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306068> 자유 상황극 스레 3 :: 1001

이름 없음

2021-09-13 08:11:25 - 2022-12-20 23:06:42

0 이름 없음 (wSjOpuFcMU)

2021-09-13 (모두 수고..) 08:11:25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308 이름 없음 (kYJ74/gKbk)

2022-03-30 (水) 23:06:33

>>307
감히, 내 원칙을 비웃다니. 거기다 이름에 일복을 타고났다고 말해?! 머릿속에서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느낌이 든다. 누가 일복을 타고나, 누구 이름이 재미없어! 우리 부모님이 지어주신 자랑스런 이름이다! 민트초코 따위 될까 보냐. 되다 못한 그런 디저트의 이름을 갖는 순간 자신은 평생 뇌가 세척당한 상태로 살아야할 것이다. 푸, 한숨을 쉬며 감정을 진정시키고 날아오는 수류탄들을 시야에 들인다. 성가신 무기를 쓰는데, 본인까지 휘말려도 상관 없다 이거야? 열기와 긴장감에 식은땀 한 줄기를 흘리며 근처의 벽을 염동력으로 뜯어내 폭압을 막아낸다. 그리고 가스병을 던져 깨뜨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먼지와 땀이 섞인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넘긴다.

“내가 살아온 31년 간, 스스로를 예쁘고, 사랑스럽고, 가련하다고 하는 여자애들 중에서 실제로 그런 애들은 없었거든. 그래도, 뭐, 친구끼리 다투곤 하잖아. 안 그래? 그런거라 보자고.”

그래, 이놈의 가스가 문제였지. 천장에 구멍을 뚫어서 분산시키는 방법도 있었지만,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 그 위험성을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구멍을 낸 이유는, 그의 능력의 본질에 있다. 평범한 염동력이라면 그 세기에 따라 능력자에게 매겨지는 강함의 척도가 달라지곤 한다. 맥워커는 그런 강함만으로 따진다면 분명 상위권에 위치하진 못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상위권의 염동력자들과 호각을 다투고, 심지어 한 수 접어주는 이유는, 누구보다 섬세하게 다룰 수 있다. 그 이유 하나뿐이다.

“미안하지만 죽어도 일하기 싫어도, 끔찍하게 출근하기 싫어도 아가씨 같은 녀석들이 설치고 다녀서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어. 내가 이짓거리를 그만두는건 빌런놈들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때 뿐이거든. 그러니까 아저씨의 퇴근 시간과 허리를 생각한다면, 얼른 잡혀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민트초코라 부르지마라. 분명히 말했어. 진짜로.”

의외로 속이 좁다. 그러곤 손가락이 아닌 손바닥 전체를 움직인다. 그러자 천장에 난 구멍 주변에 날아다니던 먼지가 떨어지는 것이 멈춘다. 흙먼지들이 만들어낸 윤곽은 마치 투명하고 길다란 원통이 박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내, 반대편 손으로 꾸욱 잡아당기듯이 허공을 긁자, 핑크 다이아몬드의 분홍색 연기들이 염동력으로 만들어낸 원통형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내 금고 안을 가득 메웠던 연기를 전부 빨아들여 순수한 분홍색 연기만이 가득 찬 것을 보고는, 압축된 연기를 한번에 힘을 주어 발사한다. 좁은 구멍으로 빠져나온 길다란 1자형의 연기는 그대로 하늘 저멀리까지 깔끔하게 날아간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네, 진짜로. 뛰는 것도 못하는데, 하아.”

이미 당신이 도망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길게 한숨을 짓고는 인화성 가스로 인한 폭발로 날아온 파편들을 염동력으로 쳐냈다. 그 중 몇개는 머리나 어깨에 맞아 피가 조금 흘러내리지만, 개의치 않는다. 걷는 것보단 염동력으로 날아가는 것을 택해, 빠르게 뒤쫓는다.

“저기, 월요일 아침부터 새파랗게 어린 아가씨랑 술래잡기 하고있는 아저씨 체면 좀 세워줘. 응? 그 센터에 친구들도 분명 많을걸. 근데 뭘 먹고 그렇게 빠른거야, 대체.”

아무리봐도 신속한 제압이 필요하다. 방독면도 벗어제끼고 신체 주변을 감싼 염동력에 힘을 줘 벽을 부셔가며 빠르게 쫓아간다. 중간에, 당신이 지나갈 법한 골목의 좌우 벽을 뜯어 길을 막아가며 진로를 방해한다. 무작정 길을 막는 것이 아닌, 최대한 구석으로 몰아가기 위함이다. 그래봤자 당신이 벽을 부수고 빠져나가면 그만이지만 바깥으로 나갈 경우, 이쪽이 좀 더 유리해진다. 어떻게 할 테냐, 깜찍한 아가씨.

309 이름 없음 (LWmIMFYTnY)

2022-03-32 (불탄다..!) 22:57:48

" 내 살다보면, 별의 별 또라이들을 다 만나게 됩니다. "

독한 담배연기가 어두운 밀실을 가득 채운다. 천장에 조악하게 달린 낡은 조명과 정가운데 펼쳐진 철제 책상, 반듯한 의자 하나와 대조되는 비뚤게 기운 의자 하나. 50년대 턴테이블에서 흐를 법한 재즈 음악을 깔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우리라. 그중 남자는 아니꼽게 비뚠 자리에 앉아 상대를 응시하고 있다. 잠시의 침묵. 남자는 다시 밋밋한 금반지를 낀 손가락을 까딱이며 깊게 담배 연기를 들이마신다.

" 그런데 그쪽 같은 사람은 또 처음이네…… "

겨울날 피어오르는 입김처럼 쏟아지는 연기들. 이미 냉랭해진 공기 속 이것과 그것은 별반 다를 게 없다. 남자가 가벼운 비소를 흘리며 재떨이 위로 담뱃재를 털어낸다. 번듯한 양복에 듬직한 몸뚱이. 제 능력껏 머리를 단정히 만져본 듯 싶으나 삐죽 튀어나와 흐트러진 머리칼 한두 개는 어딘가 모난 그의 성격을 그대로 내비치는 성 싶다. 남자의 미간 사이에 깊은 주름이 새겨진다. 항상 인상을 찌푸리는 습관 탓이다. 결코 만만한 모습을 보여선 안되는 자리지. 남자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지위를 설명하거든 늘 그리 중얼였다. 짙은 이목구비와, 상반되게 가벼운 푸른 눈동자. 홀로 무언가를 몰골하듯 눈동자를 움직이던 남자가 다시금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 아, 죄송합니다. "

남자의 태도가 양껏 거만해진다. 가볍게 뒤로 젖힌 상체와 불규칙적으로 까딱대는 구둣발. 상대의 머릿속을 열심히 읽어내려는 건방진 눈빛. 그리고 당신의 의사 따위는 고려치 않고 끊임없이 내뿜는 독한 담배 연기. 늙은 조명 아래로 연기가 희뿌옇게 들이차고 남자의 손에 들린 담배 한 대는 목구멍 곧 아래까지 몸을 태워낸 채 위태로운 호흡을 이어간다. 조용히 담배를 물고, 마지막으로 마시는 한 모금. 남자가 지독한 안개같은 연기를 삼켜내며 철제 책상 위로 담뱃머리를 짓눌러 문지른다.

" 뭐, 까짓거 하죠. 물어보고 싶은 게 뭐라고… 하셨더라? "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 아래로 희끄무레한 담배연기가 뿜어져나온다. 그 사이로 형형히 빛나는 눈동자가 결코 선한 자의 것은 아니었으니, 어쩌면 악마의 유혹일지 모르리라. 붉은 벽지와 오렌지빛 조명, 여건만 된다면 남자는 흔쾌히 데킬라 한 병을 주문했을테다.

# 남자는 거대 마피아 조직의 고위인사, 상대는 마피아와 연루된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찾아온 경찰, 기자, 혹은 피해자의 가족...? 아마도 그런 쪽! 유서 깊은 마피아 조직은 현대화를 거치며 이미지를 세탁해 평판 좋은 대기업을 운영하고 있어 범죄의 증거를 찾기 어려운 상황! 이곳은 어쩌면 취재하러온 당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울지도! 편하게 이어줘!

310 이름 없음 (NMlIrlWgNs)

2022-04-03 (내일 월요일) 01:10:14

그래서, 이게 네가 바라던 히어로의 모습이야? (불타고 있는 건물,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울고 있는 아이. 하지만 경찰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과 참혹한 풍경, 그리고 당신과 나뿐.) 지금이라도 멈춰. 아직 늦지 않았어. 네가 원하던 히어로는 이게 아니잖아. (슬픈 표정을 지은 흑발 금안의 남자는, 당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311 이름 없음 (rqh/1cHbIc)

2022-04-03 (내일 월요일) 01:30:15

너무나 평화로워보이는 황실의 모습은 그저 겉보기에 불과했다. 그 일면에선 권력을 잡기 위해 치열한 암투가 있었고 그건 다음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될 황태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너무나 자비롭고 인자하며 두뇌도 명석한, 정말 너무나 뛰어난 자질을 지닌 황태자였으나 건강이 약하고 체력이 좋지 못하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황실의 대신들은 황자의 재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지금 저대로는 황제의 자리에 올라도 건강상 업무를 보지 못할테니 폐위하고 다른 이를 그 자리에 올려야한다는 이들이 있었으며, 그런 질서가 어지럽혀지는 말 따윈 절대로 하면 안된다는 이들끼리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 아직 피는 튀지 않았으나 언제 피향기가 튈지도 모르는 환경 속에서 황태자는 자신의 최측근과 황제, 그리고 일부 황족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몰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요양길에 올랐다. 서쪽에 있는 실력 좋은 마법사에게 가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서.

"황태자님! 건강이 나쁜게 아니었습니까?!"

"언제까지 제 건강이 나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이제는 이런 일도 쉽사리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 있는 황태자는 누구인가. 그는 황태자의 최측근 중에서도 최측근이였다. 황태자의 바로 옆에서 황태자를 지키던 검이요 방패인 사내였다. 마법의 힘을 빌려 얼굴을 황태자와 똑같이 만들어낸 그는 황태자인 척, 대신들의 앞에 서 있었다. 길게 한줄기로 묶어내린 은빛 머리카락과 푸른색 눈동자. 그리고 갸름하고 기품이 흐르는 얼굴까지. 그야말로 똑같다 못해 본인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그럼 어째서 사내가 이렇게 연기를 하고 있는가? 그에 대한 진실은 이러했다.
황태자가 요양길에 나섰다는 것이 알려지면 누군가는 시꺼먼 속을 품고 황자를 해하려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황자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최측근인 사내에게 부탁해서 자신인양 행동하고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길거리를 떠돌며 굶주리고 살아갔으나, 우연히 거리로 온 황태자의 자비로 황궁에 들어와 교육을 받고, 밥을 먹으며 무술을 익힌 사내는 황태자의 명이라면 목숨도 끊을 자신이 있었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자신이 황태자의 흉내를 내고 있어야하니 황태자의 곁을 지킬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자신의 존재는 그렇게 알려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자신이 알려졌다면 황태자가 있는데 그 옆을 지키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고 의심을 살테니까. 일단 사내는 어떻게든 황태자가 건강을 회복하고 돌아올 때까지 버티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들라고 해주세요."

그리고 지금까지 그는 그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연기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물론 지금 황태자를 찾아온 이에게도 그게 통할진 알 수 없었지만.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누군가가 찾아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냥 말 그대로 황자는 건강상 문제로 남들 몰래 다른 곳으로 요양을 갔고 황자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20대 정도의 최측근이 마법의 힘을 빌려 황자인척 대리로 행동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누군가가 찾아온거야.
찾아온 이는 아무나 좋아. 다만 너무 말도 안되는 맥끊기는 아니었으면 해. 이를테면 컷!! 영화 촬영 끝났습니다라던가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건 사절이야. 잇지도 않을거고.
일단 이렇게 써두고 자러갈 생각이니까 혹시 이 새벽에 잇더라도 기다리지 말길 바랄게! 정말 편하게 이어도 상관없어! 아. 배경은 서양이야.

312 이름 없음 (llu5yPLJqg)

2022-04-03 (내일 월요일) 01:49:51

>>310
쏠 거야? (그리 말하는 자는 여상히 웃습니다. 슬픔도, 기쁨도, 후회도 희열도 그 무엇 하나 드러내지 않는. 그저 얼굴거죽 위로 잡아 당기니 웃는 체 할 뿐입니다.) 쏠 거니? 그 총으로 나를 공격해, 내 심장을 꿰뚫어 이 모든 참상을 멈출 테야? 난 네가 그러지 못 하리라는 데에 걸겠어. 그렇지만, (발 내딛습니다, 여전히 바뀌지 못 한 당신을 향해.) 여기서 멈추는 것도,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네.

313 이름 없음 (NMlIrlWgNs)

2022-04-03 (내일 월요일) 02:26:58

>>312
...이미 알고 있잖아. 내가 못 쏜다는 건. (당신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깊은 슬픔과, 후회, 그리고 약간의 죄책감. 당신을 보는 감정이었다.) 난 네가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 아직은 어딘가에 내가 기억하는 네가 남아있을 테니까. 그걸 알면서도 널 죽일 수는 없어. (그저 혼자 중얼거렸다. 어느샌가 너무나 바뀐 당신을 향해서.) 하지만 네가 멈추지 않는다면, 난 너를 막을 거야. 죽일 수는 없지만, 제압할 수는 있으니까. (당신이 다가오지만 총은 거두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을 단호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다.)

314 이름 없음 (llu5yPLJqg)

2022-04-03 (내일 월요일) 08:27:39

>>313
(그제야 이 자의 표정에 무언가 감정이 드러납니다. 안타까워라. 가엾이 여기는 대상만이 오리무중일 뿐.) 나는 알아. 네 태도 또한, 아주 굳센 다짐의 결과물일 테야. 극악무도한 악인마저 죽이려 들지 않는 정의의 히어로. 멋지네, 이상적이야. (나는 그러지 못 했지만. 대중은 비명 소리로 코러스를 넣어준다. 네가 이걸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가끔은...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게 있어. 그걸 빨리 깨달아. 그리고, 강해져! 방아쇠를 당겨! 무얼 하고 있니? 제압 안 할 거야?! (호통칩니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바람이 머릿결 사이를 파고들어 이리저리 흐트러뜨립니다. 어느샌가 양손에는 단검이 들립니다. 주무기지요.) 나는 멈추지 않아! 모든 걸 뒤엎어버리기 전까지... 히어로는 멈춰서는 안 된다고! 애초에, 너같은 애송이가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네! (값싼 도발입니다. 어서 빨리 죽여달라는 바람의 발현.)

