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306068> 자유 상황극 스레 3 :: 1001

이름 없음

2021-09-13 08:11:25 - 2022-12-20 23:06:42

0 이름 없음 (wSjOpuFcMU)

2021-09-13 (모두 수고..) 08:11:25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492 이름 없음 (WTwPiFeHQc)

2022-06-23 (거의 끝나감) 22:25:02

“Ston. 더 이상 내 이름을 늘리지 말아주었으면 해, V-58. 푸딩 건은 고려해보지. 빨간 푸딩? 보라색 푸딩?”

생체 반응 확인. 당신의 동공 위아래를 집게손가락으로 붙잡고 늘려 소형 라이트로 빛을 쐰다. 너무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거리를 두고서 동공을 들여다보고는 금새 놓아준다. 그리고 당신의 손목을 붙잡아 맥박 체크. 연구 시설치고는 원시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신과 근접한 전자 기계들이 종종 이상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당신의 맥박을 느끼며, 불온한 기분을 느낀다. ‘동조’되기 전에 손을 뗀다. 자신을 향해 자칭하기는 좀 그러나, 베테랑이 아니면 접촉 역시 일체 금지되어있다.

“그렇게 늦었나? 미안해, 생일파티가 있었어. 근데 너도 알잖아, 여기 통신이 안좋은거. 와이파이가 쓰레기나 다름없어.”

의자 뒷편의 비가시 라이트를 조절한다. 여차할 때의 당신을 제압할 때 필요한 장비다. 그리고 라운드 안경을 고쳐쓰고는, 당신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인다.

“반가워, V-58. 인사는 내가 빨랐으니까 먼저 질문할게. 기분은?”

질문을 하나씩 주고받는다. 그것이 관례다.

493 이름 없음 (YuPVlUciDI)

2022-06-23 (거의 끝나감) 23:19:29

>>493

“오, Ston, 맞아요, 제가 stone 이라고 썼었지요.”

하지만 나는 또 까먹을 거에요. 잊을 겁니다. 나를 보러 오는 사람은 너무나 많고, 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음을 피부로 느낍니다. 손톱 끝 하얀 반달은 나를 인간이라고 비춥니까, 적빛 핏방울이 인간임을 시사합니까. 나는 안다. 내가 이들에게 애정을 가지는 것과 이들이 나에게 가지는 애정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나는 당신들을 사람으로 봐요. 그러니 정이라는 것은 사치스럽다. 나도 이름이 있었을까요?

“하얀 푸딩이 좋아요.”

하얀 푸딩은 우유로 만들어졌대요. 나는 내 눈꺼풀이 타의로 인해 억지로 열리고 갑작스레 빛을 쐬어도 익숙해서 내 할 말을 늘어놓는다. 동공은 빛으로 인해 수축했다. 나의 홍채는 빛을 쐬면 어떤 색으로 반짝이는 지도 기록하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쓸모없는 정보이니 그런 것은 기록되지 않겠지요. 손목 피부 아래로 흐르는 혈은 건강하게 뛰었다. 나는 건강합니다. 내 몸이니까 내가 제일 잘 알아요. 외상, 질병, 스트레스, 무엇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누가 허락하지 않는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허락한 것 같은데 이상해.

“즐거운 파티라서 저를 잊으셨나요? 통신 탓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Ston. 저는 언제나 여기 있으니까 잊어도 사라지지 않는답니다. 아시잖아요.”

방긋 웃습니다. 나는 이 허물같은 대화를 좋아해요. 질문을 하나씩 주고 받을 뿐인데 달갑다.

“늘 같은 대답이지만, 늘 같은 걸요. 오늘도 어김없이 기분 좋은 날이에요. 비록 당신이 3분 51초 늦었다고 하더라도요.”

손목시계 없는 내 손목을 쳐다보았습니다. 나를 찾아오는 연구원들은 손목시계를 좋아한다. 나는 무슨 질문을 하면 좋을까 고민했고, 생각보다 금방 오늘의 질문을 정했습니다.

“생일파티의 주인공에게 무엇을 선물하셨나요?”

494 이름 없음 (C9tHBcDO/.)

2022-07-01 (불탄다..!) 21:16:19

"또 무승부."

손아귀가 아프다. 몸이 받아들이고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의 충격이 아니다. 허용범위를 통증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경련에 가까운 반응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다. 몸이 불편해질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저 녀석에게 들키기 싫다. 그래서 하얗게 질린 손을 애써 꽉 쥐었다. 미치도록 아프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용케 찢어지지 않았다고 생각될 정도다.

내 가슴에 경련이 올 것만 같다.

한참 뒤로 날아가 꽂힌 칼을 향해 눈길을 주지만, 차마 회수하러 갈 수는 없다. 터덜 터덜 뒤로 걸어가 떨어진 무기를 줍는 패배자같은 꼴의 자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어째서 이러고 있는지 솔직히 나 자신도 모르겠다. 이렇게 승리에 연연하고, 갈망했던 적이 이제껏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나마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마지막에 내가 보였던 모든 공격들은 억지나 다름없는 것들이었다. 칼을 다룰 줄 아는 자라면 절대로 쓰지 않을 수들이었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는 무조건 진다.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지금 녀석을 직시하면, 표정을 관리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495 이름 없음 (2gAaN6Y7MQ)

2022-07-02 (파란날) 12:47:32

>>494

“후….”

숨을 내뱉는다. 빈 손을 잠시 쥐었다 폈다. 상대의 공격에 맞춰 방어를 하면서 억지로 검을 쳐냈다. 그러면서 제 검도 놓쳐버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럼으로 인해 승부는 오늘도 역시 무승부가 되었다.

앞에 있는 이와 이런 소모적인 승부를 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사실 속마음으로는 굳이 이런 승부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자신을 저런 열망어린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자신은 인간적으로 이 앞에 있는 사람이 좋았으나,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내 능력만 바라볼 뿐 나 자신을 봐주지 않았다.

“이제 그만하자.”

고개를 떨군 채 바닥을 보는 너에게 나는 한숨어린 말을 내뱉는다. 이제는 자신도 지쳤다. 검을 사용하여 단련하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이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너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너 또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나는 바닥에 떨어진 내 검을 주워 검집에 넣었다. 네 검은 저 뒤로 날아갔으나 그것까지 내가 주워줄 필요는 없을 터였다.

496 이름 없음 (b6Zf8Om5sA)

2022-07-02 (파란날) 16:50:58

>>495

"너......"

저도 모르게 앞을 흘끗거리지만, 곧바로 후회하고 만다. 역시 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는 것을 바로 체감했으니까.

직감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이 저쪽에 있다는 것을. 승부의 선이든, 도리의 선이든,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그것이 승패보다 괴롭다. 가슴 속의 뜨거운 것이 부당함을 인정하는 것.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대상에게서 어떤 잘못된 면도 찾을 수 없고, 어떤 적개심도 반사되어 오지 않는 것을 안다면, 결국 스스로가 이유 없는 미움에 사로잡힌 추한 존재임을 자각할 수밖에 없다.

"아니, 아직이야."

주먹을 꽉 쥔다. 이대로 달려들어서 한대 치고 싶다는 본능을 억제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게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를 알기 때문이 아니다. 공격을 성공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품위도, 우정도 빠르게 잃어가는 모양이다.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승부는 아직 끝나지...... 끝나......"

애써 격양을 숨기려 평정심을 가장하면서 앞으로 한 걸음, 걸음이, 떼어지지 않는다. 어지럽다. 피가 머리로 쏠린다. 흥분 때문인가? 아니다. 몸이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이대로 쓰러지면, 추하게 쓰러지면 나는, 다시 너를 볼 낮이 있을까. 제발, 한번만 말 좀 들어라. 온갖 발악과 바람이 무색하게도 몸이 앞으로 기운다. 어떤 고된 부하도 받아내고 움직여 왔던 몸, 단련의 표상이, 허영에 눌려서 무너진다.

너를 죽이고 싶어. 내가 병신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아. 그런데 생각을 통제할 수가 없어.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497 이름 없음 (2gAaN6Y7MQ)

2022-07-02 (파란날) 19:07:41

>>496

앞에 있는 이가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차고 넘치는 편이었다. 자신도 엄청 지친 상태였다. 손끝이 저리고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고.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것은 자신도 나름 앞의 상대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열정적으로 이기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너는 아직이라며, 말을 하지만 딱 보기에도 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나는 조금 지친다는 표정으로 너를 바라보다가 네가 몸을 비틀거리다가 쓰러질 것 같자 나 또한 걸음을 옮겨 너를 붙잡으려고 한다.

