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306068> 자유 상황극 스레 3 :: 1001

이름 없음

2021-09-13 08:11:25 - 2022-12-20 23:06:42

0 이름 없음 (wSjOpuFcMU)

2021-09-13 (모두 수고..) 08:11:25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849 이름 없음 (C1znFMSvUc)

2022-10-02 (내일 월요일) 14:30:29

눈을 떴을때의 세계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사내는, '육신(肉身)'이었던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철제로 이루어진 몸뚱아리와 더불어 가슴에서 치밀어오르는 막대한 힘은 그에게 인지부조화를 주기 딱 적당했다. 오감이라 부르던 여러가지 인지들은 전부 하나로 뒤섞여 데이터라는 이름의 무언가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곳이 자신이 생활하던 시대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이 철제 몸뚱아리에 남아 있던 '데이터'라는 정보에 모두 깃들어 있었고, 그 모든것을 받아들이는데는 차 한잔을 마시는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사내에게 있어 육신은 중요한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마음, 그리고 또 아직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한 그 정신. 그 뿐이었다. 어차피 그 두가지만 있다면 살아 있다는 흔적은 남길 수 있었으니까. 그 순간 사내의 시선─메인 카메라─로 밤하늘의 풍경이 들어왔다. 더이상 별빛이 살아 숨쉬지 못하는, 형형색색의 네온 싸인이 가득한 풍경에 사내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자신의 육체조차도, 결국에는 인간들의 추악한 욕망이 담긴 것이 아닐까, 그가 천천히 손을 내밀자 질량 홀로그램 프로젝트가 전개되며 한순간에 표창이 쥐어진다.

[......]

나쁘지 않다.

[재밌구나.]

사내가 천천히 허리춤에서 막대기를 하나 꺼내든다. 그와 동시에 서슬퍼런 빛이 뿜어져 나오며 검신을 이루어 내었고, 그는 그 빛나는 칼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를 응시한다. 이정도의 힘이라면 예전의 몸뚱아리 그 이상의 힘을 낼수 있지 않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리에 힘을 준다. 실린더가 압축되며 거력을 담아내었고, 남자는 숨을 고른다는 감각으로 가슴의 에너지를 응축한뒤 그대로 폭발시키듯 밤 하늘의 옥상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과거 천하제일 살수(殺手)였던 남자가, 현세에서의 실패작 몸뚱아리로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은 아마 천지신명이 재차 천명을 내걸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저 멀리 비명이 들리는 곳을 향해 내키는대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사이버펑크 살수입니다!!
/살수라고는 하지만 일본 닌자 성분도 다량 포함되어 있어요!
/그냥 맥커터만 아니면 됩니다! 어지간한 상황은 다 생각해뒀으니 아무나 부탁드려요!

850 이름 없음 (qvkcWcNFN6)

2022-10-04 (FIRE!) 10:40:39

>>848 "감사합니다."

꽃다발을 공손히 받아서 들고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저분은 돌아가신 우리 엄마의 친구분이었다고 기억한다. 엄마 빈소에도 찾아와주셨었으니까. 우리 아빠가 주말에도 바쁘신 것처럼 저분도 생업이 있고 바쁘실 텐데, 내 졸업식까지 와주신 걸 보면, 엄마하고 막역한 사이셨던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시간도 많이 흘렀고, 아빠랑 속을 터놓으면서 많이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렇게 아직도 우리 말고도 엄마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실감하니 가슴이 찡하기도 했다. 그거랑은 별개로, 이분과는 특별히 교류라고 할 만한 것도 못 했고 한참 어른이시라서 사실 대하기 어렵긴 하다. 그리고, 그런 건 저분도 마찬가지이신 모양이다. 보통 저런 진로에 대한 질문은 할 말이 없어서 어색할 때나 친척 어른이 할 말은 없는데 친근감 있다는 티는 내고 싶을 때 하는 것 같던데. 그 심경을 짐작하다 보니 저분도 어색하겠다 싶어 웃어넘기기로 했다.

"아하하, 네. 원서 넣었으니까 기다려보는 동안 천천히 생각해보려고요."

고마운 분이지만, 장래 계획까지 공유할 정도로 친하지는 않으니까. 이 정도면 예의 바른 대답이었을까 생각하는데, 저녁을 같이 먹자고 권해오셨다. 이건 진로 계획보다 좀 더 난감한데. 어쩌지? 아빤 못 오실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은데, 둘러대기엔 부러 시간 내서 축하해주러 오셨는데 죄송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교문 쪽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힐끔 돌아보니, 익숙한 청회색 경차가 교문을 통해 들어와 주차장에 주차하더니, 차 문이 열리고 낯익은 사람이 내렸다. 아빠다! 오늘 못 오실 줄 알았는데. 깜짝 놀라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데, 직장에서 막 나왔는지, 정장을 입고 큼직한 프리지어 꽃다발을 손에 든 아빠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

-"딸, 졸업 축하한다! 아빠 안 늦었지?"
"아빠! 오늘 못 올 줄 알았는데."

아빠가 들려준 꽃다발까지 손에 들고 나니 양팔이 꽉 차버려서 안기지는 못해도 신나서 싱글거리려니, 아빠의 큰 손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듯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우리 공주 졸업식인데 당연히 와야지. 오늘만을 위해 아빠가 반차 아껴두고 있었지요."
"아유 진짜 밖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깐!"

나이가 몇인데 무슨 어린이집 다니는 애기 부르듯 부른다니까. 그러다 문득, 저녁을 같이 먹자는 권유에 제대로 대답을 안 한 게 생각났다. 이런, 아빠 왔다고 신나서 정말 어린애처럼 굴었잖아.

"저녁은 아빠랑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나름대로 예의 바르게 대답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빠는 그제야 엄마 친구분이 계셨다는 걸 눈치채셨는지, 내 머리를 까치집으로 만들던 것을 멈추고 엄마 친구분께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바쁘셨을 텐데 일부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처럼인데, 함께 식사하시겠습니까?"

아빠가 그렇게 권유하는 걸 보니, 일부러 와주셨는데 답례할 생각을 못 했던 게 좀 부끄러워졌다. 뭐, 먼저 권유하신 건 저 분이시고 나로서는 아빠와의 식사를 더 우선할 수밖에 없었으니 아빠가 적절하게 대처해주신 셈이지만. 나도 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저렇게 능숙한 어른이 되려면 더 오래 걸리겠지. 준비 없이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보고 배울 아빠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851 이름 없음 (OR/OydioOI)

2022-10-05 (水) 01:01:29

기사의 길을 걷는 것은 상당히 길고 험했다. 체력 단련은 기본이요. 무기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했으며, 이 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깊게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여러 전략도 공부를 해야만 했다. 입학하는 수는 많으나, 졸업하는 이는 상당히 적은 편이라고 했던가. 그 과정 속에서 수석으로 졸업을 한 은빛 머리 사내가 있었다. 지방 자작가의 차남인 그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당당하게 수석을 차지했다. 키도 크고 근력도 높았으며 검놀림은 그 무엇보다 날카롭고 매서웠으며 움직임도 상당히 빨랐기에 아카데미 내에서 그를 대적할 수 있는 이는 그다지 없었다.

그런 그가 오른쪽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 앞에는 어린 시절, 자신이 이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기사가 되면 만나기로 했던 이가 서 있었다.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사내는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서 말을 조용히 이어나갔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약속대로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당당하게 기사의 자격을 가지고 당신의 앞에 이렇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기대를 했을진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어쨌건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으니까. 허나 자신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기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했다. 물론 그 마음을 알아주고 응해달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당당하게 자신은 약속을 지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남은 약속의 반을 수행할 수 있을지는 이제 상대의 마음에 달려있었다. 이미 어린 시절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한다면 사내는 약간의 미련을 보일지도 모르나 그래도 딱히 더 말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 돌아나섰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잘 지내시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어린 시절엔 반말이었던가. 허나 지금 그가 사용하는 말은 존대였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지금 이 자리에 기사로서 있는 것이었고, 적어도 상대는 자신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이임은 사실이었기에. 어쨌건 자신은 자작가의 아들이었으니까. 아무튼 지금은 그것보다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먼저였다.

무슨 말이 나왔어도 그는 수긍했을 것이다. 어이없는 트집을 잡아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냥 잡담스레에서 보고 약간 로판 분위기로 해서 기사 남캐가 어떤 장소에서 오른쪽 무릎을 꿇고 어린 시절의 약속을 이야기하면서 대답을 기다리는 장면이야. 어떻게 이어도 상관없고, 상대가 누구인지도 별 상관은 없지만... 가급적 비슷한 나이의 귀족 캐릭터. 적어도 자작보다는 높은 계급의 누군가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있다.
약속을 기억해도 좋고, 기억 못해도 좋고, 그냥 보내도 좋고 아무튼 그건 자유롭게 해줘. 다만 맥커터는 사절이야.

