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306068> 자유 상황극 스레 3 :: 955

이름 없음

2021-09-13 08:11:25 - 2022-12-01 17:17:01

0 이름 없음 (wSjOpuFcMU)

2021-09-13 (모두 수고..) 08:11:25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905 이름 없음 (r7v3GLx0og)

2022-11-06 (내일 월요일) 23:00:42

>>904 아니, 싫어. 하지 마. (수줍어하다 못해 횡설수설하기 시작한 상대방과는 대조적으로, 싸늘하리 만치 단호한 목소리가 딱 잘라내듯 튀어나갔다.) 네가 지금 얼마나 무례한 요구를 했는지 모르나본데, 네 감정은 네가 알아서 판단해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내가 왜 불쾌감을 감수해가면서 확인을 시켜줘야 해? 모른 척해도 된다고 말하면 다야? 나는 네가 뽀뽀해도 되냐는 소릴 내뱉은 순간 이미 모욕감과 이 관계에 대한 환멸을 느꼈어. 나를 최소한 너랑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그런 요구를 받았을 때 내가 어떻게 느낄 지 정도는 생각해 봤어야하는 거 아냐? 내가 널 모른 척하고 말고를 네가 허락할 수 있는 일인 양 생색 내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어느새 높아진 목소리에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었다. 진정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이런 모멸감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기에 좀처럼 흥분이 식지가 않았고, 울고 싶지 않은데도 눈이 뜨거워졌다. 소매로 거칠게 눈가를 훔치고, 가까스로 낮춘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다고 치자. 해서 네 감정이 연애감정이면 어쩔거고 아니면 어쩔건데? 나를 네 감정 파악의 수단으로 삼는 게 무책임하다는 생각은 안 해 봤니? 좋아한다면서 그 상대를 도구 삼을 생각이 들어? (손까지 바르르 떨리는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한 손으로 반대편 손목을 꾹 붙들었다.) 지금 니가 한 말은 니가 날 좋아하기는커녕 동등한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았다는 인증이야. 그러니 확인해 볼 필요 따위 없겠네. 싫어. (흥분을 겨우 누른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내뱉으며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한 때 친구라고 생각했던 상대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잘 기억도 안 나던 시절부터 어울렸던 시간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이런 녀석인 줄 알았으면 어려서부터 어울리지도 않았을 텐데.)

906 이름 없음 (LyzLArxBRA)

2022-11-06 (내일 월요일) 23:18:49

>>904
(너의 말에 당황스러운 듯 머리를 매만진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이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말을 고르듯 입술을 달싹인다.) 후회 안 하겠어? ( 조심스럽게 꺼낸 말은 널 걱정하는 듯한 어조였다. 자기 자신보다도 오랫동안 봐온 자신의 소꿉친구를 걱정하는 목소리. ) 괜찮아. 네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으면 해봐. (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곤 쓰디 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이어간다. ) 이거 진짜 기분 이상한데.. ( 복숭아처럼 물든 귀를 한 체 조심스럽게 널 바라본다. )

907 이름 없음 (l.3QU/n8VY)

2022-11-07 (모두 수고..) 22:16:27

>>903 물음에 대답하기는커녕 숨 한 번 돌리지 못하고 매달리는 딸아이를 붙들면서 현규는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관절 무슨 일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시험이었으나 수능처럼 중요한 시험도 아니고 학기마다 치르는 시험 좀 망쳤다고 이렇게까지 오열할 리는 없었다. 학교 선배나 동급생이 집단으로 괴롭히는 혼자서 대응하기 버거운 일이라도 겪은 것인가 생각해 봤으나 다친 데가 없는 듯하고 옷매무새도 말끔한 편이라 물리적 폭력을 당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언어적 폭력일 가능성이 높은데 딸아이가 이럴 정도면 나중에 차근차근 떠올릴 수나 있을지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도록 할 때 힘들어하지나 않을지가 걱정이었다. 위로든 격려든 법적 조치이든 딸아이에게 필요한 건 뭐든 할 테지만 혹시라도 법적 조치가 필요한 문제라면 증거 확보가 특히나 중요하니까. 녹음이라도 해 놓았다면 좋으련만 핸드폰에 녹음 앱 정도는 있을 법도 하다만, 돌발 상황에선 그런 조치까지 해 내기는 어려우니 과연 어떨지?

그렇게 생각이 많아졌으나 당장은 딸아이를 다독이는 것이 급선무라 연신 등을 쓸어내리고 토닥이며 아빠 여깄다느니 괜찮다는 소리를 되풀이했다. 그러고도 한참을 진정하지 못하고 울던 딸아이라 처음 울음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할 때는 탈진하지나 않았나 덜컥 겁이 날 지경이었다. 진이 빠지도록 울어서인지 미열이 오른 것도 같아서 더 불안했지만 다행히도 열이 더 오르지는 않았고 훌쩍이는 가운데에도 숨도 고른 편이었다. 그런 가운데 딸아이는 서서히 마음을 놓은 듯 기대 오더니 누가 간질여도 모르게 푹 잠이 들었다.

그제야 현규는 딸아이를 제 방에 데려다 침대에 눕히고 찬 공기가 들지 않도록 이불로 꼼꼼히 감싼 뒤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파베 초콜릿을 만들고자 일을 벌였던 여파로 재료는 섞이다 만 채로 굳은 몰골이고 주걱이며 용기도 엉망진창이었으나 그걸 수습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딸아이를 여기까지 데려와 준 것도 모자라 어색하고 난감할 상황인데도 여태 기다려 준 딸아이의 친구에게 뭐라도 대접하는 게 우선이었다. 별로 안면도 없는 남자 어른과 단둘이 한 자리에 있는 게 기꺼울 리는 없으니 고맙다고 용돈을 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나 지금의 현규로서는 딸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친구에게라도 듣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제삼자라면 제삼자인 딸아이의 친구에게 물어면 딸아이가 서운해할 수도 있고 친구가 거북해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현규는 겸연쩍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로 딸아이의 친구에게 말을 건넸다.

“미안하다. 시간을 뺏었구나. 마실 건 뭐가 좋겠니? 차? 주스? 커피?”


/혜서가 울다가 아빠 품에서 잠든 상황이라고 알려 주셔서 그에 맞추어 서술하고자 했습니다. 일방적인 상황 제시라고 느끼기보다는 제가 이어 나갈 수 있게끔 정보를 제공해 주신 걸로 보였으니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먼저 친밀감 있는 주 양육자에게 할 법한 행동은 ok라고 말씀 드리기도 했고요. 오히려 현규의 대처가 아빠로서나 손님 맞는 아재로서나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걸리는 부분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908 이름 없음 (lxfE5F4Kak)

2022-11-08 (FIRE!) 13:08:20

>>907 조금 기다리고 있자니, 울다 지쳐 잠이 든 혜서를 안아들고 방으로 향하는 현규의 모습이 윤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역시 완전히 기절했네. 나한테는 괜찮으니 영화 보러 가자던가, 주스라도 마시고 가라던가 그랬으면서. 많이 무리했구나. 괜찮은 척 무리하려고 들던 그 심정을 모르지 않아 안쓰럽고 착잡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침 집에 혜서의 아버지가 계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윤아는 현규가 혜서를 침대에 눕히는 동안 낮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혜서는 알고 지내기 시작했었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와 사이가 좋다고 이야기했기에, 이야기해서 소용이 없거나 오히려 혜서가 힘들어질 걱정은 덜었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다행히 중간부터나마 녹음을 따놓긴 했다지만, 녹음이 안 된 부분이나 그런 것도 조리있게 설명해야지 혜서한테 도움이 될 텐데, 힘들어하는 혜서의 앞에서는 애써 냉정을 유지했지만 어지러운 머릿속이 영 가라앉지를 않았다. 무릎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평정을 찾고 있자니, 어느새 현규가 다가와 말을 건네자, 손을 멈춘 윤아는 시간을 뺏어 미안하다는 말에 고개를 내젓고 대답했다.

"아니에요, 저도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서요. ...주스로 부탁드릴게요."

용건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안 그래도 경황이 없을 것이 뻔한 데도 손님맞이를 하도록 한 게 죄송해서 음료는 사양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윤아의 생각을 바꾼 것은, 황망한 와중에도 자신을 손님으로서 신경써서 대접하려는 현규의 태도였다. 사양하는 편이 더 무안할 수도 있을 것 같거니와, 준비하는데 손이 가는 차나 커피에 비해 손이 덜 갈 수도 있다는 계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은 차갑고 단 걸 마셔서라도 머릿속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급하게 말씀드리면 더 횡설수설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아니, 확실히 그럴 것 같으니까. 최대한 침착해지자. 이런 상황일 수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혜서를 위해서라도.

/그건 다행이네요! 저는 현규가 돌발상황에서 혼란스러운 나머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딸래미가 당장 가장 필요한 조치를 해주면서, 머릿속으로는 무슨 일인지 걱정도 하고, 적극적으로 딸을 도와주려고 이것저것 생각하는 게 지문에서 드러난 게 좋았고, 또 손님 맞는 아재로서는 윤아가 느낄 수 있는 불편이나 부담을 고려하면서 행동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간만에 보는 제대로 된 어른 느낌이 나는 아재캐라 오히려 만족스럽네요😆 현규주님도 혹시 걸리는 부분이나, 윤아나 혜서의 행동에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으시면 편히 말씀해주세요! (애들이 탈탈 털린 이유는 곧? 한두턴 내에 나올 것 같습니다😆)

909 이름 없음 (oBxKF.c5L2)

2022-11-08 (FIRE!) 16:27:03

궁녀는 사당에 들기 무섭게 빗자루로 사당의 먼지를 서둘러 쓸어 내고 곳곳에 앉은 더께를 닦아 내고는 황후의 신위 앞에 향을 피웠다. 생전에 회임을 못 했는데도 후궁은 고사하고 승은을 받은 궁녀조차 단 한 명도 없었을 만큼 성총을 한 몸에 받으신 황후이시건만 승하하시기 무섭게 이 자그마한 사당에 놓인 신위 말고는 존재가 아예 잊힌 것마냥 취급되어 왔다. 황제께서 승하한 황후에 대해 거론하는 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자리에서 참하겠노라 공언하셨던 탓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라 황태자로 책봉되었던 본인의 친형을 숙청하고서 등극하신 이래 주요 공신들까지 남김없이 토사구팽하며 황권을 공고히 구축하신 황제께서 내리신 명이니 누가 감히 거스를까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황후께 쏟으신 지극한 총애를 생각하면 국상을 대대적으로 치르는 것은 물론 능묘의 규모며 부장품도 전례 없을 수준으로 조성할 법한데 그런 명은 일절 없는 것이 꼭 황후께서 승하하셨다는 사실을 아예 지우려는 것 같았다. 실제로 황후께서 생전에 기거하셨던 곤원궁(坤元宫)은 무엇 하나 정리되지 않았고 그곳에 소속된 궁녀와 태감들도 그대로 소임을 보는 중이다. 황제께서 여전히 어느 여인에게도 눈길 한 번 두지 않으시는 것은 물론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대소신료들이 황후 책봉을 간하고도 남을 것이나 황제의 권력이 워낙 지엄한 데에다 황실에 태후 같은 어른도 아니 계시다 보니 몇 년이 지나도록 다들 쉬쉬하며 눈치만 보는 실정이었다.