315 이름 없음 (2Xv740JREE)

2022-04-03 (내일 월요일) 11:40:37

>>314
(감정이 드리운 당신의 표정에, 그의 눈빛에 잠시 의문이 스친다. 왜, 그리고 누구에게.) 나는... 내가 아니라, 네가 이렇게 되길 바랬어. 이상 속에 있는 정의의 히어로. (사람들의 비명 소리, 아이들이 우는 소리, 죽어가며 내는 단말마.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은 할 수 있는게 고작 이것 뿐이라. 엄습하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닥쳐. 네가 뭐라 하든 날 널 예전의 너로 돌아오게 만들 거야. (강해져라. 당신이 언제나 하던 말이다. 우스울 뿐이다. 돌이킬 수 없다면 어째서 예전처럼. 망설이던 내게 마음을 굳히게 만드는 건지. 그의 왼손에는 여전히 자동권총이, 오른손에는 리볼버가 자리잡는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해도 널 막을 거야. 히어로는 물러서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덤벼! 죽지 않을 정도로만 죽여줄 테니까! (쌓였던 분노섞인 말을 내뱉었다. 죽여달라는 당신도, 불타고 있는 주변도 전부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는 다가오는 당신에게 달려가며 자동권총을 여러발 쏘며 탄막을 형성했다. 급소를 일부러 피한건지, 총알은 팔다리 쪽으로 향한다.)

316 이름 없음 (yWTJw2wySk)

2022-04-03 (내일 월요일) 20:50:33

>>315
응. 실패했네. (당신의 바람 듣고 그리 단언합니다. 양측의 이상상 산산히 부수어버린 게 자신임을 알고나 있을까요? 다만 당당할 뿐입니다.) 이상은 그저 하룻밤 꿈이야... 꿈을 좇아 현실을 외면할지, 현실을 직시하고 환상에서 깨어날지. 난 그 중 후자를 택한 거야... (나를 무위의 무대 위로 다시 올리려 하네요.) 그런데도 나한테 다시 안대 씌울 속셈이야? 아무리 너라도 그건 못 봐줘!!
(실실 웃던 웃음 어디로 가고 호승심과 전투 향한 집념이 그 자를 집어삼킵니다. 당신한텐 오히려 이 모습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의 옆에 있던 이 사람은 언제나 이랬잖아요?)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몇 발의 탄환을 튕겨냅니다. 몇 발의 탄환이 기다란 붉은 족적을 남깁니다. 일반인이라면 - 전투에 능하지 않은 여타 빌런이었다면 통증에 주저앉았을 상처 달고도 당신 향해 휘두르는 팔은 멈추지 않습니다. 절대 그만두지 않으리란 선언을 끝까지 지키려는지.) 뭐 하니? 사지는 급소가 아니야. 머리. 심장. 하다못해 폐 정도는 노려. (제 말 지키려는 듯 오른손에 쥔 단도는 정직하게도 당신의 목을 노리며 달려듭니다.) 네가 날 죽이지 않는다면, 내가 널 죽일 테야. 차라리 그게 우리한테 행복할 테니까...

317 이름 없음 (p6fTa2AlTw)

2022-04-04 (모두 수고..) 06:41:14

>>316
모를 일이지. (현실을 부정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확신하는 건지. 당신이 이상을 산산히 부수어도, 그것에 당당하더라도, 그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을 죽이고, 건물을 불태우는게 현실을 직시한 거야? 정말, 이게 히어로일까? (이상은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 또한 꿈을 꾸고 있잖아.) 그만 정신 차리라고! 네가 하고있는 짓이 뭔지, 똑똑히 바라봐!!
(당신은 여전히 내가 알고 있던 당신이었다. 호승심 가득한 모습도, 아까의 호탕치는 모습도. 그런데 왜 지금의 당신은 그때와는 너무나 다른 건지 모를 일이다.) 이 미친놈..! 그 통증을 무시하고..! (그러고보니 잊고 있었다.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탄막이 아닌, 저격을 했어야 했는데. 이미 늦었다.) 닥쳐. 난 아무도 죽이지 않을 거야. 이 싸움에서, 둘 모두 죽지 못 하게 할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당신의 말마따나, 쉽지 않아보였다. 정직하게 날아오는 단도를 고개와 상반신만 비트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낸다. 단도가 목을 스치고 지나가며 붉은 실선을 목에 남긴다. 급소를 정확히 노리는걸 피해야 하면서, 상대방의 급소도 맞추면 안 되는 싸움이라니.) 네가 죽으면, 나는 행복할까? 내가 죽으면, 너는 행복하니? (당신의 말에 울컥했는지 총을 든 손과 당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크게 떨린다.) 알지도 못하면서 급소를 노리니 어쩌니, 집어 치워!!! (결국 쌓아두었던 것이 폭발하고, 자동권총이 아닌 리볼버의 총구가 당신을 향한다. 대구경 리볼버의 탄환 두 발이 각각 당신의 허벅지와 팔목으로 향했다.)

318 이름 없음 (UgmDynjhX2)

2022-04-08 (불탄다..!) 12:33:07

>>311

깨끗한 은빛 머리카락을 낮게 틀어 고정하고 앞머리는 뒤로 깔끔히 넘긴, 서늘한 눈매와 푸른 눈동자를 지닌 냉철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 절도 있는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어진 성품을 지녔던 황태자와는 인상이 퍽 다르지만 뜯어보면 닮은 구석이 있는 그는, 황태자의 어미이자 제국의 황제인 루도비카 알브레히트였다. 황제는 황태자로 변장한 사내를 보자마자, 경악한 듯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일국의 황제임에도 감정이 다잡아지지 않는지 마른 세수를 하던 그는, 애써 냉엄하게 가다듬은 얼굴로, 그러나 다부지게 그러쥔 주먹을 희미하게 떨면서 입을 열어 진노가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아침 황태자의 부고가 전해졌거늘, 네 놈은 누구이기에 여기서 내 아들의 행세를 하고 있느냐!"

마치 황태자의 대역을 하고 있는 사내를 모르는 듯, 냉정하려 애쓰면서도 충격과 진노를 다 감추지 못한 듯한 기색의 황제였지만, 그는 이 사내를 잘 알고 있었다. 죽은 아들이 가장 신임하던 측근이라는 것도, 그가 비밀리에 요양을 떠난 스스로의 공석을 메우기 위해 대역을 맡긴 이라는 것도. 그런 이를 이런 식으로 처분하게 된 것은, 황태자의 어머니이지 한 개인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는 개인이기 이전에 황제였다. 그렇기에,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기 전에 그 이후의 일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가 죽은 지금 제국에는 새로운 황위 계승자가 필요했고, 그를 옹립하기 위해서는 이전까지 황태자를 따랐던 이들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들을 가장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눈 앞의 사내를 황태자 사칭범이자 시해 사주범으로 몰아, 본보기로서 처형하는 것이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해서 무를 수 있는 일도 아니었기에, 황제는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근위대를 불러 명을 내렸다.

"뭣들 하느냐! 당장 이 자를 포박하라!"

그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근위병들이 일제히 황태자의 모습을 한 사내를 에워싸며 창을 겨눴고, 그중 몇이 앞으로 나와 그를 포박하고자 덤벼들었다.

319 이름 없음 (6pyb05QBWU)

2022-04-08 (불탄다..!) 12:51:24

>>317 미안하지만 이을 수는 없을 것 같네. 일단 손님이 찾아왔다는 보고가 왔는데 그 찾아온 이가 황제다? 그런 판국에 역적으로 몰아서 죽이러 왔다? 근데 그걸 최측근되는 이는 황자가 죽었다는 것도 몰랐다? 너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
어지간한건 다 이으려 했는데 이건 상황 자체도 정말 당황스럽네. 고로 이건 패스하도록 할게.

320 이름 없음 (6pyb05QBWU)

2022-04-08 (불탄다..!) 12:51:53

실수야. 317이 아니라 318이야

321 이름 없음 (UgmDynjhX2)

2022-04-08 (불탄다..!) 13:04:46

>>319 아이고, 황제가 시종에게 손님이 왔다고 이르라고 하고 보냈다는 서술을 하려고 했는데 깜빡했네...
그렇지만 황태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건 황제나 측근이나 마찬가진데 당연히 황제이자 황태자 엄마인 루도비카한테 먼저 알리지 않을까? 아침에 들어온 부고고 말이야.

자기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고 하면 어떤 심경일지, 그런 마음으로 어떤 대처를 할지 되게 기대했는데, 원하지 않는 상황이라니 아쉽네...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도 좋은 하루 되길 바라

322 이름 없음 (uG1yswtFho)

2022-04-19 (FIRE!) 23:10:35

' 오늘의 날씨입니다. 봄이 찾아오며 따스하고 화창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오늘 역시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교차는 조금 크겠으나 오후에는 최대 21도까지 기온이 오르며 완연한 봄날씨를 만끽할 수 있겠습니다— '

세상은 평화롭다. 하루하루를 어렵게 버텨가는 이들에게는 야속하게도 말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지면 내일이 오는 것이 당연하고 또 당연한 이 세상. 당신은 아마 스물 둘셋을 먹은 창창한 청년이었던가.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 라는 우스갯 소리를 중얼이며 얼마 남지 않은 시험을 위해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었을지도, 휴대전화를 만지작대며 아르바이트의 따분함을 죽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잔뜩 몰려온 피로감에 에너지 드링크를 연달아 마셔대고 있었을지도. 요컨대 당신은 지루하고 따분하나 변함없는 일상을 살고 있었으리란 뜻이다.

" 저, 저기! "

그런 평범한 당신에게, 누군가 말을 건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앳되어보이는 젊은 여자다. 숫기가 없게 생긴, 묘하게 색채가 옅은 여인은 무언가를 우물쭈물 망설이며 당신의 옷깃을 당겼다. 그리 대담하게 낯선 이의 옷깃을 끈 여자는 한참, 아주 한참이나 뱉을 말을 고민하다 겨우내 제 입을 열어냈다.

" 내일, 세상이 멸망할거예요... "

여자는 내일, 세상이 망할거라고 말했다.

323 이름 없음 (bDn4Q/X.vc)

2022-04-28 (거의 끝나감) 20:55:03

님, 맨날 여기서 뭐 합성하고 계시네요? 뭐 만들고 계세요? (당신의 곁으로 다가온 유저는 철갑옷을 입은 기사 클래스로 보이지만, 당신의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인벤토리에서 피리를 꺼내든다. 그리고 익살맞은 리듬의 연주를 하다, 당신의 합성이 언제나처럼 실패하자 삐루루루룩, 하고 처지는 음악소리를 낸다.) 아깝당.

324 이름 없음 (dQ6js4ZQ8A)

2022-04-30 (파란날) 04:25:57

떠올릴 수 있는 기억 중, 가장 오래 된 것은 텅 빈 폐허의 풍경이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고, 그곳은 내게 이 세상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아챘을때엔, 내가 가진거라곤 오직 끝없는 공허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던 당연한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부모도 내겐 없고, 추위와 비, 벌레 따위를 피할 수 있는 아늑한 집도 없었으며, 당장 끼니를 해결할 수단조차 내겐 없었다. 공허함, 무력감, 그리고 이어지는 표독스러운 절망. 울어도 상황이 달라지는건 없었기에 나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내 두 주먹이었다. 믿을 수 있는건 내 두 주먹 뿐이었다. 이 두 주먹으로 모든것을 쟁취하리라. 내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들을. 이것은 하나의 신념이 되었고, 나는 그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어떤 수단을 쓰든간에 반드시 이뤄내리라. 살아남아서 내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들을 강탈하리라.

처음엔 소매치기로 시작했다. 물론 그 때엔 기술이 좋지 않아 쉽게 걸리기 일쑤였다. 그 때마다 두 주먹으로 해결하려고 덤벼들었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뭐하는 짓이냐며 덤벼오는 멍청이들에게 주먹을 날리고, 잡아 던지고. 꺾고, 조르고, 급소를 찔렀다. 그러나 그 마저도 잘 되지 않는 날이 많았다. 나는 어린 아이였고, 체격은 왜소했으니. 그렇게 한참을 두드려맞으면 분노가 들끓었다. 무력한 내 자신에게, 아직 한참 미숙한 내 두 손에. 그리고 나는 바로 다음 타겟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또 싸우고, 두드려맞고, 그렇게 기절하며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져 체력이 돌아올때까지 선잠을 잤다. 지갑을 훔치는데 성공한 날은 우선 배가 터지게 밥을 먹고, 그렇지 않는 날에는 차갑고 새카만 벽돌같은 빵이라도 훔치며 어떻게든 연명했다. 이걸 훔치는 이유는, 가장 싼 빵이기에 죽어라고 도망치면 포기하는 녀석들이 많았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좋은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소매치기에 성공하고 남은 돈으로는 마약을 샀다. 비싼 가격으로 호구잡혀도, 닥치는대로 긁어모았다. 그리고 하수도 근처에 사는, 중독자 중에서도 밑바닥으로 떨어진 놈들에게 가져다 팔았다. 가격은 무조건 내가 산 금액의 두배였다. 그리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희망을 가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설사 그것이 지옥으로 굴러떨어지는 낭떠러지라고 하더라도. 그들에겐 아무도 마약을 팔지 않았다. 왜? 돈을 구할 방법이 없는 쓰레기같은 족속들이니까. 그들은 마약굴 근처에서 남은 쓰레기봉투를 뒤지며 어떻게든 마약 부스러기를 찾아내어 몇분 단위로 연명하는 그런 인간들이었다. 그러니 내가 마약을 보여주며 가격을 제시하고, 서비스라며 살짝 뿌려주자, 어떻게든 돈을 구해왔다. 감옥으로 직행했는지, 계획이 잘 풀리지 않아 죽었는지, 보이지 않게 된 녀석들도 더럿 있었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나는 틈새시장을 이용해 고객을 찾아냈고, 돈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걸 깨달았다. 그러나 이것도 성에 차지 않는 금액이었다. 그들은 수가 한정되어 있고, 가져다 바칠 수 있는 금액도 한정되어 있었다. 고작 이런것에 만족하려고 여태까지 발버둥치며 살아온게 아니란 말이다. 쯧, 하고 혀를 차고, 손톱을 조금 깨무는 버릇. 그래, 조금은 신경질적이게 된 것이 이때부터겠지. 우선은 이 방법이 내가 제일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여유자금이 생길때까지 돈으로 돈을 벌고, 소매치기를 해서 또 다시 돈을 번다. 체력을 위해 배가 터질때까지 밥을 먹고, 훈련을 반복한다. 그렇게 나이가 드는걸 기다려야 했다. 돌이켜보면 지루하고, 초조한 시기였다.