852 이름 없음 (CMiyz.jMaM)

2022-10-05 (水) 08:50:53

>>851
제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그로슐라는 생각에 잠겼다. 약속이라, 누군가에게 기사가 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헤집은 끝에 사교계에 입문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그제야 기억이 났다. 귀족 자제지만 부모님의 눈을 피해 대련하듯 칼싸움하며 놀던 남자아이가 있었던 것 같았다. 함께 왕립 기사단에 들어가서 만나자는 약속을 나눴던 것도 떠올려내자, 퍽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눈앞의 기사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꿈을 꾸고 결심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오랜 시간 꾸준히 노력하는 것은 힘든 일인 것을, 같은 길을 조금 더 먼저 걸어온 그로슐라로서는 잘 알 수밖에 없었고, 그 또한 그것을 해냈으니까.

"왕립 기사단에 입단해서 다시 만나기로 했었죠. 격조했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니 저 역시 반갑군요. 이렇게 서로 꿈을 이룬 걸 확인하게 된 것도요."

말은 쾌활하게 했고, 반가운 마음도 진심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혼사나 성별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승승장구할 그를 보니, 어쩔 수 없이 부럽기도, 입맛이 쓰기도 했다. 혼사에 관해 이야기하러 상대 가문의 저택까지 걸음 한 날, 무슨 생각인지 본인은 정략 결혼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며 자신이 어린 시절을 빌미 삼아 매달리기라도 했다는 듯한 언사로 그로슐라는 물론 그의 가문까지 모욕한 영식과의 혼담은 무산되었지만, 상대 가문에서 사죄의 뜻을 표하며 동생과의 혼담을 제안해 왔고,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가는 상태였으니까. 그 동생 또한 형처럼 몰상식하지는 않더라도, 그로슐라의 기사단 활동을 가문의 이익보다 우선해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요즈음에야 여성도 맏이라면 가문을 이을 수 있게 되었다지만, 다른 가문의 안주인이 된 여인들에게는 후계 양육이나 다른 부인들과의 사교활동과 같이 전통적인 역할이 기대되곤 했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나와 달리 혼사를 치르게 되더라도 지금껏 걸어왔던 길이 끊길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부럽네. 이내 고개를 터는 대신 눈을 깜빡여 상념을 털어냈다. 됐다, 그만두자. 이런다고 홀란트 공작가 측에서 내가 바라는 대로 해준다는 보장도 없고, 귀족으로 태어나서 특권을 누려온 이상, 의무를 져야지. 사람 앞에 두고 우울한 생각이나 하는 것도 흉한 노릇이고. 그로슐라는 상념을 갈무리하고, 입단식에서 작년 아카데미 수석 졸업자로서 한 말과 비슷하여 새삼스러웠지만, 웃어 보이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함께 이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 잘해봅시다. 다시 한번 왕립 기사단에 입단한 걸 축하합니다."

853 이름 없음 (aA4H6o/uBA)

2022-10-05 (水) 09:07:01

>>852 음. 미안해! 일단 선레는 누군가의 기사가 되겠다는 약속을 한 상태에서 기사가 되어 찾아간 것읕 생각하면서 쓴건데 잘못 해석될 여지도 있겠구나.
아무튼 왕립기사단은 생각도 못했고 내가 어색하게 이을 것 같아서 이 전개는 스루할수밖에 없을 것 같다. 쏘리!

854 이름 없음 (CMiyz.jMaM)

2022-10-05 (水) 09:25:12

>>853 아... 그랬구나. 어떻게 잇든 상대가 누구든 별 상관 없다기에 좀더 높은 가문 출신에 연배가 비슷하고 소속이 같은 기사라면 잘 어울릴 거 같았는데 유감이네. 알겠어. 좋은 하루 되길 바래:)

855 이름 없음 (B7H0lPxlu.)

2022-10-06 (거의 끝나감) 01:13:56

>>851에 이을 이들은 얼마든지 이어도 괜찮아! 다만 그.. 어릴 때 내가 기사가 되면 너의 기사가 될게! 식으로 약속을 해서 찾아갔다는 느낌이기 때문에 그것만 지켜주면 매우 고마울 것 같다..

856 이름 없음 (Z.K4kjl1Ho)

2022-10-08 (파란날) 23:06:49

>>851

그녀가 푸른 눈으로 기사를 내려다보았다. 들으려 하지 않아도 자연히 들려오는 이름을 무시하려 애썼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기대는 실망을 불러오는 법이니까. 그는 자작의 차남이었고 그녀는 다룬드 공작의 금지옥엽, 제국의 하나뿐인 공녀였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임에도 의자에 앉아있는 자신과 엇비슷한 키. 몸놀림이 날렵해 늑대와도 같아 레이디들 사이에서 은빛 늑대라 불린다지. 그 때도 여우처럼 재빠르긴 했는데. 희고 싸늘한 인상의 얼굴에 남들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희미하게 온기가 감돌았다.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던 시기에 짧게 스쳐지나간 인연이었다. 몸이 약해 잔병치레가 잦던 그녀가 고모와 함께 따뜻한 남쪽 자작가의 영지에서 요양하던 때에. 평화로운 햇볕 아래에서 산으로, 들로 쏘다니던 그 시절.
은빛 머리칼을 보자 소설책에 나온 장면을 그와 따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검 대신 나뭇가지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했던 맹세를, 사랑스러운 과거들을…….

“왕도까지 경의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그의 실력이라면 황실 기사단에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젊고 뛰어나니 황태자의 직속 기사가 될 수도 있을테지. 그러니 고작 애들 장난같은 과거의 약속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그는.
소리 없이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우아한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어 내뱉은 말은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그것은 허망히 흩어지는 영원의 맹세들 속에서 돌아온 단 하나의 약속이었기에.

“경, 내게 명예를 바칠 준비는 되었나요?”

857 이름 없음 (JwoVNg2VaM)

2022-10-08 (파란날) 23:27:03

어라. 이게 이어졌다고? 생각도 못했네. 일단 이어줘서 고맙고!
어어. 하나만 질문해도 괜찮을까? 그러니까 혹시 공녀가 있는 곳의 위치 배경이 어떤 곳인지만 물어도 될까? 정원에 있는 개인 공간일수도 있고, 혹은 저택 안일수도 있고 그런 거니까! 다른 건 아니고 이을 때 나름 배경의 분위기를 살려볼까 싶어서!

858 이름 없음 (Z.K4kjl1Ho)

2022-10-08 (파란날) 23:30:38

>>857 일단은 외부 공간... 나무도 있고 꽃도 있고 하는 정원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고 이었지만 딱히 상관은 없어!!

859 이름 없음 (JwoVNg2VaM)

2022-10-08 (파란날) 23:36:47

>>858 오케이! 알았어! 그럼 천천히 이어볼게!

860 이름 없음 (xLu0I1sApw)

2022-10-09 (내일 월요일) 00:05:30

>>856

아름다운 나무와 꽅이 있는 정원은 그야말로 고요했다. 자신의 본가에는 이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간은 없었기에 사내는 더더욱 공녀와의 신분적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같은 귀족이라고는 하나 자작가와 공작가는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귀족에서도 서열은 있었고 자작은 가장 아래에 가까우며 공작은 가장 윗층이었으니까. 그래도 같은 귀족이라고 대놓고 무시하거나 차별을 하진 않으나 어느 정도 격은 따지는 것이 바로 귀족가의 암묵적인 분위기였다. 허나 이런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높은 공작가의 피를 이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녀의 말은 차갑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어투는 아니었다.

"그런 소문이 나는 것을 바랬습니다. 어릴 적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약속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실력을 키우는 것만으로 그런 것을 유추할 순 없었다. 허나 적어도 기사가 되려고 하고 있다 정도의 소문은 들을 수 있지 않겠는가. 최대한 많이 알려지면 자연히 이 공녀에게도 알려지지 않을까 싶어 특히나 더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의 바람은 이뤄진 모양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의 모습을 그는 고개를 숙인 상태였기에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때도 지금도, 제 생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의 집은 제 형님 혹은 누님이 잘 이어갈테니, 저는 기사로서 저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명예도, 그리고 이 검도."

차남이었기에 오히려 행동은 자유로웠다. 기사가 되겠다는 것도 말리는 이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가문에 있어서도 공작가의 기사가 되었다고 한다면 참으로 큰 영광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손해가 되지 않고 해가 되지 않을 결심이었다. 근처에서 불어오는 따스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스쳐 지나갔다.

"오히려 공녀님이 그 날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기대를 하지 않고 그저, 기사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온 것이 컸기 때문에."

