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하지만 어째서 그런 단순한 답문에 대하여 교사는 왜 그런 후하디 후한 수행평가 등급 상승을 제시한 것일까란 의문이 남는다. 그 질문에 대해 교사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채 답변을 던진다.

"첫째, 아까의 의사 표현, 방금 전까지 겁에 질린 그런 표정보다도 좀 더 심지가 굳어진 듯한 표정이 첫번째고,"

지퍼백 가득 담겨있는 대추야자를 하나 더 꺼내 손가락으로 튕겨 하늘 높이 던진뒤 입안으로 골인, 하지만 자세히 보면 궤도가 살짝 엇나가 이마에 맞을뻔 한 것을 새끼 손톱만한 강철 구슬이 살짝 쳐서 궤도를 뒤틀었다는 점을 눈치 빠른 사람은 알수 있을것이다. 별거 없다는 듯 씨앗까지 다 부숴먹은 교사는 재차 말을 이었다.

"두번째, 눈빛이 좋아졌어. 겁에 질린 쥐에서 조금 나아져서 그래도 날 선 고양이 같다는 느낌이지."

아주 잠깐의 대화동안에 그는 마치 소녀를 관찰했다는 듯이 재밌는 상대를 만났다는 느낌으로 입을 열었다. 장난스럽게 교원증을 꺼내 허공으로 빙빙 돌리며 그는 입꼬리를 올렸다. 확실히 교사의 말이 그랬다. 분명 그녀를 자극하였으나, 오히려 그것이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아주 잠깐이나마 변화된 모습에 교사는 가산점을 부여한 것이리라.

"그래도 만점은 아니니까, 그럼 시작해볼까. 어차피 이제 이 이후로 시간 많지?"

그는 천천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보충수업 신청서. 마치 어떤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교사는 재차 입을 열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태도를 보면 대인기피증에 여러가지 복합적 요소가 가미된 등교거부도 있었을거 같은데, 어때. 지금부터 나랑 보충수업 좀 하고 출석점수 채울래? 아니면 유급할래? 대신, 수업은 되게 짧게 이루어질꺼고, 추가로 이능력 조언도 해주마."

선택지는 많았다. 다만 교사가 해줄수 있는 것은 선택지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것 뿐.

//놀러온데에서 의무감을 느끼는 순간, 그건 놀이가 아니야! 그러니까 늦게 온데에 대해 너무 그럴 필요 없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덤으로 선생님의 모습은 20~30대 기무라 타쿠야를 연상하면 매우 편한데스, 거기에 살짝 가꾸지 않은 야성미를 더하먄 완벽함!!

818 이름 없음 (5oNqC7iPOI)

2022-09-01 (거의 끝나감) 20:31:50

>>814

"어떤 쪽이냐 묻는다면 아까까지는 공무원이고. 지금은 당신이 계율의 제약을 풀었으니까 이쪽이 본연이라고 해야하나. 좋을대로 생각해. 아 이건 질문으로는 안쳐도 상관없어. 보통은 여기까지는 안오거든."

사람의 속내는 사람이 어찌알겠냐만 죽은 사람이지만서도, 직감적으로 느끼기에 이건 아까와는 다른의미의 이끌림을 불러오는데에는 성공했나보다. 이윽고 짓는 웃음은 상냥한 사람이 가면을 쓴 미소라고 생각했다. 이건 꽤 욕망이 감도는 부류다.

"체격 차를 제외하고는 생전에 움직이던 것과 별차이는 없겠지. '체격'만 제외하고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서영이 막상 반말을 하는 이유가 있다면 역시 내 체격이 문제일것이다. 기껏해야 중학생정도에 성장이 멈춘듯한 체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격을 한번더 강조하는 신경질 부분을 드러냈다.

"의뢰자랑 당신의 관계는 내가 알고있는 거랑은 꽤 다르네. 뭐 의뢰자의 태도를 보아하니 짐작은 가지만. 궁금해할 이유가 없다라는 당신의 단서가 있다면 답은 그거겠네. 죽은 사람을 봤다는 그 두려움을 지우려고 마치 더럽혀진걸 깨끗하게 하고 싶다 라고 해야하나. 하나 더 있다면 이 장소에 유령이 있다는 소문. 그걸 없애는데 강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지금은 졸업한 인간이 아니던가? 그런 인간이 이미 거의 관계가 없어진 장소의 유령 소문을 없애려고 한다는건 꽤 의아해 할 만한 소재였다.그게 내 일과는 크게 관련이 없으니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안들었지만서도. 여기까지 짚고 넘어간다면 조금은 파볼만한 이야기가 된다.

"행여나 내 몸을 빌려서 사람을 해하던가, 범죄로 이용하려 한다면 바로 몸에서 쫒아낼거야. 계율위반이니까."

꽤 감정없는 말투로 그렇게 말하고는 손가락으로 2를 강조한다.

"여기까지 질문 두개를 답했으니 하고싶은 일 두가지를 대답해야겠지?"

819 이름 없음 (j7zHct6yDM)

2022-09-01 (거의 끝나감) 22:56:04

>>818
특유의 감정을 감추던 미소가 맘에 들어차는 것을 들은건지 흔쾌한 미소로 변해 얼굴 가득 피어 있었다. 무엇이 즐거운지 몰라도 늘 웃는 상의 그였지만, 지금껏 지었던 미소와 비교되지 않는 즐거워 보이는 웃음이었다. 소영은 이윽고 눈을 가늘게 뜨며 말꼬리를 늘였다. 흥미로운 것을 찾은 듯한 태도로.

"그래? 서희도 많이 피곤할 것 같네. 그런 이상한 태도로 사람을을 대해야 한다는 거, 많이 불편할거라고 생각하거든. 마음 같아서는 즐거운 일을 잔뜩 경험하게 해주고 싶지만."

키득거리는 웃음을 보면 이제 그의 속내가 보일 것이다. 그는 속 알맹이 없는 말에 능숙했으며 그 선해 보이는 얼굴은 그의 특기였다. 어쩌면 생전에 살았던 집단에서는 그런 방법이 꽤 잘 먹혔던 모양이지. 다만 그와 서희가 상극인 탓에 소영 역시 그를 속이는 것은 그만두려는 듯 했다. 그저 습관적으로 걱정을 읊더니 본심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서희의 몸을 빌리고 나면 바쁠 테니까. 키가 조금 작다는 걸 빼면 좋다는 거네? 오히려 좋은걸. 작은 사람은 귀여우니까 이건 꽤 장점이라고."

마지막에 칭찬하듯이 단점을 읊는것도 빼먹지 않고 정말 착해 보이게 못되먹은 성격이다. 다만 빙그레 웃는 것도 잠시 뿐, 우현의 말이 나오자 음악실에 드리운 어둠처럼 소영의 낯빛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건 경멸이라고 하기에는 짙었으며, 분노라고 하기에는 가벼웠다. 그 명확히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은 이윽고 소영이 입을 열고 나서야 드러났다.

"그 애가 아직 잘 살고 있는 게 믿겨지지 않네. 아니, 믿고 싶지 않고. 어째서 나는 죽었는데 그 애는 여전히 즐겁게 지내고 있는걸까... 만약 그럴수만 있다면, 용서할 수 없는 죄목으로 벌을 내리고 싶을 정도인걸."

나즈막히 질투 어린 감정들을 늘어놓던 소영은 서희가 말을 잇고 나서야, 잊고 있던것이 떠올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표정이 진심인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 능숙해 보이는 어리숙함과 특유의 쉽게 드러나는 표정으로 인해 소영은 제법 솔직해 보이는 인상을 주었다.

"아 걱정하지 마. 무서워서라도 범죄 같은 건 못하는걸. 그리고 나쁜 짓이잖아? 죽어서라도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서희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거야."

그리고 직후 서희의 꼼꼼한 일처리 덕분에 은근 슬쩍 넘어가려 했던지, 정말 잊었던 것 뿐인지 대답을 하지 않던 소영이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입을 열었다. 태연하게 "아참," 하고 말을 얹는 것 또한 어리숙해 보였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말이지... 사실 아직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이걸 이뤄준다면 적당히 속아줄 수 있겠지 싶은 조건은 있을지도 모르겠네. 하나는 피아노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는 협주곡을 연주해 기억에 남는 것. 두번째는..."

그는 유난히 부드럽게 웃었다. 그가 괜시리 웃을 적에는 숨기려는 감정이 있을 때 뿐이었고, 그 감정은 여실 없이 드러났다. 약간의 긴장과 불안함, 그것이 생경하게 미소 너머로 드리웠다. 그리고 직후 소영이 내뱉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일부러 두 가지 질문을 한 것일수도 있지 않을까 싶게 망자로써 원할법한 소원을 정확히 꺼냈다.