마침내 시간이 흘러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때. 키가 훌쩍 컸고 주변의 어른들과 비슷한 키를 가졌을때. 이젠 소매치기정도는 걸리는 일이 없었다. 지갑을 훔치는것 정도는 너무도 간단한 일이 되었다. 쓰레기들에게 계속해서 마약을 팔며 제법 자금을 모아두었다. 물론, 위험한 순간이 없던 건 아니다. 쓰레기들에게 마약을 갈취당할뻔 하고, 완전히 얕잡아보인적도 있었다. 그래서 난 이른 새벽을 노려 제정신이 아닌 놈들을 완전히 뭉개놓았다. 그 과정에서 몇번이나 찔리고, 물리고,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날 감히 얕잡아 보던 놈들을 전부 때려죽였다. 그나마 상황판단이 조금 될 정도의 지성이 남은 놈들는 내게 두번다신 대들 수 없게끔, 상하관계를 확실히 주입시켜주었다. 또 한번은 내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어떤 조직의 말단으로 추정되는 놈이 덤벼온 적도 있었다. 마약을 팔고, 뒷골목을 헤집던 난 당연히 골칫거리였겠지. 그녀석은 날 만만히 보고 덤벼왔던 모양이지만, 쉽게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여전히 내가 믿는건 오직 내 두 주먹 뿐이었고, 하루도 훈련을 게을리 한 날이 없었다. 완전히 때려죽이고 난 다음, 난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해 그 자리에서 녀석의 적대 조직에게 찾아갔다. 그리고 그에게 큰 돈을 벌어다주겠다며 내 계획을 말해주었다. 전쟁, 전쟁이었다. 이권다툼을 하던 조직이니 언제 전쟁을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내가 조직원이라면, 습격을 받았으니 명분은 충분히 된다. 내가 네 적들을 전부 죽여주겠다. 그러면 크나큰 돈이 네게 굴러들어온다. 설령 내가 죽더라도, 전쟁의 주도자는 나라고 하면 되지 않겠나. 네게 손해가 될 것은 단 한푼도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엉망진창인 말이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그들은 내 계획에 찬동했다. 그리고 이것은 기회였다. 크나큰 기회. 나는 그 길로 놈들의 아지트로 찾아가 전부 때려죽였다. 꽉 쥔 주먹으로 턱을 으깨고, 팔을 부러트리고, 눈을 찔러대며 그대로 괴멸시켰다. 고작 9명밖에 상주하지 않는 작은 지부였기에, 어떻게든 성공할수 있었다. 피를 잔뜩 뒤집어 쓴 채로 조직의 보스와 대면한 난, 그 자리에서 행동대장이라는 중견 간부의 위치를 부여받았다. 이것으로 나는 기회를 내것으로 만들었다. 고작 9명이다. 겨우 그것만으로 나는 조직에 들어감과 동시에 내 몸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슈퍼히어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고작 9명을 때려죽였다고 무엇이 변하겠는가? 마피아의 가장 위험한 점은 압도적인 그 숫자에서 나온다. 개개인이 전부 저명한 싸움꾼 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진 않다. 그러나 그들은 수백명씩 존재하고, 언제 어디에서나 내 목숨을 노릴 수 있다. 정신 차려라, 네가 9명을 이긴다고 해서 조직 하나에 맞설 순 없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다르다. 나 또한 조직을 등에 업었으니, 남은건 내 기량을 전부 펼쳐보이는것. 이 남자의 탐욕스러운 아가리에 이득을 쑤셔넣어보이겠다. 그리고 그 배를 갈라서, 모조리 다 내것으로 만들것이다. 겨우 중견 보스 자리를 하나 얻자고 여태까지 발버둥쳤을리가 없잖느냐.

또 다시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키는 192cm를 훌쩍 넘었고, 몸무게는 90kg가 넘어갔다. 근육도 단단하게 붙었으며, 난 이 조직의 보스가 되었다. 그래, 이전에 얘기했던 그 전쟁에서 나는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칼에 찔리고, 놈들의 턱을 깨부수면서, 내 몸에서 흐른건지, 뒤집어쓴건지 알 수가 없는 피로 점철된 내 모습을 보고 사냥개라는 이명을 받았을 정도로. 그렇게 난 내게 충성하는 부하들을 모으며 내 입지를 다졌고, 조직 내부의 불만과 권력다툼을 교묘히 이용해 내전을 일으켜, 모조리 독식하는데에 성공했다. 그레이 하운드 컴퍼니. 나는 여전히 돈으로 돈을 불리며, 그토록 바라던 안정된 생활을 손에 넣었다. 회사의 경영 방침은 단 하나, 프리미엄. 겉으로는 무역회사기에, 싸게 원자재들을 구매하여 품질좋게 가공한 뒤 비싼 값으로 판매한다. 그레이 하운드의 무기들과 경호 업무, 중금속과 하다못해 식자재까지. 어느 것 하나 돈벌이가 되지 않는게 없었다. 그리고 뒤로는 어떤 의뢰든 반드시 수행해내는 킬러집단으로써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내게 존재하지 않는 가족들도 손에 넣었다. 사랑스런 아내, 보물과도 같은 딸. 그러나 내 마음 속 깊은곳의 공허함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자꾸만 뭔가를 놓치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 어쩌면 그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라는 하나의 흉조였을지도 모른다.

" 다녀왔어. "

이상하다. 유달리 집이 어둡고, 말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하다못해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의아한 마음에 향초를 들고 집 안쪽으로 들어섰더니, 그곳엔 무참하게 찢겨진 가족의 시체가 있었다. 큰 충격을 받았고, 가슴은 도륙이 나 찢어지는것처럼 아파오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픈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눈물은 한 방울 조차 흘러내리지 않았다. 울더라도 바뀌는게 없다는걸 잘 알기 때문일까? 아니, 그게 아니다. 이 과분한 행복이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걸 처음부터 알고있었기 때문이다.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우선 누가 이랬는지를 찾아내어, 그와 관련된 인물들을 모조리 죽인다. 머리를 한쪽으로 쓸어넘기며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다고 뭔가 달라질까? 지금, 이 순간에.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게 정말로 의미가 있을까? 태어날때부터 가진거라곤 두 주먹밖에 없었고, 이게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수 많은 피를 이 손에 묻혔으나, 정작 가족조차 지키지 못했던, 드디어 쟁취한 이 행복도 지키지 못했던 이 두 손을 어떻게 계속해서 믿을 수 있겠나. 내게 남은건 이제 아무것도 없다. 살려고, 조금은 행복해 지려고 발버둥쳐왔는데, 더이상 그 어떤것도 의미가 없잖은가. 공허함. 세상이 내가 알던 당연함과 다르다는걸 깨달았던 순간부터. 이건 예견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공허함만이 내가 유일하게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참사를 뒤로 하고, 집 밖으로 나가 경찰서로 향했다. 도착해서는 이미 늦은 한밤중이었지만, 한명이 눈에 띄었고,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 나다. 전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다. "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를 자욱하게 내뿜으며, 나는 머리를 한쪽으로 쓸어넘겼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달이 환하게 차오르는, 그런 밤이었다.

325 이름 없음 (PSfuTR2fWU)

2022-05-01 (내일 월요일) 15:11:34

>>325
외신 뉴스나 위키피디아 같은 잡다한 것들. 우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인터넷 논객이나 격식있는 외교관이나 도긴개긴이다. 무능한 중앙정부, 군벌화하는 마약 카르텔들-아니면 마피아던지-, 피로 피를 씻는 조직간 항쟁, 신체 일부가 사라진 채 고가도로에 매달린 시신들, 정의로운 시장과 경찰관은 가족까지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마피아와 유착하고, 묵인하고, 쥐꼬리만한 월급에 플러스를 얹기 위하여 뇌물을 받고 또 뜯어낸다. 우리가 사는 이야기는 저 먼나라 사람들에 의하여 건조한 문장과 문단으로 정제된다.

한때 강한 정의감을 가지고 경찰을 꿈꾸던 소녀. 유학까지 다녀온 나름 엘리트였지만, 결국 현실에 굴복하여 부패경찰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못해 공기와도 같은 이야기라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바로 내 이야기다. 정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은 높은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고 지치는 일. 하지만 난간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은 너무나 즐겁고 짜릿했다. 자칭 정의의 사도들이 손가락질한다면 내게도 항변할 거리는 차고 넘쳤다.

마피아 간부와의 식사 자리에서 웃으며 했던 '잘 부탁드립니다' 한 마디는 황금 열쇠나 다름없었으니. 나는 마침내 저축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이 없어 죽어가던 언니는 마피아들이 세운 병원에서 싼 값에 치료받게 되었다. 한번 신념을 버린 대가로 나는 모든 결핍을 해소했다. 두번째부터 죄책감이란 남아있지 않았다. 그날로 길거리의 시체나 정체불명의 하얀 가루들, 인신매매의 타겟이 된 여자들은 내 관심사가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열정이 넘치던 시절 밤잠을 줄이며 작성하던 수사 자료들을 모조리 드럼통에 넣고 불살라버렸다. 그들이 그러기를 원했기에.

우리 경찰 사이에서 일명 킹핀Kingpin이라 불리는 남자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레이 하운드 컴퍼니의 보스 되시는 분이다. 내가 접촉할 수 있는 마피아들 중에서 가장 높은 선의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젖혀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무시무시한 거한인데, 권총에 야경봉에 테이저까지 휘둘러도 내가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헛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킹핀."

하던 전화를 마무리하고 안경을 고쳐쓴다. 테가 크고 동그란 안경은 경찰서 앞 가로등 불빛을 받아서 윤이 났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군요. 여기까지 직접 행차하실줄은."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친절한 민중의 지팡이같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실상은 권력에 복종하고 기생하는 샤일록의 웃음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이 남자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도도한 척은 다 하더니 뼈다귀를 물려주자 금세 엎드려서 꼬리를 치는 계집? 정말 그렇다 해도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킹핀이 직접 찾아와서 말할 정도로 중요한 일은 대체 뭘까. 나는 궁금했다.

326 이름 없음 (sDPyxlTZ9A)

2022-05-01 (내일 월요일) 20:19:49

(노움으로 여겨질 법한 뾰족 솟은 귀와 작은 키, 그리고 부스스한 흰색 머리칼. 앳되고 차가워보이는 인상 덕분에 소년인지 소녀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여행자 술집에 있는 이들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조금 펑퍼짐한 사제복을 입고있다는 점일까. 잠시동안 당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가볍게 목례를 해보였다.)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 죄송합니다. 실은 같이 의뢰를 맡아줄 호위를 구하고 있어요. (왜 당신인지는 굳이 말을 꺼내지 않는다. 단지 묵묵히 대답을 기다리며 부담스러울 정도로 바라볼 뿐이다.)

#정통 판타지~!

327 이름 없음 (Kg78n5JoOw)

2022-05-01 (내일 월요일) 20:52:49

다시 보니 오타났다.. >>325의 앵커는 >>324에 걸어놓은거야

328 이름 없음 (Tvi18C4W06)

2022-05-02 (모두 수고..) 00:27:06

사방이 사이렌의 불빛과 굉음으로 소란스럽다. 높디 높은 고층 빌딩의 아랫편은 분주하게 대피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통제하려는 이들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된 지 오래. 도시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만 이건 꺼지지 못한 게 아니라 불장난이 일어난 정도가 아닐지— 싶은 마음이다. 바닥부터 터져오르는 카메라 플래쉬와 무어라 외치는건지 알 수 없을 인간들의 목소리. 저 거리에서 형체는 제대로 보이는걸까. 특종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거대 언론사들의 발악이라고 생각해야할 것이다. 달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쏟아지는 이 빌딩 옥상에서 마주한 당신과 여자. 그냥 여자는 아니고, 아마도 미친 여자.

" 있잖아, 나, 히어로가 하고 싶어! "

제 뺨에 튄 핏자국을 문질러 닦아내며 그 미친 여자가 해맑게 외쳤다.

*

혼란과 공포의 2031년을 기점으로, 세상은 [이능력]의 출현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졌다. 출현 전의 세상은 당신 모두들이 알고 있는 그 평범하고 따분한 세상. 출현 이후의 세상은, 수 천년에 걸쳐 배출된 현자들의 귀중한 도덕적 가르침들이 개거품으로 사라져버린 절망의 시대라 할 수 있겠다. 정확히 2021년 12월 31일 정각 12시. 전세계 20%의 인구가 이유를 모를 발작을 일으키며 폭주했다. 폭주를 겪고도 사망하지 않은 인원들에게는 똑같은 후유증이 남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전세계적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된 [이능력]의 등장인 것이다. 인간의 과학력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능력. 누군가는 불을 뿜고, 누군가는 물을 만들어냈으며, 누군가는 중력의 법칙 따위는 개무시한 채 하늘을 떠다닐 수 없었다. 인류를 지배하던 법칙이 무너지던 순간. 인류가 세운 법칙 역시 연쇄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터져나오는 이능력을 이용한 범죄 보도, 이능력자들에 대한 차별과 차별 범죄, 한순간 인류에게서 '다른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 그들은 혼란에 빠지고야 말았다. 기존의 인류도 마찬가지. 그들을 현존해오던 인류와 동족으로 취급해도 되는가? 라는 논제까지 불거졌을 수준이니 할 말이 더 있겠는가. 아무튼, 따분한 이야기는 그만 멈추고. 그렇게 이능력이 등장하고 십오년 뒤, 세상은 드디어 정비되어 안정을 찾기 시작했으니 이능력 범죄자를 빌런(villain), 그들을 전문적으로 수사/체포하며 치안을 수호하는 이들을 히어로(hero)라 부르게 되었다.

눈 앞의 여자는 수 백건의 범죄를 저지른 분류 등급 S급의 빌런. 살인과 테러가 심심치 않게 섞여있으니 당장 체포한다면 세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사형이 내려질 운명 . 세 달도 적게 쳐준 것이다. 그녀의 체포는 모든 언론사가 개 떼처럼 달려들 특종 중 특종이니 이런저런 취재 요청으로 이능력특별재판이 차일피일 미뤄질 게 뻔했다. 본래 특별재판은 대개 한 달 내외로 결판이 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녀'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시끄럽고, 공포스러우며, 집중된 존재인지 알 수 있으리라. 아니, 그럼 저 여자 하나가 수 백건의 범죄를 저지를 동안 히어로들은 뭐했냐고? 한 사람당 하나의 이능력을 가지는 것이 레귤러, 두 개를 이레귤러로 취급하는 이 시대에 확인 된 것만 무려 다섯 개의 이능력을 가진 저 괴물을 어떻게 잡아쳐넣는단 말인가.