861 이름 없음 (UEo.ajpL6w)

2022-10-09 (내일 월요일) 00:41:04

>>860

번잡한 사교계에서 숨을 돌리고 싶을 때 피해올 수 있는 곳. 조금은 구석진 곳에 있는 이 정원은 한 군데 한 군데 그녀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그녀만의 정원.
만남의 장소를 이 곳으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했던 때는 가장 몸이 아프고 힘든 시기였으나, 그럼에도 몇 안 되는 좋은 기억이었다. 고열로 앓고 난 다음 날이면 머리맡에 놓여있던 은방울꽃을 그녀는 아직도 기억했다.
그가 만남을 청해 왔다는 기별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기대로 간밤에는 잠을 조금 설치기도 했다는 사실은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더 이상 어린 날의 그녀가 아니었고, 그 역시 아닐 확률이 더 높았으니까. 그러나 그는 그저 정직하고 투명하게 자신의 의도와 생각을 이야기하는 자.
여전히 솔직하고 곧은 사내였다. 어찌 보면 누구보다도 귀족답지 않았다. 정원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불현듯, 그녀는 숨통이 트인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는 그토록 맹목적으로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을까. 조용히 그의 말을 듣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런 태도는 앞으로 버리세요. 경이 내게 무언가를 바친다면 나는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것을 줄테니."

공작가의 기사란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그가 공작의 가신이 아니라 그녀만의 기사가 되길 바랐다. 나만의 것. 오로지 나만을 위해 담금질 된 검……. 몸에 단 피가 돌았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짐짓 싸늘한 어투로 말하며 그녀가 두 손바닥을 펴서 내밀었다.

“검을 내게.”

/ 잠와서 다음 답레는 잇지 못하고 자러 갈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천천히 줘!! 글구 기사 서임식(??)은 잘 몰라서ㅜㅜ 좀 모자라도 이해부탁해ㅎㅎ

862 이름 없음 (xLu0I1sApw)

2022-10-09 (내일 월요일) 01:20:54

>>861

말투가 조금 싸늘하긴 했으나 말하는 내용을 읽어보면 정당하게 대우를 해주려고 하는 말이었다. 성장하면서 조금 다른 느낌이 된 것은 있었으나 어떻게 보면 알맹이는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나 그녀에 대해서 많은 것을 판단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는 침묵을 지켰다. 허나 상대가 말하는데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는 것은 예절적으로 그리 좋지 않은 것이었다. 자작가라고는 하나 자신 역시 귀족의 피를 이은 이였다.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를 지키기 위해 그는 조용히 입을 열어 방금 말에 대답했다.

"그 큰 마음. 감사히 생각하겠습니다."

정당한 대우. 그것은 쉽사리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귀족들 중에선 기사를 하대하는 이도 있으며, 무시하는 존재도 적지 않았다. 물론 정당하게 대우를 하는 이도 있으며, 그 명예를 존중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을까 그는 생각했다.

한편, 그녀가 두 손을 내밀고 검을 요구하자 사내는 아직 검을 내밀지 않았다. 그 대신 자세를 그 상태에서 유지하며 그녀에게 말을 올렸다.

"그 전에 공녀님에게 여쭙겠습니다. 저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아니라 순수하게 당신의 기사가 되고자 여기로 왔습니다. 당신은, 공녀님은 저를 당신의 기사로 맞이하고 싶으십니까? 제가 찾아왔기에,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기에 저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 무례를 무릎쓰고 묻고자 합니다."

억지로, 강제로, 책임감으로. 그런 것을 그녀에게 부여하고 싶진 않았다. 순수하게 자신의 실력을 탐내서건, 약속을 이행하고 싶어서건, 어쨌든 이 공녀가 자신을 강제로, 억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원해서 받아들이는 것을 그는 원했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그는 이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그녀에게 있어 부담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

/답레는 일단 이어둘게! 편할 때 이어줘도 괜찮아! 그리고 잘 자!! 그리고 나도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니까 그냥 편한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해!

863 이름 없음 (AkxxiLruuY)

2022-10-09 (내일 월요일) 13:18:24

>>862

무서우리만치 올곧은 사내였다. 단 하나를 위해 달려왔음에도 그녀가 싫다고 얘기하면 돌아서리라는 것이 빤히 보였다. 스스로의 마음 따위는 중요치 않다는듯.

"뭔가 착각하고 있군요. 나는 경이 찾아와 원한다고 해서 모실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가 다시 공작가로 떠나오고 그가 아카데미로 갔을 때. 가지 말라 말하고 싶었다. 왜 굳이 떨어져야만 하는지,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지. 한미한 자작가의 차남과 그녀가 함께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한낱 평민이었다면 시종으로 둘 수 있었을테고, 고귀한 신분이었다면 혼약을 맺었을 텐데.
지금껏 그녀가 스스로 원해서 가져본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이 몸도, 고귀한 신분도, 그에 당연히 따르는 권력도. 그런 그녀도 가지고 싶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그가 가지고 싶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검이 아니라 화살이었나. 속내를 꿰뚫어 오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모든 것은 나의 뜻대로. 그리 되게 하는 것이 경의 역할입니다."

사실은 당신을 기다렸다는 말은 차가운 얼굴 아래로 감추며 그녀가 오만한 얼굴로 턱을 들어올렸다. 명검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주인이 되어야 했다.

/ 안녕~~ 오늘 내일 어디 놀러가게돼서!! 답레는 내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올 수 있으면 오겠지만 기다리지는 말아줘!!

864 이름 없음 (xLu0I1sApw)

2022-10-09 (내일 월요일) 14:41:28

>>863

"그도 그렇겠지요. 허나 그럼에도 공녀님의 뜻은 어떠한지 알고 싶었습니다."

경과의 약속은 어릴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혹은 경이 누군지 난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런 기타 등등의 말이 나온다면 차라리 깔끔하게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하고, 기사로서 다른 길을 찾아나설 각오도 하고 그는 그녀를 찾아온만큼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확고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자신은 그녀가 공작가의 공녀이기에 여기로 온 것이 아니라, 그녀이기에 여기에 온 것이었으니까. 반대로 그녀 역시 자신을 자신이었기에 기사로서 삼고 싶어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욕심일지도 모르나 그 욕심을 그는 차마 포기하고 버릴 수 없었다. 그런 속내는 감춰버리며 그는 곧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찾아왔고 지금껏 노력한겁니다. 공녀님."

그 이상의 말은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검을 두 손으로 들어올린 후 그는 그녀에게 내밀었다. 어릴 때 장난처럼 하는 약속이 아니라 진지하게 누군가의 아래로 들어가 그 기사로서 함께 하려고 하는 일종의 약속을 치를 준비를 마치며 그는 다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저는 당신의 것이요. 당신의 검입니다. 당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따르는 충의를 약속합니다."

어릴 때 나눴던 약속의 마지막 반을 수행할 준비를 마쳤다는 듯, 그는 그 자세에서 눈을 살며시 감았다.

/앗. 잘 놀다 와! 연휴도 잘 보내길 바라고!!

865 이름 없음 (rIts5dPaKk)

2022-10-11 (FIRE!) 11:27:53

>>864

그의 손 위에서 검을 받아든 그녀가 검을 뽑아들었다. 이게 그 무투 대회에서 승리해 받은 보검일까. 간단한 호신술 외에는 배우지 않은 그녀조차 잘 만들어진 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무릎 꿇은 그의 위로 어린 날의 기억이 겹쳐 보였다. 이제 나뭇가지 대신 진짜 검이라는 게, 그가 실제로 검을 바친다는 게 달라졌을 뿐.
차릉-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며 청아한 소리를 냈다. 잘 관리되어 반짝거리는 검신을 한 번 비춰본 그녀가 오른손으로 쥔 검으로 그의 왼쪽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그대의 방황하던 생은 나 딜라이나 다룬드가 지금 거두었으며, 그대는 지금 이 순간 내 것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대는 나의 기사. 경은 내 영광을 위해 싸울 것이며, 나 역시 주인으로서 경의 명예를 지킬 것을 맹세한다. 경은 오직 이 검으로만 죽을 수 있다.”

엄숙한 목소리로 내 손으로 네 생명을 거두기 전까지는 죽지 말라는 뜻을 전하고 나니 갑자기 검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의 생명의 무게. 충의의 무게.
공녀로서 날때부터 지고 있던 무게들 보다 이것이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기사. 오직 나만의 것이 되기 위해 키워진 이 아름다운 것을…….

“일어나세요, 나의 기사.”


/ 안녕~~ 어제는 잠들어가지구ㅜㅜ 늦어서 미안해! 좋은 하루 보내~~

866 이름 없음 (FurIAGMYaI)

2022-10-11 (FIRE!) 18:12:12

>>865

어린 시절에도 이런 느낌의 선언이 있었던가. 물론 그땐 검이 아니라 그저 장난검 검처럼 사용할 수 있는 나뭇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제 어깨를 치는 것이 그런 나뭇가지가 아니라 검이라는 것에 상당한 무게감을 느끼며 사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이 선언은 한 사람을 그대로 취하겠다는 의미. 그리고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이는 제 목숨을 다해 충성을 하겠다는 맹세의 표시였다. 누군가가 굳이 어린 시절의 약속을 왜 지키려고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사내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명확하게 모두를 납득시킬 대답따윈 없었으니까. 그냥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냥 이 공녀의 기사가 되어 일생을 살아가고 싶다. 단지 그 뿐이었다. 사소한 이유야, 거기에 도다르게 된 원인은 있었으나 그것을 굳이 입에 담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명하신대로."

