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는 다른 기색을 띈 사라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을 건내는 시아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단호함, 그리고 나직한 그 목소리는 꽤나 낯설어서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알 것 같았다.
" 네가 불안하다면, 네가 마음에 들지 않다면 같이 가자. "
시아는 아까처럼 상냥하게 손을 내밀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가 그러고 싶다면 나는 얼마든지 해줄거야. 네가 다시 코피를 흘리지 않는다면, 평소와는 다르게 기운 없이 주저 앉지 않을 수 있다면 난 무엇이든 해줄 수 있어. 그 마음만큼은 외로움이 사무치는 달 아래에서도 변함없다고 자부할 수 있어.
" 달이 밝아, 사라야. 그리고 지금도 너와 함께라서 기뻐. 매번 하는 이야기지만. "
잠시 고개를 올려서 달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내려 널 바라보며 말해. 혀를 이용해 축축하게 만든 입술이 기분 좋게 움직여.
이대로 도망가버리는건 아닐까. 늑대도, 개도 되지 못한 나를 환멸하는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주원의 생각과는 달리 슬혜는 몸을 일으키곤 주원에게 다가왔다. 체념한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주원은 슬혜가 다가오는 낌새가 느껴지자 고개를 든다. 체념과 포기에 색바랜 그 눈빛은 시트러스향이 가까워 올수록 다시 빛을 되찾고 이어질 일을 상상하지도 못한채 그저 침을 꼴깍 삼킬 뿐이었다.
슬혜는 방금 주원과 했던 것처럼. 그러나 그것보단 부드럽고 상냥하게 주원의 얼굴 양 옆의 벽을 짚곤 천천히 내려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곤 부드럽게 그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주원을 붙들었다.
"그건."
무엇이 미안한 것인지 주원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고통을 준 것 때문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끝까지 행하지 못한 망설임을 보인 것에 대해서인지. 둘 다겠지.
그녀의 미소는 마치 주원을 상냥하게 위로하는 것 같으면서도 단순한 위로에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하게 하는, 위험함을 감춘 미소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내가 되먹지 못했다는거겠지. 제대로 어금니를 박아넣지 못할 정도로."
주원이 그녀에게 말 한 것처럼, 아마 스스로 실망시켰다. 라고 주원은 생각했다. 어느 쪽으로도 되먹지 못했다. 완전히 그녀에게 손대지 않는 것도. 그렇다고 끝까지 밀어 붙이는 것도 하지 못한채.
그러나 슬혜는 그것에 대해 책망하지 않고 위로해주듯이 부드러운 그 뺨을 주원의 아직 상기된, 열 식지 않은 뺨에 갖다댄다. 슬혜의 차가운 뺨이 주원의 마냥 뜨거워진 뺨을 차갑고 상냥하게 감싸안는다. 그 부드러운 차가움은 열기와 증기 가득한 주원의 머릿속을 식혀주었다.
이어 슬혜는 어깨를 쥐고 있던 두 손을 점차 주원의 목으로 좁혀오더니 그 목을 양 손으로 감싼다. 이대로 힘을 주면 주원의 숨이 막힐지도. 그럼에도 주원은 그 행동을 제지하기는 커녕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 어떤 행위라도 달콤하게 받아들이겠다는듯이.
슬혜는 목 뒤의 네 손가락의 손톱을 세워 점차 힘을 넣어가기 시작했다. 주원이 그녀의 목덜미를 깨물고 이빨로 흔적을 만든 것과 같이.
"언제든지."
주원은 그렇게 말한 뒤 두 팔을 들고 천천히 벌려 그녀가 읽을 수 있는 움직임으로 보란듯이 부드럽게 그 팔을 좁혀 그녀의 등을 감싸려 했다. 만약 그녀가 거부하지 않는다면 그리곤 천천히 그 팔을 자신 쪽으로 당겨 슬혜를 가까이, 조금이라도, 조금씩이라도 더 가까이 당길 것이다.
"나중일은 어찌되든 좋아."
"지금은 그저. 네가 필요해."