하나는 기억되는 것이고...

"장우현을 직접 만나고 싶어. 아직 우리 사이에는 끝내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거든."

다른 하나는 복수하는 것이다.

820 이름 없음 (5oNqC7iPOI)

2022-09-01 (거의 끝나감) 23:25:41

>>819

"나이 지긋하게 드신 분들은 오히려 그쪽이 편하게 응대가능하니까. 기담이나 민간신앙에서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아니까 말이지."

피곤한건 오히려 여기까지 오는 경우다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이 일에 있어서는 사적인 감정없이 냉정한 이야기로만 유지하는게 좋으니까. 그건 그렇다치고 역시 사람이 유하고 착한척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는걸 소영을 통해서도 한번더 확신할 수 밖에 없었다. 이익이 없는 선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많은 망령을 본 탓에 확고하게 굳은 생각이다.

"원귀가 아니라 망령이라서 검을 안들고 온게 아쉽네. 무슨 검인지는 궁금하면 1대1 교환이야."

딱히 관련은 없는 이야기기에 키로 놀리면 귀신도 어떻게는 할 수 있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컴플렉스에 대해서는 꽤 감정적으로 대한다.
일에 있어서는 방해니까 거슬리는건 어쩔수 없는 것이다. 정말이지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애초부터 어린아이 헛소리라고 죽고도 틀에 박힌 생각을 하는 경우니까.

"당신 웃는 얼굴로 꽤 위험하네. 그러다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조차 잊어버릴수 있어. 그 상태로 말이지."

일단은 일에 있어서는 해결해야할 상대다. 행여나 그런 생각으로 물든다면 그 때는 조치가 달라진다.
일종의 경고였다. 그 선을 넘어버릴 때는 의뢰여부를 떠나서의 문제가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궁금하다면 대답하겠지만.
왜? 라는 궁금증에 대해서는 굳이 알아도 영양가는 없는 이야기였다. 지금의 현상유지가 최선이니까.

"웃는걸 가면으로 쓰면서 구렁이 담넘어가듯 하는 여자는 무섭네. 소영으로서의 유명세에 대한 매듭짓기는 이해하겠지만."

연주에 대한 욕구는 처음 만났을 때 부터 확고한 의지였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오뉴월에 서리가 내릴 법한 이야기네. 이야기의 마무리라기보다는 칼로 원고를 재단 하는 느낌이야. 네가 말하는건."

그래도,

"한풀이에 있어서는 그런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법이지만."

821 이름 없음 (KpWuPI9noc)

2022-09-02 (불탄다..!) 18:00:31

>>820 시험이 있어서 내일은 못 이을 것 같아 미안

822 이름 없음 (C.DqzRd4FY)

2022-09-02 (불탄다..!) 19:13:17

>>817

수행평가 등급 업이라고 하면, C를 받으면 B가 되고 B를 받으면 A가 된다는 뜻일테다. 우수한 성적과 공부머리가 있는 학생이 아니라면 누구나 솔깃할 만한 제안이었지만, 소녀에게는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선생님이라는 것 치고는 줄줄이 이어진 거짓말들에 신뢰를 잃은 탓도 있겠지만…

“비리 아니에요…?”

마음이 석연치 않았다. 찝찝한 탓에 좋다고 냉큼 답할 수 없었다. 남들은 공부해서 얻는 성적을 자신은 지금 여기서 무얼 했다고 등급 하나를 올릴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선생님이 거짓말 하면 안 된다는 말은 유치원생도 할 줄 아는 말일테니까, 그런 이유들로 되려 선생님의 호의에 대한 의심만 커져간다. 또 무슨 장난을 치려고 이러는 건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칭찬도 칭찬으로 듣지 못 했다. 소녀는 작은 새앙쥐고, 저 칭찬들은 치즈가 놓여있는 트랩 같았다. 그럼에도 목례를 하며 인사를 하기는 했다.

“칭찬은 감사합니다.”

무어가 달라졌다는지 나아졌다는지 설명해주어도 모르겠지만, 칭찬으로 들리기는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지 몰라도 선생님이 하는 칭찬이니까 감사 인사는 해야할 것 같았다. 졸지에 도둑에게 사과까지 했는데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못할까. 그러고나서는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이제 선생님은 자리를 비우지 않을까,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져서 보는 눈치였다. 뒷뜰에 온 이유부터가 혼자 있고 싶어서였는데 차라리 보건실에 갈 걸 그랬다. 또 다치고 왔냐는 보건 선생님 잔소리가 따가워서 뒷뜰로 피했던 것 뿐인데 후회막심이다.

“네?”

이 선생님은 무엇을 하는 선생님이길래 시험지도 답안지도, 보충수업 신청서까지도 다 들고 다니는가. 이렇게 된 이상 소녀는 시간 없다고 거절하고 먼저 자리를 비울 생각이었다. 등교거부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인기피증은, 소녀는 스스로 대인기피증 같은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저사람 사이에 있는게 악순환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을 뿐이라고 여겼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야 실수로 이능력을 써도 불행을 끌어당기지 못한다. 이미 불행을 끌어당겼을 때라도 혼자 있을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이 휘말릴 일은 없다. 그러니 사람 사이에 있지 않는 것 뿐이다. 그런 이유로 등교를 안 한 적도 있었다.

“호, 혼내시는 거 아니죠………?”

첫인상은 거한 불신으로 남았다.

“유급은 하기 싫지만, 전……… 제 이능력 조언은 못 하실걸요. 안 하시는게 나아요.”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릎에 덕지덕지 붙은 반창고들이 스스로 보기에도 과하고 안쓰러웠다. 자기연민, 바닥으로 처박힌 자신감과 자존감, 불안까지 스며들어있는 문장은 문을 굳게 걸어 잠궈두고 있었다.

# 고마워 🥹 기다렸을까봐 한 말이었어!
# 학생들한테 인기좋은 선생님 생각난다~ 여자애쪽은 생각보다 뾰족하게 생긴 정도? 성격이랑 인상이랑 갭이 큰 느낌인 거 말고 도움줄 말이 없네 🥲

823 이름 없음 (MwTCp/7EPg)

2022-09-02 (불탄다..!) 20:11:10

>>822

"비리는 무슨, 수행평가는 모두 상대평가야. 언제부터 내가 절대평가를 했다고 하는게 어딨냐?"

비리라는 말에 그는 별거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의외로 수행평가 면에서 깐깐하기 그지 없는 그로서는 모든 평가는 상대적인 평가로 이루어진다. 게다가 지난 3년간, 인성면이나 다른 면에서 발달을 보인 학생에게는 무조건 보상을 줘야한다는 그의 입장에서는 이 판정은 전혀 번복할 생각 없는 확고한 그녀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는 천천히 허리를 살짝 숙인채 소녀를 바라보며 아까전의 장난스러운 태도는 어디 갔냐는 듯이 교사의 태도로 소녀를 대하고 있었다.

'확실히 많이 소극적이야. 자기 의사표현은 분명히 할 수 있지만, 본인에 대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고, 추가로 다른 복합적 요소가 확실히 이 아이의 발목에 족쇄를 걸어 잠그고 있어. 자의던 타의던 늦지 않게 발견해서 다행이야.'

순간적으로 눈이 돌아 가는 모습에 그의 마음속 한켠이 안쓰러웠다. 지난 3년간, 교생 실습 포함 5년간 많은 학생들을 만났지만 이 아이만큼 상황이 심각한 아이는 없었다. 최악의 경우 자신에 대한 비관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도 있고, 자신이 공부를 하며 얻어낸 이능력의 특성상 정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래도 아직 시간은 있고 최소한 못하더라도 그녀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그 순간, 뒷 말에 그가 눈을 살짝 동그랗게 뜨고 소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왜 혼내? 나도 너 못지 않게 고민 많이 했어, 대학교때는 학사경고도 두번 맞아봤다. 지금은 교사일지 몰라도, 나 학생으로서는 빵점이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천천히 자신의 조끼 포켓에서 쇠구슬을 여러개 던졌다. 그의 명령을 받아들이기라도 하듯이 쇠구슬은 일사분란하게 수많은 새싹 그림들을 땅바닥에 그려내었고, 그는 쪼그려 앉은채 그 모습 그대로 학생이 된 소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입꼬리를 올린뒤 입을 열었다.

