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가 과자를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에 비랑은 안심하며 과자를 꿀꺽 삼킵니다. 학교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 사이에 오가는 것 중 제일 잘 통하는 게 먹을 거지요. 하늘이는 이 우호의 제스처에 응했음이 틀림없습니다. 과자 씹는 소리가 둘밖에 없는 교실을 채워갔을까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책상을 살펴보는 하늘이를 보며 비랑이도 뭔가 너무 어렵게 생각했나? 싶은 마음이 폴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쪽팔린 노래 들킨 것쯤이야 이제 별 거 아니게 느껴지기 시작했으니까요.
"대단하다. 완전 전문 피아니스트 같아. 대회 같은 데 나가면 클래식을 쳐? 수상한 적도 있어?"
콩쿨이라는 말도 듣긴 했지만 음악 관련 행사라는 것밖에 비랑은 모르지요. 그 대신 대회라는 말에 반응해서 반짝거리는 눈으로 하늘이를 쳐다봅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옷단정을 하는 모습마저 왠지 멋있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늘이의 말을 들으면서 내심 신기하다고 느끼던 비랑은 질문이 들어오자 대답했습니다.
"난 뭐, 요즘 하는 게임은 디저트 크러쉬나 브레드런 같은... 잘 하진 않지만 배고플 때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라서 자주 하는 편이야."
뭔가에 집중하는 건 배고픔을 잊기 쉬우니까요. 그나저나 비랑이 언급한 두 가지의 게임은, 흔히 말해서 과거의 영광이란 게임이네요. 과거 국민 게임 같은 자리에 오르거나 적어도 누구나 알 만한 게임이었지만, 지금 한다고 하면 "너 아직도 그거 하냐?"란 소리를 들을 만한 게임입니다. 유행했던 이유는 있겠지만요. 디저트 크러쉬는 게임 화면에 있는 디저트를 움직여 같은 종류의 디저트를 여러 개 모으면 터지면서 점수가 되는 퍼즐 게임, 브레드런은 여러 종류의 빵 캐릭터를 써서 달려서 오븐에서 탈출하는 게 목표인 러닝 액션 게임이라는 모양이에요.
"인터넷에 피아노 커버 노래가 많긴 해도 막상 현실에서 피아노 하는 애들 보면 다 클래식 할 거 같던데. 게임 OST나 영화 OST도 좋아하는구나."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비랑은 하늘이를 보며 웃습니다. 좀 더 친밀하게 느껴질 것 같은 느낌이에요. 고민하던 비랑은 이 기분에 맡겨서 이름을 모른다는 걸 이실직고하기로 했습니다. 벌써 잘못했을 때 하는 표정을 장전하고 있네요.
"전문 피아니스트는 아니야. 아직 한참 멀었는걸. 대회에 나가면 아무래도 클래식을 많이 치게 되더라. 아무래도 그쪽으로 조금 무게가 실리는 것도 있고 그래서 말이야. 수상이야 몇 번 있어."
조금 쑥스럽다는 듯이 그는 괜히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면서 비랑의 물음에 대답했다. 물론 좋아하는 것은 클래식이 아니라 다른 쪽이었으니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나, 요구하는 것에 맞춰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곧 표정을 관리하고 정리하면서 하늘은 비랑이 말하는 게임이 뭔지 알 것 같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나 두 개 다 알아. 브레드런은 나도 가끔 하는걸. 물론 요즘은 뭔가 되게 캐릭터가 늘어난 것 같아서 정신이 없지만 말이야. 집중해서 하진 않고 그냥 했다가 껐다가 했다가 껐다가를 반복하는 것 같아."
괜히 신이 나서 미소지어 이야기를 이어가는 도중, 자신의 이름을 묻는 것에 하늘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비랑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결국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는 자신의 교복에 달려있는 명찰을 손으로 가리켰다.
"강하늘. 내 이름이야. 이름을 기억 잘 못하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다음엔 기억해주면 고마울 것 같네. 정 기억 안 나면 이렇게 명찰을 보면 이름이 쓰여있으니 확인하는 것은 어떨까 싶어."