그러니까 이 사당을 모른 체하시는 것도 황후께서 승하하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셔서렸다? 사당에 향을 피운 궁녀는 입속말로 중얼거린 뒤 황후의 영정에 무릎 꿇고 예를 올렸다. 영정으로 봐도 넋이 나갈 것 같은 그야말로 경국지색의 미인이라 그 옛날 서시나 왕소군의 미모가 저랬을까 싶었다. 더구나 생전의 행적도 과거 폐태자와 혼약을 맺었다는 점과 회임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흠을 잡으려야 잡을 수가 없이 완벽하셨다고 들었다. 백성들의 곤궁한 사정을 헤아려 후궁의 지출을 줄이고 검약할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몸소 실천하시는 것은 물론, 궁녀와 태감들의 사정도 하나하나 살뜰히 살펴주셨고, 황제께서 대소신료들에게 노하거나 대소신료들이 황제의 뜻과 맞서는 경우가 생기면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중재도 하셨단다. 실로 만인에게 귀감이 되었대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지신 국모셨으니 황제께서 승하하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몇 년간 잔잔한 듯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진 여파로 쥐가 퍼트리는지 새가 퍼트리는지 모를 뒷소문도 은연중에 나돌았다. 황제께서 친형인 폐태자를 죽여 없앤 것은 황후가 폐태자와의 혼담을 진전시키기 위해 황제께 이별을 고했기 때문이라느니, 황제께서 황후를 책봉하신 것은 공신들이 전 황태자와의 혼약을 명분으로 들고일어나 반대하면 그걸 구실 삼아 공신들을 숙청하기 위해서였다느니, 황후께서 성총을 한 몸에 받으시면서도 회임은 못하셨던 까닭이 실은 황제께서 매일같이 황후를 압박하면서 소생을 갖지 못하도록 손을 써 오셨던 탓이라느니, 황후께서 꽃다운 보령에 그토록 허무하게 승하하신 연유가 황제의 분노를 풀 길이 없다 보니 마음의 병이 깊어지셔서라느니, 이러한 뒷이야기는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처세에는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다. 특히나 황제께서 불시에 사당에 걸음하시는 요즘 같은 때에는 더더욱. 황제께서 걸음하시기 전에 제대로 정리해 놓지 않으면 사당 관리에 소홀했다고 진노하실지도 모르니 할 거 다 했으면 부리나케 튀는 게 상책이다.

/황제와 황후의 파란만장 애증점철 러브스토리가 나오길 바래서 올려봐 황제피셜로 풀어줘도 좋고 궁 사정에 빠삭한 선배 궁녀나 태감이 풀어줘도 좋고 꼭 황제 황후 스토리가 아니라도 좋은데 일 잘못했다고 이 궁녀 혼내거나 목을 치지는 말아줘

910 이름 없음 (ssh6Pk45Jo)

2022-11-08 (FIRE!) 21:57:26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다 당신의 질문에 입을 연다.) 아뇨, 그게…신기해서요. 모험가 님은 항상 아무렇지도 않게 흉흉한 던전들을 다녀오시고, 대륙 이곳저곳을 탐험하시고, 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오셔서 이야기해주시는 모습을 보니……동경심이 들었어요. (작은 마을이 한 눈에 들여다보이는 언덕 위, 노을을 향해 고개를 든다.) 저도 언젠가 이 마을을 나설 날이 올까요? 모험가 님처럼 멋진 모험을 해보고 싶어요. (당신을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게임 속 태초마을 NPC~ 무슨 NPC인지는 아직 안정했어! 맥커터 사절~

911 이름 없음 (cG1yKaN2Yg)

2022-11-08 (FIRE!) 23:11:38

>>908 딸아이의 친구가 주스를 고르자 현규는 냉장고에서 패션후르츠 착즙 주스를 꺼냈다가 손님 대접을 주스만으로 그치기는 민망하다는 생각에 멈칫했다. 곁들일 만한 음식이 뭐가 있더라? 최근 건강 관리를 하기로 마음먹은지라 과자는 사 둔 게 없고 사과나 감 같은 과일을 깎아 내자니 그렇잖아도 거실에서 어색하게 있었을 딸아이의 친구를 더 기다리게 하는 꼴이라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찬장에 둔 믹스너트 제품이 떠올라 접시에 한가득 담고 패션후르츠 착즙 주스도 두 잔 따른 뒤 각 잔에 얼음을 넣었다. 그러나 막상 준비한 것을 거실로 나르려니 딸아이의 친구에게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알레르기에 생각이 미치고 나니 패션후르츠가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하지는 않나 우려되어 핸드폰으로 검색해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패션후르츠 알레르기도 있다. 난감하네. 당장 오늘 일부터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손님 대접이 참 쉽지가 않다. 현규는 저도 모르게 끙 하고 침음을 뱉었다가 주스와 견과를 둔 쟁반을 든 채로 뒷머리를 북북 긁었다.

“무심코 내다가 미처 생각을 못 했구나. 혹시 견과류나 패션후르츠에 알레르기는 없니?”


/혜서랑 윤아가 얼마나 심각한 일을 겪었기에 한쪽은 울다 탈진하고 한쪽은 비상사태라는지 얼른 알고 싶은데 쓰다 보니 자꾸 딜레이가 되네요. 이번에는 분량도 얼마 안 되고; 쓰는 사람이 디게 소심한가 보다고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912 이름 없음 (lVhp0Pt5Tk)

2022-11-09 (水) 00:02:16

>>911 아이고 저는 오히려 지문에서 현규의 건실하고 세심한 면이 드러나서 좋았어요. 그리고 분량에 대해서는 미리 말씀드렸듯 전혀 개의치 않으니까 편히 이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쓸 말이 많을 땐 길게 써도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굳이 길게 안 써도 된다는 주의라서요.

아, 그리고 다름이 아니라 저도 이번 턴에 윤아가 이실직고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은데, 제 차례에서 현규를 앉혀도 될까요? 윤아가 알레르기는 없다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현규가 앉고, 윤아가 털어놓는 식으로 가려고 합니다:)

913 이름 없음 (XXQGQ3viFQ)

2022-11-09 (水) 00:28:59

>>912 아아, 그렇게 이을 수도 있군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빨리 나온다면 오히려 저는 좋습니다. 윤아가 알레르기는 없다고 하면 현규는 준비한 걸 내놓은 뒤에 데면데면한 어른과 단둘이 마주하기가 편치 않을 거라는 점 안다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리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대접한다 정도로 윤아에게 양해를 구하는 발언을 한 뒤에 혜서에게도 나중에 물을 테지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가 아는 만큼 얘기해 줄 수 있겠냐고 청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도 반영해서 이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914 이름 없음 (lVhp0Pt5Tk)

2022-11-09 (水) 00:42:31

>>913 마침 어떻게 연결해야 자연스러울 지 고민중이었는데 알려주시니 더 편해질 것 같네요. 그럼 말씀해주신 내용 반영해서 이어오겠습니다:)!

915 이름 없음 (/B61/8YkKk)

2022-11-09 (水) 16:57:46

>>911 "네, 없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에 하나 있었으면 서로 민망할 뻔 했겠다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혜서가 아버지와 사이가 좋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윤아는 현규가 쟁반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자,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라는 인사와 함께 두 손으로 잔을 들었다. 주스를 한 모금 삼키자, 새콤달콤한 맛과 차가운 온도에 머릿속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제 말씀드릴 준비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잔을 내려놓으려니, 현규가 퍽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을 꺼냈다.

"데면데면한 어른과 단둘이 마주하기가 편치 않을 거라는 점 안다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리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대접하게 됐단다. 혜서에게도 나중에 물을 테지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가 아는 만큼 얘기해 줄 수 있겠니?"
"네, 저도 빨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서요."

잔을 내려놓고 경청하던 윤아는 현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뒤, 주스를 한모금 넘기고 입을 열었다.

"혜서랑 영화 보러 가는 길에, 혜서 어머님의 친구분...이시라는 아저씨하고 마주쳤어요. 표정이 안 좋아보여서 좋은 이야기 하시려는 것 같지는 않았기도 하고, 혜서도 불편해보여서 영화시간 핑계 대고 벗어나려고 했는데, 그 아저씨가 혜서를 불러세우시더니..... 음..."

최대한 간결하면서도 조리있게 설명하고자 또박또박 이야기하던 윤아는 착잡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다, "잠시만요."하고 양해를 구하고는 잔을 내려놓고 옆에 내려놓았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뮤직 플레이어 앱을 켜고, 녹음파일을 재생하니, 핸드폰의 스피커로 희미하게 울음기가 섞인 듯 떨리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 빛나는 순간이었단다. 네 엄마는...내게 온기를 주는 유일한 사람이었어... 그걸 내 영혼이 기억하는 한, 네 마음을 받아 줄 수는 없겠구나. 그러고 싶어도, 내 염치가, 마음이, 도저히 그렇게 되지를 않는구나. 미안하다, 혜서야...'

말이 끊기고 그 중년남성의 것인 듯한 약간의 훌쩍임이 이어졌다. 몇 초의 공백 뒤,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직은 이해할 수 없겠지. 넌 어리니까... 하지만, 하지만 언젠가는 알아주리라 믿는다. 널 사랑할 수는 없어도 나는...'

울먹이며 횡설수설 이어지는 목소리를, 딱딱하게 굳은 앳된 목소리가 딱 잘라냈다. 녹음되면서 톤이 달라졌지만, 윤아의 목소리와 억양이었다.

'늦겠다. 저희 이만 갈게요. 가자, 혜서야.'
'으, 응...'

