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멀리하면서 하나하나 가까이하는 것보다, 모두 가까이 하다가 하나하나 멀리하는게 더 편하거든. 아. 그런 말 은근히 들어. 그럼 뭐 어때? 그게 나인데."
전혀 문제되는 거 없다는 듯이 엄지로 자신을 콕 가리키며 하늘은 태연하게 그의 말에 대답했다.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것으로 비난을 하지만 않으면 될 일이었다. 자신의 영역을 확실하게 하고, 그에 대해서 생각을 굽히지 않는 안 좋은 버릇의 발현이었다.
이어 들려오는 말에 하늘은 머리를 긁적이며 아차- 하는 소리를 내면서 웃음소리를 냈다. 확실히 밖에 들릴 정도였겠지만 진짜로 들은 이가 있구나 싶어 어쩔까 고민을 하나 곧 하늘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딱히 숨길 것도 아니었다.
"캠프파이어 때 포크댄스 할 때 연주를 맡기로 했거든. 그래서 그 관련으로 계속 연주했어. 이렇게 기껏 해달라고 하는데, 어설픈 곡을 연주할 순 없잖아? 그래서 오늘 하루 정도는 정말 연습을 했고 포크 댄스 전 날에 다시 좀 더 연주하면서 마무리를 지을거야. 교대해주는 이가 없으면 계속 내가 해야할테니, 마지막까지 제대로 하려면 연습이 필수거든."
다른 이들이야 있긴 하지만, 과연 자신과 교대를 할지에 대해선 하늘도 조금 회의적이었다. 그들도 모두 춤을 추고 싶어할테니까. 그렇기에 연주하는 이들은 언제나 마지막까지 남기 마련이었다. 모두가 춤을 추기 위한 무대를 유지하기 위해서. 눈에 띄지 않는 그 역할을 하는 것에 그다지 불만은 없는지 그는 뒷짐을 지며 세 걸음 앞으로 나아간 후에,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다들 기왕이면 재밌게 즐겼으면 좋겠어. 나는... 춘다고 해도 거의 다 끝난 후가 아닐까. 교대 같은 거 없을 것 같고. 딱히 불만은 없지만, 조금 아쉽긴 하네."
>>574 당연히 선착순이지. 원래 이런 건 다 그리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해. 아랑주가 돌릴 수 있을 때 나도 손이 빈다면 그렇게 돌려보면 좋을 것 같고 그게 안되면 그냥 내가 적당히 끄적끄적해볼게! 하지만 무리하게 돌리려고 한다 그런건 사절이니 돌리는 일상 두개에 집중하라구!
떠나갈 거잖아, 라는 질문이 입 밖으로 내어지지도 않았는데 대답이 돌아와버렸다. 하늘의 그런 삶의 태도에 문하는 문득 자신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긴 두 사람의 모습이 하늘의 위에 겹쳐지는 것을 보았다. 하늘에겐 그럴 의도가 없었겠지만 방금의 하늘의 말은 문하에게 있어 우회적이고 예절바른, 내 마음을 잠깐은 열어줄지언정 너를 담아주지는 않겠다는 포고령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가. 너도 그런 분류구나. 문하는 태연한 얼굴을 꾸몄다. ─익숙했다. 아니 오히려 하늘의 이런 취급은 그가 받는 취급들 중에서도 아주 온건하고 예절바르며 상냥한 축에 속했다.
아무렴, 비루먹고 야윈 더러운 들개를 누가 좋아해주겠는가.
다행히도 하늘이 자신과는 전혀 연이 없을 것 같은 낯선 단어를 꺼내주었기에 문하는 그리로 주의를 돌릴 수 있었다.
"포크 댄스...? 뭐야, 그게."
아니, 포크 댄스라는 단어 자체를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딱 그런 단어도 있고, 그게 춤의 어떤 종류를 가리키는 단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문하는 그 포크 댄스라는 게 무엇인지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캠프파이어에 포크댄스를 곁들이는 이벤트라니 문하에게는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뭔지도 모르는데, 포크 댄스."