정말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과자 하나를 천천히 씹으면서 괜히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참고로 의외로 클래식 말고 다른 곡을 좋아하는 이들도 많아. 뉴에이지 계열이라던가, 커버곡이라던가. 물론 클래식은 진지하게 이 길을 걸으려면 배워야하고 칠 줄 알아야 하지만, 그게 꼭 전부는 아니거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 적어도 난 커버 곡 취향쪽이라서."
너가 웃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알 것 같기도하고 여전히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알았다면 너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겠지. 하지만 그대로 끌려와서 안기는 이유는 너가 이런 상황에서 자존심을 들먹일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예전과 같이 감미롭게만 들려왔다.
" 그래 그건 맞네. "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도. 역시나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으면서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지금 굶주려있는건 나라는 것을 나도 그녀도 확실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무얼 했다고?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랬을 뿐인데. 안개가 낀 듯 온통 희뿌연 머릿속에서 작은 비명이 부서져 울렸다. 무언가 중얼거리려는 입술의 움직임은 고작 작은 손가락 하나에 가로막혔다. 시도되기도 전에 짓밟혀버린 의미없는 저항. 짓씹힌 입술이 부어 붉은기가 비치기 시작했으나, 마치 고통이라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몽롱하게 풀린 눈을 내리깔았다.
늑대에게 별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저 다급한 숨소리만이 그것을 대신할 뿐이었다. 분명히 시리게 느껴지는 색인데도 발을 담근다면 델 것 같은 시선. 웃지 않는 얼굴. 잘게 떨리는 눈동자에 열기가 옮기 시작했다. 가까워지는 거리, 앞으로 몇 cm? 이제까지 아무도 도달한 적 없었던 곳까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돌파당한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두 뺨을 차갑게 식혀 주는 것은 서늘한 밤공기 뿐. 그것마저 서로의 숨결에 가로막혀 이대로면 속수무책으로 녹아내릴 것이라고 저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희미하게 울릴 때. 새슬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바라던 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입술에 닿는 아주 잠깐의 따스한 촉촉함, 그리고 다시금 뺨에 부딪히기 시작하는 차가운 공기. 새슬이 눈을 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을 손바닥에 두고 내려다보는 저 웃음. 저 웃는 얼굴이, 태도가, 애정을 갈구하는 새슬을 더욱 미치게. 비참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가늠조차 하지 못 한 채, 새슬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을 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모멸감, 수치심, 원망? 뒤틀린 것들이 새슬의 숨을 막는다.
“최악, 이, 야.”
겨우 힘을 짜내어 드문드문 말하면서, 새슬은 있는 힘껏 몸을 뒤틀어 지구의 품 안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아마 바란 대로 되었다면 힘 없이 바닥에 굴러떨어진 새슬이, 이윽고 몸을 일으켜 지구를 등지고 불규칙한 발걸음으로 걸어나올 것이다. 상대가 순순히 놓아줄지, 다시 붙잡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에이, 말이 그렇단 거지. 이 나이대에 벌써 전문 피아니스트가 될 정도면 완전 천재야, 천재. 그래도 상도 탔다니 대단해!"
재능에 맞는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늑대가 여럿 있다면 천재 늑대 피아니스트도 어딘가엔 존재할지도 모르겠네요. 쑥스러워하는 듯한 하늘이를 보고 오히려 비랑이는 더 반짝거리는 눈으로 하늘이를 띄워줍니다. 진심도 있고 쑥스러워하는 반응을 포착한 장난회로가 발동해서 부끄럽게 만드려는 것도 있겠지요.
"그거야 그렇지. 전에 비하면 많이 복잡해졌고. 그래도 나 이 게임 아직도 하는 사람 처음 봐."
어쩌면 우리는 꽤 취향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겉으로 보이는 성격은 활발함과 차분함으로 정반대긴 하지만요. 비랑은 이런 우연을 좋아합니다. 살짝 흥분하면서 목소리의 음이 조금 올라가기 시작하네요. 감정이 요동칠수록 무의식 중에 내기 쉬운 재능입니다. 매력적인 목소리 같은 종류는 아니고 그냥 조금 높아질 뿐이지만요.
"어? 명찰 달고 있었어?"