넋이 나간 듯한 혜서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다급한 발소리에 작은 소리로 혜서를 부르는 소리가 섞여 들리다, 이내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게 되자, 윤아는 어느새 꾹 누르고 있던 미간에서 가까스로 손을 떼고 재생정지 버튼을 눌렀다.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녹음된 것을 들으니 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껏 친구로 지내면서, 혜서에게서 엄마 친구라는 그 아저씨에게 고백했다거나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은 커녕, 그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별로 없었다. 그 아저씨에 대한 언급은 졸업식 날 밤에 했던 통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그 마저도 진로 계획 질문이나 단둘이 식사하자는 제안은 참 난감했다거나, 그래도 바쁘실 텐데 축하해주러 와주신 건 감사하긴 한데, 설명하긴 어렵지만 묘하게 대하기 불편했어서 아빠한테 솔직히 이야기했다는 말 정도였다. 그 아저씨가 한 망상대로라면, 혜서가 단둘이 식사하기를 난감해하고 불편하다고 나 뿐만 아니라 자기 아버지한테까지 이야기를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가 않았다.

/그리고 분량이 또 폭주... ㅋㅋㅋ 적다보니, 현규같은 아버지라면 혜서가 돌아가신 엄마 친구분께 이런 생각이 드는게 내가 나쁜 건가 싶으면서도 솔직히 털어놨을 것 같아서 설정을 추가했는데, 고쳤으면 하신 부분이 있으시면 편히 말씀해주세요:)

916 이름 없음 (h9x7JBQoNE)

2022-11-10 (거의 끝나감) 08:43:11

툭. 건넨다기보다는 당신의 앞 책상에 던져진 빼빼로. 다들 하교한다고 교실을 채우던 소리들이 떠난지 오래라서, 툭 하는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려왔다. 물론 던지고 싶어서 던진 것은 아니었다. '어제 열심히 만들었는데! 다 박살난 거 아냐? 떨려 죽겠네 진짜!' 긴장하고 긴장한 탓에 손이 떨려와서 떨어트린 것이었다. 그만큼이나 긴장은 충분히 하고 있었고 머릿속도 충분히 어지럽지만, 머릿속이 더 어지러워지다 못 해 새하얗게 변해버릴 사실은 한 가지 더 남아있었다. 오늘은 빼빼로데이가 아니란 것. 빼빼로데이의 하루 전 날이다. 11월 10일, 빼빼로데이까지는 하루가 모자랐다. 날짜를 헷갈린지도 모르고 어제 열심히 빼빼로를 만들었던 흔적은 빼빼로가 사라진 손 끝에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남아있었다.

"먹든가. 아니면 버려."

'아니야! 먹어줘! 맛있었으면 좋겠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말아버리는 자신을 원망했다. 굳어버린 표정까지 더해져 확실하게 오해사기 쉬운 모습이란 걸 알았다면, 직접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물함이라던지 책상 서랍 앞에 넣어뒀을텐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속으로 되뇌였다. 이 고백은 실패다. 빨리 이 곳을 벗어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뒷문 잠궜으니까 앞문으로 가고."

/ 빼빼로데이 전 날의 방과후 교실이에요 :3 상대 쪽에서 이쪽 캐릭터가 좋아하고 있단 사실을 알아도 몰라도 상관없어요~! 너무 긴장해서 주려던 캐가 아니라 다른 캐란 것도 못 알아보고 줬다고 해도 오케이! 맥커터만 사절입니다 :D

917 이름 없음 (N9PrfR4nQ6)

2022-11-10 (거의 끝나감) 11:14:43

>>916
가방을 막 챙기고 일어서려는 때에 책상에 빼빼로가 다소 거칠게 던져지자 연재는 빼빼로와 그것을 놓은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같은 반이긴 해도 연재와 함께 어울린 적은 손에 꼽아서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웬 빼빼로? 빼빼로데이는 내일인데.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이 친구가 역시나 같은 반이자 연재의 일란성 쌍둥이인 연우와 종종 어울린다는 사실을 상기하자마자 의문은 가셨다.

“나 연우 아니고 연잰데.”

뻘쭘한 나머지 친구의 눈길을 피하다 보니 그 친구 손이 반창고투성이인게 눈에 띄었다.

“다쳤냐? 아프겠네.”

918 이름 없음 (oBvyULYXqw)

2022-11-10 (거의 끝나감) 11:53:08

>>917

거짓말은 곤란스러운 상황에서 빠져나가고자 할 때 제일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지만,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됐다.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또 거짓말을 하다보면 더 이상 걷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나도 알아! 안다고! 하지만 여기서 뭘 할 수 있는데!' 차마 좋아하는 아이조차 헷갈렸다는 진실을 스스로 수긍할 수가 없었다. 아니, 스스로는 수긍한다 쳐도 연재에게도 그렇다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이건 실수니까 연우에게는 비밀로 해달라 하지도 못 하겠다. 그러다 모든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뻔뻔하고 어이없는 거짓말이 한 마디 나와버린다.

"너 준 거 맞아."

물 한 컵도 아니고, 한 바가지. 아니다, 한 대야를 거하게 쏟아버렸다. 쏟아버린 물과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그래도 원래부터 빼빼로의 주인이 연재였다고 하면 모든게 해결될 것이다. '나만 빼고!'

"별로. 그냥 조금 베인 건데."

'걱정해줘서 고마워, 고마운데…!' 이 와중에 아픈게 신경쓰일 리가 없었다. 손을 뒤로 감추었다. '진짜 쪽팔려~! 학교 어떻게 다니냐고! 미쳤어미쳤어… 연우도 연재도 이제 어떻게 봐! 반 바꿀래… 자퇴할래…' 손 끝 아린 감각이 느껴질 정도라면 긴장에 떨어 빼빼로를 잘못 주지도 않았겠다. 그나마 빼빼로데이가 11월이라서, 한달에서 두달 남짓하는 기간동안 뻔뻔하게 모른 척 하면 방학이라는 것이 참으로 다행으로 와 닿았다.

919 이름 없음 (Sdl3jTlT2k)

2022-11-10 (거의 끝나감) 18:39:23

>>915 별로 안 친한 아저씨가 고백이라도 받았던 것처럼 찾아와서 거절한 거군요. 순전히 저쪽 착각이다 보니 정상으로 안 보이고 둘이라도 성인 남성을 힘으로 당하기는 어려울 수 있으니 무서울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848, 850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셨고 혜서를 찾아온 남자의 상황이 848의 캐와 유사해 보이는 점이 걸립니다. 915에 제시된 상황이 848의 캐를 미친 사람으로 간주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 내용을 전개해도 괜찮을까요?

920 이름 없음 (SrxquQB7/6)

2022-11-10 (거의 끝나감) 20:33:59

>>919
848에 자식 쪽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좋았던 옛 시절이 떠올라서 당사자한테 해 주고 싶었던 걸 자식한테 해 주려고 하는 과거에 매인 캐라고 명시되어 있었고, 어색한 사이인 친척처럼 진로 관련 질문을 하고 데면데면한 사이에 둘이서 밥을 먹자고 제안하는 모습에서,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고 연소자가 느낄 수 있는 불편감을 고려하지 않는 연장자 캐가 떠올라서 제가 구상한 서사에 반영했습니다.

아이의 양육자를 사랑하던 이가 양육자 사망 이후 그를 닮은 아이에게 옛 사랑을 겹쳐 본 끝에 아이와 썸을 타는 것 같은 클리셰도 연상이 되다 보니, 혜서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착각하고 거절하는 전개를 넣었고요.

848 850에서 영감을 얻긴 했지만 그 캐들을 그대로 차용한 건 아니고 각 레스에 드러난 캐의 속성 일부에 착안해 재창작한 것이라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규주님께서 원전의 캐가 마음에 걸리신다면 더 잇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921 이름 없음 (UPB86dBPSU)

2022-11-11 (불탄다..!) 17:58:17

>>920 말씀대로 과거에 집착한 나머지 비상식적으로 행동하는 어른 캐의 모티브가 될 여지가 있는 요소가 848, 850에 드러나기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현재까지 전개된 상황상 현규가 915의 남자에게 호의적이거나 동정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내용을 서술할 경우 다른 사람이 만든 캐를 디스하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서 이 이상 잇기는 어렵겠네요. 끝까지 이어 가지 못해 유감입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922 이름 없음 (Qsn.TcL2wQ)

2022-11-17 (거의 끝나감) 02:00:19

>>909 그 때, 나지막이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쏴 하는 소리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졌다. 소나기 치고는 퍽 거센 빗발이 매섭게 땅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당 안에도 요란히 들이쳤다. 그런 요란한 빗소리 사이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물에 젖은 듯한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 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봉두난발로 풀어헤쳤지만 물기로 인해 착 가라앉은 청현색의 긴 머리칼, 한 마리의 굳건한 용과 같이 장대한 기골, 풀어헤쳐진 앞섭 사이로 드러난 조밀하게 짜인 근육과 그 위로 새겨진 수많은 상흔, 서방에서 들여온 포도주같기도, 또는 핏빛같기도 한 짙은 적색의 형형한 눈동자. 비록 흐트러지고 비에 젖은 몰골을 하고 있지만, 궁인이라면 누구나 그가 이 나라의 황제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으리라. 황제는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황후의 영정 앞으로 나아가더니, 이내 그 앞에 털썩 앉았다. 체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흠뻑 젖은 소복을 대충 걸친 몰골의 황제에게서는 비릿한 비 내음에 묻히지 않을 정도로 독한 주향(酒香)이 풍겼다. 먼저 와 있던 궁녀의 존재를 잊기라도 한 듯 일언반구도 없이, 황제는 멍하니 황후의 영정만을 들여다보았다. 살아생전의 미색을 고스란히 옮겨다 놓지는 못하였더라도, 그 마저도 절실하다는 듯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 핓빛 눈동자에 서린 빛은, 취기보다는 광기에 가까웠다. 그렇게 불상이라도 된 듯 우두커니 앉아있던 황제가 별안간 킬킬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우습구나, 우스워... 참으로 우습구나. 그대를 만난 순간부터 짐의 모든 것으로 그대를 옭아매고자 하였고, 그대의 마지막조차 취하였건만... 어찌하여, 그러고도 만족할 수가 없는 겐지. 이래서야, 이래서야 마치... 머리부터 발 끝까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죽음까지도 짐의 것인 그대가, 죽어서도 감히 짐을 지배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게는 안 되지... 짐은 그대를 지울 것이다. 천자(天子)는 패자(覇者)여야지 패자(敗者)일 수는 없으니..."

웃음인지 흐느낌인지 모를 기이한 소리는 한동안 이어지더니, 어느순간엔가 뚝 멎었다. 죽은 사람처럼 떨구어져있던 고개는 어느새 들려있었고, 빗물이 채 마르지 못해 용안에 달라붙은 짙은 바다처럼 푸르른 머리칼 사이로 핏빛 눈동자가 조용히, 그러나 섬뜩할 만큼 집요하게 궁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구나. 너는... 황후를 꼭 빼닮았구나. 그이가 내 눈에 처음 들어왔던 것도, 딱 네 나이정도였을 때였지..."