" 힘들까? "

여자가 해맑게 웃었다. 히어로가 되고 싶다는 그 가증스러운 말이, 장난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히어로 당신이라면 무어라 말하겠는가? 물론 죽어간 동료들을 생각해 분노를 담아 그녀를 '즉결심판' 하려 해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여자에 대한 사형 선고는 뻔하디 뻔한 결말. 사회적으로 조금 논란은 될지 몰라도 국민 대다수는 그녀를 당장 죽어야할 인간 폐기물쯤으로 여기고 있었으니 오히려 당신을 옹호하는 여론이 더 거셀지도. 뭐, 모든 이야기는 당신의 시도가 성공한 뒤의 이야기지만. 재차 말하지만 여자는 확인된 것만 다섯 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즉 확인되지 않은 능력이 더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마 하나, 내지는 두 개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 당신이 덤빈다면... 그래, 여기까지. 당신은 아마 히어로 기관의 간부까지는 아니겠지만— 어느정도 촉망받는 인재일 것이다. 이 나라를 넘어 외신들도 주목하고 있는 '그 여자'와의 협상 자리에 파견된 게 당신이니까! 웬만히 믿음이 가는 인간이 아니고선 보내기 힘든 자리일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히어로로서 어느정도 출세가 보장된, 윗분들의 귀여움을 받는 실력 있는 사람이겠지. 뭐, 아닐 수도 있겠지만. 희생 당할 게 뻔하다는 이유로 총알받이처럼 내던져진 애물단지일 수도, 독불장군처럼 막나가는 성격에 의해 갑작스레 끼어들어 난입하게 된 열혈 히어로일 수도 있다. 아니면... 오늘 순찰 당번에 걸려서 재수없게 끌려왔을 수도? 아무튼 당신은 그런 사람이다. 당장 "히어로 시켜줘!" 라는 생떼 같은 요구를 함부로 응할 수 있거나 응하지 못할, 히어로 아무개씨. 당신은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 내가 여태 잘못 살아온 건 알아. 회개 하고 싶다는 그런 이기적인 생각은 아니고— "

여자가 한참이나 머리를 굴린다.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질 않았다. 이거, 면접이라도 보는 기분인데! 여자는 해맑게 생각했다.

" 한 번쯤은 정의의 히어로로 살고 싶달까... "

멋지잖아?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랑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따위의 대사를 던지는 히어로 말야! 아무래도 여자는 마법소녀 놀이가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329 이름 없음 (.oQ.RYEQic)

2022-05-02 (모두 수고..) 00:28:17

>>328 아 오타.... 혼란과 공포의 2021년을 기점으로 <- 야!

330 이름 없음 (sMD2MH1mHI)

2022-05-02 (모두 수고..) 01:22:24

>>325

굳이 그녀를 만나기 위해 경찰서로 찾아간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눈에 띄었다. 언젠가의 식사자리에서 잘부탁드립니다, 라고 말 하던 그 부패경찰이던가? 그게 아니라면, 단순한 연락책 인부에 적혀있던 여자던가? 기억이 꽤 혼탁하다. 언제라도 냉철한 판단력을 잃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흐릿한 시야가 눈에 들어온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자욱하게, 그러면서도 한 송이의 꽃처럼 피어오른다. 기분이 별로 좋진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생각해야했다. 중요한 것,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내야했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건 무엇이지? 그래, 복수다. 철저하게, 그리고 파괴적으로. 이 도시를 전부 부숴버리는것. 그것 하나만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끝에서 새빨갛게 불타오르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추락하는것처럼, 내가 저 절망 아래로 끝없이 빠져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내게 남은 것은 지독한 공허뿐이다. 그 무엇도 이젠 내 손아귀에 남아있지 않아. 나 자신의 마음마저도. 길게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그러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것은? 그녀가 나를 부른다. 그녀는 나를 알고 있다. 나 또한 그녀를 알고 있다. 그녀의 테가 큰 안경은 윤이 났고, 친절해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메마른 입술을 떼자 찌직, 하는 거슬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선홍빛 핏방울이 입새에 방울졌다.

" 제안을, 하나 하지. "

입가에서 나오는 내 목소리는 지극히 메마르고, 건조했다. 늘 듣던 계산적인 목소리였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를 내려다보며 눈을 몇번 깜빡였다. 그리고 가만히 쳐다보고, 입새 사이로 흐릿한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뜸을 들였다. 네 동그란 안경테가 빛을 받아, 붉은빛 자욱이 번져왔다. 그녀는 그렇게 높은 위치의 인물이 아니고, 나는 그녀보단 높은 인물이다. 그레이 하운드 컴퍼니의 보스니까. 내 쪽에서 매달리는듯한 태도를 취하는건 금물이다. 얕보이면 물어뜯긴다. 실제로 나는 지금 목덜미를 물린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처입은 짐승이니까. 내 쪽에서 얘기하는 제안은 분명히 네게 자극적이겠지. 생명의 위협을 느낄수도 있을것이고, 권력욕에 취해 야망을 불태울수도 있다. 그도 아니라면 어떤 일거리인지 생각해볼법 하겠지. 다양한 생각은 곧 혼란으로 이어지고, 그때에 꺼내는 달콤한 제안. 오히려 너무 깔끔해서 찝찝할정도의 제안. 거기서 신뢰를 사면 된다.

" 2억 달러를 가지고 싶지 않나? "

2억 달러. 그 누구도 꿈꿔보지 못했을, 가히 천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금액. 이 돈이 있으면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개인이 꿈꾸는 선에서는. 아픈 가족에게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돈 걱정이라곤 없이 지낼 수 있다. 커다란 집, 스포츠카, 화려한 옷, 무엇보다, 하루하루 배 곯지 않고 죽을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이걸 어떻게 제공하냐고? 간단하다. 내 회사의 주가 총액이 2억이니까. 회사를 경매로 팔기만 하면 된다. 내 입지를, 내 회사를. 아니, 내가 키운 내 조직을 원하는 녀석들은 굳이 이 도시가 아니더라도 가득하니까. 이 빌어먹을, 쓰레기 같은 도시가 아니더라도. 경매로 들어가기만 하면 경쟁이 붙어 그 두배, 잘하면 세배까지 얻을 수 있다. 뭣하면 지금의 내 자리를 그녀에게 주어도 괜찮겠지. 그녀가 사업에 능력만 있다면, 범죄와는 완전히 손을 떼고 다른 지부를 차린 뒤, 그곳을 본부로 해 양지에 발을 들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돈만 챙긴 뒤 하와이같은곳에서 대부호의 삶을 사는것도 좋겠지. 그러나, 오히려 너무 조건이 좋기에 무슨 일을 하자고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뒤끝이 좋지 않은걸 경계하거나, 이용당하는걸 꺼릴수도 있겠지. 나는 천천히 다 피운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지며, 부드럽게 장갑을 벗었다. 흉터와 굳은 살 투성이인 손. 그것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것 만이 내 전부였고, 오롯이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 입에 머금은 담배연기를 뱉었다. 감상에 빠질 시간은 없다. 오른손에서 반지를 빼내어 그녀에게 건네었다.

" 내 도장이다. 통장에 7천만 달러가 있다. 그걸 가지고 스위스로 향하면 꺼내줄거야, 물론 전부 현금으로. "

눈을 몇번 깜빡였다. 이제 더 뜸을 들이는건 오히려 독이다. 미끼는 그녀의 손에 쥐어졌고, 이건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물고기를 낚을 차례다.

" 날 도와주면 마저 2억 달러를 주겠다. 그건 선금으로 네게 주는거고. 자네의 대답을... 듣고싶군. "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며, 새로운 담배를 꺼내어 입가에 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성냥곽을 건네었다. 이것으로 난 그녀에게 모든 선택권을 주었다. 결정은 오롯이 그녀만이 할 수 있겠지.

331 이름 없음 (0iymoAhWks)

2022-05-02 (모두 수고..) 15:18:37

>>330

'뭐시라?'

표정은 웃되, 안색이 창백해진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킹핀의 얼굴이 나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았다. 몸에 힘이 풀려 서로 맞잡은 두 손이 가슴께까지 슬금히 내려갔다.

2억 달러. 내가 알기론 그레이하운드 컴퍼니를 매각하면 그 정도의 값이 나온다. 도와주면 회사를 주시겠다구요. 예. 퍽이나 그러시겠습니다. 이건 돈을 주겠다는 말이 아니다. 조금 귀찮은 일을 할 건데 네가 전부 책임을 떠안고 죽어라. 뭐 이런 뜻일게 분명하다. 거절하면 병원에 있는 네 언니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은 할 필요도 없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거지? 지나간 반 년어치의 시간을 되돌려보았다. 컴퍼니의 사업장을 건드린 적은 없었다. 컴퍼니의 직원을 체포하거나 귀찮게 굴지도 않았었다. 병원비가 밀린 적도 없었다고! 이용가치가 떨어졌다는건가? 다른 패밀리에 제물로 넘겨? 불길한 생각은 들불처럼 번져갔다. 수습할 수가 없었다. 2억 달러라는 불씨는 수소폭탄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킹...핀..."

"혹시 제가 뭐라도 잘못한 게 있다면...."

내 인생 여기서 허무하게 종치나? 수많은 죽음을 보았고, 죽음은 공평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주님. 왜 하필 지금이란 말입니까? 제가 앞으로 살아갈 많고 많은 날 중에 하필 지금! 눈을 떠보니 나도 모르게 다리를 굽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동그란 거랑 네모난 거를 받은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날벼락 앞에서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뭐든지 할게요. 살려만 주시면 시키는 일은 다 할게요! 저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죽음 앞에서 애걸하는 사람은 다 똑같더라. 그들의 진부함을 비웃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을 직접 맞닥뜨리지 정말 판에 박은 것처럼 이런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비굴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 킹핀의 발도 햝을 각오가 내게는 있었다. 이 빌어먹을 도시에선 그 정도 각오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었다. 특히 나같은 소시민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무슨 제안을 하려고 2억 달러라는 폭탄을 던졌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나는 한다고 해야 했다. 당장 킹핀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허리가 거꾸로 접혀 죽지 않겠는가?

"저희...저희 잘 지내고 있었잖아요..."

"저번 컨테이너에 사람 실어왔을 때 섞여있던 기자 나부랭이도 제가 찾아드렸었고 또...."

뭐, 킹핀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이 정도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냥개. 사람들이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그는 너무 높은 곳에 있었으니까. 그가 가진 마음 속의 공허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332 이름 없음 (GDIx2/7.C2)

2022-05-02 (모두 수고..) 17:39:07

>>331

그녀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안색은 창백해졌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패닉에 빠진 모양이었다. 보수로 제안한 2억달러는 그녀의 의욕을 불러일으킨게 아닌, 생존 욕구를 불러일으킨것같다. 혹시 뭐라도 자신이 잘못한게 있다면, 그리고 다리를 굽혀 무릎을 꿇고. 뭐든지 하겠다며, 아직 죽고싶지 않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뻔했다. 늘상 봐오던 목숨을 구걸하는 행동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전부 내어줄테니 제발 살려만 달라며. 합리적으로 보면 그것이 맞았다. 살아 있어야 돈을 쓰든, 가족과 시간을 보내든, 밥을 먹든, 하다못해 가는 길 마지막으로 담배라도 한 대 피울수 있지 않겠는가? 머리가 지끈거려온다. 가족의 얼굴이 떠오른다. 무참하게 찢겨, 시체가 되어버린 그녀들이. 그건 더이상 내 가족이 아니었다. 한 덩이의 고깃덩이에 불과할 뿐이었지. 그녀들도 살려달라고 이렇게 애원했을까? 사냥개가 당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을까? 아니, 아니지. 내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는 내 딸의 눈과 귀를 막았을거다. 그리고는 담담하게 기도했겠지. 적어도 이 아이 만큼은 살아남길, 그리고 내 행복과 안위를 기도했겠지. 나는 죽어도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할것이다. 소원이 있다면 그녀들이 천국에서 행복하는 것 뿐. 내겐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것 쯤은 나도 알고있다. 우리 잘 지내고 있었다고, 자신의 우수함을 어필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오른손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대며 쉿, 하고 자그마한 소리를 내었다.

" 진정하게. "

짤막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녀는 우수했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바라는 전부였다. 내가 그녀에게, 내 마음속의 공허를 없애달라고, 위안을 바라겠는가? 그녀로썬 할 수 없는 일이고, 또한 그녀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타인에 불과하니까. 내가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지만, 바란다면 그건 멍청한 일에 불과할 뿐이겠지.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왼쪽 무릎을 꿇으며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가볍게 눈을 깜빡였다. 흘러내린 흑색 머리칼을 가벼이 쓸어넘기며, 무의식적으로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몇번 빨았다. 우선은 그녀가 진정해야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없겠으니. 약점을 바탕으로 계약을 맺어야 한다. 그래야 같이 행동할 수 있다. 전적인 믿음, 호의, 친밀감. 그런것들은 너와 내가 아무리 해도 맺을 수 없다는건 알고 있었다. 굳이 네가 아니더라도, 타인과는 맺기 어려웠으니.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고, 오래 물고 있던 필터는 어느새 입가에 맺힌 핏방울에 젖어 조금 붉게 물들었다.

" 돌려 말하는게 아니야. 자네가 큰 건의 책임자로써 죽어주길 바라는건 더욱이 아니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대충 감이 잡히네. 2억 달러, 손에 한번도 쥐어보지 못한 금액을, 그것도 내 회사를 팔아야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을 공짜로 주겠다는 멍청이가. 이 도시에 어디 있겠나? 그건 나도, 자네도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 그러나, 나는 자네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네. 그러니 2억 달러를 주겠다는 뜻이야. 실제로도 이미 자네의 손엔 7천만 달러가 쥐어져있지 않은가? "

무미건조하게 보인다는건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쯤은 네가 진정하길 바라면서. 길게 말했더니 목이 타온다. 몇번 기침을 뱉으면서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 잘 듣게. 자네가 나를 도와주면 내 모든걸 주겠네. 그리고 나는 홀연히 사라질거야. 왜냐고? 이 도시의 권력자인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게 믿겨지지 않겠지. 이유를 말해주겠네. 살해 협박 편지가 내 집으로 도착했고, 아내가 다쳤네. 딸 아이도 겁에 질려 울고있어. 내가 뭘 하려는지 알겠지? 그래, 복수다. 어떤 녀석이 그랬는지 모르니, 이 도시의 모든 쓰레기들을 전부 죽여버릴걸세. 그러고 나면? 자네,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야. 난, 내가 이 위치에 있는 한 이런 삶이 계속된다는 결론에 다다랐지. 그렇기에 모든걸 처리하고 떠날거야. 첫번째로, 복수를 할 거고. 두번째로, 내가 가진 자산을 전부 매각하고. 세번째로, 해외로 떠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진 재산, 내가 가진 인맥, 나의 입지. 그것들이 내게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부스러기를 주워 먹기 위해 쥐새끼들이 끊임없이 덤벼들겠지. 그러니까 난 그 모든걸 털어내고, 다른 차명 계좌에 있는 돈으로 유유자적하게 살아갈거다. 어차피 돈은 많으니까. 여기까지, 이해했나? "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득력 있는 얘기를 꾸며냈는지, 스스로도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여전히 시야가 흐릿하다. 허나, 제법 들어줄법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다쳤으니 복수를 하는것은 이상하지 않고, 또 다시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모두 죽인 뒤 떠나는것도 이상하지 않다.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재물을 털어내는 과정도 합리적이고. 그렇다면? 왜 하필 나인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후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증거는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 왜 자네냐고 생각하고 있나? 딱 자네 정도가 좋아. 나를 배신하면 언제든지 내 손으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자네니까. 또, 그 많은 돈을 추적하면 결과적으로 자네를 쫓을 법 하니, 자네가 살아있는 편이 나로써도 도움이 되지. 그러면 너무 자네에게 리스크가 큰 것은 아닌가? 꼭 그렇지만도 않아. 막대한 부로 호위를 사면 되지 않겠는가. 혹은, 이 쓰레기같은 도시를 떠나 제대로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의 경찰이 되어 그곳에서 살아가도 되고. 어때, 자네도 이 제안이 왜 합리적인지 이제 이해가 가나? "

맞는 말이었다. 내가 판단했을때엔 그녀에게 일종의 리스크가 있는것은 사실이었지만, 현상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막대한 재산을 손에 넣는 것. 그 둘을 저울에 달아보았을땐, 충분히 그녀가 제안을 받아들일만 하지 않겠는가.