등잔 밑이 어둡다고, 명찰이 있는지도 깜빡 못 보고 지나쳤던 비랑입니다. 본인은 명찰 없이 다니니까요. 빨간 명찰을 받을 때쯤엔 색이 마음에 들어서라도 차고 다닐지 모르지만 지금은 파랑입니다. 명찰이 있다는 것도 깜빡하고 있던 비랑주의 잘못이긴 하지만... 비랑은 괜히 명찰을 잡았다 놓으려고 손을 뻗습니다. 무안함을 풀기 위한 것도 있고, 쪽팔림을 풀기 위해 와서 더 쪽팔림을 쌓아버린 것에 가벼운 후회도 있네요.
"클래식은 기본으로 해야 하는 거구나... 아 그러면 혹시 신청곡도 받아?"
그림 그리는 애들은 나 그려줘, 음악 하는 애들은 이거 해줘. 많이 들어봤을 말이지만 대부분 하는 것엔 이유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비랑도 직접 말하기보단 받을 생각이 있는지를 물어봅니다. 거절하면 미련없이 놓겠지만요.
대단하다는 말에 하늘은 괜히 실실 웃으면서 시선을 옆으로 회피했다. 다른 건 몰라도 피아노 관련으로 칭찬을 받는 것은 너무나 기분이 좋고 신나는 일이었다. 열여덟 나이의 소년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완전 기분이 좋다는 것을 보이면서 괜히 입술만 꿈틀거리다가 겨우 정지시켰다.
"그야 명찰은 달지. 그래도 못 볼 수도 있는거 아니겠어? 너무 당연하게 다는 거니까 더더욱 말이야."
그럴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하며, 하늘은 정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명찰을 안 다는 학생도 있을 수 있고, 자신도 때로는 이것을 떼는 건 어떨까 고민을 하기도 했었으니까.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하는 생각으로 치부하는 대신, 들려오는 말에 하늘은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청곡을 받냐는 물음. 사실 연주하지 못할 것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막 연주하는 것은 또 아니었다. 허나 같은 반이니까 가끔은 괜찮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기도 하다 하늘은 곧 결론을 내렸다.
"매번 받을 순 없지만 한 번 정도라면. 하지만 여기엔 피아노가 없잖아? 아주 가끔은 아무도 쓰지 않는 음악실에서 연주할 때도 있으니까 그때 우연히라도 찾아온다면 들려줄게. 집에도 피아노가 있긴 하지만, 녹음으로 듣는 것하고, 직접 라이브로 듣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
기왕이면 녹음보다는 라이브로 들려주는 것이 더 생생하다고 여기기에 하늘은 그 정도로 제안을 했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일지는 비랑의 자유였다.
너랑 내가 만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서로가 동류라는 걸 알아보았기 때문일지도 몰라. 나는 고질적인 외로움에 질려 있었고, 너에게도 널 질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겠지. 내 빈곳에는 맞지 않는 퍼즐조각을 쥐고서, 그 빈자릴 채워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다녔던 것 같아. 그게 너일 거라고 생각했어. 결과적으로 우리는 비슷하게 생긴 다른 그림이었지만.
"…해인아."
사하가 손을 들어 해인의 뺨을 살살 쓸었다. 눈꺼풀을 내리깔고 낮게 웃은 사하가 말했다.
"나는 네가 멍청하게 자존심 세우지 않아서 좋아."
굽히게 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건 얻어야지. 지금처럼. 뺨에서 떨어진 손이 해인의 손목을 쥐었다. 잡은 걸 그대로 끌어다 제 목에 가져다댄다. 무언의 허락이었다. 양이 스스로 늑대의 입 앞에 제 목덜미를 숙였다.