부드러운 정원의 바람이 불 무렵, 사내는 천천히 자리를 일으키고 고개를 제대로 들어 그녀를 마주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하며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이니 그녀의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어릴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마냥 연약하고 무디지 않은 성격이 얼굴에서 묻어나는 것 같아 역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허나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때의 그녀도, 지금의 그녀도 결국 똑같은 존재였기에. 그 본질이 달라지진 않았을테니까.

"그럼 공작 각하에게도 보고를 드리러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공작 각하는 어디에 계시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공녀님의 기사라고는 하나, 어쨌든 전체적으로 보자면 다룬드 가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누군가의 기사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애초에 사내가 여기에 들어와있다는 것은 이미 공작과의 이야기도 다 끝이 난 것이긴 하나 그럼에도 정식으로 보고를 하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바로 기사로서의, 그리고 귀족으로서의 예의였다. 자작가의 차남이라고는 하나 귀족이었으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서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정식으로 제국에서 그 직위를 인정한 기사였으니.

/미안할 것이 뭐가 있어! 아무튼 이어둘게! 라고는 해도 사실상 거의 끝자락 같긴 하지만 말이야.

867 이름 없음 (aNFBNWtHKw)

2022-10-18 (FIRE!) 17:34:41

“…이리 꿈이 크신 줄은 몰랐습니다.”

제 약지에 반지를 끼우는 걸 내려다보며 나지막히 뱉었다. 천천히 제 눈높이에 맞춰 내려오는 시선이 닿기 전에 고개를 돌린다. 아주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빛이 닿는 모든 게 반짝이고, 약하게 이는 바람에도 꽃향기가 실려올 만큼. 다만 당신과 나, 둘 중 그 누구도 웃음짓지 않았을 뿐이다. 오직 우리만이 누군가의 장례를 치르듯 표정없이 서 있었다.

막바지에 이른 축하 연회와 함께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피로를 핑계로 먼저 올라온 방은 아늑하고 향기롭다. 눈에 닿는 모든 것이 새 것 같다. 지금까지 원하던 게 이런 것 아닌가. 막상 손에 쥐고 나니 허탈하다. 감당하기 어려운 마음을 들고 스스로를 긁어대다, 견딜 수 없을 때쯤엔 당신에게로 화살을 돌린다.

“처음부터 솔직히 말씀하셨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진 않았을 텐데. 몰라보아 미안하다 해야 합니까?”

막 문을 열고 들어선 당신을 마주본다. 그 두 눈동자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읽을 수 없다.

/ 꼬인 사랑.. 애증.. 같은 걸로 굴리고 싶다 ㅎㅁㅎ 처음에는 황족인 A(참치캐)랑 B(내캐)랑 연인이었는데 B 야망이 커서 황태자랑 약혼함.. 그러다 황태자랑 황제 죽고 A가 황위 오르게 되면서 AB가 결혼하게 됨... 같은 상황이야~~ 황제랑 황태자 죽인 게 진짜 A인지는 참치 맘대로 해주면 될 듯 ~.~ 텀 많이 느릴 수 있어서 미리 양해 부탁해 ㅠ

868 이름 없음 (WI0rkJ1vg2)

2022-10-19 (水) 00:31:07

>>867

소년은 패자(敗者)였다.

황제의 4번째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아온 소년에게 있어서 권력이란 머나먼 무언가였으며, 형제들간의 알력이라는 것은 시시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애시당초부터 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무료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으니까. 천부적으로 타고난 싸움꾼이었으나 항상 그는 무력하게 패배를 하였고, 몇가지 재주─세력을 형성하거나, 온갖 학문에 대해 뛰어난 식견 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무료함을 채우는데에 치중할 뿐, 외부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는 그저 그렇게 패자가 되어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있어서, 한순간이나마 색채를 더해주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소녀의 눈에 깃들어 있는 색채에 대해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 색채가 광채로 변해갈 때 쯤에야 그는 그 소녀에게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그녀와 연인이 되었고, 그 광채가 자신의 것이 되었음에 만족하며 지낼 뿐이었다. 하지만 그 광채의 의미는, 그가 짐작하지 못한 그녀의 마음속 갈망임을, 소년은 알지 못했다.

─왜?

광채가 변절해 자신을 떠나가고, 그렇게 떠나간 광채에 대해 분노를 토하던, 소년이었던 남자는 방에 모든것을 부수고 나서야 상황을 냉철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 그녀가 원하는 것은 결국 나와 같이, 그저 모든 것으로부터 피하는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주마, 네가 그렇게 돌아올 수 있다면, 기꺼이 내가 그리해주마. 그는 천천히, 방안에 있던 가장 온전한 물건인, 핏빛의 액체가 담긴 와인잔을 들어올려 한 모금 축인뒤 새벽녘의 하늘을 잔을 통해 비추어 보았다. 피로 물든 하늘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가볍게 힘을 주자 와인잔이 깨져 나가며 핏빛 하늘이 산산조각으로 부숴져 내린다.

──그 뒤로는 너무나도 간단하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황위 계승전에 이어서 그는 오히려 자신을 지지하는 군부의 세력을 적극적으로 흡수하였고, 역으로 각종 정보들을 수집하며 형제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정치하는데 있어서 가장 위험한 정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흘리는 그들의 행태를 보며 그는 결국 이들도 한낱 더러운 토사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을 차렸을때, 그는 황태자를 넘어선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그는 결국 황태자의 세력과 정면으로 맞부딪혔고, 마침내 황성을 지나는 큰 문─당시 소녀는 그에게 매수 당한 친가에 의해 집에 돌아가 있었다.─의 앞에서 주먹을 휘둘러 단 한번에 그의 머리통을 깨부숴버렸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장년인에게 다가가 천천히 다가가 입을 열었다.

"이제 저 밖에 안남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황태자의 자리에 올랐고, 그로 부터 2달 뒤, 그는 황위를 계승하며 만백성의 환호 아래 그는 천천히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자신은 스스로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빛내고자 할지라도, 결국 자신은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못했으니까,
공허하기 그지 없는 광대의 장막이 닫히고, 그는 조용히 그녀의 방으로 찾아갔다. 그가 그렇게 시선을 돌리자 소녀였던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책망인가, 아니면 증오인가. 왜 그런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것인지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가 떠났을때와 같은 똑같은 잔에 똑같은 핏빛 액체를 한모금 들이키며 입을 열었다.

"무럿이 솔직한것인지 나는 모르겠소. 나는 아직도 변함이 없는 존재라고 밖에 할 말이 없겠지."

여인은 알까, 아직도 그는 소년인 상태 그대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말이다. 아마 이제 그 유약하던 소년은 없다고 그녀는 생각할까? 아니면 그 소년이 아직까지 미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순간 소년의 입이 떨어지며,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패자(敗者)로서 살아가고자 하였으나 단 한가지를 가지지 못하여 스스로 패자(覇者)가 되었고 하늘을 불살라 생명(황가)을 취하니 그 목을 축이는 것은 결국, 패자(敗者)인 것을 말이지."

//원하는 대로 제대로 뽑혔는지 모르겠네, 씁
//일단 모티브는 던파의 폭룡왕 바칼 + 당 태종 이세민이야!

869 이름 없음 (Q6UrlCxNHI)

2022-10-19 (水) 22:28:17

>>868

“폐하께서 변함 없으시다면 제가 틀린 게지요. 사람 보는 눈은 조금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나봅니다.”

건조한 목소리에 아예 몸을 돌리고 섰다. 자조하듯 터지는 웃음에 양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지그시 감았다가 뜨는 눈. 하늘은 어둠에 잠기고 유리창에 비친 불빛만이 일렁인다. 어린 시절부터 욕심이 많았다. 양손에 인형과 새 옷을 쥐고도 저쪽의 풀꽃 하나를 더 갖지 못하면 그게 못내 억울해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지금보다 더 좋은 것, 더 귀한 것, 더 많은 것을. 할 수만 있다면 그 누구에게도 몸을 낮출 필요 없는 곳까지.
당신과의 단란한 한때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으나———. 찰나의 호시절(好時節)이었다. 당신에게서 발견했던 빛이 사라졌다 여기지는 않았다. 그게 제가 찾는 것이 아니었을 뿐. 그러나 그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 것도 사실이었다. 사랑의이유가 끝내 저버리고 마는 이유와 같다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가볍습니다. 이렇게 된 게 제 탓이라 책망하실 일은 없을 테니.”

혼잣말 중얼거리듯 내뱉고선 일순간 당신을 향해 선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비틀대는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서 당신이 쥔 잔으로 손을 뻗었다. 이윽고 얄팍한 유리잔이 손가락에 닿으면, 그대로 감싸쥐고 남은 것을 들이켰다. 교양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행동이었다.

“…내게 남은 사랑도, 원망도 없다고 말해요.”

빈 잔을 다시 당신 손에 쥐여주며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약하게 굴게 되는 건지는, 스스로도 몰랐다.

/ 그냥 편하게 이어주면 돼~~! 잘 부탁해 ㅎㅎ

870 이름 없음 (0c4Gyyu2yw)

2022-10-20 (거의 끝나감) 00:20:05

>>869

사내는 알고 있다. 지금 그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말이다.