"당연히 못하지, 난 지금 너의 이능력을 모르니까, 하지만 가벼운 조언정도는 지금 가능하니까, 가볍게 이야기 듣는다 생각하고 천천히 들어. 이능력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고착화 되어있다고는 하지만 기실 많은게 달라, 정형화된 사이즈가 없다고 해야할까? 지금 이 새싹들을 전부 이능력이라고 쳤을때, 이능력은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장의 방식이 달라져, 어떤 이능력은 꽃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이능력은 나무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의 목표는 결국 그 사람의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지. 그렇기에 우리가 교육하는 거고."

그래서 히어로와 빌런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사람들이 말 하는 것이 아닐까? 그의 설명에서는 많은 의미가 녹아 내려져 있었다. 그의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아까전의 장난스러움이 거짓말이라는 듯이 그는 천천히 미소를 지은채 몸을 일으켜서 자신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본인 명의로 되어 있는 외출증과 함께 교사의 이름이 적힌 신용카드, 도대체 무엇을 하라는 것일까.

"네 이능력에 대해서의 이야기는 네가 말하고 싶을때, 본격적으로 시작하는걸로 하자. 자 그럼 보충수업의 첫 과제야. 이거 내 카드, 마음껏 써도 된다. 지금부터 학교 바깥으로 나가서, 네가 사오고 싶은 물건 아무거나 3가지만 사와, 가져오는 것은 3가지 이상이 되어도 되지만, 반드시 네가 원하는 것을 사와."

첫번째 스텝, [더 안할래.]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단 한번만 더 해보자고 이야기 해보기.

//나는 언제든지 기다릴수 있다!! 그러니까 천천히 즐기면서 가보자고!!
//좋은 교사라면 어디까지나 학생을 자신의 성과로 보지 말고 하나의 아이로서 대해야 한다고 옛날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어서(....) 그 말이 모티브라면 모티브겠지? :)

824 이름 없음 (ppFIoDyIIw)

2022-09-02 (불탄다..!) 20:43:13

>>815
"으으음...."

소피게네이아는 시원하다는 듯 몸을 짐짓 부르르 떨었다. 깃털 몇 개가 떨어졌다. 그녀에게서 두려움은 이미 멀리 떠난 것처럼 보였다. 공작이 꽤나 성질을 부리겠네. 그녀는 중얼거렸다. 소피게네이아를 묶어두기 위해 꽤나 비싼 마법사를 썼을지도 모르지만, 용사처럼 규격외를 끌고오면 아무 의미 없어지는 짓이지! 주문이 풀렸으니 이제 그녀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녀가 용사의 옛 동료들에게 다다르는 시간은 더욱 짧아지리라.

"정말 고마워~ 그런데 부탁 하나만 더 하자. 당신의 징표를 줘. 내가 절대 훔칠 수 없을 만한 물건."

"예를 들어서, 성기사 놈들은 날 보자마자 칼부터 뽑을 거 아냐? 네 심부름을 하고 있다는 증거 정도는 필요해보이는데.."

그 대화도 협상도 타협도 불가능한 근육뇌들 말이야. 성기사가 아니더라도 내가 널 어떻게 믿고 따라가냐고 말한다면, 소피게네이아에게 할 말이 없었다. 재수가 없으면 그 자리서 붙잡혀 그 '공작'의 영지까지 강제 송환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뿐이야? 최대한 조심은 하겠지만.. 병사들의 추격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싸워서 피를 봐야 할텐데.. 싸우지 않고 넘어갈 방법이 있다면 말이지.. 응?"

변명거리도 참 많았다.

//짧아서 미안해..흑흑

825 이름 없음 (4Rmpsu5hv.)

2022-09-02 (불탄다..!) 20:59:35

>>824

절대 훔칠 수 없을만한 물건. 자신에게 그런 것이 뭐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만 기다리라는 듯이 저편에 있는 자신의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붉은 루비가 박혀있는 펜던트를 가지고 왔고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그 펜던트가 무엇인지 대해서 그녀에게 설명했다.

"이건 아무런 효과도 없는 그냥 펜던트야. 모두와 헤어지기 전에 기념으로 나눈 물건이기도 하고.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너희들과 산 물건이라고 하면 대충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을거야. 네가 제대로만 전달한다면 말이야."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닌 이상, 그 설명과 이 펜던트를 보여준다면 바로 알아들을거라고 사내는 확신했다. 물론 그 이후 어떻게 행동할지는 또 별개였지만. 허나 왕가에게 붙어서 자신과 다른 동료들을 해하려고 하는 이는 없지 않을까. 그렇게 사내는 생각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생사를 같이 했고 사선을 함께 넘어 마왕을 같이 물리친 사이였다. 이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있는 이들은 역시 자신과 함께 여정을 한 동료들이었다.

"일단은 그것으로 충분해. 물론 네가 그 어쩔 수 없이라는 것을 핑계삼아서 살생을 무차별적으로 저지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야."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은 그에 대한 댓가를 치루게 할 수밖에 없었다. 엄연히 약속을 깬 행위이고, 그렇게 되는 순간 그녀는 토벌해야 하는 마족으로 규정될테고 자신은 물론이요,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동료들과 싸워야만 할테니까. 그런 리스크를 끌어안고 멋대로 행동을 취하진 않을거라고 생각하며 사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부탁할게. 모든 일을 다 마치면 그땐 어디론가 사라져도 괜찮아. 붙잡지 않을테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는 마족이었다. 모든 일을 마치게 되면, 자신의 동료들과 접촉해서 여기로 데리고 온 후까지 이 일에 얽매일 이유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이후의 일들은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일이었다. 당연히 그 마무리도 인간이 해야만 했다.

/앗! 아니야! 나도 그렇게 긴 것은 아닌걸! 무엇보다 짧은 것도 아니잖아!!

826 이름 없음 (FEmropzKWE)

2022-09-04 (내일 월요일) 19:33:56

>>820
"그래, 그렇구나." 하고 소영은 조금은 서희의 입장을 이해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마음 속에서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는데, 그 명랑한 표정으로 미루어 볼 때 특유의 좋게 넘어가려는 성격에서 기인해 그런 말을 한 것이지, 실제로 이해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뒤에 키로 놀림받는 기분이 들자 바로 태세를 바꾸는 것을 보며 소영은 조금 웃음을 터트렸다. 늙은이 같이 굴어도 사람은 결국 어딘가 어린 면이 있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역시 보이는 만큼 어린 것인지 서희의 그 솔직한 태도가 조금 아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소영은 그 특유의 웃는 얼굴로 가볍게 바라보며 물었다. 정확히는 묻는 화법을 써서 본인의 이야기를 했다.

"잊어버릴 수 잊다는 건 서희가 일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인 거지? 아마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과 비슷한 거겠지? 그렇다면 서희는 나를 신선놀음에 정신이 팔릴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거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쉽게 중요한 일을 잊는 성격은 못 되서 말이야. 아마도 그런 건 조금 정신 빠진 사람이 겪게 되는 일 아닐까?"

소영은 이윽고 다시금 웃었다. 이번에는 제법 작위적일 정도로 예쁜 웃음을 짓고는. 아마도 그 웃음이 감추려고 하는 건 좋은 건을 잡았다는 구린 속내인 모양이지만 소영이 늘 그렇듯 그 기분은 웃음 사이로 아주 잘 드러났다. 소영은 거짓말을 잘하면서도 감추는 게 서툴렀다. 그건 마치 사랑을 받았음에도 사랑을 요구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질적인 두 가지 성격이 합치될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지만 분명하게도 소영이라는 존재는 지금 서희의 눈 앞에 있었다. 명백히 무언가를 바라는 채로.

"단순히 유명세라고 결론짓지는 마. 사람이 남기게 되는 게 기억이라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니까 내가 욕심내는 것도 크게 무리하는 건 아닐거라고 생각해. 남겨지는 건, 그것 하나 뿐이잖아. 단지 그 방법이 조금 어려울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리고 다음 말을 꺼내기 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소영은 그 이야기를 할 때 만큼은 밝은 모습을 유지하지 못했다. 모든 나쁜 기억의 근원이라도 되는 듯이 우현에 대한 이야기를 대했다. 그걸 통해 추측이 가능했던 건, 그의 죽음과 관련된 것이 우현이라는 사실 정도였겠다. 다만 그 사실을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않으니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없었다. 그저 내뱉는 말을 통해서 근접해지길 바라는 정도겠지. 소영은 다시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슬픈듯이 불편해 보이는 웃음을 띄고서.

"그건 그렇지... 한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네. 이건, 꽤 인상적으로 나쁜 이야기니까."

827 이름 없음 (IzviEzofC.)