“윽….”

하지만 내 몸도 부하를 이기지 못했는지 너의 몸을 잡기는 했지만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같이 쓰러지고 말았다.

“아, 씨….”

쪽팔리게.

그래도 바닥에 누워버리니 훨씬 마음은 가볍다. 일어나기가 더 귀찮아져버린다. 눈 앞으로 보이는 하늘은 파랬다. 아주 맑고 맑은 하늘이었다.

“…도대체 넌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진짜 짜증나.”

짜증나서 짜증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어서 그 감정이 제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 뿐. 그러니까 왜 나는 매번 네가 싸우자는 것을 받아주고, 네 승부하자는 말 대신 그냥 인간적인 안부를 묻고 답하고 싶은 건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늘 매번 이런 식인 건지.

진짜 그만둬야지. 다음엔 승부하자고 해도 안 받아 줄 거다. 진짜.

라고 지난 번 승부 때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을 떠올렸다.

498 이름 없음 (CB6jIuc/A2)

2022-07-02 (파란날) 21:06:44

오늘도 오셨군요. (여자는 당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당신은 기척 따위 내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일정한 시간마다 찾아오는 당신을 보면 모를 수도 없겠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면서 저에게 계속 찾아오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여자는 커피 포트에 물을 담아 끓이는 일을 계속하며 혼잣말을 하듯이 당신에게 물었다.) 아, 커피 한 잔 드시겠어요? 마침 믹스커피를 선물로 받았는데. 비스킷도 있고. (너무 익숙하게 당신을 맞이하며 이미 여자는 잔 두 개를 꺼내고 있었다. 당신이 먹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긴 했지만.)

# 맥커터 사절 ~ 상대방은 대충 저승사자나 악마나 천사나........ 뭐 그런 인외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썼어 ~

499 이름 없음 (b6Zf8Om5sA)

2022-07-02 (파란날) 22:58:31

>>497

흙먼지가 시야를 엄습한다. 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부축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볼품없이 흙바닥에 뻗은 꼴이다. 유일한 위안거리라면, 혼자서 험한 꼴을 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저도 모르게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심각하기는 한 것 같다. 넘어뜨렸다, 공격이 통했다, 이길 수 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비약의 징검다리를 밟고 생각은 뻗어나간다. 역시 집어치워야 한다. 기껏 손을 뻗어 준 사람을 상대로 이딴 희열을 찾을 정도로 정신이 썩어버린 건 아니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실성한 듯 바닥에 얼굴을 묻고 계속 웃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라도 해야, 격양된 감정을 조금이라도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피로에 젖은 폐가 아우성을 쳐도 멈출 수가 없다. 아니, 그 아우성이 웃음으로 발하는 것만 같았다.

"왜 그러냐, 고?"

허, 웃기는 녀석이다. 아니, 불행히도 웃기는 상대를 만난 녀석이다. 절대로 나만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 나이기에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공허한 물음에 나는 입으로 들어온 모래들을 퉤 뱉어내고 반문한다.

"글쎄, 알려줘. 왜 나는 이러고 있어?"

확실한 것은,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는 너이기에 미워하리라는 것, 그리고 이 억지가 기약 없이 반복되리라는 것, 자기화할 수 있는 설명은 오직 이것 뿐.

"......네가 바보같고, 재수없고, 불쾌해서?"

그리고 내게 할 수 있는 설명을 타인에게 해주기 위해서 또 깎아내리면, 이런 꼴이 되고 만다.

500 이름 없음 (h4ax45Qlws)

2022-07-03 (내일 월요일) 19:50:30

"…우리 이혼했으면 해요."

또 다시 돌아왔다는 걸 알아챈 뒤부터 거리를 두긴 했어도 당황스러운 말일 것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 옆에서 행복하게 웃으며 사랑을 말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끝을 고하는 셈이니. 하지만 계속 당신 옆에 있기엔 너무 지친 상태였다. 몇 번이고 당신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이나 그 모든 죽음을 기억한 채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돌아오는 것은.
처음 몇 번은 쓰러질 정도로 울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싸늘하게 식은 당신 몸을 끌어안고 멍하니 눈만 깜빡일 뿐. 그 때문에 내가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제는 그게 소문인지도 의문스럽다. 내가 하지 않은 건 당신 심장에 직접 칼을 꽂지 않은 것뿐, 내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당신이 죽은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당신을 죽인 건 내가 맞지 않나.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필요하다면,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할까요."

건조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501 이름 없음 (8XJSixtGAo)

2022-07-04 (모두 수고..) 06:04:14

>>499

네가 웃음을 터트리자 나는 짜증스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영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어디에서 웃음이 나올 포인트가 있다는 건지.

"미친 놈."

왜 그러냐는 질문에 도리어 자신이 왜 이러느냐는 질문을 되물어오는 것에 나는 영 할 말이 없다. 아무래도 나와 같이 쓰러져 있는 이는 실성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해버린다.

게다가 그나마 나온 말이라는 것이 내가 싫어서라니 영 듣고 싶지 않다. 그럼 그렇지. 하하호호하는 사이 좋은 사이는 아니니까.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바닥에 앉고는 너를 내려다봤다가 이내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됐어. 이제 이것도 끝이니까."

후, 한숨을 내쉰다.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날 거야. 그러니까 너하고도 이게 마지막이고."

이후에 별 일이 없다면 영영 만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굳이 만나려고 하면 만날 수 있겠으나 노력을 해서 만날 정도로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502 이름 없음 (gQDsvkIok.)

2022-07-04 (모두 수고..) 15:19:54

>>501

"정확해, 바보치고는."

확실히 미친 것 같다. 그러나 갑자기 미쳐버리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서야 자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내 앞의 네녀석은 정말 재수가 없는 놈이라고 다시금 생각한다. 한 번 문 것은 절대 놓지 않는 미친 놈에게 물려버렸으니.

시원하게 한참을 웃으니 조금이나마 몸의 피로감이 가시는 것 같다.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그래, 아직 싸울 수 있다. 사지가 멀쩡하고 생각이 몸을 통제할 수 있는 한 내게는 여전히 기회가 있다. 아집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끝은 없어. 회수하지 않는 한."

내 목, 승자의 권리, 그걸 취해가지 않는다면, 절대 끝은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불은 꺼지지 않는 이상 계속 태워야 한다. 내 집념, 열등감, 칩착, 열정...... 어쩌면 인연까지도, 무뎌지기에는 너무 날카롭고, 매번 맹렬하게 갈려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언젠가 정말 내가 패배하더라도, 넌 가져가지 않을 것 같군. 아마도 그것 때문에 널 싫어하는 것 아닐까.

싫어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서.

"떠나?"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바닥을 더듬고, 콜록거리며 기어간다. 마치 날 부르는 것처럼, 그것이 그 방향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 끝내 손끝에 뜨거운 금속의 감각이 걸려서, 곧장 내 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수백 번 격렬하게 부딫히며 달궈진 뜨거운 날은, 주인의 마음을 닮은 듯 위험하다.

"마음대로 해, 따라갈 테니."

503 이름 없음 (B98COdA15.)

2022-07-05 (FIRE!) 18:23:50

>>502

“회수? 뭘 회수한다는 건데? 회수는 돌려받는다는 건데, 나는 네 것을 가져간 것이 없고 너 또한 마찬가진데.”

나는 너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뭘까. 나에게서 이기는 것? 나한테 이겨서 무얼 얻고 싶은 걸까. 나를 죽이기까지 하려는 걸까. 알 수가 없다.

떠난다는 말에 너는 기다시피 하여 칼을 손에 든다. 눈을 가늘게 뜨며 그것을 지켜보다가 나 또한 무릎을 세워 앉고 검집의 목을 쥔 손으로 코등이를 밀어올려 언제든 발도 할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한 번 더 하자는 거야?”

놓았던 긴장을 다시 당겨 쥔다. 과연 네가 다시금 달려들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남아있는지, 내가 너를 막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남아있는지는 차치해두자. 늘 방심은 금물인 것이었다.

504 이름 없음 (8wO1csCRrk)

2022-07-06 (水) 09:40:05

>>503

"알려주지 않을 거야. 널 미워해야 하니까."

