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부터는 얄짤 없을 거라며 의식이 제대로 있는 것 같지도 않은 다림을 보고는 훈계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환자에게 무슨 말을 하고있는 걸까... 빨리 데려다줘야겠다.
" 들쳐메는건 안 되니까. "
그러다가 그 상태로 기절해버리면 정말로 납치범이 되어버려...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제쳐두고, 어디 가냐는 말에
" 보건실. 이 상태로 기숙사 가면 악화될지도 모르니까? "
조금 걱정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으려나. 힘이 없어 자신을 붙잡고 있진 않았지만, 다림이 워낙 가벼웠으니 딱히 상관은 없었겠지. 하여튼, 왜 하필 그게 머리에 맞아가지고... 는 머리가 아니었으면 장기 파열... 같으 엔딩이였으려나. 다림의 몸을 생각해보면 그쪽이 더 신빙성 있다. 톡 치면 부러질 것 같았으니.
하여튼 얼마 안 걸리는 새에 보건실에 도착했고, 지훈이가 다림이를 보건실에 눕혀주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 되었을지도...?
미나즈키는 약 2시간하고도 37분째 보건실 천장 타일의 무늬를 노려보고(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올려다봐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있었다. 두통이나 어지럼증은 이제 꽤 나아졌지만 애매하게 몽롱한 기분이 영 가시지를 않았다. 평소였다면 우동이라도 먹으러 나가거나 했을텐데 외출도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도 자제하라는 얘기를 들은 이상 그럴 수는 없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드디어 천장에서 눈을 떼고 자신의 빈약한 가디언넷 연락처 목록을 살펴보던 미나즈키는 다림이 접속중이라는 걸 발견하고 먼저 톡을 보내봤다.
[뭐 하고 있어] [나 심심해]
평소였다면 절대 보내지 않을 내용이었지만 지금 상태에 그런 걸 알아챌 정신이 있을 리가 없었다.
가디언넷에 접속해서 이런저런 것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일단 은근히 정보같은 게 있기도 하고요
"의념속성 절단이냐.. 분위기 절단냈네..." 그런 것도 있지요. 그러다가 깜박이는 것에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온 건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합니다. 하쿠야 씨?
[아. 안녕하세요] [저는 잠깐 가디언넷 돌아보던 중이었어요] 심심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조금 의외기는 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미묘한 긍정의 다림은 천천히 연락을 하나 더 보냅니다. 가디언넷에 올라온 깔깔유머집을 보고 있던 다림이 그걸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한 점은 이해해 주세요(?)
[대화 정도는 나눌 수 있어요] [농담 같은 건 잘 못하지만요?] 어쩐지 묘한 미소를 짓는 게 생각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절히 대화를 나누며 이런저런 것도 알아보고(말이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선호하는 걸 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라는 그것이다) 즐거운 이야기나.. 권유같은 것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다림은 답신을 기다렸습니다. 그것에 돌아온 것이 이런 상황에서는 처음 해본다.. 라는 것이었다는 게 약간은 문제였지만
"음?" 가느다란 손가락이 움직입니다.
[이런 상황이 어떤 것인지는 저는 말씀해 주시지 않는 이상 잘 모르겠지만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셨던 걸까요?] [(걱정 이모티콘)] 하긴. 다림이 하쿠야가 시체와 칼날의 노래 관련 포교서를 읽고 뻗었다는 사실을 알겠습니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서 품에 안은 쿠션을 조금 더 꼭 끌어안았습니다. 일단 문자 자체를 못하는 상황은 아니니 괜찮겠지만요...
도서관에 누나 졸업앨범을 찾으러 갔다가 새 책이 들어왔다는 소식에 하나 읽어봤는데 그게 사실 이상한 책이어서, 같은 말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미나즈키는 잠시 고민하다가 지금 상황을 최대한 별 일 아닌 것처럼 요약해서 설명해보기로 했다.
"큰 일은 아니면 좋을 텐데요. 그렇지요?" 중얼거립니다. 어떤 일이 있어서 이런 상황이라고 표현하는 걸까.. 하고 답변을 기다리다가 온 것을 봅니다. 음... 그러니까 2시간 째 천장 타일과 눈싸움.. 누워 있다는 것은 확실한데요. 거기가 보건실이냐. 기숙사냐. 아니면 다른 어딘가냐에 따라서 대응은 달라지겠지만요.
[...] [2시간..아니 2시간 43분이니까 거의 3시간 가까이나 누워있을 정도면..] [음. 캐묻지는 않을게요.]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는 손가락으로 톡톡.. 하고 화면을 건드리다가 한 문장을 더 보냅니다.
[정말로요. 하쿠야 씨가 청월생도인 만큼 4월과 5월 시험까지 도외시하려고 게이트 다이빙을 하셔서 손가락만 까닥할 수 있게 붕대가 둘둘 감긴 채로 보건실에 계신다 해도 이해해 드려요?] 이건 안 보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문장이었지만. 짖궂은 표정의 이모티콘이 하나 보내지는 걸 보면 조금 놀리는 모양입니다.
>>9 >>10 이번 첫사랑 이야기는 굉장히... 정석 중의 정석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이렇게 얘기를 듣고 있자니 뭔가 다림양께선 정말로 그나잇대에 걸맞는 연애를 하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얘기를 들었을 때 들은 느낌으로, 저희가 들은 것과 실제는 다를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답니다. 제 설명이 부분적으로 많이 잘려나간 것처럼 다림양의 설명도 그러하였으니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만, 저는 이 연애에서 다림양의 감정이 어떠하셨는지를 알기가 어려웠답니다? 정말로 상대에 대한 감정이 정확히 어떠하였는가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림양의 첫사랑분께서는 굉장히 적극적인 분이셨었군요…..뭔가 부럽답니다….🎵 “
하지만 굳이 그걸 티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림양의 말씀을 경청하였습니다. 조용히 그저 듣고만 있다…. 얘기가 다 끝날 무렵에 손을 꼭 모으고 말을 꺼내려 하였답니다.
“후후🎵 뭔가 말이어요~ 이렇게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뭔가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 같답니다~? 저는 말이어요, 뭔가 이런 정석적인 연애 같은게 굉장히 로망이고 그런지라,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굉장히 두근거리는 것이와요. 쉬고 있던 연애를 다시 하고 싶을 만큼 말이어요🎵 “
뭔가 제가 지금 방금 전까지 노곤하여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데 이정도 얘기 한다고 제 또다른 정체가 들키지는 아니하겠지요?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이정도야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좋아요, 넘어가도 괜찮을겁니다.
“참, 맞아요! 저희 질문을 해야지요! ”
하고 운을 떼며, 저는 조용히 다림양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좋아요. 그럼 이제 질문 시간 시작이어요!
“혹시 말이어요, 다림양. 괜찮다면 첫사랑이었던 분과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던가를 들어보아도 괜찮을까요~? “
질문은 역시 이정도면 적당하겠지요. 궁금한 것은 많지만 저만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양도 질문하실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되도록이면 무난한 질문으로 골라 가보도록 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