황제의 손이 궁녀의 얼굴로 천천히 뻗어가다, 이내 바닥으로 툭 떨구어졌다. 취기로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것인지, 황제는 사당 벽에 눕다시피 기대었다. 그러고는 몽롱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혼잣말인듯 헛소리인 듯 중얼거렸다.

"만인이 짐과 황후에 대해 떠벌리고 있지. 마치, 짐의 귀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자신하는 듯이 말이다... 그래, 너는 어떠냐. 황후가 어떻게 죽었는지, 짐이 황후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그 내막이 궁금하지 않더냐?"

그렇게 황제가 운을 떼었을 때였다. 궁녀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것을 가로막기라도 하듯, 사당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날붙이가 서로 부딛히고, 사람의 옷과 살을 베는 소리,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어지러이 섞여 들렸다. 그 살기등등한 소란은 한참 이어지다 조금씩 잦아들었고, 궁 안을 수색하는 듯한 여러명의 발소리가 이어지더니, 이내 사당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장대비가 거칠게 들이치고, 갑옷의 비늘이 부딛히는 소리를 내며 몇명의 사람이 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 중 선두에 선 자가 투구를 벗고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격조하였습니다. ...오라버니."

투명한 음색이지만 낮고 힘이 실린 목소리로, 살갑지 못한 인사를 올린 이의 얼굴을,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이 희미하게 비추었다. 깔끔하게 쪽을 진 머리카락은 황제의 것과 닮은 선명한 청현색이었지만, 옆에 있던 궁녀는 아랑곳 않고 서늘한 시선으로 황제를 내려다보는 두 눈동자는 희미한 촛불빛만으로도 맑고 쨍한 빛을 내는 금색이었다. 황제가 즉위한 이후 몇년 간 궁 출입이 뜸하다, 이번 해에야 입궁이 잦아졌기에, 궁 생활이 짧다면 그의 얼굴이 생소할 법 했지만, 황제가 제 누이동생의 시가를 숙청으로 멸하고 부마마저 사사하려던 것을, 5황녀의 눈물 젖은 간청을 가여이 여겨 자비를 배풀었다는 소문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었다. 황녀의 얼굴을 찬찬히 올려다보던 황제가, 별안간 광소를 터뜨렸다.

"이게 누구인가! 이게 누구야, 나의 귀여운 누이 원민이 아니던가! 그래, 드디어 이 오라비를 즐겁게 해주려고 왔느냐? 보시오, 황후. 반가운 얼굴이 아닐 수가 없구려. 아니 그렇소? 아아, 실로 지루한 나날들이었지. 이제는 원민이 네가 이 지루함을 달래주겠구..."
"여전하시군요. 독야청정 하는 줄 아는 주정뱅이.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으십니다. 곧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황후 폐하와 해후하실 텐데, 그런 몰골이셔서야 되겠습니까."

짐짓 나긋나긋한 투로 황제의 말을 끊은 원민 공주가 슬몃 미소지었다. 멍한 얼굴로 그런 누이의 얼굴을 올려다보던 황제가, 노기가 서린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얀 것. 네 감히 할 수 있겠느냐? 지략으로는 천하를 좌지우지하고 용력으로는 만인지적이며 용의 화신으로도 일컬어지는, 천자인 이 나를 베어 넘기고,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겠느냐 이 말이다. 어서 나를 즐겁게 해 보거라. 설마 이제 와 두렵다고 빼진 않겠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파공음과 함께 무언가가 번뜩였고, 청산유수로 말을 늘어놓던 황제의 입이 멈추며, 머리가 바닥을 구르더니, 이내 주인을 잃은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황제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하던 원민 공주가 가장 곁에 있던 장수를 향해 고갯짓을 하였고, 장수는 그 무언의 명을 받든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궁녀는 물론, 바르작거리는 목 없는 시신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서, 원민 공주는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대소신료들을 멋대로 살해한 죄, 황후만을 분별없이 총애하여 황통을 방치한 죄, 백성의 안위보다 본인의 위세를 우선시한 죄로, 황제는 폐위되셨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궁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사당을 뒤흔들었다.

923 이름 없음 (tT0T42/1aA)

2022-11-17 (거의 끝나감) 11:42:07

>>922 시간이 꽤 지나서 묻힌줄 알았는데 이어줘서 고마워 근데 황제가 허무하다못해 찌질하게 죽는 건 예상 못했다 동양풍 전근대 배경인데 여캐가 군사를 이끌고 나오니까 또 놀랐고 이래저래 내가 처음에 상상했던 그림이랑은 많이 다르네

그래도 이건 이거대로 괜찮은거 같아 황후를 향한 애증에 잡아먹혀서 몰락을 자초한 자기파멸적인 사랑이라니 비극이라면 비극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유상극이니까 내가 바란대로만 이어지지는 않는게 당연하겠지 그러니까 이어줘서 고마워

근데 궁금한 게 원민은 누구의 하수인이야 아니면 본인이 황제가 되려는거야?

924 이름 없음 (A3MNxi5N/E)

2022-11-17 (거의 끝나감) 17:01:50

>>923 나라 이름이 없길래 가상 배경으로 보였고 가상이면 여캐가 군사 활동을 하든 남캐가 군사 활동을 하든 상관없을 거 같아서 넣어봤어.

그리고 아마 황제(지금은 폐황제인가?)가 후사도 안 보고 폐태자 자식을 살려뒀을 가능성도 없으니 반군의 구심점이 된 원민이가 즉위하지 않을까? 전근대 동양이라도 여성이 군주가 된 경우가 실제로 있기도 하니까.

물론 다른 부분들이 실제 전근대 동양과 거리가 있어서 불편하다면 잇지 않아도 괜찮아:)

925 이름 없음 (4YLZaVtXyQ)

2022-11-18 (불탄다..!) 02:42:09

/922 이크 너무 오래 앉아 있었네. 넋을 놓고 황후의 영정을 바라보던 궁녀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양손으로 제 볼을 찰싹 치고는 일어섰다. 그런데 별안간 천둥이 요란하게 치더니 사당 안까지 요란해지도록 빗발이 바닥을 때려댔다. 우장(雨裝)을 미처 챙기지 못했기도 하고 갑작스레 퍼붓는 걸로 보아 금세 그칠 소나기 같기도 해서 조금 더 있어 볼까 하는데 오래지 않아 그 망설임이 뼈저리게 후회스러워질 일이 터졌다. 비에 쫄딱 젖은 채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차림새와 비틀거리는 걸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밖에 없는, 이 나라의 지존(至尊)이신 천자(天子)께서 사당에 들이닥치신 것이다. 황제를 알아본 순간 궁녀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새하얘졌다. 지난 몇년간 황후의 승하를 부정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국상이고 사당이고 나 몰라라 하던 황제가 사당에 왕림하신 이후 곤욕을 치른 이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당을 깨끗이 치우지 않았다거나 향로의 향이 떨어졌는데도 새 향을 피우지 않았다거나 황후께 예를 올리지 않았다거나 하는 이유로 감봉당한 이는 셀 수도 없고 심하게는 목숨을 잃은 이도 있었으니, 그런 황제와 사당에서 마주하게 된 건 한마디로 봉변이었다. 그토록 얼어버린 궁녀가 늦게나마 산란해진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은 살고 싶다는 생존 본능 덕분이었다. 궁녀는 가까스로 꿇어앉았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다행히도 황제는 궁녀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듯 궁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황후의 영정에 앉았다. 태감 하나 없이 혼자 와 있는 황제에게서 풍기는 술 냄새가 불쾌하리만치 코를 찔렀지만 자기가 와 있는 걸 모르는 까닭이 만취해서라고 생각하니 냄새고 뭐고 오히려 감미로울 지경이었다. 다만 한 가지 심각하고 또 심각한 문제는 무슨 수로 이 자리에서 발을 빼느냐였다. 물러간다고 예를 올리자니 눈에 띄자마자 무슨 트집을 잡힐지 몰라 무서웠고 몰래 나가려다가 들키면 그거대로 황제의 진노를 살 게 뻔하니 무서웠다. 어쩐다? 길다란 치맛자락에도 떨림이 감춰지지 않을 만큼 몸이 떨려 쓰러질 것 같은 와중에 웃음 같기도 하고 흐느낌 같기도 한 섬뜩한 소리와 실성이라도 한 듯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마지막조차 취했다? 죽음까지도 짐의 것? 저말은 곧 황제께서 황후를 직접 해하기라도 하셨다는 뜻인가? 이제까지 들려온 뒷소문보다 훨씬 심각한 소리에 입이 떡 벌어져 비명이라도 나올 것 같아 궁녀는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데 그때 당장이라도 사당을 집어삼키는 화마(火魔)로 돌변이라도 할 것처럼 섬뜩하게 붉은 안광이 궁녀에게 꽃히는가 싶더니 황제께서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극찬을 늘어놓으셨다. 박색이나 겨우 면했지 빈말로도 미색이라고는 못할 생김새이건만 경국지색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황후마마를 닮았다? 천자의 안목이 무슨 동태 눈깔처럼 흐려지다니 술이란 것은 대관절 얼마나 지독한 물건인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또 그런 극찬도 달가울래야 달가울 수가 없는 것이 기막히게 운이 트인 끝에 황제의 총애를 얻는다 해도 그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헛것이고 상대가 내 생사여탈권을 한손에 쥐신 지존이신 이상 죽으라면 바로 죽어야 하는 처지임을 궁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런지라 황제께서 궁녀의 얼굴로 손을 뻗으셨다가 떨구시고는 사당 벽에 눕다시피 기대시며 암암리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을 거론하시자마자 궁녀는 그런 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을 진심으로 뉘우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사지 온전하게 빠져나가게만 해 주시면 앞으로 일평생 궁에서 회자되는 소문엔 눈 감고 귀 막을 거라고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다.