겨우 겨우 칼을 세워서, 수직으로 땅에 꽂는다. 손잡이에 턱을 기대고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안정된 자세를 찾는다. 주저앉아 칼에 기댄 자세, 지금의 상태로 이보다 최상의 태세는 가져갈 수 없다.

어느 새 준비의 자세를 취하는 상대를 지긋이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암담하다. 나 역시 일어나야만 했다. 우리는 비긴 거니까. 아직은 지지 않았으니까, 여력에서 밀리고 싶지는 않아. 살짝 버둥거리다가 애써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아 누르며 허리를 일으킨다. 아직 너에게는 지고 싶지 않다.

"그리고, 상관없잖아."

이유는 집어치우라고. 포기가 느린 녀석아.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만 알면 돼. 그래도 이유가 필요하다면야.

"묻고 싶은 게 있어."

칼을 짚고 서 있기도 힘든데, 몸을 지탱하고 있는 칼에서 애써 다시 양손을 떨어뜨렸다. 적의가 없음을 드러내기 위해 손바닥을 펴서 네게 보여주고, 숨을 훅 내뱉은 다음 남은 호흡으로 겨우 중얼거렸다. 너무 작은 소리지만, 들렸기를 바라.

"왜 이 기예를...... 칼 쓰는 법을 배운 거지?"

말을 건네는 내 목소리가, 어쩐지 자기의심으로 흔들린다.

505 이름 없음 (TpP1/2u/46)

2022-07-06 (水) 10:12:22

>>504

상대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숨을 내쉬고 가까스로 일어나는 너를 본다. 그러다 한 번 더 하지는 않을 듯 손을 펴서 보여주는 너를 보고 그제야 긴장을 다시 누그러뜨린다. 검을 쥔다는 것은 늘 외줄을 타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다칠 수 있고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길을 걷는다는 것.

하지만 이 길을 가게 된 이유를 묻는다면.... 다른 이들에게는 굳이 하지 않았던 말을 너에게 처음으로 꺼낸다. 뭐, 아니 다른 이들은 묻지도 않았던 것이었지만.

"지켜야 할 사람이 있어."

살짝 눈을 내려깔고는 잠시 회상에 잠긴다.

"어릴 때 어쩔 수 없이 헤어져서, 지금은 생사도 알 수 없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약속했거든. 내가 지켜주기로."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 이후로 자신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검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다 여기까지 흘러들어왔고.

"떠난다는 것도 그 애를 찾으려고 가는 거야."

찾지 못 할 수도 있다. 이 험한 세상에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 내 한 몸 지킬 수 있고, 어쩌면 다른 이도 지킬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고 생각이 드니까. 그 애를 찾으려는 시도만이라도 해보고 싶은 것이었다.

"너는 어떤데."

작게 한숨같은 웃음을 뱉으며 너를 본다.

506 이름 없음 (8wO1csCRrk)

2022-07-06 (水) 11:37:56

>>505

싸우지 않겠다고 의사를 표한 것은 이쪽이지만, 긴장을 풀고 태세가 느슨해진 상대를 보니 공세를 취할 기회가 눈에 들어오고, 자연히 충동이 다시 고개를 든다. 고단함에 눌려 뇌의 의사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던 주제에, 손가락 끝이 손잡이를 다시 붙잡고 싶어서 꿈틀거린다.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한숨을 쉬며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역시 불리한 것은 여전히 이쪽이다. 몸의 충동에 따라갈 이유가 없다. 그냥 이대로, 상대의 말을 들을 따름이다.

"부럽군."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나 역시 그렇게 배웠다. 상처를 주고, 파괴하는 기예이기에 더욱이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 균형의 문제였다. 스스로까지 해롭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기통제와 보호의 미덕을 쫓아야 했다.

그런데, 네놈과 검을 나눈 직후부터 그게 흐려졌다. 이제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가 왜 칼을 들고 있는지를 잊어버렸다. 내지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애초부터 몰랐던 것을 부정하고 있었음을.

다만 지금은, 너를 이기고 싶을 뿐이다.

"대답할 말이 없다. 줄곧 말했듯이, 아무 것도 모르겠어. 지금은."

"그래서 너를 필요로 해."

507 이름 없음 (TpP1/2u/46)

2022-07-06 (水) 13:35:07

>>506

"글쎄...."

부럽다는 말에 답할 말이 없다. 처음부터 그런 일을 겪지 않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보호자 없이 보호막 없이 살아왔다는 건 험한 일도 많이 겪었다는 뜻이었다. 가족 같았던 이와 찢기듯 헤어져야만 했던 것도 끔찍하게 마음아픈 일이었다. 차라리 아무런 일도 겪지 못해서 검을 드는 마음 같은 거 몰랐을 것이 나았을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주길 원해."

물음이었다.

"네가 이기게 되면 만족할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관찰하듯 너를 물끄럼히 바라본다. 무의미한 싸움을 계속 하는 것도 지칠 따름이다. 인간적인 호의로 계속하여 대련을 해왔지만 정도를 넘는 공격들에 대응하는 건 힘든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떠나기로 마음먹었으니 계속 이곳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508 이름 없음 (8wO1csCRrk)

2022-07-06 (水) 15:10:24

>>507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해."

스스로도 표현하기 어려워서, 볼을 긁으며 애매하게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분명 내 자존심이 허락하는 선 안에서는 간을 드러내고 쓸개를 끄집어내듯이 하는 말이었다.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

'도와줄까'나 '잘 해봐'같은 말은 도저히 하지 못하겠다. 너에게 느껴야 하는 감정은 어디까지나 호승심, 그리고 적대감. 싸우기에 가장 용이한 감정만 남겨놓을 뿐이다. 싸움이 끝나면 드러내는, 그래서 내게 혼란을 남겨 버리는 인간적인 호감 따위, 내 입으로는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 검으로 날 지켜 봐. 나랑 싸워서. 도망쳐서 날 고사시키는 건 용납할 수 없어."

509 이름 없음 (TpP1/2u/46)

2022-07-06 (水) 15:39:01

>>508

나는 너의 말을 묵묵히 들으며 그 진의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게 쓸모있는 정보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그저 그 말이 진심처럼 느껴졌다는 것 뿐.

결국 나는 푹,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너한테는 남들보다 더 관대해지고 마는지.

"따라오고 싶다는 거지?"

머리를 쓸어넘기며 너를 바라본다.

"단, 조건이 있어. 매번 너와 검을 맞댈 순 없어. 횟수는 한 달에 한 번, 방식은 정정당당한 대련의 형식으로 할 것."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흙먼지가 묻은 옷을 툴툴 털었다. 힘을 다 써버린 몸이 무겁다.

"그걸 지킨다면 최대한 노력해 볼테니까, 그 지킨다는 거."

한숨같은 말이었으나 엄연한 승낙의 말이었다.

510 이름 없음 (8wO1csCRrk)

2022-07-06 (水) 17:17:34

>>509

윽, 화가 치밀어오른다. 그런 태도.

"누가 같이 다니고 싶대? 잘 때 암살해버릴까보다."

이 순간 내 목소리가 어린아이의 철없는 억지와도 같이 들렸음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병신이겠지. 왜 자꾸 이렇게 되는 걸까. 열등감 때문인지.

그렇지만 내심, 튀어나온 목소리에 기쁨이 섞여 있었다는 것만큼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

"결투는 내가 원할 때, 마음대로 할 거야. 그래, 한 달에 한 번이면 족하지만......"

이젠 나도 모르겠다. 긍정을 하는 것인지, 부정을 하는 것인지. 그냥 어느 쪽이던 내 의지를 조금 더 부연하고 싶어서, 바닥에 꽂혀 있던 칼을 힘차게 뽑아 겨눈다. 솔직히 '힘차게'라는 표현에는 많이 어폐가 있어서, 겨눈 칼끝도 허공에서 힘에 부쳐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지만, 지금의 몸으로는 이게 최선이다.

"필요하다면, 도와주지. 말마따나, 네 녀석은 바보고, 재수없고, 불쾌하니까. 분명 힘이 부칠 일이 있을테니까."

이렇게 또 한번, 패배감과 자조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불쾌하고, 재수없는, 바보에게 언제까지고 밑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511 이름 없음 (TpP1/2u/46)

2022-07-06 (水) 17:54:44

>>510

나는 너의 말을 듣다가 도와준다는 말에 결국 작은 웃음을 뱉고 만다. 내가 살다가 너한테서 도와준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고, 또 그 말이 기꺼웠기 때문이었다.