본디 생각에서 끝났어야 할 그 대사들을 그녀를 가까이 끌어안으면서도 입 밖으로 낸다. 끌어안던 팔은 숨쉬기 어려워지기 직전에 멈춰 꼬옥 끌어안은채로, 그리고 그의 숨결이 슬혜의 귓가에 닿는 곳까지 끌어안았다.
비랑은 칭찬으로 부끄럽게 만든다는 전략이 조금 약빨이 부족했는지 실패로 끝난 걸 아쉬워하면서도, 하늘이의 흐물한 모습을 보니 그 아쉬움도 날아간다는 듯한 표정입니다. 싫은 사람에게 억지로 아부하는 것도 아니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한 것이잖아요? 기분이 나쁠 수 없는 일이랍니다. 입술 떨리는 게 다 보인다구요!
명찰 관련한 얘기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에 비랑도 금방 의식의 저편 너머로 날려보냅니다. 하늘이랑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잊어버린 흑역사 노래 관련된 기억이 오들오들 떨면서 이쪽으로 날아온 명찰 관련된 기억에 손을 흔드네요. 언젠가 이 순간을 다시 회상하게 된다면, 그때는 별 감정 없이 떠올릴 수 있게 될 겁니다.
"양심없게 여러 곡 해달라고 하진 않지!"
한 번 정도라면 괜찮다고 말하는 하늘이의 말을 듣고 얼굴이 확 밝아진 비랑이 책상 위에 슬쩍 두 팔을 올리려 하며 고개를 들어올립니다. 그리고 하늘이의 말을 찬찬히 들어본 다음 대답합니다.
"이 노래인데 말야..."
핸드폰을 꺼내서 아까 하늘이가 보여줬던 동영상 사이트와 같은 사이트를 켭니다. 그리고 자판을 톡톡 두드리더니 한 영상을 재생하네요. 브레드런의 인기 캐릭터 중 하나의 테마곡을 변주한 게임 OST입니다. 시계와 시간을 테마로 해서 몽환적이고 불안한 느낌을 살렸네요. 일단 말하긴 했는데 딱히 신청할 만한 노래가 생각나지 않아 게임에서 들었던 좋은 노래를 가져온 듯합니다. 검색 시간이 조금 길었으니까요, 급한 티가 날 수밖에.
"음악실 인원이 언제 비는지 정도는 아니까, 비는 시간마다 쭉 음악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거지?"
당연하지만 비랑은 합창부니까요. 방음 차원에서도 음악 교사에게 허락을 맡아 음악실에서 자주 부활동을 하기도 했을 겁니다. 음악실이면 다른 악기부 아이들과 합을 맞출 수도 있고요.
"사실 너네 집에 놀러가서 듣는 게 제일 확실한데, 아직 그러기엔 부담스럽잖아."
집은 프라이빗한 곳이니까요. 당장 비랑이도 당장 누가 기숙사 방으로 놀러온다 하면 받아줄 순 없을 겁니다. 안 치웠으니까요. 손님맞이는 중요합니다.
물론 특정 누구라고 하진 않으나, 적어도 비랑이 알 만한 이들은 아니었다. 어쩌면 꽤 옛날의 기억일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그냥 대충 흘러간 그런 느낌일지도 모른다. 확실한건 그런 경험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었는지 하늘은 분명하게 거론했고 괜히 미소를 내비쳤을 뿐이었다.
아무튼 곧 비랑이 들려주는 곡을 들으면서 하늘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몽환적이고 불안한 느낌의 곡. 어쩌면 조금 연습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하늘은 가만히 손을 푸는 모습을 보였다. 악보가 있고 평소에 자주 연습했다면 또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조금 연습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정말로 음악만 듣고 그게 무슨 음인지 알 정도의 절대음감의 소유자가 아닌만큼. 자신이 늑대라면 과연 어땠을까. 조금 어두운 생각을 하기도 하다 곧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하늘은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그래? 하지만 꼭 빌 때 있는 것은 아니라서. 그러면 다음에 음악실에서 사적으로 볼 수도 있겠네. 그때까진 연습을 해볼게. 일단 지금 곡은 내가 친 곡이 아니라서 조금 연습을 해야할 것 같거든. 그리고 우리 집? 그건 그렇긴 하네. 다음 기회에. 그건."