그리 빈 보람이 있었을까? 궁녀와는 생전 인연이 없던 쇠붙이 부딪는 소리와 무언가를 가르는 소리와 고통에 찬 비명과 노성 같기도 하고 환호성 같기도 한 고함이 빗소리를 묻어 버리는가 싶더니, 오래지 않아 딱딱한 것이 바닥을 때리는 듯한 발소리가 숱하게 가까워오더니 누군가 사당의 문을 부술 듯이 열어젖혔다. 이어 창칼과 갑주에 피를 잔뜩 묻힌 군사들이 몰려왔는데 그들의 앞에 나선 것은 얼마 전 황제께 지아비를 살려줄 것을 눈물로 청했다는 5황녀였다. 코앞의 황제를 두려워해야 할지 당장 누구 하나 죽인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군사들을 두려워해야 할지 궁녀가 헷갈려하는 사이, 황제께서는 5황녀를 반기는지 조롱하는지 모를 말씀을 하셨고 5황녀는 독설로 응수했다. 그리고 황제께서 진노를 감추지 못하고 저들을 도발하시기 무섭게 군사들 중 하나가 옥체를 두 동강 내어 버렸다. 지고(至高)의 존재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인 황제가 궁녀의 바로 눈앞에서 시해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제가 목격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녀가 채 파악하기도 전에 5황녀가 위엄 서린 음성으로 황제가 폐위되었다고 선언했다. 그 직후 사당을 날려버리기라도 할 듯한 군사들의 함성에 귀가 먹먹해진 것을 의식하고서야 비로소 궁녀는 얼떨떨한 정신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잘못 처신했다간 끝장이다. 그래서 궁녀는 꿇어앉은 자세 그대로 바닥에 찧다시피 머리를 조아렸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이거 재수없으면 궁녀도 그자리에 있던 죄로 목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겠는데 쩌리캐라도 죽는건 싫어서말야 그렇게 잇지는 않아주면 고맙겠다

926 이름 없음 (4YLZaVtXyQ)

2022-11-18 (불탄다..!) 02:43:26

아 잘못 입력했다 >925는 >922를 이은 거야

927 이름 없음 (W7KxrEXIEY)

2022-11-18 (불탄다..!) 14:27:31

>>925 요의 다섯째 황녀이자, 반군의 구심점, 넷째 오라비를 배어넘긴 자, 원민 공주 황 현은 군사들의 함성 속에서 피가 튀었을 지언정 꼿꼿한 모습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거사를 성공해 냈다는 안도감, 복수를 이뤄냈음에 대한 사사로운 만족감, 그럼에도 돌아오지 못할 이들과 사라지지 않을 자신과 지아비를 포함한, 넷째 오라비에게 많은 것을 잃은 이들의 상실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느끼고 마는 헛헛함, 이제부터가 진정으로 시작이라는 것을 알기에 느끼는 먹먹함. 그런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난 뒤에 가장 커진 것은 피로감이었다. 아니지, 곤하다 하여 이렇게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지. 이제부터가 시작이니.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고 군사들을 진정시키려는데, 바로 근처, 그보다 아래쪽에서 다급하고 새된 외침이 터졌다. 천자를 향해 올리는 만세였다.

폐주가 오라버니는 물론 그분 소생의 태손까지 죽여 없앤지 오래이니 좋든 싫든 내가 보위를 맡는 것이 확실시되었다고는 하나, 정식으로 즉위하기 전인데. 그건 그렇고, 지금은 폐제라곤 하나, 눈 앞에서 황제의 목이 땅에 떨어졌으니 정신을 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담대하고 상황판단이 신속하군. 뜻밖에도 예상보다도 빠르게 듣게 된 황제 폐하 소리에 이를 어찌 받아들이고 대응해야 할 지 고민하던 현은, 이내 만세가 제 군사들에게도 옮겨가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는 헛기침을 하여 함성을 잠재우고,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폭정을 일삼아 나라를 돌보지 않은 폐주는 죽었습니다. 그대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나라의 안정이 우선이라 당장 논공행상을 할 수는 없으나 그대들이 흘려 온 피땀에 대한 보상은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도탄에 빠진 나라를 외면하고 폐주에게 아첨하던 자는 응당 대가를 치를 것이나, 그릇된 충심을 버리고 나라를 바로잡는 데 힘을 아끼지 않는다면, 죄의 경중을 참작하여 처우를 정할 것입니다."

피로감을 빈틈없이 감추고서, 현은 총기를 잃지 않은 금빛 눈으로 군사들을 둘러보며 힘이 실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릇된 것은 바로잡되, 과거의 원한에 사로잡히지 않고, 새로운 시대와 화합을 위하여 모두가 뜻을 모으길 바랍니다."

군사들을 치하하기 위한 말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폐주는 죽고, 자신이 이 나라의 모든 것을 책임지게 되었으니, 계기는 복수였을 지라도 이제부터는 원치 않는 선택을 하게 될 지라도 나라를 바로잡고 안정케 해야한다. 보위에 오르는 그 순간부터 개인이 아닌 국가와 운명을 같이 하는 자임을 망각하는 순간, 폐주의 전철을 밟게 될 되리라.

/죽일 생각은 없는데, 현이랑 궁녀가 이후에 또 접점이 있을 지 모르겠네. 현이 입장에서는 자기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충성을 다할 측근을 원하다보니, 궁녀가 상황파악 잘 하고 빠릿하다고 생각하는 거랑 별개로 자기나 배우자(곧 국서?) 측근으로 들일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좋은 아이디어 없으면 여기서 마무리하는 건 어떨까?

928 이름 없음 (l9RVV6swVM)

2022-11-19 (파란날) 14:33:36

>>927 폐위된다고 해도 황제니까 직접 죽이는건 부담스러워서 궁녀가 범인이라고 누명씌우고 죽여버리면서 착한편 행세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런 전개까지는 안나왔네ㅎ 말한대로 황제가 이름없는 궁녀랑 엮일만한 일은 없을거 같으니 927을 막레로 하면 되겠다 이어줘서 고마웠어

929 이름 없음 (CGbMRc7oVM)

2022-11-21 (모두 수고..) 15:57:58

제 2황자인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거나 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자신에겐 늠름하고 멋진 큰 형이 있었으며 객관적인 능력치 등을 다 따져봤을 때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이가 바로 그의 형이자 제 1황자인 황태자였다. 허나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제 1황자이자 황태자는 어느날 갑자기 황실의 대신과 황제, 그리고 황후, 더 나아가 형제자매들 앞에서 자신은 정치적인 움직임에 그다지 끼이고 싶지 않으니 그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면서 다른 의미로 제국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입이 쩍 벌어질법한 소리에 황실은 한동안 시끌벅적했고 설득을 하고자 하는 이들도 많았으나 제 1황자는 뜻을 전혀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제 2황자인 자신에게 네가 황제가 되고 자신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면서 기술면이나 조언 등으로 지지를 하겠다고 이야기하던 그 모습이 제 2황자에게는 도저히 잊혀질래야 잊혀지지 않았다.

물론 시대가 변해 반드시 첫째인 아들이나 딸이 황제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당연히 많은 이들이 기대를 한만큼 그에 대한 실망감도 많았고 제 2황자가 알게 모르게 압박을 준 것이 아니냐는 말들도 황실에서 조금씩이지만 들려오고 있었다. 물론 제 2황자의 능력도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어디까지나 제 1황자에 비하면 떨어지는 수준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상대평가를 했을 때 조금 더 뛰어난 쪽에게 기대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심리 아니겠는가. 아무튼 제 1황자의 뜻을 굽히지 못한 황실 사람들은 결국 제 2황자를 새로운 황태자로 지정했고 그로부터 딱 하루의 시간이 흘렀다.

너는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지 않겠지? 라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끼면서 제 2황자는 일단 업무를 봤다. 이전에 자신이 처리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업무량에 쓴 웃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자신도 황제의 뜻이 없다고 하면 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후 황실이 얼마나 흔들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참으로 이럴 때는 그 늠름하고 존경스러운 제 1황자가 조금은 원망스럽다고 생각하나 그렇다고 그 원망을 밖으로 내뱉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정도의 생각이 들 뿐이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황태자님."

"응? 알았어. 들어오라고 해."

자신의 시종이 이야기하는 것에 제 2황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황실 대대로 전해져내려오는 제국 유일의 녹색 에메랄드 빛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하고 제국 유일의 에메랄드 눈동자를 빛내며 제 2황자는 누가 들어올지를 가만히 지켜봤다. 아는 사람일지, 아니면 잘 모르는 사람일지. 그것도 아니면 압박을 가하는 사람일지. 그것도 아니면 격려를 하려는 사람일지.

어느 쪽이건 일단 만나봐야 알 일이었다.

/간단하게 당연히 황제가 될 거라고 믿었던 제 1황자가 나는 연구만 하면서 살겠다고 선언하고 폐위되었고 그 다음에 태어난 제 2황자가 황태자의 자리에 정식으로 오르고 딱 하루가 지난 후의 시점이야.
황실에서 정한 정혼자가 찾아와도 상관없고 그냥 알고 지내는 이가 찾아와도 상관없고 누가 찾아와도 별 상관은 없다만 갑자기 반란을 일으켰다느니 음모를 꾸미고 죽이러 왔다느니 그런 맥브레이커는 사절이야. 상황극을 어떻게 이어도 상관은 없다고 하지만 적어도 연결이 될 수 있는, 흐름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생각해. 간단하게 흐름을 깨고 뜬금없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거나 진짜 맥락없고 뜬금없는 참교육 스토리 만들려는 그런 이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환영!

930 이름 없음 (22dtiupBYI)

2022-11-21 (모두 수고..) 22:48:23

>>927 싫다는 내용에 구체적으로 반란이 들어가서 물어보는 건데, 혹시 >>922 내용을 염두에 두고 언급한 거야?

931 이름 없음 (22dtiupBYI)

2022-11-21 (모두 수고..) 22:48:54

앵커 잘못걸었다 >>929야

932 이름 없음 (CGbMRc7oVM)

2022-11-21 (모두 수고..) 22:57:25

>>930 딱히 그런 것은 아닌데. 그냥 난 피가 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분위기로 돌리고 싶은 것 뿐이라서 그런 쪽의 전개는 곤란하다고 한 것 뿐이야.

933 이름 없음 (22dtiupBYI)

2022-11-21 (모두 수고..) 23:05:26

>>933 그래? 그럼 피 튀길 일 없는 일상플을 돌리고 싶다고 하지 그랬어. 반란, 죽이려는 음모 = 맥브레이커라고 하니까 저격인 줄 알고 놀랐잖아.

934 이름 없음 (CGbMRc7oVM)

2022-11-21 (모두 수고..) 23:12:46

>>933 음. 그 부분은 나도 표현이 조금 애매했네. 당장 떠오른 예시가 그런 것밖에 없어서. 일단 지적은 고마워!

935 이름 없음 (jQkiBD6Ajg)

2022-11-23 (水) 19:00:58

오늘 캔 약초는 제법 후한 값에 팔렸다. 풀을 캐던 중에 잘 익은 머루도 찾아서 한 움큼 따 놓았다. 짭짤한 수확에 기꺼워진 약초꾼은 장에서 누가(nougat)를 잔뜩 사서 일행에게도 좀 나눠 주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그분이 오시면 차와 함께 내어 드리면 되겠다. 해실거리는 얼굴로 맛나게 오물거리실 걸 상상하니 벌써부터 포근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돌아온 약초꾼은 누가와 머루는 따로 잘 갈무리해 둔 뒤 서둘러 땀을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다시 나와서는 댓돌에 걸터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집에 막 왔을 때만 해도 해가 떨어질 듯 말 듯 하늘에 불그스름한 기운을 퍼뜨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두워져서 별도 보인다.