"그래. 도와줘. 분명 힘에 부칠 일이 있을 테니까."

못나고 이런저런 부족한 점도 많은 자신이었으니까. 게다가 내 목적지에 다달았을 때 만난 진실이 그 아이의 죽음이라면 아마 과연 혼자서 두 다리로 서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조금 흐린 얼굴로 바닥 구석진 곳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 젓는다.

"일주일 뒤 동이 트자마자 출발할거니까. 그 전까지 인사나 마무리해야할 것들은 마무리해두고. 정문 앞에서 보자."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몸을 돌렸다. 그 입가엔 아마 작은 미소가 걸려있을지도.


/재미있었어. 막레 느낌으로 썼어 :)

512 이름 없음 (1Cl1mkHb26)

2022-07-06 (水) 18:29:18

>>511
/아 재미있었다

첫 레스 쓸 때 캐릭터를 안 잡고 써가지고 좀 스스로 헤멨는데 어떻게 잘 마무리된듯

고마워!

513 이름 없음 (A7iVZho18.)

2022-07-07 (거의 끝나감) 14:09:12

>>512

/나도 고마웠어~ 즐상판하고 익명으로 다시 만나~

514 이름 없음 (kU5kd8z9Ks)

2022-07-08 (불탄다..!) 12:02:27

>>500

결혼을 하고 나서도 우리는 행복했다고 생각했다. 오래 알고 지냈고 서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 오만이었던 것일까. 최근 들어 당신이 나를 피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서 걱정을 하고 있었긴 했지만 단지 무슨 고민거리가 있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이벤트 같은 것을 꾸미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조금 느낌이 이상해서 대화를 해봐야지 했었지만…. 그렇다고 이혼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거짓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니,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낌새도 없었고 그리고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 거짓말 하나 알지 못할까. 나는 고개를 저은 뒤 당신을 보았다. 무감한 눈동자 속에 아픔이 비치는 것만 같았다. 이 또한 내 오만으로 인한 착각일까.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내가 뭔가 잘못했어? 응?”

눈썹이 일그러진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죄다 곱씹어 봐도 이혼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무언가는 있지 않았다. 아니, 행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잘 지냈었고 서로 사랑한다고 속삭이지 않았던가.

515 이름 없음 (/pHC4Iw9lU)

2022-07-09 (파란날) 20:12:06

"- 상담사 Ridia Rhelana였습니다. 늘 사랑과 평화가 함께하시길★"

당신의 악마 선배는 dew처럼 맑고 lovely한 목소리로 수화기를 내려놓습니다.
쓸데없이 넓기만 한 office는 air conditioner도 마음대로 틀 수가 없어 푹푹 찌는 무더위였습니다.

"어이 신입. 거기 냉장고에서 얼음컵좀 가져와보십시오."

더운 숨을 삼키며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거만하게 다리를 꼰 리디아는 상냥하게 통화를 할 때와는 정반대인 고압적인 태도로 사무실 구석에 왜 있는지 모를 냉동 쇼케이스를 손가락질하며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녀의 빨간 악마 꼬리가 바퀴 달린 의자 아래로 축 늘어져있습니다.


//당신의 종족은 천사 악마 인간 등등 끌리는 대로 설정해 줘도 좋아.
편하게 이어줘.

516 이름 없음 (PqZsBd4siw)

2022-07-09 (파란날) 23:06:11

>>514

이제는 지쳐서 무뎌질대로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찌푸린 얼굴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나니 오히려 의연함을 가장하는 일은 쉬워졌다. 당신을 위해, 나를 위해 행하는 이별이다.

"당신 잘못 없어요. 그저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착각했던 것 같아요."

시선을 낮게 깔았다. 차마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 당신이 눈물이라도 떨구는 모습을 본다면 저도 모르게 손을 뻗게 될 것 같았다.

"우린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잖아요. 익숙함과 사랑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의식적으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탓에 당신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며 한숨처럼 속삭였다.

"……어쩌면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스스로 뱉은 말에 놀라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물었다. 사랑해서 곁을 떠난다는 말을 비웃었던 한때를 후회했다.

// 미안 확인이 늦었다 ㅠㅠ!

517 이름 없음 (QQwv2982Vs)

2022-07-11 (모두 수고..) 12:59:43

>>516

거짓말…. 거짓말임이 분명했다. 아니,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건 제 욕심일지도 몰랐다. 거짓말이길 바라는 제 욕심일지도 몰랐다. 정말 착각을 했던 것이라면 제 옆에 있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슬픔이나 괴로움을 가져다 주었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말들이 자신의 가슴에 깨진 유리조각으로 날아와 박히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나를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는 게. 사무치게 아파서 가슴이 갈래갈래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

차마 무어라 말을 뱉을 수 없었다. 아파서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밖에는. 그리고 네가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라 말을 뱉자 그에 반응하듯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나는….”

가까스로 말을 뱉지만 그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는 것에 다시 입을 다문다. 소매로 거칠게 눈물을 닦고 매인 목을 헛기침으로 바로 잡은 뒤 다시 너를 본다. 너는 왜 나를 못 보고 있는지, 너도 나처럼 아픈 건지 아니면 단순히 미안해서 그러는 건지.

“나는, 그래도 너를…. 너를 만난 걸 후회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런 말은 제발 하지마. 착각…이라고 해도 괜찮아. 그냥 익숙함이라는 것 만이라도 내 옆에 있어주면 안 돼?”

나는 너에게 한 발 더 다가가서 네 손을 찾아 쥐려고 손을 뻗었다. 충분히 피하려면 피할 수 있는 속도로.

“너도 알잖아. 나 너 없으면 안 되는 거….”


//괜찮아 :D

518 이름 없음 (nVga3EByX.)

2022-07-14 (거의 끝나감) 14:18:16

/ 어장이여 위로 올라가시오!

519 이름 없음 (YE8f8qzaps)

2022-07-14 (거의 끝나감) 14:30:57

아저씨 도착~

520 이름 없음 (2RlZ7X.wZ2)

2022-07-14 (거의 끝나감) 15:11:14

>>519
/ 꼬맹이도 여기 있다! 선레를 쓰려다 보니까 참치가 생각한 시대적 배경 같은게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3 현대, 과거, 근미래, SF 같은거!

521 이름 없음 (YE8f8qzaps)

2022-07-14 (거의 끝나감) 15:51:59

>>520 일단 배경은 현실로 따지면 20세기 초반쯤의 기술력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네. 사회적으로는 신분제가 존재하는 제국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아. 이능력자가 존재하는 세계관인데, 그 수는 상당히 적어. 전 세계에 100명 정도? 선천적인 능력이고 유전은 되지 않아. 아저씨는 대륙을 양분하던 두 국가가 충돌했을때 동부의 국가에서 특수부대로 활약했던 전적이 있지. 그래서 서부에선 악마로 불리우는거고, 전적도 화려해! 다만 후유증으로 PTSD를 겪고 있어. 아저씨도 이능력자인데 전쟁이 끝난 이후로는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꼬맹이는 아마 모르지 않을까? 사실 이능력의 수준도 막 전술병기! 이런 느낌보단 보호막을 친다거나 사람들을 약간 비틀거리게 한다거나, 그런 수준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또 대륙의 북부에는 위험한 생물들이 많은데, 이 생물들에서 나오는 부산품들이 비싸게 거래 되고 있어서 아저씨는 그런 것들을 의뢰를 받아 잡아다주는걸 업으로 삼고 있어. 검술이 상당히 뛰어나거든!

522 이름 없음 (DiNBzjFFSQ)

2022-07-14 (거의 끝나감) 16:25:52

>>521
/ 세계관 일부만 들었는데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3c
참치가 바이올렛 에버가든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능력이나 생물이 추가된 약판타지 더하기 바이올렛 에버가든 느낌의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될까? 아니면 중세 판타지 배경에 20세기 기술력이 더해진 분위기?
그럼 꼬맹이는 주변에서 이능력자 얘기 들어도 아저씨는 이능력자가 아니니까 하고 생각하겠네!
검술 뛰어난 아저씨라니 이건 심장 뿌시기 완벽한 조합이다. >:3
그럼 꼬맹이는 아저씨에게 가르침 받았으니 특수부대에 소속되어 있을까? 아저씨 뒤를 이어 들어간다고 했을 때 아저씨가 반대했으려나?