알고 있다. 어렸을 당시는 몰랐으나, 지금에 와서 그녀가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는 어느새 비어버린 잔을 내려다 보았다. 그래, 그렇기에 그녀를 좋아한 것이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그 광채는 사람으로서 가질수 밖에 없는 그 욕망의 색채였으니까, 아니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갈구했기에 그는 그녀에게 이끌릴 수 밖에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를 자각하게 된 것은 아주 어렸을때였을 것이다.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한 노파가 자신을 찾아와 이야기 하던 자신의 미래를, 떠올린 시점부터 말이다.

[황자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한 용이 될 것입니다. 저희 같은 한낱 인간들을 오시할 정도로 가장 위대한 자가 될 것이지요. 허나 그 정점에 도달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의지이자, 본인의 의지가 아닐것입니다. 그 빛을 취할 것인지, 취하지 않을 것인지, 그것은 오직 황자님께 달렸을 테지요.]

그 모든 이야기들은 본인을 제외하고 비밀로 붙여진,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 예언이 들어맞았음에 사내는 코웃음 칠 수 밖에 없었다. 버리고자 하여 패자를 자처하였으나 결국에는 천하를 거머쥐게 되었다. 아까 전, 자신의 탓이라 책망할 일은 없을거라는 소녀의 말에 소년의 핏빛 눈동자가 가만히 소녀를 응시한다. 그 눈동자가 간직한 것은 끝모르는 무료함, 그리고 세상을 뒤덮고도 남을 만큼의 강렬한 광기(狂氣)였다.

─아직 그녀가 미운가? 너무나도 미웠다. 자신을 떨어트린 그녀가 너무나도 증오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녀가 사랑스러운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강욕을 드러낼 정도로 사랑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녀가 비워낸 자신의 잔에 조용히 레드와인을 따라내었다. 마치 피의 강을 만들어내는 것 처럼, 그 레드와인은 넘실거리듯 그의 손길을 따라 흘러내렸고, 양쪽 잔에 모든것을 따라낸 그는 천천히 다시 잔을 손바닥 안에 거머쥔채 입을 열었다. 선이 살아있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간직한 외모가 핏빛 눈동자와 딥프러시안 블루의 머리카락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제국의 젊은 황제이자 오만한 천재가 소녀를 가만히 응시하며 대답하였다.

"어차피 그대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아니던가?"

무미건조한 목소리,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 본다면 거룡의 목울림을 연상시킬, 폭발할 듯한 감정이 담겨 있음을 알게될 것이다. 동시에 그의 손에 쥐어져있던 잔이, 그녀를 처음 만났을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손아귀에서 깨져나간다. 마치 세상을 깨트려 부숴버릴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역으로 묻겠도다, 그대는 나에게 무슨 감정이 남아 있는가? 아니, 내가 그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게, 지금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중한것인가."

거대한 용이, 소녀를 바라보며 숨을 내뱉었다.


/이런말이 있지. 결국 사랑하게 된 쪽이 패배자라고, 그래서 황제는 패자(覇者)가 되었지만 결국 패자(敗者)가 되어버린 셈인거지....

871 이름 없음 (uKAQCzI5m2)

2022-10-20 (거의 끝나감) 00:24:35

>>870

//동시에 그의 손에 쥐어져있던 잔이, 그녀를 처음 만났을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손아귀에서 깨져나간다.

-> 동시에 그의 손에 쥐어져있던 잔이, 그녀가 떠나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손아귀에서 깨져나간다.

로 수정!!

저건 컴이고 이건 폰으로 작성한거야!!

872 이름 없음 (x3KTa4IofA)

2022-10-20 (거의 끝나감) 03:19:10

>>870-871

방금 전 당신의 잔을 비워내던 건 없었던 일인 양 제 몫의 잔에는 심드렁한 태도였다. 실은,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잔에 담긴 것을 쏟아버리고 잔을 던져 산산조각내지 않도록. 어디를 향한 분노인지 알기 전까지는 섣불리 말을 뱉거나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꼴 같잖은 자존심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미 충분히 우스운 꼴인데 그깟 자존심 운운하며 비꼬는 말에 흠집 하나 더 생긴다고 크게 달라질 게 있을까. 그러나 당신의 물음에는 하, 하는 날카로운 웃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제 형제를 죽인 사람치곤 꽤 깜찍한 물음이 아닌가.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잔이 깨졌다. 움츠러들었던 것도 잠시, 처음처럼 꼿꼿하게 선 채 당신을 마주보다 한 발자국 다가선다. 와인인지 피인지 분간이 어려운 것이 떨어지는 당신의 손을 제 양손으로 꽉 쥔다. 깨어진 조각이 제 손에 흠집을 낼 때까지.

“한때는 당신을 사랑했고, 지금은 원망도 사랑도 않는다 말하지 않는 당신이 끔찍합니다. 지금 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목구멍에서 울컥이듯 쏟아지는 목소리가 일순간 멈춘다. 두 사람이 지내기에도 지나치게 넓은 방을 지독한 적막이 가득 메웠다.

“당신이 내가 원했던 걸 전부 가지고 있으니까.”

아까와 같은 웃음에 얼핏 황홀경이 스치는 듯한 눈동자. 그러나 이윽고 시선을 돌려버리고 만다. 황급히 가린 입술에 맺혔던 건 웃음이었던가.

/ 아앗.. 황제폐하 레전드 똥차한테 걸리셨네 ^ㅁㅠ

873 이름 없음 (Gvk0N6dOLY)

2022-10-20 (거의 끝나감) 09:20:31

>>872

아아, 그 눈동자다. 황홀경 안에 담긴 그 강렬한 욕망의 눈빛.

처음부터 그를 사로잡은, 패배자로 만든 그 눈동자였다. 형제도, 자신의 아버지 마저도 한낱 더러운 토사물, 그 이상도 그 이하로도 보지 않는 이 젊은 황제에게 있어서 지금 이 눈앞에 있는 추악하고도 덧없이 아름다운 한떨기 꽃은 자신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것은 무료한 황제에게 있어서 마약이나 다름 없는 존재 일 것이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지금 이 황제는 하루에도 수십명을 죽여가며 그 삶에 색채를 더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러 올 칼날을 기대하며 피로서 목을 축이지 않았을까.
중요한 것은 여인은 지금 자신의 가치가 그 무엇보다 드높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무료함에 지쳐버려 언제라도 광기에 물들 수 있는 오만한 천재에게 있어서 지금 그녀는 그 어떤 무언가보다도 그를 옭아맬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사슬임을 모를것이다. 이미 황제는 알고 있다. 그녀가 그 어떤 것 보다도 지금의 자신을 별로 사랑하지 않음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를 손에 움켜쥐고 싶었다.

"어차피 흙더미와도 같은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이런 자리는 전혀 중요치 않지."

오만하였다. 제국의 황좌에 올라서면서,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대가 이것이 중하다고 하다면은, 난 이걸 끝까지 지킬것이다."

그래, 좋은 정치로 백성들의 배를 불려주마. 강력한 병권을 기반으로 정복을 진행하고 제국의 권세를 드높여 주마. 그렇게 함으로서 나의 악명보다도 드높은 명예를 세움으로서 2천년이 지나도 쇠하지 않을 제국의 기반을 마련해주겠노라. 그것이 지금 그대가 바라는 황제로서의 권세와 힘을 사랑한다면 말이다. 나에게는 그럴 힘도 있고, 시간도 있으니 말이다. 왼손에 깃든 상처에 느껴지는 차가운 온기를 느끼며 그가 천천히 소녀를 응시한다.

"너 또한 마찬가지다. 너는 내가 가지지 못한 유일한 것을 가졌으니, 나는 너를 손에 쥔 채 살아갈 것이다."

연기라도 좋았다. 한순간만이라도 좋았다.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좋았다. 지금의 황제에게 있어서, 이런 광기에 사로잡힐 정도로 자신의 삶은 무료했고, 그 무료한 삶을 깬 것은 그녀였으니까. 그 순간 황제의 눈빛이 아무런 색채도 띄지 않은채, 자연스럽고도 부자연스럽게 뒤틀린 미소를 자아내었다. 누군가 본다면 너무나도 순수한 미소겠지만, 누군가 본다면 광기와 욕망에 점철된 미소일 수도 있으리라. 과연 그녀는,

"도망 갈 꺼면 지금뿐이다. 아니, 도망가도 상관없다."

─어떤 모습을 보고 있을까.

"너는 이제 내 것이니까."

그 세상 어떤 것보다도 증오한단다. 아름다운 꽃이여.


/어차피 둘다 쓰레기로는 쓰레기지 않을ㄲ..... 한쪽은 권력욕에 사로잡혀 남자를 헌신짝처럼 버렸고, 한쪽은 집착에 사로잡혀 자신의 형제를 쳐죽인 다음 그 수급을 아버지 면전에 던졌으ㄴ....
/여담이지만 선대 황제는 즉위식 전날에 사망했어. 황태자를 죽인 넷째 아들의 행보에 충격을 먹고 심적 타격이 너무 커서 기력이 한순간에 쇠약해진 탓에 그만....