오늘은 오시려나? 약초꾼은 따로 가져온 바람막이를 그러안으며 웅크렸다. 이제 밤에는 은근 쌀쌀한 터라 그분이 추워 하실지도 몰라 챙긴 것이다. 몇 걸음이면 실내이긴 하지만 그 잠깐에라도 한기보다는 온기를 느끼셨으면 했다. 그래서 약초꾼은 제 체온으로 데워지길 바라며 바람막이에 찰싹 달라붙었다.

/연인이나 배우자가 오길 기다리는 사람을 상상하고 썼어 성별은 특정하지 않았는데 나이는 장에서 거래를 할 정도면 성인일 거라고 생각해 같이 꽁냥거리고 수다떠는 내용으로 잇고 싶어서 그에 맞지 않은 내용은 유감이지만 스루할 생각이야

936 이름 없음 (RoWFyJ.cjE)

2022-11-23 (水) 19:14:04

>>935 /안녕! 혹시 내 캐릭터가 약초꾼을 보자마자 와락 안는 정도의 스킨십을 할 것 같은데, 완결형으로 해도 괜찮을까? 잇기 전에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미리 물어봐.

937 이름 없음 (l4d3avQwGk)

2022-11-23 (水) 19:27:40

>>936 물론 괜찮아 안는거 말고도 연인이나 부부간이면 누가 보든말든 스스럼없이 할 수 있을 스킨십은 완결형이라도 난 좋아 이렇게 빨리 반응이 올 줄은 몰랐는데 관심 가져줘서 고마워

938 이름 없음 (pJ6WX7JHpw)

2022-11-23 (水) 20:48:57

>>937 다행이다! 그럼 금방 이어올게:)

939 이름 없음 (pJ6WX7JHpw)

2022-11-23 (水) 22:14:20

>>935
마지막으로 교역한 왕국에서 출항하고 나서부터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보금자리가 있는 항구도시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라 항해하는 동안 폭풍우도 해적도 만나지 않았는데도, 오로지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그래도 수평선 너머로 목적지가 보이면 조금 나을 줄 알았더니, 오히려 더 애가 탔다. 차라리 여기서 뛰어내려서 수영해서 갈까, 하는 충동이 드는 것을 겨우 참아내야 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배 위에서는 내내 마음이 콩밭에 가 있던 상단주는, 하선하고 나서는 도리어 정신을 차렸다. 무역을 마치고 귀국했지만 아직 일이 끝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교역품 운반과 선박 청소 등 잔업이 끝나면 곧장 해산할 것을 부선장과 선원들에게 지시하고 상단 건물에 들러 거래 내역을 기록한 문서를 추가하고 정리하고 나니, 어느새 하늘이 어둑해져 있었다.

드디어 집에 가겠구나. 긴장이 풀리며 설레기도, 조급하기도 한 마음으로 머리가 꽉 찼다. 여독으로 지쳐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길게만 느껴지던 항해 내내 만나지 못했던 제 배우자와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더 참지 못하고, 상단주는 정신 없이 집을 향해 달렸다. 숨이 가빠오든 말든 쉼없이 달려 대문을 열어젖히자마자, 댓돌에 걸터앉아서는 무언가를 꼭 끌어안고 있는 인영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였다.

"여보, 나 왔어요!"

상단주는 큰 소리로 제 배우자를 부르고는, 한달음에 달려가 그를 꼭 끌어안았다. 멀리서 봤을 때만에도 퍽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었는데, 찬 바람에 싸늘해졌지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익숙하면서도 그리웠던 느낌에, 이제야 집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의 존재를 실감하고 나니, 퍽 싸늘해진 몸이 마음에 걸렸다. 상단주는 제 배우자를 안은 손에 힘을 준 채, 걱정이 잔뜩 어린 하늘색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추웠겠어요. 안에서 있지... 많이 기다렸어요?"
/
부인 바보라는 느낌으로 달아봤는데 너무 촐랑이는 아니려나 걱정되네😅 참, 내 캐릭터가 좀 더 몸집이 큰 걸로 가도 괜찮을까?

940 이름 없음 (bReUPjuwmk)

2022-11-24 (거의 끝나감) 04:56:04

지키지 않아도 뭐라할 사람 하나도 없는 약속. 매일같이 붙어다니던 모습을 그리워한대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데 오늘도 발을 옮겼다. 집 돌아가는 길 근처를 들르는게 어렵지 않아서 그렇다. 요즘따라 부쩍 차가워진 공기가 적적하고 싸늘하게 느껴져서 제일 온기가 가득했던 때를 생각하다보니 그런 것이다. 돌아오면 만나자 약속했던 장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들어온 작은 카페에 들러서 매일 같은 주문을 한다. 언젠가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면 무슨 메뉴가 제일 맛있는지, 내 취향의 노래가 자주 나온다던지, 언제나 적당히 한산해서 좋다는 둥의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생각도 했었지만 이제는 하지 않는다. 카페 아르바이트생과 더 친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흐릿하게나마 입김이 번지는 것을 눈에 담았다. 의미가 없어 곧 카페의 문을 열었고, 바깥과는 달리 따스한 공기가 감싸주었다. 테이블 하나둘 남짓한 손님들은 적당한 백색소음을 만들었다. 오늘도 취향에 맞는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버릇이라도 든 것처럼 어제도 내일도 지금도 늘 앉던 자리로 향한다. 길거리가 잘 보이는 창가 자리에 길고 높은 테이블을 두어 혼자 온 손님들이 즐겨 찾는 자리. 그 곳에서도 세번째 자리였다.

"…?"

그런데 그 자리에 이미 음료가 한 잔 놓여 있었다. 짐이라거나 물건을 두어 자리를 맡아둔 흔적은 하나 없이 트레이에 음료가 한 잔 덜렁 나와 있었다. 하필 내가 늘 먹던 메뉴라서 나는 이게 아르바이트생의 친절이라고 받아들였다. 엇비슷한 시간대에 찾아와 늘 같은 메뉴를 시키니까 미리 준비해둔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자리에 앉있다. 가방을 옆에 두고, 컵을 두 손으로 잡아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만끽하다 한 모금 들이키려고 했다. 옆에서 누군가 머뭇머뭇 나를 부르기 전까지는. 사레가 들려 콜록거리면서 내려놓은 잔에는 "그래, 내가 방금 먹었다!" 라고 자백하듯 립이 묻어났다. 나는 당황해서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음료의 주인이 온 것 같다 생각하니 머리가 새하얗게 번져버린다.

# 옛날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도 괜찮고 아르바이트생이나 카페 사장님, 심지어는 단순히 우연으로 같은 메뉴를 시켰을 뿐인 초면의 관계도 괜찮은데, 맥커터만은 스루할게~

941 이름 없음 (iY6qCzY0R2)

2022-11-24 (거의 끝나감) 08:55:50

>>940
오랜만의 외출. 그건 친하다면 친하고 어렵다면 어려운 전 직장 동료와의 식사 약속 때문이었다. 그래서 긴장했던 탓일까? 여자는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가량 일찍 도착해 버렸고, 바깥에서 기다리자니 날이 다소 쌀쌀했기에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하고 자리값 삼아 음료를 주문했다. 그런데 무슨 기묘한 타이밍일까? 음료를 트레이에 받아오자마자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고 별 생각 없이 다녀왔다.

그러고서 음료를 둔 자리에 돌아가려는데 웬걸? 그 자리에 누가 앉아 있었다. 두 손으로 잔을 쥐고 음료를 들이키는 모습이 너무나도 느긋하고 자연스러워서 순간 여자는 자기가 자리를 착각했나 헷갈릴 정도였다. 그러나 다른 1인석은 이미 음료를 마셔 가며 노트북이나 폰을 보는 손님이 앉아 있거나 테이블도 말끔하게 비어 있었으니, 저 사람이 앉은 자리며 마시는 음료는 분명 여자의 것이었다.

그런 결론에 이르자 불쾌감과 난감함이 뒤엉켰다. 그 음료를 꼭 마시고야 말겠다는 기대감보다는 시간을 때울 목적으로 골랐긴 해도 어쨌든 자기가 구매한 건데 눈 뜨고 도둑맞은 기분이었고, 남의 자리 남의 음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없이 저리도 당당하게 먹고 있을 정도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생겼다. 내 거라고 말했다가 괜히 봉변당하는 거 아냐? 점원한테 조치해 달라고 얘기하는 게 나으려나?

하지만 점원은 이제 막 20대에 접어든 것 같은 앳된 얼굴의 여성이었다. 만약 자리를 차지한 이가 진짜로 심각하게 이상한 인간이라 돌발 행동이라도 한다면, 이제 막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지도 모르는 경험 없고 서툰 사람에게는 무서운 경험이 될 거다. 그러니 말 걸어 보고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차라리 112에 신고를 하자. 그렇게 마음먹어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라 여자는 심호흡을 몇 번 되풀이하고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서야 말을 꺼냈다.

"저, 저기요..."

제 목소리가 떨리다 못해 쫄아 있는 티가 역력한 것을 채 느끼기도 전에 상대는 사레가 들렸는지 콜록거리면서 잔을 내려놓았다. 자기한테 말을 거는 이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듯이. 그게 새삼 황당했지만 돌아보는 그를 향해 한마디 덧붙였다.

"거기 제 자린데요..."

942 이름 없음 (k64aoPDp96)

2022-11-24 (거의 끝나감) 10:17:45

>>939 와 이렇게까지 애정 뿜뿜하는 답레는 기대 안했는데 예쁘고 정성 가득한 답레 고마워 게다가 해상무역하는 상단주의 배우자라니 약초꾼 알고보니 알부자넿ㅎ 부인 바보 느낌이라.. 약초꾼 성별은 따로 설정 안했었으니까 말나온김에 여캐라고 정해도 좋을거같아 덩치도 더 크든 작든 어떻게 설정해도 난 좋아 알콩달콩한 사이로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이미 구현됐거든 지금은 밖이라 답레는 나중에 달게 939에 걸맞은 내용이 되어야 할텐뎋ㅎ

943 이름 없음 (iKreaHqqj2)

2022-11-24 (거의 끝나감) 15:04:36

>>942 아이고 내가 무심코 부인바보라고 썼구나! 배우자바보라고 필터링해주면 고마워😅 그래도 바람이 구현됐다고 해줄 정도로 마음에 들어해줘서 다행이다. 선레에서 약초꾼도 배우자한테 지극정성이라는 느낌이라 나도 약초꾼밖에 모르는 캐가 나오더라구ㅎㅎ성별이 부각되지 않는 묘사라던지 잔잔한 분위기도 좋고! 급할 거 없으니 편할 때 편하게 이어줘!