523 이름 없음 (YE8f8qzaps)

2022-07-14 (거의 끝나감) 16:47:40

>>522 바이올렛 에버가든 느낌의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세계관도 비슷한 느낌인걸~ 거기에 약간의 이능력 소재가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북쪽에 사는 위험한 생물들 = 마물 같은 느낌이라 약판타지도 섞였다고 보면 되겠네.

특수부대는 전쟁이 끝나고 해체 되어서 더이상 남아있지 않을꺼야! 대신 꼬맹이는 아저씨를 따라서 북부의 마물들을 퇴치하는 임무를 띄고 있는게 어떨까?

524 이름 없음 (yBuuO2K48.)

2022-07-14 (거의 끝나감) 17:07:50

>>523
/ 무슨 느낌인지 이해! 속으로 분위기를 그려보다가 바이올렛 에버가든이 문득 떠오르더라고! ;3 게다가 약판타지가 섞였다니 마음에 쏙 든다!! >:3c
남아있지 않고 해체 되었구나! 그것도 좋지!! 그럼 아저씨와 동료들은 약간 용병같이 활동하는 건가? 마물 퇴치 전문 용병?
일할때 복장은 자유로운 쪽이야? 아님 정해진 제복이 있나?
세계관이 너무 매력이라 자꾸 궁금한게 늘어가네... 미안해! <:3c
참치는 상라랑 일반이랑 어느 쪽이 쓰기 편해?

525 이름 없음 (YE8f8qzaps)

2022-07-14 (거의 끝나감) 17:14:58

>>524

그때 동료들은 대부분 뿔뿔이 흩어지거나 죽어서 남은건 아저씨 뿐이야. 딘 씨도 같은 부대는 아니었고 아저씨가 진입하고 나면 바로 뒤따라 들어가는 부대 소속이었다고 생각하면 돼! 아저씨는 용병 같은 느낌이고~ 복장은 자유로워! 군대 느낌은 아닌 곳이니까~ 미안할 필요는 없어! 근데 이러면 그냥 일댈을 파는게 더 낫지 않나 ... 하는 생각이 드는걸! 나는 상라던 일반이던 안가리니까 참치 편할걸루 해줘~

526 이름 없음 (pbTvgWWFfo)

2022-07-14 (거의 끝나감) 17:34:11

>>525
/ 그러게... 나도 이정도로 질문이 길어질 줄은 몰랐어... 세계관 이해는 대부분 한 것 같으니까 그럼 일단 빨리 선레부터 들고올게! :3 내가 손이 좀 많이 느려서 늦어질지도 모르는데... 미리 사과부터 할게...

527 이름 없음 (YE8f8qzaps)

2022-07-14 (거의 끝나감) 17:41:11

>>526 괜찮아~~ 느긋하게 돌리는거지 뭐. 여유롭게 가져와줘!

528 이름 없음 (6v7QafYdi2)

2022-07-14 (거의 끝나감) 23:11:26

>>527
(임무를 마치자마자 동료들의 술파티 권유도 마다한 채 반쯤 통보와도 같은 저녁 약속을 잡아낸 그녀는 한껏 들뜬 표정으로 숲길을 가로질렀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울퉁불퉁한 산속을 망설임 없이 뛰어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숲속을 자유롭게 내달리는 늑대처럼 날렵하고 안정적이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 잔가지와 나뭇잎에 쓸리는 감각. 모든 것이 그녀의 심장을 뛰게 했다. 강 너머를 이어주는 긴 다리와 드문드문 들꽃이 핀 푸른 잔디밭, 병원을 지나 광장을 모두 통과해 골목으로 들어설 때까지 그녀는 그 먼 거리를 쉬지않고 달려왔음에도 신기하게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와 약속했던 장소인 사거리 근처까지 짧은 시간에 도착한 릴리아는 그제서야 달리기가 걸음으로 바뀌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며 시간에 여유가 생기자 그녀는 자연스럽게 약속을 잡기 전 그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자신이 했던 말을 곱씹으며 자아성찰을 해보던 그녀는 점점 스스로가 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이 보이지는 않았을까 하는 불안함을 느꼈다. 결국 부정적인 생각 하나가 시작되자 당연한 것처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오랜 시간 말하지 않았던 마음을 그에게 고백했다는 부끄러움까지 도달했다.)
그때 그렇게 얘기하지 말걸...!
(잠시 멈춰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웅얼거리던 릴리아는 자꾸만 머리를 채우는 걱정을 없애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길게 늘어선 가게들로 시선을 돌리려 노력했다. 빵이 구워지는 고소한 냄새와 사람들의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던 중 그녀는 이제 막 가게 앞에 진열되는 꽃들에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그렇게 꽃가게 앞에 걸음이 붙어버린 릴리아는 그 많은 꽃 중에서도 유독 분홍색 장미에 눈이 고정되어 있었다.)
('마음에 드시면 한 송이 포장해 드릴까요?')
아... 네!
(점원의 질문에 홀린 듯 대답한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잘 포장된 예쁜 꽃 한 송이를 품에 안고 사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릴리아는 멍하니 품속에 있는 장미를 바라보았다. 이걸 받으면서 점원 언니가 해줬던 말이 뭐였더라. 분홍 장미의 꽃말은 맹세라고 했던가?
분명 사랑에 빠지면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이렇게 연애를 하기도 전부터 정신을 못 차리다니. 그녀는 스스로가 그에게 제법 깊게 빠져있구나 하는 생각에 헛웃음을 지었다. 와중에도 그녀의 입꼬리 끝은 주어진 기회에 대한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보였다.)

/ 상라와 일반을 수없이 오가며 생각한 결과... 꼬맹이 성격에는 상라가 더 분위기에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상라로 가져와 봤어! 사실 어떻게 보면 그냥 일반 같기도 하지만...! <:3c 일단 이건 둘째치고 기다려줘서 고마워!!

529 이름 없음 (kx2WhRdoSI)

2022-07-15 (불탄다..!) 10:37:17

>>528

(릴리아의 밥을 먹으러 가자는 연락을 보고서 그는 아무런 말이 없이 침대에 몸을 묻었다. 실시간 연락기(Real Time Two-Way Communicator, RTCOM)를 손에 쥔채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던 그는 침대 옆의 서랍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더니 사진 한장을 꺼내들었다.) ... 이게 네가 원한거야? 로즈? (그 곳에는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포즈를 취하고 서있었는데, 사진 왼쪽에 젊을때의 그의 모습과 함께 서있는 여자의 모습도 있었다.) 여러모로 귀찮게하는구나. (작게 한숨을 내쉰 그는 사진을 다시 서랍에 넣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화장실로 향해 지저분하던 수염을 정리하고 덥수룩하던 머리도 정리를 한다. 혼자하는 것임에도 상당히 능숙해서 금세 말끔해진 그는 입고있던 옷도 말끔한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뒤에 천천히 집을 나섰다. 조금 거리를 걸어가니 근처에 사는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 에반, 오늘 수도라도 가는거야? ' ) 아주머니 좋은 저녁이네요. 아뇨, 오늘은 수도에 가는 날은 아니고 그냥 기분전환 삼아서. (웃으며 대답한 그는 시간에 맞추어 식당 앞으로 도착했다. 아직 릴리아는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라 그는 식당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리기로 했다.) 꼬맹이, 조금 늦었구나. (그리고 저 멀리서 임무를 끝마치고 오는 릴리아가 보이자 평소와 다름없이 대충 손을 흔들며 그녀를 맞이해준다.)

