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시작한 입맞춤, 그 이후로 바다와 해변에서 이어진 애정행각들의 결과물로 두사람은 둘이서 정성껏 깔아둔 돗자리 위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정확히는 슬혜의 품에 안긴 체로 꼭 끌어안고 있는 시아였다. 기분 좋게, 은은하게 풍겨오는 슬혜의 향기가 마냥 기분이 좋은듯 이따금 어깨에 얼굴을 비비적거린다.
" .. 이대로 좀 더 있고 싶다, 단둘이.. "
슬며시 슬혜의 손을 꼭 잡은 체로 부비적대던 시아는 아쉽다는 듯 입술응 달싹이며 작게 중얼거린다. 방금전까지의 시간은 몹시 꿈만 같았으니까. 단 둘만이 존재하는 듯한 세상 속에 빠져있다가 자연스럽게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예정된 댄스 이벤트가 있기 때문이었다.
" 좀 더 욕심내서 행사 같은 건 뒤로 하고 여기서 그대야랑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행사도 좋은 추억이 될테니까.. "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은 시아가 손가락 끝으로 누워있는 슬혜의 어깨 부근에 원을 그려넣기 시작하먀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를 낸다. 이 여행이 끝나면 이렇게 단 둘이 누워있고 그럴 장소가 없을 것 같아서 더 아쉬워 하는 모양새였다. 아직은 슬혜의 집에 갈 생각은 하지 못 하는 듯.
" 춤추는 것도 즐거울 거라는 건 알지만 아쉽기도 하네.. 으! 다 슬혜가 너무 좋아서 그래..! "
원을 그리던 손가락을 멈춘 시아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슬혜의 턱에 쪽하고 입을 맞춰주곤, 이 아쉬움이 모두 슬혜의 탓이라는 듯 투정을 부려본다. 분명 투정을 부리는 시아의 모습도 보기 드문 모습이었겠지.
" 이제.. 행사 참여하러 가야겠지? 입고 왔던 옷도 걸치고 말이야. "
목덜미에 살며시 얼굴을 파묻은 시아가 작게 속삭였다. 아쉬워도 행사에 가야할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 정말 즐거웠어. 슬혜랑 바다에서 노는거. 물론, 대부분은 물놀이보단 다른 부분이었지만.. 아무튼. "
그래요, 비랑이 언제부터 남 시선을 신경쓰는 사람이었나요. 조금 놀랐던 것뿐 지금은 괜찮으니까요. 다들 모닥불 주위에서 춤을 출 때 나왔다면 부끄럽진 않았겠지만 하늘을 만나진 못했을 겁니다. 그걸로 된 겁니다. 따라오면 이끄는 건 서툴지만 조심스레 멀어져 보고, 따르게 하면 빠르게 가까워지려 합니다. 박자에 맞지 않았을 땐 한 걸음이면 될 걸 두 걸음으로 쪼갠다거나 너무 많이 내딛어 버렸을 때도 있었지만, 박자를 맞추다 보면 조금 나아지네요. 혼자 노래를 부르면 박자가 느려지고 다같이 부르면 모르는 사이에 빨라지지만 둘만 있을 땐 호흡을 맞추기 어렵지 않습니다. 정확한 움직임은 아닐지라도 크고 활기차게 움직이니 보기 나쁘진 않습니다.
"하긴, 네가 자기관리 못 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데."
정말 진이 빠질 일이라면 몰라도 말이죠. 하늘이는 연습도 오래 하지 않을까요? 그 손, 고생의 흔적을 유지하는 데는 더 많은 고생이 들곤 하니까요. 하늘이의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던 비랑은 잡아줄 필요 없는 바른 턴에 무심코 팔을 뻗다가 미소를 짓습니다.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포크 댄스 한 번 추자고 신청해보란 거야? 그건 좀. 그래도 함께 놀자는 건 마음에 드네."
우리들은 남겨진 사람이 아니기에, 남은 사람이기에. 어쩌면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모르는 시간 동안, 음악이 끊길 때까지 마지막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거지요.
"좋아, 끝나면 전화번호 알려줘. 내가 나중에 결혼식 열 때가 되면 꼭 불러줄 테니까!"
잘못 돌아서 돌고도 한두 걸음 더 내딛어야 할지라도 턴을 합니다. 그 모습이 아까보다는 낫네요.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라는 듯이 하늘은 비랑의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실제로 하늘은 그렇게 철저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피아노를 제외한다면.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런 재능도 없고, 그저 노력하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단순한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에 대해서 하늘은 부정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무심코 팔을 뻗는 것을 바라보며 하늘은 비랑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오른쪽 눈을 감고 윙크를 보내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하는지는 네 자유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원하는게 있다면 도전하는게 나을걸? 그러다가 후회한다. 너. 나도 그렇게 후회한 적이 있어서 말이야. 정말로 친한 친구가 있는데, 3년이나 말 없이 차갑게 지냈거든. 지금은 잘 지내는데, 그 당시엔 뭣하러 그렇게 자존심을 세우고 싸웠는지 모르겠어."
같은 반의 아무개를 떠올리며 하늘은 괜히 어깨를 으쓱한 후, 리듬을 타며 발을 움직이며 비랑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특별한 움직임 없이, 거대한 움직임 없이, 그의 움직임이 돋보이도록.
"우정이기에 시간을 들여 해결할 수 있었지만 사랑은... 아. 솔직히 말해서 나, 피아노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은지라 사랑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다른 이가 먼저 가로채버리면 아무런 의미 없는 거 아니겠어? 물론 그런 것도 청춘이라면 청춘이지만 난 그런 청춘은 싫어서 말이지. 음. 그러니까 도전할 수 있을때 도전하는게 좋다고 생각해. 아, 물론 네가 싫다면 그걸로 된 거고."
뒤이어 그가 턴을 하자 하늘은 그에 맞춰 발을 이동해주면서 그에게 잡으라는 듯 손을 살며시 내밀었다.
"좋아. 가져가. 참고로 우리 반 중에서 내 번호를 가져가는 거, 네가 두 번째야. 그 누구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피아니스트님이 축하곡을 연주할테니까 그 번호, 쭉 간직해. 나도 번호 안 바꿀 거니까."
다들 춤추러 갔는데 혼자 여기 앉아서 뭐하는거지. 내가 어깨를 톡톡 건드리자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서 얼굴에 미소를 환하게 띄운채 목례를 받아준다. 축제장 돌아오면서 약학부 인원들을 몇명 본 것 같은데 혼자서 여기 있는걸 보면 춤추러 갈 생각은 없는건가. 기왕이면 바닷가에 놀러온 김에 즐기면 좋을텐데, 라곤 해도 나도 관심 없어서 안갔으니 말하긴 좀 그렇다.
" 오랜만에 보는... 건가? "
그때 이후로 얼굴을 안봤으니 오랜만에 본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하루에도 여러 학생들을 만나느라 정신이 없어서 오랜만인가 싶기도 했지만 날짜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렇네. 내 레스토랑 이용권으로 시선이 향하고, 놀란 표정으로 물어오는 너에게 나는 당연하게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안될건 또 뭐가 있어. 다들 저렇게 춤추는데 내가 가서 뜬금없이 가서 밥이나 드실까요? 하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
지금 너랑 내가 시간이 되니까 같이 가자는거 아니겠어? 웃으면서 같이가자는듯 손을 내민다. 레스토랑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축제장이 그대로 보이는 곳에 위치해있어서 밥을 먹으면서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거기에 오션뷰도 완벽하고 맛도 상당하다고하니 그 가격대가 상당하긴 했지만 이용권이 있으니 모든건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