944 이름 없음 (QtJizeXC/U)

2022-11-24 (거의 끝나감) 20:10:45

>>939 마중나와 있으면 약초꾼이 추울 거부터 염려해주는 배우자에게 미안해 옷을 두텁게 입었던 탓일까? 아니면 바람막이가 너무 포근했던 탓일까? 바람막이에 밀착했다가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깜박 졸고 난 뒤였다. 입가로 침도 샌 것 같다. 바람막이 배렸으면 어쩌나? 화다닥 더듬어보니 다행히 바람막이는 물기 없이 보송했다. 한숨돌린 뒤 소매로 얼굴을 훔치고 찬바람을 맞으며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졸음을 몰아내고 있자니 친숙한 움직임의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오는 게 보이는 듯했다.

반가이 일어나려는 차에 들려온 여보 소리에 약초꾼은 제몸 하나 주체하지 못하고 새빨갛게 익고 말았다. 배우자를 부를 때만 쓰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못박는 듯한 그 말은 들어도 들어도 적응이 안 됐다. 아직도 누가 꿈이라며 정신차리라면 믿길만큼 분에 넘치는 관계가 너무나도 정답고 친근한 울림으로 강조되는 게 쑥스럽고 신기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뒤이어 자신을 폭 감싸안는 서늘하면서도 단단하게 힘이 들어간 팔의 감촉에 현실이라는 실감이 났다. 상단주의 옷은 차가웠지만 그의 피부에서는 온기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한참동안 달려온 모양이었다. 그러고도 상단주는 아니나 다를까 약초꾼 걱정부터 해준다. 항해에서 막 돌아오셔서 고단하실 텐데. 그런 마음이 새삼 감동스럽고 뭉클해 약초꾼은 그의 품에서 고개를 숙였다.

“춥기는예. 이래 뜨시게 입었는데예. 바다 건너서 오시는데 맻 발짝 나와 있는 기 대숩니꺼?”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태 붙들고 있던 바람막이가 신경이 쓰였다. 잠깐이라도 춥지 마시라고 가져온 거긴 한데 체온이 제법 올라 있으시니 이걸 건네는 게 나을지 어떨지 모르겠다. 잠시 머뭇거리던 약초꾼은 물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품에서 바람막이를 끄집어냈다.

“혹시 걸치실랍니꺼?”

/약초꾼은 시골 출신일거 같아서 사투리캐로 해봤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아참 그리고 상단주캐 혹시 이름 정했어? 약초꾼이 여보당신 소리는 도저히 못할 거 같고 아무개님 정도로 부를거 같아서 말야

945 이름 없음 (rts/QdGhRM)

2022-11-25 (불탄다..!) 08:38:41

>>944 정신없이 배우자를 품에 안으니 옷의 겉면에서부터 느껴지는 서늘함에 마음이 덜컥했지만, 자세히 보니 충분히 두툼하게 챙겨입은 게 보여 마음이 놓였다. 다행이다. 배에서 내려서도 쌀쌀한 것 같아서 감기라도 들까봐 걱정했는데. 거기에, 자신이 큰 소리로 여보라고 부른 탓인지, 제 품에 파묻힌 그의 얼굴 부분이 옷 너머로도 좀은 뜨끈하게 느껴지자, 그만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익숙해질 때까지 많이 많이 불러야지. 그래도 너무 익히면 곤란해질 지도 모르니까 자제는 해야겠지만. 그러다 품 안에서 들려온 배우자의 말에, 상단주는 부선장과 선원들 앞에서 체면을 차리던 모습이 거짓말인 듯, 약초꾼의 정수리에 볼을 기대고선 어린 아이같은 투로 칭얼거렸다.

"그치만 배에서 내려서도 바람도 불고 쌀쌀했는걸요. 그래도 따뜻하게 입고 있어줘서 안심했어요."

안심한 건 안심한 거고 오랜만에 만나는 배우자의 온기를 더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쉽사리 떨어지지 못하고 있으려니, 품 안에서 그가 꼬물거렸다. 너무 세게 안았나? 힘 조절했어야 하는데. 빈틈 없이 당겼던 팔의 힘을 풀고 그를 내려다보니 그가 품에 안고 있던 것을 끄집어냈다. 바람막이였다. 그걸 본 순간 코끝이 찡할 만큼 뭉클해졌다. 이걸 품고 기다리고 있어줬구나. 내가 오면 조금이라도 따뜻하라고. 매일같이 이러고 있었던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벅찰 만큼 자신을 아껴주는 약초꾼의 마음이 고마워, 상단주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듯 두 눈이 감길 정도로 접고서 배시시 웃었다.

"나 춥지 말라고 챙겨준 거예요? 너무 고마워요! 그럼 잠깐만 기다려줘요."

상단주는 묘하게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걸치고 있던 코트를 벗더니, 그 잠깐 사이에 온기가 새어나갈 새라 약초꾼의 어깨에 걸치고 꼭꼭 여몄다. 그는 그제야 배우자의 손에서 바람막이를 받아 몸에 걸치고 앞섶을 여민 뒤 해실거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이거 엄청 따뜻하다. 고마워요!"

바람막이에 잔뜩 밴 사랑하는 사람의 체온을 만끽하려니, 바람막이를 들고 있느라 덜 여며진 코트가 신경쓰였다. 배우자에게 둘러준 코트를 마저 꽁꽁 여미고 보니, 잘어울리기도 하고, 제 코트 안에 쏙 들어간 모습이 사랑스러운데다, 나쁘지 않은 너스레 거리라는 생각에, 상단주는 짐짓 장난스러운 투로 농담인 양 진담을 건넸다.

"이거 여보한테 더 잘 어울리는데요?"

/사투리 매력있는데ㅋㅋㅋ 오히려 좋아!😆 개인적으로 사투리 유창하게 구사하는 캐릭터 되게 신기했거든. 상단주 이름은 오스카야! 성은 없고. 그리고 아마 오스카는 님을 빼고 불러주면 더 좋아할 것 같아. 나도 궁금한 거 있는데, 혹시 약초꾼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줄 수 있어? 이다음에 쓸 때 참고하게. 간단히 써줘도 좋고 픽크루같은 프로그램 이미지도 좋아!

946 이름 없음 (DbniomBE8Y)

2022-11-25 (불탄다..!) 09:50:59

>>945 +아참, 나도 약초꾼 이름 궁금해! (쓴 줄 알았는데 빠트림 무엇...) 여보라고도 자주 부르겠지만 이름 알면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야😆

947 이름 없음 (bs9xyeFGSY)

2022-11-25 (불탄다..!) 13:49:44

>>945 >>946 어.. 약초꾼이고 연인이나 배우자가 있고 성인일거다 말고는 설정을 안해서 잘 모르겠네; 가볍게 쓴거랗ㅎ 말나온김에 이름이랑 외모 정할까? 너참치는 어떻게 생긴 캐가 좋아? 난 상관없으니까 기대하는 외형 있으면 맞출게

948 이름 없음 (3Z6kPZSqYs)

2022-11-25 (불탄다..!) 15:37:16

>>947 좋아! 나도 오스카 외형은 약초꾼보다 키가 큰거 말고는 아직 안 정했어서 원하는 요소 말해주면 넣어서 만들게😆 나는 머리는 숏컷 좋아하고, 주근깨에 사족을 못 쓰는 편이야ㅋㅋㅋ 머리/눈/피부색은 판타지스러워도 좋고 실제 있는 색조합이어도 좋아!

949 이름 없음 (SB/VAq3Wsc)

2022-11-25 (불탄다..!) 22:33:32

>>948 숏컷에 주근깨? 알았어 덩치는 작게 하기로 했고 약초꾼이면 산을 탈테니까 말랐다고 할게 피부는 산을 많이 타니 희지는 않겠다 누르스름한 정도? 머리카락은 까만색 눈동자는 진파랑색으로 할게 성별은 부인바보 소리 나온 김에 여캐 하고 이름은 부르기 편하기 성 빼고 2글자로 코니 말하다 보니 거의 시트를 짜버렸닿ㅎ 나는 금발+장발에 피부는 가무잡잡하고 남캐든 여캐든 호리호리해보여도 알고보면 근육질인 외형을 좋아해 너참치의 캐니까 이걸 다 반영할 필요는 전혀 없지만 수염은 없는 캐로 해주면 고맙겠닿ㅎ 아 그리고 답레는 주말중에 가져올게 불금 즐겁게 보내

950 이름 없음 (NfNPkLx9YA)

2022-11-26 (파란날) 10:17:12

>>949 좋아! 귀엽겠다ㅋㅋㅋ 이름은 코니구나. 오스카도 금색장발에 어두운 피부, 마른 근육질캐로 갈게! 수염은 없을거고(아마 나더라도 아침마다 부지런히 면도하는 애로 생각중이야) 눈색은 거의 시안색에 가까운 하늘색이 될 것 같아. 갑작스럽게 물어봤는데 자세하게 정해줘서 고마워. 불금은 지나갔지만 좋은 주말되길 바라!

951 이름 없음 (OVdQD2Jljk)

2022-11-26 (파란날) 22:14:05

>>945 외투를 단단히 입었거니와 달려오느라 몸이 더워졌을 수도 있고 몇 걸음만 떼면 집인 만큼 바람막이를 걸치겠냐는 것은 딱히 달갑지 않은 제안일 수 있다. 그런데도 상단주 오스카는 약초꾼 코니가 바람막이를 꺼내자마자 눈이 실눈이 되도록 환히 웃어주며 반색했다. 거기까지는 다행이고 고마운데 오스카는 뭐라고 말릴 새도 없이 제 코트를 벗어다 코니에게 걸쳐주고는 자기는 바람막이를 입어버렸다. 난감하다. 바람막이는 쌀쌀한 바람을 잠깐 견디는 용도로나 쓸 만하지 털외투를 대신할 정도의 보온성은 없다. 그런데 바람막이 입자고 코트를 벗어버리면 어쩌나? 이래서야 바람막이를 걸치겠냐고 물은 게 역효과다. 바로 돌려드리고 찬데서 외투를 벗으면 감기 드신다고 했어야 하지만 다시금 이어지는 여보라는 호칭에 코니의 머릿속은 도로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그렇게 얼이 빠진 채 찬바람을 맞기를 수차례 되풀이하고서야 정신이 났고 그제야 이럴 시간에 얼른 들어가는 게 낫겠다는 (상식적으로만 생각했다면 바람막이 따위를 권하기보다 앞서 떠올렸어야 할)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이, 이, 이..” 그런데도 머리와 입이 따로 놀기라도 하는것처럼 이걸 자기한테 벗어주시면 어쩌냐는 소리만 입안을 맴돌다가 가까스로 말문이 트였다. “퍼뜩 들가시소. 시장하시지예? 식사하시고 괜찮으시모 차도 내오께예.”