530 이름 없음 (vjGuyGt58c)

2022-07-15 (불탄다..!) 21:15:54

>>529
(자기 자신도 놀란 깜짝 선물을 들고 조금을 더 걸었을까. 저 멀리에서 대충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릴리아도 인사에 답하듯 머리 위로 손을 들어 크게 좌우로 몇 번 흔들었다. 그녀는 먼저 도착해 앉아 있는 에반을 보고는 걷는 속도를 다시 높여 식당 앞까지 금세 도착했다.)
아저씨, 이거... 받아요!
(릴리아는 그의 앞에 도착하자마자 늦었다고 이야기하는 그 말에 대답하기도 전, 일단 안고 있던 꽃부터 에반에게 내밀었다. 에반의 앞에 놓인 분홍색 장미 한 송이는 천과 레이스, 얇은 끈으로 잘 감싸여 있었다. 그에게 오는 동안에도 소중히 들고 있었는지 장미와 포장 모두 흐트러진 곳 없이 깔끔했다.
묘하게 뚝딱이는 릴리아의 말과 행동, 시선을 꽃에 고정한 채 눈만 깜빡이는 모습은 그녀가 조금 긴장한 듯도 보였다.)
그래도 저기에서 여기까지 이 정도면 엄청 빠르게 왔는데...!
...많이 기다렸어요?
(먼저 약속을 잡아놓고 늦게 나왔으면서도 오히려 뻔뻔하게 자신은 잘못이 없음을 주장하더니, 곧바로 태도를 바꿔 그의 눈치를 보듯 조심스레 질문하며 장난스럽게 에반을 곁눈질했다. 꽃을 주던 때와는 정반대로 평소와 다름없는 그녀의 모습은 신기하게도 방금 고백한 대상을 앞에 두었다기에는 상대를 크게 의식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531 이름 없음 (YOkufYL8PM)

2022-07-16 (파란날) 23:22:41

>>530

응? 갑자기 왠 꽃이냐. (저 멀리서 걸어오는 릴리아의 손에 무언가 들려있길래 유심히 바라보던 그는 그것이 꽃임을 깨달았다. 갑자기 꽃을 들고 오는게 누가 꽃이라도 주면서 고백한건가 싶었는데 그녀가 다가와 자신에게 대뜸 건네주니 그는 고개를 갸웃한다.) 설마 나 주려고 사온거냐? (잘 포장된 분홍색 장미 한 송이가 그의 손에 들려지고 평생 이런거 한번 받아본 적이 없던 그라서 꽃과 릴리아의 얼굴을 번갈아가면서 볼 뿐이었다.) 음 ... 뭐, 잘 간직하마. 물병에 꽂아두면 조금은 오래 가겠지. (어색하게 웃으며 릴리아의 머리를 한껏 쓰다듬은 에반은 릴리아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네가 뛰어오는 시간쯤이야 내 머릿속에 있으니 말이다. 나도 방금 도착한 참이니까 말이다. 임무도 방금 끝나서 배고플테니 얼른 들어가자. (식당 문을 열어서 릴리아가 먼저 들어가게 해주고 뒤따라 들어간 에반은 주인과 눈인사를 나누며 적당한 자리에 테이블을 잡는다. 에반의 훈장이 가진 상징성 때문인지 에반은 마을에서 꽤나 유명인사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네가 먹고싶은걸로 시킬래? (평소와 다름없이 웃는 표정이다.)

532 이름 없음 (cVgCnYDjyI)

2022-07-17 (내일 월요일) 18:06:10

>>531
그럼요. 당연하죠! 내가 이런 걸 아저씨 아니면 누구한테 주겠어요!
(꽃과 자신을 번갈아 바라보는 에반의 모습과 어색한 웃음을 보고 그녀는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속으로는 그가 혹시 꽃을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는지 기뻐 보이는 웃음 사이로 안도감이 언뜻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이제 내가 아저씨한테 줄 수 있는 게 하나 생겼으니까, 앞으로는 매일 한 송이씩 선물해 줄게요.
(릴리아는 집에 물병이 수십 개 있어도 부족할 거라면서 기대하고 있으라는 농담 같은 진담을 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저씨, 머리! 나 머리 망가져요!
(그가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는 고개를 아래로 숙이듯 그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처럼 행동하며 곧바로 투덜거렸지만, 그 와중에도 실력 좋게 그의 손을 피하지는 않고 끝까지 그리고 아주 마음껏 쓰다듬을 받았다. 하지 말라며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에도 짜증은 없고 즐거움만 한가득 담겨 있었다.)
네? 정말요? 그런 것도 알고 있어요?
아저씨는 정말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뛰어오는 시간을 알고 있었다는 말에 릴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네. 감사합니다, 친절하신 신사분.
(대체 언제 연습을 했는지, 그가 식당 문을 열어주자 릴리아는 금세 표정을 바꿔 우아한 미소를 흉내 내더니 있지도 않은 치맛자락을 손끝으로 잡아 올리는 시늉을 하며 무릎을 굽혀 마치 어딘가의 고아한 숙녀처럼 인사해 보였다. 아직 완벽하게 몸에 익히지는 못한 듯 다년간의 훈련으로 다져진 절도 있는 움직임을 전부 숨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그럴싸한 자세로 물 흐르듯 부드럽게 인사를 했다.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우아하던 숙녀의 모습은 다시금 금세 사라지고 평소와 똑같은 활발함이 그 자리를 채웠다. 릴리아는 일단 활짝 웃으며 예의 바르게 식당 주인에게 인사부터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에반을 닮은 것도 같았다.
마을의 유명인인 에반의 덕을 본 탓인지 릴리아는 마을에서 겉돌지 않고 생각보다 빠르게 잘 적응해나갈 수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올바르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그것도 좋지만, 오늘은 아저씨가 먹고 싶은 걸로 먹을래요!
음... 어떤게 좋아요?
(먹고 싶은 걸 고르겠냐는 그의 말을 듣기는 한 걸까? 릴리아는 최대한 그가 좋아할 만한 음식이 무엇일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결국 그에게 선택권을 넘겨버렸다.)

533 이름 없음 (ykLVOsgYgA)

2022-07-17 (내일 월요일) 21:40:21

>>532

난 또 누가 너한테 고백하면서 같이 준건줄 알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꽃 같은걸 건네어주면서 고백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에반만 알고 있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됐다 됐어, 무슨 매일 한 송이냐. 이걸로도 충분하니까 매일매일 사오지는 마라. 가끔씩 사오면 내가 받아줄께.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답한 그는 잔뜩 릴리아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릴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널 훈련시킨게 나인데 그 정도는 당연히 알지. 그리고 임무 다녀오는 것도 몇번 봤고 네가 임무 나가는 지역은 내가 몇번이고 다녀와본 곳이니까 그 정도 예상하는건 별 거 아니지. (먼저 들어가라며 문을 열어주었더니 우아한 미소를 짓는 릴리아를 보고 그는 살짝 멈칫했지만 아무렇지 않은척 식당으로 들어갔다.) 내가 먹고싶은거라 ... 딱히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양고기를 파는 곳이니까 양갈비 정도는 먹어봐야겠지. 난 양갈비 먹고싶으니까 다른건 너가 먹고싶은거 시켜라. (메뉴를 슬쩍 보고서 양갈비로 금방 정해버린 그는 다른 메뉴들은 다시 릴리아에게 일임하고선 테이블에 식기를 세팅했다.) 그래서 오늘 임무는 할만 했니? 확인해보니까 그렇게 어려운 임무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마물을 마주칠 위험이 있으니까 말이다. (릴리아를 바라보며 물어본 에반은 물수건으로 손을 닦고나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선 잠깐 침묵했다가 입을 연다.) 릴리아, 언제부터 날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네가 기다리는 시간은 어쩌면 몇년, 몇십년이 될지도 모른단다. 정말 괜찮겠어?

534 이름 없음 (To9c1SguGg)