874 이름 없음 (gbuWS/HQxk)

2022-10-20 (거의 끝나감) 23:55:37

ㄱㅅ

875 이름 없음 (mTCHoY1mI6)

2022-10-23 (내일 월요일) 11:16:10

>>873 시간이랑 체력이 없어서 계속 늦어지네..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이어놓을게 미안 ㅠㅠ!

876 이름 없음 (owVR7LZ0ug)

2022-10-23 (내일 월요일) 18:29:42

'당신의 스타일을 존중하지만, 데드라인은 오늘 저녁까지에요.'

도심의 복잡한 거리 한켠에서, 여인은 벽에 기댄 채로 한숨을 푹 쉬었다. 드물게도 활기가 만연한 뭇 사람들 틈에서는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거리며, 사람들이며, 행복이 가득한 날이었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던, 죄악스러운 혼란과 사투의 시대가 겨우 끝난 직후였으니까. 수도 전체를 둘러싼 축제의 열기는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다는 사람들의 기쁨과, 다시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희망의 반영인 듯이 찬란했다. 그렇지만, 이 젊은 아가씨만은 행복에 겨운 사람들 틈에서도 우울한 표정을 고수하며 떠안은 고민거리를 곱씹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의 고민 또한 어제까지의 그림자 드리운 고뇌에 비하면 단란하다고 할 만했다. 아니, 평화의 시대가 아니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행복한 고민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평화의 바람과 축제의 열기가 수도를 휩쓸면서, 전란기에는 오랜 시간 잊혀져 있던 문화들 또한 사람들에게 돌아왔다. 특히나 연극은, 혼란을 종식시키는 데 이바지했다는 여러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수많은 관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업적에 비해, 그들 각자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는 점은 오히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오랜 시간 일을 쉬어야 했던 무수한 극단들이 수도로 모여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벌써 수도의 여러 홀과 극장에서 영웅담을 재해석한 연극들이 상영하기 시작했다. 전쟁 전에 명성이 대단했던 모 여성가극단도 당연하다시피 기회를 얻었다. 사흘 뒤면 수도의 유서 깊은 극장에서 그녀들의 연극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래서 그 연극의 주연 중 하나를 맡게 된 이 젊은 아가씨는, 한숨을 픽 내뱉으며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겠어, 배역의 성격도, 방향도...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우울함을 곱씹으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어쩌지, 이제는 정말 시간이 얼마 없는데..."


/원래는 >>380을 보고 이어보면 어떨까 싶어서 써봤던 건데, 너무 시간도 지났고 이제는 없을 것 같아서 한번 구해볼게
/기본적으로 어떤 배역을 맡은 배우와 그 배역의 모티브가 된 세계관 내의 실존인물이 우연히 만난다는 느낌을 생각하고 쓴 건데, 이게 아니더라도 맥커터만 아니면 어떻게 이어주던 괜찮아
/어... 이제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혹여나 >>380이 아직 있다면, 그 내용으로 이어주더라도 좋아.

877 이름 없음 (z5DMf9RAPQ)

2022-10-24 (모두 수고..) 08:49:35

>>876
쾅! 수심이 어린 한탄을 집어삼키듯, 근처에서 굉음이 들렸다. 나무 테이블을 내려지는 듯한 소리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짜증이 담긴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소리의 근원지는 배우가 서 있는 곳에서 가까운 주점이었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탓인지, 취기가 묻어나면서도 격앙된 목소리로 쏘아붙이는 말들은 귀를 기울인다면 가게 밖에서라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가라는 말이 말같지가 않아요? 그래요, 다 말할 테니 입 다물고 받아나 적으시죠. 돈 때문이에요, 그 빌어먹을 싸움에 낀 거. 그 싸움 하면 내 가족 생계를 보장해주고, 때려치면 그날로 밥줄을 끊는댔으니까. 우리 가족 배 곪는 게 싫어서 꼈어요. 이유는 그게 다예요. 영웅? 그건 떠들기 좋아하는 작자들이나 하는 소리고, 저 쪽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으면 그 편에 붙었을 걸요?"

비웃는 듯한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잠시 목소리가 끊겼다가, 조금 지나자 한층 가라앉은 듯하지만, 여전히 격앙되어있는 듯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사명이네 의무감이네, 적어도 나한텐 해당사항 없어요. 나 살고 내 가족도 지키기도 뼈빠지겠는데 무슨 놈의 세상을 지켜요? 지킨다 쳐도, 그 대신 내가 죽으면, 내 배우자, 내 새끼가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그냥 개죽음이지. 이 짓거리 다신 안 할겁니다. 돈 줘도 안 해요. 받을 거 다 받았고 모을 만큼 모았으니까. 이제 됐죠? 듣기 좋고 팔릴 만한 영웅담은 딴 데서 알아봐요, 호사가 양반. 나한테서 나올 이야기라곤 이 정도니까."

그 말을 끝으로 목소리는 끊겼고, 이윽고 소리가 났던 주점에서 족히 2미터 이상은 될 듯한 기골이 장대하고 우람한 체형의 여성이 걸어나왔다. 대충 묶어내린 짧은 은발은 머릿결이 억센지 잔머리가 삐져나와 있었고, 있는대로 치켜올라간 짙은 눈썹이 미간은 있는대로 구겨져있었으며, 안 그래도 삼백안이라 더욱 사나워보이는 형형한 빛을 띤 벽안을 감싼 눈매는 퍽 날카로워 험악한 인상을 더했다.

"에라이, 술맛 떨어지네. 재수가 없으려니..."

퍽 살벌한 투로 투덜거리며 주점에서 벗어나 터덜터덜 걷던 여성의 형형한 시선이 우연인지 우두커니 서 있던 배우를 향했지만, 이내 여성은 고개를 돌리고, 술이라도 깨보려는 듯 허리에 찬 수통을 풀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878 이름 없음 (dySu8XDb9Q)

2022-10-24 (모두 수고..) 11:58:11

>>876 오. 이걸 이제야 봤네. 일단 한참 옛날것인데 이어주려고 생각해준 것은 고마워!
허나 이미 다른 이가 이었으니 내가 잇긴 힘들 것 같네. 아쉽다. 아무튼 즐상판!

879 이름 없음 (DHKy8oc0ME)

2022-10-24 (모두 수고..) 17:30:06

>>877

요란한 충격음이 들린 순간, 아가씨는 반사적으로 귀를 막고 머리를 숙였다. 학습된 동작이다. 포격음이 들릴 때마다 이러는 것에는 이골이 나 있었다.

그렇지만, 포격음 치고는 너무 작지 않나 싶은 의심에 고개를 들어보니,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녀는 멋쩍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고 다시 원래대로 벽에 등을 기대었다. 남몰래 내뱉은 걱정스러운 중얼거림이 뒤따랐다.

"폭죽 터뜨릴 때도 이러려나, 나..."

아가씨는 입을 삐죽거리며 소리의 진원지를 흘겼다. 문 단속도 되어있지 않은 주점에서 쩌렁쩌렁 흘러나오는 성난 목소리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역행하는 것처럼 홀로 섬뜩했다. 아까의 굉음도 그렇고, 어쩐지 전쟁 중을 다시금 떠오르게 하는 분위기에 아가씨는 내색하지 않으면서도 미미하게 어께가 떨렸다. 괜시리 주변을 다시 훑어보고, 여전히 자신이 축제의 한복판에 있음을 확인한 뒤에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 여전히 그림자같은 전시의 기억이 남아있음이 새삼 체감되는 것만 같았다.

곧 문에서 걸어나온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전사일까?' 기골이 장대한 인상이나, 아까부터 크게 울렸던 목소리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합리적인 추측인 것 같았다. 그대로 아가씨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모습을 유심히 훔쳐보기 시작했다. 곧 성큼 성큼 걸어온 여전사가 어느 새 자신의 앞까지 걸어와서, 기어코 자신을 바라봐 눈이 마주치는 순간까지.

"아, 죄, 죄송...?"

황급히 눈을 내리깔고 사과의 말을 건네었지만, 그새 여전사는 자신으로부터 눈을 떼고, 수통을 꺼내 물을 마시고 있었다. 황망함을 느끼며 그녀를 불만스레 쏘아보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새삼 모르는 사람 상대로 뭘 하는 건가 하는 허탈함이 느껴져, 아가씨는 결국 한켠으로 시선을 돌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하는 거람, 나도 시간이 없는데."

잊고 있었던 배역에 대한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자, 일련의 소동도 순식간에 사소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대로 다시 고민에 잠기려는 찰나, 언젠가 들었던 조언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누구라도 좋으니, 사람을 만나 대화라도 해 봐요. 연기도 결국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아가씨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다시 여전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사람에게?' 많이 격양된 것처럼 보이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가, 어쩌면 괜히 한 대 얻어맞는 일이 생기지는 않으려나 싶어 망설임이 생기다가도, 그녀는 곧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878 /꽤 옛날 글이라서 없을 줄 알았는데 아직 있었구나... 아쉽게 됐지만, 그쪽도 즐거운 상판 하길 바라. 답해줘서 고마워!