313 모친에 대한 생각 (자신의 꿈에 대해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응원해주셔서 힘이 되는 대상) 192 타인과 자기 자신 중 더 우선시하는 쪽은? (모두가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저울에 재본다면 타인에게 약간 기울었다고 보여요. 아주 약간이지만) 321 가지고있는 신발의 종류와 개수는? (실내화, 평상시에 신고 다니는 운동화, 실험때 손상 될수도 있으니 혹시나 해서 가지고 있는 예비용 운동화. 3켤래) #shindanmaker https://kr.shindanmaker.com/646172
달짝지근하고 뭉근한 페로몬은 언제쯤 화연호의 폐부를 꽉 채우게 될까. 자기 페로몬이 더 진해지는지, 어떤 식으로 퍼지는지에 대해서 자각이 없는 아랑이 연호의 품속에서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 왜 없다고 생각하는데...? 너 아까 뽀뽀... ”
아랑은 말끝을 흐렸다. 엄청 잘 하던데... 라고 말하는 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 엄청 여러 번 해본 것처럼 느껴졌다(그렇게 느껴지긴 했다.)고 말하는 건 실례 아니야? 엄청 간질간질하던데, 라고 말하면 그것도 뭔가 많이.. 만월이 지난 날이 괴로워질 것 같은데...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한 아랑은 입을 꾹 다물었다가, 그냥 한숨만 폭 쉬었다. 이래서 입이 원수란 건가 봐. 왜 없다고 생각하는데, 에서 말을 끝냈어야 하는 건데. 흐린 말을 더 묻지 말아 달라고 응석 부리는 것처럼 그의 품에 얼굴을 두어 번 부비적 거렸다.
“ 넌 왜 티 내고 다녀? ”
그리고 또 아랑의 입은 아랑의 원수가 되었다. 원래 이런 질문은 잘 안 하는데, 궁금했단 말이야. 다른 늑대들이 꽤 인간들 속에 잘 녹아드는 편이라면. 왜 넌 녹아들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지. 너는 네가 늑대란 것에는 전혀 불만이 없어?
“ 내가아, 안 괜찮아아... 얘가 아주 큰일 날 소리를 하네. ”
누가 아무 사람 앞에서 외박 괜찮다고 하래. 그러다 너 진짜 큰일 나 버린다. 아랑은 잠깐만 고개를 퍼뜩 들어 엄격한 얼굴로 그를 보고 이야기 했다. 늑대라고 세상 만만하게 보다가 큰 코 다치면 어떡하지...? 걱정되는 마음도 들어서 그랬다.
“ ....아쉽긴 하겠지이. ”
적어도 보름달이 농간을 부린 오늘 밤은 그렇다. 다른 쪽으로 말머리를 돌린 대답을 듣고 다시 대꾸해주는 대신 얼굴이 살짝 뾰로통해졌을 거 같다. 말머리를 돌려 토라진 것처럼도 보였거나, 아쉽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사람처럼도 보였겠지.
“ 으응, 그렇게 할래. ”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그의 말에 만족스럽게 대답했다. 아까전보다 조금 더 길게 목덜미에 닿는 약하고 부드럽고 날카로운 이빨이, 간질간질하게 느껴져서 곤란함을 느끼게 될 작은 미래를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답이었나보다. 아랑은 그의 허리를 껴안는 대신에, 그의 머리카락에 손을 뻗어 살랑살랑한 느낌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으니까, 쓰다듬어도 될 거야. 그의 이빨이 떨어질 기미를 보였으면 아랑은 천천히 손길을 거두었을 테다.
“ 좀 이상한 부탁이긴 한데에, 나도 너 깨물어 봐도 돼? ”
//연호주! 다음 레스 짧게 주셔도 완전 오케이에요! 생각보다 길게 써져버렸어요... ㅇ<-<
평소의 사라였다면 뭐라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꺼내면서 재잘재잘거렸을 텐데, 지금은 시아가 먼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오는데도 눈이 가리워진 채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시아의 손을 쥔 채로 목줄 채인 짐승마냥 얌전히 따라온다. 코피는 멎었지만 제대로 닦지 못한 붉은 흔적들이 아직 옅게 남아있어 평상시의 모습에서는 쉽게 연상하기 힘들 만큼 처량맞았다.
그러나 가로등 아래에서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시아가 떼었을 때는, 시아의 다정한 미소가 비치는 사라의 눈동자는 여전히 평소와는 다른 낯선 기색을 띠고는 시아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시아가 나직히 말했는데, 그런데 사라는 시아의 손을 놓지 않는다.
"누구 맘대로?"
사라의 목소리에는 아까의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기색이 말끔히 가셔 있었다. 그렇지만 평소보다도 나직하고 평소보다도 단호해서, 사라의 목소리인데 사라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