지껄이다보니 앞뒤없이 뜨겁던 머릿속도 차츰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식사는 오스카의 고용인들이 준비하겠지만 차는 팔기 애매한 약초들을 말려둔 잎으로 코니가 우려볼 수 있었다. 거기에 머루와 누가를 곁들이면 나름 그럴싸한 다과를 드릴 수 있을듯했다. 오스카가 차를 들기보다 쉬기를 바란다면 당연히 그만둘거지만

/좀 짧나; 엄청 열정적으로 이어주는거 같아서 그러는 보람이 있게끔 하고 싶은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952 이름 없음 (HibghR.Q/.)

2022-11-27 (내일 월요일) 22:57:44

>>951 또 한번 내뱉은 여보 소리에 완전히 새빨개져서는 고장난 듯 그자리에 굳어버리더니, 말을 더듬기까지 하는 코니를 보며, 오스카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그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애정을 표현하거나 칭찬을 해서 낯간지럽게 만들면 잘 익은 토마토처럼 새빨개져서는 버벅거리는 모습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지만, 웃음을 터뜨리기라도 했다가 행여라도 놀리는 것으로 느껴 상처를 받게 해서는 안 되니까. 조금 기다리자니, 코니는 말문이 트였는지 한결 침착해진 목소리로 들어가서 식사를 하자고 권해왔다.

"좋아요! 나 배고팠어요. 코니가 타주는 차도 그리웠구요. 코니도 식사 아직이죠?"

코니와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것도 얼마만인지. 이번 항해는 그리 긴 편도 아니었다지만, 그럼에도 교역을 하면서 겪고 들었던 기가 막히기도 하고 조금은 아찔했던 경험들을 들려줄 생각에 신이 났다. 오스카는 싱글벙글 웃으며 코니에게 잡아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얼른 들어가요! 오늘 저녁은 뭐 먹고 싶어요?"

/나는 재밌으면 길이는 신경 안쓰는 편이라 걱정 마! 그리고 요 앞으로는 서로 짧게짧게 잇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밥 먹고 나서 차 마시는동안 오스카가 교역하면서 겪은 일들을 코니한테 들려주는 식이면 어떨까 생각중이거든. 다음 내 턴에 식사 마치고 나서 차 마시는 상황으로 점프할까 하는데 그래도 될까? 코니주 턴에서 그렇게 해줘도 고맙고!

953 이름 없음 (WgbX7wh2FM)

2022-11-30 (水) 00:39:55

>>952 환한 웃음. 코니의 차가 그리웠다는 밝은 목소리. 잡고 가자고 내미는 손. 코니에게 이 모든 것은 꿈결처럼 들뜨면서도 마음이 확 놓이도록 정겨웠다. 자기같이 평범한 인간에게 오스카가 정성을 쏟는 것이며 그러면서 행복해 보인다는 건 봐도봐도 실감이 안 났지만, 가무잡잡한 손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며 튼실하면서도 부드러운 손아귀에 닿아 있노라면 이분이 건강하고 여기가 이분이 돌아올 곳이 맞다고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감상에 젖어 오스카를 밖에 세워두는 건 곤란하다. 코니는 뭘 먹고 싶냐고 묻는 오스카에게 대답하는 대신 맞잡은 손을 끌다시피해서 부랴부랴 들어왔다. 그리고 집안에 들기 무섭게 훈기가 피부에 와닿아서 밖에 더 머물지 않길 그나마 잘했다 싶었다.

"주방장님이 해산물 스프랑 훈제 칠면조 준비하신다꼬 들어씸더. 스프는 빵 그릇에다 담아 주겠다 카시든데예."

좋아하시려나? 고기와 빵과 스프가 다 갖춰진 식사니까 먼길 고생하신 뒤에 속을 든든히 채우기에는 좋을 것 같고 주방장님도 당연히 이분의 식성을 알고 준비했겠지만 당사자가 안 내키면 소용없으니까. 그와 별개로 식당에 가까워질수록 훈제로 익힌 칠면조 특유의 향과 갓 구운 빵 냄새와 따끈한 스프 냄새가 강해져서 침이 절로 고였다. 그렇게 식당에 이르자 주방에 있던 고용인들이 인사를 하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식탁에 음식을 올리기 시작했다. 갓 조리해 내어주는 음식을 보고 있자니 식욕이 샘솟았다.

"고생하싰은께네 영양가 있는 걸로 든든히 잡수시야 됨미더." 코니는 오스카가 평소 앉는 자리의 맞은편 자리에서 오스카가 앉기를 기다렸다. 그러고는 가장 궁금했던, 오스카가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와 밀접한 질문을 던졌다. "이번 교역은 어땠심꺼? 괘야나씸꺼?"

/교역중에 있었던 일을 화제삼아 수다떠는거 좋을거같아 근데 식사도 같이 할텐데 그때 얘기 안하다가 차 마실때로 넘어가는건 약간 어색할거 같아서 식사를 건너뛰진 않았어 식당까지 가는 과정이나 먹을 음식을 내가 임의로 정했는데 괜찮을까? 바꾸고싶은 부분 있으면 알려줘

954 이름 없음 (SkiBd49nhM)

2022-11-30 (水) 19:48:25

>>953 코니를 끌어안을 때도 그랬었지만,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손을 꼭 감싸쥐자 새삼 집에 왔다는 실감이 나고, 손 안에서 느껴지는 그의 손의 온도가 그렇게 차지 않다는 것도 안심이 되어서, 함박웃음이 얼굴을 떠나질 않았다. 누가 보면 푼수같다 싶을 법한 얼굴로 코니의 손에 이끌려 집안에 들어서려니 코니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해산물 스프에 칠면조라니, 적절한 식사 메뉴가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은 항해로, 코니는 산행으로 체력을 소모한데다, 밖에 오래 있기도 있었으니.

"맛있겠네요! 항해하는 동안 집밥이 엄청 고팠던 거 있죠. 특히 코니랑 같이 먹는 밥이요."

무심코 또 낯간지러울 법한 소리를 내뱉었다가 멋쩍게 웃은 것도 잠시, 식당에 들어서자 인사하는 고용인들에게 손을 들어 답하고는, 평소 앉던 코니의 맞은 편 자리에 앉으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퍽 정겨운 잔소리에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나 잘 먹을테니까 코니도 식기 전에 들어요. 나 기다린다고 추운 데 오래 있었잖아요."

코니는 식사하는 모습도 아기 다람쥐같고 귀여운데, 그 모습을 오랜만에 보겠구나. 그래도 너무 대놓고 구경하면 신경쓰일테니까 잘 먹어가면서 적당히 봐야지. 오스카는 큼직한 칠면조를 칼로 먹기 좋게 해체해서는 통통한 다리살을 코니의 접시 위에 올려준 뒤, 제 접시에도 얹은 뒤에야 자리에 앉고 수저를 집어들었다. 맞은 편에 앉은 코니가 이번 교역은 괜찮았냐고 물어오자, 오스카는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네! 가는동안 풍랑도 심하지 않았고, 우리가 싣고간 수하물도 거의 다 좋은 가격에 매각한 데다, 교역품도 잔뜩 수입해왔어요. 심지어 이번에는 신상품도 들여와서 당분간은 항해 안 나가고 여기 일에만 집중해도 될 거예요."

딱 한 군데서만 교역을 못 하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흑자니까, 다음 항해까지 서류 업무나 자선재단만 돌보는 정도면 코니하고 더 많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신난다! 그런 생각에 싱글벙글하려니, 교역을 제대로 못 한 나라에서 들은 기막힌 사연이 생각났다. 사연이라기엔 역사서에 적힐만한 스케일이었지만.

"...아, 그런데 딱 한 나라에서만 교역을 제대로 못하긴 했어요. 수하물을 다 파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교역품 매입을 못 했었거든요. 배에서 내려서 상황을 알아보니깐 글쎄, 황제의 국혼이 진행중이었는데, 국혼 시기인 것 치고는 도시 전체가 분위기가 좀 뒤숭숭한 거예요. 알아 보니까 황조가 막 바뀐 참이었더라구요. "

/아 하긴 식사하면서도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겠다. 스프랑 칠면조구이 정도면 충분히 먹으면서 대화 가능한 메뉴고. 그리고 나는 자연스러워서 좋았어! 메뉴도 맛있어보이고😆 나도 먹고 싶다 빵스프랑 칠면조... 참, 이제부터는 길이가 좀 들쭉날쭉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코니주도 편한길이로 이어주면 고마워!😂

955 이름 없음 (UfyEMG.xTc)

2022-12-01 (거의 끝나감) 17:17:01

>>954 집밥을 먹고 싶었다며 신이 난 오스카를 보고 있자니 항해중에 알게모르게 있었을 고충이 상상되었다. 배에 싣는 식량은 운반상의 편의며 부패 방지 등을 위해 대부분 말린 것들일 거고 아니라도 여러모로 육지에서 먹는 음식만은 못할 것이다. 그런 만큼 모처럼 갓 조리된 음식을 먹는 순간은 기쁘고 설레는 시간 아닐까? 그런데 그시간을 코니와 함께하는게 그리웠단다. 믿기지 않도록 감동적이고 뭉클하면서도 어쩐지 간질간질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형언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그런 나머지 그가 배고플텐데도 음식을 들 생각은 않고 코니 몫부터 덜어주는데도 그만 얼이 나가있었다. 내가 먼저 챙길걸. 얼른 드시라고 말하려는데 오스카가 맑은 유리구슬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교역이 성공적이었다며 자랑처럼 말했다.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푸근해졌고 당분간 항해를 안 나가도 될 것 같다는 것도 기뻤다. 그와 함께있을 시간이 늘어나는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그가 덜 위험할거라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아무리 많이 다니고 익숙해져도 바다는 언제 무슨일이 있을지 모르는 곳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재잘거리던 그가 뒤늦게 생각났다는듯 한곳에서는 교역품을 구입하지 못했단다. 황제가 막 바뀐 참이라 분위기가 뒤숭숭했다나? 아니 황제만 바뀌었다면 전임 황제의 승하나 양위 직후려니 했을 텐데 무려 황조가 바뀌었단다. 뭔가 큰일이 있긴 있었나 보다. 어떤 일인지 궁금하긴 했으나 그보다는 오스카가 그쪽일에 휘말리지 않고 돌아와준게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난리가 크게 났는가배예. 무사하시스 다행임더.”

/맛있을거 같다니 다행이네 응 길이는 그렇게 알고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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