880 이름 없음 (z5DMf9RAPQ)

2022-10-24 (모두 수고..) 21:30:20

>>879 큼지막한 수통을 다 비운 덕인지 차차 머리가 맑아졌고, 이내 그는 사람을 하나 담그기라도 할 것 같았던 조금 전보다는 나은 얼굴로 수통을 내렸다. 이윽고, 웬 (당연히 자기보다는) 작은 여성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그는 제게 한 말인가 가늠해보려는 듯 의아한 얼굴로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아닌 땅바닥을 향해 있는 시선에 혼잣말이었나보다 하고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조금 전 제 앞에 있었던 여성이 말을 걸어오자,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괜찮냐라, 너무 술에 취해보였거나, 아니면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나? 부끄럽네. 양육자가 돼서 이러고 다니면 안되는데. 배우자와 함께 있을, 옹알이밖에 못하는 제 어린 딸이 생각나 부끄러워지는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차분해진 투로 여성에게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주정뱅이나 화가 나 보이는 덩치 큰 자를 보면 괜찮냐고 물어보는 대신 피하라고 말하고픈 생각이 순간 머릿속에 머물렀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저 쪽도 액면가는 성인이고, 말해봤자 꼰대질이겠지. 일 때문에 엮인 사람들 중에 저만한 체구인데도 잘만 싸우던 사람도 제법 있었고. 가면서 술 좀 더 깨고 들어갈까. 오늘만은 마시고 풀어도 된다고 해줬지만, 지금 이 몰골로 들어갔다간 분명 속상해할 테니까. 우리 귀염둥이 볼 낯도 안 서고. 그래, 힘든 건 건강하게 풀어야지. 그런 다짐을 하며 가려던 길을 가려다, 그는 술이 덜깬 중에도, 자신을 노골적으로 훑어보거나 쏘아보던 상대의 시선을 느꼈음을 떠올렸다.

"다른 용무는 없어요? 없으시면 이만 가보게요."

/여전사라는 언급 보고 궁금해진 건데 내가 남캐를 냈으면 남전사라고 지칭했을까?

881 이름 없음 (838pcrpbnA)

2022-10-25 (FIRE!) 01:10:33

>>873

제가 일생동안 바라왔던 것을 전부 쥐고, 모두를 발 아래 두고도 이 모든 게 아무 의미가 없다 하는 당신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그 모든 걸 제 뜻대로 움직이겠다는 말은 꼭 절절한 사랑고백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러나 여전히 당신이 나를 사랑할 리는 없다. 갑작스레 방 안에 갇힌 채 며칠을 보내며 내린 판단이었다. 나오자마자 듣게 된 당신과 나의 결혼 소식엔 잠시 착각하기도 했으나——, 당신의 말을 듣고서 작게 조소했다. 결국에는 쓸모였던 게지.황태자가 저를 택한 이유가 있듯이, 당신 역시 필요에 따라 나를 고른 것이다. 하긴, 사랑만큼 지금의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을까. 추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저는 모든 걸 손에 쥐고 싶어 지난 날의 당신도 버리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욕심이 아주 많아요. 변덕도 아주 심합니다.”

당신의 미소를 보며 함께 웃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듯 온화한 미소, 그러나 시선에 서린 냉기까지 완벽히 감추지는 못했다.

“당신에게 없는 단 하나가 제게 있다면, 당신은 당신이 가진 모든 걸 주어야 할 겁니다. 저를 온전히 손에 쥐어야겠다면… 글쎄요, 알아서 잘 해보셔야겠습니다.”

내내 발을 옥죄고 있던 구두를 벗어던지고 서서 당신을 바라본다. 입술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고.

“제게 있는 두 다리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고 양 손에 무엇을 쥐고 싶어할지 모르니 말입니다.”

머리를 장식하고 있던 것들을 빼내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이따금 섬세하게 세공된 부분들은 떨어져나와 바닥을 구르기도 했다.

882 이름 없음 (KWtBKqRYi2)

2022-10-25 (FIRE!) 01:18:21

>>881에 대해 한가지 질문!!

강제로 입맞춰도 됩니카?(....)

는 아마 내일 아침에 답이 올라갈꺼여!!

883 이름 없음 (YnVVeNVtj.)

2022-10-25 (FIRE!) 08:15:10

>>880

수통을 한번에 다 비워버리는 모습에 아가씨는 살짝 감탄했다. 이 덩치 큰 여인의 태도는 투박하면서도 여러모로 호방한 데가 있었다. 신기함을 담아 다시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멍청하니 올려보다가, 곧 숨을 고른 그녀의 대답이 들려오자, 아가씨는 잠깐 텀을 두고 적당한 대답을 생각해내었다.

"다행이네요, 꽤나 큰... 소리가 나길래."

다시 방금 전까지 여전사가 있었던 주점 쪽을 흘끗거리고서, 반응을 조심스레 살폈다.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떠날 태도로 보였다. 어떤 식으로는 말을 붙일 필요를 느껴 아가씨는 황급히 부연했다.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저한테는 언쟁하는 소리로 들렸는데요. 상당히 험악하게."

여기까지 이야기하니, 상대의 반응을 조심스레 살필 필요가 느껴졌다. 아마도 화나는 일을 상기시키는 말이었을 테니까. 괜시리 자극하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 사람에게 띄워볼만한 화제는 이것 뿐이었다. '말을 붙인다는 거, 생각보다 어렵구나.'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가씨는 긴장된 태도로 질문했다.

"혹시 무슨 일 있었나요? 겨우 돌아온 좋은 날에 화를 내야 한다는 건, 괴로운 일일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전사, 내지는 사내라고 불렀을 거라 생각하는데...

884 이름 없음 (3Ie6rSNVtE)

2022-10-25 (FIRE!) 08:31:23

>>882 웅 괜찮아 ㅋㅋㅋㅋㅋㅋ 좋은 아침!

885 이름 없음 (qUNt16e6iA)

2022-10-25 (FIRE!) 11:45:25

>>881

결국 용이 되어버린 남자, 패황(覇皇)의 자리에 앉아 만인을 오시하게 되었으나 그 마저도 그에게 흥미를 받지 못하는, 무언가가 결여되어버린 남자에게 있어서 이 모든 것은 허울 좋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갈망을 가라앉히고자 물을 마셨으나 그 물이 결국 바닷물이었던 것 처럼 그 무엇도 그에게 충족감을 주지 못하였다. 그것은 결국 사내에게 있어서 정신을 좀먹어가는 저주나 다름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가질수 있고 그런 위치에 있으며 그러한 힘까지 있음에도 하늘은 단 하나, 그것을 허하지 않았으니까, 그것이 바로 그에게 걸린 주박이었으니까.
황태자였던 형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비굴하게 굴었을때가 떠오른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황제가 인두겁을 쓴 괴물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의 마음에 상처 하나 주지 못하였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떠나갔을때의 그 분노에 찼던 그 순간이 용이 되기전의 남자에게 남긴 가장 큰 상흔이자, 지금의 역린이 되었을지도 모를 것이다. 순간 왼손이 아주 잠깐 시야에 들어온다. 레드와인으로 범벅이 되어 손에 흐르는 피와 같은 그 자태에─단련된 사내의 손아귀는, 결국 손바닥에 얕은 상흔만을 남겼을 뿐이었다.─자신의 길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그 모습이 연상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못한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본다.

─그 순간이었다. 그 미소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래, 자신이 왜 손에 피를 뭍혀가며 이곳에 왔는지를.

"상관 없다."

무엇이 상관이 없단 말인가. 그는 갑자기 타오르는 갈증과 더위를 견뎌내려고 하려는 듯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던지고, 셔츠의 단추를 풀어 헤쳤다. 단단하고도 오밀조밀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갑주, 그 위로 아로새겨진 상흔의 흔적들은 마치 굳건한 용의 자태와도 같았으며 그 모든것이 조화를 이룬 모습은 그 어떤 예술품을 가져다 놔도 그 빛이 바랠 정도였다.
그녀의 발을 묶던 신발이 벗어던져지고, 머리를 장식하던 족쇄와도 같은 장신구가 떨어져나간다. 재정관리자가 봤다면 저게 얼마짜리인데, 라고 탄식을 내뱉을 정도였겠지만, 사내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눈앞의 소녀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대해 용은, 지금까지 타인들이 봐왔던 어떤 모습보다도 흥분해있었다.

─사랑하기 때문인가?

"그리고 알고 있다. 그 어떤 것도 너에겐 족쇄가 되어주지 못하겠지."

─잘 모르겠다. 그럼 증오인가?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너를 붙잡을 것이다."

─그 또한 잘 모르겠다.