" 한번 더 묻겠네. 불을 붙여줄텐가? "

그녀에게 건넸던 성냥곽과, 입가에 물고있어 선홍빛으로 물든 담배를 가리키며,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333 이름 없음 (MUANmUrRKI)

2022-05-03 (FIRE!) 00:22:13

>>332

그러고보니 킹핀과 이토록 가까이서 독대했던 적이 전에 있었나?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내가 기억했겠지. 오늘같은 날은 수메르의 쐐기문자처럼 나의 영원 속에 새겨질 테니까. 뼛조각으로 눌러 쓴 점토판 위의 이야기는 희극인가 비극인가. 승리한다면 영광스러운 승리인가 피로스의 승리인가, 패배한다면 영웅적인 패배인가 비참한 도축인가.

눈에 눈물이 매달린다. 이내 아랫 속눈썹을 타고 몇 방울이 떨어진다. 흑, 끅, 격한 호흡이 강제로 멈추는 반동으로 어깨가 들썩인다. 킹핀은 내 앞에 함께 무릎꿇어 시선을 맞추고, 심지어 옅은 미소를 지어주기까지 한다. 놀라서 눈물이 뚝 그쳤다. 죽을 때가 되니 영안이 트였나, 신묘한 것들이 보였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누군가가 킹핀의 가족을 건드렸다. 일단 죽이면 신께서 구별하실테니 의심가는 놈들은 모두 주물러버리겠다. 그리고 회삿돈은 세탁이 덜 된 블랙머니라 계속 가지기가 찜찜한데, 날 도와주면 전부 네게 줄 테니 뒷일은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대강 이런 이야기였다. 복수하려면 컴퍼니에 존 윅같은 킬러가 한 트럭일텐데 왜 고기 썩은내나 풍기는 경찰에게 와서..... 아, 누구도 믿을 상황이 아니고 부하 짓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사방이 도산검림인데 가장 먼저 생각하고 찾아온 사람이 나. 이렇게 되면 기분이 묘해진다. 사적인 대화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인데. 킹핀은 오래도록 나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장도 내게 이렇게 하진 않을 것이다. 돈의 액수를 고려하면 여러 사람에게 제안을 하여 돈이 나뉘지도 않았다. 나 혼자인게 분명하다.

"어.. 어어.."

고개를 들어도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자꾸 떨구었다. 손 안에서 7천만 달러와 성냥갑이 바스락거렸다. 확증 편향일지도 모른다. 내 영혼, 내 몸, 나의 재산.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가치있는 지식과 능력, 경험들. 모두 합쳐서 돈으로 환산해도 2억 달러의 발끝에 미치지 못한다. 확증 편향일지도 모른다. 나는 사량발천근을 일삼는 무술 고수가 아니다. 2억 달러를 옮기다 사지가 부러지는 미래가 가장 합리적인 예측이다. 하지만 괜찮지 않을까. 그레이 하운드의 킹핀 정도의 사람이라면 간악한 협잡꾼처럼 굴지 않을 것이다. 확증 편향일지도 모른다. 킹핀의 부하 중엔 협잡꾼이 많겠지만, 본인은 기품있는 콜리오네에 가까우리라. 희망사항이었다. 그래야 내가 2억 달러를 받는다. 확증 편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살다보면 사람이 좀 망가지기 마련이다. 확증 편향 X까라.

왠진 몰라도 킹핀은 나를 신뢰하고 있다. 제안도 어디서 물건을 전달하라는 식의 모호하고 불길한 예의 것이 아니다. 복수와 단절은 강력하고도 명징한 키워드였다. 그리고 2억 달러가 있으면... 언니도 멀쩡하게 돌려놓고, 이 지긋지긋한 도시도 더럽혀진 신념도 모두 던져버리고... 돈을 어디에 얼마나 쓸지 상상조차 못 할 지경이었다. 막말로 퇴역 항공모함을 사서 평생 바다 위에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 따닥, 딱

- 치이이-

성냥을 키자 밝은 미래가 어른거렸다. 성냥팔이 소녀는 이 짓을 하다가 죽었다. 그러나 나는 저항하지 못했다. 어차피, 어차피 이런 식으로는 오래 살지 못한다. 재수없어 눈먼 총알에 맞아죽으면 다행이고, 외줄타기에서 한번만 삐끗해도 성난 조직원에게 잡혀가 차마 못 볼 꼴을 볼 가능성이 크니까. 이 도시에서 호상은 예수의 구원보다 얻기가 어려웠다. 이러나 저러나 그렇게 죽을거면 승부수라도 띄워봐야 않겠는가.

"천인공노할 일이네요. 어느 주제모르는 인간이 감히 그러고 다니는지.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저, 이래보여도 FBI 아카데미에 다녀온 사람이거든요. FBI! Open up! 하고 쾅 들어가는 그거 아시죠.....헤헤. "

그 능력들을 기자 색출에나 쓰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입장을 정했으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 약자의 처제술에는 쓸개가 없었다. 담배 끝이 달아오른다. 이건 내가 사건을 맡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라, 그러고보니 이 사람. 입에 피 난다.

"피해자 조사부터 시작할까요? 아니면 남들 모르게 과학수사대를 보내드릴까요?"

일단 경찰스러운 선택지를 제시해보았다. 협박 편지. 사모님과 따님이 보고 들은 것. 모두 증거 아닌가. 나는 다시 웃는 표정이 되었다. 눈이 발갛게 되어서 웃고 있으니 퍽이나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334 이름 없음 (mTtbahD/5E)

2022-05-03 (FIRE!) 01:50:26

>>333

승리는 내게 언제나 달콤했다. 지갑을 훔치는데 마침내 성공하여, 몇 푼 안되는 돈으로 쓰레기같은 음식을 사 입에 쑤셔넣었을때의 그 기쁨. 딱딱한 빵, 비계뿐이면서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마른 고깃조각, 탁한 물 한컵. 고작 그 따위 음식임에도 너무나 달콤했다. 단신으로 적대 조직의 지부에 쳐들어가 모조리 때려 죽이고, 사냥개라는 이명을 획득하고, 중견 보스의 자리를 차지했을때의 그 기쁨. 적대 조직과의 전쟁 끝에, 조직의 보스로 자리잡았을때의 기쁨. 그러나, 이젠 승리도, 패배도 남지 않았다. 이 도시 위 모든 생명을 거두더라도.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패배한다고 하더라도, 비통하게 죽을 뿐이다. 복수조차 이루지 못한 채, 다시 한번 실패를 겪으며 처참하게 죽는 것. 오장육부가 뒤틀리는것같은 격통을 품에 안고 죽어버리는것 뿐. 그럼에도 나는 나서야 한다. 그것이 의미가 없는걸 알더라도, 스스로 목에 맨 줄을 잡고 발버둥치는 비참한 말로임에도.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승리하지 못한 삶을 살 바엔 죽는게 낫다고 하던가. 우스운 일이다. 그리고 아이러닉한 일이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매달린다. 몇 방울씩 떨어지는 눈물을 가만히 보았다. 울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격한 호흡으로 어깨가 들썩거리는 그녀의 어깨에 차분히 손을 올리려 뻗었다. 조금은 위안이 되길 바라며. 위협으로 보인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무표정한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시선을 맞추지 못한 채로 자꾸 눈을 떨구었다. 그녀의 손 안에서는 내 반지와, 성냥갑이 바스락거린다. 그리고, 그녀는 성냥을 켰다. 붉은 빛이 아른거린다. 어스름한 불빛이, 그녀의 둥근 안경 테에 일렁였고, 나 또한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도 분명히 알고 있을 테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고, 또한 기회라고 생각하겠지만, 쉽지가 않은 일일테지. 선악과를 먹으라며 이브에게 뱀이 속삭였듯, 나 또한 파멸로 내닫는 길에 그녀라는 동반자를 만들었다. 순전히 내 계획을 위해. 허나 죽으면 그녀도 결국 거기까지였던 운명이겠지. 이 빌어먹을 도시에서 사는 우리는,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은가.

" 그래, 자네의 그 우수한 능력. 기대하고 있다네. "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희미하긴 했지만, 그녀의 실없는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선홍빛으로 젖었던 담배가 붉게 타오른다. 입 안쪽으로 부드럽게 연기가 넘어들어오니 이제서야 조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 대로는 부족했던 모양이군. 매캐한 연기를 뱉어내며, 예의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내게 불을 붙였다. 이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한 배를 탄 몸이 되었다. 언제나 서로가 서로를 배신할 수 있는 관계. 나로써는 그녀를 죽이면 되는 일이고, 그녀는 정보를 흘리면 된다. 킹핀의 가족이 다쳤다. 그는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 그 한마디의 정보가 새어나가면, 내 성격을 아는 이들은 모조리 경계할것이다. 그러면 난 복수를 이루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리겠지. 그렇기에 우리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다. 더없이 완벽한, 이상적이고 실용적인 관계다.

" ...정보부터 취합해볼까. 인물들 리스트는 전부 가지고 있겠지? 보고를 좀 듣고 싶은데. 한 명도 빠짐없이 말일세. 우선 적대 조직인 스마일 컴퍼니부터 쳐야겠어. 한 놈도 빠트리지 말고, 전부 내 손으로 찢어죽일거니까. ...이대로 경찰서 앞에서 이야기를 계속 나누는것도, 상황이 그래보이니. 근처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기지. "

가슴 안쪽까지 깊게, 담배를 빨아들인다. 타닥거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귀를 타고 울려 퍼진다. 몇번 눈을 깜빡이다가, 쓰린 입가를 엄지손가락으로 닦아내고는 천천히 벗었던 가죽장갑을 꼈다. 그리고 모자를 머리에 깊게 눌러쓰며, 꿇었던 무릎을 피고 일어섰다. 담배가 좀 젖었군. 작게 중얼거린 뒤에, 길게 담배연기를 뱉었다. 그녀의 말대로 피해자 조사를 시작하는것도, 과학 수사대를 부르는것도. 내 거짓말이 실제였다면 합당한 방법이었겠지만, 정보가 새어나가는것을 원치 않았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내 조직 안에 있는 녀석이 벌인 일일수도 있으니. 그렇기에 다른 방법으로 나아가야 했다. 나는 적대 조직 전원의 얼굴과 이름,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지 않다. 허나 경찰의 막대한 데이터베이스라면 내게 그것을 알려주리라. 부패경찰로 가득한 이 도시의 경찰청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 쯤의 정보는 기록되어 있겠지. 누가 누군지를 알아야 건드리지 않기도 할 테니까. 그런 자세한 정보를 알고, 단 한 마리의 쥐새끼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찢어죽여야 했다. 적대 조직인 스마일 컴퍼니는 그런 점에서 첫번째 타깃으로 적합했다. 일대에 마약을 판매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한 조직이며, 점 조직 형태를 갖추고 있어 격파하기도 편했다. 그리고, 내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놈이 이 도시에 얼마나 없겠냐만은, 유달리 큰 원한을 가지고 있는 녀석도 그곳에 간부로 몸을 담고 있었다. 마약에 취해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분명히 배제할수는 없겠지.

" 특히 그에 대해서 알아봤으면 좋겠군. 벌룬이라고 하면 알겠지? 마약 제조상. "

합법과 비합법의 사이를 오가는, 풍선 형태의 마약 제조 전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관자놀이를 신경질적으로 매만졌다. 어디가 시발점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질긴 악연이었다.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렸다. 조금 성급했나. 긴 얘기를 주절거리며 늘어놓는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조금은 늦었지만, 그녀에게로 손을 뻗으며 악수를 청했다.

" ...아직 통성명도 제대로 안했군. 언제까지 자네라고 부를 순 없으니, 이름을 묻고 싶은데. "

그녀는 이제 나의 파트너였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고작 허울뿐인 관계라면 계약에 금이 가기 쉽다. 조금 더 서로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었다. 그 편이 합리적이겠지. 반쯤 타들어간 담배를 마지막으로 깊게 태우고선, 저 멀리 던져버렸다. 커피는 좋아하나? 짧은 질문과 함께.

335 이름 없음 (xtCElGmwJg)

2022-05-03 (FIRE!) 10:44:50

>>334 답레 전에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스마일컴퍼니와 벌룬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둔 설정이 있을까?

336 이름 없음 (c97qS88PL6)

2022-05-03 (FIRE!) 15:59:25

>>326
(그 시선에 눈싸움으로 응한 사람은 꽁지머리로 묶은 짧은 금발에, 살구색 피부, 서늘한 눈매와 창백한 벽안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는 자신을 쳐다보던 이가 목례를 하더니 느닷없이 같이 의뢰를 맡을 호위를 구하고 있다고 말을 걸어오자, 덤덤한 투로 대꾸했다.) 제가 생업이 있어서요. 어떤 의뢰인지, 기간은 얼마나 걸리고, 보수는 얼마인지 말씀해주시면 수락 여부를 말씀드리죠. (이 근처 용병 길드에 가면 좀더 쉽게 인력을 구할 수 있을텐데, 왜 번거롭게 주점에서 구인을 한담? 의아함이 앞섰지만, 일단 들어나보고 영 쎄하면 거절하자는 생각에 그는 맥주를 한모금 넘기며 대답을 기다렸다.)

337 이름 없음 (1Z4uwnZ6PA)

2022-05-03 (FIRE!) 16:10:42

'그것'에게는 목소리가 없었다.