확실히 지금은 조금 애매하다고 생각을 하며 하늘은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언젠간 초대할 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하늘은 곧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혹시 알아? 정말로 초대해줄지. 그게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내키면 그땐 꼭 초대해줄게. 와도 크게 별 건 없지만 말이야. 그래도 개인 연습실 정도는 있어. 오로지 내 연주만을 위한 공간처럼 말이야."
나도 알아. 지구는 옅게 웃었던 것 같다. 새슬은 기분이 몹시 상했는지 있는 힘껏 품에서 빠져 나가려 하는데도 지구는 꿈쩍하지 않으며 그녀가 힘이 빠져 포기할 때까지 그렇게 끌어 안고 그녀의 등을 느릿한 템포로 다독였다. 그녀가 진정할 수 있도록. 어쨌든 먼저 지치는 쪽은 내가 아니었다. 그리고 또 이게, 바로 이 최악의 방법이 그가 그동안 사고를 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바로 사냥감을 몰아 넣어 애원하고 매달리게 만들어 놓고, 그걸 뜻대로 이루어주지 않았을 때 사냥감의 갈곳잃은 애정과 원망, 배신감은 지구에게 있어서 높은 포만감을 선사해 주었다. 정말이지 최악, 악취미 중 악취미. 그는 게걸스럽게 물어 뜯는 쪽이 아닌 말려 죽이는 쪽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최상위 포식자. 그런 짐승에게서 나오는 빌어먹을 여유. 어쩌겠어, 세상이 정해 준 불리한 놀이인데. 나름 그녀가 다치지 않게 배려해서 포식했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그녀가 토라져 버린 것은 그런 이유 따위가 아니었겠지. 하지만 보름달의 늑대에게 양이란 그런, 자신을 만족하게 하는 매개에 지나지 않았으니 너무 많은 것을 바란 네 탓이야. 진실은, 결코 새슬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것 정도는 머저리가 아닌 이상 알 테다. 지구는 단지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었다. 혹은 그 이하거나. 새슬이 싫어하든 말든, 울거나 자신을 때려도 지구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평온한 얼굴로 새슬의 두 무릎 아래에 팔을 넣고, 다른 한 팔로는 그녀의 등을 받치고 번쩍 안아 들었다. 그녀의 몸집은 몹시 작았고, 또 솜사탕처럼 가벼웠으니 그런 토끼가 발버둥을 쳐봤자 별 타격을 받지 못했다. 어차피 야자는 끝난지 오래고, 시간이 꽤 지났으니 다른 사냥꾼에게 내 사냥감이 물리지 않게 지켜는 드려야지. 제멋대로인 제 행동에 당황스러울 새슬의 말을 깡그리 무시하다
"어디로 가?"
평소의 무정한 얼굴과 답지 않은 다정한 목소리로 그것만을 물으며 지구는 익숙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다 새슬과 눈이 마주치면 대꾸는 하지 않고 조용히 웃어보였다. 그래봤자 새슬에게는 이제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만. 어차피 못 벗어날거면, 얌전히 납득하고 착하게 굴어줬으면 좋겠다고.
"자꾸 그러다 진짜 잡아먹혀."
그래서 낮은 목소리로 그리 읊조린 뒤에야 지구는 보다 편히 목적지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막레입니다! 반응 레스 달으셔도 상관없을 것 같긴 한데 아무튼 10시 세이프 하겠습니다! 지구가 정말 제멋대로라 많이 당황스러우셨을텐데 템포 따라와 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새슬주ㅜㅜ 새슬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돌리는 내내 지구주는 죽어갔구요.. 참느라 힘들었고 또 무척 재미있게 캐입해서 돌릴 수 있었습니다 새슬이와 이벤트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새슬주 혹시 불편하셨던 점 있으셨으면 언제든지 부담없이 찔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