그게 뭔지도 몰라서 문하는 하늘이 무엇을 아쉬워하는지도 짐작하지 못했다. 일단 하늘이 그 포크 댄스라는 것을 할 때 춤곡을 연주해준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어떤 이벤트이고, 왜 교대자가 없을 것이라는 게 아쉬운 건지... 문하는 그 까만 눈으로 어울리지 않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신의 말에 경아는 작게 웃음을 흘린다. 그리 말하는 도서부원들의 모습이 훤히 상상되었던 탓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기계도 아니고? 라던지, 저기 검색 코너 있잖아. 등 각양각색의 답들이 떠오른다. 그런 걸 보면 확실히 저 저신이 유별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확실히 그렇네."
결국 수긍하여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대단하진 않을지라도 별난 건 맞았으니까. 계단의 개수나 도서의 위치나, 사실 외울 필요성은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재밌는 일도 아니고. 아마 그런 건 괴짜나 나처럼 하릴 없는 사람들이나 할 테다.
"...그렇다면 좋겠네."
경아는 살포시 미소짓는다. 그 모습이 퍽 따스하다. "별 것도 아닌 짧은 말이지만, 다른 사람이 그걸로 기뻐진다면 아무래도 좋은 일이잖아." 어깨를 으쓱이며 작게 덧붙인다. 애초에 그리 깊이 아는 사이는 아니었고, 학교의 소문을 주의깊게 새겨듣는 편도 아닌 경아가 당신이 피아노를 치는지 알 리는 없다. 당신을 의식해서 한 말이 아니라 평소의 생각을 말로 옮긴 것 뿐일 것이다.
당신에게서 책과 DVD를 건네받은 경아는 빠른 손길로 바코드를 찍고 대출을 완료한다. 다시 당신의 손에 돌려주려 책과 DVD를 내민다.
"기한은 일주일, 연장은 한 번. 알고 있지?"
확인하듯 가볍게 묻는다. 몇번이라도 빌려본 사람이라면 모를 리는 없겠지만, 일종의 의무적 절차다. 잠시 컴퓨터를 딸각거리며 정리하던 경아는 질문에 "응?"하고 이야기하며 고개를 든다.
"나야...이것저것 보는 편인데,"
볼가를 긁적이며 머뭇거린다. 그새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이런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경아는 늘 고민했다. 한 가지만을 고르기에는 아무래도 아까운 마음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경아는 대부분 지금처럼,
"아. 그거 말이지. 이건 동영상 사이트로 보는게 나을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페어로 춤추면서 밤을 노는 그런 건데..."
그의 속마음은 당연히 눈치챌리가 없는 하늘은 태연하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후에, 동영상으로 남녀, 혹은 남남, 혹은 여여가 한 페어가 되어서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축제때 간혹 볼 수 있으며, 누군가에겐 두근거릴지도 모르고, 누군가에게는 그냥 한 순간의 추억, 누군가에게는 한 순간의 흑역사가 될지도 모르는 그 동영상이 그의 눈에 잘 들어오도록 일부러 거리를 살며시 좁히다가 영상이 끝날 무렵, 하늘은 주머니 속으로 핸드폰을 쏙 집어넣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춤추는거지. 춤추는 거. 영화나 그런데서 한번씩 나오는 거 있잖아? 막 멜로 영화 같은 것에서. 아무튼 한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곡을 연주하는 이로서 내가 선정된거고."
괜히 뒷짐을 지며 하늘을 바라보면서 땅바닥에 발을 긁던 하늘은 작게 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역시 이런건 참여하고 싶은데 어찌되려나.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냐아냐아냐아냐. 이런 걸로 아쉬워하는건 나답지 않아. 추건 못 추건 열심히 곡 연습에 집중할수밖에 없겠어. 아, 참여는 자유라고 하더라. 넌 어쩔래? 추고 싶은 이 혹시 있어?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자신은 별 상관없는 이야기. 허나 역시 다른 이들에겐 역시 이럴 때 친해지고 싶은 이와 친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볕에 반짝이는 모래알, 청량한 파도소리, 여기저기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아이들. 그 가운데에 새슬이 있었다. 즐거울 것 같아 분위기에 휩쓸려 얼떨결에 따라온 참이었다. 그러나 해외도 아닌 한국의 해변에 새슬이 오를 만 한 나무가 있을 리는 없겠고, 해변가를 떠나 어딘가로 모험을 떠나볼라치면 선생님들의 잔소리가 귀에 거슬리고, 조금 깊은 바다로 들어가보려 하면 안전요원들의 호루라기 소리가 귓전에 때려박힌다.