2022-09-04 (내일 월요일) 21:20:51

>>826

"일에 관한 이야기는 맞지만, 신선놀음 따위가 아니라 망령이 원귀가 되는 경우를 말하는거야. 당신의 욕구가 원한으로 변해 사람을 해하려고 할 무렵에는 당신이 당신으로서의 자아를 상실하니까. 그 경우에는-."

손에 있던 담뱃대를 부채로 바꾼다. 물리적인 법칙으로는 불가능한 행위였음에도 그것은 마치 도술을 쓴 마냥 도구가 다른 도구로 변화했다. 접었다 펼쳤다 할 수 있는 부채에는 敬鬼神而遠之라는 말이 적혀있다.

"敬鬼神而遠之귀신인 공경하되 멀리하라. 성불에서 퇴마로 목적을 바꾸겠지. 과연 그건 얼빠진 존재만이 가능할까? 귀신이 사람을 해하는 것에 맛에 들리면 마치 마약처럼 끝이없고 그 끝에는 원귀가 될 뿐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륜적인 측면에서의 복수를 돕는건 허용 범위내라고 해야겠지. 그래서 사람을 해하는 것, 죄를 범하는 것 두가지에 있어서는 불가하다. 라고 말해두는거야."

사람을 해하는 것도 죄를 범하는 것도 아닌 복수. 그것은 단순히 말해 악의적인 감정이 없이 억울하게 묻혀버린 진실을 들춰내 적합한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라면 해한사는 충분한 도움을 줄 기회가 많다. 다르게 말하면 그것이 아닌 복수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단정짓는 것도 내 나쁜 버릇이니까. 개개인의 감정 하나하나를 분류해서 분석하는건 효율적이지 못하거든. 기계같다고 말하더라도
일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로 스위치를 누르는 시점에서 반쯤은 기계가 맞아. 정리하자면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게 사람으로서 이름을 남기려 한다 라고 정정할게."

여러가지 단서와 요구가 하나둘 머리 속에서는 그물처럼 엮여 연산마냥 처리를 시작한다. 소영의 요구는 기본적으로 거창하게 말하자면
가장 빛날수 있는 피날레를 장식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 이것이 하나. 그리고 둘 로서 의뢰자에 대해서,

"질문에는 질문으로 답해야겠지. 당신의 복수는 당신의 죽음에 대한 묻혀버린 진실을 들춰내고 흑막에게 응당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으로 충분하겠나? 단, 이 요구는 이 이상으로 해결해 줄 수 없어."

정직한 복수를 하는 것.

828 이름 없음 (ZL4refZX32)

2022-09-05 (모두 수고..) 19:33:13

>>823

소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행평가가 상대평가이든 절대평가이든 무슨 상관인지, 상대평가라고 해서 비리가 아니게 된다는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중국어 수행평가가 중국어 실력을 평가하지 않으면 그게 다 비리가 아닌가, 지금 바른 말 한 번 했다고 수행평가 등급이 올라가면 비리가 맞지 않는가. 물음표를 그리던 눈빛을 선생님이 시선을 맞춰주면 사라졌다. 이상한 선생님이랑 더 얽히지 않는게 낫다고 느꼈기 때문에, 대꾸를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교사로서는 백점이신 거에요?”

하지 못한 말을 속에 욱여넣었다. 튀어나오지 않게 힘껏 눌렀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지 언정 말할 수 없었다. ‘저는 무엇으로서도 빵점인데.’ 같은 말을 해서 하등 쓸 곳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쇠구슬이 던져진 것에 시선을 빼앗긴 척 굴었다. 별로 관심도 없는 쇠구슬들은 바닥에 떨어져서 새싹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능력이 없기라도 했으면, 이곳이 이능력자들만 있는 고등학교가 아니었다면 조금 놀라거나 신기하기라도 했을텐데… 무감하게 바라볼 뿐이다. 선생님이 자리에 쪼그려 앉으면 교복 치마를 눌렀고, 새싹보다는 치마를 누르는 손짓에 더 신경을 썼다. 다리에 붙은 반창고들은 가리고 싶어 손에 힘을 주지만, 교복치마가 덮어봤자 무릎을 덮을락 말락하는 길이에 반창고를 가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안 자라는…. 시들었거나, 꺾…인 새싹은 안 자라잖아요.”

천천히 들어보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는 했지만, 소녀는 새싹 그림에 자신의 이능력은 없다고 생각하니 와닿지 않았다. 그도 그런게 그림 속 새싹들은 파릇파릇하기만 하니까. 자신의 새싹이 파릇파릇하다면 독초로 자랄 것이었고, 파릇파릇하지 않다면 그게 옳은 것이라고 믿는다. 위험하기만 한 이능력을 키워서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이제 선생님이 일어나시면,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볼게요. 라고 인사하고 가자.’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는 소녀의 눈 앞에 불쑥 외출증과 신용카드가 나타났다. 놀라서 동그랗게 눈을 뜬 소녀는 이 선생님이 올가미 같다고 느꼈다. 그물 같다고, 거미줄 같다고 생각했다. 도망칠 수가 없다.

“네?”

보충수업을 하겠다고 한 적도 없고, 학교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이 이상한 수업과 과제는 무엇이란 말인가.

“저, 그거 한다고 한 적도 없고, 사람 많은 곳은… 사람 많은 곳에는 못 가요…….”

저 선생님이 손에다 외출증과 카드를 쥐어줄까, 소녀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인터넷 쇼핑은, 안 돼요…?”

피할 수 없다면 더 나은 선택지로 타협하는 수 밖에.

# 고마워 🥺 재밌게 하도록 노력할게, 너무 답답하면 말해줘~
# 좋은 선생님을 모티브로 해서 좋은 선생님이 된 거구나, 난 초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걸 반대로 생각한게 모티브네! 초능력이 있어서 나쁜 경우.

829 이름 없음 (1icuPMHPTc)

2022-09-05 (모두 수고..) 20:29:30


>>828

'생각보다 더 심각하잖아.'

마음속의 교사가 침통하게 입을 열었다. 왠지 안타까웠다. 조금 만이라도 일찍 만났다면 조금은 더 자신감을 가지게 해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교사로서의 안 쪽으로 자그마한 불씨가 타오른다. 그간 많은 학생들을 겪으면서 다가온 자신의 마음속은 그만큼 본인이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잠긴 빗장은 천천히 열어주자. 스스로 열 마음이 들때까지 천천히 쪼그려 앉아 눈을 마주치고 이 아이가 웃을때까지.

"흠, 좋아. 인터넷 쇼핑 오케이."

오히려 걸려들었다는 듯이 그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애시당초 사회로 나가라는 뜻이 아니다. 사람을 마주치라는 뜻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사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역으로 지금 아직 자기가 원하는 것 자체가 있다는 것으로 비출 수 있고, 이미 자신이 예상한 타협점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계획의 일환이라 생각 한 그였다.

"안 자라는 새싹은 언젠가 더 큰 새싹이 되어 있고, 꺾여버린 새싹은 다시 한번 힘을 주고 뻗을 날을 기다리는 거다. 그게 나는 잘못된 새싹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이야기 하면, 나 또한 완전한 결함품이니까. 넌 네가 생각 하는 것 이상으로 더 대단한 사람이 될꺼야. 내가 보증하마."

뭐 거짓말을 자꾸 밥먹듯이 해서 믿음을 많이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만큼 교사로서의 안목 만큼은 절대적으로 믿는 그였다. 그렇기에 그는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핀 뒤 소녀에게 다가갔다. 날카로운 인상과는 반대되는 이 소극적인 모습에 그는 무심결에 손을 뻗어 조심스레 머리에 손을 얹고 따스하게 쓰다듬어주었다. [위대한 강철의 거상], 누군가 붙인 그의 이명에 어울리게, 크고 따스한 손이었다.

"교사로서 백점이라고 하면 글쎄다. 나는 항상 내가 결함품이라고 생각했다. 내 능력 바깥의 일들에 대해 눈을 돌리고 평범에 몸을 숨겨 왔으니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누군가와 싸우고야 말았으니까. 실제로도 내 학기부 보면 꽤 만만치 않을꺼야.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가고 싶은 길이 있더라고. 그러니까 나는 너 같은 아이를 함부로 둘수는 없겠더라. 올바르게 자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 그러니까 넌 너의 길을 갔으면 좋겠어."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아까전 그가먹던 대추야자만큼이나 달콤하고 부드러운 미소였다.

"어려운건 알아. 하지만 네가 할 의사가 있다면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어. 기간을 늘려주마, 네가 하고 싶다고 싶을때 하고 오렴, 그 카드는, 알아서 하려무나."