그것은 울거나 웃을 줄 알았지만 그럴 때 그것의 목에서는 아무런 심지어 바스락거림마저도 올라오지 않고는 했다. 당신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처음부터 성대를 제거했다고 하던가? 어쩌면 그것을 넘겨받을 때 들었지만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러나 숨소리를 낼 줄 알았다. 그것이 내는 숨소리는 규칙적이고 유기체적이었다. 언젠가부터 비어있던 집은 그것과 당신의 숨소리로 차기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당신은 오랜 숙적인 불면증을 뒤로하고 그것의 숨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의 여정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가끔은 모든 것이 그것의 탓이고, 그것의 덕인 것만 같다.

오늘도 당신은 집에 들어왔다. 그것은 거실 바닥 위에서 웅크리고 졸고 있었다. 당신은 초인종 소리를 내지 않았는데 초인종 소리를 내었다면 그것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쳐들고서 여기가 어딘지, 자기가 누군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차례차례 알아내고서 틀림없이 현관으로 달려와 당신의 구두를 짓밟기까지 하며 무척 반겼으리라.

당신은 조용히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그것이 조그마한 머리통을 미세한 움직임으로 까닥거리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그것의 머리는 곧 바닥과 밀착하리라.

# 꼽사절

338 이름 없음 (ZkTVqd0iGk)

2022-05-03 (FIRE!) 16:12:13

>>335 스마일컴퍼니는 겉으로는 코미디 계열 연예 그룹사고, 연극소품이라던지 무대세트라던지 이런걸 담당하고 있지만 실상은 거대마약조직으로 생각하고 있어~ 벌룬은 풍선 관련 마약(해피벌룬 등) 제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 정도? 원하면 좀 더 상세하게 살 붙여볼건데, 아니라면 주도적으로 착착 진행해도 좋아! 언제나 재밌게 이어나가려고 노력중이라서,,, 매번 재밌게 이어줘서 고마워!!!

339 이름 없음 (2BehpH8S1M)

2022-05-03 (FIRE!) 17:26:51

>>334

"나바레테Navarrete라고 불러주세요. 경장이죠."

제복 명찰에 박힌 이름이기도 했다. 그리고 커피를 좋아하냐는 질문의 답은 '잘 모르겠다'. 사람이 물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해서 물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호불호의 영역을 벗어난 광기와 비스무리한 개념이었다. 오오, 초과근무와 카페인. 나의 오랜 벗이여. 마피아와 결탁했다고 업무량이 딱히 줄어들진 않더라. 썩는 것도 성심껏 열심히 썩어야 하고, 그렇다고 대놓고 썩으면 해고에 징역살이까지 따라오니 대외적인 업무도 보아야 했다. 내가 이 시간에 경찰서에 있던게 바로 그래서였다.

나는 무릎을 털고 일어나서 쭈뼛대는 기색으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킹핀의 손은 크고, 거칠며, 단단했다. 남성적이라는 뜻에 이토록 걸맞는 손이 또 있을지. 이로써 우리는 한 배를 탄 선장과 일등항해사로 임명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두려움을 가진 기기묘묘한 관계성. 복수와 2억이라는 판돈을 걸고 밤중에 암살자가 찾아올까, 도시 한복판에 호외를 뿌려버릴까 불안해하겠지. 그러나 두려움이란 뾰족한 발언은 배 밑바닥에 구멍을 내는 법. 한 배를 탄 마당에 다같이 빠져죽기 싫으면 그 두려움을 조용히 감춰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이 일을 하기로 정한 이상 이전에 했던 생각은 모든 의미를 상실한다. 이제 갈 길은 두 곳뿐이다. 성공하던가, 몰락이 배제된 실패를 받아들이던가. 실패해도 곱게 목을 빼진 않으리라.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분노할 것이다.

심야의 카페는 당연히 한적했다. 졸려보이는 알바생은 뚱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주시한다. 놀랍게도 또 다른 손이 있었는데, 창작의 고통에 빠진 예술가라도 되시나. 아메리카노 빨대를 잘근거리면서 텅 빈 수첩을 긁어대고 있었다. 저거 샷을 몇 번이나 들이부은거야? 색깔이 심상찮았다. 예술가의 영혼이라도 지녔는지 마피아도 부패경찰도 죽음도 무시하고 한 차원을 초월해 혼자만의 세계로 진입하였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 영혼은 그렇게 고결하지 못하니까. 숭고한 고뇌를 하는 대신 비상 출구의 위치를 눈으로 훑었다.

"스마일 컴퍼니랑 벌룬이라면. 아하, 웃음풍선 팔아먹는 놈들 말씀이신거죠?"

킹핀은 어울리게도 범인을 특정하는 외과적 폭격에 관심이 없어보인다. 좀 전에도 말했듯, 그의 스타일은 하늘에서 내리는 죽음의 소나기. 융단폭격이다. 커피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천장을 본다. 감시카메라가 하나, 둘, 셋. 사각은 없다. 하지만 몸을 조금만 틀어도? 몸의 많은 부분이 가려진다. 끼이익. 끼이익.

"정확한 인텔은 DB를 확인해서 알려드리겠지만, 음..."

스마트폰을 상 위에 놓으며 쇼윈도 밖을 본다.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인도 옆에 대놓은 차량이 있다. 선팅이 있어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쇼윈도 사이 기둥이 차량 운전석으로부터 나를 가리도록. 다시 위치를 보정한다.

"단순히 얼굴과 이름이라면 대부분 있을거에요. 대부분이 뭐냐. 전국민이 다 있죠. 문제는 스마일 컴퍼니로 키워드를 넣고 검색했을 때 안 나오는 놈들이거든요? 실제론 그쪽 사람인데 말이죠.''

''그거는 둘 중 하나에요. 사실을 숨기고 있어서 그 놈이 그쪽 놈인걸 경찰에서 모르거나? 아니면 위장신분, 기록말소 식으로 신원 자체가 오염되었거나? 그런거에요. 최대한 정보를 교차검증해서 허수를 줄여야 해요."

경찰이 대 범죄조직 업무를 열심히 했다면 정보에 빈틈이 없었겠지만 말이다. 웃기는 일이다.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말했다.

나는 쉼없이 나불거렸다. 경험상 신고자에게는 입을 많이 놀려줘야 했다. 많이 말해주는만큼 그들은 편안해했다. 말을 안 해주면? 불안해하다가 제 풀에 삽질을 해버린다. 킹핀의 삽은 내 머리통으로 떨어질 것이다.

"스마일은 대외적으로 엔터테인먼트 회사니까 공개정보가 많아요. 유명한 놈은 사이트에 바로 면상이 박혀있구요. 덜 유명한 놈은 TV프로 찾아보면 나와요. 예능에 피디랑 매니저같은 사람 나오잖아요. 마지막에 스탭롤도 올라가고."

"음지에 있는 안 유명한 애들은 스마일한테 돈 받아먹는 우리 경찰 친구들이 잘 알지요. 경찰 DB란게 까고말하면 경찰 전용 위키피디아라서, 스마일쪽 통들도 부패 여하 관계없이 '문서' 편집을 자주 한다는 말이죠? 부패란건 마피아랑 유착했다는 뜻이지, 완전무장해제에 항복을 했다는 말이 아니니까.''

점조직 인원들이 풍선을 파는 핫플레이스도 파악이 되어있을 것이다. 다음 문제는 쉐프이다.

"그건 스마일한테 상납하는 치과나 카페를 털어보면 나오는게 있을겁니다."

치과와 카페. 나는 말을 멈추고 한 모금 마셨다.

"아시겠지만 풍선 안에 들어가는 기본 재료가 아산화질소NO2잖아요? 젠켐은 또 다른 이야기지만 차차하고. 그거의 본래 합법적인 사용처이자 음지로 삥땅치기 가장 좋은 명목이...''

입술에 묻은 휘핑크림을 햝아먹었다.

"치과 마취용, 그리고 카페 휘핑크림 제조용. 그쪽 라인으로 가스를 공급받는 선이 분명히 있을거에요."

목과 입이 슬슬 아파온다. 헛기침을 하면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상, 계획 브리핑 마칩니다. 질문은 있으신가요?"

//일단 이렇게 써봤다 이쪽이야말로 이어줘서 고마어...

340 이름 없음 (XsuPTaZv96)

2022-05-03 (FIRE!) 19:56:29

>>336
(당신이 눈싸움으로 응하자, 차가운 인상과는 달리 살짝 움찔한 듯 보였지만 이내 차분함을 가장하고 눈에 힘을 주는 것이 어딘가 어색해보인다. 그러나 이내 당신이 돌려준 말에 티는 나지 않게 화색했다. 당신이 수락할거라곤 생각 못한 듯이.) 잠깐 앞에 앉아도 괜찮을까요? (라고 공손하게 허락을 구하곤, 앉기 전에 사제복 안에서 붉은 보석이 박힌 금색 십자가를 꺼내들었다. 술집이 위치해있는 왕국보다 옆 공화국의 유명한 종교적 심볼이다.) 저는 생프텐 교의 순례자입니다. 자매님의 영혼에 고결한 의지가 깃들기를. (기도하는 제스쳐를 취하자 미세한 축복이 당신의 신체에 흘러들어온다.)

341 이름 없음 (c97qS88PL6)

2022-05-03 (FIRE!) 21:59:20

>>340 ...? (느닷없이 제 몸에 종교 의식을 행하려는 듯한 사제의 행동에 그는 반사적으로 회피하며 의자째로 물러났다. 그러다, 사제의 손에 들린 십자가를 보고는 인내심을 끌어모아 정중히 말했다.) 외람되지만 사제님, 저는 아직 수락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해로운 것이 아니라 해도 제 몸에 갑자기 주술을 거는 행위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습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와 대화를 하고자 하신다면 이런 행동은 삼가주셨으면 합니다.

342 이름 없음 (XsuPTaZv96)

2022-05-03 (FIRE!) 23:32:45

>>341
(사제는 깜짝 놀란 듯한 행동을 취하고, 그 뒤 테이블 주변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라사제한테 망신주지말라는 무책임한 말과, 신성 사기가 일어난 지 얼마 안됐다며 핀잔주는 이야깃소리도 있었다. 이질적인 존재는 시선을 끌기 마련. 사제는 급히 태세를 추스르고 공손히 손을 모아 사죄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공화국에서는 사제가 맡은 역할 중 하나였기에 타국의 문화를 학습치 못하여 경솔한 행동을 취하고 말았습니다. 근데 주변분들은 어째서 웃으시는 건가요...?

343 이름 없음 (qzAS619i0U)

2022-05-04 (水) 00:23:02

>>342 (그는 사제의 질문에 약간 당황했다. 좀 전에 주변에서 웃는 소리가 높아지긴 했지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자기랑 대화하는 중에도 다른 손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줄 아나? 알 게 뭐야, 그런 것보다는 빨리 조건이나 듣고 싶네. 크리스는 여상한 투로 대답했다.) 글쎄요, 주점에서 식사하며 웃는 일이 그리 드문 일도 아니지요. 그보다는 의뢰 내용과 기간, 보수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듣기 전까지는 답을 드릴 수 없겠네요.

344 이름 없음 (F5Bj8/M18I)

2022-05-04 (水) 00:34:49

>>343
(타이밍이나 시선이나, 이쪽을 보고 웃는 것 같이 보였는데 자신의 착각이고 보지는 못한건가? 바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 항상 주변을 의식하고 움직이라고 들었는데.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의아한 시선을 던지다가 당신의 앞자리에 앉았다.) 의뢰 내용은 대륙에 흩어져있는 성유물의 회수입니다. 기간은 무기한. 원하실 때 그만두실 수 있어요. 보수는 성유물 회수 시 신전에서 매겨줍니다. 그 중, 반을 내어드리려고 합니다.

345 이름 없음 (qzAS619i0U)

2022-05-04 (水) 00:57:19

>>344
(성유물? 그런 거라면 가장 구미가 당길만한 사람은 그 종교 신자나 그런 사람들 아냐? 왜 타국에 와서 구인을 하지? 어쨌거나, 의뢰 내용상 무리겠군. 굳이 이직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는 밑바닥에서 찰랑거리는 맥주를 마저 입에 털어넣은 뒤 대답했다.) 그럼 안 되겠군요. 말씀드린 대로 생업이 있다보니 대륙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찾는 건 어려워서요. 그런 거라면 인근에 용병길드가 있으니 거기서 한번 구인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슬슬 일어날까, 휴가라지만 과음은 안 좋으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했다.) 그럼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좋은 밤 되시길. (그는 주점 주인에게 술값을 건네고 주점을 나섰다.)

346 이름 없음 (F5Bj8/M18I)

2022-05-04 (水) 01:08:05

>>345
#궁금한 게 있는데...꼭 상대방을 무안주기 위해서 이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건 내 착각일까? 짧게 이어가는 자유 상황극이라고는 하지만 매 지문마다 설정 트집에, 어느정도 어울려주려고 해도 티키타카 자체를 거부하는 것 같네...뭘 위해, 무슨 반응을 위해 그러는 건진 모르겠지만 혹시 자신의 결여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주변 사람들이 너참치를 생각해주고 그러했던 것처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쪽으로 생각해주길 바래ㅠㅠ

347 이름 없음 (qzAS619i0U)

2022-05-04 (水) 01:24:44

>>346
그렇게 느꼈다면 유감이지만 내 캐릭터 입장에서는 네 캐릭터가 의도한 건 아니었더라도 불시에 달갑지 않은 일을 당했으니 하지 말라는 말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미 정착지에서 생업이 있는데 전 대륙을 떠돌아다니며 물건을 찾는 일을 맡는 건 여건상 어렵지 않겠니?

너참치가 원했던 상황이 아니라니 안타깝지만 원하는 전개나 반응이 있다면 다음에는 혼자만 생각하지 말고 공유해서 이런 전개로 갔으면 좋겠다, 이런 반응을 해줬으면 좋겠다 하고 먼저 의견제시라도 해주길 바래ㅠㅠ

348 이름 없음 (F5Bj8/M18I)

2022-05-04 (水) 01:45:22

>>347
#정말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굳이 굳이 해야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무슨 말을 돌려주든 그게 너 참치에겐 상관없다는 걸, 그리고 본인이 다른 참치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너참치도 알고 있는 것 같고 즐기는 거 같아보이니 더 이상은 말을 줄이도록 할게 ^^

349 이름 없음 (L5Vg7gW2zk)

2022-05-04 (水) 15:24:26

>>339

나바레테. 그녀의 이름이었다. 제복에 박혀있던 명찰로 시선이 자연스레 내려간다. 적어도 가명은 아닌가. 멋대로 이름표를 보고 이름을 부르는것보단, 통성명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분명히 신뢰감 형성에 도움을 줄 테니까. 이름을 들었으니 내 쪽에서 이름을 밝힐 차례였고, 잠시 뜸을 들였다.

