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엽긴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말을 걸든, 슬혜가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면 나는 아마도 오늘처럼 슬혜를 반겼을거야. 그게 언제가 되었든 말이야. "
슬혜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슬혜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던 시아는 이내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술을 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고민거리가 아니라는 듯 망설임이라곤 단 한점도 보이지 않는 대답이었다. 언제라도 슬혜가 자신에게 다가와 주었다면 자신은 어떻게 행동할지 정해진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분명 오늘의 자신과 큰 차이점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 오늘처럼 미소를 지으며 ' 잘 지냈어? ' 하고 인사를 건내겠지.
" 아하하.. 그래도 슬혜한테는 웃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왠지 내가 울면 슬혜가 아파할 것 같단 말이야. "
물론 오늘처럼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면 울지도 모르지만.
시아는 그렇게 덧붙여 말하며 수줍게 웃어보인다. 괜스레 수줍어지는 것은 자신의 입술에 장난을 치던 슬혜의 눈에 한순간 불꽃이 일렁이는 것이 보인 듯한 느낌 탓이었다. 무언가 슬혜의 안에서 어떤 충동이 일어난 것만 같은 그런 느낌. 하지만 그 충동이 전혀 자신이 꺼릴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왠지 느낌으로 알 수 있을 것 같은 시아였다.
아무튼 용기를 내어 몸을 움직인 시아는 서로의 위치를 바꾸었고, 그 탓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는 슬혜였지만, 자신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을 확인하곤 시아 역시 안도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너는 웃는게 가장 예뻐
" 그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야, 슬혜야. 네가 바라는 건 내가 바라는 것.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줄거야. 저 하늘의 별을 따다달라고 하면 어떻게든 노력해볼게. "
자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미소를 머금은 슬혜의 말에 애교스럽게 머리를 비비적대던 시아가 눈을 게슴츠레 하게 뜨고선 작게 속삭여 답을 돌려준다. 무엇을 하려고 하던, 무엇을 바라던 자신은 그것에 부응하려고 노력할거라고 제대로 말해주고 싶은 시아였다.
" 적어도 나한테 뭔가를 하더라도 망설일 필요는 없어, 슬혜야. " " 네가 무엇을 하든 난 절대로 널 밀어내지 않을테니까. 겁 먹을 필요도, 망설일 필요도 없어.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아. 사람은 언제나 실수를 하는 법이니까. 너도 나도 언제든 실수를 할 수 있는거니까. 그러니까 겁 먹지 않아도 괜찮아. "
시아는 차분한 미소를 입가에 건 슬혜의 뺨을 간질거리게 손가락 끝으로 매만져주며 조곤조곤 속삭여준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는 말에 하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그저 고개를 가볍게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물론 스스로도 자신의 연주가 뒤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자신이 목표로 하는 그 곳까진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당당하게 늑대와도 겨룰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자신에겐 너무나 필요했고, 적어도 지금의 자신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늑대로서 이름을 떨치는 피아니스트와 비교해서 더 높은 평가를 받으려면 지금보다 얼마나 더 연습을 해야할까. 그 막막함이 살며시 느껴졌으나 하늘은 다시 고개를 저으면서 그 생각을 저버렸다.
피아노 끝자락의 건반을 두어번 치는 것을 바라보던 하늘은 아주 조금 멜로디가 이어가듯이 한 가닥 정도를 즉흥적으로 친 후에 살며시 손을 아래로 내렸다. 물론 그 음이 깔끔하게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즉흥적이었으니까.
"걱정까지는 조금 애매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죠. 나쁜 쪽이 아니라 걱정과 가까운 쪽으로 말이에요. 설명이 애매하네요. 그러면 걱정하는 것으로 쳐도 괜찮아요. 조금 다르지만 비슷하니까."
결국 따지고 보면 오늘 자신이 음악실을 쓰는 것 때문에 그녀의 원래 하려던 일정이 조금 흔들린 것은 사실이라고 하늘은 생각했다. 물론 상대에게서 저렇게 말이 나왔으니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나 사람의 마음이 어디 마냥 그렇게 쉽게 돌아가던가.
"방해가 된다거나 불편하면 바로바로 말하니까 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할 일은 없어요. 무엇보다 혼자서 연주하는 것보다, 들어준 사람이 있으니까 좋고요. 사실 피아노 곡을 굳이 일부러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이 없잖아요? 무엇보다 듣고 싶으면 동영상 사이트라던가 많기도 하고. 그래서 들어줘서 고마워요."
작은 미소를 머금으며 하늘은 두 손을 살며시 건반 아래에서 내린 후, 그제야 고개를 돌려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역시 고3이 되면 많이 피곤하고 그래요? 듣기로는 정말로 힘들다고 하지만, 아직 실감은 잘 나지 않네요. 이렇게 쉬러 오는 선배도 있을 정도니 그건 틀림없는 것 같지만요."
/갱신이야! 다들 안녕안녕이다! 물론 이 레스를 남기고 나는 바로 밥을 먹으러 갈테니 인사 안해도 된다!
습관 같은 사과 뒤로 장난이 따라붙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농담을 즐기는 편은 아닌데, 누르는대로 족족 반응이 나오니 괜히 짓궂게 굴고 싶어졌다. 그래도 선 넘을 생각은 없으니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한다.
"편하신대로."
엄청나게 나이차가 나는 것도 아닌데 존댓말이 뭐가 중요할까. 사하에겐 호칭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악의 갖고 부르는 <야>나 <너> 아니고서는. 오히려 생각보다 정중하게 불러준다 싶었다. 선배라니, 당장이라도 손에 사탕 하나 쥐여줘야 할 것 같다. 슬프게도 지금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지만. 가벼운 악수 뒤 손을 놓았다. 예상 외로 부드러운 악수였다. <나는 3반.> 연호의 말에 짧게 덧붙인다. 잠깐 생각하더니 한 마디 더 하며 웃었다. <누가 괴롭히면 이르러 와.>
"비타민 D가 중요하대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공부하기 싫어서 나온 거지만. 근데 맨날 앉아 있기만 하면 못 써. 사람이 햇빛도 쐬고 좀 걷기도 해야지. 그래야 공부도 더 잘 되고 성격도 안 나빠지고.
"너는 왜 그렇게 뛴 거야? 누가 쫓아와?"
질문에 대답 다 하고 나니 궁금해졌다. 연호의 뒤쪽을 흘끔대며 묻는다. 쫓아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운동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