//아니야! 전혀 답답하지 않아!! 오히려 갱생욕이 생긴다!!(?)
//그래도 솔직히 좀 글러먹은 교사인데....!! 잘 받아줘서 고마워!! 는 생각해보니 거의 띠동갑일세(.....) 나름 20대 후반~30대 초반을 가정한거랔ㅋㅋㅋㅋㅋ
//오히려 교사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바로 말해줘!!

830 이름 없음 (IUt2ZauVoE)

2022-09-05 (모두 수고..) 22:20:42

>>827 아이고 오가는 길에 이을랬는데 비도 오고 사람도 많아서 못 이었다 미안해 내일은 꼭 이을게

831 이름 없음 (qNF.JO4phI)

2022-09-06 (FIRE!) 08:46:03

>>827
소영은 지금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감으로써 추측해 이해해 보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그 나름대로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소영은 서희의 말이 나름대로 무언가를 걱정하는 것이라 결론지었다. 설령 자신을 향한것은 아니라 해도, 자신의 일이 앞날아라든가 하다못해 자신의 편리라든가 하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서희는 걱정이 많구나? 결국 내가 문제를 일으킬까봐 걱정되는 거잖아. 그렇지만 나도 서희가 경고하는 일은 일으키지 않을 생각이야. 손해보는 삶은 안 살거든."

빙그레 웃는 얼굴에는 소영 특유의 거짓말을 못 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살짝 경직되고 긴장된 표정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분명 뭔가를 저지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입은 습관처럼 거짓말을 했다.

"그야, 나도 그 이상 요구하는 게 아닌걸. 잘 해결되면 오히려 내가 기쁘지! 그래서 내 소원은 어떻게 이뤄주는 거야?"

소영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렇게 흑심이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거짓말에 서툴면서 이렇게 능숙한 사람도 드물다. 그의 인생사도 그의 행동처럼 드물었기에 원한이 남았지만 아이처럼 깨끗한 상태로 남아있었는지도 모르겠다.

832 이름 없음 (CjVzcd79Do)

2022-09-06 (FIRE!) 22:30:20

>>831

"걱정이 아니라 귀찮은 일은 사양일 뿐이야."

아무리 이미 죽은 영혼이라는 한들 그것을 소멸시키는 입장은 서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건 사람이 사람이 죽이는 일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허튼짓 할 생각이 얼굴에 다 써져있어. 내 몸을 빌릴때에는 내가 빙의를 끊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알고있으면 좋겠네."

범위 내에서 예외 행동은 넘어갈 생각이지만 계율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생각된다면 가차없이 나는 소영을 제지할 생각이 충분했다.
거짓말을 하면서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 쪽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연주는 그렇다치고 말하는 걸 보아하니 당신은 죽을 시점의 기억이 없나?"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그 부분이 비중이 컸다. 없다면 증거를 찾는 것 부터가 시작이니까.

"당신이 죽은 시점을 다시봐야할 거같아. 기억하든 아니든."

833 이름 없음 (FDlBsVaKgU)

2022-09-06 (FIRE!) 22:31:44

>>829

소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터넷 쇼핑이라는 타협안을 선생님도 별 다를 말 없이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남의 돈으로 사고 싶은 물건을 3개나 사야한다는 것은 여전히 큰 골칫덩이였지만, 적어도 사람과 사람을 만나 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큰 다행이었다. ‘………완전 휘말렸잖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고개를 세차게 저은 이유였다. 걸려들었단 듯한 선생님의 미소만 아니었다면 휘말렸단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잘못됐다고 한 적은 없는데요…. 그리고 전 대단한 사람 안 할 거에요.”

대단한 사람이 되리라 생각해본 적도 없고, 될 것 같지도 않았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나이가서, 이 선생님에게 계속 휘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유급은 하기 싫었지만, 지금 받은 과제 하나를 해결하면 분명 더 어렵고 까탈스러운 과제를 내줄게 빤하지 않은가. 사람을 피해다니는데는 도가 텄으니, 유달리 더 꼼꼼하게 피해다녀야할 한 사람이 생기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 순간, 이 타이밍에 쓰다듬을 받았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을 마주보는 걸 익숙히 했다면 피할 수 있었을텐데, 손이 머리 위에 내려앉아 온기가 느껴지면 고개를 움직일 수 없었다.

“저, 저, 저 강아지 아니에요…!”

낯선 행동에 더듬더듬 입을 열어보았지만 바보같은 소리만 나왔다. 선생님의 손이 떠나고 나면 이상한 기분에 쓰다듬당한 부분에 손을 올렸다. 머리 위에 두 손을 모두 올리고 멈춰있으니 기계가 오작동이라도 일으켜 멈춘 모양새와 꼭 같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손에서 느껴지던 온기가 머리 위에 고스란히 남은 것 같아서 배멀미라도 하는 것 같은 기분에 어쩔 수 없는 도리였다. 낯섦 위에 익숙함을 덮기 위해 우습더라도…

“…중국어 선생님 맞아요?”

아무래도 다른 과목 선생님 같았다. 윤리라던지, 진로라던지 과목은 많지 않나. 상냥한 미소에는 두드러기가 돋을 것 만큼이나 낯섦을 느낀다.

"저… 주문, 바로 할 수 있는데요…."

선생님의 카드를 지니고 싶지도 않았고, 사고 싶은 물건이라고 해도 남의 돈이니 가격을 높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반창고랑 연고로 두 개를 채우고, 마지막 하나는 대추야자로 하면 세개를 채울 수 있다. 사고 싶은 물건이라고 했지, 남에게 주지 말라고는 안 했지 않나. 남에게 주기 위하여 사고 싶을 수도 있는 것이다.

# 갱생욕ㅋㅋㅋㅋㅋㅋㅋ 소녀가 졸업하게 되면 스승의 날에 선생님한테 카네이션 매년마다 보낼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
# 교사관은 좋다고 생각하는걸! 장난기가 심하신 거 같긴 하지만? 소녀 나이 안 정했는데 고3이어도 띠동갑은 거뜬하겠다

834 이름 없음 (/AP1nfTmlg)

2022-09-06 (FIRE!) 22:58:09

>>833

/질문!! 여기서 잠깐 내가 생각한 초능력에 대한 이론이 나올거 같은데 그냥 내 식대로 언급해봐도 괜찮을까?

835 이름 없음 (zdRcBzrsjc)

2022-09-06 (FIRE!) 23:33:13

>>834 # 응 괜찮아! 평범한(?) 초능력 세계관이니까~!

836 이름 없음 (ygRoTu1rEs)

2022-09-06 (FIRE!) 23:36:30

>>835

//10분 안으로 가져오겠읍니다....
//사실 저런 과제가 나온것도 이 설명을 위한 복선이었다 카더라(?)

837 이름 없음 (ygRoTu1rEs)

2022-09-06 (FIRE!) 23:44:42

>>833

"真的, 我是汉语先生. 你信不信我的专业, 我是你们的汉语先生.(진짠데, 나 중국어 선생님이야. 니가 내 전공을 믿건 안믿건, 난 너희 중국어 선생님이다.)"

그의 입에서 유창하게 중국어가 튀어나온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려 보인뒤 가만히 그녀의 투정을 받았다. 강아지라기 보다는 상처 입은 고양이 같다고 하면, 분명히 볼을 부풀리지 않을까 라는 가벼운 생각을 떠올리며 그는 잠시간 까슬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재차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이런 단순한 쓰다듬에도 당황스러워 한다는 것은 그만큼 소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뜻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 순간, 그의 입으로 의문이 하나 던져졌다.

"대단하다는 기준이 뭐라고 생각하니?"

순간 멍해진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화두가 그의 입에서 던져진다.

"대단하다는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니란다. 내가 봤을때 모든 이들이 대단하거든, 매 순간순간마다 모든것에 힘쓰고, 모든 것에 고개를 돌리지 않은채 살아 가는 것도 대단한 것이고,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나아 올라갔을때도 그것은 대단하다고 할수 있어. 내가 아까 중국어 수행평가 점수를 한단계 더 높여준다고 한건, 그만큼 네가 스스로의 벽을 무의식중에나마 올라섰다는 반증이란다."

그는 그렇게 답하면서 그녀가 내민 물건의 리스트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렇게 보면서 천천히 그녀가 고른 리스트들을 바라보았다.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한 반창고와 연고, 그리고 지금 자신을 생각했다는 듯이 골라져있는 대추야자까지. 어쩌면 마음속 상처를 봉합하고 싶다는 무의식의 발현에 더불어 아직 가지고 있는 마음속 상냥함이 이러한 선택을 유도해낸 것이 아닐까.