" 잘 부탁하겠네, 나바레테. 벨이라고 부르게. ..흔한 이름은 아닌것 같네만, 어디 출신이지? "

멕시코 계열인가? 그게 아니라면 러시아계? 교양이 부족한 것은 언제나 아쉬운 일이었다. 늘 살아남는것, 그것 하나만으로 벅차왔으니 공부같은걸 할 시간이 부족했다. 뭐, 반쯤은 손이 안 갔던 것도 있지만. 커피, 그리고 담배, 때때로 위스키. 그러한 취미시간은 제법 달콤했다. 그녀는 쭈뼛대는 기색으로 내 손을 잡았고, 나는 그 손을 꽉 맞잡았다. 무른 손이라고 느껴졌다. 전투력을 기대하는건 힘들겠군. 혹여 사격의 천재일수도 있겠지만, 무기를 빼앗기거나, 탄환이 모두 소모되면 그 뒤론 힘들겠지. 히어로처럼 우리에게 총알이 빗겨가고, 맞아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크게 다쳐도 붕대 좀 두르면 낫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동력도 중요시해야하니, 탄창을 가방에 잔뜩 실어다닐수도 없는 노릇이고. 권총에 잔 고장이 일어날수도 있고, 던진 잡동사니에 맞아 무기를 놓칠수도 있겠지. 잠시간 그녀의 손을 가만히 내려보았다.

" 나바레테 경장, FBI 아카데미 출신이라고 했었지. 우등생이었단 얘기는 못 들었네만, 사격은 좀 하나? "

우스갯소리로 FBI 얘기를 꺼낸걸수도 있겠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경찰이 되는 정규 과정에서도, 아카데미에서도 사격 교육은 받았을테니. 허나 그것이 사실이든, 사실이지 않든, 사격엔 젬병일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킬러로써의 일을 바라고 있는것도 아니니. 보조사격 정도는 기대하고 있지만, 아니라면 어쩔 수 없겠지. 코트 안쪽에서 연습용 수류탄 하나와, 수류탄 한 발을 꺼내어 그녀에게 건네었다.

" 잘 가지고 다니게. 무기를 혹시 놓치면 그걸 써. 이것도 옷 소매에 달아두고. "

원래는 아내에게 주려고 했던 거지만, 상관 없겠지. 그녀에게 자그마한 손목밴드를 건네었다. 감압식 전기충격기였다.

" 손목을 빠르게 위 아래로 한번씩 꺾으면 작동한다. 그 뒤엔 가져다 대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야. 혹시 그쪽 손목이 잡히더라도, 일정 압력 이상이 가해지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편리한 물건이지. 감전대책도 되어있으니 자네가 감전될 걱정은 안 해도 되네. 세번까지만 사용할수 있으니까 잘 알아두고. "

대비책으로 사용하는 물건에 역으로 당하는것만큼 우스운 일은 없지. 그런 의미에서 이건 실용적인 대비책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심야의 카페에 도착했다. 허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원목 소재의 인테리어가 새벽의 가로등과 맞물려 아늑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줍잖은 갱들에게 보호세를 바칠 만큼은 장사가 되는 모양이었다. 한적한것도 마음에 들었다.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손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하고선 자리에 앉으며 코트의 단추를 풀었고, 장갑과 모자를 벗었다.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가볍게 넘기며,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렸다.

" 나바레테, 자네의 정보접근권한은 어디까지 유효하지? 이 도시는 부패했어. 다른 도시, 다른 주에서 떠넘기고 싶은 부랑자들, 노숙자들, 그리고 마피아들이 이 곳에 모여있는게 차라리 그들에겐 편할테니, 계획적으로 부패했다고 볼 수 있겠지. 하지만 이곳은 범죄자들에게서 로비를 받아 배를 불릴 먹이터인 동시에, 위협적인 도시야. 이곳의 쓰레기들이 바깥으로 진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녀석들도 있을테니, 정부가 그걸 용납하지 않을텐데. 누군가는 따로 이곳의 조직들을 제대로 정리해두지 않았겠나? 놈들이 원하는건 통제니까. 그 통제를 벗어나는 녀석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녀석들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네. 자네의 말대로, 단순히 문서 편집에 그치는 선이 아니라. "

아무리 로비를 하면서 뒷주머니를 불린다고 하더라도, 윗놈들은 안전을 원한다. 적어도 이 쓰레기장은 벗어나지 못하도록, 분명히 목줄을 쥐고 있을텐데. 시민이 이곳에서도 그럭저럭, 어떻게든 살아가기라도 하는걸 보면 충분히 짐작할수 있을만한 일이지. 정보를 교차해 허수를 줄여나가는 과정은 제법 시간이 소모될테고, 그녀에게 나름 부담이 될것이다. 귀중한 정보원이 헛일을 하며 체력을 소모하는것보다, 최소한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정보를 검증할 일종의 광맥이 필요했다. 어느덧 나온 에스프레소를 받아 한 모금 삼켰다. 코를 부드럽게 감싸는 커피 향이 마음에 들었다. 실력이 없어 보이는 바리스타였는데, 원두가 좋았던걸까.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었고, 성냥을 찾아 뒤적거리다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잊어버리고 있었군, 성냥을 전부 건넸었지. 불좀 붙여주겠나? 가벼이 속삭였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짙은 선팅을 한 승용차 한대. 감시가 붙었나?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CCTV로 부터도, 차 내부로부터도 보이지 않을 법하게 몸을 숨겼다. 가까이 하면 할수록 우수하군. 썩 마음에 들었다. 저 차의 번호판도 한번 조회해두게. 가볍게 일러두었다.

" 치과, 혹은 카페라. 그런가. "

입술에 묻은 휘핑크림을 핥고, 헛기침을 하며 등받이에 등을 기대는 그녀를 재밌다는듯 바라보았다. 조금 긴장감이 부족해보이긴 해도, 그녀의 말이 옳았다. 합법과 비합법의 사이에서 줄을 타는 녀석들이니까. 안전성을 추구했을테지. 질문이 있냐는 말에 잠시 생각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지키던 알바생에게 다가갔다. 졸려보이지만, 뚱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응시하는 녀석에게 다가가 싱긋, 부드러워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 가게의 휘핑크림을 여자친구가 마음에 들어하더군. "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간다는듯, 날 쳐다보는 알바생에게 여전히 미소를 띄운 채 이야기했다.

" 휘핑크림을 좀 사고싶은데. "

" 음, 제가 사장이 아니라서... 내어드리긴 좀 곤란한데요. "

" 그런가, 그렇다면 휘핑크림이라도 좀 볼 수 없겠나? "

" 저희 휘핑크림은 그냥 평범한거에요. 마트에서도 많이 파는거죠, 상표명도 그냥 휘핑크림인거. 이거에요. 보신 적 많으시죠? "

휘핑크림을 꺼내온 알바생은, 스프레이 형식의 휘핑크림을 들고 있었다.

" 그래, 알려줘서 고맙네. 참, 요새 좀도둑이 많다고 하던데. 가게에서도 도둑맞거나 하는 일은 없나? "

" 글쎄요... 그런 건 없는데, 요새 휘핑크림 갯수가 좀 안맞더군요. 아니, 도둑맞거나 한게 아니구요. 분명히 10개정도 주문하셨다는데 영수증엔 100개, 1000개 이렇게 적혀있던걸 우연히 봤어요. 분명 10개 주문했다고, 이렇게 많은 값은 치르지 못한다고 했더니 본사 표기 오류라나? 실제로도 10개를 받았고, 10개 값만 지불했으니 상관은 없었긴 한데, 쩝. 이러다 나중에 그거 값 내놓으라 해서 알바자리 잃는게 아닐까 모르겠네요. 아, 근데 경찰이에요? "

" 경찰은 아니네만, 얘기 잘 들었네. 덕분에 집에서도 휘핑크림을 먹을 수 있겠어. "

그리고는 자리로 돌아오며, 그녀에게 저도 모르게 웃어보였다.

" 나바레테 경장, 이 이후로의 예정은 있는가? 없다면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게. 일 할 시간이다. "

악의로 가득찼고, 눈엔 증오가 가득 서려있음에도, 묘하게 아름다운 웃음. 스스로도 그런 미소를 띄우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것같았다. 그러나 그런것은 중요한게 아니었다. 기회라는것이 중요했다. 공장선에서 따로 휘핑크림을 잔뜩 만들면 자금이 유통된다. 허나 공장에서 그만큼 만들었으면 판매해야 하는데, 풍선 제조 목적으로 사용했으면 무엇을 팔겠는가? 너무 쉽게 찾아냈다. 운이 좋았다. 어차피 경찰이 신경쓰지 않으니 해이해졌던거겠지. 그러면 이제 찾아가서 전부 때려죽이면 된다. 그 뒤론 그 공장을 점령하면, 벌룬과 스마일 컴퍼니를 전부 끌어내어 전면전을 치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자금줄이 막혔으니 올라오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겠지. 다른 공장지부들도 많다면 마찬가지로 찾아가서 전부 때려죽이면 될 일.

" 질문은 있는가? "

350 이름 없음 (DCToBAFeKA)

2022-05-04 (水) 18:38:23

>>349

"제 피의 절반은 마쿠아후이틀로 골통을 쪼개던 아즈텍 식인종의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머스킷으로 손바닥만한 구멍을 뚫어주던 콩키스타도르 학살자의 것이죠."

"....적의 심장을 꺼내 제물로 바치는 일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저 하나 정도는 지킬 수 있어요."

식인종과 학살자의 자손이라면 세계를 도탄에 빠뜨릴 마왕이라도 태어난 것 같지만, 그 자손들은 다른 민족들처럼 일하고 사랑하고 못된 짓도 해 가며 평범하게 지내고 있다. 주로 멕시코에서. 나도 그들 중 하나고. 그러고보니 심장을 꺼내는 건 정말로 본 적이 있어. 평소와 같은 과시용 보복범죄였지. 나도 몇 번인가 그런 위기가 있었지만 잘 넘겨냈다. 그리고 이렇게 킹핀과 독대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벨이라고 했다. 벨. 지위에 비해서 수수한 이름인가. 벨이 하필이면 코트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자 몸의 근육이 팽팽하게 조여졌다. 낡은 코트 주머니엔 구소련제 권총이, 명품 코트 주머니엔 독일산 권총이 들어있지! 권총집에 손을 대려던 걸 간신히 허리에 손을 올리는 자세로 얼버무렸다. 이것도 직업병이라니까. 그래도 벨이 권총을 꺼내던 건 아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수류탄이다. 수류탄......이랑 손목밴드. 컴퍼니 회장쯤 되면 수류탄 정도는 담뱃갑처럼 들고다니게 되는건가. 이건 좀 색다르게 무서운데?

"보통은 저희 경찰이 스마트워치나 방탄 방검복을 슬쩍 건네주는건데 말이죠...하하.."

그래, 말랑말랑한부패경찰이 보호를 받아야지. 그게 맞는거겠지... 테이저벤드를 손목에 찼다. 탄탄한 장력이 피부를 가볍게 누르고 들어갔다.




두 번째 성냥이 타오른다. 첫째에서는 혼자 들지도 못할 돈가방에 둘러싸인 모습이었고, 이번에는 깨끗한 부촌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는 장면이 아릿히 보였다. 지금은 그저 설레발이지만,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살아갈 터였다. 담뱃불을 붙여주고 흔들어서 껐다. 알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들어오자마자 상을 뒤엎고 돈을 내놓으라 행패를 부리는 갱들과 비하면 영국 왕실과 비견될 에티켓 아닌가?

"사실 순경 다음 일개 경장이라, 공식적으로는 현장 나갈 때 필요한 정보 수준이지만? 뒷구멍을 살살 캐보면 말마따나 통제를 웧하는, 권한을 가진 자를 다룰 권한이 손에 들어오겠죠?"

반지. 7천만 달러짜리 반지. 개판난 도시의 경찰직 특유의 박봉에 집에 있는 아내와 아들딸이 굶을까 마피아처럼 상납을 받는 경찰관이 한둘이 아니다(사실 나도). 간단히 계산해서 1,000명의 경찰관에게 7만 달러씩 뿌린다고 가정해보자. 상상이 가나?

"이 나라 높으신 분과 엮여서 죽어도 보여줄 수 없는 류의 것들만 빼면요."

전술하였던 예시는 단순히 돈의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이런저런 사회적 술수는 고려되지도 않은 수치란 말이다. 벨, 킹핀이 아닌 이상. 킹핀이 회사를 통으로 팔아넘기려는 각오를 하지 않은 이상, 그리고 그와 동업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결코 불가능한 묘기에 가까운 술수였다.

"결과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자유롭게 얻을 수 있을거에요."

언뜻 양순한 사람처럼 웃었다. 인상이 그럴 뿐이다. 인상만.




'여자친구?'

카페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여기가 카페다. 킹핀은 기다릴 것 없이 바로 탐문을 시작한다. 그런데 아까부터 사모님이 보시면 기함을 할 장면이 많이 보인다. 용돈 주고, 반지 선물, 팔찌 선물에다가 나에게 제안Propose까지 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여자친구 운운을. 그러셔도 괜찮은가요. 확증은 없지만 뒤통수가 계속 콕콕대는 느낌이라. 평소에 파파라치랑 술래잡기 하고 그러시진 않으시죠?

그럼에도 장난질처럼 지나가는 무의미한 순간에 신경쓸 겨를은 없었다. 이 카페가 그 카페였다. 내가 수사할때는 길거리를 픽셀 단위로 뒤져도 며칠 몇주가 걸렸었다. 이게 초심자의 행운이냐. 또한 행운이 날아오면 주저하지 않고 붙잡는게 당연한 일인데... 그의 사악한 웃음은 날선 요검같았다.

"시작하실거면 저는 퇴근 처리하고 오면 되는데요.. 혹시 무력이 필요하다거나, 그런 일?"

일을 쇠뿔 뽑듯 파죽지세로 해치운다. 난폭운전수의 조수석에 앉은 것처럼 얼굴이 굳는다. 나는 당황하면 웃는 표정으로 굳어버리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았다.

351 이름 없음 (fDNlmZxu1c)

2022-05-05 (거의 끝나감) 22:47:01

미안 >>349인데 요새 넘 바빠서 기력이 없네 ㅠㅠ 내일이나 내일모레쯤 다시 올게... 꼭 이어올게!!!

352 이름 없음 (WbyKbAlONY)

2022-05-05 (거의 끝나감) 22:52:51

>>350 괜찮아 편한 시간에 이어줘!