결국 새슬이 선택한 것은, 적당히 축축한 모래바닥에서 작은성 따위를 만드는 것이었다. 새슬이 땡볕 아래에서 한참동안 투덕이며 만들어낸 그것은 성이라기엔 굉장히 투박하고 볼품없었으나, 어쨌든.... 성이었다. 하필이면 높게 친 파도가 몰려와 그것을 쓸어내갈때까지는.
앗, >:ㅁ...! 새슬이 작게 외마다 비명을 질렀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작은 모래언ㄷㅡ아니, 성은 조금 솟아오른 모래더미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런, 나쁜 파도네. 그러나 짜증을 내는 기색은 없다. 대신에 자연스럽게 보내주었을 뿐이다. 안녀엉ㅡ 하고. 그러고 나니 더 이상 뭘 만들 기분도 나지 않아서, 새슬은 그 자리에 철퍽 주저앉았다. 그리곤 가만히 눈 앞의 바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부서지는 파도, 수면에 반짝이는 햇빛조각, 그런 것들을.
"제가 보장할게요. 제 보장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진 모르지만 적어도 사람 한 명 분의 가치는 있겠죠. 아마."
한 번 더 괜히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했다. 적어도 누군가, 정말로 이 장소 중 한 명은 그렇게 생각했을테니까. 물론 그 존재에 대해서 굳이 입에 담진 않으며, 기한을 이야기하며 전해주는 DVD와 책을 그는 받아들였다. 처음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자주는 아니나 한번씩 와서 이용했기에, 당연히 그 기한은 알고 있었고 잊은 적도 없었다.
"알고 있어요. 2학년인데 모르면 그건 그거대로 좀 그렇잖아요?"
물론 도서실을 이용하지 않는 학생은 모를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겐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괜히 소중하게 DVD와 책을 힘을 주어 떨어뜨리지 않게 잡았다. 물론 망가지거나 구겨지지 않게 조심조심하면서.
좋아하는 장르라는 말에 하늘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뮤지컬이나 영화가 된 작품이 제일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보다보면 괜히 원전도 읽고 싶고 그렇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제 취향보다는 선배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물었는데."
좋아하는 장르를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취향에 걸맞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그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다 그는 그냥 주제를 확실하게 정하기로 했다. 그러면 그녀의 답도 편할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영화화된 것들 중에서 선배는 뭘 제일 좋아해요?"
/어서 오라구! 경아주! 카페 당첨 축하해!! 지금은 바다 이벤트를 하고 있으니 >>10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
본래라면 학교에 있어야할 시간,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에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학생들의 쌓인 스트레스를 원활하게 풀게하고자 신청자에 한해서 바닷가로 보내주었던 것이다. 나도 이곳을 내 의지로 왔다면 정말 즐기고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학생회 부회장이니까 학생들 통솔할겸 다녀오라는 지시가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경비 같은 것들은 다 대주겠다고하니까 거절할 명분도 없었고. 덕분에 바닷가에 와있는 동안엔 부득이하게 아르바이트를 갈 수가 없어졌다. 점장님이 이해해주셔서 망정이지, 아니면 진즉에 짤렸을거다.
" 더운데 들어가서 잠이나 잘까. "
같이 온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바깥으로 나오긴 했지만 친구들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싫증이 나버려 혼자 다닌다고 해버리고선 지금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다. 추운건 정말 못버티지만 더운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서, 더이상 볼게 없다면 숙소로 돌아가버리려고 주변을 둘러보던 그때 눈에 띄는 학생이 하나 보인다. 분명 쟤는 ...
" 안녕? "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여학생에게 말을 건다. 바로 앞이 작게 모래언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봐서는 파도가 거기 있던 무언가를 쓸어가버린 것이겠지. 맑아보이는 인상에 정말 가벼워보이는 체구를 가진 이 학생의 이름을 난 알고 있었다. 그야 잊기엔 좀 인연이 깊었으니까. 분명 이름이-.
" 유새슬, 이라고 했지? "
방글방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옆에 앉는다. 지난번 마니또 이벤트때 내가 챙겨준 학생이었다. 물론 나는 돈이 궁해서 챙겨줄게 먹을 것밖에는 없었지만 ... 본인이 만족했다면 정말 다행일텐데. 그렇게 슬쩍 훑어본 몸에는 여기저기 반창고가 붙어있었다. 여전히 자유분방하게 이곳저곳 다니는구나. 나는 주머니에서 항상 들고다니는 사탕을 여러개 꺼내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