"인간의 감각에는 오감과 의식이라고 생각 되어지는 육감이라는 것이 있지. 옛날 불교에서는 제 7의 감각, 말나식(末那識)이 있다고 했고, 이 말나식은 처음 언급되어진 오감과 육감을 제어하는 기능을 수행한단다. 하지만 이 말나식보다도 더 심층부에 존재하는 제 8의 감각이 있지, 그걸 우리는 아뢰야식(阿頼耶識)이라 부른단다. 아뢰야식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간의 심층기록보관소라 볼수 있겠지, 7감각인 말나식부터 모든 오감, 육감을 무의식중에 전부 담아내는, 그런 감각인 셈이지."

대학원생 박사 논문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를 갑자기 왜 꺼내는 것일까? 그러고서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정수리에 가만히 올려두고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까 지금 네가 수행한 과제와도 연관성이 깊단다. 이능력이 크게 발달한 사람들의 형태를 보자면 이 말나식이 크게 발달 되어 있음을 알수 있어. 실제로 히어로들 중에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이 많은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 하지만 이능력의 발달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네 무의식 속에 있는 네 스스로의 내재된 가능성이라 볼수 있단다."

그렇게 그가 다시 한번더 손바닥을 소녀의 머리에 얹고 가볍게 쓰다듬어 주면서 소녀를 마주한다. 자신감 없고, 이 움츠러든 소녀의 이능력이 지금 자신은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여지껏 봐온 이능력들은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따라, 마음먹기에 따라 스스로의 의지대로 변화를 시키고 또 성장시킬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넌 대단한 사람이 될꺼란다. 아니 이미 되었을지도 모르지. 교사로서 내가, 우리가, 이 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모두가 너의 편이라는 것을 떠올리렴."

//사실 거의 다 써두고 >>834 답변에서 반려 되었을때 예비 답나메도 적느라 시간이 더 걸린건 유머(...)
//?? : 어떻게 중국어 교사가 저런걸 알고 있는거죠?
소랑 : 아카데미 교사는 뭐 꽁으로 되는줄 아냐.... 그리고 이능력 교육 담당 교사가 외부 업무가 많아서 펑크 낸거 내가 대신 하느라 관련 논문 다 외웠다고

아앗.... 아....

838 이름 없음 (U2M5FXbWPY)

2022-09-07 (水) 21:21:24

"기어이 여기까지 왔구나. 그렇다면 그에 대한 경의를 표해서 이번에야말로 전력으로 상대해주마. 자. 덤벼라."

독수리처럼 매섭고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매서운 인상. 검은색 마스크가 부착되어있는 진한 검은색 갑옷. 그리고 보라색 번개가 튀고 있는 검까지. 그 사내는 온 몸으로 악한 전사라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바로 앞에 있는 전사 네 명과 치열하게 싸우는 사내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여러 기술을 사용하고 불꽃이 튀기며, 피가 튀고. 그야말로 그 모든 것이 사투 그 자체였다. 얼마나 싸움이 이어졌을까? 그 사내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었는지 숨을 헐떡이다 털썩 자리에 쓰러졌다.

"설마 이렇게까지 힘을 길렀을 줄이야. 내 패배다. 허나 이미 늦었어. 지금쯤 나의 주인은 모든 것을 끝내셨을테니까. 하하하하하!!"

그야말로 광기 어린 목소리를 내며 사내는 마침내 완전히 쓰러졌고 그 몸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돈과 회복약, 그리고 강렬하게 빛나는 검은색 갑옷이 나타났다. 이내 전사들은 그것을 줍기 시작했다.

-와! 드디어 나왔다!! 갑옷 아바타 ! 대박!
-오. 축하.
-그거 낄거임?
-진짜 운 좋네. 난 한 번만 더 돌래. 다음번엔 나올 것 같음
-나오겠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사들의 머리 위에 대화창이 떠오르긴 했으나 목소리가 들리진 않았다. 이내 전사들의 모습이 사라졌고 방금 전 희미해지면서 사라졌던 사내가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그곳에 등장했다.

-잠시 후, 다음 플레이어들의 입장이 있을 예정입니다. 준비해주세요.

"대체 이 갑옷이 뭐가 좋다고 이거 본딴 아바타를 얻겠다고 이 난리들인지 원."


온라인 게임 트리니티. 방대한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화려한 스킬 등으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그 게임에 나오는 NPC 캐릭터들은 오늘도 열심히 플레이어들이 활동하는 시간동안 계속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플레이어를 맞이하고 일했다. 어떤 이는 상점 NPC로, 어떤 이는 보스 캐릭터로, 어떤 이는 레이드 보스로. 또 어떤 이는 조력자로.

시간이 흘러 그 게임 속의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휴식타임이 돌아왔다. 현실세계는 인지하지 못하는 이 시간대가 되면 이 게임에서 일하고 있는 NPC 캐릭터들은 모두 퇴근하고 휴식을 취했다. 인간들의 시간 기준으로 만 하루의 시간 동안 그들은 NPC 캐릭터로서가 아니라 이 세계에서 근무하는 이들로서 생활했다. 쇼핑도 하고, 술집에서 술도 마시고, 산책도 하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진 제각각이었다.

그리고 사내는 한숨을 내쉬면서 술집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자리 잘못 잡은 것 같아. ...왜 인상 조금 매섭다고 마족의 수석기사 역할을 배정받냐고. 좋은 역할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한탄을 하면서 사내는 다시 술을 천천히 마셨다. 누군가가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사내는 이내 안주를 먹으면서 다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온라인 게임의 NPC 캐릭터들이 알고 보니 게임에 취업한 그 세계의 사람들이라는 설정이야. 지금은 다들 퇴근해서 자유시간 보내는 중! 어떤 캐릭터로 이어줘도 괜찮아!

839 이름 없음 (47xdKYFBSc)

2022-09-08 (거의 끝나감) 00:02:40

>>832인데
답레텀 나도 길어질거같아서 여기서 스탑할까?
마무리 못짓는거 아쉽긴한데 진행하면 엄청 내가 늘어뜨릴거 같아서

840 이름 없음 (/fOJG2h8Bs)

2022-09-08 (거의 끝나감) 08:24:22

>>839 아 나야말로 늦어져서 미안해 그럼 그렇게 하자

841 이름 없음 (IZPzxkFVdY)

2022-09-14 (水) 22:58:06

로덴버그 공작저의 연회장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루미에르 교단 성인들의 모습을 양각으로 조각한 천장의 샹들리에는 촛불은 물론 보석으로도 빛나고 있었고, 벽에도 월계수 관의 형태를 본뜬 황동 촛대가 일정 간격마다 달려 있어 거기 얹힌 촛불이 연회장을 대낮처럼 밝혀 주었다. 천장을 떠받치는 기둥은 위쪽에 아칸서스 잎이 정교한 솜씨로 새겨져 있었으며, 아이보리색 벽지의 무늬는 로덴버그 가의 상징인 수레국화 문양이었다. 한편 갖가지 음식과 술이 즐비한 테이블도 호화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상아색 테이블보의 가장자리에는 진주 레이스가 달려 있었고, 식기는 하나같이 은제였으며, 중간중간 놓인 은제 촛대는 크리스탈 바람막이로 장식되어 영롱하게 반짝였다. 이러한 연회장의 한쪽 구석에서는 악단이 한창 흥겨운 곡조의 음악을 연주했고, 테이블 사이의 널찍한 공간에서 내로라 하는 귀족들이 음악에 맞추어 한창 춤에 몰입해 있었다. 한껏 펼쳐졌다 휘돌다를 되풀이하는 귀부인들의 비단 드레스들은 활짝 만개한 꽃의 물결 같았고, 경쾌하면서도 일사불란한 신사들의 구둣발 소리는 또 다른 타악기의 연주를 연상시킬 지경이었다.

