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보여주는 영상을 보고, "쿡..." 하고, 문하가 웃었다. "푸하하하하." 그것도, 눈을 접고, 소리를 내어서, 얼굴에 주름까지 그어가며 분명하게. 뭐가 그리 웃긴지.
"나도 참... 말도 안 되는 짓을 해버렸네......"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던 떠돌이 개가, 문이 열려 있고 맛있는 냄새가 나길래 들어왔더니 으리으리한 잔칫집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화려하게 빼입고, 점잔을 떨고 있는. 아무도 그를 몽둥이로 내리치려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를 벌레나 오물을 볼 때와 같은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건 몽둥이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효과적이었다. 하늘이 보여주는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가 문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고, 그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저따위 더러운 게 어쩌다 여기 들어왔지?
내게 동정심을 표하는 이들은 절대 내게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내 목줄을 쥐어주려 하지 않는다. 나와 무리를 지어주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동정심을 갖게 하는 내 상처가, 나를 얼마나 흉칙하게 무너뜨리고 망가뜨려 놓았는지... 그들도 알고, 나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혐오감 섞인 동정심은 내게 가까이 오려 하지 않는다.
"왜 안되는데? 물론 네가 이런 분위기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을 보면 마치 그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웃긴 하지만 그게 정말로 웃는 모습인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은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같은 반 아이들이 하는 말을 신경쓰는걸까? 아니면 그냥 단순히 정말로 이런 것을 싫어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확실한건 지금 그가 한 말은 마치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들렸기에 그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아니. 아니야. 그 이유를 묻는 것은 조금 너무 들어간 것 같네. 하지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이니 혹시라도 생각이 나면 찾아와줘. 나도 더는 말하지 않을게."
권유는 하나 그 이상 들어가면 그건 강요였다. 자신의 생각을 너무 강하게 펼칠 생각은 없었기에 하늘은 그 정도에서 말은 끝내기로 했다. 허나 역시 조금 신경이 쓰이는건 사실인지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 웃음 너머의 말을 자신이 듣는 것은 가능할까? 아니면 딱 거기서 멈추게 될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내일 놀기로 하는 거지? 좋아. 간만에 솜씨를 보여봐야겠네. 물론 네 눈엔 어떨지 모르지만 말이야."
괜히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는 자신의 몸을 가볍게 톡톡 치면서 손을 아래로 내렸다.
/하늘주가 슬슬 자러 가야할 것 같아. 이후에 막레를 할거면 적당히 여기서 헤어졌다로 막레를 해도 되고, 더 잇고 싶다면 이어도 좋아! 그럼 퇴근 후에 이을게! 아무튼 슬슬 자러 갈게! 다들 잘 자!!
>>602 오케이! 그럼 저걸 막레로 할게! 문하라는 캐릭터가 되게 흥미롭고 하늘이로서는 역시 꽤 호감을 가질 것 같다. 다만 뭔가 내부적으로는 으음? 하는 느낌을 받을 것도 같은데 하늘이 자체가 아무래도 자기 영역의 선이 좀 강한만큼 문하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게 또 상처를 주지 않을까 걱정되고. 크아악! 이 아들놈이 문제구나!! 8ㅁ8
그냥 엉엉 우는 시늉이겠지만, 아쉬움의 뜻이기도 하고 원망도... 아주 쪼꼼 하려나.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지 않을래? 부터 왜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지 않아? 까지. 아예 권유를 안 하는 곳도 있었지만, 구경 가면 대체로 우리 부에 들어오지 않으려나 하는 가벼운 기대 정도는 때때로 받기 마련이다. 그건 쪼꼼보다 더 곤란해. 한 명의 사람이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따금 이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린다.
“ 신체가 건강한 걸로 이미 충분한걸요오. 모든 사람이 공부라는 길을 택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
해맑게 웃는 얼굴이지만, 꽤 어른스러운 말이었을까? 공부 말고 다른 길을 택했다면 안 할 수도 있고, 그냥 공부가 싫을 수도 있겠지. 세상에 1000명이 있다쳐도 그 1000명의 사람이 다 같은 길을 택하는 것도 아닌 걸.
“ 그런가요~? ”
빵긋 웃었다. 보부상...일 수도 있겠지. 내가 생각해도 조금 많이 들고 다니나 싶기도 하고. 맞장구치는 말에 가늘게 눈을 접었다.
“ 큰가아...? ”
잘 모르겠다는 듯이 말을 늘인다. 필기구 여러 개, 커터칼, 자, 화이트, 네임펜 기타 등등... 이게 다 들어가긴 하는데 남들도 이 정도 크기는 쓰지 않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얼마나 한참을 그러고 있었을까. 파도소리 사이로 사박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 새슬이 고개를 돌렸다. 짙은 보랏빛 머리칼의 남학생.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왜 익숙한 기분이 드는 것 같지? 멀거니 바라만 보던 새슬의 고개가, 이어지는 해인의 물음에 갸우뚱 기운다.
“나를 알아?”
나는 모르는데, 네 이름. 그러나 옆에 앉는 해인을 저지하거나, 피하려는 기미는 추호도 없다. 그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탕 먹을래? 반가운 제안. 바닷물로 적신 입술에 소금기가 남아 조금 갈증이 나던 터였다. 단번에 표정이 풀어지며, 새슬이 웃었다. 그럼 포도맛. 녹색 눈동자에 금새 즐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항상 사탕을 가지고 다녀? 대단하다아ㅡ( ᐛ ).
“그런데, 나를 어떻게 알아?”