2022-07-18 (모두 수고..) 18:15:55

>>533
에이, 그럼 제가 안 받아왔죠. 전 아저씨뿐인데!
(릴리아는 에반에게 그렇지 않냐며 능청스럽게 질문하고 웃어보였다.)
안 돼요. 사랑은 매일 표현해야 하는 거라고 했어요.
(릴리아는 자신은 아저씨에게 열심히 대시해야 하는 입장이 아니냐며 나름의 이유를 이야기했다. 매일 꽃을 선물하겠다는 결정을 취소할 생각은 없는 듯 장난 가득한 목소리로 고집을 부리며 웃었다.)
다른 동료들은 아무리 같이 다녀도 그런 건 모르던데요? 물론 저도 그런 건 잘 못하고요.
역시 아저씨는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녀는 그렇게 혼자서 결론을 내리고 전부 이해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아저씨야'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뿌듯해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오늘은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오히려 평상시보다 더 조용한 것 같아서 좀 이상하긴 했지만요. 그래서 확인도 할 겸 며칠 뒤에 다시 한번 가보기로 했어요.
음...! 전 이걸로 먹을래요!
(릴리아는 그의 말을 전부 듣고 대답도 착실하게 하고 있었지만, 눈은 여전히 메뉴에 향해있었다. 그렇게 그가 식기를 세팅하는 줄도 모른 채 혼자서 열심히 메뉴들을 노려보며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양고기 스테이크를 선택하고 그대로 그의 것과 함께 주문했다. 그 후에 뒤늦게 자신과 그의 앞에 가지런히 놓인 식기를 발견한 릴리아는 에반에게 고맙다며 인사하고는 손을 닦았다.)
저는...
(그의 질문에 릴리아는 장난스러움을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식탁 위로 시선을 내렸다. 할 말을 고르는 듯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가만히 있던 그녀는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예전에 전, 제가 아저씨에게 큰 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날이 지나고 나서도 남아버린... 마치 깨진 유리의 조각 같은 거니까 아저씨가 절 볼 때마다 힘들지는 않을까 했죠.
그래서 빨리 독립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고요.
장난이었기는 했지만... 동료들 사이에서 언제까지 결혼 못하면 그냥 우리들끼리 살자는 얘기가 나온 적도 있어서 다 함께 집을 알아보려고 했던 적도 있었어요.
(릴리아는 그때를 떠올리듯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다가 멈췄다.)
뭐 지금 생각하면 아마 그때 사춘기라도 왔었나 봐요.
전 오히려 제가 아저씨를 기다릴 수 있다면 좋은걸요? 사실 아저씨가 기다려도 된다고 했을 때 이제 죽어도 여한은 없겠다 싶었던 거 있죠?
(의외로 진지하다 싶더니 결국 마지막에 와서는 다시 말투에 장난스러움이 가득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에반을 향해있던 차분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는 그녀가 한 말이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소리없이 작게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사실 내가 정말 아저씨를 좋아해도 되는 게 맞는지, 이런 선택을 해도 되는지 지금도 가끔씩 생각해요.
말은 이렇게 해도 결국 마음을 포기하지는 못했지만요!
(장난치듯 말을 끝맺었지만 역시 죄책감을 지우지는 못했던 것일까. 릴리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결국 그를 끝까지 바라보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다.)
아저씨는요? 제가 이렇게 아저씨 좋아해도 괜찮아요?
(결국 그녀가 그를 다시 바라보았을 때는 웃음기에 가려져 다른 감정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릴리아는 진지하게 그의 대답을 들을 생각은 아니었는지 마치 오늘 날씨가 참 좋지 않냐는 투로 그에게 가볍게 질문했다.)

535 이름 없음 (UDnKum4AAE)

2022-07-19 (FIRE!) 13:35:41

>>534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잘도 하는구나. (릴리아의 말에 조금은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누군가에게 이런 애정표현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도 괜찮은거 아니냐? 굳이 꽃이 아니더라도 ... (사실 그도 다른 방법이 뭐가 있는지 딱히 기억나는건 없었다. 꽃을 받는건 좋긴했지만 나중에 치워야할 일이 생각나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뿐이었다.)
그냥 예전의 습관이 남아있는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생각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되는거라서. (전쟁 당시엔 시간이 생명이었기에 그의 몸에도 습관처럼 배어버린 것이었다. 이제 와선 하고 싶지 않아도 알아서 되는 것이라 그도 어쩔 수는 없었다.)
지금이 가장 조용할 시기이긴 하지만 ... 그래도 교활한 놈들이니 조심하도록 해. 위험하면 언제든지 통신기로 날 부르고. (말만 안하지 릴리아가 임무를 나갈때면 조금 초조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어서 통신기를 손에 쥐고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단언컨데 너를 그곳에서 구해왔을때부터 그렇게 생각한적이 없단다. 오히려 부대원들이 얼마나 기뻐했는데. 너를 그렇게 생각했다면 진즉 고아원에 보냈을꺼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내가 맡았지. 다른 대원들은 가정이 있거나 다른 사유가 있었으니까 말이야. (릴리아의 말에 대답한 에반은 독립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그래봤자 내 손바닥 안이라면서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때리려했다.)
네가 나를 좋아하는건 ... 그래 나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눈치채지 못한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나쁘게 생각해본적도 없고.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는거야. 네가 나와 함께해서 행복할 수 있을지. 나는 너를 딸처럼 키우면서 너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기를 빌었으니까. (릴리아의 진지한 눈빛에 그도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자잘한 흉터가 가득한 손이 릴리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리고 그건 아직까지도 내 삶의 유일한 목표라고도 할 수 있어. 너는 정말 나랑 함께하면서 행복했니?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행복할 자신이 있어?

536 이름 없음 (duqVFCAyLw)

2022-07-19 (FIRE!) 20:29:29

"너랑 사귀는 거 진짜 재미없다."

하얀 손가락은 스트로우를 갖고 음료를 이리저리 휘젓는다. 얼음과 유리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맑게 울리고, 컵에 맺힌 물방울은 아래로 흘러내려 테이블 위에 고였다. 무료하고 따분한 시간이 늘어지고 늘어진다.

"이래도 내가 좋아?"

스트로우가 입술 사이에 물렸다. 음료가 줄어든다.

537 이름 없음 (cI1zwzlKuA)

2022-07-19 (FIRE!) 20:37:14

>>536

" 그래? 미안. "

짤그락, 하고 빈 컵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아직 음료가 남아있는 너의 컵과 다르게 나는 이미 다 마셔버리고 얼음이 녹은 물로 가끔씩 입을 적셔줄 뿐이다. 너의 그런 말에도 난 변함없이 웃으며 얘기한다.

" 응, 좋은데? "

창가로 햇빛이 비쳐들어와서 블라인드를 살짝 내려준다. 한 손은 턱을 괴고 나머지 한 손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약하게 두드린다. 재촉하는 의미는 아니다. 그냥 맑은 하늘이 보기 좋아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538 이름 없음 (uvSstoJgKc)

2022-07-19 (FIRE!) 22:19:23

>>535
그게 제 장점이죠!
다른 방식이요? 어떤 방식이요? 알려주면 그 방법으로 표현해 드릴게요!
(릴리아는 어색한 표정의 에반을 보며 웃더니 그의 말에 오히려 역으로 질문하며 신나서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예전...
(그 예전이라는 것이 전쟁을 의미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그녀는 예전 습관이라는 말을 듣고 아무런 대답도 못 한 채로 입을 꾹 다물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누군데요! 아저씨 제자예요, 제자.
항상 조심하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위험할 일 없어요! 지금까지도 잘만 해왔는걸요?
(그의 제자라는 말을 하며 뿌듯하게 웃던 릴리아는 자신의 위험에 더는 그를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통신기를 사용하지 않을 생각으로 교묘하게 그 대답만을 피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긍정적인 대답만 내놓았다.)
정말 단 한순간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 없었어요? 원망도, 후회한 적도 없었어요?
(에반의 말을 들으며 겉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장난스러움 가득하던 목소리 그대로 그에게 질문했지만, 속으로는 그 당시 직접 볼 수 없었던. 정확히는 사경을 헤매며 정말로 볼 수 없었던 장면들과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단편적인 기억들을 떠올리려 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온전히 짐작하고 그의 말이 진실인지 판단하려 애썼다.
무너진 잔해와 안개처럼 자욱하던 어둠. 의식이 멀어져 가는 와중에도 본능적으로 잡았던, 아마도 그의 것이었을 손. 자신을 데려온 아저씨. 기뻐했다는 대원들. 피 냄새와 뒤섞인 약 냄새. 희미하게 들려오던 다정한 목소리. 그리고 자신을 살리며 희생한 —.
혼잡한 기억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그녀는, 그에게 이마를 맞자 마치 아파서 손바닥으로 이마를 가리는 척 슬그머니 얼굴을 가리며 겨우 유지하고 있던 미소를 풀고 표정을 숨겼다. 그래도 맞은 건 조금 억울했는지 손바닥 안이라는 그의 말에 '그렇긴 하지만...'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소심하게 반항했다. 잠시 후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다행히도 금방 감정을 갈무리한 듯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이 매우 괜찮아 보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같이 밥 먹고, 떨어져 있을 때는 서로 연락도 하고, 대화하고, 장난치고... 따지고 보면 동료들과도 하는 일이고,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전부 아저씨와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소중하고 행복한 거 있죠?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하자 릴리아는 느릿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치려 하며. 그 흉터투성이인 손을 이끌어 자신의 볼에 가져가려 하며 웃었다.)
아저씨도 나도 사람이니까 언제나 행복하기만 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래도 전 아저씨랑 헤어지는 것보다 같이 있는 게 더 큰 행복이에요. 아저씨가 제 행복이니까요.
(그녀는 너무 오글거리는 말이었냐며 장난스러우면서도 얄밉지 않게 그에게 질문했다.)