그 현란한 연회장에 로덴버그 공작의 양녀, 정확히는 먼 친척이었으나 부모를 여읜 뒤 로덴버그 공작의 슬하에 들게 된 마리안느도 있었다. 춤을 추거나 다른 이와 말을 섞지는 않았으나 자태만은 돋보이는 데가 있었다. 한 데 모아 뒤로 틀어올린 푸르스름한 은발은 그 수수한 모양이 삼색 제비꽃 묶음을 단 머리장식과 어우러져 청초한 분위기를 풍겼고, 뒷머리나 관자놀이에서는 돌돌 말린 고수머리 가닥이 달랑거려 발랄한 인상을 더했다. 라일락으로 물들인 듯한 청보랏빛 드레스는 가슴이 파인 형태라 일견 과감해 보이기도 했으나, 윗부분에 새하얀 레이스 소매가 달려 있어 백옥을 깎아 다듬은 듯한 그의 어깨와 팔이 드러난 듯 가려진 듯 은근한 맵시가 났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쌍꺼풀이 엷게 진 고운 눈매와 맑은 가을 하늘의 가장 짙은 한 자락을 담은 것처럼 선연하게 파란 눈망울과 매끈하다 못해 윤기가 감도는 새하얀 피부였다.

하지만 소박하면서도 화사한 차림새와 달리 마리안느의 심경은 착잡했다. 이 자리에 선 것이며 앞으로의 사교계 활동이 모두 귀족들에게 신부감으로 선보이기 위함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시골 귀족가의 일원에 불과했던 자신이 무려 공작가의 영애가 되어 호사를 누린 것은 순전히 로덴버그 공작이 혼사를 통해 유력 가문과 유대를 맺고자 한 덕이니 그에 불만을 품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소설에나 나오는, 상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 수 있는 소위 낭만적 사랑에 젖은 결혼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귀족과 결혼할 가능성이 생긴 것은 감사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의 입지는 무릇 결혼에 좌우되는 법인데 과거의 자기였다면 이 연회에 참석할 만한 귀족과는 일면식을 갖기도 어려웠을 테니까. 다만 귀부인에게 필요한 교양과 화술이 부족하고 춤도 젬병인 것이나 역사책이나 소설책에 파묻혀 지냈던 부모님 슬하에서의 세월을 생각하면 자신을 결혼 상대로 여겨 줄 귀족이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겉모습만이라면, 그리고 당분간이라면 오늘처럼 그럭저럭 꾸며 댈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그래도 입 다물고 얌전히 있는 게 최대한 나은 처신이라 묵묵히 있으려니 마리안느와 마찬가지로 춤을 추지 않는 귀족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사실 음악과 구둣발 소리에 묻히고도 남을 소리였지만 최근 가장 유명한 인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로수스 대전에서 적국의 포로가 될 뻔한 국왕 폐하를 필기단마로 구출해 내 국왕 폐하께 니르부르크 지역을 영지로 하사받은 후작의 얘기를 하는 모양이라 귀가 절로 솔깃했다.

“세상에! 그럼 전황을 뒤바꿔 버린 맹활약이 실은...?”

“그러합니다, 부인. 악마의 힘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이죠!”

마리안느는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의식하고도 표정을 가다듬지 못했다. 악마의 힘이라니, 다들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게 아닐까? 하기야 그 후작의 무용담이 소설의 일부래도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만큼 엄청나기는 하다만, 그래도 그렇지. 악마의 힘씩이나 되는 걸 손에 넣었다면 일개 후작, 대귀족이긴 하지만, 하여튼 그 정도의 작위에 만족했을까? 나라면 아예 나라를 하나 통째로 얻고 제국도 세우겠는데?

그런데 이의를 제기하자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아니, 할 말은 많은데 어떻게 해야 그 말을 귀족답게 고상하게 전할 수 있을지를 모르겠고 어쩐지 혀까지 꼬인 것 같다. 그 바람에 마리안느는 한동안 버벅거린 끝에야 목소리를 끌어낼 수 있었다. 그마저도 듣기에 따라서는 모기 소리처럼 애매하게 거슬릴 듯한 수준이었다.

“...저...저어..., 지금 하신 말씀, ...그러니까...진짠가요? 어, 어느 분이 보셨...어요?”

활기 있게 대화하던 귀족들이 대번에 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마리안느 스스로도 제 목소리가 어벙하게 느껴지고 말투며 표현도 귀족다운 화술과는 동떨어졌다 싶어 민망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공작 영애라는 지위 덕분인지 귀족들은 달갑잖은 기색이 역력한 와중에도 마리안느에게 아는 체를 해 보였다. 특히 악마의 힘 운운했던 신사는 두 팔을 펼치고 다리를 꼬더니 가볍게 목례하는 식으로 예를 표했다.

“이거 로덴버그 공작 영애 아니십니까? 제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미 파다한 소문입니다.”

파다한 소문, 그 말이 마리안느의 반발심을 자극했다. 부모님의 장례식 때도 그 소문이란 건 파다했었다. 아들 하나 없으니 리멜트 가문은 이제 문을 닫겠다느니 내외가 갑작스레 사망했는데 영애는 건강한 게 이상하다느니, 머리가 빙빙 돌고 귀가 먹먹한데도 그런 말들은 놀라우리만치 똑똑하게 들렸었다. 모르는 일에는 침묵해 주면 좋을 텐데, 간혹 사람들은 자기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혼동해서 모르는 일도 아는 양 떠들곤 한다, 넌덜머리나게도. 그때의 질척한 기분을 되씹는 듯한 불쾌감에 마리안느는 품위 있는 처신을 궁리하던 것도 잊고 말았다.

“어머! 믿을 뻔했는데, 그냥 소문이었나요? 그렇다면 이런 자리에서는 발설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네요.” 마리안느는 짐짓 과장된 동작으로 입을 가리는 시늉을 하고는 덧붙였다. “참말이 아니면 두 말 할 것도 없지만 만에 하나 참말이면 악마가 비밀을 발설한 귀공을 해코지할지도 모르니까요!”

신사의 표정이 노골적으로 썩어 가는 것이 시원했지만 한편으로는 혼사길에 스스로 대못을 박아 버린 것 같다는 불안이 커졌다. 이 신사 역시 이 연회에 참석할 정도의 귀족인 만큼 공작에게 마리안느의 결혼 상대로 저울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이를 대놓고 모욕한 이상 어떻게 해도 고상한 영애로 보이긴 어렵게 됐다. 공작가에 들 때도 양녀로 삼기엔 가문의 격이 안 맞는다느니 액운을 부를지도 모른다느니 하는 뒷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 일로 혼사가 막히면 어떻게 될까? 공작께서 필요 없다고 시골로 돌아가라 하실까? 이젠 아무도 남지 않은 그곳으로? 속이 점점 시끄러워졌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태연자약한 얼굴을 가장하며 서 있을 밖에.

842 이름 없음 (NFESzw4eEU)

2022-09-15 (거의 끝나감) 21:02:33

(사랑이 무어더라. 사랑이란 감정은 글로 읽어 배울 수 없으면서 많은 글이 지어지고, 노래가 되었으며 극이 되었다. 한 마디로 똑 부러져라 정의할 수 없는 그것이 사랑이라는데, 사랑의 모습은 너무 다양해 나의 사랑은 또 어떨지 해봐야만 알 것이란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고.) 벌써 은행 떨어진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던가, 어딜 가는 중이었던가. 아무튼 간에 길가를 거닐고 있었다. 옆에 네가 있다는 것만 빼고는 별 다를 것 없는 평소와 같은 거리였다. 사랑을 하는게 대수인가, 고백할 용기도 없는데. 가을 타면 외롭다더니, 가을이 오긴 온 모양이다. 그런데 사랑을 하면 봄이라더만 나는 지금 봄인가, 가을인가. 고민하던 차 길을 걷다가 스치는 손끝에 나는 그만 단풍물이 들고 오뉴월 장미가 필 것 같아 손을 움츠렸다.) 내일 비 온다던데. 은행 더 떨어지겠다. (나는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 시시콜콜한 말을 부질없이 건네었다.)

/ 나이는 딱히 안 정했는데 혹시라도 이어줄 참치가 필요할 것 같으면 마음대로 설정해도 오케이에요! 나이 차가 나도 되고, 이쪽의 감정을 눈치챘어도 되고 맞삽질이어도 되고 다 좋아요.

843 이름 없음 (CyETfksUFg)

2022-09-17 (파란날) 15:51:37

>>842
아, 그러게. 조심해야겠다. (은행은 가을에 보면 끝내 주고 열매도 맛난데 그 열매에서 나는 지독하게 썩은 변 같은 냄새만은 참아 주기 힘들다. 특히나 걸어가다가 무심결에 떨어진 걸 밟기라도 했다간 신발 밑창이 며칠은 구리구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불쾌했다. 당분간 가로수 근처를 지날 때는 바닥을 유심히 보고 다녀야겠다. 그래야 은행 열매를 안 밟지.) 비? 아, 귀찮네. (우산 챙기기도 귀찮고, 길은 질척해질 테고, 네 말대로 은행이 더 떨어진다면 피해 가느라 더 신경 써야겠지. 내일은 스터디도 있고 저녁 약속도 있어서 한참 걸어야 하는데 곤란하게 됐네. 일상이 성가셔질 걸 생각하니 떨떠름한 와중에 한마디 덧붙였다.) 내일은 외투 챙겨. 비 오면 추워진다.

