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혼란스런 세상에서도 어떻게든 삶을 연장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독려하던 우리에게 다가온 변화는 급작스러웠다. 옆에 있던 사람들의 손에서 불이 나가고, 예순 먹은 할망구가 갑자기 젊어져선 괴력을 뽐낸다고 생각해봐라. 그리곤 나도 다친 팔이 멀쩡해지고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어느 언어를 내뱉어서 커다란 얼음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까?
좋은 집안에서 자랐거나, 좋은 집안 수준의 가정교육을 받았구나. 빈센트는 마츠시타 린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다섯 살을 기점으로 가정교육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그저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유년에 읽었던 책들로 그 빈 공백을 어떻게든 채워보려고 했던 빈센트와는 다르게 말이다. 빈센트의 말과 행동이, 거대한 구멍을 캔버스와 돌멩이로 메운 것처럼 허술하다면, 상대의 것은 단닪나 벽과도 같이 느껴졌다.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불장난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아이들을 계도할 책임이 있는 이들이 특히 바빠지는 달이죠. 아이들은 불을 좋아하고, 불도 아이를 좋아하지만... 불이 아이들을 좋아해주는 방식은, 보통의 인간은 절대 감당할 수 없으니까요."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에 띄지 않는 날씨가 좋지 않느냐는 말에 턱을 쓰다듬는다. 굳이 은신 스킬을 쓰지 않아도 시각이 어느정도 차단되는 안개 낀 날씨에 대한 암살자의 직업적 선호일까, 아니면 헌터 전체의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개인의 취향일까, 아니면 셋 전부 다? 빈센트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다가, 사실 이것들을 생각하는 것은, 린의 이야기에 대답하는 것에 비하면, 놀랍게도 아무 의미도 없는 짓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런 날씨면, 정신을 차리지 않은 적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도 모르고 죽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안개가 없는 맑은 날씨의 장점도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제가 잘 보이지만 적도 잘 보이고, 결정적으로... 터지고 불타면 다 잘 보이지 않습니까. 불꽃놀이는 시각적 만족이 중요한 법이니까요." ///5
빈센트가 어느 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곳에 서게 되었는지 린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그가 배우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지식을 축적하는 분야에 타고남은 어느정도 알아챌 수 있었다. 말투가 경박하지 않고 적당히 정돈되어 있으며 어휘를 적재적소에 정확하게 맞추는 행위가 이미 숙달되어 있다. 어린 시절 궤도에서 이탈하여 어설프게 알량한 지식을 잊지 못하게 된 죄로 어중간하게 앎이 더 괴롭다는 말 처럼 단단한 성채 뒤에 황폐화된 마을이 남은 상태로 아둥바둥 살아온 저를 되돌아본다. '괜찮다. 누군가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알아가면 된다.' 씁쓸함을 삼기며 천천히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 당사자가 저희가 아닌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그들을 보아야 할 부모와 경찰을 응원해야 할지. 아니면 한때 어린아이였던 입장으로서 탐구열에 적당히 거들어야 할지 참 여러모로 고민이 되는 생동의 계절이와요. 빈센트군의 말씀처럼 불은 저희의 방식대로 인간을 어여삐 여기지 역지사지의 심정은 알지 못하니 말이와요."
뜨거운 화기가 확 솟아오르고 지면을 달군다. 이마에는 금방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손바닥 근처에 붉은 빛이 힘차게 넘실거리며 막 지면을 박차고 떠오르는 태양의 축소판 같이 사방을 널리 비춘다. 덩달아 보는 사람의 마음도 고양되어 먼 어딘가로 마구 달려가고 싶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이는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안다. 어른이 아무리 옆에서 위험하다 하여도 결국 말썽을 저지를 아이들은 그 기분에 취해 사고를 칠 테니 차라리 옆에서 지도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사정이라며 숨기고 숨겨도 결국은 최악의 방식을 통해서라도 이후에 다 알게 되듯이 언젠가는 그 위험성을 어떠한 경로로든 깨닫게 될 테니. 그러나 어른이 되어 알게 되더라도 오히려 그 흥분을 삭히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제 앞에 자리한 그는 그러한 부류일까.
"자신과 적의 위치를 파악함은 전투에 있어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와요. 하지만 시각적 만족이라는 점은...각자의 취향이니 소녀는 잘 모르겠사오만."
잠시 생각을하다 신중하게 말을 고른다.
"아군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라 여기겠사와요. 마도사분들께 적이 공격에 확실하게 제거되었다는 증거이자 성취감이 될 수도 있을테니까요. 소녀도 난적을 만났을 경우 제 기술로 돌파하는 경우 도취감을 느끼니 이와 같은 종류라 추측하겠사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