353 이름 없음 (rbjc/bjMAA)

2022-05-06 (불탄다..!) 01:27:47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 인간과 마족의 전쟁도 이제 슬슬 끝을 맺으려 하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어둠을 가른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무기들을 손에 얻은 용사와 그를 보좌하는 멤버들은 마침내 마왕성에 들어오는데 성공했다. 막강한 마족들과 싸우며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여정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나 그들은 이를 악물고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며 계속해서 위로,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왕이 있는 꼭대기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층. 진득한 피냄새가 그 장소에 강하게 퍼지고 있었다. 전설의 무기 중 하나로 알려진 영웅의 활을 들고 있는 푸른머리 사내는 벽에 등을 기대며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그 옆에는 죽은채 쓰러져있는 붉은 날개를 지닌 고위 악마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악마에게 심하게 공격당했는지 사내의 몸 여기저기엔 상처가 깊게 남아있었고 그가 꾹 누르고 있는 가슴 부위에선 붉은 피가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역시 마왕의 심복 중 하나인 블러디 데몬을 혼자서 쓰러뜨리는 것은 너무 무모했나보네. 하지만... 그래도 이 녀석만큼은 내 손으로 쓰러뜨리고 싶었으니까 후회는 없어."

전설의 무기 중 하나인 영웅의 활을 대대로 봉인해서 숨겨놓고 있던 그의 마을은 바로 그가 쓰러뜨린 블러디 데몬이 지휘한 마족들에게 불바다가 되었다. 수많은 이가 죽었고 그 중에는 그의 가족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사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블러디 데몬은 자신의 손으로 결판을 내고 싶었고 반드시 무찌르겠다는 약속을 남기며 다른 동료들을 꼭대기로 보냈다. 아마 지금쯤이면 마왕과 대면했거나 한창 싸우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씨익 웃었다.

"올라가서 합류해야하지만 이대로는 올라가기는 커녕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은데. 어쩐다. 하..하. 나중에 모든게 다 끝나고 내가 죽어있는 모습을 보고 다들 눈물을 흘릴까. 흘리겠지. 싸움에 승리해서 기뻐해야하는데도 그 녀석들이라면 기뻐하지 못하고 울겠지."

그래도 후회는 없어. 원수를 내 손으로 갚았으니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사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대로 눈을 감고 잠들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이 날까. 조금씩 의식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그는 얼굴을 살며시 아래로 숙였다.

"...미안하다. 애들아. 반드시 이 세상에 평화를 다시 가져다줘."

/가끔 마왕과 싸우는 용사물에서 볼 수 있는 너희 먼저 올라가! 난 이 녀석을 쓰러뜨리고 갈게! 를 시전했다가 아치 에너미를 죽이는데는 성공했지만 힘이 다 되어서 점점 죽어가고 있는 용사 파티 멤버 중 하나의 이야기야.
여기에 누가 나타나서 무슨 말을 걸어도 별로 상관은 없긴 하지만 이미 죽였다고 분명히 이야기한 블러디 데몬이 난 사실 살아있다! 를 시전한다거나 사실 그런 일 없었는데 혼자서 헛소리하는 중2병으로 만들어버린다거나 그런 것만 아니면 돼. 당연하지만 꼽주는 맥커터질도 사절이야. 그 이외에는 진짜 어지간하면 다 가능!

354 이름 없음 (bIuZRWORn.)

2022-05-06 (불탄다..!) 19:32:03

>>353
상식을 가진 이에게 그 남자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무식한 농부 하나를 꾀이는 일만큼이나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내 감상만을 말한다면, 블러디 데몬은 복잡하고 기복이 극심한, 스스로에게 주어진 것을 통제할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자였다. 인간이든, 마족이든, 그런 성정을 가진 이에게 과도한 권한이 주어지는 것은 주변에 고통을 주는 일이다.

그러나 그 자를 상사로 두고서 마냥 괴로웠다고 단정지어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거짓의 악덕이다. 즉흥적이고 가변하는 존재였기에 그는 때때로 관대했고, 소란으로 주변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소양도 조금은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그 자의 편집증적인 광기가 조금은 만족감을 느끼던 날에, 우리는 지극히 악마적인 광란이 충만한, 족히 몇 달분의 유흥에 버금갈 수 있는 연회를 제공받곤 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블러디 데몬의 병리적 집착은 진정되는 법이 없었다. 나는 그의 부사수로서 종종 무의미한 위치의 부락과 도시들에 철저한 파괴를 자행할 것을 명령받았는데, 그 이유는 대체로 납득하기 어려운 종류였다. 자신의 존재를 파괴할 어떤 존재, 혹은 물건에 대한 공포는 항상 블러디 데몬의 동선, 그리고 나의 동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거점의 확보나 전리품의 수급 같은 실리적인 동기들은 매번 존재조차 불확실한 어떤 것에 대한 완전한 파괴라는 목표에 밀려 무시되었다. 대개는 어떤 인간, 때때로 창이나 도끼, 혹은 활, 심지어는 낡은 베일이나 녹슨 식기로 변하는, 안개 뒤쪽의 모호한 목표.

그게 내게는 항상 불만이었건만......

지금, 회랑의 저편으로 보이는 죽음의 모습은 그 자가 평생 집착했던, 그리고 내게도 흔한 유언비어의 일각으로나마 기억되는 악의 운명론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활이었구나."

처참한 관통상에 터져나간 창자와 내장들을 피해 걸어가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시신에 가까워질수록, 배가되는 불안감과 위화감 속으로 오랜 시간동안 억눌렀던 억하심정이 터져나왔다. 그래, 이 날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내 사수를 집어삼킨 악의 운명이 정말 어떤 신기인지, 평범한 유시인지의 여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체를 남기는 종류의 공격에 그가 당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계승받을 게 남아있다.

조용히 열주들 사이를 지나, 어느 새인가 목표에 도달한다. 거리낄 것도 없다. 무릎을 꿇고 자세를 죽인다. 힘없이 구겨진 붉은 날개를 치우고, 시신의 머리통을 양손으로 붙잡는다. 그리고,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여전히 느껴지는 희미한 숨소리, 그쪽으로 집중한다.

평생 공포에 쫓긴 불쌍한 병신의 숨을 거둬간, 준비된 사수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내 지척에.

강인한 존재로군. 살아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의 치명상 속에도 어떻게든 견디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남지 못한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남자에게 설사 죽음에 반쯤 안겨버리고 말았더라도 1번 더 활을 쏠 여력이 남아있을지의 여부만이 중요하다.

만약 있다면, 내 사수를 위해 준비되었던 신기가 나에게도 영면의 도구로 작용하게 될까?

"쏠 텐가."

355 이름 없음 (rbjc/bjMAA)

2022-05-06 (불탄다..!) 20:05:10

>>354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소리에 힘없이 사내의 얼굴이 그곳을 향했다. 아직 누군가가 남아있었나? 아니. 남아있어도 이상할 건 없어. 사라져가는 의식을 애써 꽉 잡는 것은 아직 이 자리가 처리되지 않았다는 상황 때문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설 힐은 없었으나 그래도 활시위를 당길 정도의 힘은 아직 조금 남아있었다. 허나 자신의 몸 상태, 그리고 흐르는 피. 그것을 모두 생각해보면 그나마 모든 힘을 끌어모아 정말로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는 단 한 발의 기횔 뿐이었다. 손에 쥐고 있는 활을 애써 꽈악 쥐며 그는 팔만 겨우겨우 올려, 상처부위를 틀어막고 있던 손을 올려 시위를 잡았다. 손으로 막혀있던 진한 향이 더는 가려지는 일 없이 그대로 코 끝을 찔렀다.

"네가 먼저 올라간 내 동료들을 쫓는다고 한다면. 하하. 허나 항복하고 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나도 굳이 쏘고 싶진 않은데. 어차피 이제와서 쫓아간다고 하더라도 상황을 바꿀 순 없어. 마왕은 그 녀석에게 토벌당하고 너희들의 패배로 전쟁은 끝날테니까. 쿨럭!"

힘을 주고 말을 한 탓일까. 그는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스스로 목숨이 다 할 것을 직감하나 그는 오히려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의 가족의 복수는 했다. 마을 사람들에 대한 복수도 했다. 그렇기에 죽음 따윈 두렵지 않았다. 단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자신의 동료들이 모든 것을 끝낸 후의 세상을 지켜볼 수 없다는 것 정도일까.

"말해두는데 나를 무시하고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승산은 없어. 그러니까 여기서는 어차피 곧 죽게 될 녀석 하나 내버려두고 목숨 보존할 셈 도주하는 것은 어때? 그 녀석들도 싸울 의지가 없는 이들을 토벌하겠다고 뒤쫓진 않을테니까."

만일의 경우, 만약 자신을 공격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동료를 뒤쫓아가려고 하면, 그 즉시 활을 발사할 생각으로 그는 그 끝을 눈앞의 대상에게 겨냥했다. 곧 꺼져가는 목숨과 맞바꾼 마지막 한 발. 빗나갈지, 명중할진 모르겠으나 만일의 경우엔 망설이지 않고 발사하려는 듯, 그의 꺼져가는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356 이름 없음 (bIuZRWORn.)

2022-05-06 (불탄다..!) 20:46:14

>>355
이 남자는, 아직 말을 할 기력까지 남아있어서 희미하게나마 나에게 협박까지 하고 있다. 경이적인 생명력이다. 내가 저 정도의 부상을 입는다면, 필히...... 아니, 그 전에 육체가 견디지 못할 것이다. 저 상처들은 일생 쫓는 동시에 쫓겼던 공포의 근원을 비로소 마주한 대악마의 필사적인 공격에 의한 결과물일 터, 나라면 즉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확신하건대, 저 활은 당길 수 있다. 나를 과녁으로 삼아서.

"좋은 눈을 가지고 있어."

복잡해지는 심사, 삶과 죽음의 기로, 희미한 두려움, 그러나 모든 맥락이 무의미하다. 무의식중에 나오는 말은 순수한 감상의 표현이다. 그 기적과 같은 강인함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 남자에 대한 감상 또한 순수하게 호의에 가까워진다. 심, 기, 체의 균형이 맞고 힘과 힘의 연결이 긴밀하다.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명궁의 눈, 혹은 달인의 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어지는 남자의 말, 그간 조금은 잊고 있던 것들이다. 의무에 대한 상기. 오랜 시간 의식 밖으로 밀어놓았던 충성의 의무에 대한 기억이다. 본 적도 없는 군주를 위해 일생 대적했던 어떤 이보다도 강인한 인간들을 향해 뛰어들어야 할 불나방의 의무, 악덕이란 항상 강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결말을 원하지는 않는다. 조금도.

"동료들이 있나, 분명히 아직 살아있고, 또 당신이 수행할 수 없게 된 목표의 후반부를 통제하고 있겠군. 그게 당신네들의 방식이니까."

그래, 인간들이 죽음을 넘을 수 있는 방식이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행위라는 것이다.

"대화의 여지가 있을 것 같군. 그리고, 불쾌한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당신은 어떤 면에서 닮은 부분이 있어. 방금 당신의 손으로 죽인 존재와."

그러니까 내 사수여, 걱정하지 마시오. 지금 당신을 계승하고 있으니.

"내 목적은 블러디 데몬을 섭식하는 것이고, 그게 달성된다면 내 군주에 대한 의리는 없다. 이 기나긴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이라고는 이것 뿐일 듯 하군."

357 이름 없음 (rbjc/bjMAA)

2022-05-06 (불탄다..!) 21:12:59

>>356

"그게 인간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핫. 지금 내 몸 상태가 이런 것이 유감스러운걸. 정말로 불쾌한 소리에 바로 대응을 할 수 없는게 말이야."

대화의 여지가 있다고 하니 그는 바로 활을 당기지 않고 일단 상대의 말을 들어보는 것을 택했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은 마족을 섬멸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동료들을 방해할지도 모르는 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이 활을 쏘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더 싸울 의지가 없는 이라면 굳이 피를 더 흘리게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허나 블러디 데몬을 섭식한다는 그 말에 그는 바로 질문을 던졌다.

"이미 죽어버린 녀석을 먹어서 얻을 수 있는게 뭐지? 대답에 따라서 내 행동도 결정될 것 같아서 말이야."

만약 섭식함으로서 새로운 블러디 데몬이 탄생하게 되고, 자신의 동료를 위협하는 적으로서 강림한다면 지금 여기서 막아야만 했다. 물론 그것을 달성할 수 있을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점차적으로 시선이 흐려졌고 조금만 느슨해져도 그대로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았으니까. 붉은 핏물은 그의 옷을 따라 땅을 향해 흘렀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어질 정도였다.

"이 길고 긴 전쟁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행위가 아니길 빌겠어. 설사 여기서 내 공격을 피하고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내 동료들의 힘까지 피할 순 없을테니까."

358 이름 없음 (bIuZRWORn.)

2022-05-06 (불탄다..!) 21:38:25

>>357
"모르나?"

부드럽게 반문이 나왔다. 어쩐지 모든 것이 간단하고, 쉽게 풀릴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손끝으로부터 조금씩, 힘을 가져온다는 느낌이 오면 올수록 그러했다. 어쩌면 도취의 감각인지도.

"피상적이고 비타협적이었지만 우리 간의 전쟁은 충분히 길었지. 당신같이 경력이 많은 자라면, 적어도 나만큼은 우리에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했다."

상대의 안색이 불쾌해진 만큼이나, 내게도 좋은 화제는 아니다. 다만 섭식이 시작된 순간부터, 분노 이상으로 상기되는 마음이 계속 말을 장황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소재에 짜증을 느끼면서도 쓸데없는 말을 자꾸 부연하게 된다.

"악마가 다른 악마를 섭식한다는 것은, 그 자의 힘과 의식을 취하기 위한 행위이다. 먹는 자는 피식자의 힘과 지식을 체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하고, 먹히는 자는 포식자의 일부로 흡수당해서 죽음을 넘는 것이지. 당신네들이 동료에게 의지를 의탁해서 죽음을 넘는 것처럼."

그래, 그렇기 때문에 당신과 이 시체는 닮았지. 죽어도 죽음을 넘을 수 있으니까.

"블러디 데몬이, 나를 부사수로 들인 이후로 유일하게 약속한 보상이 이것이었다. 일생의 대부분을 전쟁 속에 있었지만, 결국 이 전쟁에서 얻는 것은 이것 뿐이야. 이것 뿐......"

좋지 않다. 말이 너무 길어진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섭식이 잘못된다면, 역으로 내가 먹힐 가능성도 조금이나마 있다. 내지는 의식이 과도하게 섞여서 내가 내가 아닌 존재로 변이될 가능성도. 그러므로 이 모든 과정은 확실히 내 통제 하에 둬야만 한다.

이것만큼은 내 봉사의 정당한 삯이니까.

"그쪽은 어떻지? 이 전쟁에서 얻은 게 있나? 어차피 죽음 뒤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집중의 시간을 벌기 위해, 반문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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