844 이름 없음 (sDBRi8xjsU)

2022-09-18 (내일 월요일) 08:16:43

ㄱㅅ

845 이름 없음 (Unl07vMeA2)

2022-09-18 (내일 월요일) 09:02:36

>>843
(분명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말을 건네고 건네었고, 네가 답을 주면 평범하게 대화하는 체 하면 됐는데 그게 어렵다. 내 목소리가 다른 말을 소리내지 않게 조심해야 하고, 떨리는 것이 드러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이런 감정을 품기 전처럼 너를 바라다보고 나서 웃는다.) 벚꽃나무 같은 거였으면 좋았을텐데. (벚꽃, 예쁘잖아. 바닥에 떨어진 꽃잎도 예쁘고, 열매에서 냄새도 안 나고. 이런저런 이유를 덧붙이려다 말았다. 내 세상이 봄빛이라 분홍빛 꽃나무를 떠올린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응, 점심 때부터 내린다던데. (이제 무슨 말을 해야할 지 고르지 못하고 있다가 덧붙여온 한 마디에 입을 꼭 다물고 말았다. 누구한테나 할 수 있는, 나에게도 베풀어진 작은 상냥함 때문이다. 비 오면 추워지니 외투 챙기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 무엇이 설렌다고 나는 이러는가. 그러니 숨기기 위해 개구지게 웃으면서 장난같은 말을 건넨다.) 뭐야, 내가 세살짜리 애도 아니고. 내일 복장 검사하는 거야?

846 이름 없음 (vHnaTsjOiM)

2022-09-18 (내일 월요일) 09:33:01

그것이 눈을 떴을때는 태초의 대지만이 있었다.

거석의 몸체는 천천히 대지위에서 몸을 일으켰고, 그것은 마침내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거대한 팔을 들어올려 땅을 단단하게 다졌고, 넘치는 생명력으로 하여금 그 단단한 대지위에 많은 생명들이 뿌리를 내리게끔 하였으며, 황폐했던 땅으로는 생명이 다시금 녹빛으로 흘러넘치게 되었다. 죽음의 비─강산성의 비─가 더 이상 생명들을 해할수 없게끔 그는 스스로 대지에 자리잡은 죽음의 기운을 거석의 육체에 받아들여 생명이 번성케 하였고, 거석은 이 별 위에 다시금 생명이 태동하게끔 하였다.
그렇게 행동하기를 태양이 지고 내림을 30번째 반복하는 날, 마침내 거석은 수많은 생명들이 땅위에서 살아감을 느꼈다. 저 멀리 물의 육체를 가진 이 또한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자기와 같은 행동을 했다는 걸 느낌으로 안 것일까, 하지만 그─혹은 그녀─가 이미 일을 마치고 잠에 들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인지, 그는 천천히 머릿속으로 수많은 상념에 젖어들었다. 그렇게 다시 태양이 지고 달이 뜨는 것을 7번째 반복하고 나서야, 거석은 드디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이들에게 나란 존재는 필요 없다.]
[허나, 언젠가는....]

그렇게 결론이 내려지는 순간, 거석은 땅을 팠다. 거대한 몸뚱이를 숨기기 위해 몸을 웅크렸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능을 이용해 그 누구도 찾을수 없게, 운명의 순간,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대지를 열었던 위대한 거신은 거대한 산 아래로 자신의 몸을 숨기고는 대지 저 아래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시간이 흘러, 거신이 묻혔다는 전설이 깃든 산에, 아주 자그마한 동굴이 열렸다.

847 이름 없음 (J8LNL1bXok)

2022-09-19 (모두 수고..) 14:05:00

>>846
거신이 묻혔다는 전설로 유명해진 그 산에 생긴 작은 동굴은,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명소로 거듭났다. 인근 마을에서 그 동굴에 정성껏 마련한 음식으로 제물을 올리고 간절히 기원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온갖 음식이 담긴 바구니와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도 힘든 내색 없이 산을 오르는, 기골이 장대하고 어깨는 떡 벌어졌으며, 각진 턱에는 수염이 까끌까끌하게 난 사내 또한 그 소문을 듣고 동굴로 향하고 있었다.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제 부인의 순산을 빌기 위해서였다. 마을에서 떨어진 숲에 사는 사냥꾼도 이 동굴에 직접 잡은 사냥감을 바쳤더니 얼마 후 멧돼지를 잡았다 하고, 얼마 전 마을에 정착한 신혼부부도 정성껏 만든 파이를 바쳐 지금의 부인과 맺어졌다고 했다. 부인도 아이를 배고 있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그런 생각에, 사내는 가쁜 숨을 골라 가며 쉼 없이 산을 올랐다.

동굴에 다다르자, 그는 동굴 앞에 마련된 석제 제단 옆에 조심스럽게 짐을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리 체력이 좋다지만 험준한 산길을 많은 짐을 지고 오르는 건 조금 벅찼는지, 구릿빛 피부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휴식도 잠시, 사내는 털고 일어나 부지런히 제단 위에 음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싱싱하고 잘 익은 제철 과일과 채소, 갓 구워낸 빵, 그리고 오늘 아침 잡아, 신선한 핏빛이 가시지 않은 송아지 고기, 마지막으로 부인의 순산을 기원하며 직접 담근 과실주까지. 여러 종류의 정성이 들어간 음식들이 제단에 가득 차려졌다. 준비를 마치고, 남자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두 손을 모으고 나지막이 기도 하기 시작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거신이시여, 부족하나마 정성껏 준비한 제물이오니 어여삐 보아주시고, 부디 우리 부부에게, 우리 집안을 대를 이을 씩씩하고 총명한 딸아이를 보내주소서. 우리 부인 많이 아프지 않게 순산하고, 해산하고도 무사히 털고 일어나도록 보우해주소서."

사내가 조금은 무리해서, 많은 제물을 짊어지고 산을 오른 것은, 단 하나도 양보키 힘든 여러 소원 때문이었다. 가문을 이어가려면 건강하고 총명한 딸아이가 태어나야 했지만,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도 중한 것은 부인이었다. 만에 하나 난산이라도 겪어 저로서는 상상도 못 할 고통을 겪고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두려운 일이었다. 부인을 보노라면 자신이 대신 아프고 싶을 만큼 안쓰러웠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제물들이 부족함이 없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원하고, 부인의 곁으로 돌아가 수발을 드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사내는 중천에 올랐던 해가 저물어가도록, 꿇은 두 다리가 어느새 저릿하도록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쉼 없이 기도했다.

848 이름 없음 (PzoHb1vf9E)

2022-09-29 (거의 끝나감) 18:28:55

-어여쁜 나의 아이.... 이 아이좀 봐 나를 꼭 닮았어.
그날의 밖의 차가운 온도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 건조한 공기 병원 소독약 냄새 기쁨에 찬 너의 목소리 모든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선명해진다 다만 내가 그날 무슨 얼굴을 하였는지 오직 그것만 제외하고



"졸업 축하한다"

무뚝뚝한 목소리 앞으로 어울리지 않는 꽃다발이 건내진다. 과하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파스텔톤의 꽃다발
졸업시즌의 학교앞 간판대에서 팔리는 알록달록한 색감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평소 추위를 싫어함에도 일부로 개인 꽃집까지 새벽걸음으로 달려나갔을 그의 모습이 작은 꽃들 사이에 언뜻 비쳐보이는것같았다

"...그래... 앞으로 뭘 할지는 정했니?"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이런 날까지 말이 없는것이 그 답다고 해야할까 괜히 친척 어른이나 할법한 낡아빠진 질문을 하며 서로의 시간을 죽인다.
이렇게 어색하게 굴꺼면 오지나말지 싶지만 어쩌면 이게 그가 표현할수있는 가장 큰 다정의 표현인것이다.

"아 친구들이랑 약속있니? 없으면 저녁이라도 하러갈까하는데"

/죽은 친구의 자식과 그 친구를 좋아하던 나 라는 관계야
딱히 자식쪽을 사랑하는건 아닌데 그냥 같이 있으면 좋았던 옛시절도 떠오르고 친구한테 감정적으로 빚진것도 있는데 그만큼 못해준것같아 자식한테라도 잘해주고싶고 여러모로 과거에 매여있는 사람이 보고싶었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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