미웠던 순간, 같이 있던 순간, 아주 잠시나마 모든 것을 놓아도 되지 않을까란 시절, 그 모든 상념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아, 결국 너가 내 삶을 완성시켰구나, 그렇기에 나는 영원히 너에게 이길 수가 없는 것이구나. 그저 네가 떠나가면 다시 이 손에 움켜쥘 수 밖에 없는 것이구나. 그렇게 생각을 마치는 순간 용은 그 강건한 육체로 여인을 포박하듯 벽으로 밀어붙였고, 오른손으로 우악스럽게 여인을 감싼 옷의 앞섶을 움켜쥔다. 리비도(libido)를 일으키는 강렬한 향기에 용이 목울음을 내뱉으며 조용히 소녀를 바라본다.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 너는, 영원히 내 것이다.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너는 내 것이다."

그와 동시에 사랑과 증오, 소유욕으로 점철된 감정이 입술을 타고 포개어진다.

//저질러 버렸어!(즈큥)
//네, 그래요. 반쯤 맛이 간 상탭니다. 어.... 뺨을 때려도 되고 뭔 짓을 해도 오케이!

886 이름 없음 (CfbiakVYm.)

2022-10-29 (파란날) 08:34:39

갱신

887 이름 없음 (jk53Y7grPM)

2022-10-29 (파란날) 20:12:57

와우, 큰일났다. 진혁이랑 미선이도 물렸나봐. 쟤네 서로 삽질하던거 자기들만 몰랐을텐데, 좀비가 되고나서야 붙어다니네. (매점 문 앞을 막아둔 철제 선반 틈 사이로 복도를 살피며 중얼거린다. 대걸레 자루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야, 상태 좀 어때? 창문으로 나가는 건 힘들어보여?

888 이름 없음 (143JeWI5bM)

2022-10-29 (파란날) 20:25:51

>>887 응. (창문을 열고 동전을 휙 던져보며)다른 위치에 소리가 나도 크게 그쪽으로 몰려가지를 않아. 이렇게 낙하지점에 바글거리고 있으면, 땅에 닿기 전에 이빨에 낚아채일 테니 낙상은 안하겠다. 어때, 밥상 위로 떨어지는 제육이 되고 싶은 생각 있어? 없다면 좋겠는데.

/Q. 고등학교? 대학교?

889 이름 없음 (jk53Y7grPM)

2022-10-29 (파란날) 20:29:46

>>888
너무 많이 몰려있다보니 소리가 묻히나보네. (전파가 통하지않는 스마트폰을 잠시 켜보곤 다시 화면을 끈다.) 됐네요. 너때문에 이제 제육 못먹는다. 오, 이렇게 보니까 콘서트장 같기도 한데, 뛰어들면 물결로 옮겨주지 않으려나. 흥 좀 돋궈야하니 노래 한 곡 뽑아봐. (일회용 스푼을 던져준다.)

/A. 생각 안해놨는데......고등학교로 하자! 2층 아니면 3층인가보네!

890 이름 없음 (143JeWI5bM)

2022-10-29 (파란날) 20:38:52

>>889 지금 매대에 남은 음식 빼고는 뭐든 앞으로 먹을 일 없을걸. (창밖에 시선을 고정해둔 채로 스푼을 탁 받고, 아주 자연스럽게)거리에 흐르는 세월에 지는 꽃잎처, 아이 씨, 지금 이럴 때냐.(안쪽으로 고개를 홱 돌려 살짝 째릿거린다.) 노래부르면서 발랄하게 끝나고 싶지는 않아. 가수 지망생도 아니고... 그보다 마침 동전이 2개 남았는데, 누가 먼저 할까?

/OK

891 이름 없음 (jk53Y7grPM)

2022-10-29 (파란날) 20:45:04

>>890
아직 모르는 법이야. 경찰, 군대, 뭐 소방관 님들이라도 와주시지 않을까. 아, 제육먹고싶다. (자연스레 당신의 노래에 심취해 고개를 흔들다 푸핫, 웃음을 터뜨린다.) 아냐, 동전은 아껴두자. 나중에 실내로 나가야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문에서 떨어져 앉아 벽에 상체를 기댄다.) ...묭이 보고싶다. 내 침대에 오줌쌌다고 아침에 뭐라하고 나왔는데 후회돼. 부모님은 무사할려나.

892 이름 없음 (143JeWI5bM)

2022-10-29 (파란날) 20:57:30

>>891 뭔지 알고 아껴 두래...(허탈한 웃음소리와 함께 창을 소리 안 나게 닫고 진절머리를 치며 창가를 등진다.) 묭이는 누구야? 개? 고양이? 설나 하니, 사람은 아닐 거 아냐.(웃다가 살짝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반려동물 같은 거 키워 본 적이 없어서 나는 잘 모르겠지만, 부모님 보고 싶은 건 그래도 똑같구나. 똑같아, 똑같아서, 그, 엄마랑, 다들 괜찮으려나...(살짝 침묵)

893 이름 없음 (jk53Y7grPM)

2022-10-29 (파란날) 21:03:43

>>892
사람? 실화냐. 사람이면 진심 좀비보다 더 무서워. 내 침대에 오줌 누는 사람이라니. 강아지야. 말티즈. 10살. 우리 생각보다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구나? (힘 빠지는 웃음을 흘리며 괜히 까만 화면의 핸드폰 모서리만 만지작거린다. 대기화면을 보면 더 보고싶어질 것 같아서.) ...그... (침묵에 뒤늦게 조심스레 입을 연다.) ...또다른~ 만남도 알 수 없는 운~명인 것을~ (휴대폰을 마이크 삼아 간드러지게 부른다.)

894 이름 없음 (143JeWI5bM)

2022-10-29 (파란날) 21:17:01

>>893 10살? 개가 10살이면 어르신이지? 노인네가 변 좀 못 가렸다고 화나 내고, 나쁜 주인이네.(헛웃음을 흘린다.) 괜찮잖아, 여기까지 와서... 나랑 발톱 넓이까지 공유할 만큼 친하지 못한 게 서운했어? 생각보다 이것저것 신경쓰는 놈이었구나, 너. (이래 저래 아무 말이나 늘어놓다가, 결국 침묵 속에 멍하니 위만 올려다본다.) ...천장, 그러고보니. (다시 창을 열며)위로 올라갈 수는 없을까?

895 이름 없음 (jk53Y7grPM)

2022-10-29 (파란날) 21:30:38

>>894
맞아, 진짜 나쁜 주인이야. 매번 있는 일이니까 한 번 쯤은 넘어가줘도 되는데. (자책이 진심인지, 아무 말이나 내뱉는 중인지 알 길이 없다.) 어어? 양말 벗어봐. 발톱의 반지름을 구하시오. (키득거리며 밀대 끝으로 당신의 발 끝을 쿡쿡 찌른다. 그러다 창을 여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본다.) 영화에서 본 거 같은데, 그거. 해볼래? 가위바위보! (기습으로 주먹을 낸다.)

896 이름 없음 (143JeWI5bM)

2022-10-29 (파란날) 21:37:10

>>895 ...매번 있는 거면 진짜 알츠하이머 아닐까? 아, 아, 찌르지 마. 찌를 거면 나보다 맛탱이 간 급우들부터 찌르라고. 그러긴 싫겠지만. (중얼거리다가 타이밍을 놓쳤지만, 잠시 후 한심해하는 표정으로 말한다.)바보냐? 보통 가만히 있을 때 손을 가위 모양으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활짝 편 손을 흔들어보인다.) 일단 좀 보자고. 말은 했지만 나, 파쿠르 같은 것도 해본 적 없고, 전혀 자신 없단 말야.

897 이름 없음 (lVoPndu3ew)

2022-10-30 (내일 월요일) 22:56:12

>>896
원래 노견들은 다 그래. 하아, 기왕 먹힌다면 차라리 묭이한테 먹힐래. (의미없는 농담을 흘린다.) ...너 머리 똑똑해서 좋겠다. 전교 몇 등이었냐? 참고로 말하자면 난 뒤에서 세는 게 빨랐는데. (자신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한숨을 쉬며 창문 쪽으로 바싹 붙는다. 그리고 몸을 바깥으로 내밀어 위쪽을 살펴본다.) 그런데 해보자고 한 건 어차피 나 시킬 거였다, 이거지? 그래그래. 근데 생각보다 할 수 있을 거 같기도? 중학생 때 비슷한 걸 해봤는데, 그 때랑 비슷해보여.

898 이름 없음 (gvfvSHbWmA)

2022-10-31 (모두 수고..) 08:12:41

>>897 전교 47등, 좀 치지? 학원에서는 꼴찌였는데, 어쩌면 지금 시험 보면 내가 1등, 네가 2등일지도?(창가에서 비켜준 뒤, 주변을 둘러본다.) 아니 아니, 생각을 해보자는 거지. 내가 그렇게 비겁한 새끼로 보였어? 일단 로프 같은 거라도 좀 찾아보자고. 매점 창고에 있으려나. (매대에서 소시지 하나를 꺼내 던져준다.)육체노동 할 거니까 일단 먹고. 중학교때 벽도 타봤냐? 태릉선수촌이 따로 없군.

899 이름 없음 (eZHR4XX/qA)

2022-11-02 (水) 19:27:26

갱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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