웬만하면 모를 텐데. 해인에게서 받아든 사탕 봉지를 깔작거린다. 사탕 껍질에는, 특히 막대사탕에는 짧은 손톱을 위한 뭔가가 필요해. 꼭 한 번에 벗겨지지 않아서 이를 써야 한다니까. 한참의 사투 끝에 힘겹게 봉지를 뜯어낸 새슬이 사탕을 입에 물었다. 음! 달아. 맛있다. 여전히 더할나위없이 짤막하고 담백한 소감이었다. 그야 포도맛 사탕 따위에 이런저런 수식어를 달아 줄줄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이상한 편에 속하기야 하겠지만.
그와 손을 오래 잡아본 사람은 양이고 늑대고 평범한 사람이고... 딱히 없었다. 그의 손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연호보다 먼저 지쳤다. 연호는 지친 사람들은 쉬게 내버려두었다. 같이 더 놀고싶어도,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은 삼가하는 그였다.
잘 모르겠다는 말에도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손을 더 꼭 쥐어주는 아랑의 모습에 그는 조금 안도할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 만큼은 걱정할 일이 아닌것 같아서.
오래 있으면 회복되겠지. 그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서 조금 편해졌다.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다지만 그래도 혼자가 아니고, 곁에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냥한 사람이 있었으니까. 불확실한 미래라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응. 당연하지. "
노을과 아랑을 몇 번 번갈아보던 연호는, 아랑의 질문에 그녀에게로 시선을 고정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연호가 보기에 아랑은 예쁜 사람이었다. 오히려 왜 말꼬리에 농담이라고 덧붙였는지 잘 모를 정도로. 아랑이 농담이라는 말을 덧붙인것에 대해, 혹시나 아랑 자신이 예쁜것을 모르고 있을까 걱정하여 한마디를 더 남겼다.
음, 그래도 학생회 부회장인데 얼굴을 모른다니 좀 슬픈 일인데. 뭐든 1인지만 기억되는 세상이라서 2인자인 나는 안중에도 없다, 뭐 그런걸까. 물론 어디까지나 장난의 영역이고 실제론 학생들 중에선 학생회에 관심이 없어서 회장 정도만 기억하는 애들도 많았으니까. 이미 익숙한 일에 시무룩해지고 그럴 일은 없다. 네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사탕을 건네준 나는 자기를 아냐는 물음에 입술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 내가 준 반창고는 잘 하고 다니지? "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을까. 전에 챙겨준 반창고를 아직까지 들고다닐지, 아니면 이미 다 쓰고 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모르는 사람이 반창고를 건네준건 하나 밖에 없을테니까 분명 기억할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짧은 손톱으로 사탕과 사투를 벌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까줄까, 라고 물어볼 참에 사탕을 까버린다. 성대를 타고 올라오다가 갈 곳을 잃은 말은 뱅글 돌다가 다시 쑥 들어가버린다.
" 물론 나는 부회장이니까 굳이 그게 아니었어도 네 얼굴 정도는 알지. 자유부원씨. "
물론 특이한 학생들이 많은 산들고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하게 눈에 띄는 학생들은 이름도 여러번 듣고 얼굴도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다. 새슬이도 몇번 이름을 듣고 출석부 같은 곳에서 얼굴을 봐놓아서 아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럴땐 부회장 직책이 도움이 되어서 조금, 아주 조금은 맘에 들었다. 그렇다고 나쁜 쪽으로 유명한건 아니고 그냥 그렇게 다니는 애가 있더라- 라는 말을 듣는 것뿐이니까.
" 이런 땡볕에 앉아있으면 피부 건강에 안좋아. 적어도 파라솔 같은 곳에 앉아있는게 좋아? "
조금 떨어진 곳에 파라솔들이 잔뜩 꽂혀있는 곳이 있었다. 물론 그곳은 사람들이 많아서 나도 가기엔 꺼려지긴 했지만. 주변은 나무 같은 것도 없어서 그늘을 찾기가 어려워 결국 나도 포기하고 얘 옆에 앉아있기로 했다. 그래 잠깐 앉아있는걸로 막 타진 않겠지.
사탕을 입에 물고서 멍한 눈빛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던 새슬의 시선이, 단번에 해인에게로 꽂혔다. 내가 준 반창고는 잘 하고 다니지? 놀란 기미가 가득찬 것도 잠시, 단번에 반가운 얼굴로 해인에게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이미 물어 볼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닌가 싶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묻는 것이다.
“너, 콜라야?”
콜라지? 콜라구나ㅡ 당연하지! ( ᐛ ) 봐봐, 여기, 이 쪽 팔꿈치에 보면 아직 붙여 놨었는데, 콜라가 준 반창고. 새슬이 다짜고짜 팔꿈치를 내밀었다. 그러나 해인의 시선에 팔꿈치에 붙어 있는 반창고따위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까 바다에 들어갔을 때 쓸려 가 버렸으니. 그러나 새슬에게 그런 것이 보일리가 없다.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 없어? 떨어졌나 보다. 아쉬워라.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겠지.
“헤ㅡ 콜라는 부회장이구나.”
높은 사람ㅡ( ᐛ )ㅡ 부회장쯤 되면 학생들 얼굴은 다 꿰고 다니는 거야? 자유부인 것도 알아? 정식 동아리도 아닌데에. 엄청나네, 부회장! 그런 걸 다 넣어 가지고 다니려면 머리 아프겠다. 새슬이 생글거리며 재잘거렸다.
“그러면 햇빛이 아깝잖아.”
이렇게 볕이 좋은데. 과연, 오늘의 일조량은 아주 좋았다. 평소에 새슬이 있던 곳에 비해 지나치게, 아주, 너무... 좋아서 그렇지. 그러나 새슬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 눈치였다. 자신이 좋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저기는, 파도가 안 닿잖아. 나는 파도랑 닿을 수 있는 곳에 있고 싶어. 그렇게 말하는 새슬의 발끝에 닿을락 말락, 파도의 손길이 가볍게 스쳤다가 빠르게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