539 이름 없음 (cI1zwzlKuA)

2022-07-19 (FIRE!) 22:34:57

>>538 글쎄, 아침마다 모닝 키스를 해준다던지? (신나서 놀리려는듯한 릴리아를 보고 에반은 조금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에반도 장난끼가 있는 편이긴 했다.)
딱 그때가 가장 위험할 시기니까 좀 더 조심해야해. 자신감을 가지는건 좋지만 잘못하면 화를 부를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잘못되어버린 동료들을 많이 봐온 에반이었기에 릴리아가 더욱 걱정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얘기하면 잔소리로 들릴까 그는 다른 질문에 대답을 했다.)
단 한번도 그래본 적은 없다. 네가 크는걸 보는 것으로 그날 죽은 동료들에게 속죄하는거라 생각했거든. 사실 너를 구조한다고 본래 이탈했어야하는 시간보다 늦게 이탈했었다. 그래서 결국 공격을 받았지만 ... 그날 다쳐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동료들 또한 너를 원망한 적이 없단다. 옛날에 한쪽 팔이 없는 아저씨 본 적 있지? 그 아저씨도 내 동료였단다. 그때는 어릴적 친구로 소개했지만 말이야 ... 전쟁은 너무 오래 지속되었고 모두가 지쳐가고 있을때였어. 그 와중에 네 존재는 우리에게 큰 기쁨이었단다. (릴리아가 자신의 손을 볼로 가져가자 그는 볼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어주며 말했다.)
조금 오글거리긴 했지만 이번엔 들을만 했다. 아 음식이 나오나보다. (볼을 만져주던 손을 거두고 테이블에 공간을 만들자 주문했던 음식들이 나왔다.)
맛있게 먹어라. 꼭꼭 씹어먹는거 잊지말고.

540 이름 없음 (0rO/7.jHxI)

2022-07-20 (水) 15:11:20

>>539
그... 그게 좋으면 내일부터 해 드릴게요! 굿나잇 키스도 해줄 수 있어요 난...!
(설마 그에게서 그런 대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는지 방심하고 있던 릴리아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그를 놀리려고 했던 그녀는 반대로 본인이 당황해서 허둥지둥 시선을 피했다. 나름 에반에게 반격을 한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한술 더 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이미 얼굴이 붉어진 모습으로 봐서는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정말 조심, 또 조심할게요. 큰일은 없을 테니까 괜찮아요!
(그녀도 에반이 일을 위해 나가 있었다면 온종일 그를 걱정했을 것을 알기에. 그리고 그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던 릴리아는 나름 에반의 말을 잔소리라 불평하지 않고 잘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속죄는 아저씨가 아니라 제가 해야 하는걸요.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네, 기억해요. 그날 이후로 잊은 적이 없어요. 그때 제대로 인사도... 사과도 못 드리고.
정말 많은 걸 받았어요. 평생 갚을 수 없을 정도로요. 아저씨에게도, 그분들 모두에게도 말이에요. 감사해요.
(어릴적 친구가 아닌 아저씨의 동료였다던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리던 릴리아는 기쁨이라는 에반의 표현에 더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멈칫했다. 처음 보는 아이 하나 때문에 잃지 않았어도 되었을 많은 것을 잃고,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이 남았음에도 자신에게 원망 대신 사랑과 희망을 주었던 그들의 다정함과 배려가 그녀에게 가슴 아플 정도로 와닿았다. 결국 릴리아는 제대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그저 그의 손에 얼굴을 묻으며 찡그리듯 웃어 보였다. 아직 모든 죄책감을 버리지는 못한 듯했지만 이전보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이번엔 괜찮았어요?
(그녀도 음식이 나오려 하는 것을 보고 그의 손을 놓아주었다가 들을만했다는 그의 말에 가볍게 웃었다.)
네. 아저씨도 꼭꼭 잘 드셔야 해요?
잘 먹겠습니다!
(그녀는 밥을 먹기 직전까지 그를 놀리려 하곤 버릇처럼 혼잣말에 가깝게 식전인사를 했다.)
역시 양고기는 여기가 최고인 것 같아요...!
아저씨, 이거 진짜 맛있는데 드셔 보실래요?
(릴리아는 스테이크를 조금 잘라서 먹어보더니 만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고 다시 한 조각을 잘라 포크로 찍어 그에게 보여주듯 조금 들어 올리며 에반에게 맛볼 것을 권유했다.)

541 이름 없음 (B.iW8ru.O2)

2022-07-20 (水) 16:05:39

>>540

얼굴이 새빨개진게 굿나잇 키스까진 못하겠는데 그래. (자신의 장난섞인 말에 얼굴이 붉어진채로 얘기하는 릴리아를 보고 에반은 재밌다는듯이 웃으며 얘기했다. 이럴때는 영락 없는 소녀라서 세월이 느껴지기도 했고.)
그렇게까지 말하니 걱정은 좀 덜하겠구나. 그래도 요즘엔 위험한 수준의 마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사실 에반의 일이 뜸한 이유도 위험한 마물만 골라서 사냥하는 것도 있었다. 물론 릴리아에겐 철저히 비밀이었지만.)
그 누구도 속죄할 필요는 없는 일이야. 그런걸로 죄책감 같은건 가질 필요 없다. 그 전쟁도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니까 말이야. 우리는 그냥 휘말린 것에 불과해. 그러니까 너는 속죄보단 더욱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릴리아의 표정에 볼을 만져주던 손을 다시 머리로 올려서 몇번 쓰다듬어준 그는 차려진 음식을 보고선 식기를 들었다.)
나야 위장이 튼튼해서 괜찮단다. 잘 먹겠습니다. (자신 몫의 양갈비를 썰어서 먹던 그는 릴리아의 말에 자신의 접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올려두면 알아서 먹을께. 너도 이것 좀 먹어봐라. (자신 몫의 고기를 썰어서 릴리아의 접시에 놓아준 에반은 문득 무언가 궁금한게 생겨서 씹던 고기를 넘기고선 말했다.)
근데 누가 너한테 고백했다는거냐? 내가 이 마을 남자애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데 ... 요 녀석들 티를 안내고 있었던거냐!

542 이름 없음 (dSjGZMkuUE)

2022-07-20 (水) 23:33:59

>>541
아, 할 수 있어요! 오늘 할 테니까 두고 봐요!
(본인도 얼굴이 빨개진 것을 알고 있었는지 그에게 직접적으로 지적당하자 릴리아는 고개를 돌려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하면서도 결국 끝까지 자존심을 굽히지 못하고 이야기했다.)
마물도 아저씨처럼 움직이기가 싫은가봐요. 어떻게 아저씨가 일을 안 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그 위험하던 마물들도 보이지를 않네요.
... 설마 안 나오는 시기가 아니라 원래 마물들이 있어야 하는데 아저씨가 다 없애버린 건 아니죠?
(그가 위험한 마물을 사냥하러 가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는 그녀는 그저 농담처럼 이야기하며 웃었다. 아마 이를 알고 있었다면 농담이 아니라 잔소리를 했을 것이었다.)
꼭... 잘 살게요. 절 살려주신 걸 후회하지 않으시도록 말이에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릴리아는 조금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다시 그의 쓰다듬을 받게 된 그녀의 입가에는 다행히도 작은 미소가 맺혀있었다.)
감사해요, 저도 잘 먹을게요! 아저씨도 많이 드세요!
(튼튼하다는 그의 말에 소리없이 웃으면서 마저 고기를 먹던 릴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테이크를 잘라 작은 부분을 남겨두고 크고 좋은 부분을 에반의 접시에 옮겼다.)
제, 제가 그런 말을 했었나요? 기억이 안 나는데... —.
그거 제가 아니라 아저씨 아니었어요?
(그녀는 그가 준 양갈비를 잘 맛보고 있다가 고백 얘기가 나오자 움찔하더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척 괜히 물만 마시면서 시선을 피하며 어설프게 말 돌리기를 시도했다. 이제와 그의 앞에서 타인에게 고백받았다는 것을 자랑하듯 이야기하기에는 어쩐지 좀 부끄러운 탓이었다.)
그냥 그... 있어요, 걔...
그나저나 아저씨, 다음 주에 수도에서 열리는 축제 갈 거예요?
(그녀는 조금이라도 말을 아끼기 위해 얼른 고기를 먹으며 입을 다물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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